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사진 김영화 · 부산 락오디세이 대표
부산지역 최대 실내암장 ‘락오디세이(rock odyssey)’를 운영하고 있는 김영화씨가 지난 5월 가족과 함께 유럽 등반여행을 다녀왔다. 자녀들에게 현대 스포츠클라이밍의 흐름을 주도하는 유럽의 바위들을 보여주고 싶어 나선 여정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지만,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 예솔, 아들 동호와 함께 유럽의 바위를 마음껏 음미하고 돌아왔다. 때로는 한없이 진지하고, 때로는 유쾌 발랄한 그들의 등반 여행기를 2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주
시우라나에서의 마지막 등반인 ‘아나볼리카(Anabolic, 8a)’ 루트를 등반하고 있는 필자. 계곡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난 덕분에 동작이 물 흐르듯이 연결되었다.
클라이머에게 바위는 그 어떤 보물보다 귀하며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절대 소유되지 않는 동경의 대상이다. 나에게 바위는 숙명이며 가족과 함께 공유하는 소통의 공간이다. 귀하고도 아름다운 동경의 대상을 오르고픈 것이 클라이머의 숙명이라면, 현대 스포츠클라이밍의 흐름을 주도하는 유럽의 바위는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이다. 나는 이미 지난 2010년에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의 유명한 몇 곳의 암장을 다녀온 적이 있다. 이후 기회가 되면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유럽의 바위를 등반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올해 딸 예솔이는 14살, 아들 동호는 10살이 되었다. 아이들이 아직은 좀 어리고, 우리의 형편도 비록 넉넉하지 못하지만 아내와 난 한 달간의 고심 끝에 유럽 등반 여행을 결정했다. 아이들에게 유럽의 새로운 바위를 경험케 하고,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 자신들이 이방인의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그곳의 음식이나 문화를 직접 몸으로 느껴보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등반 투어 기간을 올해 5월~6월 사이 한 달여의 일정으로 잡고, 스페인 시우라나(Siurana) 지역과 프랑스 퐁텐블로(Fontainebleau) 지역을 등반할 일정을 세웠다. 항공권은 4월에 미리 예매하고, 현지의 렌터카와 숙소도 사전 예약해두었다.
첫날부터 소매치기 당해 천신만고 끝에 시우라나 도착
5월 14일. 드디어 파리로 출국하는 날이다. 우린 볼더링을 할 일정이 있었기에 커다란 볼더링 패드 2개가 추가되어 김해 공항까지 갈 때부터 한 차례 곤욕을 치러야 했다. 오전 10시 비행기에 올라 4시간 만에 경유지인 베트남 공항에 도착했지만, 저렴한 항공권을 구입한 탓에 우린 공항에서 10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카페에 앉아 소설책을 읽으며 시간을 죽인 후, 밤 10시에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파리 드골 공항은 실로 엄청난 규모다. 비행기를 타고 내리려면 출국 절차를 밟은 뒤 공항 내에서 전철을 타고 이동해야 할 정도. 우리도 짐을 찾으러 가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린 듯하다. 짐을 찾고 공항 터미널 중앙주차장에 위치한 렌터카 업체로 가 미리 예약한 차량을 확인했다. 그런데 아뿔싸! 예약한 차량에는 볼더링 패드가 들어갈 공간이 없는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수십 유로의 추가 요금을 더 내고 더 큰 차량으로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오전 10시 드골 공항 터미널을 빠져나와 프랑스 서남부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이제 신나게 스페인으로 달리는 일만 남았다. 새벽에 기내식을 먹은 게 전부여서인지 파리 외곽고속도로에 진입하자 벌써 배가 고프다. 우린 제일 처음 보이는 휴게소에 들러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휴게소에 들어가 카페 겸 스낵바에서 빵과 커피, 음료를 사고 결재하려고 보니 가방에 지갑이 보이질 않는다. 순간 소매치기 당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주변에서 “유럽에 가면 특히 소매치를 조심하라”는 충고를 그렇게 많이 들었음에도 내가 너무 지갑을 허술하게 관리한 것이었다. 지갑엔 신용카드는 물론 현지에서 숙박비를 결재하려고 1천유로가 넘는 현금을 넣어왔는데, 모든 게 사라지게 된 것이다. 우리 가족은 순간 모두 넋이 나가 버렸다. 이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 그래도 여행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우린 현지 경찰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카페 주인이 “지금 고속도로 경찰이 바빠 못 오니 파출소로 직접 가야한다”며 약도를 그려 준다. 우리는 마지막 희망인 경찰을 찾아 약 20분간 차를 몰았다.
