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세계대전과 냉전체제
제1장 제1차 세계대전과 국제질서의 형성과정
Ⅰ제1차세계대전
1. 제국주의 열강 대립 격화
가. 독일의 발전과 세계정책
독일통일(독일 제2제국 1871~1917) 이후 비약적인 성장은 영국. France 중심의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체제 위협
독일제국TLS
독일 제1제국 | 962~1806 | 신성로마제국 |
독일 제2제국 | 1871~1917 | Bismarck제국 |
독일 제3제국 | 1933~1945 | Nazis 독일 |
나. Bismarck의 대외정책
Europe의 현상유지. France 고립정책 추구하며 1882년 3국동맹(독일. Italy. Austrian-Hungarian Empire. 1882~1914)
1872년 3제동맹(三帝同盟) :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1882년 3국동맹(삼국동맹) :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2. 삼국동맹과 삼국협상의 대립
가. 독일 Wilhelm 2세의 팽창정책 : 적극적인 팽창정책. Pan-Germanism. 3B (독일 Berlin, 오스만 투르크 Byzantium(현 Istanbul). 이라크 Bagdad) 정책
나. 삼국협상 결성(三國協商, Triple Entente. 1907) : 독일의 팽창에 위협을 느낀 영국. France. Russia
1894년 러프동맹
1904년 영프협상
1907년 영러협상→3국협상

다. 영국의 3C(Cairo Capetown Calcutta)정책 : 독일의 3B정책에 대항
라. 모로코 사건(Moroccan crises)
1905년과 1911년에 모로코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에워싸고 일어난 독일, 프랑스 제3공화정,
스페인 왕국 사이의 분쟁
위기 | 연대 | 종결 |
제1차 모로코 위기(First Moroccan Crisis) : 탕헤르 위기 | 1905.3~1906.5 | 알헤시라스 회담 (Algeciras Conference) |
제2차 모로코 위기(Second Moroccan Crisis) : 아가디르 위기 | 1911년 7월 1일~1911년 11월 4일 |
프랑스 : 모로코 우위 인정
독일 : 프랑스령 콩고 영토의 일부를 할양받음
스페인 : 영국의 중재를 통해 1911년 11월 27일 프랑스-스페인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모로코에서의 프랑스-스페인 경계를 약간 수정
Ⅱ. 발칸 반도의 위기
1. 19세기의 정세
다양한 민족 구성. 열강의 이해관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1867~1918)과 오스만 제국(1299~1922)의 약화 → 각 민족의 민족주의 운동(nationalist movement) 전개
2. Pan-Slavianism v. Pan-Germanism의 대립
Russia가 Balkan 반도에 영향력을 과시하며 범슬라브주의(Pan-Slavianism)를 주장하자 이에 대항하여 독일 Austria-Hungary제국이 범게르만주의(Pan-Germanism) 주장
3. 발칸전쟁(the Balkan Wars. 1912~1913)
가. Austria-Hungary의 Bosnia-Herzegovina 강제 병합(倂合) → Serbia 반발 → the Balkan 동맹 결성
나. 발칸전쟁
⑴ 제1차발칸전쟁(1912년 10월~ 1913년 5월)
⑵ 제2차발칸전쟁(1913년 6월~1913년 8월)
전쟁 | 교전당사자 | 결과 |
제1차발칸전쟁(1912년 10월~ 1913년 5월) | 발칸 동맹(그리스, 몬테네그로, 불가리아, 세르비아)과 오스만 제국 | 오스만 제국 패배 |
제2차발칸전쟁(1913년 6월~1913년 8월) | 불가리아와 (그리스, 세르비아. 루마니아, 몬테네그로, 오스만 제국) | 불가리아 패배. Serbia 영토확장 시도. Austria-Hungary개입으로 실패 |

4. 사라예보 사건과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가. 사라예보사건 (Assassination of Sarajevo)
