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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게 뜬 초승달이 낫에 벤 듯 했다. 교태전에 들이닥친 그림자에 상궁과 나인들이 수(秀)의 앞을 지키고 섰다. 자신의 피투성이 손을 바라보던 수가 거칠게 열리는 문에 고개를 들었다.
“이곳은 중전마마의 처소다!! 안 된다! 이놈들!! 안‥”
순식간에 잘린 상궁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미처 감기지 못한 눈이 수에게 닿아있었다. 죽어가는 상궁과 나인들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수는 그 눈을 한참이고 바라보았다.
“중전이 화빈을 죽였소?”
살육의 시간이 끝나고 그가 흑색의 용포를 휘날리며 제게 올 때까지 한참동안.
“대답 하시오.”
예법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처럼 수는 자리에 앉아 빤히 백현을 올려보았다. 생살을 뚫고 뼈를 가르던 칼날의 느낌이 아직도 손끝에 진득하게 남아 있었다. 떨리는 피투성이의 손을 감추며 수는 답했다.
“전하께서 소첩에게 단검을 주셨지요. 악행이 도를 넘으니 자결하라 명하셨습니다. 그 길로 곧장 화빈의 처소로 가 전하께서 주신 단검으로 그 계집을 죽였습니다. 상궁들이 말릴 새도 없었지요. 그 계집이 소첩에게 고개를 숙이자마자 곧장 목뒤에 단검을 찔러 넣었으니.”
백현의 일그러지는 얼굴을 수는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두 눈에 담았다.
“어찌, 죽였소.”
“소첩이 자결하면 그 계집이 교태전의 주인이 되겠지요.”
“어찌,”
“질투심에 눈이 돌아 그랬나이다.”
“중전,”
“지아비 된 전하를 죽일 수 없으니 그 계집을 대신 죽였나이다.”
“중전! 제발‥”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기에 돼지우리에 죽은 계집을 버렸나이다.”
“수야!!!”
“…….”
“제발, 제발‥”
주저앉은 백현이 숨을 헐떡였다. 벌게진 두 눈에 말간 눈물이 차올랐다.
“어찌 우십니까?”
“수야, 수야‥”
“화빈이 가엾어 우십니까?”
무너져 우는 일국의 지존에게 수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악담을 날렸다.
“죽은 화빈의 몸에 조금이라도 더 살이 붙어 있을 때 돼지우리에나 가보십시오.”
헐떡이며 울던 백현이 단숨에 눈물을 지웠다. 수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몸을 일으켰다. 피바다가 된 교태전을 돌아보며 얼어붙을 듯 서늘한 얼굴이 되어 추상같이 호령했다.
“중전을 교태전에 구금하라! 그 누구도 들이지 말라! 명을 어긴 자는 즉살하라!”
저래야 내 전하이시지. 수가 백현에게서 미련이 가득 담긴 시선을 거두었다. 창문 밖을 돌아보았다. 낮게 뜬 초승달이 낫에 벤 듯 했다. 피투성이의 손으로 숨겨두었던 단검을 꺼내 들었다. 허망하고 허망한 생이었다. 전하의 명에 따라 자결하는 것으로 끝을 내야 했다. 수가 단검을 높이 처 들었다.
“전하!!!”
백현을 부르며 호위들이 수에게 칼을 겨누었다. 수의 심장에 닿지 못 한 칼날을 쥔 백현의 손에서 뚝뚝 피가 떨어졌다. 백현의 손짓에 호위들이 물러섰다. 수가 원망스레 백현을 바라보았다.
“더는,”
원망에 잠긴 수의 얼굴을 알면서도 백현은 모르는 척 했다. 제 살이 찢기는데도 백현은 기어코 수에게서 단검을 빼앗아갔다.
“너를 위해 살지 않겠다.”
아픈 말을 남기고 피를 뚝뚝 흘리며 백현이 돌아섰다. 호위들이 뒤를 따랐다. 교태전의 문이 닫혔다. 수의 곁에는 죽음 같은 고요만이 남았다. 우두커니 앉아있던 수의 어깨가 떨렸다. 눈물 한 방울이 수척한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전하께서 언제 저를 위해 살아주시긴 했나이까. 속이고 노리개로 삼으셨지.