파출소에 가니 담당 헌병이 우리를 자리에 앉히고 도난 경위에 대해 자세히 질문했다. 하지만 전직이 경찰관인 필자는 도난당한 지갑을 다시 찾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한국으로부터 송금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를 기대했다. 한 시간 가량의 긴 조사를 마친 뒤, 그는 우리에게 파리에 있는 한국 대사관으로 가 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린 당장 고속도로 톨게이트 비용도 결재를 못할 상황이 아닌가. 우리의 상황을 말하자 톨게이트가 없는 고속도로 비상구를 알려주었다.
파리 대사관까지 가는 흑백 지도를 들고 고속도로에 진입했다가, 역방향으로 진입해 고속도로의 비상 호출 버튼을 눌러 다시 나오는 등 갖은 우여곡절 끝에 우리 가족은 겨우 파리행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파리 시내에서도 수차례 길을 헤매다가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엥발리드(Hotel des Invalides) 광장 왼쪽 골목에 위치하고 있는 한국대사관에 도착했다. 대사관 직원은 매우 기계적으로 한국에서 돈을 송금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었는데, 외환은행 파리지점에서 1인당 1천유로까지 송금 받을 수 있고 했다. 서둘러 부산에 있는 여동생에게 전화해 지금까지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3천유로 송금을 부탁했다. 시차 때문에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는 안도감에 한두 끼 굶는 고생은 감안하기로 했다.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었기에 우리는 차에서 하룻밤을 보내야만 했다. 5월 중순인데도 바깥바람은 쌀쌀하며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졌다. 집처럼 편하진 않지만, 따스하고 비좁은 차 안에서 서로의 체온에 기댄 채 파리에서의 첫날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차갑고 상큼한 파리의 새벽 공기에 잠을 깬 우리는 9시에 맞춰 샹젤리제 거리 뒤편에 위치한 외환은행으로 가 한국으로부터 송금된 돈을 인출했다. 주변에 있는 마트에 들러 빵과 먹을거리를 산 뒤 이동하면서 아침을 해결하기로 하고 다시 스페인으로 향했다. 파리에서 하루를 지체하긴 했지만 우리 가족에겐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 경험을 도난당한 170만 원으로 샀다고 생각하니 별로 손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11시에 파리 시내를 출발한 우린 샹젤리제 거리, 개선문, 세느강, 에펠탑을 지나 고속도로에 차를 올려 오를레앙~리모주~톨루즈~페르피냥을 거쳐 프랑스과 스페인 국경을 넘은 후 바르셀로나까지 약 800km를 달렸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니 밤 11시. 이틀간 제대로 잠을 못 잔 탓에 극도로 피곤해 이대로는 운전을 더 못할 것 같아 휴게소에 들러 또 하룻밤을 차에서 보내기로 했다. 이틀을 차에서 잘려니 허리며, 목, 무릎 등 온 몸의 관절이 쑤신다. 그래도 아이들은 잘 잔다. 체격이 작아서 그런지 뒷좌석에서 완전히 퍼져 잔다. 집사람과 나는 거의 한 시간 간격으로 깨면서 선잠을 자야 했다.
등반 루트만 1200여 개 달하는‘천국’
다음 날 새벽 6시에 눈을 떠 우리의 보금자리가 기다리고 있는 시우라나로 출발한다. 이곳에서 약 100km를 더 달려 시우라나 등반의 베이스캠프격인 코뉴데야(Cornudellar) 마을에 도착했다. 조용하고 아늑한 산골 마을인 코뉴데야는 최근 스페인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추진하고 있는 카탈루냐(Catalunya) 주 남부의 몽상트(montsant) 국립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 해안도시인 레우스(Reus), 타라고나(Tarragona)에서 40분 거리에 있으면서 수직의 바위들이 계곡 주변을 따라 수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져 있어 그야말로 등반 천국이다. 시우라나 계곡 주변의 바위 뿐 아니라 인근 마갈레프(Margalef), 몽상트, 아르볼리(Arboli) 등 6~7개 지역의 등반지도 차로 한 시간 이내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실로 엄청난 규모의 등반지라고 할 수 있다.