1914년 6월 28일 현재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인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폰 외스터라이히에스테 대공과 조피 초테크 폰 호엔베르크 여공작 부부가 청년 보스니아라는 민족주의 조직에 속한 18세의 청년이자 대학생이었던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된 사건 제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
나.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
⑴ 1914.7.28. Austria-Hungary의 Serbia에 대한 선전포고
⑵ 동맹국과 협상국의 참전(전쟁 개입)
Ⅲ. 제1차 세계대전
1. 초기 전황
독일의 Belgium 침략. France로 진격 →마른 전투와 솜(Somme) 전투에서 전선 교착(交錯, deadlock. standstill)
2. 전세의 변화
가. 미국의 참전
⑴ 영국과 France의 북해 봉쇄
⑵ 1917.2 독일의 무제한 잠수작전
⑶ 국제여론 악화되자 미국이 1917. 4. 협상국에 가담하여 참전
나. Russia의 전선 이탈
⑴ 1917년 Russia 혁명
⑵ 독일과 단독 강화 체결
교전당사자 | 협상국 | 동맹국 |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벨기에. 이탈리아. 사우디아라비아. 포르투갈. 루마니아. 그리스. 중화민국. 브라질. 미국. 태국. 라이베리아. 기타 협상국 |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제국. 불가리아. 기타 동맹국 |
| 피해 규모 | |
병사사망자 | 5,525,000명 | 4,386,000명 |
병사 부상자 | 12,831,500명 | 8,388,000명 |
병사실종자 | 4,121,000명 | 3,629,000명 |
총계 | 22,477,500명 | 16,403,000명 |
태평천국의 난(太平天國亂, 長毛亂. 長髮亂)(1850~1964) 사망자
제2차세계대전 사망자 1522.8만명
역사상 가장 인명 피해가 많은 전쟁
순위 | 사건 | 사망자 |
1 | 제2차세계대전(1939~1945) | 사망자 70,000,000명 ~ 130,000,000명 |
2 | 모택동의 대학살(1958~60) | 40,000,000명 |
3 | 몽골의 정복전쟁(1206~1368) | 40,000,000명 |
4 | 안사의 난(755~763) | 36,000,000명 |
5 | 명나라의 멸망(1618~1644) | 25,000,000명 |
6 | 스탈린의 대학살(1922~1953) | 20,000,000명 |
7 | 태평천국의 난(1850~1864) | 20,000,000명~70,000,000명 |
8 | 티무르 정복전쟁(1336~1405) | 17,000,000명 |
9 | 제1차세계대전(1914~1918) | 15,000,000명 |
10 | 러시아 내전(적백내전)(1917~1923) | 9,000,000명 |
3. 전쟁의 종결
가. 오스만제국. Austria-Hungary. Bulgaria 등 동맹국 잇다른 항복
나. 독일
⑴ Kiel 군항 수병들의 반란
⑵ Wilhelm 2세 퇴위, 공화국 선포
⑶ 휴전조약 체결
4. 전쟁의 영향
가. 총력전(total war) : 전쟁을 위해 생필품 배급 및 가격 통제. 인력 동원
나. 신무기(대형대포. 기관총. 탱크. 비행기. 잠수함. 어뢰 등) 개발로 전쟁 피해 확대
국가 | 사망(만명) | 군비(억달러) |
영국 | 90 | 690 |
프랑스 | 138 | 472 |
러시아 | 170 | 327 |
이탈리아 | 46 | 236 |
미국 | 5 | 400 |
독일 | 169 | 709 |
오스트리아-헝가리 | 80 | 382 |
합계 | 698만 | 3.216억달러 |
구분 | 제1차세계대전 | 제2차세계대전 |
기간 | 1914.7. 28 ~1918.11.11 | 1939.9.1~1945.9.2 |
개요 | Europe을 중심으로 한 동맹국과 연합국간의 전쟁 | 독일·이탈리아·일본의 추축국과 프랑스·영국·미국·소련·중국의 연합국 간의 전쟁 |