혀끝에 엉킨 꽃
1 , 2
연우(煙雨)가 내린다. 뿌옇게 쏟아지는 비에 까만 밤이 더 혼탁하다. 처마에서 떨어진 빗줄기가 꽃순의 어깨를 적신다. 주춧돌 옆에 바짝 붙어 선 꽃순이 마당 가득 일렁이는 횃불을 초조하게 바라본다.
아씨……,
“오늘 밤 안에 반드시 찾아서 데려 오너라. 도성에 풍문이 돌지 않게 은밀히 움직여야 한다.”
대청마루에 어엿이 선 정부인(貞夫人) 서씨의 매서운 명령에, 횃불을 든 하인들이 일제히 흙탕물을 튀기며 대문 밖으로 뛰어 나간다.
이조 판서 유세원의 막내 여식 수(秀)가 혼례를 사흘 앞두고 사라졌다.
* * *
“아파! 아, 엄마!!!”
소란으로 인해 텅 빈 행랑채(行廊─)의 뒤뜰로 우악스레 꽃순을 끌고 온 김씨 부인이 딸을 추궁하기 시작 한다.
“니는 알제? 아씨 어디 갔어?”
“몰라. 모르는 건 모르는 거야.”
“꽃순아!”
“입을 찢어도 몰라. 참말이야!”
입으로는 잘도 거짓을 말하면서, 꽃순은 손으로 자꾸만 치맛단을 문지른다. 아무리 엄마라도 아씨를 저버릴 순 없다. 의지를 다지듯 입술을 앙다문 꽃순을 보며 한숨짓던 김씨 부인이 나지막이 꽃순을 부른다.
“아가.”
“…….”
“우리가 왜 사람이냐?”
“사람은 무슨! 노비가 언제부터 사람이야? 우리가 무슨 사람이야? 개! 소! 돼지지!”
“이년아!”
등을 때리는 김씨 부인의 따가운 손길에 꽃순이 팔짝 뛴다. 김씨 부인을 흘겨보던 꽃순의 두 눈에 금세 눈물이 고인다. 김씨 부인이 그런 꽃순의 손을 덥석 붙잡는다.
“종살이 하는 다른 것들 봐라. 그게 어디 사람 사는 꼴이든?”
“…….”
“사람으로 난다고 다 사람인 게 아니야. 사람으로 대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사람인 것이지.”
“…….”
“아씨가 우리한테 어떻게 했냐. 어떻게 대해주디?”
“‥친엄마 대하듯이,”
“그래.”
“친자매 대하듯이 살뜰하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우리를 사람으로 살게 해 준 은혜를 갚아야지. 아씨 도와드려야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꽃순의 얼굴이 울상이다. 마음이 다급한 김씨 부인이 붙잡은 꽃순의 손을 흔들며 언성을 높인다.
“그렇게 봐놓고도 여태 대감마님, 안방마님이 어떤 분이신지 몰러? 아씨 사람대접 안 하는 거 봐놓고도 몰러? 잡혀오면 경을 친다니까!”
“…….”
“아씨 어디로 가셨냐?”
이러다 아씨에게 정말 큰 일이 나는 건 아닐까. 겁을 먹은 꽃순이 끝끝내 눈물을 뚝뚝 떨군다. 그래도 말할 수 없다. 도리어 힘을 주어 김씨 부인의 손을 부여잡은 꽃순이 엉엉 울면서 고개를 젓는다.
“몰라! 몰라! 엄마, 엄마아. 우리 아씨 그냥 보내주자.”
“아가.”
“아씨가 너무 가엾잖아. 돌아와서 무얼 해. 이 집은 원래부터 아씨한테는 나락인데. 혼례 올리고 시집가도 아씨 맘이 성하겠어? 아씨가 그 도령한테 온 마음을 다줬단 말이야. 그냥 그 도령이랑 도망가게 내버려두자. 아씨 좀 속 편하게 살게. 그래도 되잖아. 아씨는 그래도 되잖아.”
“어쩌려고 이리 어리게 굴어.”
“엄마‥”
“이리도 어리석어서는‥”
수를 낳은 건 정부인(貞夫人) 서씨였지만, 수에게 젖을 먹이고 여태껏 길러 온 건 유모인 김씨 부인이었다. 신분은 천지 차이였으나 김씨 부인에게 수는 딸인 꽃순과 매한가지인 것이다. 자식을 이리 허무하게 떠나보내는 어미가 어디 있으랴. 적어도 그 도령이 어떤 이인지는 알아야 떠나보내는 여식을 향한 많고 많은 시름들 중 하나는 덜 수 있을 터.
