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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구 목사님의
목회적 사상과 교회적 가치에 관한 고찰
"그의 손이 하는 일은 진실과 정의이며 그의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무궁토록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 (시편111편 7~8절)
구포제일교회 담임 목사님으로 섬기고 있는 이성구 목사님에 관하여 제 3자가 글을 적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더우기 같은 교회를 섬기고 있지 않고 단 한번의 진지하고 성과있는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는 목사님에 대하여 어떤 기록에 남을 글을 적는다는 것은 사실상 무모한 작업일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구목사님의 목회적 사상과 교회적 가치에 관하여 일련의 기초적인 작업을 하고자 하는 것은 이성구 목사님이 추구하는 목회적 중심 사상이 교회의 본질적 가치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의미있는 성과로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회 대내외적으로 도전받고 있는 "진리와 자유", "정의와 평화", "화해와 일치" 에 대한 명확한 논리를 주장함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시대적 소명과 가치를 일깨워 주는 바른 목회자상을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성과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 글에 대한 공의와 객관적 입장을 담아내기 위한 일련의 사전작업이 필요하였으며 다음과 같은 여섯가지의 자료를 사용하였습니다 구포제일교회가 공식적으로 발행하는 여러 문서 가운데 "주보"와 "월간 시온성"과 "중보기도정보지"등 세가지의 종류를 참고 자료로 활용함으로서 이성구 목사님의 설교관과 목회철학과 교회관을 연구하는데 약간의 도움을 얻을수 있었습니다 또한 온라인상에서 구포제일교회의 공식 홈페이지(www.gupojeil.or.kr/)를 통한 주일설교와 이성구 목사님 개인의 블로그인 "이성구의 블로그"(leefam.pe.kr/blog), 그리고 교회의 정보를 전달하는 "코람데오 닷컴"의 일부내용(www.kscoramdeo.com/news/read.php?idxno=1813&rsec=MAIN§ion=M.)을 객관성있는 자료들로 연구하여 글을 작성하는 기초자료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글은 미완성의 형태에서 가장 균형잡힌 인덱스와 같은 목록이므로 논란의 주제로 삼기위한 논문형식이 아님을 미리 밝혀 둡니다
1952년,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이삼렬조사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8.14)
함안읍교회 출석(선친, 이삼렬 조사)
1960년~,
마산중학교 졸업
1970년~,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B.A)
1980년~,
SFC 전국 대표간사 및 부산지역 간사,
박광희 사모(전남대학교 수학과 졸업, 교사)와 혼인,
찬미, 시온, 영원의 3자녀
광안남교회 설교자 동역사역
고신대학교 대학원 목회학석사과정, 신학석사과정 졸업(M.Div, THM)
영국유학 "라브리"(L'Abri, 프란시스 쉐퍼박사 설립, 기독지성인 훈련기관) 영국지부 간사
영국 ELTS 통과(영국공인 어학테스트)
영국 브리스톨(Bristol) 트리니티 대학원 구약학 박사학위과정 졸업(PH.D)
1990년~,
부산 사직남교회 담임목사,
부산신학대학(경성대학교) 신학과 교수('91~'99)
고려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99~'08)
2000년~,
한국목회자협의회 정책위원장('02~현재)
목양장학회 이사('02~현재)
사단법인 통일문화원 이사장('03~현재)
통일부 통일교육원('05~현재)
대통령 자문기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07~현재)
구포제일교회 제 4대 담임목사('08~현재)
북구 기독교 총연합회 회장('10~현재)
1. 이성구 목사님의 생애와
사상
이성구목사님은 1952년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서 태어나 고신교단의 역사와 정통성을 고수한 함안읍교회를 출석하였습니다 그것은 함안읍교회에서 조부 이홍식목사님과 선친이신 이삼렬 목사가 시무한 교회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성구 목사님은 청빈 청렴한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바로 그러한 선친의 삶속에서 스스로는 목회자보다는 기업가로서 성공하고 싶었던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친 이삼렬목사님의 서원에도 불구하고 이성구목사님은 당시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선친의 청렴, 청빈한 생활로 인한 가난이 원인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그의 삶의 방향을 "교회와 목사님을 보필하는 기업가형 장로"로 삶고 20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한 삶의 태도를 달리했던 이성구 목사님에게 있어서 인생의 첫번째 터닝 포인트는 군생활중에 다녔던 남서울교회 홍정길목사님을 만나면서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홍정길 목사님이 서울 강남구 반포동에서 남서울교회를 개척하여 교세를 확장하고 있을때, 인근지역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던 열성적인 기독청년 이성구 목사님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모양으로 기대하던 절묘한 만남으로서 두사람 모두의 공통점이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신앙생활을 통하여 이성구목사님은 목회에 대한 갈망과 열정을 가지게 되었고, 그 결심은 1978년, 동작동 국립묘지에서의 제대와 동시에 고려신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는 현실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당시 그에게 있어서 고려신학교의 생활은 무엇인가 채워줄수 없는 갈증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커다란 유익을 얻지 못한 채 졸업을 하게된 이성구 목사님은 우연한 기회에 당시 학생신앙운동의 표제가 되었던 SFC의 간사로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평생의 동역자이며 동반자인 세살 연하의 박광희 사모님과 만나 결혼을 한 것도 이 시기였으며, SFC 간사로서 박봉의 수당으로 인한 신혼생활은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계기로 그는 기독학생운동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보다 심도있는 선도운동 학습을 위하여 기독학생운동으로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IVF(Inter-varsity Fellowship)가 시작된 영국 유학으로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초기 SFC운동의 열악한 환경을 넘어 오늘날 기초가 세워진 학생신앙운동의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되기까지 이성구목사님의 헌신적인 활동이 있었슴을 말해주는 중요한 대목인 것입니다
귀국후 이성구 목사님은 부산 사직남교회와 부산신학대학에서 담임목사와 신학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그리고 1999년부터 2008년 구포제일교회에 부임하기 까지 천안 고려신학대학원의 구약학 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신학대학원의 교수로 재직하는 마지막 시점에서 일부 또 다른 교수진과 불협화음이 있었으며 이 일로 인하여 다시한번 큰 상처를 입게 되었으나 진실에 대한 공의가 이번 만큼은 이성구 목사님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고신교단의 목회자로서, 고신교단의 신학자와 교수로서 이성구 목사님은 언제나 이방인이었습니다 교단의 근원과 진리를 회복하고자 열성을 다하면 다할수록 이성구 목사님에 대한 교단 내부의 반응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반대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에 대한 정확한 원리조차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남아있는 10년 세월, "진리와 정의", "화해와 일치"라는 스스로의 트레이드를 그대로 가지고 구포제일교회로 복귀하였습니다 구포제일교회는 선친이신 이삼렬 목사님이 청빈과 청렴으로 섬겼던 교회였습니다 그에게는 그의 분신과 같은 천안 하나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가 원하기만 하면 그를 사랑하고 그를 지지하는 하나교회로 갈 수 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그가 원하는 세상과 교회를 꿈꾸며 행복한 목회를 펼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구 목사는 스스로가 걸어왔던 과거의 발자취처럼 포장도로와 같은 편리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여기에 오기 까지 구포제일교회는 여러가지 문제로 난관을 극복하지 못한채 이성구 목사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임자와 교회의 관계, 그리고 새롭게 구비한 화명동의 교회 신축부지 등등 대내외적으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채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의 일부 교회와 교단의 지도자들도 이성구 목사님이 부임하는 것에 대하여 우려의 목소리를 드러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여타의 모든 교회들이 젊고 유능한 목회자를 담임으로 청빙할때 구포제일교회는 은퇴기에 접어든 신대원 교수에다가 외인으로 분류되어 있는 이성구 목사님을 청빙하기로 결정하였다는 것입니다 구포제일교회는 왜 이같은 납득하기 어려운 선택을 하였을까요? 그리고 이러한 청빙의 요청에 대하여 이성구 목사님은 왜 교수직을 버리고 구포제일교회를 선택한 것일까요?