원인 | 1914.6.28 Sarajevo 사건(Franz Ferdinand 대공 부처 암살) 범게르만주의(독일, Austria)와 범슬라브주의(Russia)의 대립
| 1. 제1차 세계대전시 메해결 문제 폭발 2. 세계대공항 3. 전체주의 국가의 대두 |
교전국 | 협상국 | 동맹국 | 연합국 | 추축국 |
대영제국.러시아 제국(~1917). 프랑스 식민 제국. 벨기에. 몬테네그로 왕국. 일본 제국. | 독일제국. Austria-Hungary 제국. Ottoman 제국. Bulgaria 왕국(1915년 | 미국. 소련. 영국.자유프랑스. 중화민국 | 나치 독일. 일본제국. Italy왕국(~1943), Italy 사회 공화국(1943~1945) |
경과 | 협상국의 승리 | 연합국의 승리 |
종결조약 | Treaty of Versailles | San Francisco Peace Conference |
피해 | 연합국 | 연합국 |
사망(군) :5,525,000명 부상(군): 12,831,500명 실종: 4,121,000명 | 동맹국 | 군인 1,600만 명 이상 | 추축국 |
민간인 4,500만 명 이상 | 군인 800만 명 이상 |
총사상자 22,477,500명 | 사망(군): 4,386,000명 부상(군): 8,388,000명 실종: 3,629,000명 | 6,100만 명 이상 | 민간인 400만 명 이상 |
영향 | 1. 연합국의 승리 사상자: 16,403,000명 2. 동맹국의 국가해체 3. 중동과 유럽의 국가독립 4. 국제연맹(1919~1945)창설 | 총 사상자 16,403,000명 | 1. 식민 제국들의 몰락 2. 국제연합 창설(1945~) 3. 미국, 소련 초강대국 등극 4. 냉전 체제의 시작 | 1,200만 명 이상 |
국제기구 | 국제연맹(1919~1945) | 국제연합(1945~) |
제2절 러시아 혁명
Ⅰ. 배경
1. 노동자 계급의 성장
19세기 후반 국가 주도의 산업혁명 전개로 노동자 계급 등장
2. 사회주의 사상의 유입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설립으로 사회주의 사상 선전
3. 피의 일요일 사건(1905)
가. czar의 전제정치 지속
나. 러일전쟁(1904~1905) 패배
다. 노동자 파업, 입헌정치 요구 시위
라. 정부의 강경한 진압으로 수많은 사상자 발생
마. Duma 설치 등 사회개혁 약속
Ⅱ. 러시아 혁명(1917년.3월.11월.)
1. 3월 혁명(러시아력 2월 혁명)
1917년 3월 수도 Petrograd(현재 Leningrad)에서 노동자와 병사들이 조직힌 Soviet(노병회)가 일으킨 혁명으로 황제 Nikolai2세가 퇴위하고 Kerensky(1881~1970)를 수반으로 하는 자유주의적 임시정부 수립
2. 11월 혁명(러시아력 10월 혁명)
스위스에서 귀국한 Lenin이 Trotsky와 더불어 소비에트에 세력을 부식하고 있던 Volsheviks를 중심으로 무력혁명을 일으켜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혁명직후 실시된 선거에서 제1당이 되지 못하자 쿠데타로 의회를 해산하고 1당독재정권을 수립하고 1922년말 USSR을 수립하였다.
러시아 3월혁명과 11월 혁명
구분 | 3월 혁명 | 11월 혁명 |
배경 | czar의 전제정치. 제1차세계대전으로 인한 궁핍한 생활 | 임시정부 개혁 실패. 전쟁의 지속 |
경과 | Soviet 결성 | Lenin. Trotsky가 볼셰비키(the Bolsheviki, 다수파) 이끌고 혁명 전개 |
결과 | 제정(帝政) 붕과. 임시정부 수립 | 임시정부 타도. Soviet(노농평의회) 정권 수립 |
the Bolsheviki(다수파) the Mensheviki(소수파)
Ⅲ. 혁명의 결과
1. Lenin의 정책
가. 의회 해산. 일당 독재 선언. 전쟁중지(브레스트-리토프스키조약. Treaties of Brest-Litovsk)
브레스트-리토프스키조약(Treaties of Brest-Litovsk)
벨라루스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 동맹국(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불가리아 왕국, 오스만 제국)이 우크라이나 공화국(1918. 2. 9)과 소비에트 러시아 볼셰비키 정권(1918. 3. 3)을 상대로 체결한 평화조약.
