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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하반기 문예바다 신인상 단편소설 수상작 |
뒤뜰의 사과나무
권도희
“방금 영화 하나 봤어. 댈러웨이 부인.”
지난주 금요일 늦은 밤에 강희 전화를 받았다. 열흘 만이었다. 웬일로 수면제 먹은 혀 말리는 소리가 아니라 약간 흥분된 목소리였다.
“버지니아 울프 원작인데, 클라리사가 강물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어. 주머니에 무거운 돌을 잔뜩 집어넣고.”
내가 생각하느라 미처 대답이 없자 강희가 확인하듯 물었다.
“진서야, 내 말 듣고 있어?”
“그 장면이 왜 인상적인데?”
“그냥…….”
나는 그때 알아챘어야 했다.
“아직 많이 바쁘지?”
만나자고 전화할 때마다 매번 떠보는 질문이 성가시고 짜증이 올라왔다. 그래도 나를 만나야 숨을 쉬고 살 것 같다니 좋게 대답했다.
“너랑 커피 마실 시간이야 있지.”
“정말? 그럼 나 내일 나갈까?”
“아, 내일은 안 돼. 작가에게 추가원고를 받아야 되는데, 자기 집으로 오라잖아.”
“그럼 언제? 월요일? 화요일?”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마음이 급해지는 눈치였다.
“음, 일요일은 네가 안 될 테고…… 나 월요일엔 무릎주사 맞으러 가야 되고, 화요일엔 충주 가.”
“맞다! 화요일이 엄마 제사지? 나 데려가?”
강희가 바짝 달라붙었다.
“너도 갈래?”
“제사 지내고, 모텔에서 같이 있다 오면 되겠다!”
갑자기 강희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모텔은 무슨. 동생네서 자야지.”
“아니야! 작년에 우리한테 안방 내주고 걔들은 거실에서 잤잖아. 불편해. 모텔에서 자자.”
“야! 오랜만에 내려가서 얘기도 하고 그래야지. 나가서 잔다면 걔들이 서운해 해.”
“으응…… 그럼 나 안 갈래.”
“월요일에 병원으로 올래? 똥빵도 사고.”
내가 다니는 병원 옆에만 있는 황금똥빵집 빵을 먹고 싶단 적이 있다.
“그럴게. 진서야, 사실은 나…… 또 사고 쳤어.”
“무슨 사고?”
“나 또라이 미친년이야. 암튼 나중 만나서 이야기해.”
“그래, 월요일에 만나 듣자.”
“응. 윤재가 이번 일요일엔 집에 못 온다고 월요일 점심때 보쟀어. 점심 먹고 병원으로 갈게. 나도 허리주사 맞고, 똥빵도 사고, 너도 안아 보고, 네 얼굴도 만져 보고 그래야겠다.”
“그래, 두 시 예약이니까 너도 와서 접수해.”
“마스크 꼭 하고 다녀. 코로나일군지 일일군지 지겨워 죽겠다. 월요일에 봐, 두 시에!”
* * *
“얘!”
모처럼 나간 대학동창회에서 누가 내 팔을 툭 쳤다. 가끔 소식은 전해 들었지만 거의 30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3학년 때 편입 온 강희는 자그마한 키에 조용한 아이였다. 강의실에서 마주치면 눈인사나 나눌 뿐 대화라고 나눈 적이 별로 없다. 웃으며 말 거는 남학생들을 눈살 찌푸리고 쳐다보는 모습에 다소 괴팍하고 신경질적인 애라고 여겼던 기억만 떠올랐다. 아직 소녀 같았다. 애교도 있고, 잘 웃고, 여성스러웠다. 어린애의 천진스러움도 보였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한자리에 앉아서 강희를 지켜본 건 그날이 처음이다.
“쟨 우울증에 공황장애까지 앓는다더라. 정신과 약 먹는다는 소리 들었어.”
내 옆의 수지가 저만큼 남자들 사이에 앉아 있는 강희를 눈짓하며 속삭였다.
“공황장애 그거, 가끔가다 엄청난 공포를 느끼는 거라며?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거지?”
“무슨 이유가 있어서 무서운 게 아냐. 그냥 무서운 거야.”
“쟤 자살 기도도 했대.”
시종 별말 없이 앉아 있기만 하던 강희가 자리가 파할 무렵 내게 다가왔다.