“꽃순아. 어미가 가서 보고, 그 도령이 어떤 이인지, 아씨와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보고. 그러고 아씨 멀리가게 도와드릴 라니까.”
“…….”
“아씨는 어디 있냐?”
“…….”
“아가.”
“‥참말이지?”
“그럼.”
훌쩍이던 꽃순이 망설임 끝에 입술을 달싹인다.
“수락‥산에, 산호 아재가 살았던‥”
꽃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짚신도 벗지 않고 행랑방으로 뛰어 들어간 김씨 부인이 장(樟)을 뒤적거려 무엇인가를 꺼내 든다. 그간 알뜰살뜰 모아둔 삯과 수가 선물한 장신구들을 모아 둔 자그마한 함이다.
함을 들고 행랑방을 나온 김씨 부인의 뒤를 꽃순이 따라 온다.
“엄마! 엄마! 나도 같이 가!”
따라오는 꽃순을 붙들어 세운 김씨 부인이 다정히 타이른다.
“아가, 너는 여기 있어. 괜히 안방마님 눈에 띄어서 불똥 튀지 않게 어여 들어가. 어여.”
“나도 같이 가고 싶은데.”
“엄마 후딱 다녀올 테니까.”
그 길로 돌아서려던 김씨 부인의 발걸음이 더디다. 우는 꽃순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혀서다. 다시 돌아와 괜스레 꽃순을 끌어안은 김씨 부인이 그 등을 토닥인다.
“울지 말고. 무슨 일이 있어도 굳세게. 알았지?”
“‥알았어.”
“비 그만 맞고 어여 들어가.”
등이 떠밀린 꽃순이 마지못해 행랑채 쪽으로 걸음을 뗀다. 디딤돌을 밟고 쪽마루에 올라 선 꽃순이 뒤를 돌아본다. 저만치 멀어져 다시금 꽃순을 바라 본 김씨 부인이 손을 흔든다.
어여 들어가. 비 맞지 말고. 울지 말고. 무슨 일이 있어도 굳세게. 알았지?
연우(煙雨)는 그치지 않는다. 뿌옇게 쏟아지는 비에 까만 밤은 여전히 혼탁하다. 처마를 타고 흘러내린 빗방울이 꽃순의 눈두덩에 떨어져 눈물처럼 추락한다. 어두운 행랑방 안으로 들어선 꽃순이 더디게 분합문을 닫는다. 멀어져가는 김씨 부인의 뒷모습이 뚜렷한 어둠에 잠긴다.
* * *
아무도 없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어째서. 수는 이 상황을 도무지 해득할 수 없다. 쫓기는 사람처럼 뒷걸음질 친 수가 마당에 우두커니 멈춰 선다. 텅 비어버린 곳에 머무른 시선이 역시나 공허하다.
‘나와 함께 가주련?’
‘어디로요?’
‘도성만 아니면, 네가 원하는 곳 어디로든.’
함께 가자던 그 속삭임이 꿈이었을까.
* * *
수락산, 이판 댁의 외거 노비인 산호가 살았던 집에 도착한 김씨 부인은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다. 연우(煙雨)에 흠뻑 젖은 수가 그 곳에 있었다. 함께 도망친다던 도령은 오간데 없이. 홀로. 비바람을 견뎌내는 여린 몸이 처연히 떨렸다. 빗물을 잔뜩 머금은 봇짐이 수의 손끝에서 축 늘어져 있었다.
간데없는 버림받은 여인의 초상(肖像)이다.
“아씨‥”
그 부름조차 들리지 않는지 수의 눈길은 여전히 텅 비어 버린 집에 닿아 있다. 애끓은 김씨 부인이 가슴을 친다. 연심(戀心)이 뭔지 알려주지 말았어야 했다. 벽옥가락지를 봤을 때 어떻게든 그 도령과 수의 관계를 끊어 내야 했다. 남은 삶을 어찌 견디려고 첫정을, 저리도 깊이. 첫정을, 저리도 지독하게. 저 마음을 어찌 감당 하려고.
