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온
융이 그노시스를 연구: 1918~1926년
융이 초기에 관심을 가진 것은 『죽은 자들을 향한 일곱 가지 설법』이라는 글을 쓰면서 그노시스주의자 바시리데스를 연구. 그노시스주의자들이 무의식 세계와 대결하여 그 내용이나 심상을 다루었다고 생각.
*그만둠: 1) 그노시스주의가 먼 고대의 사상으로 현대와의 정신적 연결고리가 끊어짐
현대인의 관점에서 서양 정신사적 입장을 반성하려는 의도에 부합되지 않음
2) 그노시스주의를 연구할 자료가 한정되었다.
*연금술로 바꿈: 연금술은 그노시스주의의 흐름을 포함하고 있음과 동시에 근대 유럽사상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상.
* 1951년 융은 『아이온』이라는 제목의 저서 간행. 그노시스주의의 심리학적 고찰을 중심으로 한 것. 그노시스주의 연구를 집대성한 것임 아니라 1/3은 연금술에 관한 고찰에 할애됨.
제목과 관계없는 점성술이나 기타 다른 문제들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산만. 귀중한 착상이 들어있다.
* 융의 그노시스주의 연구는 제2 차 대전에 집중. 원시 그리스도교에서 고대 가톨리시즘의 성립에 이르는 과정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로 기능 (유아사야스오: 2011, 194~195)
2. 그노시스주의
그노시스주의(Gnosticism)는 기원 후 1~3세기에 걸친 3백년 동안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 내부에서 일어난 이단운동.
이 시대의 그리스도교는 아직 로마 제국에서 공인받지 못한 채 비합법적인 종교로서 지하 활동을 하는 상태. 명확한 통일적 조직 체계는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일반 철학사에서는 이 시대는 헬레니즘이나 고전 철학 후기로 로마의 지식 계층의 사상으로는 스토아철학이나 신플라톤주의 경향이 지배적. 그리스도교는 이 시대에 자주 탄압을 받으면서 로마의 하층계급 사이에서부터 점차 널리 퍼져나갔다. 당시의 교회의 지도자들은 훗날 교부(churchfathers)라고 불리게 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지식 계층의 사상인 그리스 철학과 대항하는 한편으로 그 사상을 도입하면서 소박한 그리스도교의 교설을 이론화, 그것을 지식인의 비판을 견뎌내는 철학적 교리로까지 만들어 냈다. 이것이 소위 교부 철학이다. 그노시스주의는 이러한 상황 하에서 그리스도교 교계 내부에서 발생한 최대의 분파적 이단사상이라고 평가되어 왔던 것이다.
당시의 그리스도교 세계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동방교회의 지배 영역 (동로마제국령)과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방교회의 지배 영역(서로마 제국령)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스도교 초기에 주목할 만한 교부철학이 전개된 곳은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동방의 교회들이었다. 유럽 세계는 서양 그리스도교의 본류가 된 로마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의 전통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서양의 정신사에서 동방교회를 중심으로 했던 초기 그리스도교의 존재 방식은 부당하게 경시.(예, 동방교회는 요한의 사상에서 출발, 서방교회는 바울의 사상에서 출발)
그리스도교의 발생지는 원래 동방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고대세계에서는 교회나 신도수도 서방보다 더 많았다. 또한 신학의 이론적인 수준도 서방보다 훨씬 높았다. 예를 들어 "삼위일처1" 라든가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고대 그리스도교의 기본적인 교리는 모두 다 동방교회에서 일어난 신학논쟁 중에 생겨난 것이다.
그리스도교와 그노시스주의의 관계는 먼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하여 생겨난 유대교의 헬레니즘화 과정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대인들은 페르시아에서의 해방 후 일찍부터 이 지역으로 이주하여 식민지를 경영하고 있었다. 기원전 3세기에는 이미 그들의 손 으로 구약성서 그리스어 번역(70인 역)본이 만들어졌고, 필론으로 대표되는 유대 사상과 그리스 사상의 교류는 예수 이전부터 벌써 행해지고 있었다. 이 지역을 지배했던 프톨레마이오스왕조의 그리스인들은 로마인들과 달라서 이민족의 종교에 관대했다. 따라서 알렉산드리아에는 오래 전부터 오리엔트의 각 종교들이 유입되었으며 상호간에 교류가 이루어지고 혼합되었기 때문에 사상적인 자극이 많은 장소였다. 그노시스주의는 이러한 동방의 분위기에서 생겨난 습합적인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노시스 사상에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그리스철학, 고대 이집트 종교 등의 각 요소가 혼재되어 있었다. 종래의 견해에서는 그노시스주의가 그리스 철학, 특히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하여 성장한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아 성장.
그노시스주의가 이단으로 생각되었던 직접적인 이유는 구약성서의 권위를 부정했다는 점에 있었다. 또한 그리스 사상의 영향을 지나치게 받은 것이라고 해석했던 것은 그노시주의의 세계관이 영육 이원론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헬레니즘사상, 특히 그노시스주의의 전통은 감각세계를 넘어선 영적 세계(이데아 세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원론적 세계관을 보이기 쉽다. 그러나 그노시스주의 에서는 정통 그리스도교의 사고방식과 비교할 때 극단적으로 영적 세계를 중시하며, 현 세계의 가치를 모두 거부하려고 하는 소위 "반현세적 이원론"(anti-cosmic duallism)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노시스주의는 초기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단순한 이단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측면이 있다. 그노시스주의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은 이미 신약성서 가운데에도 등장하고 있다. (예, 사도행전 8장 마술사 시몬) 또한 요한복음이나 삼위일체론은 정통교리의 범주 내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노시스사상이 포함하고 있는 문제점을 충분히 해명하지 않은 채 초기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밝히고자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노시스주의의 사상적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유아사 야스오: 2011, 198~199)
연금술과 그노시스주의의 관계는 어떠한가?
