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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넬 앱솔루션
1
1.
남자는 오늘 아주 운이 좋았다. 임무를 수행하다가 일반인 여자 아이 하나를 불 태워 죽인 사건에서 집행 유예 판결을 받은 것이다. 센티넬과 관련 된 판결만 전담하는 센티넬 법원은 모든 센티넬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리는 성향이 있었다. 센티넬 하나, 하나가 국가의 소중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울부짖는 피해자의 아버지를 비웃으며 찾은 바에서는 살면서 본 여자들 중 가장 아름다운 여자까지 만났다. 남자는 무슨 무용담이라도 되는 양 임무 중에 일반인인 여자 아이를 죽인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사실은 그 건물에 여자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까지.
그러니까 남자는 오늘 아주 운이 좋았다. 여자와 함께 바를 나서며 달콤한 하룻밤의 꿈에 젖어 있었다. 택시를 잡아 올라타자마자 남자의 목을 끌어안은 여자가 저돌적으로 입을 맞춰왔다.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 한 자극이었다. 그러나 남자의 황홀경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심장이 쥐어뜯기는 고통과 함께 혈관을 타고 온 몸에 흐르던 힘이 쭉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남자는 오늘 아주 운이 나빴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때 상황은 이미 끝나 있었다. 여자는 기절 한 남자를 툭 밀어냈다. 그리고는 과일향이 나는 풍선껌을 꺼내 입에 쏙 넣었다. 파이어 네트로의 능력을 흡수한 여자의 온 몸이 홧홧했다.
“뜨거워서 짜증나.”
여자의 말에 택시의 운전석에 앉아있던 남자가 뒤를 돌아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손수건을 꺼내 뒷자리로 던졌다.
“닦아. 립스틱 다 번졌어.”
“김종대. 나 이제 돈 그만 벌까?”
“고양이가 츄르 끊는 소리하네.”
그게 무슨 소리람. 뚱한 얼굴을 한 채 손수건으로 입술을 벅벅 문지른 여자가 창문을 열고는 얼굴을 반쯤 내밀고 분홍색 풍선껌을 푸 불었다. 분홍색 구에 갇힌 세상이 이내 펑하고 터졌다.
2.
택시는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정차했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중년의 남성이 택시의 창문을 두드렸다. 반 뼘 쯤 창문을 연 여자가 생긋 웃으며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친애하는 고객님, 금 오천만원 되겠습니다.”
“그놈은‥”
여자의 눈짓에 모자를 푹 눌러쓴 종대가 택시에서 내려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아직도 기절해있는 남자를 차에서 끌어 내리고는 의뢰인이 여자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바로 문을 닫았다. 중년의 남성이 기절해 있는 남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제 고객님처럼 일반인이에요.”
창문 밖으로 내민 손을 까딱이며 여자가 말했다. 중년의 남성이 돈 봉투를 꺼내 들었다가 다시 망설였다.
“아이고, 참! 우리 고객님! 의심도 많으시지.”
참을성이 부족한 여자가 창문 밖으로 내밀고 있던 손을 거두고는 문고리를 잡았다.
“원래 제 얼굴을 보려면 추가금 이천인데. 아, 물론 얼굴을 보고 다시 기억을 지우는 비용이 이천. 제가 등록이 안 돼 있어서 알려지면 큰일 나거든요. 세상이 발칵 뒤집힐 걸.”
“야,”
종대의 만류에도 여자는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킬 힐을 신은 발로 기절해 있는 남자의 얼굴을 밀어 정면으로 돌린 여자가 몸을 숙이며 오른쪽 손바닥을 펼쳤다. 낯선 화기가 이내 여자의 손에서 불꽃을 피웠다.
“으으윽‥”
얼굴에 닿을 듯한 화기에 기절한 남자가 반사적으로 신음을 흘렸다. 손을 접은 여자가 의뢰인인 중년의 남성을 똑바로 응시했다.
“파이어 네트로들이 가지고 있는 불에 대한 내성 없어져서 고통스러워하는 거, 우리 고객님 똑똑히 보셨죠?”
