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에서 러시아 국경통과1 붉은여우를 보면서2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는 발트해 연안에 위치한 러시아에 속해있는 주이지만 러시아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 면적은 1만5100㎢, 인구는 약90만명이다. 애당토 독일영토였던 칼리닌그라드는 2차대전 당시 러시아군에게 점령되어 러시아 영토가 된 곳이다. 칼리닌그라드는 독일땅이였던 시절에는 쾨니히스베르크로 불리며 상업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또한 독일출신이 세계적인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년-1804년)가 출생하고 사망한 곳으로 독일인의 방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칸트의 무덤은 공교롭게도 러시아 정교성당(독일 루터파교회)에 있다. 특히 칼리닌그라드는 전 세계호박(보석의 일종) 생산량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호박산지며 또한 경제특구로 지정되어 있다.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 프뢰벨 강변의 호텔3 리투아니아에서 칼리닌그라드 호텔까지 약3시간이 소요되어 도착했다.
칼리닌그라드 프뢰벨 강변의 호텔4 칼리닌그라드는 1256년에 건설된 프로이센공국의 수도로 동프로이센의 주도로 독일어로 쾨니히스베르크로 불렀다. 1701년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가 베르린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이곳에서 대관식을 올렸을 정도로 프로이센 즉 독일인의 정신적인 수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차세계대전 후에 소련의 부동항의 필요성으로 전쟁에서 패한 독일로부터 할양받았다. 1946년 지도자의 이름인 미하일 칼리닌의 이름을 이용하여 칼리닌그라드로 명명하게 되었다. 칼리닌그라드 중앙역인 남부역사5
칼리닌그라드 중앙역인 남부역사6 칼리닌그라드의 공원7 미하일 이바노비치 칼리닌 원수동상8 미하일 이바노비치 칼리닌(1875년-1946년)은 러시아의 혁명가이자 소비에트연방의 정치가로 1919년에서 1925년까지 후보정치국원 1925년 정치국원, 1939년에서 1946년까지 국가원수인 소비에트간부회 의장을 역임했다. 칼리닌그라드 브란덴부르크 문9 칼리닌그라드 로스가르텐 문10 칼리닌그라드 도나 문 호박 박물관11
호박 박물관12 호박은 보석으로 여겨져 장식이나 장신구로 쓰이지만 광물은 아니며 특히 속에 벌레가 들어가 있는 호박은 아주 귀하고 값이 고가이다. 발트해 연안의 3기층(칼리닌그라드부근)이 가장 유명한 산지로 단괴상 역상을 나타내며 밀황색.납황색.적갈색으로 투명또는 반투명하다. 발트해에서 투명하고 아름다운 것이 산출되며 파이프나 장신구 등을 만드는데 귀중하게 쓰였다. 호박을 해수보다 가볍기 때문에 해안의 모암으로부터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예전에는 바다속에 들어가서 건져냈다고 한다. 호박 박물관13 호박 박물관14 호박 박물관15 호박 박물관16 호박 박물관17
호박 박물관18 호박 박물관19 호박 박물관20 호박 박물관21 호박 박물관(금관)22 호박광산23
1256년에 건설된 도나 문과 호박 좌판대24 프로이센공국의 옛수도인 칼리닌그라드25 히틀러 광장(한자광장)의 분수26 독일시절 쾨니히스베르크의 중심광장이던 한자 광장으로 나치독일시절 때는 아돌프 히틀러 광장으로 불렀다. 전쟁 후 이곳을 해방한 것을 기념해 전승기념 광장으로 바뀌었다. 소련복속이후 원래는 레닌동상이 있던 광장이였는데 2005년 쾨니히스베르크 건설 750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손을 본 것이다. 광장 뒷편으로 2006년도에 완성된 러시아 정교회인 70m나 예수구원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히틀러 광장(한자 광장)의 바닥27 2005년 쾨니히스베르크 건설 750주년을 기념해서 전승기념광장으로 바뀌었다. 아돌프 히틀러 광장의 전승기념탑(한자광장.전승기념광장)28 아돌프 히틀러 광장(전승기념 광장)29 전승기념 광장30 칼리닌그라드 도심의 분수31 칼리닌그라드 정부청사32 칼리닌그라드 1921년 건축된 소비에트전당 건물33 소비에트전당 건물34 예수구원교회(러시아정교회)35 히틀러 광장 뒷편에 2006년도에 완성된 70m나 되는 높이의 러시아 정교회(예수구원성당)가 자리하고 있다. 한편으로 외부의 화려한 이미지와는 달리 내부는 소박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예수구원교회의 외관과 내부 주제단의 신도들36 예수구원교회37
예수구원교회(성화)38 (2012.0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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