“돌아가요, 아씨.”
수의 앞으로 다가간 김씨 부인이 수의 냉랭한 손을 따스하게 잡는다. 제 부모에게 미움 받는 것으로 모자라, 유모인 김씨 부인마저 자신을 미워하게 될까 봐 늘 눈치를 보던 수가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새파랗게 질린 수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오실거야.”
“안방마님께서 사람을 풀어서 아씨를 찾고 있어요. 붙잡히기 전에,”
“함께 가자고 하셨어.”
“‥먼저 몰래 집에 숨어들어서 어떻게든 변명을,”
“멀리 떠나자고 그러셨어.”
“가요. 어여 가요, 아씨.”
거세게 잡아끄는 김씨 부인의 손을, 수가 미친 사람처럼 뿌리친다. 그러다 놓쳐버린 봇짐이 흙탕물 위를 뒹군다.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은 수가 더러워진 봇짐을 허겁지겁 주워 품에 꼭 안아 든다. 그 미련한 모습에 김씨 부인이 결국 언성을 높인다.
“아씨!”
“모든 걸 다 잃어도!!”
“…….”
“나를 얻으면 다 얻은 것이라고‥”
수의 눈길이 공허한 허공에서 길을 잃는다. 이제 수의 얼굴을 적시는 건 빗물보다 투명한 눈물이다. 넋을 놓은 수의 앞에 주저앉은 김씨 부인이 손을 뻗어 수의 눈물을 훔친다.
“외딴 섬이든, 깊은 산중이든‥”
“…….”
“농사를 짓든, 밥을 빌어먹든‥”
“…….”
“나만 곁에 있어 주면 후회하지 않는다고,”
“…….”
“나만, 나만 있으면‥”
그 말들을 얼마나 되새겼으면. 얼마나 철석같이 믿었으면. 두서없이 중얼거리던 수가 봇짐을 끌어안은 채 휘청거리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갈래. 나 가야 돼. 가야 돼. 가야 돼, 유모.”
“아씨.”
“갈 거야. 갈래. 갈래. 나 갈 거야.”
“어디로요?”
한 걸음을 겨우 내디딘 수가 굳은 듯 멈춰 선다. 어디로 가야 하지. 어디로. 도령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그 도령이 어디 사는 뉘신 지는 아시구요?”
수는 알지 못 한다. 도령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선(洗)이라는 이름 뿐. 그마저도 관명(官名)이 맞는지, 혹은 자(字)나 저처럼 아명(兒名)은 아닐지 알지 못 한다.
청수리 숲에서 우연히 만나, 가출을 해 갈 곳이 없다는 도령에게 수는 이곳을 일러 주었다. 그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서로의 집안은 끝까지 묻지 않았다. 그저 한 소녀와 한 소년이 만나 서툴게 키워 낸 연심(戀心)이었다.
“그 도령이 아씨를 연모한다고 하시던가요?”
수는 그런 말을 들은 적 없다. 말로 듣지 못했다면, 우리를 감싸던 그 애틋했던 공기마저도 모두 거짓이 되는 걸까. 여물지 못 한 수의 어린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맨다.
“도령이 맞는 건 확실하구요? 그 도령이란 자가 아씨께 신분을 속인 건 아니고요?”
제 물음에 하나도 답하지 못 하는 수를 보며 마음을 굳힌 김씨 부인이 다시 수를 잡아끈다.
“돌아가요!”
“‥오실거야.”
“누가 감히 이조판서 댁 막내 여식을 데리고 도망치겠어요!”
“아니야! 그 분은 내가 누군지 모르셔!”
“그럼 그저 노리개로 이용당한 겝니다!”
“아니, 아니야‥”
“저 혼자 도망친 거예요! 저기 텅 빈 집을 보고도 모르시겠어요?”
한참의 실랑이 끝에 수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옥벽가락지가 벗겨져 떨어진다. 허망하게 떨어진 가락지를 내려다보던 수가 가슴을 부여잡는다. 얹힌 듯 목인 멘다. 이내 채울 수 없는 허전함을 견디지 못한 수가 목 놓아 울기 시작한다.
“아씨는 누군지도 모르고 신분도 불확실한 사내의 노리개가 된 것이에요.”
