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예시)
사랑하는 아들 범수야.
아버지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세월을 살다가 죽음을 앞에 두고 제일 먼저 생각나는 자식이 너로구나. 내일 죽는다고 해도 아버지는 아쉬울 것이 없지만 그래도 너의 얼굴을 떠 올리면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내 인생에 이런저런 즐겁고 소망의 순간도 많았지만 네가 처음으로 말을 배워 나에게 아빠라는 말을 했을 때는 나는 온 세상을 다 가진 듯이 기뻤다. 아버지가 사 남매의 제일 먼저 낳은 자식으로 할아버지의 첫 사랑이 되었듯이, 너도 두 남매의 처음 자식으로 나에게는 첫 사랑이었단다.
당연히 너에 대한 기대가 네 여동생보다는 클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살림에 부모까지 모시고 살았던 아버지는 너를 남들 다 보내는 과외공부 한 번 보내지 못하고, 학교성적 나쁘다고 꾸지람만 한 기억뿐이구나. 지지리도 못난 아버지를 용서해라. 그 시절만 해도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이 드문 때인데도 네 인성과 특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기계처럼 공부만 하라고 다그친 것이 부끄럽고 후회가 되는구나.
네가 초등학교 3학년 시절, 그 해 어버이날이 생각나는구나. 모아 두었던 용돈으로 할아버지에게는 좋아하는 만두를, 얼굴 꾸미기를 즐기는 할머니에게는 눈썹 화장품을, 술 마시는 아버지에게는 몸에 좋다는 과실주 마주앙을, 살림에 쪼들린 어머니를 위해서는 구멍 없는 두루마리 휴지 6개를 네 동생과 함께 사서 들고 오는 너를 보고 자식 키운 보람 있다고 우리 부부는 흐뭇하게 생각했단다.
내가 생각하건대 너는 어릴 적부터 부모 속을 썩이지 않는 효심 깊은 아들이었다. 없는 집에 공부 하나로 세상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염원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 외에는…….늘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을 챙겨주고 용돈을 모아 부모와 남을 위해 쓸 줄 알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자기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어 부모에게 금전적 피해를 끼치지 않은 독립심 강하고 책임감 있는 좋은 아들이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좁은 아파트에 네 식구가 살고 있어 자기 방이 없음을 안 너는 그 길로 옷가지 몇 개를 챙겨 집을 나갔지, 그 때 무능함으로 얼룩진 나의 마음은 찢어질 듯이 아팠단다. 식구를 위하여 희생한 너는 그 후로 자수성가의 길을 걸어 쪽방으로, 원룸으로 전전하면서 네 꿈을 키운 끝에 지금은 어느 월급쟁이 부럽지 않는 부와 지위를 가진 네가 아버지는 무척 자랑스럽구나. 지금도 너는 따로 살면서 부모의 건강과 생활을 걱정하면서 틈틈이 도와주는 너를 우리 부부는 늘 감사하게 생각한단다.
아들 범수야. 지금 아버지가 너에게 바라는 것이 있단다. 집을 떠나서 혼자 생활한지가 10년이 넘어 어느 덧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는 네가 인성이 바르고 종교심이 깊은 배우자를 만나 장가를 가서 부모를 기쁘게 하며 자식으로서 후손을 잇는 효를 다 하기를 소원한다. 네 여동생은 일찍부터 부모의 뜻을 헤아려 시집가서 외손녀를 안겨주지 않았느냐. 만약에 아버지가 없더라도 이 말은 네가 꼭 명심하고 지켜 네 어머니를 기쁘게 하여라. 많은 손자, 손녀를 얻어 네 어머니 삶의 훈장에 주렁주렁 달아주면 좋겠구나.
사랑하는 아들. 살면서 아버지에 대한 나쁜 추억은 잊어버리고, 너에게는 언제나 좋은 모습의 아버지로만 기억해 다오. 부디 행복해라. - 아버지가 -
첫댓글 김 선생님, 고맙습니다.
부담스러운 숙제를 했네요.
감동적입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죽음을 가정한 글쓰기입니다만 매우 진지했겠지요.
가끔 엉뚱한 생각으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유언이 아니라도 얼마나 좋습니까?
아버지의 진심이 담긴 글.
아들에게는 물질적인 선물보다 큰 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서전 쓰기의 출발이 좋습니다.
삶의 구간 구간을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 자서전 쓰기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제가 두류 실버 자서전 쓰기방
수강생 자서전 쓰기 첫 글을 올리게 되었음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눈물이 앞을 가려 답글 적는데 도저히 읽을 수가 없네요
그동안 머리속에 남겨 두었던 그리운 아버님한테 죄송하다는 말뿐
이번에 산소에 꼭 가야겠어요
고맙습니다
실벼 자서전 쓰기 첫 숙제 글을 제가 올리게 되었네요.
제목이 수필과는 조금 달라 저도 이상합니다. 아들에게
읽어보라고 카페주소를 보내 주었습니다.
아까 새로 들어 오신분이 아드님 되시군요
선생님 자서전 저도 남겨 봐야겠어요^^
이번에 가상 유언장을 쓰면서 속으로 울고 많이 반성했습니다.
정선생님도 조용한 시간에 나만의 자서전을 적어 보시면 좋겠
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저희 아버님의 유언장을 보게됩니다. 아들로써 이런저런생각이듭니다
카페 가입을 축하한다. 어릴 떄 변변한 문학전집 하나 못 사준 아버지가 미안하구나.
젊은 시절부터 글을 읽고 쓰면 인성에 도움이 되고 삶이 풍성해 짐을 믿는다.
글이 가진 능력은 대단합니다.
대면해서 말하기 어려운 것을 글이 해결해 줍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겠지요.
저도 읽고 짠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목한 가정 분위기를 느낍니다.
행복하십시오.
@전상준 선생님 지도 덕분입니다. 앞으로 자서전에 대한 많은 공부를
배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담담하게 그간의 심정과 앞으로의 바램을 아들이 볼수있도록 공개하시는 용기가 놀랍습니다.부자유친의 본보기를 본것같아 가슴 뭉클 합니다.잘읽고 갑니다~
정선생님 저의 가상 유언장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답답한 마음에 아들에게 읽어 보라 했더니 정말 아들이
읽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