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 쉐이크 핸드 공격형 선수, 별명은 빵식이. 백핸드 드라이브가 강하며 한국 탁구에서 백핸드만큼은 역대급이라는 평도 있다. 상대 선수들 또한, 정영식 선수의 백핸드가 강하다는 것을 알고 이를 유도하지 않으려고 한다.
정영식은 탁구선수를 꿈꿨던 아버지를 따라 다섯살 때부터 라켓을 잡았다. 의정부초등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탁구명가 내동중-중원고까지 그는 '동급 최강'이었다.
만18세 되던 2010년 첫 출전한 로테르담세계선수권에서 남자복식 동메달을 따냈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남자복식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했다. 개인전, 단체전 세계선수권에 매년 출전했다. 수년간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
2014년 정영식의 인천아시안게임 선발전 탈락은 이변이었다. 시련 이후 정영식은 더 강인해졌다. "한달 정도 울었다. 예전에는 '노력하면 다 된다'고 쉽게 생각했다. 인천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떨어진 후 '안되겠다. 올림픽이 2년 남았는데 이렇게 하면 못나갈 수도 있겠다. 독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정영식의 멘토는 '스승' 김택수 대우증권 감독이다. 김 감독은 일찌감치 정영식에게 '이기는 습관'을 주입시켰다. 날선 감각을 타고난 김민석(KGC인삼공사), 왼손 에이스 서현덕(삼성생명) 등 또래 라이벌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는 법을 단련시켰다. 김 감독은 "추천전형은 꿈도 꾸지 마라. 너는 선발전에서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정영식은 김 감독에 대해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제게 믿음을 주시는 분"이라고 정의했다. "많은 분들이 (김)민석, (서)현덕이와 저를 '재능'으로 비교할 때도 감독님은 늘 '결국엔 네가 제일 잘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감독님의 믿음이 내겐 가장 큰 힘이다. 감독님은 내 정신적인 멘토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영식의 롤모델은 고등학교 때 이후 줄곧 공링후이다. '불세출의 그랜드슬래머' 공링후이의 안정적인 '외유내강' 탁구는 정영식 탁구의 교본이다. "나는 기술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세트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은 자신 있다"고 했다.
잘생긴 외모 또한 화제가 되었는데 닮은 꼴로는 허정민, 중국 상은의 허위주, 아라시의 사쿠라이 쇼, 오노 사토시 등이 있다.
마롱이 직접 인터뷰에서 "까다로운 상대였다. 정영식은 아직 잠재력이 큰 선수다. 앞으로 중국을 위협할 강력한 상대가 될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정영식 선수는 아쉽게 진 경기끝에 눈물을 흘렸고, "올림픽 오기 전에 제 나름대로 다른 사람들이 다 탁구에서 금메달이 안 나온다고 했는데, 저는 금메달을 목표로 왔거든요. 그래서 마롱 선수만 한 달 동안 내내 분석하고, 마롱 선수만 이기기 위한 연습을 했는데. 이길 찬스가 충분히 많았는데 놓친게 너무 아쉽고 다시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것 같아요" 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장지커는 3세트에서 정영식의 공을 받으며 넘어졌는데 이 상황에 대해 "정영식이 그렇게나 잘 공을 받아낼지 몰랐다"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