이성구 목사님은 위임식에서 그의 속내를 드러내는 듯한 메세지를 교단의 지도자들에게 던졌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이 자신에게는 원없는 영광이며, 지난날 겪어왔던 억울함을 이 땅에서 푸는 것 보다 하늘에서 푸는 것이 자신에게 위로가 된다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하나님의 찬성으로 구포제일교회에 부임하게 되었다고 설명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를 정치적 목사로 지칭하고 우려를 표하는 일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세지로 자신의 뜻을 표명하였습니다
"사람은 창조로부터 더불어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저를 두고 정치적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지만 목사의 자리는 본래 정치적입니다 정치가 결정에 이르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고 할 때 공동체의 리더는 모두 정치적인 역할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교회의 앞에 서서 모든 성도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며, 지역교회와 나아가 한국과 세계의 모든 교회들과 함께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는 지금 구포제일교회의 "질적 부흥"을 위한 대각성 기도를 외치고 있습니다 절대 빈곤의 구포동, 낙후된 교육시설과 열악한 환경속에 좌절과 절망만이 남아있는 그곳에서 그는 안개속에 가려진듯한 꿈과 희망을 외치고 있습니다 선친이 이루었던 구포제일교회의 옛 부흥과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는 교회 내외에서 일어나고 있는 구습과 잘못된 관행들, 그리고 상호 불신과 공동체를 헤치는 그 어떤 도전과도 타협하지 않을 각오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포제일교회를 넘어서 지역의 교회들과 교단과 고려학원과 복음병원에 이르기 까지 대각성 회복운동을 외치는 마지막 절규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임과 동시에 중보기도 운동을 일으키고 그 일환으로 "중보기도 정보지"를 발행하여 하나의 교회에서 함께 생활하는 지체들의 어렴움에 기도로 동참할 것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기도에 대한 열정은 구포제일교회의 어둠속을 밝혀주는 촉진제가 되었습니다 심야기도회와 특별새벽기도회에 300여명이 동참하는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고 그들의 기도는 하늘에 닿을듯 큰 외침으로 나아갔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목적이 이끄는 40일"운동을 특별새벽기도회로 함께 드렸고 40일이라는 짧지않은 기간동안 수백명의 성도들이 그들의 삶을 새롭게 조명해 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성구 목사님에게 있어서 기도란 단순히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가 아니라 이러한 하나됨의 외침을 통하여 하늘의 비밀을 움직이는 기적의 역사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실재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은퇴를 생각하여야 할 60대, 이성구 목사님은 목사안수 1년차의 열정과 헌신으로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한가지, "진리수호"와 "진리의 승리" 이것은 곧 성경의 승리이며 예수님의 승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2010년 현재 구포제일교회에는 800여명의 성도가 함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계층과 문화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구포제일교회는 새로운 방향, 새로운 질서의 개념속에서 화명동으로의 진출을 접고 구포동에서의 새로운 도약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낯설지 않은 구포동에서 구포제일교회는 질적팽창을 통하여 그들만의 희망과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질적팽창이 물질적 팽창을 가져오는 기초가 된다는 생각, 이것이 바로 이성구 목사가 꿈꾸는 구포제일교회의 현재와 미래인 것입니다
낙후된 지역을 변화시키고 일신시키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태도에 있다는 것을 이성구 목사님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일신의 중심에 구포제일교회를 새롭게 건설하고 가르쳐서 교인들을 중심으로 영적 부유함과 육적 부유함을 동시에 소유하려는 전략적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선례로 십일조의 강권과 부활절, 맥추절, 추수감사절, 성탄절과 같은 4대절기에 대한 헌금의 기준을 설정한 것입니다 복받기 위하여 교인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며 그것을 행동에 옮기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적으면 적은대로 많으면 많은대로 각양의 제목과 내용으로 하나님앞에서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빈곤과 교육적 패배감과 열등의식으로 부터 탈출하여 적어도 자녀 세대에 가서는 가난한 기독교인으로 살지 말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난한 과부와 같이, 없는 중에 헌신하고 가진 것 중에 더욱더 나누고 베풀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성구 목사님 자신에게 베풀고 넘치게 대접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부족함이 없고 넘쳐도 남음이 없는 것이 목회자의 삶입니다 목회자는 그 만큼 내일을 준비하고 저축하는 사람들이 아닌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삶의 경계를 실천하며 자신의 집으로 모든 교인들을 초대하고 대접하는 수고와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부임 초기와 같은 심정으로 지금도 이성구 목사님은 불철주야 철인과 같은 사명으로 목회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의 전화기는 항상 통화중일 만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람을 찾고 사람을 모으고 사람을 부르고 이성구 목사님의 목회는 주님앞에서 주님의 사람들을 사용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알고 지내고 있습니다 향후 10년, 그의 목회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 어떤 결론에 도달할 지 아무도 알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이러한 활력 넘치는 목회와 정의적 실천이 바로 구포제일교회의 미래를 희망있게 열어가는 밀알과 같은 역할은 분명히 할것이라는 확신이 선다는 것입니다
2. "진리와 정의" , "화해와 일치"
이성구 목사님의 목회적 사상을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진리와 정의" 그리고 "평화와 사랑"을 구현하고자 하는 '화해와 일치" 입니다 진리와 정의는 성경적 가치의 기준과 적용을 말하는 것이며 화해와 일치는 진리와 정의가 교회안에서 실재로 적용되어졌을때 일어나는 실효적인 행동강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진리로 부터 분리될 수 있는 길은 영원히 없습니다 모든 원칙은 진리로 부터 발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대교회는 진리가 책속에 담겨져 있을 뿐 실효성이 없어졌다는 비판적 논리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래서 이성구 목사님은 정의라는 카드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 정의란 교회 안팎에서 진리가 바르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화해와 일치는 바로 이러한 정의가 바르게 실현되었을때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땅에 구현하고자 하셨던 평화와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이 구포제일교회에서 이러한 사상들을 펼쳐 나가는데는 구포동과 덕천동이라는 지역적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구포동은 1990년대 까지 지역적으로 덕천동과 함께 북구의 중심역할을 해왔습니다 구포시장은 부산지역 뿐만 아니라 경남과 경북에 이르기까지 그 명성이 퍼져 있을 정도로 상권이 활황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식 시설과 편리한 주차장을 겸비한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구포시장의 영향력은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며, 김해와 양산의 급격한 도시 팽창현상도 구포의 상권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포역을 중심으로 하는 무분별한 주택가 형성과 유흥가의 밀집현상으로 구포동은 다른 지역에 비하여 빠른 속도로 도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한때 지역 최고의 중심 상권이었던 구포동은 북구 지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전락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화명동의 급격한 환경개선과 발전은 구포동의 상대적인 빈곤감을 더욱더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포제일교회는 오랜동안 북구의 영적중심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한때, 구포제일교회는 1,800여명의 성도를 교세로 하는 서부산권의 대표적인 고신교단 교회였으며, 화명 지역에 개척교회를 세우고 분립을 시켜 자생적으로 성장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중심축이 화명동지역의 신도시건설과 대형교회의 등장으로 인하여 급격히 저하되었고 구포제일교회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모양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양상에 대하여 이성구목사님은 상대적 