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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長途)의 또 다른 서(序), 도심과 군부대를 헤치며 길게 걷다 (1구간)
1. 일자: 2016. 4. 2 (토)
2. 봉우리: 장명산(102m), 고봉산(209m), 견달산(138m)
3. 행로/시간
[오도리 곡릉천교(08:23) -> 장명산(08:43) -> 골재채취장(09:10) -> 고인돌(09:26) -> 56번 국도(09:42) -> 교하신도시 놀이터(10:14`30) -> 정자(10:36) -> (금강공원) -> (아이파크 아파트/가구단지) -> 일산동고(11:48) -> 황룡산 갈림(11:59) -> 금강굴(12:11) -> 고봉산 입구(12:30) -> 바위(12:41~13:05) -> (군부대/도로) -> 견달산(14:28) -> 공양왕릉(15:28) -> 원당 삼거리(15:42)]
4. 동행: 송암님, 산거북님, 유박사님, 청한님, 옥혜님, 아카님
< 한북정맥 1구간 산행을 준비하여 >
백두대간 종주 이후 마음 속에 늘 한북정맥을 그리며 살았다. 그러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긴 쉽지 않았다. 차편, 거리, 동행, 심지어 날씨까지 맞추려 드니 이래 저래 안 되는 이유만 늘어간다. 일단 저지르기로 한다. 더 미루다가는 한 여름에 험로 산행을 하는 공포에 시달릴 판이다. 대간 8기 동기 밴드에 함께 하자는 공지를 띄운다. 여러분들이 동행자로 나서며 지지를 보내준다. 힘이 난다.
첫 공지를 올리고 한동안 잊고 지내다 3월 23일 수피령에서 하오현까지 1구간 안내를 했다. 며칠 뒤 산거북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예정된 1구간이 봄철 산방구역에 속하는 것 같다는 연락이다. 예감이 좋지 않아 바로 화천군 산림과에 전화하니 5월 15일까지 출입금지라며, 최근 인근에 산불이 나 단속을 강화할 예정이라 한다. 난감했다. 시작 시기를 연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산거북님께 연락을 하니, 북진을 제안한다. 난 생각해 내지 못한 역발상이다. 지도 책을 펴고 코스 답사를 한다.
파주 교하 장명산에서 여정이 시작된다. 상세 정보가 부족하지만 4월 2일 토요일 아침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전철을 타고 금촌에서 장명산 인근으로 이동하자는 공지를 올린다. 더 이상의 상세 정보는 내겐 무리다. 아니나 다를까 산행 전날 산거북님이 상세지도와 구체 정보를 올린다. 천군만마다. 연이어 청한님이 참석을 알려 오고, 몸 상태가 편치 않다던 옥혜님도 OK 사인을 보내온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토요일 아침을 설레임으로 기다린다.
< 희망사항 >
산꾼은 마음 먹으면 실행에 옮기게 되어 있다. 안 그러면 마음의 짐이 되어 오래도록 스스로를 괴롭힌다. 이런 저런 이유로 ‘다음에’를 반복하다. 마침내 마음을 정한다. ‘함께’라는 힘이 결단을 가능하게 했다. 4월 초반 두 구간을 해 치우고 나면 한결 여유가 생기고, 그 탄력으로 봄과 여름을 지나면, 초가을에 상대적으로 먼 구간을 넘을 수 있으리라. 부지런히 진행하면 10월 초면 한북정맥 종주가 가능하다.
산행기를 시작하며 다시 장도(長途)의 서(序)라는 표현을 들고 나온다. 먼 낯선 길을 나서며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을 찾지 못했다. 백두대간을 시작하기 전에는 대간만 종주하면 고수 반열에 오르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대간 종주꾼이 되고 나니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무언가를 더해야겠다. 마음 맞는 분들과 새 길을 걸으며 산을 조금 더 알아 가고자 한다.
< 오도리 가는 길에 >
새벽에 잠이 깨어 뒤척거리다 배낭을 멘다. 서울역에 도착해 경의선 전철 탑승구로 이동하니 6시 20분이 채 안되었는데, 송암님 등 네 분이 먼저 와 계시다. 역시 부지런한 분들이다. 반갑게 인사하고 담소를 나눈다. 지난 주 에베레스트를 다녀온 송암님 소식이 단연 화제다. 베이스캠프를 넘어 고봉에도 올랐다 한다. 그 체력과 여유 무엇보다 도전정신이 부럽다. 참 멋진 청춘이시다.