“진서야, 너 명함 있지?”
내가 핸드백 속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자 강희는 무슨 소중한 물건인 듯 두 손으로 감싸 안고 나지막하게 소리쳤다.
“전화할게!”
그러고 사흘인가 지나서 한밤중에 모르는 전화번호가 핸드폰을 울렸다.
“네, 박진서입니다.”
“…….”
“여보세요?”
“진서야, 나야…….”
술에 취해 혀가 꼬부라진 듯한 강희 목소리인데, 느닷없이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거의 통곡에 가까웠다. 나는 너무 뜬금없어 잠시 듣고 있다가 물었다.
“무슨 일이니?”
“미안해…….”
그러고는 전화가 뚝 끊겼다.
뭐지? 처음엔 어이없었다. 그러다 동창회에서 수지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강희는 이틀 후 또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왔다. 역시 그젯밤 그 목소리였다.
진서야, 나는…… 친구가 필요해. 코를 훌쩍거리며 울먹였다. 가끔 만나서 수다 떠는 친구 말고…… 속엣말도 하고…… 위로받고 아껴 주는…… 그런 따뜻한 친구. 너무 생뚱맞았다. 그리고 그 친구가 왜 하필 나여야 하는 건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우리 내일 만나서 얘기할까? 당황해하는 내 말에 강희는 응,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약속장소와 시간을 문자로 보내 주었다.
다음 날 만났을 때 강희는 생글생글 밝은 모습이었다.
강희가 내게 접근해 온 것은 대학시절 내가 같은 과 남자애와 2학년부터 사귀다 졸업 무렵 헤어진 일에 연유했다. 너 그때 K랑 헤어질 때 굉장히 씩씩하더라. 나라면 매일 질질 짜며 비틀거렸을 거야. 학교도 안 가고. 근데 넌 전혀 내색 없이 공부할 거 다 하고 애들하고 웃고 떠들고 하더라. 그게 참 특별해 보였어. 미안해, 너 옛날 상처 들먹여서. 강희는 동창회에서 나를 만났을 때 문득 그 생각이 났고, 지금 보니까 내가 다른 친구들처럼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편네가 아니어서 답답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 때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어서인지 강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폭력도 참을 수 없어 했다. 크든 작든 폭력이라면 몸을 부르르 떨며 거센 반감을 표시했다. 신문이며 뉴스에 나오는 성폭력, 미투, 아동학대, 있는 자의 갑질, 학교폭력 등에 일일이 토를 달며 흥분했다. 다리 부러진 비둘기가 빨간 리본을 달고 절뚝거리는 것을 보고 도대체 어떤 인간이 저런 짓을 하는 거냐고 화를 냈다. 집 안의 파리며 바퀴벌레도 못 잡아 문을 열고 내쫓느라 애를 쓰기도 했다.
또 남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썼다. 남의 말이나 행동이 제 비위에 조금만 거슬려도 별것 아닌 일로 넘기지 못했다. 그것도 정작 그 당사자에겐 아무 말도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다 뒤늦게 나를 만나 얼굴을 붉히며 감정을 터뜨렸다. 그리고 어떤 때는 아주 무심한 얼굴로 주위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기도 했다.
강희는 나를 만날 때마다 두 팔로 내 목을 끌어안거나 몸을 기대 오는 인사로 친근함을 표시했다. 내가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메모지나 볼펜이 필요한 듯하면 제 것을 얼른 꺼내 주고, 커피숍에서 차를 주문해 놓고 기다리다 제가 먼저 발딱 일어나 이것저것 살갑게 챙겨 왔다.
그러면서 늘 자기에게 관심 가져 주기를 바라고, 언제나 맨 앞에 있고 싶어 했다. 내가 일에 쫓겨 어쩌다 약속시간에 늦을라치면 강희는 왜 난 항상 뒤로 밀리냐며 비죽비죽 울었다. 일이 바쁜 것은 이해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약속했으니까 기다리게 하면 안 되잖아. 난 기다리는 거 정말 싫단 말야.