나. 토지개혁. 신업시설의 국유화로 경제악화. 신경제정첵(NEP) 실시
다. 반혁명세력 진압. 1922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 수립(1991.12.18.해체)
라. Comintern(1919년에 설립된 각국 공산당들의 연합, 제3차 인터내셔널)건설. 노동운동과 식민지 해방운동 지원 선언. 사회주의 확산
▶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1. 제1인터내셔널(第一인터내셔널, The First International, 1864~1872)
일명 국제노동자협회(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라고도 하며 1864년 9월 런던에서 열린 노동자국제회의에서 결성됐다. 마르크스가 기초한 창립선언서와 규약에 따르면 그는 규약에서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스스로의 손에 의해 획득돼야 하며 노동자 계급의 투쟁은 일체의 계급적 지배 철폐를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초기에는 노동자의 공통적 이해관계에 기반을 둔 각국의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사조의 조직이나 개인의 집합체였으나 점차 마르크스주의파가 사상적으로 지배하게 됐다. 71년 파리 코뮌이 실패하고 72년 헤이그 대회에서 마르크스파와 바쿠닌의 무정부주의파가 격렬히 대립해 무정부주의파가 패배하자 집행기관인 총무위원회가 런던에서 뉴욕으로 옮겨가면서 사실상 해체됐다
2. 제2인터내셔널(Second International, 1989~1912)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ocialist International)이라고도 하며 19세기의 마지막 10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초까지 유럽 노동운동의 이데올로기·정책·방법에 큰 영향을 끼친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조합들의 동맹으로 제2인터내셔널은 1889년 파리에서 개최된 한 회의에서 창립되었다. 제1인터내셔널과 달리 제2인터내셔널은 각국을 대표하는 정당과 노동조합들에게만 회원 자격이 인정되었다. 그것은 또한 제1인터내셔널과 같은 중앙집권적인 조직이 아니라 느슨한 연합체의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창설된 지 11년 후에야 집행기관인 국제사회주의 사무국(International Socialist Bureau)이 설치되었다. 본부는 브뤼셀에 있었는데, 1891년 제2인터내셔널의 제2차 대회가 브뤼셀에서 열렸다. 대회는 연례적으로 개최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간 간격으로 여러 도시를 순회하면서 진행되었다. 1912년까지 제2인터내셔널은 유럽 국가들 및 미국·캐나다·일본의 사회주의 정당들을 대표했으며, 이렇게 하여 제2인터내셔널을 지지하는 세계의 유권자는 약 900만 명에 달하는 큰 세력으로 성장했다. 위임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제2인터내셔널은 회원 정당들에 의해 도덕적인 최고 권위로 인정되었다.
제2인터내셔널은 의회제 민주주의를 지지했으며, 마침내 의회민주주의에 반대하는 무정부주의자들을 1896년 런던 대회에서 축출했다. 그러나 열띤 논쟁 끝에 제2인터내셔널은 내각에 참여한 비사회주의 정당들과의 협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사회주의 사회를 형성할 수 있다는 이론을 물리치고 마르크스주의의 계급투쟁 이론과 혁명의 불가피성을 재천명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주요관심사는 전쟁의 방지였고 장시간의 토론 후 임박한 전쟁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총파업을 이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또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은 국가간의 분쟁해결을 위한 의무적인 중재재판제도의 도입, 완전한 무장해제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는 군비축소, 비밀외교의 폐지, 외교정책에 관한 의회책임제도의 수립을 요구했다. 그러나 레닌, 로자 룩셈부르크, L. 마르토프가 초안해 1907년 슈투트가르트 대회에서 채택된 결의안은 전쟁으로 야기된 사회적·경제적 위기를 이용해 사회주의 혁명을 촉진하겠다는 서약을 교전국의 회원 정당들에게 요구했다.