개찰구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전철에 오른다. 문산에서 군생활을 할 때 자주 이용하던 경의선 기차가 이제는 전철로 변해 있었다. 전철 안은 시간이 일러 그런지 한산했다. 신촌, 수색 등 한때는 익숙했던 지역을 빠르게 지난다. 철 길 따라 노란 개나리가 지천이다. 부지불식간 봄이 곁에 성큼 와 있었다. 금촌역에 내려 아침식사를 한다. 잔치국수와 라면, 김밥으로 포식을 했다. 배가 불룩하다.
택시를 타고 오도리로 이동한다. 산에 자주 간다는 현지 택시 기사도 장명산을 모른다. 골재 채취장 옆 곡릉천 다리 인근에서 하차한다. 시간은 8시 30분이 막 지난다. 들머리를 알리는 표지기가 보인다. 드디어 한북정맥 그 도도한 길이 시작된다.
< 경의선 전철을 기다리며 >
< 장명산에서 일산가구단지 >
골재를 실은 트럭들이 굉음을 내며 분주하게 오간다. 배낭을 고쳐 메며 시작을 알리는 사진을 찍고 입산한다. 군 부대 참호를 따라 장명산으로 향하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고도는 102미터지만 이것도 산이라고 제법 치고 오른다. 20여분 만에 산정에 도착했다. 바로 이곳에서 한북정맥이 시작된다. 장명산 표지석 뒤편에 한북정맥 표지석도 있다. 정맥이 시작된다는 설렘으로 잠시 흥분한다. 이어지는 길 찾기가 만만치 않다. 육안으로는 분명 좌측으로 가야 하는데 표지기는 우측 곡릉천 방향으로 나 있다. 좌측 비탈을 치고 내려가자 골재 채취장이 보이고 도로가 나온다. 찻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우측으로 올라 붙는다. 진짜 장명산은 골재 채취장으로 변해 버렸다. 초입부터 길 찾기가 어렵다. 게다가 북한의 GPS 교란으로 궤적이 중단되고 여러 번 헤맨 끝에 등로를 찾았다. 파주특수교육지원센터 옆에서 비교적 뚜렷한 길을 만났다. 다시 마을 산책로 같은 둘레길이 나오며 지나는 마을 사람 여럿을 만난다.
< 장명산에서 >
고인돌 지석묘도 보고 작은 암자도 지난다. 초반 30분 길도 없는 험로를 헤쳐 나온 안도감이 가실 무렵부터 걷기 좋은 널찍한 등로를 걷는다. 일행의 얼굴에서 미소가 번진다.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모두 든든한 분들이다. 산책로가 끝난다. 56번 국 도 위로 시원스레 차들이 질주한다. 목표했던 첫 이정에 예정보다 20여분 늦게 도착했다.
길은 운정 아파트 단지를 통과한다. 토요일 오전 한가한 분위기가 여러 곳에서 목격된다. 지나는 사람들이 커다란 배낭을 메고 길을 걷는 우리를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들은 우리가 정맥 길을 걷고 있는 줄 모르리라. 아파트 단지와 정맥은 분명 어울리지 않는다. 한 때는 논 밭이던 곳에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사람도 그렇듯 길에게도 운명이란 게 있나 보다. 10시 무렵 운정 신도시 공원 내로 들어왔다. 커다란 놀이터 인근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날이 참 따스하다. 얇은 티셔츠 한 장에도 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간식을 먹으로 담소한다. 지나온 길을 복기해 본다.
< 56번 국도 다리 위 / 운정 아파트 단지에서 >
작은 동산 위로 키 큰 소나무가 높다랗게 서 있다. 멋진 모습이다. 숲에선 참나무와 햇살을 경쟁하던 솔들이 도심에선 자유로이 높게 솟구친 모습이 늠름하다. 다시 길을 나선다. 금강공원이라는 간판이 내려다 보이는 정자를 지난다. 아파트 단지 내 산책 길을 한가로이 걸어간다.
< 도심의 높다란 소나무 >
조밀하게 늘어선 아파트 단지 옆 널찍한 공터에서 작은 텃밭들이 목격된다. 옛 농 터의 흔적들이 보인다. 도시화의 속도에 머지 않아 이곳에도 건물들이 들어설 것이리라.
