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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 연구
(논문지도: 정용성교수)
Ⅰ. 서론
1.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의 연구 동기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지인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안식일에 유대인을 향한 바울의 설교는 사도행전의 바울의 다른 설교와는 내용과 구조를 많이 달리하고 있다. 안디옥 설교는 다른 설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스라엘의 역사로 시작하여 주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 이름의 능력에 대하여 설교를 하고 있기에 복음 설교로서 독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연구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2.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의 연구 목적
이방의 빛으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은 1차전도 여행을 헬라의 여러 지역으로 하면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안식일을 맞아 방문한 유대 회당에서 유대인을 향한 설교를 하게 되었다. 물론 회당 안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도 있었지만, 바울은 유대인이 아니면 이해할 수도 없는 이스라엘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한 사람, 곧 예수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분이 바로 옛날 많은 선지자들이 오시리라고 예언했던 메시야라고 바울은 소개를 하였다. 이미 선지자들이 예언하셨고 예언대로 오셨지만 20 여 년 전에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여서” 그를 나무에 매달았으나 하나님은 그를 죽음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살리셨으며,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으며 의롭다 함을 얻는다, 라고 선포 하였다.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는 바울의 첫 설교이며 또한 유대인을 향한 복음 설교이기에 더욱 연구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사실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죽음, 부활과 승천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아니지만 바울은 안디옥 설교를 통해 이 부분 곧 복음을 설교의 핵심으로 하고 있다.
바울의 안디옥 설교와 다른 설교와의 비교분석, 그리고 복음 설교로서의 가치 등을 연구하면서 설교를 통해 나타나는 바울의 신학 등을 파악하며 이 설교가 복음 설교로서 미치는 영향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Ⅱ .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
1. 비시디아 안디옥의 도시적 배경
1) 도시의 유래
“병거”라는 의미를 가진 안디옥은 해발 100m 지점에 자리 잡은 고원에 위치한 갈라디아 남부의 고지대로서 비시디아와 부르기아의 경계에 위치한 중요 도시이다. 성읍은 셀류오고스Ⅰ세와 그의 아들 안디오고스Ⅰ세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수리아왕국의 국경 요새 도시였지만 당시는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갈라디아 지방의 군사 및 민간 요충지였다.
2) 안디옥의 정치·경제적인 상황
아우구스 황제에 의해 로마의 식민지가 되면서 “콜로니아 가이사랴”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또한 이러한 도시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로마의 평화"(Pax Romana)라는 전략적인 로마제국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행정체계와 군사의 이동을 위한 도로망과 황제예배를 일찍부터 시행한 것을 들 수가 있을 것이다.
이 도시는 비쟌틴 시대에도 번영하였으며 십자군 전쟁 때에도 요새로 사용 되었다. 오늘날의 터키중남부 지방의 얄바크 근처 폐허지역이라고 한다. 당시 로마는 효율적인 식민지 지배를 위하여 각도시간 도로를 확장 건설하였는데 이것이 일명 ‘황제의 대로’이다. 로마는 이 도로를 통하여 군사 정치 경제의 활발한 이동을 꾀하였으며 사도 바울도 1, 2, 3차 전도여행을 계속하면서 이 도로를 이용하여 전도여행을 하였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3) 안디옥의 유대인과 이방인의 상황
ㄱ) 유대인
먼저 유대인이란 이름의 유래부터 찾아보기로 하자.
고대 아브라함 시대부터 이스라엘의 민족의 기원은 시작이 되었지만 남쪽 유다 왕국의 바벨론 포로기 이후부터 시작해서 귀환한 사람들에게 유대인이란 이름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북이스라엘 열 지파는 앗수르에 의해 주전 722년 멸망을 당하고 백성은 포로로 다 끌려가고 이스라엘 땅에는 다른 이방인이 이주를 와서 살고 있었다. 여기저기로 흩어져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돌아오지 못하였다.
