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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선생이 온 몸을 불태우며 절규했던 70년대나 지금이나,
하루 수 십명 수백명이 노동현장에서 사망하거나 다치는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며칠 전 타이랜드에서 제기해온, 지난 5년 동안 한국에서 태국인 노동자 500명이 일하다 사망했다고.
아래 글은 2000년대 중반 쯤, 그러니까 약 15~6년 전에 수도권 변두리 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의 기록들을
소설형식으로 구성한 거다.
아미츠의 눈물, 그리고 석양 ///////// 글쓴이: 이서림
태양이 헉헉대며 콘크리트 바닥에 쏟아졌다. 뭔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다 활화산처럼. 엄청난 폭발력이 어디선가 꿈틀대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마음을 가다듬고 둘러보면 모두들 평화롭다 못해 묘지처럼 적막하다.
마당 한쪽 나란히 서 있는 2.5톤 납품용 트럭 세 대가 성난 태양의 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게 그렇고, 주차장에서 큰길가 쪽으로 길게 엎드려 무료해 보이는 사무실이 그렇고, 그 옆으로 꽃과 나무 몇 그루, 건성으로 심겨진 화단 꽃들의 새침한 모습이 그렇고, 주차장 입구에서 내다보이는 길 건너편 들녘의 녹색지대가 그렇다.
스리랑카 사람 차미와 카심, 방글라데시 사람 우딘과 이누가 들어가 있는 컨테이너 박스도 마찬가지다. 곳곳에 녹물이 흘러내려 폭포수 모양을 이룬 모습 하며, 안이 보이지 않게 신문지나 달력으로 덧붙여진 창문이 닫혀진 그대로 내리쏟는 햇살에도 의연하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다가 빠레트에 그대로 벌렁 누워 코를 고는 조립반의 최성묵 씨가 그렇고, 소각장 쪽으로 난 뒷문을 활짝 열어제끼고 앉아 저마다 담배 한 대 씩을 물고 있는 도장반의 오필석 씨와 안기수 씨가 그렇다. 그밖에 조립반의 김영애씨 등과 재단반원들, 보링 기사와 납품기사 등등의, 열댓 명이 공장 내 이 구석 저 구석에 각개 각 진으로 흩어져 앉아 있거나 누워 있다. 그들은 별로 얘기를 하지 않았고, 작업장 곳곳을 살피며 돌아다니는 공장장의 뒤꽁무니에 시선을 매단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런 주변을 돌아보다가 그만 머리가 띵, 하고 울려오는 현기증을 느끼며 도장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나마 내가 앉아 있을만 한 곳은 도장 반이었다.
“서림씨, 어디 아파?”
담배꽁초를 집어던지려던 동작을 멈춘 안기수 씨가 놀란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아뇨. 그냥 좀, 어지러워서요.”
“그러게, 일 좀 눈치껏 쉬어 가면서 하라니까, 말을 안 들어. 그런다고 월급 더 받는 것도 아닌데 말야. 열심히 하는 거야 좋지만, 그 말라비틀어진 몸도 생각해야지. 누가 보면 아프리카에서 방금 온 사람인 줄 알겠다.”
안기수는 자신의 옆에 박스 쪼가리를 펴 보이며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일이야 내가 좋아서 하는 거지 뭐,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하면 못할 거예요.”
안기수가 만들어 놓은 자리에 엉덩이를 내려놓는 순간에도 현기증을 느꼈다. 그런 현상은 특히 여름에 자주 왔다. 장마철이면 더욱 기세를 떨치는 화장실 냄새와 음습하고 끈적한 쓰레기 냄새 때문일 거였다.
20대 중반, 곰팡이 냄새와 화장실 냄새 진동하는 공장에서 한 달을 채우지 못했다. 당연(?)히, 그동안 일한 임금은 받지 못한 채 들어간 곳은 부자들이 모여 사는 서울 부촌 아파트의 가정부였다. 24시간 근무상태나 다름없는 그 자리에 내가 마음을 둔 건, 깨끗한 방 한 칸을 홀로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러사람들의 숨소리와 입김이 뒤섞인 공간에서 24시간을 보낸다는 건 지옥이었고, 오로지 나만의 공간이 내겐 그 무엇보다도 절실했다.
나보다 몇 살 위인 주인 여자는 그 때 막 첫 딸을 출산한지 2개월이 된 이십 대 후반의 여자였다. 나를 처음 대면한 그 여자는 “아니, 왜 이렇게 젊어?” 외마디 비명에 가까운 말을 내뱉었다.
젊은 주인 여자는 어느 문화재단의 바이올리니스트였는데, 틈날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우수한 수재였는가를 설명해 주었다. 그런 말을 할 때의 여자는, 선생님께 처음으로 칭찬을 받은 유치원생처럼 천진했다.
검고 윤기가 흐르는 긴 머리에 선이 굵은 웨이브 파마를 한 여자는, 피부 또한 희고 고왔다. 그 여자가 움직일 때마다 검은 파도가 머리에서 허리께까지 넘실거렸고, 희디흰 이마 밑에 두 개의 검은 호수는 누군가 풍덩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휑뎅그레 빛이 났다.
모두들 제각각 시계를 들여다보며 자신이 일하는 위치로 향했다. 이곳 사람들은 그렇게 단 일 분의 오차도 없이 각자 알아서 행동했다. 쉬는 시간이 돼도 누구 하나 같이 나가자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각자 슬그머니 시계를 들여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빠져나가 식당 입구에 설치된 자판기 쪽으로 가버리곤 했다. 그나마 내게 쉬는 시간을 챙겨 주는 건 외국인들이었다. 그들 중에 누구든지 한 사람은 내 곁에 다가와서는 ‘티 타임야!’ 혹은, ‘쉬는 시간이야.’
“이서림, 오늘도 잔업 하는 거 알지?”
사십 대 후반의 공장장은 눈꼬리를 치켜뜨고 부러 매서운 눈초리를 해 보이며 말을 끝내자마자 홱 돌아섰다.
공장장을 처음 보았던 순간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흑백 스케치의 그림이 있었다. 앞쪽이 훌렁 벗겨진 머리하며, 냉혹하게 느껴지기에 충분한 강팍하게 메마른 얼굴. 어둠 속에서도 언제나 상대방을 의혹에 가득 차서 노려보는 눈초리, 바로 자베르 경감이었다. 죽을 때까지 장발장의 뒤를 쫓았던 자베르 경감.
“오늘은 빼줄 수 없나요?”
하나마나한 말인 걸 알면서도 나는 자베르의 등 뒤에 대고 무심코 말을 던졌다.
“집에 일찍 가서 뭐해? 눈 빠지게 기다리는 남자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잔업해서 돈 벌어야지. 놀면 남는 거 있어?”
“내가 남자가 있는지 없는지 공장장님이 어떻게 알죠?”
“애인 있으면 데리고 와봐.”
“애인 있는 게 확인되면, 잔업 빼줄 건가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지.”
말을 마친 자베르는 얼른 조립반 쪽으로 가버렸다.
보링 기계 앞에 서자 또다시 현기증이 찾아 왔다. 날씨 탓인지, 몸이 자꾸만 빙판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느낌이다. 어쩌면 어젯밤에 잠을 설친 탓인지도 모른다.
방글라데시안 우딘과 이누가 조립반에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게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렸다. 나는 잽싸게 보링기계를 작동시키고 재단반에서 넘어온 목재를 하나 씩 집어 올려 기계에 밀어 넣었다.
신도시 팔십 몇 평짜리 아파트에 들어간다는 ‘파우더 룸’ 경대 조립 목재는 유난히 무겁다. 무거울 뿐만 아니라 공정도 복잡하고 까다로워 조립반원들의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다. 게다가 0.몇 밀리의 오차도 허용치 않아 보링에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야! 이 새꺄? 누가 그 기계에 손대라고 했어! 엉?”
갑자기 자베르의 사나운 목소리가 공장을 뒤흔들었다. 그는 막 재단반에서 보링반 옆 조립반과 나란히 자리한 포장반 쪽을 쳐다보며 소리치고 있었다. 그리고는 황급하게 걸음을 옮기며 다시 한번 더 소리를 질렀다. 그의 동그랗게 원을 그려놓은 듯한 눈에는 먹잇감을 발견한 푸르른 집념이 번뜩였고, 그와 동시 고함소리에 놀란 스리랑카 사람 카심이 얼른 고개를 들어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카심의 툭 붉어진 눈동자는 그 순간 더 앞으로 튀어나와 있었고, 불가사리를 뒤집어 놓은 듯한 입술도 덩달아 삐죽거렸다. 나는 울컥 치미는 분을 삼키며 얼른 보링기에서 손을 떼고 카심 쪽으로 다가갔다.
카심은 완성된 문갑을 박스에 포장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밴딩기가 고장을 일으켜 포장용 끈이 뒤엉켜 버린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딴에는 어떻게 바로 잡아 보려고 기계 덮개 부분을 열어 뭔가를 눌렀던지, 끈이 제멋대로 풀어져 저만치 달아나고 있었다.
“잘해 보려다 그런 건데, 왜 그래요?”
나는 부러 큰 소리로 소리치듯 말했다.
“짜식이, 기계를 다룰 줄 모르면 가만히 있어야지! 왜 만지고 지랄야?”
자베르의 동그란 눈동자는 흰자위를 뒤집어쓰고 카심을 향해 번뜩였다.
“누군 처음부터 잘해요? 공장장님도 지난번, 새로 사온 일제 커터기를 잘못 작동시켜 고장냈잖아요!”
“야, 이서림! 네 할 일이나 해! 왜 참견하고 나서냐, 나서길!”
카심은 죄지은 사람처럼 앞쪽으로 두 손을 펴들고 가만히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며칠 전 그는 나를 불러 세워 자신의 손톱을 보여주었다. 손톱마다 하얀 점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것을 보라는 것이었다. 병리학적으로 본다면 뭔가 이상이 있는 징조였지만, 그렇다고 확실하게 아는 것도 없었다.
