길을 걷는다. 계곡물 흐르는 산길을 느릿느릿. 산 뒤로 뭉게구름 한 장 올라오고 물 따라 시원한 바람 불어오는 계곡길을 간다. 바람은 나무에 부딪혀 부서지고 나무는 바람의 뜻에 따라 춤을 춘다. 계곡물은 여행자를 반기며 박수치듯 소리 내어 흐른다. 계곡은 바람과 물을 보듬어 안고 나무는 그 속에서 상쾌한 향기를 풍긴다. 길을 가다 시원한 나무그늘을 찾아 너른 반석 위에 몸을 뉘어 하늘을 바라보며 주위에 귀를 기울인다. 잔풍향양 속에 이 모든 게 오감으로 느껴진다. 시원한 물, 포근한 산을 찾아 조용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려는 이들에게 문경 용추계곡이 최고의 피서지로 사랑받는 이유다.
용추계곡 전경
눈길 머무는 곳마다 풍취 좋은 탁족처
용추계곡은 문경이 대야산 속에 은밀하게 감춰둔 비경이다. 산자락을 타고 흐르는 옥수는 너른 암반을 만나 뛰어난 계곡미를 뽐내고, 우거진 숲은 계곡과 조화를 이뤄 무릉도원을 연상케 한다. 계곡 어디라도 탁족을 즐기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힘겹게 산을 올라야 하는 수고도 필요 없고, 계곡 아래위로 선유동계곡, 쌍곡계곡, 화양동계곡 등 이름 높은 계곡이 즐비하다. 게다가 사람들로 인한 몸살이 덜해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문경읍에서 가은읍을 지나고 봉암사를 거쳐 속리산국립공원으로 가다 보면 완장리 벌바위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 입구에서 계곡까지는 승용차로 약 5분 거리. 포장길을 따라 천천히 들어가면 매점과 민박을 겸한 식당들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용추계곡이 시작된다.
초입부터 우거진 숲과 널찍한 너럭바위, 그 위를 흐르는 맑은 계류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계곡이 비교적 넓고 수심도 깊지 않아 물놀이 장소로 제격이다. 금방이라도 자리를 펴고 주저앉고 싶은 그런 풍경이다. 산길을 오르는 게 싫다면 이곳에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쉬어도 좋다. 아쉬운 것은 목이 좋은 곳은 이미 음식점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 개별 주차장을 갖추고 있는 데다 평상에서 식사는 물론 오수를 즐기기 좋아 이용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
식당 위로도 나무그늘 아래 평평한 바위에 돗자리 펴고 물놀이를 할 수 있는 포인트가 계속 이어진다. 100여 m 올라가면 좁았던 계곡이 넓게 펼쳐진다. 물살도 완만하고 수심도 어른 무릎 정도여서 아이들이 놀기에 최적의 장소다.
용추계곡의 백미는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용추다. 이제까지의 풍경은 용추를 빛내기 위한 전주곡에 불과하다. 용추까지는 등산로를 따라 15분가량 오르면 된다. 등산로는 잘 닦여 있어 힘들지 않다. 산책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싱그러운 숲 내음을 맡으며 걷는다.
용 승천 자국 선명한 용추
용추는 1986년 문경시가 지정한 문경팔경 중 하나다. 3단으로 흘러내리는 용추의 생김새는 참으로 신비하다. 제일 상단은 거대한 암반이 수천 년 동안 물에 닳아서 원통형의 홈이 파였다. 그 홈을 타고 맑은 계류가 엿가락처럼 꼬아 돌며 아래로 떨어진다. 상단에 파인 홈은 멀리서 바라보면 하트 모양이다. 물속에서 보면 항아리처럼 되어 있어 손으로 잡을 만한 데가 없기에 매우 위험하다. 익사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곳인 만큼 물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중단은 상단보다 넓은 소를 형성한다. 마치 잘 다듬어놓은 천연의 목욕통을 연상시킨다. 이곳은 언제나 청춘들의 차지다. 물이 깊어 위험하지만 소를 가로질러 길게 줄을 매어둔 탓에 더위를 피해 물로 뛰어드는 이들이 많다. 계곡 상단이라 물놀이하는 사람들이 적은 데다 아래로 길게 드리워진 용추계곡이 아름다워 한번 자리를 펴고 앉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신 들락날락하게 된다. 하단은 중단에서부터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3m가량 암반을 타고 물이 흐른다. 아래는 얕고 넓은 소가 만들어졌다. 하단의 최고 재미는 중단에서 하단으로 이어지는 매끄러운 암반을 따라 미끄럼을 타는 것이다. 맨몸이어도 좋고, 튜브를 타고 내려와도 짜릿한 천연 슬라이드로 전혀 손색이 없다
암반 위로 계류가 흐르며 멋진 풍광을 연출하는 용추계곡
용추의 비경에 신비감을 더해주는 것이 용추 상단에 선명하게 찍힌 용의 꼬리다. 그 모양새가 용의 비늘 자국과 흡사하다. 옛날 이곳 소에 살던 용이 하늘로 오르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남겼다는 비늘 자국이라고 한다. 용은 물을 상징하는 신령스런 동물이라 날이 가물 때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낸다.
용추 위에도 작은 폭포가 계단처럼 이어진다. 대야산 정상을 향해 등산로를 20분 정도 오르면 망석대 지나 널찍한 암반이 펼쳐진 월영대가 나온다. 이곳 역시 숲으로 둘러싸여 시원하다. 이름처럼 밝은 달이 산 위로 떠오르면 물에 비친 아름다운 달이 저절로 상상되는 그런 곳이다. 그 위로도 계곡은 한동안 계속된다. 하지만 이전처럼 멋들어진 곳을 찾기가 쉽지 않으므로 등산이 목적이 아니라면 월영대까지가 적당하다.
탄광마을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전하는 석탄박물관
십 수 년 전만 해도 문경은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탄광 도시였다. 탄광이 40여 개에 이르렀고, 광부만도 1만 명을 헤아렸다. 한창때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돈이 흔했던 고장이었다. 1994년 은성광업소를 마지막으로 탄광이 사라지면서 16만 명이 넘던 인구가 8만여 명으로 줄었고, 탄광 자리에는 석탄박물관이 들어섰다.
가은읍에 자리한 석탄박물관은 문경의 십수 년 전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폐광이 된 갱도를 그대로 살려 채탄 작업을 재현하고, 전시실에는 채탄 관련 장비, 각종 자격증과 관련 사진 등을 전시해 우리나라 석탄산업의 발전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작업으로 연탄을 찍어내는 모습이나 어두운 탄광에서 도시락을 먹는 풍경을 재현한 디오라마에는 어려운 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다음은 실제 사용하던 갱도의 일부를 보수해 전시시설로 활용한 야외 전시장이다. 갱도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 중인 광부의 모습을 비롯해, 실제 갱도 안에서 작업하는 광부들의 작업 광경이 실감난다. 석탄박물관은 지난 1994년까지 채굴을 하던 은성광업소가 문을 닫자 문경시가 석탄산업의 발전 과정을 재현, 보존해 아이들의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마련하였다. 석탄박물관 뒤 산자락에는 드라마 <무신>등을 촬영한 사극 세트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