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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시를 사랑하는 과자 집에 다녀오다.hwp
문학과 시를 사랑하는 과자 집에 다녀오다
9월 3일 토요일, 구례 문화원 예술 회관에서 열리는 그림책 자서전 전시회에 다녀왔다. 토요일마다 도서관에서 재능 기부를 하심으로 영어를 가르쳐 주시는 미국 할머니께서 나를 초대해주셨다. 기대를 잔뜩 하고 갔는데, 감사하게도 기대 이상으로 너무 좋고 값진 경험이었다. 전시회장은 조금 비좁았지만 그 덕분에 작가 분들과 가까이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했다.
처음 본 작품은 오영숙님의 ‘GO!’
서툴게 직접 쓴 글씨하며 빽빽이 칠한 색연필 자국에 책을 넘기는 내 손가락이 더러워졌는데 오히려 웃음이 나는 것을 참았다. 큰 A4용지 몇 십장을 얼마나 열심히 칠한 것인지 파란색, 분홍색, 노란색, 초록색으로 뒤덮여 하얀 여백의 작은 틈 하나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서툴지만 잘 그려진 그림 또한 작은 손으로 감당했을 노력이 보였다.
그 다음은 박봉덕님의 ‘태양을 품은 제비꽃’
작가의 어렸을 적이 고스란히 담긴 듯 했다. 어릴 적 등교할 때 지나친 제비꽃 길과 제비꽃의 보랏빛 향기, 그것은 자신을 완성시켜준 꽃이었다. 나이가 든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듯 정갈한 표현들은 전혀 미숙하지 않은 실력이었다. 제비꽃 향기가 물씬 나는 감명 깊은 작품이었다.
거기까지 읽었을 때 갑작스레 작가 분들과 나를 포함한 관람객들이 모두 모여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작가 분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간단한 소개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알고 보니 관람객인줄만 알았던 다른 분들은 사실 모두 작품의 주인인 작가 분들이었다. 나는 부끄럽지만 그 분들은 앞에서 간단히 내 소개를 하였다.
“저는 솔이와 갚은 학급 친구이고, 평소에 시와 글에 관심이 많아 취미 삼아 문학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학교 글쓰기 대회에도 참여해서 수상도 하고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배우는 단계입니다. 이러한 전시회에 참가하게 되어서 앞으로의 저의 앞날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많이 배워가고 싶습니다.”
덧붙여서 나는 방명록에 소감문도 작성 했는데,
“ ‘나’는 완벽히 헤아릴 수 없이 깊이감 있는 작품들,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는데 그것은 앞으로 내가 할 이야기의 주제가 될 것이다.
오리엔테이션과 자기소개가 끝나고 나는 다시 작품을 관람하는데 이해정님의 ‘그냥 꽃’이 눈에 밟혔다.
겉표지부터 유색한지로 멋지게 오려 예쁘게 쓰인 글씨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책 안쪽도 사람, 꽃, 바닥을 기는 병아리, 돌멩이까지도 너나 할 것 없이 한지로 예쁘게 꾸며진 것들이었다. 이것이 과연 5주 동안에 전문화가, 작가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것이 맞는지, 혹시 이분의 직업이 작가는 아닌지 의심이 가는 솜씨였다. 이 자서전은 작가가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된다. 초등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하고 때론 행복한 일도 있고 때론 상처받는 일도 있으며 어찌 보면 누구나 겪는, 또한 내가 비슷하게 겪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자서전에서 나에게 가장 와 닿은 것은 ‘어머니’라는 단어였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그것. 작가가 어머니라는 걸음을 걷게 된 것으로부터 나의 심상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 장난스러운 꼬마 천사들은 하루 종일 나의 젖을 물고 놀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아침 마다 천사의 노래로 나를 잠에서 깨게 하며 나는 이 천사들을 한 번도 미워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새 군대에 간 첫째 아들은 거리가 멀어 힘들다며 면회 오지 말라던 말을 잘 들었던 나는 착한 엄만지 나쁜 엄만지.’
덤덤하게 쓰인 단어 하나하나에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를 반복하며 감탄사를 난발하고 계속해서 힘찬 박수를 보내드렸다.
그 다음 장은 작가님과 남편 분의 초상화와 함께 긴 편지가 있었는데 유일하게 손 글씨였다. 옆에 남편 분도 함께 전시회에 오셔서 금방 이분이 남편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행복하다. 어렵고 힘든 날들이 있었지만 그 아픔을 아무렇지 않게 내 보이며 울 수 있는 사람을 만났고, 내가 다 줄 수 있는 나의 천사들이 있어서. 앞으로의 날들은 나의 자서전에 기록 돼 있지 않겠지만, 이 사람들이 있기에 나의 앞날도 행복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장은 마지막 장이었는데 흰 여백에 둘째 아들을 위해 비워놓은 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렇지만 비워져 있는 칸이 나는 허무맹랑하지 않고 앞 장의 화려하고 따뜻했던 과정들과 똑같이 꽉 찬 것 같이 보였다. 그 작품을 읽는 동안 혼자서 꺼이꺼이 울면서 보았는데 아마 관람이 아니라 추태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러면 어떠하리. 내가 다른 이의 멋진 인생을, 그 길고 긴 여정을 내가 다 건넜던 마냥 스스로 책을 덮는 순간 마음이 무겁고 동시에 가벼웠다.