혼자서는 아무 데도 못 가면서 줄곧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강희를 가끔 지방에 볼일 보러 가며 데려갈 때면 좋아라 따라나서서는 늘 투덜거렸다. 좌석이 불편해. 걷기 힘들어. 허리 아파. 잠이 안 와. 음식이 별로야. 그래서 말없이 혼자 다녀오면 그랬다고 삐쳤다. 또 영화 구경이든 연극 관람이든 제가 먼저 가자고 해 놓고, 함께하기로 한 당일 시간이 임박해서 나 컨디션이 안 좋아 못 나가겠어, 난 그거 안 볼래, 해서 기운 빠지게 하는 일이 많았다.
있지, 내가 만나는 사람이 있는데……. 이윤재 이야기를 처음 꺼낼 때 강희는 혹여 내가 저를 어찌 생각할지 몰라 망설였다. 친군데, 친구라면서 비밀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 대학 2학년 때 만난 사람하고 4년을 연애했는데, 그 인간이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말없이 사라졌어. 청첩장도 다 돌렸는데. 그 때문에 만신창이로 살고 있었지. 그래서 너가 더 특별하게 기억됐는지도 몰라. 그때 성진이 아빠가 살면서 연애하자며 집요하게 청혼하더라. 내가 뭔데 저렇게 나한테 목을 매는가 싶어 결혼했는데, 신혼여행 다녀온 그날부터 각방을 쓰자는 거야. 자기는 그게 편하다고. 난 외로운 거 정말 질색인데. 명상이나 해 볼까 하고 명상센터에 갔다가 윤재를 만났어. 8년 전에. 나보다 네 살 어린데, 자기 사업을 해. 우선 과묵하면서도 이야기가 통해서 좋았어.
윤재는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대해 주는지 몰라. 윤재랑 있으면 내가 여왕이 된 것 같아. 처음 관계를 갖던 날, 함께 해외출장 갔던 일 등을 이야기하며 강희는 얼굴을 발그레 물들였다. 윤재는 마치 어린애 안는 기분이라면서 날 안아. 난 윤재가 안아 주고 만져 주는 게 참 좋아.
윤재를 만나면서 아무리 뱀같이 차가운 남편이지만 죄책감을 느끼는 게 너무 싫었어. 내가 이혼하자니까 그 인간이 우리 집안에 그런 일은 절대 없다며 거절하는 거야. 한 3년을 해 달라, 안 된다 다퉜어. 하루는 내가 소주를 반병이나 마시고 네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하자고 덤볐어. 성진이도 나를 거들어 주고. 그랬더니 나한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며 이혼해 주더라.
이혼 전인데, 우리 집 앞을 지나가던 어떤 할머니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쯔쯔 혀를 차는 거야. 왜요? 물었더니 집 뒤뜰에 사과나무 하나 심어 놓고 남몰래 키우고 있구먼, 그러잖아.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물으니까 무슨 말인지는 자네가 더 잘 알겠지. 평생 애가 타겠구먼, 그러는 거야. 그때 나 엄청 놀랐어. 윤재 얘기잖아.
아무튼 남편이랑 헤어졌다니까 윤재는 왜 그랬냐고 묻더라? 그러곤 아무 말도 않는 거야. 나는 내 위선이 너무 싫어서 이혼한 건데, 나만 저한테 사랑 달라고 구걸하는가 싶고 억울하기도 해서 정말 화가 많이 났어. 근데 윤재는 내가 아무리 지랄 떨고 발광해도 달다 쓰다 무슨 대꾸가 없어. 또 때가 됐나, 그런가 봐. 저는 나하고의 만남을 운명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평생 나를 안 놓을 거래. 다음 날 아침이면 어제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태연히 잘 잤냐고 전화하고 그래.
그 이윤재가 작년 봄에 갑자기 쓰러졌다. 사업으로 연일 밤이고 낮이고 몸을 너무 혹사한 탓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강희와 시간을 보내고 간 다음 날 아침, 강희는 으레 하던 대로 문자를 넣고야 알게 되었다.
― 잘 들어갔지? 비 오네.
답장이 왔는데, 그 안사람이었다.
― 윤재 씨 지금 급성뇌경색으로 병원에 있어요.
강희는 득달같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통곡을 하고 있었다.
“윤재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갔대! 어느 병원인지, 어떤 상탠지도 몰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나 어떡해!”
그렇게 울부짖던 강희는 윤재가 병원에 있는 동안 다른 남자를 만났다. 미국에서 사업하다가 들어온 두 살 아래인 사람인데, 누나라고 하면서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전화하던 남자였다. 돈도 잘 쓰는데다가 영어가 유창하고 유머가 넘쳐 강희를 자주 웃게 만들었다.
