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울기등대로 1... (울산에 도착하며)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위에 차고/ 한 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에/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영국민요로 고은 선생이 우리말로 작사하고 은희가 불렀던 등대지기 노랫말이다. 그 노래 배경은? 외딴 섬에서 등대원으로 일하는 재우... 어릴 때부터 형만 좋아하던 어머니... 그 어머니가 치매(癡呆)로 앓고 있었다. 그러던 중 형은 외국으로 나가면서 어머니를 불편한 마음이지만 모시게 되었다. 어느 날 벼락으로 등대가 고장이 나서 수리하던 중 감전(感電)이 되었단다. 이를 간병(看病)하던 어머니는 죽고 재우는 살아나서 모정(母情)을 그린 노래다.
야간에 등불이 강렬한 빛을 발하여 선박 또는 항공기에 육지의 소재, 원근(遠近), 위험한 곳 등을 명시해 주는 등대(燈臺)... 주간에도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탑 모양으로 건조되고 흰색 ·주황색 ·검은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BC 280년 지중해의 알렉산드리아항(港) 입구의 팔로스 섬에 등대가 처음으로 건설되었다. 높이가 110m나 되는 탑 모양이며 나무나 송진을 태워 불을 밝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팔미도에 처음 건축하였으며 포항에 등대 박물관이 있다. 이 등대 중에서 울산의 울기 등대를 한화투어를 따라 6월 27일 떠났다.
울산12경으로 지정된 대왕암공원(大王岩公園) 내에 위치하고 있는 울기(蔚埼)등대... 蔚埼란 울산의 끝이라는 뜻으로 지형이 바다 쪽을 향해 뻗어있는 곳에서 유래하였단다. 1905년 러일전쟁 당시에 목재 등간(燈干)을 설치하여 방어진항으로 배를 유도하는 항로표지로 사용하였다. 그 후 1906년에 현 장소에 콘크리트 구조물로 건설되었다. 1987년 해송이 등대를 가리면서 위에 촛대 모양의 등대를 새로 세웠고 구 등대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주변이 해송이 우거지고 해금강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한편 용이 휘감아 감싸 듯 신비롭고 편안함 바위섬임 大王岩...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문무왕... 그의 능(陵)은 경주 감포 앞바다에 모셨고 그 왕비를 이곳 수중(水中)에 장사(葬事)를 지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대왕암 밑에는 해초가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울기등대에 이르는 해변 길은 15,000여 그루의 곰솔이 치솟아 있고, 대왕암, 용굴, 탕건암 등의 기암괴석들이 절경을 이룬다. 대전을 떠난 여행길...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푸른 대구 밝은 미래, 세계 속의 패션 대구를 지나 언양 분기점에서 울산에 도착한다.
울산 울기등대로 2... (태화강을 지나며)
언양을 지나니 작괘천(酌掛川)이 생각난다. 영남 12경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酌掛川... 수백 명이 앉을 듯 한 너른 바위마당을 부드럽게 스치듯 물이 사철 맑게 흐르고 있다. 그 사이 이곳저곳 움푹하게 파인 형상들이 마치 술잔을 걸어 놓은 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옴폭하게 파인 바위가 달밤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과 계곡 사이를 떠다니는 반딧불이의 불빛이 아름답다.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가 경치(景致)에 반해 이곳에서 수학(修學)하였단다. 또 일제 강점기에는 언양 지방 3·1운동의 중심지로도 유명하다.
울산의 젖줄 태화강(太和江)... 가지산과 고현산에서 발원(發源)하여 신화천, 대암천, 사연천, 동천을 만나면서 동해로 흐른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산동성 태화지변(太和池變)을 지날 때 신인(神人)의 게시(揭示)를 받고 귀국하여 이곳에 태화사를 짓고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빈 데서 이름을 빌렸단다. 임진왜란, 일제 강점기 등 국가의 위기가 있을 때마다 불교는 의병을 일으켜 국난(國難)을 극복하였으니 호국(護國) 불교(佛敎)라 한다. 이 강을 따라 가는 길에 차안에서 ‘립스틱 짙게 바르고’ 노래가 흘러나온다.