빈곤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지역적 특성의 한계점을 "진리와 정의", "평화와 사랑", "화해와 일치"라는 3대 트렌드로서 극복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여타의 교회들이 "양적팽창"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 구포제일교회는 "질적팽창"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주요사상으로 표현해 내었으며 이것이 상대적 빈곤감에 처해 있는 위기상황의 구포제일교회를 북구의 중심으로 환원시켜 놓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의 설교와 저서에서 담겨져 있는 "진리와 정의"에 대한 가치는 교회의 행동강령 제 1조와 같은 절대적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진리"(眞理,Truth)는 시대와 사상과 관계없이 고정되어 있는 하나의 절대적 기준입니다 그것은 성경의 가치와 성경에서 논의되고 예시되는 모든 흔적들이 시대와 사상과 조류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변화할 수 없고 손질할 수 없는 절대적 영역이라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훈하는 빛과 조명은 시대의 조류와 관점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고 논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대를 초월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정의"(正義,justice,Correct)는 바로 이러한 성경적 진리가 교회안에서 바르게 교훈되고 적용되어져야 함을 나타내는 표현의 가치라는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에게 있어서 정의의 가치는 교회의 바른 질서와 바른 개념을 정립해 나감으로서 교회안에서의 성경적 도덕과 윤리가 바르게 실현되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론이 되는 것입니다 즉, 정의는 실현의 척도이지 이념의 원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점에서 정의는 반드시 구현되어야 하는 실재적 모형이 되는 것입니다
이성구목사님의 이러한 진리와 정의적 가치가 한때 교단과 교회와 강단에서 도전을 받게되는 아이러니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단 관계자들의 오류에 의하여 정치성이 짙은 목회자와 교수로 낙인되었습니다 그것은 교단을 장악하고 있던 기득권 계층의 관행적이고 수구적 태도와도 연관되어 있는 아주 정교한 행위들로 인한 것이었지만 본질은 훼손되고 이 사건으로 인하여 이성구목사님은 교단에서 제명되는 위기를 초래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이성구 목사님 개인적 차원을 논의하는 차원에서는 필요한 과정이지만 지나간 일에 대하여 정리되지 못한 사안의 뇌관을 건드리는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더 이상 언급하는 것은 결코 유익하지 않다고 판단이 되어 여기에서는 논의를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도전과 협상테이블의 아름다운 제안에도 불구하고 교단과 교회안에서의 정통성과 정의는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이성구목사님의 기본적인 철학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개념의 정립은 교회를 기초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질서를 한치라도 헤치지 않으려는 초대교회적 시각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에게 있어서 교회란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의 모성을 이루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상과 가치가 외부로 표현되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위상을 복음으로 증거함으로서 역사적으로나 영적으로 확인된 것들을 체험적으로 전달해 주는 하나의 모델의 유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복음과 영혼구원이라는 대명제속에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은 그의 설교를 통하여 이러한 교회의 본질적 가치를 보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설교의 범주 가운데 교인들이 교회안에서 사소한 문제들로 인하여 소비하는 비생산적 소모성 논쟁을 질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소모성 논쟁의 출발점에는 언제나 스스로의 경험과 역사적 관점, 주관적인 논리가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성구 목사님의 설교에는 경험과 논리, 전통적 절차와 가시적인 현상들로 부터 초월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현상들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논리와 주관을 이탈함으로서 타인의 정서와 논리를 이해하고 관용할 수 있다는 소통에 더욱 근접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소통의 중심에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라는 목적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이성구 목사님의 설교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적절한 역사적 배경과 현재의 생활을 조명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결국 그것이 지향하는 방향은 예수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단지 다른점이 있다면, 교회가 그것을 적용해 나갈 수 있는 방향에 있어서 이성구 목사님은 진리와 자유, 평화와 정의, 그리고 화해와 일치를 보다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투명성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앞에서 투명해지고 진실해 질때 교회로 부터 열려있는 세상앞에서도 자신감있는 태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성구 목사님은 교회의 재정과 물질관, 교회의 장로와 안수집사와 권사와 성도들간의 수평적 관계가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실천하고 적용하며, 세대를 이어 전달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안에서 심심찮케 일어나고 있는 부정적인 남여관계와 재정에 관한 비리척결을 위하여 권면과 치리가 바르게 사용될 것을 주장하고 있고, 이러한 불편한 관계가 교인들간에 일어나지 않도록 설교와 다양한 커리큘럼을 통하여 교훈하며 지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내적인 문제를 떠나 노회와 교단, 그리고 한국교회를 통틀어서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교인들간의 불통과 불륜과 법정소송에 대하여 대각성 회개할것을 촉구하는 강력한 메세지로 전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성구 목사님을 중심으로 그와 뜻을 같이하는 많은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펼쳐나가고 있는 교회 정화운동의 일환인 것입니다 특히 고(故) 옥한흠목사님의 청렴의 설교는 이성구 목사님의 사상과 동일한 맥락에서 주장되고 있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당시 구포제일교회 설교자로 초청된 상태에서 소천하셨습니다 때문에 그의 죽음은 이성구 목사님에게 있어서 남다른 감회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땅에서 몇 않되는 중요한 동역자를 잃어버린 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옥한흠 목사님의 소천을 기리며 많은 시간을 회상하는데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성구 목사님은 새로운 살아있는 동역자와 함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일꾼에 배고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입술의 일꾼이 아니라 스스로를 낯추고 희생하며 언제든지 부름에 합당한 주의 백성을 찾고 있는 것이 그가 느끼는 갈증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에게 있어서 일꾼의 가치는 투명성과 진실성, 화해와 일치의 적합성, 그리고 열심과 최선에서 나오는 일관된 섬김의 정서인 것입니다 교회에서의 일꾼은 일에 대한 순발력있는 이해력과 그 일에 대한 순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주어진 일이 내용과 항목에 상관없이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순종하려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필요할때 언제든지 사용 가능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필요하지 않을때 옆에 있는 사람은 보편적인 성도일 것입니다 사용 가능하되 목적에 적합한 용도의 내용을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의 철학을 이해하고 동질성을 갖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지금 어느 교회, 어디에 있든지 필요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가치를 높이는 목회자, 그것이 이성구 목사님의 목회철학인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이 찾는 또 다른 사람은 누구인가? 