하지만 남쪽 유다지파와 베냐민지파로 이루어진 유다왕국은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비록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폐허가 되고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지만 70년 만에 바사 왕 고레스왕의 칙령에 의해 스룹바벨과 학개, 그리고 에스라와 느헤미야등과 함께 3차에 걸쳐 많은 백성이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복원하고 예루살렘을 다시 회복하였다. 이때부터 유대인이라는 이름이 성경에 등장하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바벨론 포로시기부터 흩어지기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이후에도 많은 전쟁과 기근이 그들을 떠나게 하였고 헬라 제국과 로마제국이 이스라엘을 점령하면서 그들이 세우는 계획도시로 유다 백성들을 강제이주를 시키면서 더 많은 유대인들이 헬라제국이나 알렉산드리아, 로마에까지 흩어져 살게 되었다. 이들이 바로 디아스포라들이다. 그들은 비록 소수이지만 같은 민족끼리 모여 살면서 비록 성전은 떠나 왔지만 그들만의 모임 장소인 회당을 건설하여 교육과 예배와 집회를 가져왔다.
ㄴ) 이방인
디아스포라들이 이방나라에서 회당을 중심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토라를 연구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생활을 하며 신실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주위의 많은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섬기며 살겠다고 개종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이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곧 “이방인” 또는 “개종자”라고 불리는 자들이다.
바울의 설교를 들은 자들 중에서 마음이 열리는 자들은 하나님을 잘 알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잘 아는 유대인들이 아니라 이방인들이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바울의 설교를 듣고 도리어 시기가 가득하여 반박하고 비방하였으며(행13:45) 이후 루스드라에 까지 따라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바울로 돌로 치는 자들이었지만 이방인들은 바울의 설교를 들은 후 다음 안식일에도 바울의 말씀을 듣기를 청했으며(42) 폐회한 후에는 유대교에 입교한 많은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기를 권하였다(43). 그리고 이방인들은 주님이 바울을 “이방인의 빛”으로 삼아 땅 끝까지 구원을 하게 하셨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은 다 믿었다(47-48).
2. 바울의 도시설교 전략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
바울의 도시설교는 회당을 중심으로 한 설교였다. 바울의 전도 특징이 대도시를 찾아다니며 회당에서 먼저 유대인에게 설교를 하고 이어서 이방인에게로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1차 전도여행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회당설교는 유대인 즉 이스라엘 사람들을 주 대상으로 하여 전파된 메시지이다. 물론 여기에도 이방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방인중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포함되어 있었다. 바울은 여기서 뿐만 아니라 2차, 3차 전도에서도 대도시를 찾아다니며 회당중심으로 복음을 증거 하였다.
여기서 사도바울의 전도특징을 몇 가지를 들어 보겠다.
첫째, 바울은 동역자들과 함께 전도를 하였다.
둘째, 바울의 전도에는 남녀 구분이 없었다.
셋째, 큰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전도를 하였다.
넷째, 자기 동족 유대인에게 회당에서 먼저 전도를 하였다.
다섯째, 복음을 전한 후에도 계속적인 관심과 관계를 가졌다.
이와 같이 바울은 동역자를 데리고 다니며 큰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회당에서 먼저 전도를 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Ⅲ.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의 분석
1. 설교의 배경
사도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의 설교는 1차전도 여행 중에 유대인 회당에서 안식일에 이스라엘 사람들 및 이방인중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 설교이다. 시리아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을 받은 바나바와 바울은 구브로를 거쳐 바보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의 버가에 이르렀다. 거기서 함께 동행하던 마가 요한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고 다시 버가를 지나 안디옥의 회당에서 안식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안디옥에 유대 회당이 있다는 것은 이미 이 도시에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며 이는 또한 바울에게는 아주 좋은 전도의 대상지이기도 하였다. 유대인들이 흩어져 사는 곳마다 회당을 지어 종교 모임과 교육과 회의를 하는 장소로 사용을 하였는데 이러한 회당이 바울에게는 전도하기에 아주 좋은 발판이 되기도 하였다. 바울이 도착한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도 율법과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후 바울 일행에게 백성들에게 전할 말이 있으면 전하라고 기회를 허락해 주었다. 바울은 그 기회를 잘 이용하였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다.