3. Communist International 공산당(제3) 인터내셔널 (Comintern, 공산당의 국제적 동맹, 1919-43) 제3차 인처내셔널
코민테른(the Communist International, Comintern, 공산당의 국제적 동맹, 1919-43)
제3당, 공산당이터내셔널 혹은 제3인터내셔널은 Vladimir Lenin의 발기에 의해 1919년 3월 창설되어 1943년 5월 15일 해체된 마르크스-레닌주의당의 국제적 조직체이다.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승리한 이후 일련의 나라들에서 창건된 공산당들이 아직 장성하는 혁명운동을 독자적으로 지도하리만큼 충분히 준비되여 있지 못하였던 조건에서 각국 공산당들을 통일적으로 지도할수 있는 국제적인 조직체가 요구되였다. 국제공산당은 이러한 요구를 반영하여 창건되였다. 국제공산당은 레닌에 의하여 준비되고 실현되였다.
1914년 11월 사회배회주의로 굴러떨어진 제2 인터내셔널과의 결렬을 선포한 레닌은 사회민주당들의 대표회의(1918년 1월 페트로그라드), 각국 공산당의 좌익조직들의 대표회의(1919년 1월 모스크바)를 소집하고 국제공산당창건문제를 토의하였으며 창건될 당의 목적, 전략전술, 조직원칙들을 밝혔다.
1919년 3월 2일부터 6일 사이에 레닌의 지도밑에 모스크바에서 30개 나라의 35개 공산당, 좌익정당 및 그루빠들에서 온 52명의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국제공산당창건대회가 열렸다. 대회는 국제공산당창건을 선포하고 그 정강을 심의채택하였다. 국제공산당의 목적은 각국 공산당들사이의 연계를 강화하고 그들의 활동을 통일적으로 지도함으로써 자본주의제도를 전복하고 프로레타리아독재를 세우며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는것이였다. 국제공산당규약은 레닌적당생활원칙에 근거하여 국제공산당의 기구와 지도기관들의 기능을 규정하였다. 국제공산당의 최고기관은 대회이고 대회와 대회사이의 지도기관은 집행위원회였으며 당의 일상사업은 집행위원회가 선거한 상무위원회가 지도하였다. 매개 나라에는 1국1당의 원칙에 따라 국제공산당지부를 두었다. 국제공산당은 창건되여 해산될 때까지 7차례의 대회를 가지였다.
4. 코민포름(Cominform, 1947~1956)
코민포름(공산당정보국, Cominform, Communist Information Bureau)은 소련의 후원 아래 1947년 9월 폴란드의 빌차구라에서 소련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프랑스 이탈리아의 9개국 공산당 대표자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모여 설치하기로 한 국제공산당의 정보기관으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이름 아래 각국 공산당의 연대 및 조화를 꾀하고자 결성된 것이었으나 1948년 유고슬라비아가 탈퇴하고 동독이 대신 가입하는 등 국가간에 동요를 일으켜 1956년 4월 17일 '공산당 정보국'은 해산됐다.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의 후기 단계와 마찬가지로 코민포름도 국제혁명의 도구라기보다는 소련의 정책을 추진하는 도구로 더 많이 이용되었다.