그 사람은 바로 우리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신도 사역자입니다 사역자는 목사님과 강도사님, 그리고 남여 전도사님 등을 일컫는 전임교역자와 평신도로 이루어진 평신도사역자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역자를 "부교역자"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담임목사님과 마찬가지로 교회로 부터 사례를 받으며 주일학교와 청장년층에 이르는 다양한 부서들을 책임지고 사역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분들은 전임사역지에서 배운 것과 또는 새롭게 시작하는 이곳에서 자기 소신껏 맡은 바 교회와 기관들을 책임있게 섬기는 분들로 나름대로는 경력과 능력이 인정된 분들이라 할 것입니다 이 분들의 사역을 도와서 일하는 분들이 교회 안팎을 관리하고 청소하는 관리집사와 공무담당자와 환경담당 직원, 그리고 방송을 전담하는 방송사역자와 인터넷사역자, 사무행정을 총괄하는 사무장과 사무원, 교회부설 유치원과 어린이집, 선교원을 전담하는 교사 들이 있는데 이 분들이 평신도 사역자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사람들은 모두 사례를 받으며 봉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비량으로 봉사하는 평신도 사역자와 유사성은 있으나 그 업무와 내용은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교역자는 담임목사님을 보좌하며 그들이 섬기기로 한 교회에 그들이 자원하여 지원하였고, 담임목사님과 당회의 동의에 의해 교회의 직원으로 초청된 것은 맞지만 평신도와는 달리 나그네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잠시 머물렀다가 나름의 경력을 쌓고 나면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부교역자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분들도 맡은 교회와 기관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있으며,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들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실상 이 분들이 없이 교회는 아무것도 달성할 수 없고, 교회의 행정과 질서와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평신도들이 갖고 있는 바쁜 사생활과 직장생활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많은 평신도들의 무책임, 무관심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보다 많은 역할과 책임을 부교역자들이 떠맡고 있는 형국이 한국교회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들은 때로 열심히 하고도 억울함과 누명을 쓰기도 하고 온갖 뒤치닥거리로 시간을 보내야 하기도 합니다 또한 열심히 만들어 놓은 기획서와 계획들이 스텝들의 무책임과 소극적인 참여와 인도로 인해 진행의 어려움을 겪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닌 것입니다 협조는 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논쟁을 일삼는 평신도가 있는가 하면, 행동보다 입술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유명세 교인들이 교회마다 전횡을 일삼고 있어서 부교역자의 마음은 새까만 숯덩이와도 같은 경우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더 나아가 논리가 맞지 않는 경우와 전후사정이 분명한데도 억지를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조건 욕설과 반말로 상대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람들도 교회안에는 섞여 있어서 부교역자의 사역은 고단한 삶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피로에 지쳐있고, 그 피로감으로 또 다시 웃으면서 설교를 해야하는 이중 삼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부목사님들과 강도사님, 그리고 전도사님들은 영원한 정착자가 아니라 또 다른 길을 가야하는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또 어떤 교회에서와 같이 이들가운데 일부는 곁에서 지켜 보고 있어야 업무의 효율이 오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두가 나름대로 사명을 가고 이 길을 가고는 있지만 사람이란 항상 무엇인가 통제를 받고 컨트롤될때 움직이는 수동적인 습성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통제하고 콘트롤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장로와 안수집사와 권사님들을 세워 이들의 부족함을 채우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성장은 부교역자 보다 장로님과 안수집사님, 그리고 권사님으로 이루어진 평신도 사역자의 적극적인 협력과 지원과 열심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평신도 사역자는 부교역자와는 달리 댓가와 사례를 받지 않고도 봉사와 섬김을 다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산의 증액없이 활동가능한 이점이 있는 반면에 시간적 공간적 제한성과 명확한 책임을 부여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 또는 전출을 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높은 신앙심과 충성도와 가능성만 있다면 목회자를 가장 지척에서 도와 줄 수 있는 조력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강점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평신도 사역자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 나올 수 있는 장래의 사람이기도 합니다 사실 교회안에는 주일학교임부장과 교사, 찬양대와 새가족위원회, 꽃꽃이와 문화센터 강사 등 각종 평신도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이들 각각의 역할들은 교회를 성장시켜 나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한 축이 되고 있으나, 시간적 공간적 제한성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주일봉사에 치중한다는 점에서 부교역자와는 다른 방식의 사역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즉, 평신도들의 직함이 갖고 있는 여타의 활동 가운데 주일 이루어 지지 않는 평일의 다수 활동들은, 모두 부교역자들이 떠 안게 되고, 그 결과의 책임까지 부교역자들에게 전가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시간적 공간적 제한성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의 섬김활동이 평신도들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평신도들이 평일 교회에 나오지 않고도 가능한 방법의 섬김이란 무엇일까요? 또는 평일 저녁시간대에 교회에 나와서 가능한 섬김활동들은 무엇일까요? 평신도들에게 있어서 평일의 활동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한 여러가지 문서작업과 기획서의 작성과 실행방법론 연구, 이메일전송과 카페 활동등을 통한 전도방식의 적극적인 제안활동, 교회의 성장을 위한 각종 제안과 연구방안 등, 생각의 여유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과목별로 공부를 잘하는 청년들이 있다면 평일 저녁 교회 학습관에서 과외활동도 가능하고 그외에 음악전문가들은 피아노와 각종 악기들을 가르쳐 줄 수 있으며 기획실 근무자와 기타 엑셀, 파워포인트 등 문서활동에 능한자는 주보와 각종 통계작업에 참여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와같은 일을 보다 지속적이고 책임있게 할 수 있는가 하는 실천의 문제인 것입니다 하루이틀 봉사하다가 마음 내키는데로 할 것 같으면 차라리 않하는 것이 낳을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점에서 평신도 사역자에 대한 훈련과 양육은 필수적인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너무나 잘 아는 이성구 목사님이기에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고 이것을 통하여 미래의 사역자들을 세우기 위한 작업을 서두르는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에게 있어서 사람은 그가 이루려는 교회의 목적에 반드시 필요한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어느 교회, 어디에 있든지 필요하다면 그 사람을 사용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교회는 평신도 사역자의 수에 비례하여 교회는 성장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된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평신도 사역자들의 시간적 공간적인 최대의 활용도입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사역에 대한 책임과 충성도의 실현입니다 이러한 지표의 고저(高低)가, 평신도 사역자를 가늠하는 교회의 성장지표와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의 사람에 대한 욕심은 바로 이러한 높은 수준의 평신도 사역자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통하여 교회의 미래를 선택하고 함께 건설해 나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평신도 사역자는 사실 곳곳에 있습니다 문제는 평신도 사역자의 마인드일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의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고 이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다용도의 그릇"과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해는 하되 사용할 수 없는 장식장의 그릇이라면 무용지물일 것입니다 모든 뜻을 같이 하면서도 우유부단함과 모호한 성격으로 인하여 갈팡질팡한다면 그 또한 유익한 사람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는 이해보다 오해를 많이 하고 불신을 조장하는 사람이라면 사사건건 걸림돌이 되어 이성구 목사님의 목회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100명의 성도 가운데 10명의 동역자가 있다면 그 교회는 성장의 기틀을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포제일교회 800명 성도 가운데 80명의 동역자가 있다면 구포제일교회는 적어도 옛 영광을 회복하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칭찬과 격려,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단기간 내에 동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임상실험의 결과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이성구 목사님은 다양한 교육과 훈련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과 훈련에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들과 중직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이 때로 지쳐있어도 휴식을 취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인재가 미래의 사람이라는데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미래에 있는데 그 시간이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보다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때까지 그 일을 자신이 이중 삼중으로 역할을 맡으면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3. 교회 안에서의 다양성과 일치성