2. 설교내용 분석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유대인을 향한 설교는 구약전체를 배경을 시작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과 죄 사함, 구원에 이르기까지 서술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중요한 역사 곧 하나님이 우리조상 아브라함을 택하신 일부터 시작해서 애굽의 나그네 생활, 광야생활, 가나안 정복, 사사시대, 왕정시대에 이르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 곧 다윗 왕을 통해 약속하신 이스라엘의 구주 예수를 언급함으로서 유대인 즉 이스라엘의 구속의 성취를 이야기함으로서 역사를 아는 사람만이 이해를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바울이 설교를 하고 있는 곳은 비록 유대인의 회당이기는 하나 로마 지배하의 헬라도시 한 가운데 있는 곳에서 설교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 에게로다.”(롬 1:16)
헬라도시의 한 가운데에서 행해지는 설교 이지만 이 복음은 먼저 유대인의 것이기에 바울은 그들을 향해 먼저 복음을 전파 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의 설교를 세부분으로 나누어서 분석해 보도록 하자.
1) 이스라엘의 역사 조명(17-22절)
아브라함스는 바울의 권면이 “유대주의적인 구조”를 따라 주로 역사 회상의 형식으로 진행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스데반 집사의 설교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이 역사적인 회상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관계하신 과정 전체, 즉 하나님이 그들 조상을 선택하시고 출애굽을 통해 그들을 구원하시며 다윗이 등극하여 다윗 왕조를 성립시키기까지 역사 전체가 포함되고 있다. 이어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그분은 다윗과 그의 집에 대하여 언약하신 언약을 성취하실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배경이며 기초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몇 가지로 구분하여 보기로 하자.
ㄱ) 애굽 생활(17절)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은 그들의 조상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택하셨으며 종으로 팔린 요셉은 애굽에서 총리가 되었으며 기근을 피하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가족들은 요셉과 바로왕의 호의로 애굽의 고센 땅에 거주하며 살게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요셉을 아는 세대가 지나가고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종이 되어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예고한 예언의 성취이기도 하였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 알라. 네 자손이 이방의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창15: 13)
그들이 애굽에 거주한지 430년 만에 하나님은 그들을 돌아 보셨고 모세를 사용하여 “큰 권능”으로 그 땅으로부터 인도하여 내셨다. 그들이 경험한 큰 권능은 애굽에 내려진 열 가지 재앙들과 홍해를 육지처럼 갈라지게 한 기적에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시고 그 능력으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내셨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이스라엘 국가의 설립초기부터 하나님의 큰 권능을 경험한 민족이라는 것을 바울은 밝히고 있다.
ㄴ) 광야 40년(18절)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 과정은 반복하여 하나님을 범죄하고 불신앙하고 원망하며 불평하며 불순종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를 오래 참으셨으며 비록 그들을 징벌 하셨지만 40년 후에는 애굽에서 처음 출발할 때와 같은 수를 남겨 주셨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전적 부패와 연약, 인간의 부족 등을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잘 나타내 보여 주고 있다.
ㄷ) 가나안 정복(19절상)
하나님은 40년을 광야에서 고생한 지도자 모세를 가나안땅 입구에서 이스라엘 지도자의 자리에서 여호수아로 교체를 하셨다. 지금까지의 이스라엘의 여정이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루어 진 것을 다시 한 번 나타내시고자 가나안 일곱 족속을 몰아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해 주셨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셨던 약속의 성취이기도 하지만 가나안 일곱 족속에 대한 일종의 심판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심한 우상숭배와 음란이 그 원인이었다.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은 공의로 이스라엘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멸하려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지키지 못함으로 그들을 다 멸하지 못하여서 결국 이스라엘 백성의 옆구리에 가시역할을 하였다.
ㄹ) 사사시대(19절하-20)
가나안 입성을 하면서 원주민들을 완전히 소멸시키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이방나라들과 통혼하고 그들의 우상을 섬기다 450년간 그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이스라엘의 고통중이 회개의 부르짖음이 있을 때 사사를 세워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다. 이 시기는 반복된 실패와 불순종의 역사였다. 450년을 엄밀히 나누어 보면 고통의 기간보다는 평안의 기간이 더 많았다. 이것은 하나님은 고통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임을 잘 나타내고 있다. 단지 고통은 우리의 잘못 죄악의 대가 일 뿐이다. 하나님은 마지막 사사로 사무엘을 보내 주시사 사사시대를 마감하고 왕정시대를 열게 하셨다. 그래서 사무엘은 두 명의 왕에게 기름을 붓게 되었다.