여운이 남는 것인지 나는 초록 칠판과 같이 배울 것이 많은 초록색의 그냥 꽃 표지 주변을 계속해서 어슬렁거렸다. 그러고 보니 왜 제목이 그냥 꽃일까. 그녀의 인생은 그냥 꽃이 아니라 세상에 하나뿐인 강인하고 향기로운 꽃이다. 혼자서 독무대를 완벽히 마치고 당당히 걸어 내려오는 승리자의 미소, 그런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한참을 방황하다가 한 군데에 정착했다. ‘자소전 살펴보기 게시판’ 앞으로 다가가자 내가 보지 못했던 작가의 동기와 감상평 등의 간략한 글이 적혀있었다.
‘그냥 꽃은 그냥 사람이 내 인생을 살았던 것에 대해 그냥 쓴 것입니다.’
겸손한 멘트였다. 인생을 살았던 것을 그냥 사람이 그냥 쓴 책은 나에게 그냥의 이유보다 더 대단한 책이었다. 나는 큰마음 먹고 이해정 선생님께 다가가서 인쇄 된 작품을 제게 한 권 양도해 달라고 여쭈는데 그 5초의 시간동안 내가 10분간 읽었던 그 존재감 큰 작품이 슥 지나가버려서 결국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내가 갑자기 울자 선생님은 당황하셨고 다른 작가분이 이것은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라며 울고 있는 나와 이해정 선생님께 focus를 맞추고 사진을 찰칵 찰칵 찍으셨다.
이해정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이 나이에 벌써 인생을 알면 안 돼.’ 라고 하셨고 나는 ‘선생님께서 제게 인생을 알려주셨어요.’라고 대답할 뻔 했다.
“나이는 저 아직 10대이지만 그냥 꽃이란 작품을 읽으며 그 이상을 산 것 같이 느껴졌어요. 하지만 아직 동화나 만화 이야기 한 편을 읽은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은 제가 아직 거치지 못한 많은 인생이 남아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모두 이해하기 힘들지만 잠깐 이라도 저는 작가님의 인생을 살아보았어요.”
드디어 ‘나’는 완벽히 이해하지 못할 깊이감이라는 것의 정체가 밝혀졌다. 그 깊이는 차마 상상 할 수도 없는 인생의 깊이였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꽤 진지하게 들으시더니,
“나도 처음엔 재미있겠네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내 이야기를 쓰는 동안 그 과정을 꺼내는 것이... 너무나 아파서 많이 울었단다. 그러나 이야기의 마무리를 짓고 완성한 그 순간엔 아픔도 기쁨도 전부 사라지고 모든 것이 맑아지는 기분이었어.”
라고 말하셨다.
또 다시 마음이 요동쳤다.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아픔과 기쁨의 경험은 그 사람의 인생의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나한테도 있을까? 당연히 있다, 아픔과 기쁨!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지금 살아있는 이 순간도 내 인생의 한 컷 이라면 기쁨은 지금이고 내 인생은 지금 이 순간 이라는 것을...
아직 경험이 부족하여 인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인생을 이해하고 있던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이해정 선생님과의 5분 대화를 통해 얻은 것들이고, 나는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시간이 소중하고 생각하는 것이 소중하고 내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문학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일까 그래서 문학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 마음 언저리에 뭐가 짓누르는 듯 계속 벅차온다. 이것은 아기가 처음 태어나면 우는 것과 같이 문학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징조일까
그렇게 나는 문학의 배에 합류해 강물의 세월을 역류하며 성장하게 될까
그 뒤로 권태희님의 ‘봄을 품은 효순이의 겨울 이야기’, 김동환님의 ‘나의 길’, 최자희님의 ‘삶은 사람이다 사람은 사랑이다’ 등의 작품들을 더 관람했지만 이것은 나중에 또 다시 글로 풀어내려고 한다.
총 한 시간 동안의 문학 여행이었는데 나는 어디에 다녀온 것인지 싶은 멍한 기운이 가시질 않는다. 마녀의 과자 집에 꿰인 것 같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여행해서인가 싶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앞으로의 날들을 상상하기 어렵고 당장 어느 대학에 어느 과를 갈지만 생각해도 머리가 아프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게 된 것은 앞으로의 나는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것. 왜냐하면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많은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지금 이 순간부터 만들어 나가자 아까운 내 인생, 행복해질 내 인생을!
9월 3일 토요일의 나, 나의 문학일기 첫 번째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