시우라나 지역은 암벽 루트 수만 1,200여개에 이르며, 지금도 개척중인 바위가 있을 정도다. 호수와 아름다운 계곡을 끼고 있기 때문에 여름엔 수상 스포츠도 함께 즐길 수 있으며, 등반하다 지치면 계곡으로 내려와 물놀이도 할 수 있다. 또한 트레일 코스와 산악자전거 코스도 다양하게 만들어져 있어 여름 휴양지로 제격이다. 시우라나 성 바로 앞에 캠핑장이 있고, 숙박시설도 몇 군데 있긴 하지만 비용과 교통, 편의성을 고려한다면 코뉴데야 마을에 머물면서 차로 이동해 등반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시우라나 성 앞에는 대형 주차장이 있어, 이곳에 차를 세우면 주변 등반지역까진 걸어서 3분이면 닿을 수 있고 경치도 좋다. 시우라나 계곡과 시우라나 호수, 코뉴데야 마을, 멀리 몽상트의 수직벽까지 훤히 조망할 수 있다.
우린 우선 가장 가까운 이자벨(La Isabell) 섹터로 가서 5.11a급인 디에드르 코스를 등반해 보기로 했다. 며칠간 고생하면서 잠도 제대로 못 잔 탓인지, 출발하자마자 발이 떨리고 손가락엔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결국 몇 번의 추락을 감내해야 했다. 이곳 바위에 적응하려면 최소 3일은 걸릴 듯하다. 집사람과 동호, 예솔이는 톱로핑으로 시도해 보면서 바위의 감촉을 느껴 보았다. 간단히 등반을 마친 후 일찍 숙소로 내려와 휴식을 취했다.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우니 며칠간의 고단함이 내 몸을 짓누르는 듯 침대 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간다.
네 식구가 저마다 즐기며 오른 암벽들
5월 19일. 피곤했는지 우리 가족은 12시간을 내리 잤다. 느지막이 일어나 마을에서 제일 가까운 헤르볼라리(Lherbolari) 섹터로 갔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껴 있어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올 것 같았지만, 등반에 목말라 있던 우리에겐 더 이상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도로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길을 걸어 약 10분정도 걸으니 바위에 닿는다. 동호와 예솔이를 위해 가장 쉬워 보이는 ‘마테리아 포스카(Materia fosca, 6a)’ 루트에 줄을 걸었다. 하지만 집사람과 아이들이 차례로 톱로핑 등반을 하고 나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해 급하게 짐을 꾸려 주차장에 내려왔다. 다행히 비는 많이 오지 않았지만 날씨가 꽤 쌀쌀하다. 스페인 친구들 말로는 “불과 2주 전까지 눈이 내렸을 정도로 이번 겨울과 봄은 유독 춥다”고 했다. 겨울 점퍼를 준비해 오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다음날, 바람은 여전히 차갑지만 날씨가 화창하다. 집 사람과 아이들도 컨디션이 좋아보이고, 오늘은 제대로 등반을 해 보겠다는 의욕이 생긴다. 오늘은 시우라나 남면(Siuranella sud) 섹터로 가보기로 했다. 우린 6c, 6b+급 루트들을 차례로 등반하며 시우라의 벽에 서서히 적응해갔다. 난 5.13a급 코스인 ‘크레마(La crema, 7c+)’에 도전했다. 30m의 긴 거리에 크럭스가 상단에 위치하고 있어 마지막 순간까지 힘을 비축해야 하는 전형적인 지구력 스타일의 루트다. 2번을 시도했지만 크럭스에서 추락해 완등엔 실패. 아직 컨디션이 최상의 수준까진 이르지 못한 것 같았다.
5월 22일에는 로욜라(Lolla) 섹터로 향했다. 이곳은 시우라나의 상징적인 루트 ‘La lambra(9a+)’와 ‘Gople de estado(9b)’ 루트가 있는 지역에서 계곡 안쪽으로 20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 섹터는 비교적 루트가 짧고, 초급자에서 고급자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루트가 많아 인기 있는 지역이다. 난 7b+급 루트를 시도했지만 온사이트엔 실패하고 두 번째 시도에서 완등 했다. 이후 ‘La cara que no Miente(8a+)’를 시도했는데, 15미터의 짧은 코스이지만 140도에 이르는 각도와 크럭스 지점의 점프 동작으로 인해 부분 동작을 해결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이날부터 이틀 더 로욜라 섹터에서 여러 루트를 등반하며 ‘라 카라 퀴 노 미엔떼’를 하루에 3~4차례씩 시도했지만 결국 크럭스 동작을 해결하지 못했다.