‘내일이면 잊으리 꼭 잊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 사랑이란 길지가 않더라./ 영원 하지도 않더라./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아 속절없는 사랑아’로 이어진 이 노래는 임주리가 불렀다. 1977년 미군 스테이지에서 시작한 그녀의 노래 인생... 1981년 한국연극영화 TV 예술상 주제가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였지만 얼굴 없는 가수로 알려졌을 뿐이다. 하지만 MBC 연속극 ‘엄마의 바다’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서 다시금 대중들에게서 옛 기억을 상기시키면서 중견 가수로 발돋움하였단다.
여자의 변화.... 헤어스타일, 옷, 화장 등이 눈에 띄게 변한다면 심경(心境)의 변화가 있음을 알려주는 전주곡(前奏曲)이랄까? 립스틱을 짙게 바르면 애인을 잊을 것인지... 아니면 당장 잊지는 않아도 오늘 밤을 자고 나면 잊겠다는 뜻인지... 남자는 여자를 정복하면 배신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자는 첫 사랑은 영원히 잊지 못한다고 한다. 이별에 대한 여자의 심정을 말하는 이 노래는 발표한지 30년이 되었어도 많은 국민이 애창곡(愛唱曲)으로 부르고 있다. 곡도 중요하지만 노랫말이 심금(心琴)을 울려야 한다. 최근 ‘내 나이가 어때서’가 바로 그런 이유다. 여행길은 태화강 십리 대밭을 지난다.
울산 울기등대로 3... (현대자동차를 지나며)
구 삼호교에서 용금소까지 태화강을 따라 약 10리에 걸쳐 群落을 이루고 있는 대나무 밭... '십리대밭'이라고 불린다. 일제 강점기 때 잦은 범람으로 농경지 피해가 많아지자 주민들이 홍수 방지용으로 대나무를 심은 것이 그 유래다. 하지만 원래 18세기부터 대나무가 자생(自生)하고 있었단다. 지금은 총 16만㎡에 걸쳐 초화(草花)단지’를 조성하여 꽃 양귀비, 수레국화, 청보리, 금계국, 안개초 등 7종 6천여 만 송이의 꽃을 심었단다. 봄에 가면 꽃이 만개, 꽃 바다를 이루고 있으며 죽림욕(竹林浴)을 즐길 수 있다.
이곳의 이휴정(二休亭)... 울산도후부의 객사였던 二休亭은 1662년에 건립하였다. 2차에 걸쳐 화재가 발생하였지만 중건(重建)하였다. 1940년 현 울산초등학교의 교정을 확장하면서 건물을 헐었을 때 학성(鶴城)이씨가 이휴정을 소유하였다. 鶴城은 울산의 옛 이름이다. 이곳의 태화사지... 앞서 기술한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는데 이곳에서 발견된 십이지상 사리탑... 종 모양의 몸돌에 불상을 모시는 감실(龕室)을 만들고, 12지상 안상(眼象)이 그려졌다. 12지상은 석탑이나 석등에는 있지만 부도(浮屠)에 있는 것은 이것이 유일하다.
이곳에 오니 울산이 고향인 외솔 최현배 선생이 생각난다. 연세대학교에 근무하였던 그는 일제강점기에는 한글학회 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하였다. 해방 후 문교부 편수국장으로 재직하면서 교과서 편제(編制)는 물론 한글 전용에 혼신의 노력을 바쳤다. 지금도 기억나는 교과서인 ‘말본’ 바로 문법(文法)이다. 국어와 한글운동의 이론가이며 실천가로서, 민족의 중흥과 민주국가 건설을 외친 교육자로서 남긴 업적과 공로는 역사에 남을 일이다. 그의 은사(恩師)였던 주시경(周時經)선생 역시 한글에 지대한 업적을 남겼다.