나는 살며시 카심의 곁으로 다가가서 속삭이듯이, 자베르를 가리키며 말했다.(he, let it be)
영문법상으로 맞는 말인지는 몰라도, 내가 그들과 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은, 상황에 맞게 영어단어를 떠올려 나열해 보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들은 문장을 고쳐주거나, 발음을 바로 잡아 주기도 했다.
스리랑카의 국어는 싱할라어였고, 몇 년 전에는 타밀어도 국어로 인정했다고 했다. 그러나 영국에 통치를 받았던 영향 탓인지, 공공기관에서의 문서는 주로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카심을 뒤로하고 보링기계 앞으로 다가가자 납품기사인 허 모 씨가 내 옆을 지나면서 혼잣말로, 그러나 모두가 들으란 듯이 “외제를 좋아하나 봐?” 내뱉고는 재단반 쪽으로 유유히 걸어갔다.
자칭 총각행세 하며 추근대는 인간이었다. 그가 정말 총각인지는 몰라도, 내가 가장 역겨워하는 군상 중 한 부류였다.
띵, 또다시 현기증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분명 수면 부족 탓 일 거였다. 새벽에 잠시 눈을 붙인 사이, 자꾸만 길고 긴 언덕빼기에서 미끄러져 내리고 있었다. 대각선으로 길게 늘어져 끝이 보이지 않는, 그러나 자꾸만 가야 한다고 믿었다. 노을 빛 곱게 물든 구름을 향해서 자꾸만 몸을 뒤틀었다.
방글라데시 사람 우딘이 다가왔다. 생김새로 보아서는 서양 사람인데, 피부는 검었다. 그렇다고 흑인처럼 아주 검은 것도 아니었다. 짙은 흑갈색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썩은 이를 드러내 보였다.
“쉬는 시간도 몰라?”
우딘은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가까이 다가왔다. “몸이 안 좋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좀 더 다가와 내 등에 손을 갖다 대며 말했다.
“이번 주 일요일에 놀러 가자.”
최근 들어 그는 내게 부쩍 놀러 가자고 졸라댔다. 어디를 가고 싶으냐고 물으면 그는 롯데월드, 에버랜드를 말했다. 내가 복잡한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는 다시 말을 바꾸어 바다를 가자고 했다.
“이누 씨와 셋이서라면 가고.”
“둘이 가야 재밌지, 셋이 뭐 하러 가?”
올해 36세인 우딘은 한국에 온지 육 년이 넘었다. 본국에는 부인과 7살 난 아들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는 아들이 막 태어나자마자 한국에 들어온 셈이었다.
“우딘씨, 날 여자로 생각하는 거예요?”
“여자가 아니면, 남자야?”
그는 짓궂은 표정으로 내 얼굴에 슬쩍 손을 갖다 대며 웃었다.
지난주 일요일이었다. 일이 바쁘다고, 특근을 하지 않으면 하루치 일당을 빼버리는 수가 있다며 자베르는 엄포를 놓았다. 그 말에 기분이 상하기는 했지만, 바쁜 것도 사실이어서 하는 수 없이 특근을 했었다. 그런데 그 날따라 우딘은 몇 번의 조립 실수로 조립반장 격인 김씨 아저씨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야, 우딘! 너 이 자식, 왜 자꾸 불량 내는 거야? 어제 잔업 끝나고 거기 안 갔다 왔어? 짜식이, 거기 쓸 힘있으면 일하는데 써야지 마!”
“잔업 했는데 언제 갔다와요?”
“그래도 그렇지 마! 그렇다고 불량 내면 어쩌자는 거야?”
“아이,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그 순간만큼은 자베르도 약간 너그러운 말투였다. 나는 뭔가 잡힐 듯 말 듯한 그들의 대화 내용이 궁금했다.
“저, 이누씨, 아까 전에 공장장하고 우딘 씨가 한 얘기는 뭐예요? 우딘 씨가 어디를 못 갔다는 거예요?”
“아, 그거?”
이누의 입가에는 알 수 없는 웃음이 스쳤다. 그 역시도 서양사람 같이 생겼으나, 피부는 갈색이었다. 나이에 비해 머리숱이 적었고, 자주 두통에 시달렸다. 후리후리한 키에 체구도 작았지만, 그에 몸 어디에도 살점 비슷한 게 붙어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왜요? 말해주면 안 되는 일인가요?”
“안되기는. 여자 만나러 가는 거야.”
“여자 친구가 있나보죠? 한국여잔가요?”
“그래. 어떻게 일만 하고 살아? 가끔 여자도 만나야 재밋지.”
“여자 만나면 뭐해요?”
“뭐, 밥 먹고, 술도 마시고. 그리고 여관가는 거지.”
“여관에 가서는 요?”
“서림씨, 몰라? 그거 있잖아. 여자하고 잠자는 거지. 남자는 다 똑 같아. 공장장님도, 사장님도. 남자는 다 그래.”
“그럼 돈 많이 들겠네요....... 아깝지 않아요? 힘들게 번 돈인데.”
“그런 재미도 없으면 어떻게 일해?”
저쪽 재단 반에서 차미와 카심이 이쪽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둘 다 스리랑카에서 왔다. 그들이 할 줄 아는 한국말은 단 두 단어뿐이다. 나빠? 잘해?
한국에 온지 이 년이 되어 가는 아미츠는 그래도 몇 마디 더 할 줄 알았다. 그는 한 달 전에 이곳을 그만 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를 향해 손을 들어 보인 차미와 카심도 다음주면 이곳에서 쫓겨가는 신세가 될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장에게 미운털 박혔다는 거. 어제 점심식사 도중에 사장은 모두에게 들어보란 듯이 큰소리로 업무지시를 하고 있었다.
“이 과장, 자아들, 스리랑카 아아들 말야. 이번 주 일 끝나면 보내 삐라. 바쁜 일거리도 끝났지 않나 말야.”
사장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제 공장장은 우딘에게 너네 친구들 중에 이곳에 올 사람 없냐고 묻는 걸 들었다. 오늘 낮에도 공장장은 우딘에게 똑같은 말을 하며 거의 조르다시피 하고 있었다.
스리랑카 사람들 셋이 이곳에 온 날은 유난히 햇살이 따갑던 삼월 말쯤이었다.
승합차라고 말하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승용차라고 표현하기도 애매한 카니발 뒷좌석에 실려진 그들은 약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운전석에는 얼핏보기에도 만만치 않은 사내가 건장한 체구로 버티고 있었고, 그 옆에는 피부가 검은, 그러니까 뒷좌석의 사람들과 비슷하게 생긴 남자가 웃음띤 얼굴로 운전석의 사내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주차장으로 들어서며 정차하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왠지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가끔 신문에서 머릿기사로만 지나쳤던 외국인노동자들에 관한 우딘과 이누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어쩌면 그래서일 것이다. 그들이 타고 온 카니발 승용차는 그 옛날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싣고 미국과 영국으로 향했던 노예선 같았고, 그들을 알선해 이곳에 온 한국인은 노예상인처럼 보였다.
제일 먼저 차에서 내린 조수석의 흑인이 내 앞을 가로막으며 ‘한국인야?’ 말했다. 그는 거의 발음도 정확하게 한국말을 하고 있었다.
어리둥절해진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던 그 남자는 뒷좌석의 문을 열고 세 사람을 내리게 했다. 그 남자의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는 등줄기를 타고 길게 늘어져 있는 데다, 내리쬐는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구리에는 요즘 한국 남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긴 끈의 소라 색 백이, 그가 움직일 때마다 허벅지에 채여 흔들거렸다.
운전석의 사내가 사무실로 사라지고, 흑인 넷이 사무실 입구 주변에 서 있는 게 창문 너머로 보였다. 잠시 후에 김 사장이 사무실을 빠져 나와 입구에 서 있는 흑인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로 이쪽을 향해서 걸어오고 있었다.
“어이, 공장장! 이리 좀 와봐.”
캇트기에서, 경대 틀에 들어가는 엷고 긴 목재를 자르던 자베르는 부리나케 하던 일을 멈추고 사장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럴 때의 그에 걸음걸이는 평소와는 달리 뛰우뚱거렸고, 괜스레 엉덩이 쪽 바지를 손으로 툭툭 터는 시늉을 했다.
“저기, 흑인 아아들 말야. 숙소 안내 좀 해주고, 할 수 있으면 지금부터라도 일 시키지 뭐.”
사장은 그대로 사무실로 사라졌고, 자베르의 지시를 받은 세 사람은 가방 한 개 씩 을 차에서 내려 주차장 한쪽 구석에 빛바랜 컨테이너로 향했다.
그들 셋 모두 키가 무척 컸으며, 한 사람만 빼고는 덩치도 우람했다. 피부가 검다는 공통점만 뺀다면 생김새도 너무 판이했거니와 자세히 보면, 피부색도 약간 씩 차이가 있었다.
그들은 사장의 말대로 곧바로 작업장에 투입되어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날 세 사람은 방글라데시 사람들과 함께 11시 반까지 야근을 했다.
그들이 첫 번째로 사장의 비위를 상하게 한 건 고장 난 세탁기를 고쳐 달라고 건의한 것이었다. 세면대 겸 세탁실로 쓰이는 화장실 입구에 자리한 중고 세탁기가 벌써 일 년이 넘게 작동을 멈춘 상태였는데, 그동안 방글라데시 사람 둘은 공동화장실 세면대에서 그럭저럭 손세탁을 해, 겉옷은 조립식 화장실 칸막이에 걸어 말리고 있었다.