24일에 다시 로욜라로 이동해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간단히 몸을 푼 뒤 프로젝트 루트에 도전했다. 몸이 가벼운 느낌이 들면서 크럭스 점프 동작이 쉽게 해결되고 마지막 퀵드로에 클립했다. 4일 만에 이뤄낸 완등이다. 기세를 몰아 바로 옆의 5.13a급 코스에 도전했다. 하지만 두 번의 시도 끝에 마지막 동작을 해결하지 못하고 추락하고 말았다.
이후 이틀간 휴식하고, 27일에 로욜로 센터 입구에 위치한 엘 파티(El pati) 섹터로 이동했다. 이곳은 주로 30m 이상의 긴 루트가 집중되어 있는 지역으로 고도감이 심하게 느껴진다. 난 ‘크로스타 패닉(Crosta panic, 7a+)’을 온사이트로 완등하고, 집사람과 예솔인 톱로핑으로 동작 해결에 나선다. 이어 ‘레임 슈카(Lame chuca, 6b+)’에 집사람, 동호, 예솔 모두 완등에 도전했다. 다음 날은 엘 파티 섹터 옆에 위치한 에스페로 프리마베라(Espero primavera) 섹터에서 집사람과 예솔인 난이도 6a+, 6b의 루트를 차례로 완등하고, 난 7b+, 7a, 7a 루트를 온사이트 완등 했다. 그리고 ‘겨울 원자탄(Invierno Nuclear, 7c+)’이라는 무시시한 이름의 루트를 한 차례 시도하면서 구분 동작만 해결하고 다음날을 기약했다.
5월 30일에 다시 에스페로 프리마베라 섹터에 방문해 그저께 부분 동작만 해결한 ‘겨울 원자탄’을 단번에 완등 했다. 집사람과 예솔이는 ‘mapaga la Baldufa(7a)’를 톱로핑으로 시도했다. 홀드가 크고 어려운 동작은 없지만, 각이 120~130도에 이르는 오버행이라 여자들에게 어려운 루트다. 점심을 간단히 먹은 후 맞은편에 위치한 라 파라도르(L''Aparador) 섹터로 이동했다. 이곳은 시우라나 캠핑장을 머리에 이고 있는 곳으로, 시우라나 지역에서 유일하게 북서쪽으로 향하고 있어 여름엔 오전까지 시원하게 등반할 수 있다. 난 이곳에서 제일 인기 있는 35m 높이의 ‘Buscando a Pepillo(8a)’를 시도했다. 강력한 볼더링 동작보다는 근지구력만 받쳐준다면 충분히 완등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첫 온사이트에는 실패하고 약 한 시간을 쉰 뒤, 온 몸의 에너지와 정신력을 집중해 다시 도전했다. 하지만 이미 오전부터 연속 6시간을 등반한 때문인지 마지막 파워가 나오지 않고, 바위는 이미 햇볕에 데워져 손에서 땀이 나기 시작한다. 혼신의 힘을 다해 동작을 연결해 나가려했지만 결국 추락. 손끝이 시리도록 하프고, 온 몸의 기력이 빠지는 듯하다. 몸이 “쉬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 아쉽지만 여기에서 물러섰다.
20일간 카탈루냐의 바위를 만끽하다
5월 31일에는 다시 한 번 라파라도르 섹터를 등반하고, 6월 1일에는 시우라나에 도착한 첫날에 가본 이사벨(Ca la Isabel) 섹터로 향했다. 이곳은 탁 트인 조망이 좋긴 하지만, 햇볕이 나오면 피할 곳이 마땅히 없다는 단점이 있다. 예솔이가 5c+ 루트를 가볍게 온사이트로 완등하고 동호가 톱로핑으로 완등한다. 난 ‘Cromanon climbing(7a+)’을 온사이트 완등한 뒤 제일 인기코스인 ‘boys don’t cry(7c)’를 두 번 시도 만에 완등했다. 다음 날에는 이사벨 섹터 바로 옆에 위치한 캔 말라폿(Can Melafots) 섹터로 갔다. 상단이 170도 루프로 형성된 ‘라 베스티올라(La Bestiola, 8a+)’가 단연 눈에 들어왔다. 중단 작은 루프를 통과한 뒤 상단 마지막 부분이 천정 오버행을 통과하면 완등이다. 먼저 온사이트 등반을 하면서 부분 동작을 익혔지만, 마지막 오버행 부분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두 번째 레드포인트 시도에서도 마지막 루프 크럭스 동작이 매끄럽게 나오질 않아 결국 완등엔 실패하고 말았다.