ㅁ) 사울 왕 시대(21절)
사무엘이 병들고 사무엘의 아들들이 사사로서 온전히 행하지 못하자 백성들의 요구로 왕을 세우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반역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사무엘 뿐이었다.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은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백성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하더라.(삼상9:2)
바울은 사울의 40년 왕위의 기간만 기록할 뿐 사울의 실정이나 개인적인 실수, 왕위를 뺏기는 이유 등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신 이유는 불순종이다. 이를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로
첫째,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선지자 대신 자신이 제사를 드린 것,
둘째, 아말렉을 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치 않은 것,
셋째, 하나님의 금하신 법을 어기고 신접한 자에게 물은 것 등으로 나눌 수 있다.
ㅂ) 하나님의 뜻을 이룰 다윗 왕(22절)
사울이 사람들의 마음에 합한 자라면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였다.(삼상13:14)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으시고 그 중심을 보심으로(삼상16:7)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기 마음에 합한 자를 찾으시고 그에게 왕위를 맞기셨다. 사무엘을 통해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고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언약을 허락해 주셨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허락하신 언약(삼하7:9-16)을 살펴보면
첫째,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할 것이며 네 이름을 존귀케 하리라.
둘째, 모든 대적에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셋째,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넷째, 너의 아들이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다.
다섯째,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견고히 서리라.
바울은 다섯 가지 언약을 다 소개 하지는 않았지만 다섯 번째 약속, 다윗의 씨로 오실 이스라엘의 구주를 이 설교에서 아주 크게 언급을 하고 있다.
2) 그리스도를 통한 성취(23-37절)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약속대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워 주셨는데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은 다윗과 같이 죽음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그를 살려 부활하게 하셨음을 밝히고 있다.
바울의 증언을 내용별로 구분을 해 보면
ㄱ) 하나님의 약속대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23절)
다윗에게 주어졌던 약속 삼하7:12절의 말씀은 아브라함의 경우(창15:1-2)와 같이 언약을 맺는 형식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윗에게 주어졌다. 언약을 맺지는 않았지만 그와 비슷한 축복과 저주, 충성과 복종의 조항이 언급이 되므로 우리는 이를 “다윗의 언약”이라고 부른다.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이 말은 다윗에게 허락한 언약이 성취되었음을 바울은 설명을 하고 있다.
ㄴ) 세례요한을 통한 증거(24-25절)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에게 사무엘 선지자가 있었다면,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세례요한이 있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삼상16:1)을 받고 뿔에 기름을 준비하여 베들레헴 이새의 집으로 보냄을 받았다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 오시기 6개월 전에 세상에 보냄을 받았으며 또한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요단 강가에서 이사야40:3절의 예언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의 길을 예비하는 회개를 선포하고 세례를 베풀고 있었으며 예수님에게 직접 세례를 베풀었다.
그는 또한 그의 제자들과 백성들에게 “내 뒤에 오시는 이”를 소개함으로서 자기가 메시야가 아님을 분명히 밝히었으며 “나는 그분의 발의 신을 풀기도 감당치 못하노라”고 자신과 메시야를 동시에 증거 하였다. 백성들이 보기에는 세례요한이 큰 자였지만 메시야 앞에서의 자기의 모습을 낮게 낮춤으로서 그분을 높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이 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11:11) 라고 세례요한을 칭찬해 주었다.
세례요한이 외친 회개와 세례는 예수그리스도의 공적인 출현을 예비한 것이요 또한 그의 길을 예비한 것이었다.
ㄷ)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26-29절)
26절 서두에 “형제들”이라고 부른 후 바울은 울분을 삼켰으리라. 과거 자기도 그러한 부류에 있었던 사람이기에 그들을 보는 눈이 더욱 안타까웠을 것이라도 짐작해볼 수 있다. 아마 바울이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이방인의 빛”으로 전도의 삶을 살고 있는 동기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이 예수를 메시야로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핍박하는데 앞장을 섰듯이 과거 예수를 나무에 달은 사람들도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눈을 가졌었기에 그러한 과오를 범하였었다. 지금 자기 앞에 있는 유대인들 또한 약 45여년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후예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호소하기를 하나님이 구원의 말씀 곧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셨지만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이 메기야가 오시리라고 한 선지자의 말씀을 알지 못함으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의 말을 응하게 하였다고 설명을 하였다. 이 말은 곧 메시야의 죽음을 의미하고 있다.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과 관리들이 안식일마다 외우는 말씀이었지만 선지자의 예언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지중에 그를 죽임으로서 “메시야가 고난을 당하여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성취시켰던 것이다.