직원들 전체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조립식 화장실 두 칸은 너무 지저분하기도 하거니와 비좁아 터져, 말만 수세식일 뿐이었다. 화장실 입구에 들어서면 곧바로 오른 쪽에 세면대가 하나 있고 그 옆으로는 남자용 소변기 두 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어, 여자들이 멋모르고 들어가다가 기겁을 하고 나와 버릴 때도 있었다.
두 번째로 사장의 비위를 건드린 것은, 그 들 셋이 묵고 있는 컨테이너박스가 너무 비좁아 세 사람이 자기에 불편하다고 말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맨 처음 회사에 왔을 때 보여준 컨테이너 박스에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입사하기 전에 그들은 소개업자를 따라서 이곳에 왔었고, 그 때 숙소라며 김 사장이 가리킨 곳은 자재실과 탈의실로 쓰고 있는 컨테이너 박스였다.
김 사장은 서서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당장은 생산물량이 넘치는 데다, 그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지불한 돈도 아까웠다. 어떤 방법으로도 들인 돈은 빼내야 했다. 까짓 사람이야 구하려면 얼마든지 있었다. 그건 외국인들뿐만 아니라, 내국인들을 대하는 데서도 그의 확고한 신념은 유감없이 반영되고 있었다.
세 번째로, 그러니까 가장 결정적으로 사장의 비위를 상하게 한 것은 바로 월급 문제였다. 그들과 처음 약속하기는 하루에 열두 시간 일하고 식대를 포함해서 한 달에 백만 원을 주기로 했었다. 그리고 일요일날 일하면 4만원을 지급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장은 마음을 바꿔 85만원을 지급했고 일요일 특근에 대해서도 이 만원을 지급한 것이었다. 그런데다 그들이 처음 입사했던 삼일 동안 직원식당에서 일곱 끼니를 먹은 것에 대해서 한 사람 당 4만9천 원을 월급에서 제외했다. 또한 아미츠가 절단기에 손가락이 찔려 몇 번의 통원 치료를 했던 치료비 명목으로 30만원을 뺐다. 그것은 김 사장으로써는 당연한 처사였다. 지금껏 그래왔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올해 스물 여섯이 된 아미츠는 한국말과 영어를 번갈아 가며 내게 상황을 설명했다. 끝까지 듣고나서,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만 있는데, 그는 나지막하게 "how we ..." 라고 말끝을 흐렸다.
두 손을 힘없이 양쪽으로 펴들며 말을 맺지 못하는 아미츠의 눈에 반짝이는 뭔가가 보이는 것 같아, 얼른 고개를 돌렸다. 소나무들이 누렇게 떠서 맥없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게 시야에 들어왔고, 자꾸만 뜯거운 물체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회사 뒤쪽에 가까울수록 누렇게 뜬 소나무들의 상태가 심해져 있었다. 부분 부분이 마른 것부터 시작해서 점점 더 마른 가지가 심해지더니, 아예 몇십 년생 나무들 전체가 말라가는 중이다. 그건 아마도 회사 뒤 공터에 설치된 세 개의 커다란 양철 화덕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원칙적으로 하자면 특수 폐기물에 속할 온갖 쓰레기들이 그 화덕에서 태워지고 있었다. 특수 폐기물뿐만 아니라, 톱밥이라고 할 수 있는 목재가루와 재활용이 가능할 폐지나 박스도 화덕 밥이었다.
아미츠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 있는 눈치였다. 셋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아미츠는 고향에 세 동생과 엄마가 남의 집살이 한다고 했다. 돈이 없어 대학 이년을 중퇴했다고. 사회학을 전공한 탓인지,한국사람들 생활상과 스리랑카 사람들의 생활을 자주 비교해서 말하기도 했다.
“사장님 약속 안 지켜요. 사장님, 안 좋아요.”
고개를 숙인 채로 아미츠는 또 더듬거리며 말했다. 뭔가, 위로에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마음과는 달리 아무 말도 떠올려지지 않았다. 그 흔한 단어 하나도 생각나는 게 없었다.
“어이, 뭐 하는 수작야? 남들 일하러 들어가는 거 안 보여?”
때마침 자베르가 소리쳤다. 그 순간만큼은 자베르가 고맙게 느껴졌다.
그 날 이후로 사장에게서 무슨 지시가 있었는지, 자베르는 부쩍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욕지거리를 내뱉는 횟수가 잦아졌다. 그리고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빨리 하라고 재촉했다. 그런 와중에 아미츠는 두 번 째로 손을 다쳤는데, 드릴로 피스 박는 작업을 하다 손가락에 피스가 찔린 것이었다. 그 때도 자베르는 아미츠 뒤에 서서, 빨리빨리 해 짜식아! 라고 소리치고 있던 중이었다.
그 날, 아미츠는 내색하지 않았다. 헝겊과 박스 포장용 테이프로 손가락을 감싸 지혈시키며 작업을 계속했다. 먼젓번처럼 작업 도중에 병원 몇 번 갔다오고 삼십 만원을 뜯기기는 싫었을 거다. 더군다나 지난번 플라스틱 공장에서도 맹장수술을 받느라 이백 만원이 넘는 돈을 썼다고 했다. 메디칼 카드가 없어서라는 그의 설명에, 나는 너무 화가 치밀었다. ‘아무리 의료보험 카드가 없어도 그렇지! 맹장수술은 수술 중에 가장 간단한 수술이라는데, 그렇게나 많이?’
비가 오시려는지 아침부터 하늘이 퉁퉁 부은 모습이었다. 짙은 회색 빛으로 물든 하늘이 세상도 회색으로 덧칠해 놓은 모양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바라보았던 창문도 회색 빛을 띄고 있었고, 세수하고 들여다 본 거울 속의 얼굴도 회색 커튼처럼 어두웠다.
주전자에 물을 받아 가스에 올려놓고 창문을 열었을 때의 네모진 먹빛 하늘 한 장이 달려들었을 때, 현기증은 극에 달았다. 무심결에 뭔가 의지하려 벽을 더듬었고, 그러나 벽은 매정하게 나를 뿌리쳤다.
잠결에서도 세상은 온통 짙은 회색으로 덧칠해져 있어 후끈한 열기를 내 뿜으면서도 차가운 모래바람이 사방을 휩쓸었다. 수 백 개의 몸체 없는 얼굴들이 갖가지 형상을 하고 달려들었고, 언덕길과 낭떠러지, 혹은 시퍼런 물구덩이들이 내가 서 있는 앞에 버티고 있었다. 도망치려 발버둥치다 보면 철망가시로 된 벽이 나타났고, 수 십 개의 유리병 조각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밖에도 난간이 흔들거리는 다리, 벽에 구멍이 숭숭 뚫린 판잣집, 아니면 검은 파도가 산더미처럼 밀려오는 바다. 온 세상이 으르렁댔고, 그런 세상에서 도망쳐 저만치 오색 구름이 펼쳐진 석양 쪽으로 달려가려 했다.
그렇게 악몽에 시달리다 깨어난 날은 현기증의 강도가 더 심해졌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납품기사 허 모씨가 손을 들어 보였다. 짧게 깍은 노랑머리를 밤송이 마냥 치켜세운 데다, 근육 살이 붉어져 나온 목에는 개줄 같은 노란 쇠붙이가 번쩍거렸다.
여전히 능글맞은 웃음을 머금고 나를 빤히 쳐다보던 그는, 갑자기 자세를 고치며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폈다. 내 바로 뒤에 김 사장의 볼보승용차가 시커먼 몸체를 드러내며 미끄러져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사장의 차가 저만치 주차장 안 쪽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을 끝까지 지켜본 그는 내앞에 떡 버티고 서며 말했다.
“어쩌나, 스리랑카제를 좋아하나 본데, 내쫓기는 신세가 됐으니?”
말을 끝내놓고도 그는 내 앞에 버티고 서서 껌을 질겅거렸다.
“좋기도 하겠네. 하인처럼 굽실거린 덕에 쫓겨나지 않고 붙어 있을 수 있어서!”
머릿속에서는 온갖 쌍스런 욕지거리 수십 개가 폭탄 터지듯이 난무했으나, 입 밖으로 새어 나오진 않았다.
그 면상을 뒤로 남겨 놓고 나는 부러 느린 걸음걸이로 탈의실 쪽으로 걸어갔다. 통근 차량에 실려온 사람들은 이미 재단반 입구에 둥그런 원을 그리며 앉아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굳어 있어, 벌 받기를 기다리는 학생들 같았다.
삼십 대 중반에서 오 십 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이루어진 집단은 오랜 시간을 그렇게 길들여진 탓인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자베르의 거듭되는 호통에 고개를 숙인 자세로 경청하는 일을 매일 반복하고 있었다.
“야! 우딘, 이누, 그리고 니들 말야! 왜 이렇게 조회시간에 늦는 거야? 빨리빨리 나오지 못해?”
이 년이 넘도록 이곳에서 일한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이제 숙련공이 되어서, 이곳에서 그들이 없으면 작업이 힘들어지는 면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들에게는 기분이 과히 나쁘지만 않다면 이름이라도 불러 주는 호의를 베풀었다. 하지만 들어오자마자 사장의 비위를 건드린 스리랑카 사람들은 언제나 야, 이 짜씩아, 등으로 불려졌다.
“서림아, 왜 그렇게 축 쳐져 있냐? 어제 애인 만나서 밤이라도 새웠냐?”
탈의실에서 나오는 나를 불러 세운 건 도장반에 오필석 씨였다. 그는 아마도 부러 그런 농담을 하며 나를 자기 쪽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공장장의 꼭두각시놀음을 무척이나 경멸했고, 나도 자기와 같은 부류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너, 스리랑카 애들 쫓겨나는 것 때문에 그러지? 야 이 녀석아, 니가 그렇게 가슴 아파 한다고 해결 되냐? 너나 잘 살어. 남 걱정하지 말구.”
