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속에라도 들어가서>
기독교인들에게 잘 알려진 찬양입니다.
1절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죄악된 세상을 방황하다가
천국과 지옥도 나는 몰랐네
고집대로 영 죽을 험한 세상이
왜 그리 더러운지 이제야 아네
불 속에라도 들어가서
불 속에라도 들어가서
세상에 널리 전하리
주의 사랑을
무엇이 그렇게 간절했으면 불 속이라도 들어가겠다고 고백하는 걸까요?
이 찬송시를 쓰신 최수동 목사님의 간증을 듣기 전까지 그저 믿음 좋은 분이 주님을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했지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최수동 목사님은 1945년, 일본으로부터 해방을 맞이한 그 해, 11월에 태어나셨습니다.
그 당시를 살았던 우리의 어르신들이 대부분 그러하셨지만 그의 일생은 대한민국의 험한 세월을 오롯이 담고 있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에는 1.4 후퇴 때 황해도에서부터 피난길에 올랐습니다.또 일찍 부모님을 여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돌봐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는 방황하며 청소년기를 보냅니다.
그의 일생의 새로운 전기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면서 찾아옵니다. 그는 해병대 하사관으로 지원하여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지만 덕분에 귀국하여 결혼도 하고 사업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경기도 여주에서 건축 인테리어, 페인트, 아치탑 제작 사업 등을 하였고 13년 간은 순풍에 돛을 단 듯 회사가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회사가 파산하게 됩니다.
그는 또다시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노동자로 떠날 결심을 합니다.
대신종합건설 건설현장에서 현장 감독관으로 근무 중에, 1983년 39세 때, 건설 현장의 중장비 기사가 무려 세 차례나 과실을 범해 최수동 목사는 이국에서 두 다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한국 순천향대학 병원으로 이송해 와서 1년 6개월 동안 9번의 대수술, 그리고 38명의 수혈 끝에 목숨을 건졌지만 지금까지 절단 부위의 통증은 계속 됩니다.
2. 탕자를 살려준 주님 말씀에
죄인의 두 다리 묻어 두었네
아들이여 일어나 내 손을 잡고
남은 몸 모든 영혼 바치라 하네
이 가사는 이국 땅 사우디아라비아에 자신의 두 다리를 묻고 고국으로 귀환한 본인의 경험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자신의 두 다리를 잃게 만든 이를 용서하는 일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용서하라”는 음성을 들려주셨지만 그의 마음에는
‘내가 받은 고통을 그도 받아야 한다.’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를 감옥으로 보내 평생을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병원에서의 1년 6개월은 평안을 잃고 염려와 걱정, 불안이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심방을 찾아와도 감사가 없고 찬양이나 말씀도 자신을 위로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마다 병원을 찾아와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 층마다 한 곡씩 부르며 올라갔는데 그 찬양 소리에 그동안 쌓였던 미움의 마음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죄와 용서의 문제, 그리고 온전한 믿음
그 순간 그는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죄를 발견하였습니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18:8)
그가 두 다리를 잃은 것은 그 동안 믿음 없이 교회만 다녔던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용서할 수 없었던 중장비 기사도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죄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는지 주님께 물어보았을 때 주님께서는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8:22) 7x70번을 용서하라고 하셨으니 산술적으로는 490번이지만 실재로는 무한히 용서하라는 뜻입니다.
그 동안에도 숱하게 듣고 읽었던 이 말씀이 그제서야 마음에 깊이 울려펴졌습니다.
그러면서 휠체어가 아닌 두 다리로 설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 9:23)
비록 지금도 두 다리의 상처부위는 짓무르기도 하고 통증이 따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 불 속에라도 뛰어 들어갈 열정을 가진 최수동 목사님은 병원 선교에서부터 교도소, 고아원, 찬양사역까지 세상의 약자들을 섬기는 일에 앞장 서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약함으로 인해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그 약함을 통해 주님을 찾을 때 우리 삶의 주인 되시며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만나 주시고 우리를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그 주님을 만나면 다음과 같이 고백하게 됩니다.
3. 골고다 언덕길 오르신 예수
추수할 일꾼들 찾아 부르네
거친 바다 험한 산 피가 맺혀도
십자가 내가 지고 끝내 이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