메시야에 대한 십자가형은 부당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백성들과 관리들의 잘못이었다.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밝혔으며 빌라도 또한 그에게서 죄를 발견하지 못하였음에도(눅23:13-25) 불구하고 군중들을 두려워하여 사형을 허락하였다. 사도바울은 이 모든 일이 부지중에 일어난 일로 이야기함으로서 백성들과 관리들이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한 잘못을 성경의 성취를 위한 것으로 미화하고 있는 것 같다.
ㄹ)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30-31절)
인간의 무지로 인해 메시야를 십자가에 달았다가 내려 무덤에 두었지만 하나님이 인간의 판결을 뒤엎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에서 일으키사 부활하게 하신 것은 예수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에게 정당한 것이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은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올라간 사람들에게 약 40여일(행1:3) 나타내 보임으로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으며 진정한 메시야로서의 공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죽고, 죽은 후에는 다시 살지 못하지만, 예수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음을 증거 함으로서 그에게 죄가 없음을 증명함과 동시에 죄 없는 의인으로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셔서 속죄 양으로 죽으셨다가 하나님이 그를 살리셨음을 나타내고 있다.
ㅁ) 부활의 증인들(32-33절)
열두 제자와 500여 형제(고전15:6)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부활의 증인이 되었으며, 오늘 이 자리에 선 바울 자신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예수의 증인이 되어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전파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부터 복음이 나타나고 있다. 이 복음이란 전에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이 이제 하나님에 의해 그들의 자녀들에게 성취되는 것이다.
시2:7절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라는 말은 이스라엘 왕의 대관식 때 사용되던 시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왕과 하나님과의 부자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이다. 비록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낳은 것은 아니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기름을 부으시고 다윗의 자손 중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는 구주 즉 메시야를 보내실 것을 말하고 있다.
ㅂ) 썩음을 당치 않는 거룩한 자(34-37절)
하나님께서 예수를 이스라엘의 메시야로 세우실 뿐만 아니라,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킬 것을 암시 하셨다. 바울은 여기에 대하여 구약의 두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하나는 이사야 53:3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라는 말씀이다. 내가 다윗에게 허락한 곧 다윗을 통하여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주리라는 말이다. 또 하나는 시편 16:10절로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 한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라”라 되어 있다.
이 말씀은 분명 메시야의 부활을 암시하고 있다. 다윗은 죽어 무덤에 묻혔으며 그 몸은 썩었지만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그 몸이 썩음을 당치않았다는 것이 바울의 증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메시야 약속은 성경에 예언대로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주신 확실한 약속을 따라 독생자를 사람으로 보내셨고, 그가 성경대로 죽으셨으며 성경대로 부활하셨다.
3) 이 사람을 힘입어 의롭다 함을 얻으라.(38-41절)
이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이 바울 설교의 핵심이며 복음의 핵심이다. 사람의 근본 문제는 죄 문제에 있고 하나님의 구원의 핵심은 바로 이 죄 문제의 해결에 있다.
죄가 사람의 죽음과 불행의 원인이므로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영생과 영원한 행복이 보장되는 것이다. 사람이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길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어 주셨다,
케리그마의 끝부분에는 항상 청중을 향한 케리그마의 적용 즉, 믿는 자에게는 약속하신 회개와 죄 사함의 은혜에 청중을 초청하는 일이 있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 “그리스도를 통한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 곧 “복음의 요지”에 대하여 말하고 그들을 초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복음에 대하여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밝히 증거하고 있다.
먼저 (로마서 4:19-24절) “우리가 알거니와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느니라.”
(로마서 3:28절)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두 번째 (갈라디아 2:16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로마서 10:24절)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었느니라.”
바울은 의롭게 되는 일에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는 유대인들의 삶을 지적하면서 의롭게 되는 길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주장하고 있다.