부러 모진 말을 내뱉은 김씨 부인의 눈에 금세 눈물이 차오른다. 이렇게라도 저 인연을 끊어내야 한다. 가슴이 찢어지더라도 단칼에.
“약조 하나 지키지 못하는 사내에게 아씨의 인생을 걸지 마세요.”
수를 끌어안은 김씨 부인이 수의 떨리는 등을 잔잔하게 토닥인다. 아씨가 이리도 아파하시니 이 어미의 마음은 이미 갈가리 찢기고 헤져 넝마가 되었답니다. 신분의 차이로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그렇게 수를 달래던 김씨 부인이 어슴푸레 다가오는 불빛을 발견하고는 얼른 수를 품에서 떼어낸다. 안방마님이 아씨를 잡아오라 푼 하인들이 벌써 아씨를 쫓아 여기까지 온 것일까. 수를 제 뒤로 감춘 김씨 부인이 다가오는 불빛을 주시한다. 어쩐지 불길하다. 막무가내로 수의 꽃신 한 짝을 벗겨낸 김씨 부인이 길의 반대편으로 있는 힘껏 꽃신을 던진다. 그리고는 잠겨 있던 광의 문을 열어 수를 밀어 넣는다.
“유모‥”
“소리 내지 마세요, 아씨.”
단단한 눈빛으로 수를 안심시킨 김씨 부인이 광의 문을 닫고 문에 쇠를 채운다. 문틈에 바짝 얼굴을 붙인 수가 그 틈으로 밖을 바라본다. 의연히 앞으로 나아가는 김씨 부인의 뒷모습이 어둑히 보인다.
가까이 드리운 횃불에 눈살을 찌푸린 김씨 부인이 이내 두 명의 사내를 눈에 담는다. 두 사내는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뉘시오?”
안방마님이 보낸 하인들이 아니다. 허면 누구지. 누군데 이 시각에 이곳을 찾아 온 게지. 수를 찾을 수 없게 길을 막아선 김씨 부인이 다시 물었다.
“뉘신데‥윽!”
검이 순식간에 김씨 부인을 베었다. 쓰러지는 김씨 부인의 뒷모습을 황망히 바라보던 수가 본능적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소리 없는 비명이 아우성친다. 검 날을 타고 김씨 부인의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진다. 울컥 피를 토해낸 김씨 부인이 맥없이 고개를 돌렸다. 눈길이 닿는 곳에 수가 숨어 있는 광이 있었다.
아씨…….
* * *
엄마와 아씨는 어떻게 된 걸까. 행랑방에서 초조하게 발을 구르던 꽃순이 분합문을 열고 손바닥이 하늘로 향하도록 손을 뻗는다. 비가 그쳤다. 행랑방을 빠져 나와 쪽마루에 우두커니 선 꽃순이 비 그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엄마 언제 와.”
연우(煙雨)가 그친 후 자욱하게 낀 밤안개 사이로 밤하늘의 꼬리별 하나가 진다.
* * *
엄마. 수는 꼭 한 번 김씨 부인을 그렇게 소리 내어 불러보고 싶었다. 유모가 아니라 엄마라고. 꽃순에게는 당연한 부름이 수에게는 늘 사무치는 것이었다.
“엄마‥”
죽으면 안 돼. 나가야 해. 나가서 의원을 불러와야 해. 이렇게 보낼 순 없어. 이성을 잃은 수가 광의 문을 붙잡은 것과 김씨 부인이 사내 중 한 명의 바짓단을 붙잡은 것은 동시에 일어난 일이다. 김씨 부인이 수를 향해 처연히 고개를 저었다. 소리 내지 말라고. 그러지 말라고. 열일곱 해를 길러 왔으니 김씨 부인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수가 어떻게 행동할지 알았다.
바짓단이 붙잡힌 사내가 거칠게 김씨 부인을 걷어찼다. 검에 베인 상처가 벌어졌다. 김씨 부인이 다시 울컥 피를 토했다. 그러면서도 끈질기게 사내의 바짓단을 붙잡았다. 수가 엄한 짓을 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시선을 돌리려는 것이었다. 발길질을 당하면서도 계속해서 고개를 젓는 김씨 부인을 문틈으로 바라보며 수는 차라리 자신이 죽었으면 했다. 허나 김씨 부인의 마음을 알기에 나설 수도 없었다.