6월 4일. 시우라나에서의 마지막 날인 내일 최상의 컨디션으로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오늘 하루는 푹 쉬기로 했다. 시우라나 호수 주변을 산책하면서 체리 열매도 따먹고, 마을 광장에서 책도 읽고, 동호는 이곳 아이들과 어울려 같이 공놀이도 한다. 10여일 만에 처음 이곳 아이들과 어울리게 된 걸 보니 기특하다.
6월 5일의 시우라나의 마지막 등반은 코뉴데야 마을에서 제일 멀고 이사벨 센터에서도 10분을 더 내려가야 하는 캔 피끼 푸기(Can Piqui Pugui) 섹터로 정했다. 오전 10시에 벽 앞에 도착해 어떤 루트를 할 지 고민하는데, 마침 8a급 코스에 누군가 프로젝트 등반을 하려고 했는지 퀵드로를 걸어놓은 것이 보인다. 루트 이름은 ‘아나볼리카(Anabolic, 8a)’로 온사이트 시도에서 쉽게 부분 동작이 해결되어 느낌이 좋다. 나는 이곳에 도전했지만 크럭스에서 발 위치를 찾지 못해 추락하고 말았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계곡으로 내려가 물놀이를 즐겼다. 우리나라 계곡만은 못하지만 물이 깨끗하고, 게다가 다이빙을 할 수 있는 폭포도 있다. 아직 물이 차가워서 오래 있지는 못해 서너 번 다이빙을 하고 나니 온 몸이 얼얼하다. 오후 3시쯤 다시 벽 앞으로 돌아와 ‘아나볼리카’에 다시 도전했다. 계곡에서 충분히 휴식한 덕분인지 이번엔 동작이 물 흐르듯이 잘 연결된다. 첫 크럭스를 무난히 통과하고 두 번째 크럭스에서도 나의 손과 발은 첫 홀드를 잡을 때처럼 여전히 신선하게 살아있음을 느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마지막 앵커에 로프를 걸었다. 완등이다. 시우라나에서 최단시간 8a 코스 완등. 이제 내 몸이 완전히 이곳 벽에 적응한 것인가. 역시 등반은 힘만으로 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나의 마지막 프로젝트 완등을 자축하며 우리는 떠나기 전에 시우라나 성을 둘러보기로 했다. 시우라나는 스페인의 마지막 이슬람교도들이 기독교에 저항한 곳으로, 기독교도들이 성을 포위하자 압델라지아(Abd-el-azia) 여왕이 자신의 백마와 함께 절벽으로 떨어져 자결하였다고 한다. 바위에는 그때 새겨진 말발굽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시우라나 성의 맨 끝 절벽을 바라보는 곳에는 시우라나 등반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했던 산장이 위치해 있다. 산장은 시우라나 등반의 선구자인 토니 아르보네(Tonie Arbone)의 소유이며, 그는 현재 캠핑 시우라나의 주인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시우라나 계곡과 드넓게 펼쳐진 바위를 바라보며 보낸 20일간의 여정이 너무 짧고 아쉽게 느껴진다. 더 있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날이 그리 많지 않기에 다음을 기약하며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사랑하고 아쉬울 때 떠나야 오래토록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거니까. 6월 6일 새벽 6시에 서둘러 아침을 먹고 짐을 정리했다. 오랫동안 머문 탓인지 처음 왔을 때보다 짐이 더 늘어나 작은 차에 짐이 꽉 찬다. 아름다운 시우라나의 성과 계곡, 바위, 그리고 정들었던 마을 광장, 교회, 카페, 해맑게 웃던 이곳 아이들을 추억 속에 묻고 우린 다음 여정의 목적지인 프랑스 퐁텐블로로 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