윤재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는데, 난 수찬이를 만나서 낄낄거려. 그러는 내가 미친년 같아.
야,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도 아니고! 나는 강희 등짝을 세게 갈겼다.
아냐, 올렌카는 누군가를 사랑해야 살 수 있는 여자지. 근데 난 누군가가 날 사랑해 줘야 사는 것 같아. 나도 알아, 내가 괴물이란 거. 강희는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조그맣게 말했다.
달포 만에 깨어난 이윤재는 그날로 강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밖에, 걱정되는 건 너밖에 없었어. 내가 이렇게 가면 강희는 어떡하나, 너만 걱정했어. 이윤재가 깨어나자마자 전화했더라는 이야기를 내게 전하며 강희는 또 울었다. 그 인간이 나만 걱정되더라고, 오전에 얼음베드에서 깨어나 일반 병상으로 옮겨서 맨 먼저 내게 전화하는 거래. 난 목이 메서 아무 말도 못했어.
이윤재는 퇴원하고 통원하면서 한방과 기氣치료까지 곁들이며 재활에 공을 들였다. 그러면서 전과 같이 일요일이면 강희를 보러 왔다.
와서 커피 마시고 한 십 분쯤 앉아 있다가 가. 그게 다야. 이윤재가 깨어났다고 전화했을 때 울던 강희는 어디로 가고 내내 심드렁해했다. 남녀가 서로 만지고 안고 하지 않으면 아무 관계도 아닌 것 같아. 그건 정말 메마른 감정이야. 너무 삭막해서 못 견디겠어.
수찬인 가볍지만 그게 유쾌해. 그리고 오랫동안 날 안아 주고. 아, 난 왜 이럴까! 나 미친년이지? 더럽지? 그치? 난 내가 아프로디테의 피를 받은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어. 아니, 어쩌면 아프로디테가 차고 다니던 캐스토스 히마스의 저주를 받고 있는 건지도 몰라.
어떤 날 밤은 전화해서 혀가 꼬인 소리로 난 쓰레기야! 걸레야! 더러워 죽겠어! 찢어발기고 싶어! 하며 엉엉 울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제 감정 제 말에 열중해서 남의 말을 미처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강희와 그런대로 7, 8년을 잘 지내 왔는데, 작년 말부터 나는 강희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출판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아무 때고 강희가 보자고 할 때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A기획실의 공동 작업에 참여한 뒤로는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 더구나 연말에 막바지 작업을 할 때는 사정이 더 나빴다. 전처럼 자유롭게 아무 시간에나 만날 수 없어지자, 강희는 짜증이 심해지고 투정이 늘었다. 진서야, 나 무서워. 널 만나야 숨을 쉴 수 있어. 죽을 것 같아!
처음엔 정말 미안했다. 제가 만나잘 때 만나 주지 못해 애가 타기까지 했다. 그런데 강희의 응석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횟수가 잦아지자 반감이 일기 시작했다. 이기적인 가시나! 내가 이렇게 곤죽이 되도록 피곤한데…….
무엇보다 내 마음에 옹이가 진 것은 강희의 거짓말이었다. 공동 작업이 일차 끝나고 한숨 돌릴 때였다. 진서야, 나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졌는데, 머리가 깨져서 꿰맸어. 목도 찢어지고. 강희의 전화 목소리는 한껏 처량했다. 아니, 머리 깨진 것은 이해되는데 어떻게 떨어졌기에 목이 찢어져? 어떤 상태인지 사진 좀 찍어 보내라고 했다. 보내온 사진을 보니 정말 목에 가로로 벌건 금이 가 있고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사진을 보내고는 또다시 전화를 걸어 나 많이 아파, 강희는 내가 관심 가져 주기를 바랐다. 나는 강희에게 차갑게 말했다. 연말이라 마침 일도 없고 해서 한 보름가량 엄마 위패 모신 절에 가 있을 거야. 나도 갈게. 따라나서겠다는 말에, 그 꼴로? 집에서 치료나 해. 보름 정도면 웬만큼 나을 거 아냐. 나 혼자 있고 싶어서 가는 거야, 나는 거절했다. 당분간 전화도 안 받을 거야. 연락이 안 되더라도 그런 줄 알아.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
사나흘 뒤에 ‘잘 있니?’ 카톡 문자가 왔을 때 ‘응’ 한 글자만으로 대꾸했다. 그런 뒤 ‘어떻게 지내?’ ‘별일 없어?’ ‘언제 와?’ 하고 물어 왔어도 일절 모른 체했다.