바울은 설교에서
첫째는 사람이 율법으로는 결코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과
둘째로 예수를 통해서만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이어서 사도 바울은 약 20년 전 예루살렘의 사람들이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하고 나무에 달았듯이 자기가 전하는 복음, 곧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를 통해 의롭게 되는 길을 믿지 않을 것에 대한 경고의 말씀도 전하고 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3장17-21절에서 구원의 소식이 어떤 이에게는 멸망이 됨을 증거 하셨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쫒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바울은 40-41절에서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 하박국1:5절 “너희는 열국을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 생전에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 혹이 너희에게 고할지라도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를 인용하여 임박한 재난을 이야기함으로서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는 느부갓네살에 의해 유다가 멸망을 받았듯이 하나님도 너희를 버릴 것이라는 경고로 말씀으로 설교의 끝을 맺게 된다. 또한 그 복음은 이방인에게로 들어 갈 것을 예고하였다.
3. 구조
바울의 설교를 “복음 설교”와 “전도 설교”로 나누어서 보는 사람이 있었다. 두 가지다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관점에 따라 구조도 약간씩 달리하고 있어 두 가지만 정리를 해 보고자 한다.
1) 바울의 설교 유형 Ⅰ
a. 이스라엘의 역사조명 17-22
b. 그리스도를 통한 성취 23-37
c. 이 사람을 힘입어 의롭다 함을 얻으라. 38-41
2) 바울의 설교 유형 Ⅱ
a. 구약 이야기 17-22
b. 약속된 메시야 -세례요한의 증거 23-25
c. 썩지 않은 예수그리스도 26-37
d. 이 사람을 힘입어 구원을 얻는다. 38-41
위 두 가지 구조 중 유형Ⅰ은 세례요한의 증거를 구약예언의 성취로 보고 그리스도를 통한 성취에 포함시킨 점이고 유형 Ⅱ는 세례요한의 증거를 이스라엘의 역사도 아니고 예수그리스도 즉 신약도 아닌 중간기의 역사로 구분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4. 본 설교의 독특성
유대 지방이 아닌 로마지배하의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한 바울의 첫 설교이지만 그 설교를 듣는 청중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기에 바울의 다른 설교와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구성해 놓았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처음 조심스레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기에 예수그리스도를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정통성을 주장함으로서 메시야로 인정하게 하려는 바울의 노력이 많이 엿 보인다.
Ⅳ. 복음 설교로서의 안디옥 설교
1. 복음 설교란?
복음 설교라 함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 그리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죄 사함과 영생을 선포하는 것을 복음 설교라 할 수 있다. 율법으로는 우리가 죄를 알 수는 있으되 죄 사함을 받을 수는 없다. 그래서 율법을 사도바울은 갈3:24,25절에서 몽학선생이라고 하였다. 율법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뿐 “오직 죄 사함을 받아 의롭게 되는 길”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만이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우리 위해 어린양의 희생 제물이 되게 하사 피 흘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승천하사 지금은 우리를 위해 하늘나라에 처소를 예비하고 계신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사함을 받을 수 있고 의롭게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없는 설교는 단지 사람을 성인군자로 만들거나 율법주의자로 만들 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만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건져 낼 수 있는 것이다. 속죄의 피로인한 죄 사함과 그를 믿음으로 인한 구속의 은혜를 선포 하는 설교만이 우리를 은혜의 바다로 인도할 것이다.
2. 비시디아 안디옥 복음 설교의 특성
이스라엘 사람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키려고 회당에 모였다가 안식일 예배의 순서에 따라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 회당을 방문한 손님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주어진 기회를 바울은 조금도 주저함 없이 이스라엘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에 이르기 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택하신 아브라함에서부터 애굽 생활, 광야 생활, 가나안 정복기, 사사시대, 왕정 시대 등 이 모든 것은 예수의 정통성을 밝히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다윗 왕에게 약속하신 ‘다윗 언약’을 따라 이 사람의 씨에서 구주를 세워 주셨으며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소개를 하고 있다.
그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지만 다윗과 다른 점은 다윗은 죽어 장사되어 썩음을 당하였지만 하나님이 살리신 이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썩음을 당치 않았으며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음을 선포하고 있다. 모세의 율법으로는 너희가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였지만 이 사람을 힘입는 자마다 의롭다 함을 얻는 이것을 알지어다. 그런즉 이 복음을 믿지 않고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선지자들이 말한 해가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또한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로 흘러갈 것임을 전하고 있다.