센티넬로서의 능력을 잃고 이제 막 정신을 차리려는 남자의 바지 주머니에서 여자는 담배 갑을 찾아 들었다.
“이제 내거에요.”
담배를 꺼내 물고는 손가락 끝에서 불꽃을 피워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거 하나는 편하네.”
그리고는 다시 택시에 올라타 창문 틈으로 손을 내밀었다. 중년의 남성이 마침내 여자에게 돈 봉투를 건넸다.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고객님 따님이 그 건물에 있었던 거.”
걸음을 떼던 중년의 남성이 여자의 말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 얼굴에 감출 수 없는 분노가 떠올랐다. 여자는 창문을 올렸다.
거래의 마지막 순서로 의뢰인과 타깃의 기억을 지운 마인드 킹 종대가 서둘러 택시에 올라탔다.
“그런 말은 굳이 왜 해? 어차피 의뢰인은 기억도 못 할 텐데.”
각을 잡고 돈을 세며 여자는 대답했다.
“넌 일주일 전 저녁 메뉴도 기억 못 할 거면서 왜 처먹었니?”
“그러네.”
김종대 / 마인드 킹 - 정신 계열의 모든 초능력 / 해커
은 찬 / 앱솔루션 - 센티넬의 능력을 흡수하여 빼앗는 초능력
3.
찬은 자신의 보물창고를 둘러보았다. 센티넬들에게 흡수한 초능력을 구의 형태, 다시 말해 오브로 만들어 진열해 놓은 창고였다. 오브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본적으로 우주의 모양과 닮아 있다. 색이며 디테일한 무늬는 오브마다 모두 다르다. 크기 역시 오브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찬의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었을 때의 크기 정도다.
창고를 얼핏 둘러보면 예쁜 알사탕을 모아 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종대는 찬의 보물창고를 ‘캔디 샵’이라고 불렀다.
창고에서 나온 찬이 들려오는 TV의 뉴스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살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피의자는 일명 해성건물 화제 사건의 피해자였던 5살 아이의 아버지로……기억이 없으며, 정신을 차려보니 피해자와 골목에 있었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센티넬이 일반인에 의해 살해당한 첫 번째 사건으로……한편 파이어 네트로인 피해자의 초능력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가 하는 주장이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TV를 끈 종대가 여주를 돌아보며 말했다.
“좆 됐네.”
이하동문이었다.
4.
해가 중천에 떴다. 하품을 쩍쩍 하며 찬이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자 종대가 다급히 노트북을 닫았다. 누가 봐도 수상했다. 미심쩍게 종대를 바라보던 찬이 아무렇지 않게 주방으로 향하며 물었다.
“토스트 먹을래?”
“어? 어, 어!”
“죄 졌어? 왜 말은 더듬고 난리.”
횡설수설하며 종대도 주방으로 향했다. 우유를 잔에 따르던 찬이 자연스럽게 우유를 종대에게 넘겼다. 순진한 종대가 우유를 받아 들고 냉장고로 가는 틈을 타 찬은 전속력으로 거실로 달려가 종대의 노트북을 열었다.
“야!!!!!!!!!”
우유까지 내던지며 달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새 의뢰잖아. 왜 숨겨?”
노트북에는 남자들의 프로필이 떠 있었다. 노트북을 종대가 있는 방향으로 돌리며 찬이 물었다.
“이거 안 돼. 안 할 거야.”
노트북부터 닫으며 종대가 단호하게 말했지만 찬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얼마 준다는데?”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래서 얼마?”
“너 쟤네가 누군지 몰라?”
“우리 엄마 딸은 아니겠지. 다 남자잖아”
“그럼.”
“너희 아빠 아들도 아니고. 너 외아들이랬지?”
“당연히 아니지!”
“그래서 얼마 준다는데?”
“백억‥아니, 아니!”
“네가 미쳤구나. 백억을 숨겨?”
찬이 종대의 등짝을 찰싹, 찰싹 때렸다.
“우린 슈퍼 부자가 될 거야!”