교회안에서의 다양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진리와 정의를 지켜 나가는 실천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 것입니다 선과 악이 충돌하고, 영과 육이 충돌하는 영적 전쟁터와도 같은 이 땅에서 교회의 목적을 달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소요수단을 일정부분 도입하되 세속화 되어 가는 일련의 모양들은 단호히 거절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입니다 교회는 교회의 목적을 가지고 태동되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갖고있는 고유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며 그것을 실천하는 양대축으로 "구제와 선교"가 있는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의 배열은 바로 이러한 중요한 교회의 기능을 가장 합리적으로 운용하며. 실천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가치를 실현함에 있어서 교인의 헌금에 대한 의무와 재정의 투명성을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재정은 성도들이 내는 헌금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구포제일교회에 있어서 성도들이 내는 헌금의 절대다수는 가난한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정부로 부터 지원을 받아야 생명을 유지하는 극빈자층도 함께 섞여 있습니다 청년 시절부터 바로 이러한 사람들의 삶을 목격해온 이성구 목사님에게 있어서 교회의 헌금은 무엇보다 투명성을 가져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투명성과 도덕성을 기반으로 이성구목사님은 초대교회적 사명과 정의를 실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에 부족한 휴식공간의 확장, 층계를 오르내리는 불편함을 해소하는 엘리베이터 시설과 냉난방의 효율적 관리와 같은 전기와 기계적인 여러 요소들, 그리고 기도와 교육, 훈련에 적합하고, 다양한 계층의 문화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위한 적절한 규모의 오픈된 클래스 룸, 이러한 모든 구성들을 보다 친근감있게 하는 인테리어 시설과 주차장의 효율적인 관리와 운용, 이러한 현대화 되어가는 교회의 건축물과 시설물을 적극 도입하되 성전 본래의 기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선택하고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현대교회의 건축물은 성전의 비대칭이 대세입니다 즉, 성전의 규모는 축소되고 각종 테마파크와 쇼핑공간, 금융과 레포츠타운을 확대해 나가는 일련의 세속화된 조치들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성구목사님의 성전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은 교회의 건축물은 성전 본래의 기능을 중심에 두고 나머지 모든 시설들은 성전을 위한 직간접적인 지원시설로 둔다는 데 있습니다 그럼으로서 성전의 기능을 회복하고 교회의 모든 시스템을 구제와 선교와 기도와 말씀의 방향으로 선도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여타의 교회들이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무분별하고 경쟁적인 확장으로 치닫을때, 자칫 간과할 수 있는 성전 본래의 기능에 대한 상실과 훼손 때문이었습니다
다양성을 이러한 세속성을 받아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않된다는 것이 이성구 목사님의 기본적인 목회철학인 것입니다 다양성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생각들이 서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성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안에서 일치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다양성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다양한 사고와 생각과 의견이 때로는 교회안에서도 충돌하지만 결국은 그리스도안에서 일치된 목적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다양성은 성격을 구성하는 가치관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다양성은 교회안에서 주류와 비주류를 구성하는 폐단을 낳기도 합니다 다양성은 때로 교회안에 있어서는 않되는 사조직을 태동시키기도 합니다 이성구 목사님은 교회안에서의 사조직에 대하여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교회안에서 그 어떤 모양의 사조직도 결코 용납되어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사조직은 다른 사람을 제외시키고 소외시키는 이합집산의 형태로 성장하게 되어 있고 그것의 종착역은 정치적인 집단으로의 성장과 교회를 위기에 직면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안에서의 다양성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일치성을 위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양성은 교회의 조직에서 뚜렷하게 구별되는 듯 보여 지고 있습니다 찬양대와 기술적인 전문가집단, 안수집사회와 권사회, 남여전도회와 각종 취미활동그룹들 등 그 조직은 교회내에서적지않은 영향력을 가지며 그들 나름대로의 조직적 일치와 결성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러한 조직들은 교회의 필요에 따라 구성된 공식적인 기관들입니다
문제는 공식화 되어 있지 않은 비공식적인 조직들에 있습니다 동향, 동년, 동종업종, 경제적 이해관계집단으로 구성된 소규모 그룹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때로 단합과 결집을 통하여 세력의 우월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것은 때로 그 어떤 모임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하여 다른 모임의 회집을 힘들게 작용할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조직에 입성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경향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안에서 다양성은 중요한 촉진제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양성을 존중하되 다양성의 결국은 복음과 영혼구원이라는 대명제 아래에서 일치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과 영혼구원이라는 교회의 목적이 다른 그 어떤 다양성보다 중요한 가치이므로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하고 상호 소통하되 교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다양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찬양으로, 식당봉사와 각종 취미활동과 특기로, 기도로, 교육과 훈련으로, 복음전도로, 심방과 권면으로 각양의 은사에 따라 교회의 본질적인 목적을 이루어 나아가되, 상호 협력하며 나아가는 것이 교회의 다양성에 관한 바른 정의가 된다는 것이 이성구 목사님의 철학인 것입니다 즉, 다양성은 다양화된 사회에서 각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이익집단으로서의 문화현상과 같은 세속적인 차원이 아니라, 교회안에서의 복음과 영혼구원에 관한 일치를 위한 공동체의 역할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다양성도 일치와 화해를 헤친다면 그것은 궤멸되어야 할 사탄의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이성구 목사님의 설교와 사상
"생명과 자유, 정의와 평화", "진리가 구현되는 교회와 성도"
이성구 목사님의 설교는 어떠한 것을 중심에 두고 있는가? 그것은 구약학 교수로서의 활동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을 향하는 전망대, 또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구약성경은 오실 메시야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속에 숨어있어 잘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말하고 있는 것일 것입니다 이토록 숨어있어 가려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상을 이성구 목사님은 역사적 배경과 교회안에서 반복되고 있는 죄성을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죄인인 인류의 역사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작용하면서 사람을 사람되게 사용하였는지를 수많은 사람들을 예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 영적인 관점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무엇인가?