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울주 세계산악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한 던월을 직관했다. 유튜브를 통해서 맛보기 영상을 계속 보면서 전체 영화를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했는데 마침 영화제 개막작이라 퇴근과 동시에 울주로. 혹시나 입장을 못할까 걱정했는데 일찍 도착을 해서 여유있게 들어갔다.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그러고 지난 금요일 넷플릭스에서 던월을 다시 보았다. 다시 봐도 재미있는 영화다.
재미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우선 나도 요세미티 엘캡을 등반했기에 감정이입이 잘 되는 것 같다. 물론 노즈 루트를 2박 3일 인공 등반한 것과는 질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등반을 시도하는 마음 가짐만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아니 오히려 내가 더 비장했을지도 모른다. 난생 처음 시도해보는 빅월 등반이었고 처음해보는 바위벽에서의 비박. 체력과 기술적인 한계 등등. 포타렛지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던월 팀의 호텔급 숙박에 비하면 우리는 노숙이라고 할까. 흘러내리는 렛지에서 자는 둥 마는 둥 이틀밤을 보냈으니.
영화는 토미 콜드웰의 드라마틱한 인생사도 다루고 있다. 어릴적 유난히 몸이 약한 콜드웰을 위해 아버지는 암벽등반을 가르쳤다. 암벽등반에 소질을 보인 콜드웰은 17세에 아마추어로 참가한 세계대회에서 유일하게 완등을 기록하며 우승을 했다. 클라이밍대회에서 만난 베스와 연인 관계가 되었고 키르키즈스탄에 등반을 여행을 떠났다. 등반 도중에 키르키즈스탄의 반군에게 잡혀 인질이 되었다. 탈출을 위해 콜드웰은 반군을 절벽 아래로 밀어서 죽게 만들었다. 일행은 무사히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콜드웰과 베스에게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이었다. 콜드웰은 충격을 이겨내기 위해서 요세미티 엘캡의 기존 루트들을 거의 모조리 자유등반했고 속도 등반 기록도 세웠다. 그 와중에 클라이머로서는 치명적인 왼손 검지 손가락 2마디를 사고로 잃었다. 의사는 다른 직업을 가질 것을 권했지만 콜드웰은 장애를 극복하고 이전보다 더 뛰어난 등반을 했다. 베스가 콜드웰을 떠나면서 그 빈자리를 채울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여명의 벽인 던월에 새로운 고난도 멀티피치 개척. 6년이 넘는 세월 동안 루트 개척을 위해 엘캡에 매달렸다. 등반 가능성을 확인하고는 새로운 자일 파트너 캐빈 조거선과 의기투합했다. 던월 전 피치를 두 사람이 모두 자유등반하기 위해 번갈아가면서 1피치씩 오르내렸다. 한 사람이 완등하면 하강해서 다음 사람이 등반을 시도하고 두 사람이 모두 완등하면 2피치에서 다시 또 시작하고. 이렇게 19일간을 벽에 매달려서 지냈다. 벽에 매달려 지내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중계방송도 이루어졌다. 이런 점들이 비판을 받곤 했다. 15피치까지는 진도가 잘 나갔다. 15피치에서 두 사람 모두 제동이 걸리면서 속도는 느려졌다. 난이도가 무려 5.14d. 빤빤한 페이스에 홀드도 스탠스도 극도로 부실한 트레버스 루트. 밤에 기온이 내려가면서 마찰력이 좋아진다는 것에 착안해 헤드랜턴을 켜고 밤에도 등반을 시도했다. 수많은 시도 끝에 결국 토미 콜드웰은 완등. 그러나 캐빈은 계속 실패. 캐빈이 콜드웰의 완등을 위해 자신의 등반을 포기하고 위로 전진. 또 다른 난관 다이노 피치. 콜드웰도 여기를 해결 못하고 다운 클라이밍으로 우회하여 돌파. 22피치 와이노 타워까지 쭉쭉 올라갔다. 완등에 임박한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고쳐먹고 캐빈 조거선의 완등을 위해 다시 15피치로 하강. 오랜 기다림 끝에 조거선 역시 15피치 완등. 내친김에 다이노 피치까지 그대로 완등. 19일만에 모든 미치를 자유등반하고 엘캡 정상에 두 사람이 함께 섰다.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멀티피치 루트가 탄생한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들과 함께 등반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900미터 암벽에 매달려 있지만 생생한 근접 촬영으로 바로 눈 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듯 하다. 미세한 크림프 홀드에 힘을 모으고, 깨알같은 스탠스를 내딛는 동작까지 거친 숨소리가 시종일관 화면 가득하다. 엘캡을 처음 보았을때의 그 경이롭고 압도적인 풍경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스트버트레스 등반을 위해 쳐다본 엘캡의 오른쪽 벽면들은 하나같이 반들반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포터렛지를 이용해서 조디악을 등반하는 팀을 부러워했었다. 요즘은 거의 모든 루트를 프리로 한다고 하니 인공등반한다고 망치질 하고 있으면 눈총을 받으려나.
넷플릭스 가입했으면 꼭 시청해보시길 권합니다. 요세미티 등반도 꼭 가보시고.^^
첫댓글 마침 넷플릭스 계정이 있어 던월을 봤습니다. 산악부에 들어온 지는 6년이지만 등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집중하게된 건 최근입니다. 한 루트에 몇 년을 들여 등반을 하는 모습을 보며 등반과 도전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트레버스 루트를 끊임없이 도전하는 캐빈과 그런 캐빈을 서포트해주는 콜드웰. 자일의 정이란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므슨 일이든 빨리 흥미를 붙이고 빨리 시들해지는 편입니다. 등반이라는 것이 시들해지려고 할 때, 다른 사람의 등반기와 던 월 같은 산악영화 한 편이 열정에 풀무질을 해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