고대 연금술은 기원후 3~4세기경 그노시스주의의 영향을 받아 이집트에서 확립된 것인데 그리스도교의 국교화 이후 아라비아로 추방되었다가 중세 시대가 되자 슬며시 민중적 이단운동과 혼재되면서 다시 유럽으로 침투되어 들어왔다. 그노시스사상은 원시 그리스도교 시대로부터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한 고대 그리스도교 신학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교 사상의 주변에서 강한 영향을 끼쳐 왔던 사상적 흐름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사상의 흐름은 정신사의 표면에서 자취를 감춘 후에도 민중 신앙의 저변 속에서 그 모습을 바꾸어 가며 끈질기게 그 생명력을 이어 왔으며 중세에서 근세에 이르는 정신사의 전환에서 커다란 역할을 감당했다. 따라서 그 사상을 검토하는 것은 서양정신사를 재검토하고자 하는 이 책의 과제 해결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할 것이다
3. 그노시스연구의 문제점
그노시스주의에 관한 연구는 최근 크게 발전. 1945년 이후 이집트에서 콥틱어로 된 그노시스 문헌이 대량 발견 오늘날에 많은 그노시스 전문가들이 배출.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와 신학자 불투만의 요한복음 해석이 그노시스의 영향이라고 본다.
문헌사학적 연구에서 그노시스주의가 원래는 이단이 아니라 이교였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노시스주의는 원시 기독교와 거의 동시대에 그리스도교와는 무관하게 발생한 다른 종교운동이었고 그 발전의 노상에서 그리스도교와의 교류가 일어나 그리스도교의 요소들이 그노시스주의 안으로 유입됨과 동시에 역으로 또한 그노시스주의의 신화나 개념이 그리스도교의 신학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오늘날 그노시스 학자들은 그노시스주의의 체험적 기반으로서의 “그노시스”(영적 인식)와 역사적 사상으로서의 그노시스주의를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
일반적인 종교적 체험으로서의 그노시스주의는 “선별된 사람들에 의해 보존되어온 신성한 신비에 관한 지식을 의미. 원-그노시스주의(proto-Gnosticism)라고 부른다. 언제 어디서나 출현할 수 있는 종교체험 내지 종교적 세계관의 형식일 뿐이어서 이들 사이에는 어떠한 역사적인인과관계가 없다. 예를 들어 우파니샤드 철학에서부터 인도나 이란의 사상,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 그리스의 플라톤주의나 오르페우스 종교 등 사상적 경향이다.
체험을 기반으로 한 그노시스주의의 특질은 무엇인가?
(1) 반현세적(반우주적) 이원론(anti-cosmic dualism)
세계를 물질적 내지 감각적 차원과 그것을 초월한 정신적 내지 영적 차원의 두 영역으로 나누고, 영적인 차원에 높은 가치를 두는 세계관. 그노시스주의는 천상의 영적 세계의 주재자로서 신약의 빛의 신을 배치하고 물질적 세계의 지배자로서 구약의 신을 배치하는 선악이신론(善惡二神論)을 취한다, 이 점에서 그노시스주의의 우주관은 그리스도교에 비해 확실히 이원적이다.
(2) 인간의 본래적 자기와 지고자(至高者)의 동일성 인식
인간의 육신 밑바탕에는 본래적 자기라고 부를 수 있는 영적 본성이 존재 하고 있으며, 그것이 영적인 세계의 지고한 존재와 통한다고 하는 것이다. 역사적 그노시스주의에서는 신비적인 "영적 인식" 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본래적 자기를 인식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일상에서 본래적 자기는 육적인 신체의 밑바탕에 은폐된 채 잠자고 있어, 인간이 영적 세계 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는 "무지" (아그노시아 Agnodia)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3) 지고자 또는 그에 의해 파견된 자에 의한 인식의 계시
본래적 자기와 영적 체험의 영역을 발견하고 인식해 가는 과정이 영적 인식으로서의 그노시스주의, 즉 원-그노시스적 체험이다. 그래서 그노시스 체험이란 위로부터의 영적 인도에 의해서 망각되어 있던 본래적 자기와의 재통합으로 나아가는 자기인식의 길이다. 역사적 그노시스주의에서는 이러한 생각 위에 그리스도교의 구원자 이념이 유입되어 있다.
(4) 초역사적 문화신화
이와같은 우주관과 인간간이 강화되면 감각적 세계에 있어서의 역사적 사상은 경시되고, 그노시스에 의해서 열려져 보이게 되는 영원한 영적세계의 편재가 중시된다. 그랫 역사적 그노시스주의에서는 그리스도교 교리의 비역사적 내지 신화론적 해석을 중시하고 있다. 그노시스주의 신화는 오리엔트 신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동시에 에로스적인 요소를 중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앞에서의 단순한 설명만으로도 그노시스 사상이 심층심리학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영적 인식이란 무의식 영역의 발견과 탐색을 의미한다. 앞에서 진술한 첫 번째 특징에서부터 세 번째 특징까지는 모두 이 문제와 관계가 있다. 또한 신화학과 심층심리학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네 번째 특징도 동일한 의미 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융의 그노시스 연구는 앞에서 말했던 문헌사학적 연구나 실존철학적 관심에 기초하는 그노시스 연구와는 전혀 관계없이 그러한 연구들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 진행되어 온 것이다. 융의 기본 태도는 그노시스 체험의 의미를 심층심리학적 관점에서 해명함으로써 서양 정신사의 전체성에 전통적 견해에 근본적인 반성을 가하려고 하는데 있는 것이다. (유아사 야스오: 2011, 203~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