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단지 살아있을 뿐 멀리 있어 우리와 함께하기 어려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이성구 목사님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천국은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는 현실이며 생활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영원", "천국", "십자가" 이러한 단어들이 기독교인들에게 아주 익숙한 단어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단어들이 그들 곁에 항상 있어서 자기들을 제어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성구 목사님에게 있어서 하나님이란 "그분이 우리와 함께 있지 않다면, 그 자체가 가장 큰 위기이고 절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삶속에서 항상 함께하며 통제하고 자유하게 하며, 생활의 염려에 동참하고 있으며 성도들은 민감한 반응으로 이것을 느낄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피부에 칼이 약간만 닿아도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놀라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같은 영적 민감한 반응이 우리에게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일 뿐 하나님에 대하여는 둔감해 져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있슴에도 불구하고 느끼지 못할뿐만 아니라 때로는 아무런 작용조차 하지 못하는 그림속의 하나님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은 이러한 둔감한 영역을 "말씀"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주에 한번 드리는 "예배"가 너무나 중요하고 그 때문에 예배가 다른 교회에 비하여 약간 늦어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이 긴 것이 지루하고 힘들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 길고 지루하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므로 그러한 위험성을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가르치고 교훈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병행한다는 것입니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해 가는 것이 교회안에서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적어도 "예배"만큼은 보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이성구 목사님이 갖고 있는 중요한 철학인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무엇인가? 그것은 죄의 역사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성구 목사님은 인류의 역사에는 두가지 방향의 역사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한가지는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 관한 역사이며 그것은 사람의 죄와 불순종과 항상 연관되어 있습니다 또 한가지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들의 역사인 것입니다 사실상 본래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은 없었습니다 단지 세월의 흐름속에 자의든 타의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세상의 사람, 사탄의 백성이 되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곁을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가운데 이 두가지를 분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은 바로 이러한 두가지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성된 사람들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죽은자의 역사는 그저 죽은 역사일뿐 논의대상의 선결요건 조차 되지 못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는 어디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요? 이성구 목사님의 이러한 역사 찾기는 "소리"에서 발현하고 있습니다 그 소리는 하나님의 목소리였으며 "빛이 있으라"는 하나님의 목소리로 우주창조의 역사는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목소리는 또 다른 인류의 역사가 태동될 수 있는 지구와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태양계와 모든 은하계를 직접 창조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류의 역사는 이러한 하나님의 "소리"에 둔감함으로서 일어난 첫번째 범죄로 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든 백성이 아니든 하나님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죄의 역사가 되고 죄의 역사는 곧 사망의 역사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목소리에 둔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곳으로 즉시 나아갔으며, 이로써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함께 오늘날에도 여전히 믿음의 표상이 되는 축복된 이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과 홍해의 기적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가 둔감해 졌을때, 시온성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비젼이 되었고, 회개촉구와 여호와의 찬양이 함께 그곳에서 이어져 갔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소리가 구포제일교회에 임하기 까지 이성구 목사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원색적이고 사실적으로 전하는 투명하고 선명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는 간절한 염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과 찬미가 나타나는 소중한 소리를 세상에 널리 전하고자 이성구 목사님은 교회의 월보를 "시온성"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구포제일교회 사람들은 다른 모든 교회 교인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신앙하는 예수님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희미하게 그어져 가는 신앙의 테두리에서 이성구 목사님은 삭개오라는 세리를 들고 나왔습니다 삭개오는 당시 사회에서 설교자로 널리 알려진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이며 그 주인공이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지만,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 수많은 군중 가운데 자기의 이름을 알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습니다 시온성의 소리처럼 예수님은 나무위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던 삭개오를 향하여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오늘 네집에서 하루를 유하여야 겠다"(누가복음19:1~10)라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상대적인 빈곤감과 억눌림과 사회의 외인구단으로 살아가고 있는 구포동과 덕천동, 그리고 모라동과 삼락동 사람들에게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그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변화 시키고 즐겁고 행복한 인생으로 전환해 주시는 결정적 역할을 해 주신다는 약속을 이행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성구 목사님이 좌절과 절망에 빠진 현대 기독교인들을 향한 목회의 핵심철학이라는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의 설교에는 사람들의 목적과 그리스도인의 목적이 확연히 구별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세상속에 함께 섞여 사는 것이 현실이지만 하나님의 백성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선명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구별의 정의는 그리스도인의 진실된 삶과 투명한 생활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똑같은 이익과 댓가를 추구하고 똑같은 계산법으로 살아간다면 그곳에서는 구별된 삶을 목격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단지 성경책이 집의 서재에 꽂혀 있는 것으로 구별된 삶이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면 그 말씀이 존재하는 그곳에서 말씀이 적용되어지는 결과가 반드시 도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과 구별되어 분리된 생활을 누리고 있다면 세상 사람과 하등 다를 것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성구 목사님의 설교에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관한 기준과 질서가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인이라면 교회안에 있으나 교회밖에 있으나 동일한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직장에서 온갖 요령과 잔꾀를 부리는 하수를 선택해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는 개인적 성향에 도취되어 있어서도 않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솔선수범할 수 는 없어도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어서는 결코 않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 기업가가 보다 적은 세금을 내기 위하여 탈세를 하거나 보다 많은 수익을 남기기 위해서 직원을 노예처럼 사용하고 최저임금으로 대우하여서도 않된다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수고를 감내할 수 있어야 하고 가능하다면 분배의 정의가 바르게 실현되도록 부의 가치를 