사도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는 준비되지 않은 회당 설교였지만 사도바울의 신앙을 엿볼 수 있는 설교라 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의 무능함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지함,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우리의 구원자가 되심을 잘 나타내고 있는 전형적인 복음 설교였다.
3. 복음의 접촉점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가 더욱 빛이 나는 것은 바울의 첫 번째 설교이기도 하며 또한 유대인을 위한 첫 번째 설교이기도하다. 그래서 차후에 있을 다른 설교와는 구성 형식이나 도입방법이 너무나도 차이가 나고 있다.
여기서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7장 공회에서의 스데반 집사의 설교, 17장 아덴의 아레오바고에서 행한 이방인을 향한 설교와의 비교 분석을 해 보도록 하자.
1)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의 독특성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는 유대인을 향한 설교이기에 17절에서 “우리조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청중과 바울의 일치점을 찾아가고 있다. 바울은 자기가 어릴적부터 유대교에 몸담고 있으면서 배우고, 외우며, 읽으며, 몸에 베여있던 구약을 인용하며 이방인이 들으면 이해하지도 못할 오직 유대인만을 향하여 설교를 하는 것이 본 설교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유대인이면 누구나 기다리고 있는 메시야, 정치적인 압제로부터 그리고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로 뭉치게 해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왕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도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설명을 하면서 메시야가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구약의 예언대로 오셨고, 구약의 예언대로 죽으셨다가, 구약의 예언대로 무덤에 계시지 않고, 썩음을 당치 않으셨으며,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입을 수 있다는 내용을 증거 하였다.
위의 이야기는 유대인이 아니면, 이스라엘의 역사를 모르면, 구약의 선지자의 예언을 믿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말씀이다.
2) 스데반 설교와의 유사점
스데반의 설교를 아마 바울은 핍박하는 과정에서 다 들었을 것이다. 다 듣고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데 가편 투표(행26:10)를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스데반의 설교가 바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스데반의 설교 또한 예루살렘에 모여든 아시아 각 도시에서 온 여러 유대인들과 변론을 하다 공회에 끌려와서 대제사장과 공회를 향해서 한 설교이기에 바울의 설교와 유사한 점이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스데반의 설교도 서두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먼저 거론을 하고 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이스라엘의 애굽 생활, 모세의 출애굽과 광야교회, 또한 광야에서의 범죄, 그리고 스데반의 직설적인 표현인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는 계시지 아니하나니(7:48), 너희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치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고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7:52),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다 하니라(7:53)
스데반의 설교 또한 바울의 안디옥 교회에서의 설교와 같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언급하며 애굽과 광야와 안식일마다 외우는 선지자들이 말을 받지 아니하고 예수를 정죄하였다고 말을 함으로서 유대인들로부터 화를 초래하게 하였다는 점에서 구조와 내용상의 많은 유사점을 찾아 볼 수가 있다. 다만 스데반의 설교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형식적인종교 비판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으며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예수가 메시야임을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차이를 들 수가 있다.
3) 17장 아테네 이방인 설교와의 차이점
당시 철학의 도시라 할 수 있는 아테네에서 우상이 가득 찬 것을 보고 바울은 마음에 분히 여기며 밤낮으로, 날마다 광장으로, 시장으로, 회당으로 다니며 철학자들과 변론을 하였다. 그러다 바울은 새로운 교를 전한다는 이유로 아레오바고로 붙들려 가게 되었지만 바울은 거기서 그들에게 ‘새로운 교’ 곧 부활의 종교를 그들에게 전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13장의 비시디아 안디옥의 설교와는 전혀 다르게 아덴사람들의 종교성을 칭찬하면서 그들이 섬기고 있는 “알지 못하는 신”을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소개를 하고 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행17:26) 라고 하며 하나님을 우리 가까이 계신 분으로 하나님을 증거를 하고 있다. 그리고 바울은 마지막 심판 날을 증거하며 그리스도를 심판자로 세우셨음을 증거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신 분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확실한 증거가 됨을 나타내었다.