다시 검을 뽑아든 사내가 기어코 김씨 부인의 가슴에 검을 꽂았다. 그 순간조차도 김씨 부인은 고개를 저었다. 변함없이. 흐트러짐도 없이. 소리 내지 말라고. 그러지 말라고. 살을 뚫었다가 뽑혀 나가는 검의 형형함과 낭자한 선혈에 수는 주저앉았다. 이건 나락이다.
“여기!”
꽃신을 발견한 살수 하나가 휘파람을 불어 신호를 보낸다. 김씨 부인을 죽이고 광으로 향하던 살수가 발걸음을 돌린다.
“서둘러 찾아야 한다. 흔적을 지워야 해.”
활에 불을 붙인 사내들이 초가삼간에 불을 지르고 사라졌다. 불길이 더디게 번지기 시작했다. 독한 연기가 주변을 휘감았다. 쇠가 채워진 광의 문을 향해 피투성이의 김씨 부인이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불길 속으로 기어 오기 시작했다. 제정신으로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다. 수는 자신이 천벌을 받나보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늘 말씀 하신 것처럼 쌍둥이인 오라비를 잡아먹고 계집인 자신만 살아남은 천벌을. 그런 주제에 감히 행복을 꿈꾸며 도령과 도망치려 한 것에 대한 천벌을.
이게 천벌이라면 차라리 번개를 내리 꽂아 나를 죽여주기를.
* * *
광의 문이 열리자마자 수는 김씨 부인을 끌어안고 불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몸부터 피했다. 아무리 틀어막아도 피가 멎지 않는다. 얼른 가서 의원을 불러오려 하는데 김씨 부인이 수의 손에 무엇인가를 쥐어 준다. 자그마한 함이다. 수가 함을 열었다. 자신이 선물한 장신구와 돈이 들어 있었다.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장신구를 왜‥”
“…….”
“이 돈을, 왜‥”
“아씨 노잣, 노잣돈에, 보태라고‥”
“…….”
“어미가, 어미가 돼서‥이런 거라도‥”
가슴이 찢겨 나가는 슬픔이었다. 수가 정신없이 김씨 부인의 온기를 찾아 얼굴을 매만졌다.
“아씨, 아씨랑 꽃순이랑 혼례를 올리는 걸 보고 싶었는데‥”
“아니야, 아니야, 엄마, 엄마‥”
“수야……,”
“엄마, 엄마‥”
“꽃순이를, 잘‥”
김씨 부인의 당부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김씨 부인이 죽을 리 없다고 고개를 젓던 수가 결국 김씨부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가여워서 어떻게 눈을 감을꼬.”
잦아드는 숨소리에 수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아가…”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소리다.
* * *
하인들에게 발각된 수가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만신창이로 끌려왔다. 자신의 어머니인 정부인 서씨를 보자마자 울컥 치미는 눈물을 참으며 수가 입을 열었다.
“어머니 유모가‥”
뺨을 맞았다. 한 대로 끝나지 않았다. 수가 바닥에 쓰러질 때까지 정부인 서씨가 모질게 수의 뺨을 때렸다.
“너 때문에 혼사가 물 건너갔다! 꼴도 보기 싫다! 치워!”
넋이 나가 바닥에 쓰러진 수를 하인들이 부축해 끌고 갔다. 방에 가둬지려는 수의 앞을 꽃순이 가로 막았다.
“아씨 우리 엄마는요?”
“비켜!”
하인에게 밀쳐진 꽃순이 비명처럼 수를 불렀다.
“아씨!”
지독히도 긴 밤에 수는 정신을 놓았다.
* * *
“아씨! 눈 좀 떠 봐요!!”
일어나면 그 모든 일이 꿈이기를 수는 간절히 바랐다.
“아씨!!!”
울부짖는 꽃순의 부름에 수는 눈을 떴다. 하인들을 용케도 뚫고 들어온 꽃순이 수를 붙잡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우리 엄마! 우리 엄마를 어떻게 모른다고 해요? 안방마님이 그리 시키셨대요! 관군들이 물으면 이 집 노비가 아니다 하라고! 우리 엄마 관군들이 데려갔어요, 아씨. 내가 딸인데. 우리 엄마 딸인데. 내 손으로 묻어는 줘야죠. 내 손으로 묻어는 줘야죠‥”
무슨 정신으로 걸음을 떼었는지도 모른다. 막무가내로 부모의 방에 들이닥친 수가 전시되어 있던 아버지의 장검을 빼내 제 목에 겨누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유모 데려오세요. 묻을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 안 하시면 죽겠습니다. 죽어서도 안 된다면 살아서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일이라면 뭐든 할 것입니다.”