대기업 생산직에서 이십 년 넘게 일하다 그만두고 퇴직금을 털어 사업을 벌였다 아이엠에프 와중에 파산을 맞은 그였다. 자신의 처지가 그런 만큼 사장 앞에서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자베르처럼 나서서 굽실대는 쪽은 아니었다.
안기수씨 역시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몇몇 가구회사를 전전하다가 지난가을 이곳에 흘러들어온 사람이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성질이 더러워 순간을 넘기지 못하고 사표를 내던지는 버릇이 있었다.
“어유, 또 시작이군. 어째 저럴까? 지금이 70년댄 줄 아나보지? 하긴, 여기 일 하는 스타일을 봐서도 칠십 년대는 칠십 년대다.”
저 쪽 재단반 앞에 모여 앉은 사람들 앞에서 공장장은 불량이 어쩌구 생산량이 어쩌구 호통치고 있는 중이었다.
“저러니까 십 년이 다 되도록 여기 붙어 있는 거야. 지금 쟤가 하는 말은, 사장이 한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 뿐야. 쟤 잘못이 아니라니까?”
오필석 씨는 측은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자베르를 건너다보았다.
“아, 그래도 그렇지. 공장장이 일을 그렇게 만들고 있잖아요. 아 씨, 팔! 공정이 딱 떨어지면, 어떤 걸 먼저 해야 하고 어느 것을 나중에 해야 하는지 알 텐데. 이건, 뭐, 허구헌 날, 일이 뒤바뀌어 날마다 잔업에다 특근을 하라니.”
“모르는 소리 하지두 말아. 잔업 하는 건 김 사장 스타일야. 여기 김 사장 머릿속에는, 토요일 다섯 시에 끝나는 것 빼고는 아홉시까지 일하는 것은 기본이고, 일요일날이나 빨간 날 특근하는 것도 기본야. 그래도 작년 여름부터 토요일은 될 수 있으면 잔업 안 시키고 30분이나 앞 댕겨서 다섯 시에 퇴근시켜 주는 것만도 어딘데?”
오필석 씨는 멀뚱한 표정으로 사무실 쪽을 건너다보았다.
“참, 이해가 안 가요. 지난번 어린이날인가? 꼭 특근을 해야한다기에 나왔더니 글쎄, 자재가 도착하지 않아 청소만 하다 거의 하루를 보냈잖아요?” 나도 안기수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자재 문제야, 쟤가 무슨 권한이 있는 줄 아냐? 쟤는 그냥 머슴일 뿐야. 아침 일곱 시까지 출근해서, 보통 밤 열 한시가 넘어서 퇴근하잖냐? 그러고도 월급은 160만원 밖에 못 받고 말야. 그래도 그것 받아서 아파트도 사고했으니까 됐지 뭐. 지가 다른 데 가 봐야 특출나게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겠다, 여기서 머슴 노릇 하기로 작정한 거지.”
오필석 씨는 여전히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또다시 자베르 쪽을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이 과장 그 새끼, 얼마 못 가게 생겼어.”
안기수가 한숨을 쉬면서 사무실 쪽을 바라보았다.
“아니, 왜?”
“최 대리 있잖아요? 그 녀석이 만만치 않더라구요. 내가 요즘 그 자식 차를 타고 출퇴근하고 있는데, 이 과장을 사정없이 까더라구요. 그거야 뭐, 일부러 김 사장이 싸움을 붙여 놓은 거 겠지만요.”
“그래도 이 과장 머리를 당할까? 그 자식도 잔대가리 꽤나 굴리는데?”
“그러니까요. 그 잔대가리가 문제라구요. 저러다 제 꾀에 지가 넘어가게 생겼어요. 말이 그렇지, 김 사장이 공장을 물려줄 것 같아요? 그거만 믿고 이 과장 그 새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데, 들어온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은 최 대리가 저렇게 눈이 벌개 가지고 이 과장을 까면서, 툭 하면 현장사람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불평하잖아요. 공장장한테 호통치는 건 보통이구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지가 대학을 나왔으면 나온 거지, 제품에 관한 현장에서 몇 개월 일 한 사람 보다도 모르면서. 나 참! 이게 다, 이 과장이 하는 짓을 보고 그대로 배운거라구요. 김 사장이 짜 놓은 계략이구요.”
“네 말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가구공장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한탄하던 아들놈을 요즘 들어 몇 번인가 데리고 온 것도 그렇고.”
오필석 씨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반백의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아, 씨팔! 저 모텔에서 긁어모으는 돈만 해도 몇 대는 놀면서 처먹고 살 텐데! 이왕 물려준다고 했으면 깔끔하게 손 떼지, 왜 저 지랄인지 몰라. 하여튼 가진 놈이 더 무섭다니까!”
안기수는 길 건너 산밑에 자리한 모텔의 붉게 튀어나온 지붕간판을 건너다보다가 사무실 쪽을 향해서 가래침을 탁, 날려 보냈다.
금성모텔은 김 사장이 삼 년 전에 가구공장에서 번 돈으로 지은 모텔이었다. 시내에서 가깝고 국도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데다, 시원하게 들판을 가로지르며 내달려 낮은 산자락을 끼고 움푹 꺼져 들어간 곳에 부러 숨은 듯이 위치한 그곳은, 허구한날 방이 모자랄 정도로 성업중이라 했다.
지방대학에서 건축과를 나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이 과장은 나를 면접한 자리에서 그 가벼운 입을 놀려, 머지않아 자신이 공장을 물려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사장님과는 부자관계신가요?’묻자, "그런 건 아니지만 요, 사장님은 다른 일도 많이 하시는 분입니더. 서림 씨도 이곳에 와서 일하면 알게 되겠지만 예, 우리 사장님은 참, 존경스러운 분입니더."
자베르는 이 과장 앞에서도 쩔쩔매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아무리 듣기 거북한 말투로 핀잔을 주어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김 사장이 안 보일 때에는 이 과장이 바로 그의 사장이었다.
조회가 끝났는지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의 위치로 흩어지고 있었다. 조회시간도 일 할 시간보다도 20분이나 당겨서 시작했다. 그러니까 오전 오후에 십 분씩 쉬는 것을 이십 분 조회하는 것으로 대체한 거다.
박 기사는 도면을 들여다보며 보링 기계를 맞추고 있었다. 언제 기계가 맞춰질지 몰라, 나는 어제 보링해 놓은 목재에 다보를 박기 위해 자재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자재를 체크하던 최 대리가 내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인사를 건네왔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군대를 제대하고 삼 년 동안 몇몇 직장을 전전한 뒤 이곳으로 왔다. 윤곽이 뚜렷한 얼굴을 한 그는 특히, 길고 짙은 눈썹을 하고 있었다.
인사를 받으면서도 나는 그를 쳐다보지 않으려 애썼다. 지난번 월급봉투를 들고 공장장과 입씨름을 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끼어들어 내게 호통을 치던 모습은 두 번 다시 그를 상종하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길고 검은 윗눈썹은 발에 밟힌 지렁이처럼 마구마구 꿈틀거렸고, 희고 야윈 목에 선명하게 드러나던 푸르른 심줄은 그가 말할 때마다 표피를 뚫고 뛰쳐나올 기세로 펄쩍펄쩍 뛰놀았다.
“서림 씨가 우리 회사 말아먹으려고 작정했습니까? 월급 계산에 문제가 있으면 사무실로 들어와서 조용히 사장님께 여쭈어 보잖구. 왜, 사람들 보는데서 떠듭니까? 떠들기를! 서림 씨 주장이 맞는 거라면, 여기 몇 년씩 일한 사람들은 병신이라서 여지껏 가만히 있었다는 겁니까? 어디, 그렇게 잘 났으니 맘대로 해보시죠!”
내가 문제 삼은 부분은 잔업수당 계산 방법이었다. 면담할 때에도 분명 확인했거니와 내가 알고 있는 바로 1.5배가되려면, 하루 일당을 8로 나누어 시급을 계산한 다음, 시급에 반을 플러스시킨 액수가 아홉시까지의 잔업수당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월급 봉투의 연장근로 시간 난에는 16이란 숫자가 적혀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세 시간씩 잔업을 열 여섯 번했으니까, 48시간이 되어야 했다.
“그건 말야, 뭐냐면, 잔업 시간이 아니라 잔업 일 수를 적은 거야.”
“왜 잔업 일수가 들어가죠? 그럼 계산을 어떻게 하는 데요?”
“잔업 일 수를 계산하는 거지 뭐.”
“그게 말이 되요? 잔업 시간을 계산해야 맞는 거 아닌가요?”
“이쪽 계통에서는 모두 다 그렇게 통해. 여기 G가구 하청 업체들이 삼십여 개가 넘는데, 우리 공장만 따로 놀면 욕먹는다구. 알았어?”
하긴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면접을 볼 때에 들은 얘기로는 분명 4대 보험과 200%의 상여금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아무 보험도 들어주지 않은 데다 사람들에게 확인한 결과로는, 여태까지 상여금이 지급된 적은 한 번도 없었을 뿐더러, 명절 때가 되어도 그 흔한 떡값 한번 내준 적이 없다고 잘라 말하는 것이었다.
“어디 떼먹을 게 없어서…온갖 방법을 다 생각해 내는군요!”
바로 그 때, 최 대리가 끼어 든 것이었다. 그는 아마도 근처에 있다가 우리가 하는 말을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가 나를 향해 말할 때의 이글거리던 눈빛은, 그 날 밤 꿈속까지 쫓아왔었다. 그건 어쩌면 안기수의 말대로 사장의 계략인지도 몰랐다. 공장을 물려준다며 십여 년을 만년 과장으로 붙들어 놓고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거래처 섭외나, 생산라인의 기계 구조 등에 밝은 이 과장을 마음껏 이용했던 거다.
이 과장은 이 과장대로, 자신이 마치 김 사장의 후계자라도 된 양 착각하면서 김 사장의 충복으로서 전면에 나서서 악역이란 악역은 도맡아서 했다. 지난번 아미츠를 내쫓을 때도 그는 사장의 한 마디가 떨어지자마자,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악을 썼다.