낮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직장동료와 회사의 직원들이 함께 예수를 믿고 천국에 갈수 있도록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직장생활 10년에 단 한번도 복음을 전한 사례가 없다면 그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의 설교는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도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실천해야 할 중요한 사명이었습니다 단지 사람들이 교회와 전혀 다른 회사를 다니고 복음과 전혀 다른 회사를 운영하기 때문에 "변화가 없는 실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은 가정에서 대화의 필요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의외로 소통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지극히 친절한 기독교인이 가정으로 돌아가면 침묵하고 불통하며 혼자 쉬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온가족이 교회를 섬길수록 가정으로 돌아와서 다툼이 많다는 것입니다 서로 지쳐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을 서로에게 미루고 전가시키고 이것이 다툼의 원인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양보하고 미덕을 세우기엔 주일이 너무 고단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성구 목사님은 가정 공동체의 회복과 가정의 복음화, 가정의 천국화를 선결과제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복음은 교회를 통해서 건설되고 교회는 교회를 구성하는 가정공동체로 부터 나온다는 것이 그의 철학입니다 때문에 가정 공동체의 회복은 건강한 교회를 구축하는 중요한 테마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족 가운데 불신자가 있다면 가족들간의 소통을 위한 열려 있는 대화는 절실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신자가 불신자를 가르치려 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자는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오직 불신자에게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기다려 주는 모성애와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초로 가정이 복음화가 되고 가정의 천국화를 이루며 교회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토대가 마련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일의 교회는 항상 봉사하는 사람들의 이중삼중 봉사로 인하여 지치고 고단한 주일이 새벽부터 밤늦도록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인 가정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봉사하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일어나는 공통적인 현상들이라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열심있는 교인들은 이와같이 노동의 주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교회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이 사람들이 교회문을 나섬과 동시에 본연의 삶으로 복귀하여 세상 사람의 옷을 갈아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습관적으로 반복되어 온 현대 기독교인들의 생활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잘못된 습관으로 기독교인은 교회생활에 피로를 느끼고 봉사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연말이면 내년에는 교사와 찬양대를 쉬겠다는 말이 나오고 식당봉사자가 없어서 유급으로 대체하는 경향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의 설교에는 봉사에 대한 원칙을 규정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인 1봉사를 원칙으로 너무 많은 짐을 한사람이 지지 말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의 기회를 주고,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봉사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며, 이것이 보다 깊은 신앙으로 연결되어 성숙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을 찾고 사람을 모으고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기독교인의 사람을 향한 인류애의 정신을 기대하고 있으며 이것이 설교에 그대로 묻어나 있다는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의 설교에 나타난 사람은 세상의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세상으로 치닫는 사람은 사용의 대상이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입은 사람이 사용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솔로몬.......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속에서 쓰임받아 왔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성구 목사님의 설교에는 기독교인의 언어 사용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언어란 무엇인가? 사전에 의하면 언어(言語)란 "생각이나 느낌을 음성으로 전달하는 수단과 체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누구의 생각이나 느낌인가에 따라 그 언어는 전혀 다른 전달효과의 수단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어떠한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가 하는것을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이 바라본 세상의 언어는 주로 폭력적이고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울증 환자가 증가하도록 만들수 밖에 없는 구조의 언어를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되 책임없이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에서는 그 도가 지나쳐 살생의 언어로 사용되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조차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의 언어속에 그리스도인의 언어 또한 빠른 속도로 세속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 이성구 목사님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본래 그리스도인의 언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분께 영광을 드리며, 더 나아가 영혼구원을 위하여 모든 열정을 쏟아부는 "생명의 언어"를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한 언어 사용자로 지음 받은 사람이 사탄의 언어를 받아들이고 사탄의 행위에 까지 동참함으로서 영원형벌의 죄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사람은 가인과 같은 "살인의 언어", 바벨탑과 같은 "자만과 오만의 언어", 함께 자멸하고자 하는 "소돔의 언어", 메시야를 십자가에 넘겨주는 "빌라도와 가룟유다의 언어"로 이어져 가는 결정적인 오류의 언어로 이어져 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인의 언어와 세상의 언어가 일치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성구 목사님은 그의 설교에서 세상의 폭력적 언어가 교회로 까지 전이되어, 교회의 송사가 세상의 송사가 되고, 세상의 송사가 교회의 송사가 되는 경계선이 없는 암울한 시대가 되었다고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교회내의 추잡하고 암울한 뉴스가 세상으로 부터 더이상의 조롱거리 조차 되지 않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으로 부터 뿐만 아니라 세상으로 부터도 죄인의 신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더욱더 어렵게 만드는 행위로서 그 주역이 세상이거나 이단이 아닌 기독교 스스로에게서 나왔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은 이러한 결과적인 문제에 대하여 망연자실하며 패배자의 길을 갈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명의 언어에 대한 복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생명의 언어는 "사랑을 담은 진실된 언어"를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와 정의가 소통하는 그리스도인의 언어는 "복음의 언어"이며 사람을 사람되게 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언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언어는 반드시 사람에게 전달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사용하는 생명의 언어는 사람에게도 향하지만 하나님께로도 향하는 쌍방향의 것"이라고 이성구 목사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언어는 그 언어를 자주 사용하고 반복함으로서 습관화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비록 지금은 세상에 함께 섞여 있지만 적어도 언어만큼은 천국어를 사용하는 천국시민으로서의 위상을 갖자고 이성구 목사님은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가 추구하는 구포제일교회의 위상이며 발전방향의 목적지인 것입니다 이러한 생명의 언어 회복을 위하여 이성구 목사님은 대각성 회개기도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회개는 단지 반성이 아니라 예수님께로 다시 복귀하는 계통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망의 