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인 2016년 7월 16일에 예수회 신부이자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인 서명원 신부님의 특강이 ‘영성과 사회복지학회(회장 도영인 우송대 교수)’ 워크숍의 일환으로 열렸습니다. 경기도 화성시 나래울 복합복지타운(관장 김정희)에서 우천으로 인하여 예정보다 15분가량 지연되어 시작된 이날 강연 및 명상 실습은 오후 3시30분경 참가자들의 대만족과 호평 속에서 막을 내렸습니다.
제1부를 마친 후 가진 기념촬영 시간
제1부 강의
이 워크숍의 주제는 <관상생활과 사회참여>였고요, 신부님은 ‘영성(靈性)’의 개념부터 설명하셨습니다. 흔히 이 단어를 기독교적인 언어라고 생각하는데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의 저서들에서 “영(靈)”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불성은 영적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설명을 통해 사실관계를 바로잡아주셨습니다.
“영성”은 사회참여와 맞물릴 수밖에 없다고 하셨어요. 사회참여란 이웃을 돕고 북한동포에게 식량을 보내는 것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엄마의 삶과 아빠의 삶이 바로 사회참여라고 합니다. 좋은 가정을 이루어 편안하게 사는 것이 사회참여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관상이라는 말씀은 기도, 명상, 묵상과 비슷한 용어이며, 수많은 수행법의 하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객관적으로 으뜸인 수행법이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에게 맞는 수행법이 최고라고 설명해주셨어요. 서명원 신부님이 속해 있는 예수회의 설립자이신 이냐시오 성인은 관상과 사회참여를 구분하시지 않으셨던 것 같다고 하십니다.
깨달은 삶이나 영적인 생활은 본질적으로 남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이야기하는 대승불교의 보살사상이 바로 그렇고요.
보살사상은 즉 통합된 인간, 도인, 성자로 살아가는 걸을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요?
서명원 신부님의 공동체인 예수회에서는 은퇴한 노인에게도 수행할 의무가 있다고 합니다.
석가세존께서도 80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가르침을 실천하셨고요.
가톨릭의 성인인 소화데레사도 날마다 작은 희생을 예수님께 기쁘게 바치는 걸 실천하셨고요.
반면에 현대 한국의 대표적인 선승인 성철 스님은 사회참여에 있어서는 0이었다고 하네요.
어쩌면 제 단견으로는 성철 스님이 사회참여를 하지 않음으로써 사회참여를 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서명원 신부님은 가톨릭 모태신앙으로 종교를 갖게 되었고,
캐나다에 살던 시절에는 반복기도만 배워서 하셨고,
프랑스에 유학 왔을 때 관상기도를 잘하시는 신부님을 뵙게 되면서
관상기도를 알게 되어서 만 19세 때부터 하루에 5분씩 관상기도를 하셨다고 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석가세존께서는 하루에 세 번 명상하셨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외딴 곳에 가셔서 기도하는 생화를 하셨다고 합니다.
영적인 생활이란 영적인 힘이 충전된 상태로 생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대요.
영적인 힘을 충전하기 위해, 영적인 약이 바닥나지 않기 위해 관상생활을 하는 것이지요.
올해 워크숍을 알리는 현수막
제1부 질의들
1) 요새 한국인들이 화가 많이 나 있는 것 같다. 화를 낼 대상을 찾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한 20~30년 사이에 더 커진 것 같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신부님의 기도생활을 소개해주세요.
3) 한국 불교에서 예수님께서 젊은 시절에 인도 쪽으로 오셔서 불교를 공부하셨을 거라는
주장을 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4) 영성적이라고 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요?
5) 기도를 교회에서 배웠고, 불교에서 명상을 배워서 하고 있습니다. 기도와 명상 중 어떤 게 더
중요합니까? 둘 다 중요합니까?
6) 침묵기도를 한두 시간 정도씩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명상이라고 해도 됩니까?
7) 신부님 강의를 들으니 종교인이라기보다 영성인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부르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선착순 30분만 참석하실 수 있었어요.
제2부 강의
두 번째 특강에서는 첫 번째 시간에 시간관계상 나누지 못한 내용을 채워주셨습니다.
사회참여에 대한 종교별 특징을 통계적으로 말씀해주셨어요.
불교의 사회참여에 대해서는 달라이라마 말씀을 대신 들려주셨어요.
국제학술대회에 참여한 달라이라마께서 “불교는 기독교로부터 명상법을 배워야 하고, 기독교는 불교로부터 명상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경우 성철 스님은 사회참여를 안 하셨지만, 숭산 스님과 무진장 스님, 진관 스님께서는 민주화운동 때 사회참여를 열심히 하셨다고 합니다.
타이완 불교에는 ‘대만의 마더 데레사’라고 불리는 비구니 스님이 계시다고 합니다.
원불교는 사회참여를 강조하고,
그리스도교에서는 말씀을 중시하고, 차별도 중시하기 때문에 사회참여가 중요합니다.
가톨릭의 경우 관상수도자들에게 신비주의를 맡겼다고 하고,
동방정교회의 경우 신비주의는 강하지만 사회참여는 제로라고 합니다.
성공회의 경우도 사회참여가 강한 반면 수도자가 독신 생활을 하지 않으며,
영성이 강하다고 볼 수 없대요.
개신교의 경우 결속성이 강하고 언변이 탁월하고요,
이슬람교의 경우 “인샬라(알라의 뜻대로 하옵소서)”에서 드러나듯이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살아간다는 사고방식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렇게 종교마다 종교관에 따라서 사회참여가 많이 다른 것은 종교마다의 사상과 활동방법이 연관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철 스님이 강조한 돈오돈수적 깨달음을 이상이라고 한다면, 그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간격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간격으로 좁히고 없애기 위해 수행이 필요한 것이래요.
명상의 효과에 대하여 말씀하시며
제2부 질문들
1) 깨달음과 깨달은 사람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어떤 특징이 있나요?
2) 임사체험을 하신 분들의 경우 삶이 아주 많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관상생활의 경우
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요?
3) 명상을 하는 중에 과거의 고통 체험 때문에 힘들어서 멈추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4) 명상하면 가장 좋은 것은 생각이 없는 거라고 하는데, 그게 뭔가요?
5) 명상을 하면서 개인화, 내면화 쪽으로 기운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이런 분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6)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도 여건상 하기 힘들다면 천천히 살아 보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을 좀 더 설명해주세요.
7) 명상을 하시면서 높은 단계로 올라가셨다고 하는데, 그걸 체험하시는 걸 어떻게 압니까?
신통해집니까?
제2부 실습을 시작하려는데 어디선가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습니다. 이 새가 밖으로 나가기를 기다시리며.
3. 명상 실습
원래는 이론 반, 실기 반, 이렇게 진행하시려고 했습니다만 실제로는 이론 중심으로 흘러 버렸습니다. 명상 실습은 제1부에 5분, 제2부에 6분 진행하였는데, 짧지만 대만족 속에서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