제1인터내셔널(First International) | 1864년 9월 28일 런던의 세인트 마틴 홀 ~1881 | 국제노동자연합(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 |
제2인터내셔널(Second International) | 1889~1917 |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ocialist International) |
제3인터내셔널 | 1919년 3월~1943년 5월 | 공산주의 인터내셔널(Communist International) |
2. 이오세프 스탈린(Joseph Stalin. 소련 공산당 서기장(1922~53)과 국가평의회 주석(1941~53))의 집권
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28~32.1933.~37. 1938~42) 추진
중공업 육성. 농업 집단화 → 사회주의 경제 건설
나. 독제체제 강화 :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 수용소 설치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 1917~24 |
요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 | 1924~53 |
그리고리 막시밀리아노비치 말렌코프 | 1953 |
니키타 세르게예비치 흐루시초프 | 1953~64 |
레오니드 일리치 브레주네프 | 1964~82 |
유리 블라디미로비치 안드로포프 | 1982~84 |
콘스탄틴 우스티노비치 체르넨코 | 1984~85 |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 | 1985~90 |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 대통령 | 1990~91 |
보리스 옐친 | 1991~2000 |
블라디미르 푸틴 | 2000~ 2008.5 |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 2008.5~2012.5~ |
블라디미르 푸틴 | 2012.5~ |
제3절 베르사이유 체제의 성립과 변화
Ⅰ. 베르사이유 체제
1. 파리강회회의
가. 전후처리 논의. 새로운 국제질서 모색
나. 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의 14개 원칙 : 민족자결주의 포함
1918년 Woodrow Wilson 대통령의 1.8 연두교서 14항(Fourteen Points)과 2. 11 영구평화의 4원칙
가. Wilson의 14개항
1) 비밀외교의 폐지와 공개외교의 수립
2) 해양의 자유
3) 경제장벽의 철폐
4) 군비축소
5) 식민지요구의 공평한 조정
6) 러시아재건에 대한 원조
7) Belgium의 회복
8) 폴란드의 독립과 해양 출구 제공
9) Alsace・Lorraine의 반환
10) Italy국경의 재조정
11) Austria・Hungary內 제민족의 자결
12) Balkan States의 부흥
13) Turkey 제민족의 자결과 Dardanelles 해협의 국제화
14) 국제연맹의 창설
나. 4원칙(Four Principles)
1) 모든 특정한 문제의 최종해결은 그 특정한 사안에 관한 본질적인 정의에 입각해야 된다.
2) 人民들과 지역들은 국가들간의 흥정으로 교환되어서는 안된다.
3) 모든 영토적 해결은 관계주민들의 이해와 합치되어야 한다.
4) 모든 민족적인 요소들은 최대의 만족을 받아야 한다.
2. 베르사이유 조약
가. 독일의 해외식민지 상실. 영토 축소. 배상금 부담. 국비축소
나. 한계
전승국의 식민지에는 민족자결주의 원칙 미적용
3. 국제연맹의 창설
가. 전쟁 재발 방지를 위한 최초의 국제평화기구
나. 한계
미국 불참. 돇일과 소련 배제. 군사적 제제 수단 없음. 만장일치체
Ⅱ. Asia, Africa의 반제국주의 민족운동
1. 중국의 민족운동과 국민 혁명
가. 5 · 4운동
(1) 중국의 정세 : 위안스카이의 재정 부활 기도, 제국주의 침략 가속화, 중국 근대자본의 성장 및 근대 교육 기관 증가
(2) 신문화 운동 : 천두슈, 후스 등 지식인 - 유교중심의 전통문화 비판,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서양 사상을 바탕으로 한 신문화 창조 → 학생들의 민족의식 각성 촉구