언어를 종식하고 생명의 언어로 복원하는 염원을 담아 결의하는 대각성 회개 기도운동에 모든 사람들이 초청되기를 열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모든 교회들에도 함께 적용되어져야 할 높은 가치의 행위적 수단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다시 한번 구별의 목적을 달성하고 복음과 영혼구원의 가치를 더 높이는 계기가 되어 나갈 것으로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에게 있어서 기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염원을 담아 드리는 간구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도에는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드리되 "응답을 찾고 자리를 떠나라"는 것입니다 단지 외치고 부르짖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응답을 받고 교회문을 힘차게 나서라는 것입니다 그는 부임과 동시에 "중보기도 정보지"라는 소책자를 발간하였습니다 이로서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우리의 가족과 우리의 지체들과 동역자들의 가슴속에 무엇이 있는지 서로 열어보고 함께 중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서로의 아픔을 소문내던 지난날의 관습을 철폐하는 동시에 남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될 수 있다는 공동체의 공유의식을 갖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더이상 악수만 하고 돌아가는 관중석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아픔을 전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많은 사람의 아픔과 슬픔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변하는 것을 상호 목격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성구 목사님 한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이 기도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300명 이상이 동참하는 기도의 불꽃으로 승화되는 북구 기도의 중심으로 그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의 기도에 대한 훈련은 "목적이 이끄는 40일"을 새벽기도운동과 함께 전개함으로서 그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매일 200명 이상의 성도들이 전날의 모든 피로를 극복하고 40일 연속으로 전개된 이 훈련에 불평없이 참여함으로서 목적이 있는 성도의 삶을 일깨움과 동시에 새벽기도운동을 정착화 시키는 일석이조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금요심야기도회는 그들에게 있어서 180분 연속의 기도운동을 달성하는 새로운 전기가 되었습니다 구포제일교회에 있어서 기도는 이제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기도를 통하여 새로운 미래를 바라보고 소망을 갖게 되었으며 할수 없었던 모든 것이 해야만 하는 모든 것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성구 목사님이 기도를 통하여 이루고 싶어했던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5. 이성구 목사님과 구포제일교회의 미래
이성구 목사님은 "생명과 자유, 정의와 평화가 흘러넘치는 교회"를 구포제일교회의 항구적인 표어로 설정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원대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을 교회의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복음을 통한 영원한 생명, 구원을 통한 영원한 자유, 진리에 의한 정의실현, 사랑에 기초한 항구적인 평화"라는 대 주제를 항구적인 표어로 선언한 것입니다 이것은 건강한 교회 공동체와 건강한 가정공동체를 통하여 실현되는 것이라고 이성구 목사님은 확신하였습니다 이를 위하여 아버지 학교와 부부학교를 통한 가정공동체 회복을 추진하였고, 주일학교 학부모회 결성을 통하여 주일학교의 부흥을 보다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일을 추진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각종 문서 출판을 통하여 기독교문화를 세워나가는 작업을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각종 프로젝트를 연도별로 추진함으로서 대부분의 전교인들이 교회가 운영하는 다양한 커리큘럼에 한개 이상 참여 가능하도록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하여 ECS평생교육원을 확대 운영하고, 불신가정 자녀들의 영적 부모를 결연하여 이들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연대하는 획기적인 조치들을 실질적으로 시행하였습니다 이것은 주변의 여러 교회들에게 전파되는 가치있는 모델들이 되고 있으며 열매와 결실이 있는 바람직한 사례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성구 목사님에게 있어서 구포제일교회는 그가 목사라는 직함으로 갖는 마지막 교회의 담임이 될 것입니다 구포제일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참다운 질서를 회복하여 영성이 살아있는 교회, 기드온의 용사가 있는 교회, 여리고성을 우리의 밥이라고 말하는 숫자가 우리가 메뚜기라고 말하는 숫자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은 교회로의 성장을 도모하게 될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의 목적은 단지 구포제일교회만을 위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구포제일교회와 인근해 있는 북구지역의 모든 교회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고 이단을 척결하여, 더 이상의 사탄의 세력이 일절 틈타지 못하는 영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그의 목적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성구 목사님은 북구의 복음지도가 바뀌어 지는 부산의 성지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것이 그가 꿈꾸는 교회에 대한 소망일 것입니다
구포제일교회는 한때 화명동으로의 진출을 꾀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구포제일교회는 동래구와 사상구 그리고 강서구와 부산진구, 더 나아가 김해와 창원을 연결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슴을 축복으로 알고 현재의 위치를 중심으로 확장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구의 수영로교회와 강서지역의 호산나교회와 함께 영적 삼각지를 꿈꾸고 있는지도 알수 없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구포제일교회와 함께 해왔던 지역민의 품으로 복귀를 결정하였고 그들과 더불어 젖과 꿀이 흐르는 새로운 가나안땅을 건설해 나가려는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포제일교회는 북구지역의 정통적인 교회들과 연합하고 그들과 함께 복음적 사역을 감당하고자 손을 내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둠속에 갖혀있는 구포역에 등불을 밝히고, 더이상 발전이 않될 것 같은 구포동을 역사적이고 미래적인 신도시로 성장시켜 나갈 새로운 출발점으로서의 교회가 될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현재 진행중에 있습니다 모든 것을 논하고 결정하기에는 시간이 남아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한 시대, 고신교단의 목회자로서 진리와 정의를 위해, 평화와 일치를 위해, 너무나 많은 시간을 돌아왔던 이성구 목사님의 정신을 한번 되새겨 봄으로서 교회의 사명과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구포제일교회 가족 서약문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우리 교회의 목적과 사명에 동의하여 하나님과 모든 성도들 앞에서 다음 사항들에 대해서 자신을 헌신하기로 서약합니다
1.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함으로써, 창조의 원리를 따라 엿새 동안 힘써 내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고, 모든 영광을 주께 돌림으로써 예배적 인격을 갖추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기도하면서 다른 성도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덕스럽지 못한 사적 모임이나 잡담에 참여하지 않으며, 진실한 말을 하여 우리 교회를 아름다운 교제의 공동체로 세워가고, 지도자를 따르고 순종함으로써 구포제일교회의 하나됨을 힘써 지키겠습니다
3.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영적 은사와 재능을 발견하여 그것으로 섬기고, 영적 지도자들을 통하여 훈련을 받아 헌신하도록 준비하고, 종의 마음을 키움으로써 구포제일교회의 사역을 담당하겠습니다
4. 나는 구포제일교회의 성도로서 교회의 성장을 위해 기도하고, 불신자들을 교회에 출석하도록 초청하고, 방문하는 자들을 따뜻하게 환영함으로서 생명과 자유,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5. 나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성실하게 출석하고, 경건한 삶을 살고, 정기적으로 헌금하고, 모범적으로 지역사회 속에서 생활함으로써 구포제일교회의 증인 역할을 감당하겠습니다
사명선언문
"생명과 자유,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곳"
A Church over flowing with Life and Freedom, Justice and Peace
구포제일교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온 세계에 전파하여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과 참된 자유, 실천적 정의와 진정한 평화를 누리도록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기도하며,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한 몫을 감당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