자제실을 나서면서도 긴장이 풀리지 않아 다리가 후들거렸다. 어중간한 관리자들의 맹목적인 충성심에서 돌출되는 그 눈빛은 항상 나를 질식케 만든다. 그런 눈빛은 특히 어느 정도 위치를 확보한 상급 관리자들 보다는, 이제 막 발돋음 하는 하급 관리자들에게서 주로 나타났다. 기여코 상대방을 깔아뭉개고야 말겠다는 강한 집념이 깃들어 있는.
낡은 기계 덕분에, 땀방울이 쏟아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박 기사는 기계와 씨름하고 있었다. 다른 회사에서는 한 번에 여러 공정의 보링이 가능할 만큼 최신식의 기계가 있다는데, 이곳 보링기 세 대는 워낙이 구식인데다 낡아 빠져서, 이쪽을 맞추면 저쪽이 어긋나고 밑에를 맞춰놓으면 위쪽이 어긋나는 식으로 사람들을 애먹였다.
“니미, 씨 팔! 돈을 그렇게 많이 벌었으면, 기계 한 대쯤 사면 어디 덧나나? 허구한 날 이 지랄이니 원.”
박 기사는 얼마 전에 새로 들어온 사람이었다. 아니, 제대로 말한다면 작년까지 이곳에서 일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거의 하루도 빠짐없는 잔업과 특근이 지겨워 그만두고 야채장사로 나섰다. 박 기사 뿐만아니라 이곳 사람들 거의가 몇 번씩 그만 두었다 다시 입사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언론에서 격주 휴무니 주 5일제니 아무리 떠들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동화나라 얘기였다. 웬만한 중소기업과 하청업체 생산직 어딜 가나 잔업과 특근, 그리고 때에 따라서 철야는 당연했다. 박 기사 이전에 근무했던 조 기사도 잔업과 특근이 지겹다고 나간 경우였다. 그의 주장은 ‘보링 일이 밀려서 잔업을 해야 한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보링 일이 아닌 일을 위해서 잔업이나 특근을 할 수는 없다.’ 는 것이었다. 그것은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는 이곳 시스템에 문제를 꼬집은 것이기도 했다. 뭐 하나 상큼하게 마무리하기보다는, 작업장 여기저기에 각기 다른 제품들의 자재를 늘여 놓고는 여기에도 손대고 저기에도 손대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제품에 납품 날짜가 됐다며, 법석을 떨어대곤 하는 일이 반복됐다.
비가왔다. 처음에는 가늘게 시작하다가 이젠 쏟아 붓듯이, 주차장 공터가 쏟아지는 물결로 출렁거렸다. 바람결 따라 휘청거리는 물줄기는 창문을 향해 돌진하기도 하고 주차장 콘크리트 바닥을 훑고 지나가기도 했다.
일을 하면서도, 어젯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온 음성이 아직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헬로우? 나 아미츠. 서이림, 나, 아미츠.’
그는 감수성이 예민한 데다 눈치도 빨라서, 사장이 자신을 내쫓으려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있는 친구들에게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었고, 두 번인가 잔업을 빼먹고 외출을 나갔다.
“야, 이 자식아! 누가 그렇게 쌓으라고 했어. 엉? 반대로 쌓아야지. 다시 다 내려서 돌려서 쌓아!”
자베르의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출입문 밖에서 들려왔고, 자베르 앞에 아미츠가 서 있었다. 그가 서 있는 앞의 공터에는 며칠 동안 완성 포장제품들이 빠레트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나중에 아미츠에게 들은 바로는 어차피 다시 납품용 트럭에 옮겨 실어야 하기 때문에, 물품을 어떻게 쌓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한 것처럼, 똑같은 방법으로 쌓은 것이라 했다.
김 사장이 어떻게든 월급을 주지 않고 내쫓는 방법을 생각하던 차에 아미츠가 걸려든 것이었다. 오필석 씨나 며칠 전에 재입사 한 박 기사의 말에 따르면 김 사장은 직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게 취미라 했다. 그리하여 조회시간만 빼고는 직원들끼리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는 것도 싫어하거니와 자기네들끼리 모여서 술자리를 하는 것도 참견한다는 것이다. 퇴근 시간이나 쉬는 시간이 되면, 누가 일 분이라도 먼저 작업장을 빠져 나오는가를 감시해서 적어 놨다가 적절한 시기에 이용한다고.
그 날 일로 아미츠는 심한 마음에 상처를 받았고, 결국엔 짐을 쌌다. 그리고 그만 두겠다는 말을 하기 위해 사무실로 갔고, 한 달치 월급을 줄 수 없다는 사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 과장이 나선 것이었다.
회사가 바쁜데 잔업을 빼먹고 나돌아 다녔다며, 게을러터진 놈! 돈 벌러 온 것이 아니라 놀러 왔냐?! 그 지랄병을 떨려면 너네 나라로 돌아가 새 꺄! 등의 온갖 욕설을 들었다. 그것은 아주 은밀하게, 모든 직원들이 작업장 안에 있을 때, 사무실 뒤의 공터에서 이루어졌다.
"아, 아미츠!"
종종 생각은 생각이 났지만, 그 순간만큼은 생소하게 느껴져서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말했다.
“아미츠 트렁크, 서이림 하우스에 있어요?”
“예스”
“나, 아미츠, 하우스 없어요. 서이림, 일 해요? 금성퍼니퍼?”
“예스,인 마이 하우스, 아미츠 트렁크. 돈 워리.”
그 날, 내가 잔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확인한 그는 내가 공장문을 나서자 후미진 모퉁이 어디선가 트렁크를 들고 나타났었다. 몹시 지친 표정을 하고 있었고, 저만치 기울어져 가는 햇살조차도 그의 검은 얼굴을 태워버릴 듯이 내리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낮에 있었던 일을 한국어 몇 마디와 영어를 혼합해 기를 쓰고 설명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고개를 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마치 사장과 공범이라도 디는 것처럼 여겨졌다.
언젠가 들여다보았던, 난방장치도 없는 좁아터진 바닥에 덩치 큰 세 사람이 몸을 구겨 잠자리를 해야할 것 같은 콘테이너 박스가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 방을 들여다 본 이후 나는 그들은 볼 때마다 죄책감이 앞서곤 했다. 특히나 언젠가 아미츠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깊이 새겨진 탓도 있었다. 요약하자면 ‘스리랑카에서는 여러 사람이 좁은 방에서 모여 사는데, 한국 사람들은 넓은 집에서 한 두 사람씩 살고 있다.
터미널에 도착해, 식당으로 들어갔다. 종일 굶었을 그에게 밥 한 끼라도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는 별로 식욕이 동하지 않는지, 머뭇거리며 수저를 들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갈 데는 구했냐는 물음에 수저를 놓아 버렸다.
그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다른 한 손으로는 탁자 위에 놓여진 젓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잘 생긴 흑인 배우처럼,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반듯한 이목구비에 나이와 상관없이 겉늙어버린 우수가 깊었다.
그는 결심이나 한 듯이, 두 손을 양옆으로 펴들며 갈 데가 없다며, 간절한 눈빛을 하고 나를 응시했다. 순간 나는, 우딘과 이누가 서림씨 집에 놀러가고 싶다고 말하던 때의 표정과 겹쳐지면서 가슴이 미어져 왔다. 그들 둘은 한국에서 일 한지 6년이 넘었지만, 한 번도 한국인 집에 초대받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처음 그곳에 입사해 나를 몹시 당혹케 한 건, 같이 일하는 한국사람들 모두가 그들을 마치 무슨 병균이나 되는 양 대하는 분위기였다.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는 것만큼 우스운 짓은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어쩌면 그래서 부러 더 그들과 좀 더 많은 얘기를 하려 했고, 격의 없이 지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친구들에게 연락해 보았지만 모두들 일하고 있기 때문에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그래서 오늘 밤 잘 데가 없다고 말하며, 그는 또다시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일순간, 내 머릿속에는 갖가지의 좋지 못한 영상들이 영화처럼 펼쳐졌다. 그가 의도적으로 내게 접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불쑥 머리를 스친거다. 하지만 그러다가 또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연민이 봇물처럼 솟구치기도 했다. 오죽하면 나에게 자존심을 구기면서까지 저런 동정을 구하는 눈빛을 보내올까 생각하니 설움이 복받쳤고, 언젠가 들여다보았던 그 비좁아 터진 콘테이너 박스의 숨막히는 광경이 떠올랐다.
누군들 자신만의 공간을 원치 않는 사람이 있으랴! 나 자신도 그 공간확보를 위해서 살았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비록 반은 월세이긴 하지만, 저들의 처지와 비교한다면 너무나 호사스런 공간이었다.
내 눈에 비친 눈물을 발견한 그는 얼른 자세를 고치며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내 손을 잡았다. ‘나, 친구 메니 메니. 서이림, 돈 워리. 돈 워리.’
그가 그렇게 말하면 할수록 설움이 더 복받쳐왔다. 순간적이나마 그를 의심한 게 죄스러웠고, 그러나 그가 남성이라는 데서 오는 불편함과 거부감이 그의 간절한 눈빛을 뿌리치게 만들었다. 만일 그가 여자였다면 오히려 내 쪽에서 먼저 제안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이해시키는 영어문장을 구사할 능력이 내겐 없었다.
“서이림, 돈 워리. 나 친구 메니 메니… 아, 트렁크, 서이림 하우스에 음?”
그는 자신의 발 밑에 놓아둔 트렁크를 가리켰다. “
“서이림, 언더스탠?”
“예스, 언더스탠...... 아, 낫씽 포 유. 쏘리. 아이 엠 쏘리.”