물질주의에 젖은 찬의 눈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5.
새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경건한 마음으로 목욕재계부터. 종대가 뭐라고 떠들건 말건 찬은 대충 동여매고 있던 머리부터 풀어 헤쳤다.
“팀 엑소라고! 센티넬 중앙 본부 소속! 날고 긴다는 센티넬 중에서도 베스트 오브 베스트만 모았다는 팀 엑소! 팀원 하나로도 지구 멸망이 가능하다는 팀 엑소! 이건 아니야. 가뜩이나 경찰에서 우리 존재를 눈치 챘을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이건 진짜 아니야.”
이마로 쿵쿵 벽을 박으며 중얼거리던 종대가, 자기가 있든 말든 티셔츠를 벗으려는 찬을 보고 다시 소리를 질렀다.
“이 노출증 환자!”
“그럼 네가 눈을 감아.”
“내가 어쩌다 너를 만나서. 내가 어쩌다가. 내 인생이 어쩌다가. 우리 그냥 손잡고 정신병원 가자. 너 제정신 아니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격부터 뉴런 세포 하나하나까지 맛이 갔다고. 진작 갔어야 했는데. 내가 책임질게.”
“내 부모도 나를 책임 안 졌는데 네가 왜 나를 책임 져.”
“그럼 일 하기 전에 나랑은 인연 끊고 가. 너 혼자 저지르는 걸로 하자.”
“네. 만나서 돈 많이 벌었고 앞으로 더 벌게요, 김종대씨. 안녕히 계세요.”
태연히 욕실로 사라지려는 찬의 뒷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종대가 큰 결심을 하고는 까치발을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마인드 컨트롤이든, 기억을 삭제하든, 찬을 어떻게든 해보기 위해.
그리고 막 종대가 찬에게 손을 뻗었을 때.
“내 머리에 손 얹기만 해. 네 능력도 캔디 샵에 진열해 줄 테니까.”
종대는 빛의 속도로 후퇴했다.
6.
“중앙 본부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만날 방법이 없어. 네가 직접 들어가야 돼.”
“나 등록도 안 한 범법자인데?”
“너나 나나. 내가 그것도 생각 안 했겠냐? 중앙 본부 규모가 얼마나 큰데. 취업 할 자리도 많아. 하나 구해 놨어.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자리로.”
“오케이, 오케이.”
소파에 드러누워 건성건성 대답하는 찬을 보며 종대는 밀려오는 걱정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목걸이는 절대로 빼지 말고. 거기서 그거 빼면 센티넬 파장 잡혀서 바로 잡혀가는 거 알지?”
찬의 목에 걸린 목걸이와 같은 것이 종대의 목에도 걸려 있었다. 국가로부터 두 사람을 자유로울 수 있게 만들어주는 물건이었다. 말을 하면 할수록 종대는 더 불안했다. 여태 한 번도 이런 불안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찬이 누워있는 소파로 다가간 종대가 소파 앞의 바닥에 앉아 찬과 시선을 마주했다. 눈을 가리고 있던 찬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종대가 물었다.
“넌 도대체 나사 빠지도록 돈이 좋은 거야, 아니면.”
“…….”
“센티넬이 싫은 거야?”
“그야 당연히,”
“…….”
“나사 빠지도록 센티넬이 싫은 거지.”
“…….”
“너만 빼고.”
찬의 대답에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몰라 종대는 말을 돌렸다.
“걔네 다 측정기에서 측정할 수 있는 최고 수치를 넘어서서 SS+급이야. 한마디로 측정 불가라는 소리지. 그런 능력을 네가 흡수해서 담을 그릇은 되고?”
세상에서 제일 이해 못 할 말을 들었다는 얼굴로 찬은 대답했다.
“나 존나 세.”
종대는 결국 웃고 말았다.
“그래서,”
빈둥대던 몸을 일으키며 찬이 운을 뗐다. 손가락은 노트북과 연결 된 TV 화면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 타깃이 저 중에 누구야?”
7.
깊은 밤, 찬은 종대의 방문을 열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종대가 끼고 있던 이어폰의 한 쪽을 뺐다.