평소에는 부모의 기침소리도 무서워 안방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던 수였다.
“돌려주세요.”
삶을 포기한 자만이 내뿜을 수 있는 독기였다.
* * *
수는 꽃순이와 함께 김씨 부인의 무덤 앞에 섰다. 하필이면 꽃순이와 같은 해에 태어나 젖을 뺏어 먹고 사랑을 뺏어 먹고 결국은 목숨까지 뺐어갔다. 죄책감이 수의 목을 졸랐다.
“내가,”
“아무 말 마세요.”
김씨 부인의 유언처럼 꽃순이는 울지 않았다. 의연하게 수의 손을 잡았다.
“다 아니까.”
이제 세상에 아씨의 편은 자신뿐이었다. 지켜드리리라, 굳세게 마음을 먹으며 수를 부둥켜안았다. 울지 않기로 했는데 수를 부둥켜안으니 눈물이 났다. 서로를 부둥켜안은 두 사람이 엉엉 울었다.
* * *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 초가삼간에 남은 건 재 뿐이었다.
도령을 만나지 않았다면. 연심을 품지 않았다면. 혼례를 앞두고 도망가지 않았다면. 유모가 나를 찾아 온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일도 없었겠지. 유모의 말이 맞았다. 연심에 빠져 눈이 먼 나는 신분도 알 수 없는 사내의 노리개가 되어 농락당하다 버려졌다. 살수들은 이곳의 흔적조차 지우려 했다. 살수들은 또한 나를 노리고 있었다. 나를 찾았다면 유모를 죽인 것처럼 나를 죽였겠지. 누구의 뜻일까. 이 장소를 알고 있는 사람은 나와 도령, 꽃순이 뿐이었는데.
불가해한 이 모든 일들의 의문점을 등 뒤에 남겨놓은 채 수는 황급히 초가삼간을 지나 걸음을 재촉하며 산을 내려갔다. 그런 수를 바삐 따라가던 꽃순이 재속에 파묻혀있던 옥벽가락지를 주워들었다. 언제부턴가 아씨의 손에 끼어져있던 것이었다. 그 도령이 준 것이라며 아씨는 활짝 웃었었다. 수를 부르려던 꽃순이 가락지를 숨겼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야만 아씨는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수를 따라 잡은 꽃순이 말을 건넸다.
“왕이 바뀌었답니다. 대감마님께서도 큰 공을 세우셨대요.”
“그러니.”
“세상이 변하려나 봐요.”
왕 같은 건, 세상 같은 건 어찌 되도 좋았다. 오직 버석한 후회만이 씁쓸하게 수의 입 안을 맴돌았다.
* * *
겨울이 지나고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 다시 가을이 왔다. 수는 그 날 이후 이유모를 긴 병을 앓고 있었다. 잘 있다가도 눈물이 터져 나오는가 하면 한 번 터진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불면은 일상이 되었고 다시는 그 어떤 사소한 행복도 바라지 않게 되었다.
“금혼령이 내려졌다.”
아버지인 이판, 유세원과는 데면데면했다. 사실은 증오한다는 표현이 옳았다. 수는 속마음을 숨긴 채 아버지 앞에 앉아 있었다.
“네가 중전이 될 수 있겠느냐?”
첫째 딸은 이미 죽어 땅에 묻혔고 둘째 딸과 셋째 딸은 이미 혼인을 했고 남은 것이 수뿐이었다.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죽고 계집인 수만 살아남았다. 미덥지 않고 한 번도 마음에 찬 적 없는 막내딸이었지만 틀림없이 해내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걸 불태워주마.”
이판이 수에게 내민 건 꽃순이의 노비문서였다.
* * *
“아씨! 처녀단자 올리신다면서요? 병환이 깊어 안올리실 줄 알았는데.”
꽃순이를 찾아 마당을 헤매던 수를 꽃순이 먼저 발견하고 달려왔다. 그 날 이후 생기를 잃었던 수의 얼굴이 전과는 달리 밝았다.
