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문태고 2 김혜윤
일어선 자리엔 어김없이, 머리카락이 마치 바퀴벌레 소굴처럼 늘어져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그를 쓸어 담으면서 가만히 손을 머리에 얹어본다. 손가락의 차가움이 머리에 이어지고, 막 새로 자란 뾰족한 머리카락이 만져진다. 거울 앞에 섰다. 듬성듬성 빈 공간을 메우려 억지로 타 놓은 가르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자아낸다. 커다란 머리핀 하나를 들고, 잘 잡히지도 않는 몇 가닥에 억지로 그를 끼워 넣었다.
'괜찮아, 충분히 예뻐.'
스스로 되뇌는 차디찬 독백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학교에 가야 했다. 교복을 입고 신발을 신은 지도 오래되었는데, 발은 현관을 벗어나질 못한다. 학교에 가야 했다. 시계를 보는 흔들리는 눈을 진정시키듯 손 하나가 머리를 잡아당겼다. 쉴 새 없이 머리를 당기고 뽑으며, 그제야 한 걸음씩 현관을 나섰다. 지나온 거리에는 나를 대변하듯 새까만 머리카락이 자리했다.
언제부터 손에 머리카락이 들려 있었는지는 모른다. 초등학교 때 졸업 사진의 머리가 황량한 것을 보면, 꽤 오래되었다는 것을 짐작 할 뿐이다. 숱 없는 머리가 창피하지만, 그보다 먼저, 머리를 뽑아야만 했다. 머리를 뽑고 끝에 난 하얀 모공을 제거 해야만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주위를 온통 까맣게 물들어야만 했다. 나를 옭아매는 검은실 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자꾸만 더 머리카락을 뽑았다. 아프진 않았다. 나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교문이 가까워지자 익숙하듯 고개는 땅을 마주했다. 모두가 날 쳐다보는 느낌이다. 원숭이 엉덩이가 빨간 건, 자신을 구경 하듯 바라보는 수 십개의 시선 때문이지 않을까. 환청도 들리는 것 같다.
"쟤 머리 좀 봐."
"아, 저 탈모?"
교실을 향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이란 걸, 누군가 한 명은 알까.
물론 나에게도 함께 맞서 준 친구가 있었다. 혼자 급식을 먹는 나를 걱정해 다른 반 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찾아왔었다. 신기 하다며, 누런 두피를 간신히 덮어 놓은 머리를 헤집는 애에게 화를 낸 것도 내 친구 수진이 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우리는 같은 중학교를 지원 했고, 어릴 때 와는 달리 서슴없이 나를 비난하는 아이들 곁에서 내게 빛나는 가로등이 되어 주었다.
나를 가리키는 남들의 손가락이 두려웠고, 그들과 떨어져 앉은 책상은 삭막했지만 수진이가 있기에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친구 한 명만 나는 있으면 됐다. 그런 수진이와 사이가 틀어진 지 두 달이 지났다. 처음엔 수진이가 왜 떠났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냐고, 왜 그런 짓을 하냐는 물음에 대답 했을 뿐이다. 그런 것 없다고, 나도 내가 왜 머리를 뽑는지 모른다고, 그냥 뽑아야 한다고.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다. 수진이도 힘들었고, 답답했다는 것을.
영문도 모른 채 머리만을 습관적으로 뽑아 대는 친구 곁에서, 시선을 같이 감당 하는 것이 지쳤던 것이다.
수진이가 없는 공간을 또다시 시커먼 머리카락으로 나는 채우고 있었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 수업 시간을 보냈다. 쉬는 시간에는 귀를 꼭 막고 책상에 누운 채 자는 척을 했다. 체육 시간에는 항상 아프다고 꾀병을 부렸다. 보건 선생님은 어디가 아프냐는 말을 묻지 않으셨다. 점심을 굶는지는 한참이 되었다. 혼자 급식을 떠먹는 기분은 집 잃은 북극곰보다 처량했다. 아니, 그보다 다른 친구들과 웃으며 밥을 먹는 수진이를 볼 자신이 없었다.
하교종이 치자마자 집으로 달렸다. 가능하다면 말보다 빠른 다리를 갖고 싶었다. 그렇다고 교실에서부터 달린 것은 아니다. 내가 달리기 시작한 곳은 교문 앞의 버스정류장이 지나선 곳 이여야 했다.