(3) 5 · 4 운동(1919. 5. 4)
① 배경 : 파리강화 회의에서 일본의 21개조 요구 수용 및 산둥반도 이권 양도
② 전개 : 베이징 대학생 중심 - 산둥반도 반환, 21개조 요구 철폐, 군벌 타도, 반일 등 주장 → 노동자, 상인들의 가세로 전국적인 대중운동으로 발전
나. 국민 혁명의 진전
(1) 중국 국민당 결성 : 5·4운동의 영향 - 광둥정부 수립, 베이징 군벌정부와 대립
(2) 제1차 국공 합작(1924) : 군벌 타도, 반제국주의
(3) 국민혁명(1928) : 장제스 - 북벌 단행, 국민당 내 공산당 축출, 중국 통일(베이징 점령)
(4) 공산당의 대장정 : 농촌을 거점으로 유격전과 토지제도 개혁을 통해 세력 확대 → 소비에트 임시정부 수립(루이진) → 국민당 정부의 공격 → 공산당의 대장정(1935)
다. 항일 전쟁의 전개
(1) 일본의 대륙 침략 : 만주국(1932), 중·일 전쟁(1937)
(2) 제2차 국공 합작(1937. 9) : 중국 공산당의 항일 통일 전선 제의 → 시안사건으로 2차 국공합작 → 항일전쟁 전개
3. 아시아 · 아프리카의 반제국주의 운동
가. 우리나라의 독립 운동
(1) 일본의 한국 지배 : 헌병 경찰을 동원한 무단 통치, 토지 조사사업을 통한 토지 약탈
(2) 독립 운동 전개 : 독립운동 단체 결성, 독립운동 기지 건설
(3) 3·1운동 :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영향 -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만주의 무장투쟁 전개, 아시아 지역 민족운동에 영향
나. 동남 아시아의 민족운동
(1) 베트남 : 호치민 - 인도차이나 공산당 조직(1929, 홍콩), 프랑스로부터의 독립 운동 주도
(2) 인도네시아 : 수카르노 - 인도네시아 국민당 결성(1927), 반제국주의와 반식민주의 민족운동 전개
(3) 태국 : 제1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불평등 조약 개정, 청년 장교들의 혁명으로 입헌군주체제 성립
다. 인도의 민족운동
(1) 영국의 식민통치
① 인도 통치법 : 선거권 제한 - 전 인도인의 2%
② 로래트법(치안 유지법) : 언론자유 탄압, 재판 없이 투옥
(2) 간디의 민족운동
① 로래트 법의 폐지와 완전 자치 주장
② 사차그라하(진리의 장악) 운동 전개 - 종교와 카스트, 인종으로 분열된 인도 통합
③ 인도국민회의 : 비폭력, 불복종 운동, 영국 상품 불매, 납세 거부 운동 - 전인도 무슬립 연맹의 지지로 확산
(3) 네루의 민족운동 : 인도 독립동맹 결성(1928) - 무력으로 영국 식민 지배에 저항
(4) 영국의 대응 : 신인도 통치법을 통해 각 주의 자치 인정(1935), 군사권과 외교권은 영국의 인도 총독 관할 → 반영운동 지속
라. 서아시아의 민족운동
(1) 터키의 민족운동
① 오스만제국의 멸망 : 세브르 조약(1920)으로 비투르크 거주지역 상실
② 케말 파샤 : 투르크 국민당 결성, 임시정부 수립, 슐탄제도 폐지, 불평등 조약 개정 → 터키 공화국 수립(1923)
③ 터키의 근대화 : 정교의 분리, 여성의 지위 향상, 근대적 교육제도의 실시
(2) 서아시아 민족주의 : 막대한 양의 석유 매장 → 서양 열강의 이목 집중 → 영국과 프랑스가 이라크,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 위임 통치 → 아랍 민족주의 유발
(3) 이라크 : 반영운동을 통해 독립 달성(1931)
(4) 이란 : 레자 한의 반영운동 - 팔레비 왕조 수립, 불평등 조약 개정(1925)
(5) 팔레스타인 지방
① 후세인-맥마흔 협정 : 아랍인의 독립 약속
② 밸푸어 선언 : 유대 인의 국가 건설 약속
마. 아프리카의 민족운동
(1) 이집트 : 와하프 당의 독립 운동 - 영국은 군사 주둔권과 수에즈 운하의 관리권을 자진 채 이집트의 명목상 독립 인정(1923)
(2) 사하라 사막 이북 : 에스파냐령 모로코 자치 약속, 튀니지, 알제리, 리비아 독립 운동
(3) 사하라 사막 이남 : 범아프리카주의 대두 - 아프리카인의 각성과 자치권 획득 운동 전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