안디옥에서 유대인을 향한 설교에서는 “우리조상”이라는 말로 시작해서 ‘예수그리스도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으며 구약의 선지자들이 오시리라고 한 그 메시야’임을 증거 하기 위해 설교를 하였지만 아테네에서의 이방인을 향한 설교에서는 구약의 정통성이나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모든 신보다 뛰어난 하나님, 즉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다.
Ⅴ.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가 복음 설교에 미치는 교훈
1. 모형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의 바울의 설교는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 집사가 한 설교와 유형을 같이 하고 있다. 스데반 집사는 순교직전 회당에서 자기를 변론하는 설교를 하였는데 그 설교가 바로 기독교의 핵심이요 그의 순교 또한 초대 기독교 발흥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스데반의 죽음에 가편 투표를 하고 증인들의 옷을 맡은 자로서 아마 스데반의 설교전부를 들었을 것이며 순교 과정도 하나하나 지켜 보았을 것이다. 결정적인 계기는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남으로 바울이 변화되지만 스데반의 순교과정과 순교의 그 모습, 그리고 설교의 내용은 잊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의 의도였는지는 모르지만 두 설교형태와 내용이 비슷한 점이 많다.
두 설교 모두 유대 회당에서 이루어 졌으며, 스데반의 설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상세하게 기술하는 반면 바울은 비록 짧게 언급하지만 같이 역사를 먼저 언급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통성을 이야기하고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의인으로 이 땅에 오셨다가 자기 백성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는 내용까지 거의 일치를 하고 있다. 아마 사도 바울은 스데반 집사의 설교를 기억하고 있었으며 그 설교를 토대로 바울 자신도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하였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을 자기 설교에 인용하였을 것이다.
이상으로 보아 사도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의 모형은 행 7:2-53절에 기록되어 있는 스데반 집사의 설교라고 할 수 있다.
2. 전형
이후 바울은 여러 차례에 걸쳐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설교와 변명과 간증을 하지만 13장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인을 향한 설교처럼 짜임새 있는 복음 설교를 한곳은 없다. 물론 그의 설교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공통적으로 언급을 하지만 13장에서처럼 구체적이지 못하다.
17장 아덴에서 이방인을 향한 아레오바고 설교에서는 이스라엘의 역사 대신 그들이 이름도 모르고 섬기는 신을 하나님으로 가르쳐 주고 이어서 예수의 부활도 함께 들려주었다. 사도행전에 실려 있는 바울의 여러 편의 설교들은 비록 13장처럼 구체적이고 체계적이지는 못하지만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주제와 설교 패턴으로 예수를 소개하며 복음으로의 초청을 하고 있다.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에 이르기까지 그의 청중을 예수를 메시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한 그의 노력이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Ⅵ. 결론
주님의 부르심에 의해 핍박자 사울이 전도자 바울로 변화되어 주님의 명령에 따라 “이방의 빛”으로서 복음을 들고 헬라지역으로 전도를 나간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이라는 헬라 도시의 유대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하나님의 경외하는 이방인들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 그리고 그 이름을 힘입어 얻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복음을 선포 하였다.
요즈음 많은 성도들이 무거운 율법적인 설교를 싫어하고 복음을 배제한 유우머 스럽고 즐거운 설교, 복을 강조하는 설교를 좋아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다시 한 번 되 세기고 이시대의 성도들에게 자주 선포해야 할 설교가 바울의 안디옥 설교와 같은 복음 설교라고 생각한다. 바울은 그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였다.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 던진 복음이 겨자씨 한 알이 되어서 전 세계를 복음으로 덮어가고 있듯이, 성도가 원하는 것보다는 바울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에 온전히 감당하여 이 시대에 잊혀져가고 있는 복음을 다시 만방에 선포하는 전도자가 되기를 다짐하며 바울과 같은 하나님께 받은 소명을 감당하는 복음전도자가 많이 등장하기를 소망한다.
참고도서
F,F 브루스『핸드릭슨 주석』 사도행전
강 병도 편저,『호크마 종합주석 5』 서울: 기독 지혜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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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종현, 최 갑종공저 「사도바울」서울: 기독 지혜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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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조 목사 「사도행전 강해 2권」서울: 두란노 서원,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