그의 가방을 받아들고, 거듭거듭 도움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생활광고지를 보고 일자리를 알아봐 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려면 회사를 빠지고 그와 같이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랐다. 그밖에 여러 가지 번거로운 일들이 수반될 것이고, 하루에 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전화선을 타고 울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어딘지 불안정하게 느껴졌다. 집이 없다며, 자신이 맡겨둔 트렁크의 안부를 거듭 확인하고는 다음에 찾으러 가겠다고 말했다. ‘굳 나읻, 서이림. 바이바이.’
어쩌면 그는 사랑하는 애인에게 빨리 돌아가기 위해서 모종의 안 좋은 일에 가담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어젯밤부터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전화할 때마다 빨리 돌아오라며 울고 있다는 애인의 얘기를 들려주며 그는, 자신의 두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절단기에 살점이 떨어져 나간 손가락과 피스에 찔린 손가락이었다.
“쉬는 시간야!”
우딘이 등을 치며 시계를 가리켰다. 돌아보니 사람들은 이미 출입문 바깥쪽으로 나가고 있었다.
“우딘씨, 그런데 스리랑카 친구들 짤린다는 거 알고 있어?”
“몰라? 누가 그래? ”
“사장이 그러던데? 이번 주까지만 일하고 내보낸다고.”
“우리는 안 짜른대?
“아니? 짜를 거면 공장장이 우딘씨 한테 친구들을 데려오라고 하겠어?”
“그래 맞아...... 근데 서림씨, 이번 주에 놀러가자. 바다로, 우리 둘만”
“특근해서 돈 벌어야지, 가긴 어딜 가?”
잔업을 거부하고 퇴근하는 날이면 그가 늘 내 등 뒤에 대고 한 말을 흉내 냈지만, 속으로 비위가 상했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쫓겨나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태평스런 그가 얄미웠다. 자베르야 원래 그런 인간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스리랑카 친구들이 절단기에서 일할 때면 못 본 체 하다가도, 자신들이 그 자리에서 일하게 되면 어디서 꺼내 왔는지 작은 선풍기를 작동시키며 일하는 걸 여러 번 보았다. 보링기계와는 달리 절단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무가루는 아주 미세해서 체내에 흡수되기 쉬운 경우였다. 그런 만큼 호흡기에도 지장이 많을 것이었다.
“아이, 이번 주는 특근 안 할거야. 놀러 가는 거지?”
“그, 여자 친구나 만나는 게 어때요. 음? 그런데 말야, 방글라데시에 있는 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안나봐요?”
“왜? 나, 우리 부인 사랑해.”
“그런데 어떻게 다른 여자하고 잠자러 다녀?”
“그거야, 우리 부인 여기 없잖아. 하고 싶을 땐 해야지. 그런 재미도 없으면 어떻게 살아?”
“뭘 하는데?”
“아이, 있어 그런 거. 서림 씨는 남자 마음 몰라.”
36세의 판사였던 주인집 남자는 그때 한창 유행하던 열쇠 두 개짜리 결혼을 한 셈이었다. 그러니까 가진 것 하나 없는 집안 출신으로 과거에 급제해 아파트와 자가용이 뒷받침되는 여자와 중매 결혼한 것이다.
주인 여자는 한탄 조로 자주 남편 집안사람들 흉을 봤는데, 주로 무식하다는 것과 예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집에 있는 동안 내내 한 번도, 그 무식한 시댁 식구들이 찾아오는 걸 본 적은 없었다. 단지 ‘유식한’ 친정식구들이 하루가 멀다 하게 찾아와 살다시피 했을 뿐이었다.
주인집 남자는 어느 날부턴가 내게 일을 도와달라 했다. 그가 도움을 요청한 일이란 자신이 작성한 문서에 혹시나 틀린 문구가 있는지 봐달라는 것이었다. 그런 일 해본 적이 없었지만, 주인이 시키는 일이므로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가 건네준 문서들에는 틀린 문구가 그다지 많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끔 그 문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발견될 때가 있었는데, 어느 날 무척 조심스럽게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말을 건네자 그는 진지하게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날 이후로 그는 아예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판결문 초안이나 그 비슷한 게 아니었나 싶다.- 여러 묶음의 문서를 들고 집에 들어와서 내게 건네주었다.
그런 일이 거듭되던 어느 날 그는 두툼한 봉투를 내 앞에 내밀었는데, 바로 중학교 검정고시 교재였다.
"난 네가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할래?"
그렇게 그가 말을 끝내고 봉투를 건네던 순간, 주인 여자의 친정어머니가 우리가 앉아 있던 식당으로 들어섰고, 그 부인은 이미 바깥에서 사위가 하는 말을 다 들은 후였다. 그 부인은 무척 교양이 넘치는 오십대 중반의 여자였다. 그 여자의 얼굴 어디에도 구질구질하고 못 배워먹은 구석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내려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젊은 여주인은 마침 연주회에 나가고 없었다.
다음 날 두 모녀는 나를 불러 놓고, 아이도 이제 웬만큼 크고 했으니 너는 이만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네가 워낙 성실하니까, 원한다면 좋은 집에 소개시켜 줄 수도 있다는 너그러움까지 보였다.
“하이, 서이림, 소주, 음?”
어느 새 차미가 곁에 와있었다. 최근 들어 그들은 소주를 자주 마셨다. 아미츠가 떠나고 난 뒤로 시작된 일이었다. 한국에 먼저 들어왔고, 자신들의 불편한 점을 즉각 말 할 줄 알았던 아미츠는 월급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도 약속위반이라며 사장에게 이의를 제기했었다.
아미츠와 카심 보다는 피부색이 옅은 그는, 곱게 쌍커플이 졌고 매혹적인 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장난꾸러기였다. 가끔 누군가 머리를 툭, 치거나 다보 따위를 던져와서 뒤돌아보면 그가 천진난만한 눈빛을 하고 찡긋 윙크를 보내왔다. 또 어떤 때는 갑자기 먼지 따위를 털어 내는 에어기기를 얼굴에 들이대며 빠방, 휙, 휙, 하며 권총 쏘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그럴 때의 그는, 어린아이 같은 장난기가 그 고운 눈에 넘쳐났고 선이 뚜렷한 입술은 짓궂게 벌어져 있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자 그는 괜찮다고 말하며 내 등을 토닥거렸다. 그러나 그의 아름답던 눈빛은 검은 장막처럼 음산했고, 입술은 가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내가 살며시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입술을 벌려 보였다. 그리고는 ‘서이림, 굳 우먼!’하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터미널에서 헤어질 때 아미츠도 똑같은 말을 했고,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버스에 올라탔었다.
재단반으로 걸어가는 차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또다시 현기증을 느꼈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줄 게 없었다. 편안하게 누울 자리 하나 없는 그들에 비해서 너무나 호사스런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행복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나 자신이 역겨웠다. 나를 포함해, 세상 모두가 엉망이었다.
지난밤 차미와의 술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김 사장의 속셈이었을 것이다.
잔업이 끝나고도 그들은 야간작업에 투입되었다. 내가 보기에 그 물량이 그다지 급한 것은 아닌 듯 한데도, 자베르는 그들이 야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림아, 아까 사무실에 들어가서 들었는데, 스리랑카 애들 오늘 주간 작업이 끝나는 대로 보낸다더라?”
“아니 왜요? 먼저는 토요일까지 한다고 하더니?”
“낸들 아냐? 김 사장 저 새끼가 뭔가 꿍꿍이속이 있겠지?”
오필석 씨는 담배를 비벼 끄며 사무실 쪽을 쳐다보았다.
“서림씨, 너무 신경 쓰지마. 쟤들야 어차피 돈벌러 왔는데 여기 가서 버나, 저기 가서 버나 마찬가지지 뭐. 따지고 보면 쟤들이 우리 보다 훨씬 돈 많이 버는 거야. 우리 돈 백 만원이 쟤들 나라에 가면 몇 배의 값어치가 있잖냐? 그 맛에 쟤들도 들어오는 거구. 좀 고생스러워서 그렇지, 돈 벌어 즈네 나라에 가봐라. 떵떵거리고 살지.”
“기수 씨는, 그게 말이라고 해요? 저 친구들이 여길 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하는지 알아요? 우딘 씨와 이누 씨는 팔백 만원 씩 내고 들어왔고, 스리랑카 친구들도 거의 비슷하게 들었다고 하던데. 그리고 돈을 벌면 얼마나 벌어요? 똑같은 일을 하고도 한국 사람들보다 훨씬 덜 받는데.”
“덜 받아도 쟤네 나라에 가면, 그 돈이 큰돈이라니까 그러네. 그러니까 기를 쓰고 들어오지 뭣 하러 들어 오냐?”
“그래서, 그들이 우리보다 적게 받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는 거예요? 기수 씨도, 참! 어이없네요?”
“야, 그러다가 싸움 나겠다? 서림아, 기수 말이 맞아. 쟤들 요즘 얼마나 좋아진 건 줄 아니? 내가 사업할 때만 해도 각목으로 두들겨 패며 일 시켰어 마. 그리고 지금처럼 월급도 많이 주지 않았구 말야. 지금야 세상이 많이 변해서 일요일날 특근도 쳐주잖냐? 예전 같으면 생각이나 할 수 있었냐?”
“형님 말이 맞아요. 지난 번 우딘 새끼 봐요. 한국 사람들은 어린이날 일하면 특근처리 해주는 데, 왜 자기들은 특근으로 안 해주냐고 공장장한테 따지잖아요? 좀 잘 해주니까, 시건방져 갖고. 아, 자기들이 어린이 날이나 현충일 날이 무슨 상관 있어?! 날이 갈수록 새끼들이, 능구렁이처럼 약아빠져 가지고.”
안기수는 가래침을 탁, 뱉으며 담배꽁초를 집어 던졌다. 노조 활동 경험이 있다는 그와 노조의 존재이유에 대해서 좀 실랑이를 벌인 적은 있었지만,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렇다 하게 대화를 나눌 공동관심사가 있는 건 아니었다. 노조는 어디까지나 노조원들의 임금과 복지향상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는 그의 주 관심사는 스포츠와 낚시질이었다.