정맥 길은 대로를 따라 이어진다. 신호등을 건너는 횟수가 늘어난다. 출발 전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에 당황한다. 국회위원 선거 플랭카드와 벽보들로 도심은 어지럽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이곳을 배낭 메고 걸어보랴, 도로에 들어서니 시각적으로 정보의 홍수로 시각적 인지기능이 복잡해진다. 길은 도로와 아파트 단지, 공원 등을 번갈아 지난다.
청한님에게서 전화가 온다. 고봉산 인근에서 만나기로 한다. 아이파크 아파트 단지를 지나고, 여러 번 신호등을 건넌다. 혼자 왔으면 길을 어찌 찾았을까 하는 안도감이 든다. 산거북님이 GPS를 손에 들고 길을 찾아 주는 덕분에 복잡한 도심을 용케도 쉽게 통과한다. 배나무 과수원을 지난다, 하얀 배꽃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하얀 꽃잎이 청초하면서도 요염하다. 달래 ‘이화(梨花)에 월백하고’란 시가 있었겠는가?
< 일산가구단지에서 고봉산 >
일산가구단지를 지난다. 도로를 건너고 철 길 위로 지난다. 아파트 단지 담벼락을 따라 민들레와 제비꽃이 지천이다. 올 들어 첫 야생화를 목격한다. 봄이란 말이 새삼 가깝게 느껴진다. 길가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걷는다. 정맥 길에 아이크림이라, 오늘은 생뚱맞은 일이 전혀 이상스럽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 운정 아파트 단지 정자에서 / 봄 꽃들 >
시내 도로를 걷는 일에 익숙해져 간다. 일산동고등학교 정문을 지난다. 교내에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우측으로 높다란 산이 보인다. 황룡산으로 향하는 숲에 들어선다. 모처럼 숲을 보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만개한 진달래가 산꾼들을 반긴다. 비탈을 치고 오른다. 평지에 익숙해진 다리에 묵직함이 느껴진다. 정맥 길은 황룡산 갈림에서 우측으로 이어진다.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소나무 군락이 이어지고 마을 뒷동산 산책로가 길게 이어진다. 숲이 햇살을 막아준다. 코에 시원한 공기를 불어넣는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담소를 나누며 걷는 모습이 정겹다. 길 찾기도 만만치 않은 정맥, 함께 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힘겨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봉산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곳에 웬 커다란 텐트촌이 나타난다. 한국전쟁 때 부역의 죄로 1000여명의 양민이 학살당한 발굴현장이다. 부끄러운 역사의 흔적에 마음이 아파온다. 영혼 치유의 날이 빨라졌으면 하고 바래본다.
다시 도로로 내려선다. 앞 쪽으로 커다란 통신탑이 서 있는 곳이 고봉산이리라. 도로를 건너자 등산로 입구에 청한님이 서 있다. 반가웠다. 성치 않은 다리로 길을 나서 우리를 반겨준다. 현지 주민답게 인근 지리에 대해 해박하다. 일산의 하나의 산이 바로 고봉산이란다. 제법 긴 오름이 이어진다. 5시간 가까이 걸은 탓에 배도 고프고 다리도 뻐근하다. 정상 인근 바위에 자리를 편다. 널찍한 돌 위에 갖가지 음식들이 펼쳐진다. 산거북님 김밥, 송암님 떡, 유박사님 냉커피, 옥혜님 곶감 덕에 내가 준비한 빵은 내 놓지도 못했다. 여러 음식 중 단연 인기는 청한님이 준비한 막걸리와 김치다. 막걸리 두 잔에 알딸딸해진다.
< 고봉산에서 원당 삼거리 >
이제 남은 거리는 9.5km, 2시간 30분을 예상한다. 거리가 만만치 않다. 함께 하는 동료도 늘고 배도 채워졌으니 힘을 내 본다. 고봉산을 내려선다. 만경사라는 작은 절을 내려선다. 마을을 골목을 지나 길은 군부대를 우회한다. 초소에 군인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우리 일행을 바라본다. 군부대 철망을 돌아드는 등로가 무척 길게 느껴진다.