거실에서 머리카락을 줍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머리를 괜히 부스스 부풀리고선 그 옆을 지나쳤다. 엄마가 청소하는 것만 보면 나는 항상 무서웠다. 오래전 엄마의 입에서 나온 '정신 병원'이라는 말이 자꾸만 맴돌고, 진짜 그곳에 가게 될까 봐 엄마와 마주치기를 꺼렸다. 내 행동이 '발모광'이라는 것도 엄마를 통해 알았다. 나 스스로가 문제가 있음을 알았지만, 중학생인 나에게 정신병원은 너무 두려웠으며, 습관적으로 올라서는 손을 나조차도 어찌 할 수 없었다.
방안에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나를 반겼다.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리기엔 혹시나 엄마가 볼까 싶어 장농 밑에 뭉치를 불어 넣었다. 눈을 감았다. 눈을 뜨든 감든 차이 없는 공간 속에서 나는 편히 잠을 이뤘다.
시끄러운 알람 소리가 머리를 짓눌렀다. 오늘도, 학교에 가야 했다. 하릴없이 방안을 둘러보다 문득, 가발에 시선이 멈췄다. 처음 가발을 발견했을 때와 다름없는 모습이 눈에 스쳤다. 차라리 자연스럽게 다가온 탈모에 지나지 않았다면, 망설임 없이 저 가발을 썼을 것이다. 괜한 자격지심에 휩싸인 나는 가발을 무시한 채 낭떠러지로 발을 옮긴다.
보건선생님이 출장에 가셨다고 하셨다. 굳게 닫힌 보건실의 문 만큼, 눈앞이 닫혀 어두웠다. 땀 냄새가 베지 않은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에 나갔다. 넓디넓은 공간에서 하물며 흙에 구른 운동화도 제 짝이 있는데 나만 혼자 였다. 여자아이들은 피구를, 남자아이들은 축구를 하고 있었다. 식수대 옆 계단에 앉아 가만히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제발 아무도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했다. 무슨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갑자기 한 남자아이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깜짝 놀라 피하려던 나는 계단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괜찮아?"
아니 하나도 안 괜찮아.
"공 좀 주워 달라니까."
하나도, 하나도 안 괜찮아.
눈물이 났다. 항상 나에게 내가 말했던 '괜찮다'는 말과 달리 너무 따뜻했다. 사실 하나도 안 괜찮지 않았다. 나도 평범한 여학생에 지나지 않는다. 친구와 떡볶이를 먹으러 가고 싶고, 예쁘게 단장하고 사진도 찍고 싶다. 엄마와 쇼핑도 가고 싶고, 아이들 틈에서 머리를 자를지 말지 얘기도 하고 싶다. 보건실 의약품 냄새 따위는 너무 싫다. 남들에게 들은 적도 없었고, 나 스스로도 진실되게 '괜찮다'고 대답한 적이 없었다. 정말 괜찮고 싶었다. 나도,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도 숱이 많아 보일까 싶어 길어 왔던 머리를 잘랐다. 묶을 수도 없는 짧은 머리를 핀으로 고정시키고 가발을 썼다.
습관처럼 손을 머리에 올렸지만 나는 더이상 머리를 뽑을 수 없다. 부단히도 노력했다. 커다란 전신 거울을 방에 둘러놓고 매 순간 탐스러워질 나를 상상 했다. 머리는 조금씩 자랐고, 여러 번 머리를 자르면서 나는 변화를 꿈꿨다.
고등학생의 중반기에 들어섰다. 나는 이제 '탈모'라는 단어에 억지웃음을 짓지 않으며, 가발을 쓰지 않는다.
엄마가 두렵지 않고, 아침은 먹고 학교에 가라는 잔소리가 너무 즐겁다. 아직도 내가 왜 머리를 뽑았는지는 모른다.
초등학생이 견디기에 힘겨운 상황을 겪었는지, 그냥 어릴 때 잘못 들린 습관일 뿐인지 짐작 가지 않는다. 동아줄이었던 그 아이와 친구가 된 지도 2년이 지났다. 고등학교가 멀리 떨어졌지만 나도, 그 아이도 서로를 향해 눈을 맞춘다.
여전히 가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머리에 손을 대곤 한다. 하지만 뽑는 습관만큼 다시 손을 내리는 참는 습관도 뒤지지 않는다.
문자가 왔다. '울보, 어디야?'
낭떠러지가 아닌 불빛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차디찬 바람이 일고, 캄캄한 밤하늘의 바다라 할지라도 등대 불빛 하나만 비추면 나아갈 수 있다. 한 줄기 빛만 있으면 두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