“정말 놀랍네요. 대단한 생각이구요.”
안기수는 그런 나를 외면하고 주차장 건너 사무실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선하게 느껴지는 이미지 어딘가에 그토록 견고한 편견이 숨겨져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야, 서림아!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 겪은 줄 아냐? 우리나라 사람들도 중동 같은데 가서 고생 많이 했다 야? 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사는 거 아니냐?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에 비하면 미국 놈이나 일본 놈들은 어땠는 줄 아냐? 그 놈들은 우리들에게 일 시키면서도 절대로 기술을 전수해 주지 않았단 말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워낙 머리가 좋으니까 어깨너머로 배운거지. 그렇지만 쟤네들 봐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숨기지 않고 기술 다 전수해 주잖냐. 그것만 해도 어디냐?”
오필석 씨는 중대한 경험담이라도 들려주는 것처럼 진지하게 말문을 열고는 마지막에 가서는 얼굴에 홍조까지 띄며 열을 올렸다.
“형님 말이 맞아요. 아, 저새끼들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 일자리도 줄어들고, 임금도 올라가지 않잖아요.! 에이, 씨 팔! 더러워서.”
김기수는 나를 힐끗 쳐다보며 일어서서 도장반 쪽으로 걸어갔다.
“잘은 모르지만요. 중동에 일하러 갔던 사람들은 우리나라 건설업체에 의해서 간 거잖아요? 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그건, 우리나라 업주들에게 책임 있는 거죠. 실제로 중동 특수를 누려 돈을 번 것은 우리나라 건설업체 업주들이잖아요?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 노동자들에게 숨기지 않고 기술을 전수하는 거야, 한마디로 자기들 필요에 의한 거 아닌가요? 싼 임금으로 장시간 마음대로 일을 시켜먹을 수 있으니까요. 또, 외국인들이 취업해서 일하는 직종은 대부분이 한국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이구요. 지금 실업자가 많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이런 일을 하려들지는 않잖아요? 안 그래요?”
안기수 씨가 사라진 도장반을 노려보며 내가 말했다.
“야, 너? 변호사 해도 되겠다? 어쩌면 그렇게 또박또박 말도 잘하냐?”
오필석은 반백의 머리를 쓸어 올리며 다른 한 손으로 내 어깨를 툭 쳤다.
보링기 앞에선 나는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장난기 가득하던 차미는 오늘 내 등뒤에 다보를 던지지 않았고, 머리나 등을 치며 지나가지도 않았다. 올해 스물아홉 살이 된 그는, 세 살 터울의 형도 안산 어딘가에서 일한다고 했다. 그들이 한국에서의 생활 중에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야간작업과 일요일도 일해야 하는 거였다. 대개 아홉시까지 하는 잔업은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홉 시 이후의 야간 잔업에 대해서는 무척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런 반면에 우딘과 이누는 오히려 돈을 벌 수 있어서 좋다는 쪽이었다. 물론 매일 그렇게 하면 힘들겠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 하는 것은 괜찮다고 했다. ‘집에 일찍 가면 뭐해. 심심하잖아.’
내가 잔업을 하지 않고 퇴근하는 날이면 우딘은 그렇게 말하며 가지 말라고, 자기와 같이 잔업을 하자고 말했다.
“이서림, 오늘 왜 그렇게 진도가 떨어지냐? 체력이 딸리냐? 그러게 밥 좀 많이 먹고 힘써야지. 그걸 밥이라고 먹냐?”
자베르는 내 옆으로 다가서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에 목소리는 기계 소리에 뒤섞여 쇳소리처럼 윙윙댔다.
나는 그를 외면한 채 보링을 끝낸 목재가 쌓인 빠레트를 핸드카로 뜨고 있었다. 하지만 힘이 가해질수록 빡빡해지며 손잡이가 미끄러져 나갔다. 나는 얼른 손잡이를 다시 잡았고, 있는 힘을 다해 펌프질 했다. 자베르는 그런 나를 쳐다보다가 재단반쪽으로 사라졌다.
다섯 시가 넘었는데도 따가운 햇살이 재단반 창문으로 기세 좋게 쏟아지고 있었다. 재단기사 조씨 옆에서 목재를 나르는 차미와, 울화 치는 기계 뒤에 서서 먼지 날리며 빠져나오는 목판을 받아내는 카심.
두 사람 다 입을 굳게 다물었고, 종일토록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어젯밤 야간작업이 끝나고서야 자신들이 오늘 오후에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고, 월급은 다음 달 5일날 받으러 오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엿을까, 오늘 아침부터 그들은 나와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한국에 들어 온지 팔 개월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서너 군데 사업장을 전전했지만, 나처럼 자신들을 스스럼없이 대해 주는 사람을 만난 건 처음이라고. 그리하여 그들 세 사람( 아미츠를 비롯해서)은 아침이 되면 내가 나타나는 시간에 맞춰 기다렸다가 ‘Hi,Good morning? How are you?’ 손을 들어 인사를 했었다.
그동안 공장장이 화를 내며 그들에게 모욕을 줄 때면, 나는 망설임 없이 공장장에게 따박따박 따지고 들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다가와서 ‘내버려두세요.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요. 기분 상해하지 마세요.’라며 어깨나 팔을 살짝 건드리고는 싱긋 웃어 보여주었다. ‘당신들이 못하는 게 아니라,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 확인시켜 주려고 애썼다.
그들이 처음 이곳에 도착해서 짐을 풀자마자 -사실 짐이랄 것도 없지만.- 시작된 일은 작업장 입구에 산더미처럼 쌓인 구멍 뚫린 목재에 다보를 박는 일이었다. 그 많은 목재에 촘촘히 뚫린 구멍 하나하나에 본드를 묻히고 다보를 박는 작업은, 특별히 힘이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세가 몹시 불편했다. 쪼그리고 앉아 있거나 엎드려서 해야 했고, 진도도 느렸다. 나는 조그만 나무통 세 개와 나무 판대기를 들고 세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나무통 위에 판대기를 얹어 앉은뱅이 의자를 만들어 주었다.
공장내의 모든 기계들이 벙어리가 되자 사방은 적막에 휩싸였다. 회전한다는 지구가 갑자기 멈춰버린 것 같이. 그와 동시에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일시에 출입문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에어기기로 몸을 털고 나가기도 했고, 손으로 대충 털어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문을 밀치고 나간 주차장에는 서쪽으로 기울어진 햇살이 조금은 기세 꺾인 빛을 하고 한 귀퉁이에 머물러 있었다. 소나무 가지 사이에 숨어있던 햇살은 그러나 그렇게 만만하진 않았다.
외국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식당 문을 열고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왼쪽 출입문 옆에 서서 컨테이너 박스 쪽을 내다보았다.
나를 피하고 있는 차미와 카심. 뚜렷하진 않지만 그들이 나를 피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 카심은 그 두꺼비 같이 툭 붉어진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며 ‘서이림, 나이스 페이스.’직역하면 ‘좋은 얼굴’이 되겠지마. 한마디로, 인상이 좋다는 뜻일 거였다.
주차장 입구에서 뭔가 번쩍거린다 싶더니 차 한 대가 천천히, 부드럽게 미끄러져 올라오고 있었다. 어딘가 낯이 익은 듯하여, 눈을 크게 뜨고 정신을 집중시켰다. 멈춰선 차 운전석 쪽의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내리는 게 보였다.
사무실로 향하는 사내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지난번 스리랑카 친구들을 태우고 왔던 그 카니발 차였다. 그러고 보니 운전석 옆 좌석에 앉아 내리지 않고 있는 사내는 바로 그 흑인이었다. 윤기가 잘잘 흐르던 갈색 머리를 늘어뜨린 남자.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던 그 사내였다.
식당에서 나온 공장장은 곧바로 컨테이너 박스로 향했고, 문을 두드리며 빨리 나오지 않고 뭐하냐고 소리쳤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가방 한 개씩을 챙겨든 차미와 카심이 굳은 표정으로 나 있는 쪽을 건너다보았다. 나는 왈칵, 목에 통증을 느끼며 그들 쪽으로 다가갔고, 차미와 카심은 얼어붙은 듯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들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으며 시선은 한군데로 고정되어 있었다.
차미의 장난기 가득하던 커다란 갈색 눈동자는, 꽃잎처럼 살포시 내려앉은 얇은 눈꺼풀을 밀어내고 놀란 토끼 눈처럼 열려 있었는데, 그는 앞을 보고 있었지만 그러나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다가가서 손을 잡아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게 그랬다.
차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가 놓고 카심에게 얼굴을 돌린 나는, 카심의 두꺼비 같은 눈과 훌떡 말아 넘겨진 입술에 긴장감과 불안이 뒤섞여 있음을 보았다.
그는 내가 손을 내밀자 ‘굳 바이, 서이림.’ 하고는 내 손을 자신의 얼굴에 살짝 갖다 댔다가 재빨리 내려놓았다. 그에 손톱에 빼곡하게 돋아난 하얀 점은 그늘아래서 유난히 두드러졌다.
그나마 산그늘에 가려져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방정맞은 햇살은 지난번 아미츠에게 했던 것처럼, 검은 피부를 더 검게 태워버릴 듯 달려들었을 거였다.
자베르는 뚱한 얼굴로 옆에 서 있었고, 식당 문은 열려져 있었으나 아무도 얼굴을 내밀고 이쪽을 내다보는 한국인 동료 노동자들은 없었다.
소용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운전석의 건장한 사내에게 제발 좋은 조건의 일자리에 소개시켜 달라고 말했다. ‘그동안 정들었나 보죠?’ 사내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나를 쳐다보며 또다시 말했다. “이 공장처럼 조건이 좋은 곳은 드문데. 여기처럼 깨끗한 숙소를 갖춘 곳은 찾기 힘들어요?”