1시 50분 무렵 다시 도로에 들어선다. 2차선 지방도로에는 웬 레미콘 트럭들이 이리 많은지. 흙먼지에 코가 막혀온다. 오늘 걷는 길 중 최악이다. 차 조심하랴 먼지 피하랴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아카님이 말을 건내 온다. 정맥 길이 원래 이러냐 한다. 대답을 못한다. 낸들 길이 이럴 줄 알았겠는가. 인선이라는 기업에서 운영하는 골재 채취장과 폐기물 처리장의 삭막한 풍경들이 한동안 이어진다. 어서 빨리 견달산으로 올라 붙고 싶은 심정뿐이다. 2차선 도로를 30분 이상 걸은 끝에 견달산 입구에 도착했다. 괜 긴 비탈을 치고 오른다. 2시 30분 무렵 견달산 정상에 오른다. 오늘 올라야 하는 마지막 봉우리다. 심신이 지쳐온다. 도로를 걸은 후부터 침묵하던 일행들의 입가에 비로서 미소가 돋는다.
견달산을 내려와 도로를 건너고 다시 긴 군부대 우회로가 이어진다. 그 끝에 마을 산책로가 나타난다. 길가에 퍼질러 앉아 쉬어 가지로 한다. 남은 간식들이 나온다. 이번에는 우유박사님의 커피 얼음과 옥혜님의 포도즙이 단연 인기다. 난 먹기는 보다 드러눕고 싶다. 졸음이 밀려온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긴 길의 끝이 보인다. 공양왕릉을 지난다. 고려의 마지막 왕의 능이다. 작은 언덕을 따라 여러 기의 묘가 서 있다. 망하지 않은 왕조가 어디 있겠냐 마는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아린 여운을 준다.
< 고봉산 / 견달산 정상에서 >
날머리는 왕릉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터벅터벅 도로를 따라 내려온다. 멀리 낙타고개가 보인다. 원당 삼거리에서 한북정맥 1구간 산행을 마무리 한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 한북정맥 1구간 등로 지도 >
< 에필로그 >
날머리 인근에서 수육, 소머리 국밥 등과 막걸리로 뒤풀이를 했다. 산행이 길었던 만큼 돌아보는 감회도 남달랐다. 한북 1구간에서는 작은 산 3곳과, 숲 길, 아파트 단지, 도로, 다리, 군부대, 왕릉 등 평소 산에서 접하기 힘든 여러 곳을 걸었다. 정맥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어수선한 길에서 다이나믹을 경험했다. 누구 말대로 미리 알았다면 나도 섣불리 이 길에 나서지 않았을 게다. 그러나 이 역시 정맥이고 오늘 하지 않았으면 찝찝한 기분이 길게 남을 뻔했다. 처음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대로 잘 모르며 해치웠다.
산행 다음 날 아침부터 밴드에 사진이 올라온다. 사진을 보자 어제의 느낌이 살아난다. 백두대간 때처럼 산행이 끝나고 하루가 지나면 또 가고 싶은 게 산인가 보다. 한동안 쉬다가 다음주쯤 2구간 구상을 구체적으로 해야겠다.
늘 산이 삶에 휴식을 주고, 설렘을 불러 일으켜 주었으면 한다.``
< 1구간 산행 궤적 >
*사진과 지도는 내 것만으로 부족하여 산거북님 것 추가했습니다.^^
첫댓글 명동님의 산행기를 다시 읽을 수 있다니..^^..
너무 좋네요..
잔잔한 수필을 읽어내리니 걸어온 길이 하나 둘 기억에 새롭네요..
첫구간을 북진으로 한것은 잘한 일 같아요.
마지막에 했으면 그동안의 좋았던 산행 기억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도 같고..ㅋㅋ
북쪽으로 가야 통일을 향해 가는 미래 지향적도 되는 것 같아서요..ㅎㅎ
이제 담구간 부터는 좋은 조망과 산길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대가 많이 되네요..^^
그리고 명동님 이카페를 밴드에 링크를 걸으면 어떤가요?
288님들 모두 이좋은 산행기를 보고 싶을 것 같아서요..^^
급히 쓰느라 오타 투성이인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밴드 링크 좋습니다.
다만, 어찌 링크거는지 몰라서....^^
정성이 갸륵하도다 ㅎㅎ암튼 대단합니다
모처럼 들어오니 한북을 시작하셨군요.
저도 수피령에서 비득재까지 홀로 하다가 멈춘 상태입니다.
8기의 단합력은 대단하군요. 더위가 오기전에 완주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