“안아주고 갈게.”
“…….”
“혹시라도 내가 언제 올지 모르잖아.”
찬의 말에 종대는 말없이 이불의 한쪽을 걷었다. 종대의 이불 속으로 파고든 찬이 종대를 온 마음으로 끌어안았다. 찬의 한쪽 귀에 이어폰이 꽂혔다. 둘은 노래를 나누어 들었다. 나지막하게 흐르는 노랫말 사이로 종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쩌다 너를 만나서 라고 했던 말 다 거짓말이야.”
“너는 내가 다 알고 있는 걸 굳이 말로 하더라.”
밤은 어김없이 지나갔다.
8.
- 취업 자리가 청소부라고 말 안 했잖아!
반나절을 센티넬 중앙 본부의 여자 화장실을 순회하며 청소만 하던 찬이 참지 못하고 귀에 꽂은 통신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종대의 나자빠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여자 화장실에서 엑소를 만날 확률이 높을까, 내가 집에 가서 너를 조질‥잠깐만.
찬이 말을 멈춘 건 밖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인기척 때문이었다. 곧이어 비상시에나 들릴법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화장실 밖으로 나가려던 찬이, 어느새 복도에 가득 찬 무장까지 남자들을 발견하고는 통신기를 아예 빼버렸다. 옷차림이 본부의 센티넬들은 아닌 것 같고 군인이나 안전요원 같이 보였다.
조금 전보다 더 커진 듯한 사이렌 소리에 모든 감각이 일반인보다 예민한 센티넬인 찬이 귀를 틀어막으며 밖으로 나왔다. 이 자리를 빠져나가려는데 어디선가 더 나타난 무장을 한 남자들이 아예 찬의 주위를 빙 둘러쌌다.
찬이 습관적으로 목걸이를 매만졌다. 센티넬인 걸 들켰을 리가 없는데.
“멈추세요! 멈추지 않으면 발포하겠습니다. 젠장! 가이드는 아직 인가?”
갈 곳을 잃은 찬이 경고하는 목소리를 쫓아 뒤를 돌아보았다. 일제히 겨누고 있는 총부리가 향한 곳은 찬의 바로 뒤였다. 찬은 그제야 이 남자들이 무장을 하고 모인 이유가 자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의 눈동자는 먹색, 그 이상으로 혼탁했다. 남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정상적인 열기가 찬의 피부로 선명히 느껴졌다. 남자는 폭주하고 있었다. 힘을 주체하지 못 해 비틀대던 남자가 피할 새도 없이 찬의 왼손을 붙잡았다.
“‥아.”
찬은 한 박자 느리게 반응했다. 남자에게 붙잡힌 왼쪽 손을 멍하니 내려 보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뿌리칠 새도 없이 남자가 완전히 찬에게로 넘어졌다. 뜨거운 열기가 찬의 온 몸을 짓눌렀다. 총의 레이저 포인터 수십 개가 찬의 눈앞에 둥둥 떠다녔다. 타들어가는 듯 했던 남자의 열기가 급속도로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찬은 제 몸을 깔고 누운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찬은 이미 이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팀 엑소의 변백현.
중증의 결벽증이 있는 백현에게 가이딩은 안락함이나 생존의 도구가 아니었다. 타인과 살이 닿을 바에야 폭주하여 죽는 것이 덜 고통스러울 거라 백현은 항상 확신해왔다.
그런데 지금 나를 가득 채우는 이건, 이 기분은 뭐지.
백현이 서서히 감은 눈을 떴다. 혼탁하던 먹색의 눈이 점점 옅어졌다. 숨소리도 잦아들었다. 마침내 찬을 눈에 담은 백현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두 눈을 깜빡이며 경탄했다.
“와아.”
안정되어가던 백현의 심장이 다시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괜찮으십니까?”
폭주를 멈춘 백현을 부축하며 무장을 한 남자들이 찬에게 물었다. 백현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진 찬이 애써 웃었다.
씨발, 진짜.
“당신 가이드에요?”
들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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