카심은 그래도 식당으로 다가가서 몇몇 사람들에게 악수라도 청하는 여유를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차미는 끝내 말 한마디 하지 않았을 뿐더러, 차에 올라 뒷좌석에 앉아서도 멍한 눈빛으로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무릎에는 커다란 가방이 놓여 있었고, 가방을 두 팔로 꼭 끌어안다시피 하고는 내가 손을 흔들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았던 카심이 옆구리를 찌르고 나서야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보였다.
바다를 적시던 석양이 조금씩 퇴색하며 미끄러져 내려갔다. 서쪽 하늘에 떠 있던 구름도 덩달아 색깔을 바꾸며 정처 없이 흐느적거렸다. 선홍색에서 황금빛, 또는 오렌지 빛으로. 아니면 적갈색이나 고동색.
구름 색의 강도에 따라, 혹은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는 노을 빛은 그렇게 어린 내게 알 수 없는 설레임과 슬픔을 가져다 주곤 했었다.
“무슨 생각해?”
노을을 등지고 앉은 우딘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 나를 건너다보았다. 그의 깊게 패인 눈과 오똑 선 콧날, 그리고 적당히 균형 잡힌 입 모양은 잘 생긴 배우 같다. 그런 외모 못지않게 그가 입고 있는 연한 쑥색 반 팔 티셔츠와 카키 톤의 베이지 색 면바지, 그리고 흰색 운동화는 공장에서 보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이미지를 풍겼다. 단지 흠이 있다면, 웃을 때 정면으로 보이는 이 하나가 검게 썩은 채로 너무 쉽게 드러나 보인다는 것이었다.
“애인 생각.”
나도 턱을 괴고 마주보며 말했다.
“애인 어디 있는데?”
나는 가슴에다 한 손을 갖다 대며, ‘여기에’ 라고 말했다. 그것은 언젠가 아미츠가 해 보인 행동이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갖다 대며 마음속엔 언제나 그녀가 있노라 말했었다.
“우딘 씨, 음식이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많이 먹어야 해요?”
김기수 씨는 그들이 돈을 아끼느라 음식을 조금씩 먹는다고 했고, 지독한 놈들이라고까지 표현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음식에 그다지 욕심을 부리지 않아서, 대개의 한국사람이 먹는 양의 절반도 먹지 않았다. 소식하는 게-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습관이 되어있었고 한꺼번에 여러 종류의 음식을 먹지도 않았다.
별로 즐거워 보이지 않는 우딘을 쳐다보며 음식이 담긴 그릇을 가리켰다. 나 역시도 그와 여기 온 게 즐겁지는 않았다. 공장에서 같이 일 할 때야 별로 불편할 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출발하기 전에도 분명히 각인시키려 했지만, 그는 여전히 날를 ‘여자’로 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여자로 생각하면 안돼요. 그냥 친구로서 같이 가는 거예요. 우딘 씨가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하니까요.’
“내 꿈이 뭔지 알아?”
진회색 빛 구름에 걸려든 해는 이제 빨갛게 익은 달 모양을 하고 좀 더 밑으로 내려앉아 있는 게 우딘의 등 너머로 보였다.
“나는 말야. 아파트를 하나 살 거야. 삼십 평쯤 되는 아파트 말야. 그리고 한국 여자와 재밋게 살 거야.”
“고향에 있는 부인과 아들은 어떻게 하고?”
“돈 만 부쳐주면 돼.”
순간, 그도 한국에 와서 많은 것을 배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요 며칠 전에 보았던 신문의 머릿기사를 떠올렸다.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들 강제출국 면하지 못 할 듯.’
“그런데 삼십 평 아파트가 얼만 지나 알아? 그리고 둘이 사는데 삼십 평이 왜 필요해? 십 오 평만 해도 충분하지.”
“글쎄, 가보지 않아서 모르긴 하지만 … 그런데 삼십 평 아파트가 얼마나 해?”
“그거야, 지역이 어디냐가 문제지. 서울 한복판은 몇억 할거고, 여기도 근처도 아마 억 가까이 되지 않을까?”
주 6일 동안 열두 시간 일했을 경우, 식대 포함해서 100만원을 받는다는 그의 월급을 생각하며 괜한 말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자책이 일순간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식비를 포함한 난방비 기타 생활비에다, 고향의 가족에게 돈을 보내고 나면 무슨 재주로 아파트를 산다고 생각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우딘씨, 고향에 가고 싶지 않아? 한국에 와서 고생 많이 했잖아. 못된 한국 사람들에게 욕도 많이 먹고.”
“그래도 난 한국이 좋아. 한국 사람들이 밉지도 않고.”
“음, 그래. 그런데 지난번 중국에서 온 친구들 두 명 있잖아. 그 친구들은 한국사람들 싫다고 하던데?”
두 사람 중에서 한 친구는 창백할 정도로 희고 핼쓱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한국말을 좀 할 줄 알았다.
그들은 공장에 얽매여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는데 질린 나머지 일당쟁이로 나선 친구들이었다. 그러니까 용역회사에 마련된 숙소에 기숙하면서, 갑자기 일이 많아진 공장이나 기타 작업장에 불려 다니는 거였다. 그러나 그들 일당은 용역 업주에게 지불되었고, 업주는 다시 소개비로 삼 사십 퍼센트를 제외하고 그들에게 나눠주었다.
“한국사람들 나빠. 너무 일 많이 시켜. 그리고 우리들 돈 벌면, 색시들 데려와. 그러면 돈 다 없어져. 나, 한국 싫어서 집에 가고 싶은데, 돈 없어서 집에도 못 가. 한국, 정말 나빠.”
“난 아냐. 한국이 좋아. 여기선 그래도, 돈을 벌 수 있잖아?”
언젠가 내가 특근이 없는 일요일엔 뭐하며 지내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는 잠을 자거나 텔레비전을 본다고 대답했다. 텔레비전보다는 책을 읽는 게 낫지 않느냐는 내 말에 그는, 우리말로 된 책을 어디서 구하느냐고 반문했다. 그 순간은 나도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서 어쩌면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들 나라에서 들여온, 그들을 위한 음식공급 차가 가끔 숙소에 들른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는 더욱 그랬다.
면적에 비해 인구도 많은데다 잦은 호우로 농작물의 피해가 심한 나라가 방글라데시였다. 그에 따라 문맹률도 꽤 높았다.
“그렇지만 한국 사람들이 깔보고, 이유 없이 욕하고 그러잖아?”
“돈 없으면, 어딜 가도 그래. 돈 없으면 사람 사는 게, 다, 힘들어.”
그의 갈색 눈이 사위어 가는 노을빛에 반사되어 음울하게 빛났다. 그는 말을 끝내고 접시에 담겨진 생선튀김을 젓가락으로 뒤적거렸다. 그러나 그는 거의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 여자 아버지는 재일 교포였고 변호사였다. 늦게 결혼해 남매를 낳았고, 딸이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쯤에 아내와 딸을 먼저 한국에 들여보냈다. 그래서인지 국어 발음이 완전히 매끄럽진 않았고, 어설픈 발음 때문인지 소녀 같은 천진하다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리하여 주인여자 보다 내가 더 나이를 먹은 게 아닌가 착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젊은 주인 여자, 내 이름을 불러 놓고는 심각한 얼굴이 되어 푹신한 소파에 비스듬히 몸을 뉘이고 한동안 말을 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의 그 여자 가까이에는 신문지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거나 아니면, 방금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꺼버린 경우였다. 주로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르고 거리로 뛰쳐나온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모습이 주 뉴스거리로 등장한 때였다.
한 손으로는 턱을 바치고 다른 한 손은 예의 그 검고 윤기 반들거리는 머리를 엉덩이 밑에까지 쓸어 보이는 동작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벌떡 몸을 일으키는 것이었는데, 그러면 그 여자의 검은 파도 같은 긴 머리도 덩달아 출렁거렸다.
“서림아, 넌 어떻게 생각하니? 대학 나온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몇 갑절은 돈을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지 않니?”
그렇게 내지르고는 다시 생각에 잠긴 듯 도로 자리에 앉았다가 벌떡 일어나서는
“도대체 말이나 되니? 공부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그 시간과 노력, 그렇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그 시간에 돈을 벌잖니? 바로 너처럼 말야.”
그렇게 말하면서 그 여자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보였다. 그리고는 나를 빤히 올려다보기도 했는데, 그 여자의 흰 이마 밑에 휑뎅그레 자리 잡은 두 개의 검은 호수가 일순간 희게 빛이 났다 사라지곤 했다.
“그럼,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 건가요?”
“나도 몰라. 하지만 여기서 살고 싶어.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식당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모두들 큰 소리로 말을 했고, 유쾌한 웃음소리가 실내를 채웠다.
검붉게 익어가던 해는 이제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바닷물은 흑빛으로 출렁거렸고, 짙게 드리워졌던 구름도 걷혀간 자리엔 별들이 나타났다.
내가 살며시 일어나 계산대를 다녀오자, 우딘이 내 팔을 꽉 잡고 지갑을 빼 들었다.
“서림 씨 짤렸잖아. 돈 아껴야지!”
“아니, 다른 일자리 알아보고 있어요.”
그렇잖아도 사장은 나를 해고하려 벼르는 중이었을 거였다. 사사건건이 사장 눈 밖에 나는 행동을 공공연하게 했으니까!
입사 면접 당시 약속했던 상여금을 왜 한 번도 지급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가라고 소리를 질러대었다. 당연(?)하게, 해고수당 따위는 법령에만 존재했다.
“괜찮아요. 실은, 내가 오고 싶었어요. 노을을 보고 싶었거든요.”
노을이 사라진 쪽을 가리키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우딘은 알았다는 듯, 지갑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