현대 자동차 공장을 지난다. 광장(廣場)에 출고(出庫)를 기다리는 자동차들...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밑거름이다. 한편 현대 자동차 하니 연례적으로 발생한 노사분규(勞使紛糾)가 생각난다. 노동조합은 경제적 약자(弱者)를 위하여 만든 조합인데 생산량 조절, 인력 전환 배치, 작업 공정 개선, 고용 세습(世襲) 등 노사 간 첨예하게 갈등(葛藤)이 심하였다. 파업(罷業)하면 현대가 우선 생각나니 잘못이다. 하지만 이곳에 붙어있는 문구(文句)...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되는 것이다.’ 미사여구(美辭麗句)가 아니길 바란다. 특히 고용세습인 음서제란?
울산 울기등대로 4... (울산등기대에서)
현직 당상관의 자손이나 친척을 과거에 의하지 않고 관리로 채용하는 음서제(蔭敍制)... 고려와 조선 때 성행하였다. 얼마 전 전직 장관이 자신의 딸을 사무관에 특채(特採)하였다가 구설수에 오른 경우도 있었다. 한편 국가 유공자의 가산점 부여로 공무원 채용시험의 특혜... 일정 %이하로 줄여야 한다. 또한 국가 유공자의 선별 과정도 문제가 있다. 독립유공자, 6.25나 월남전 참전 용사의 자녀는 이해가 되지만 동의대에서 경찰을 죽인 사람 등 공권력을 파괴한 사람들을 유공자로 인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주변에 출퇴근용 오토바이가 즐비하다. 운전기사도 출퇴근시간에는 이곳이 교통이 마비된다고 설명을 한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 기업에서는 통근 버스로 대체하면 어떨까? 대왕암 주차장에 도착한다. 상가 옆을 지나 도착한 곳이 안 막구지기란다. 막은 맨 끝, 막다른 길을 뜻하고 구지기는 구석의 사투리란다. 머라꼬(뭐라고), 머꼬(무엇이니), 누꼬(누구니), 새임예(선생님요), 머라꼬예?(뭐라고요?), 갈랍니더(가겠습니다.), 밥뭇심더(밥 먹었습니다.), 얼맵니꺼?(얼마입니까?), 누구십니꺼?(누구십니까?), 잘가그라(잘가라), 밥무라(밥먹어), 머라카노(뭐라 그러니?) 등 경상도 말은 구수하다.
큰 벼랑 안에 깊숙한 곳으로 큰 파도가 치면 그곳에서 나는 소리가 덩덕궁으로 들리는 용굴, 부부송(夫婦松), 너럭바위를 뜻하는 넙디기, 남근(男根) 암(岩)같은 할미 바위, 갓 속에 쓰는 탕건같이 생긴 탕건 바위, 이 해안에서 가장 높은 곳을 뜻하는 고이... 여기서 미포만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금(砂金)을 채취하였던 사금방을 지나니 용추수로(龍湫水路)에 도착한다. 대왕교를 건너는데 파도가 심하다., 옆에 용의 목이 잠겼다는 복시미... 표준어로 지명(地名)을 표기하여야 하는데 사투리로 쓰니까 더 애정(愛情)을 느낄까?
삼국 통일을 완수한 문무왕... ‘죽은 후에도 호국(護國) 대룡(大龍)이 되어 불법을 수호하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 그래서 경주시 양북면에 모셨다. 또한 문무왕아 돌아가신 뒤 그의 넋이 바다를 지키거늘 문무대왕비도 무심할 수 없어 용신(龍神)이 되었으니 바로 이곳 울산 대왕암이다. 이는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지도록 노력하는 분골쇄신(粉骨碎身)이다. 요즘 우리 정치... 말 한 마리에 두 사람이 타려면 한 사람은 반드시 뒤에 타야 하는 법... 먼저 희생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며 여행을 마친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