“이리 앉아 봐. 마음에 두는 사내가 있니?”
“왜요?”
“왜긴. 너 혼례 올려 주려고 그러지.”
“아이참. 아씨도 안 올린 혼례를 제가 먼저요?”
“아버지께서 조만간 네 노비문서를 없애 주실 거다. 그러니 양인 사내를 만나.”
꿈을 꾸는 듯 행복해 보이는 수의 얼굴이 너무 오랜만이라 꽃순이는 수의 이야기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수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땅도 주고 집도 줄 거야.”
“아씨 웃는 얼굴 정말 오랜만에 봐요.”
“유모랑 약속 했거든. 너를 잘 돌봐 주기로.”
눈물을 글썽이는 꽃순이의 손을 수가 꼭 붙잡았다.
“너만 행복하면 돼.”
나는 뭐든지 할 거야.
* * *
왕과 사냥을 떠났던 이조판서 유세원이 영의정 도권과 함께 돌아왔다. 아버지를 마중 나왔던 수가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아무리 일인지하만인지상의 위세 높은 영의정이라지만 그에게는 수를 더더욱 어렵고 불편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처녀단자를 올리신다고 들었습니다.”
바로 그의 하나뿐인 아들이다.
“우연히 들은 것일 뿐 일부러 알아 낸 것은 아니니,”
“괜찮습니다.”
“그리웠습니다.”
“도련님,”
“그리 쳐다보면 부끄럽습니다.”
“도련님께선 저를 빤히 잘도 보시면서.”
“내가 그랬습니까?”
자각하자 자신을 쳐다보지도 못하는 경수의 모습에 수의 얼굴에 실낱같은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수는 경수의 다음 말에 금세 얼굴에 웃음을 지워 버렸다.
“금혼령이 끝나면 나와 다시 혼인해 달라 청할 생각인데.”
“…….”
“도망가시려거든 미리 언질을 주세요.”
혼례를 사흘 앞두고 수가 도망쳐 버린 탓에 이미 깨진 혼사였다.
“다시 기다릴 준비를 할 수 있게.”
수가 버린 사내는 변함없이 같은 자리에서 수의 마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어딜 다녀와?”
먼저 집으로 돌아가던 경수가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전하!”
왕이 사냥을 다녀온 그 차림 그대로 담장 위에 앉아 생글생글 웃으며 경수를 내려 보고 있었다.
“내가 내리는 관직을 언제 받을 생각이냐.”
“호위 하나도 없이 이 무슨,”
“그러니 궁에 네가 있어야겠다.”
“술동무가 필요하신 건 아니고요?”
“네 아비와 이판 때문에 궁에 믿을 놈이 하나 없다.”
“전하,”
“거기다 금혼령. 중전을 들이라.”
담장에서 뛰어내린 왕이 경수의 앞에 섰다.
“네 누이도 간택에 올 테지. 네 아비에 네 누이가 중전이라.”
순식간에 서늘해진 얼굴로 왕이 경수의 아픈 부분을 쿡쿡 찔렀다.
“다음엔 네가 왕이 되겠구나.”
“전하!”
당황한 티가 그대로 나는 경수의 얼굴을 바라보던 왕이 웃음을 터뜨렸다.
“농이다. 어찌 매번 속아?”
“다시는 그런 말씀 마세요.”
“술이나 마시러 가자.”
“결국 술동무입니까.”
왕이 경수의 어깨에 팔을 휘감았다. 경수는 투덜대면서도 왕을 따라 나섰다. 왕이 세상에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경수였다. 자신이 대군이던 시절부터 왕이 된 지금까지 유일하게 변하지 않고 곁은 지킨 이는 경수뿐이었다. 경수가 원하기만 한다면 경수의 아비를 끌어내리고 영의정 자리에 앉힐 수도 있었다. 그래서 한 말이었다.
“간택일에 너도 오거라. 마음에 드는 여인이 있다면 하나쯤은 너에게 주지.”
그 말에 충신이자 유일한 동무가 순간 떠오르는 수의 얼굴에 어떤 불충한 마음을 품는 줄도 모르고.
“전하,”
“옛날처럼 아명으로 불러.”
“…….”
“선(愃)이라고.”
왕, 백현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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