보름쯤 후였는데 ‘나 이번 수술 잘된 것 같아’ 하는 메시지가 왔다. 수술? 나는 강희의 목에 가로로 벌건 줄이 있던 사진을 떠올렸다. ‘뭔 수술을 했는데?’ 내 문자에 강희는 아무런 답도 보내오지 않았다.
그 후로 강희에 대한 내 감정이 쭈그러든 풍선 같았다. 눈물을 보이면서까지 내게 모든 걸 솔직하게 다 얘기했다고 한 강희가 가증스러웠다. 유난히 동안이라고, 강희와 같이 다니면 언니 동생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성형했다면 누가 뭐래? 거짓말을 알아차린 내 심사가 꼬이고 그 꼬임은 점점 비틀려 갔다. 눈치 빠른 강희가 못 알아차릴 리 없었다. 나는 강희에게 그 일에 대해 캐묻지 않았지만 내 감정을 속이는 일에 능숙하지 못했다. 강희는 강희대로 충동적으로 보낸 메시지에 대한 변명도 없이 서로 찜찜하고 불편한 시간이 지나갔다. 그러면서 여름이었다.
* * *
강희와 만나기로 한 월요일 오전, 양이 꽤 많은 작가의 손글씨 추가원고를 입력하다 보니 1시 20분이었다. 그날 중으로 추가원고를 넘겨야 출판 일정에 차질이 없었다. 약속한 2시보다 30분은 더 걸리겠어서 일단 강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중이었다.
입력을 계속하다 다시 전화했다.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녹음 멘트가 나올 때까지 어깨와 귀 사이에 핸드폰을 걸쳐 놓고 울려도 받지 않았다.
일을 끝내고 나니 2시 5분이었다. 서둘러 나가면서 또 전화를 했다. 역시 안 받았다.
― 통화 중이더니 전화 안 받네?
카톡에 메시지 한 줄을 남겨 놓았다.
병원에 도착해 대기실을 둘러봤으나 보이지 않았다. 혹 먼저 치료받고 있는가 싶어 접수에 문의하니 오지 않았다고 했다. 다시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무릎주사를 맞고 물리치료까지 한 뒤 잠시 후에라도 연락이 올지 몰라 나는 강희가 먹고 싶다고 한 빵을 몇 개 사 들고 출판사로 갔다. 추가원고를 편집한 교정지를 받아 나올 때까지도 강희에게서는 소식이 없었다. 카톡을 들여다보니 문자도 확인하지 않고 있었다.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었다. 뭐 그리 바쁜 일이 있다고……. 그러고는 나중 제가 전화하겠지, 하고 집에 와 일을 하느라 강희를 잊어버렸다.
화요일 오전에 교정지를 출판사에 넘겨주고 충주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동생에게 ‘12시 40분 도착’이라는 문자를 보내 놓고 강희가 그때까지도 카톡을 확인하지 않은 것을 보게 됐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핸드폰을 눌렀다.
“언니! 진서언니!”
“누구세요? 이강희 핸드폰 아닌가요?”
“진서언니, 언니가…… 죽었어!”
“뭐라구?”
강희의 동생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강희 그년 죽었다구! 자살했어!”
“뭐!……라구?”
소리를 지르다 말고 버스 안이라 목소리를 죽였다.
“무슨 그런 일이……. 어디니?”
“Y병원. 언니 빨리 와.”
그날 그 통화가…… 마지막이었어? 머리가 멍해졌다.
진서야, 있지, 우리 바다 가자. 늘 바닷가에 가고 싶어 했다.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요구를 한 번밖에 못 들어주었다. 그것도 단둘이 아닌, 단체에 섞여서. 그때 강희는 해가 넘어가는 정동진 바닷가에 서서 멍하니 수평선만을 바라보았다. 날씨가 차가워 몸을 잔뜩 움츠리고 이를 부딪쳐 가며 서 있었다. 그만 가자, 내가 어깨를 치자 응, 선선히 대답하면서도 눈길은 여전히 수평선에 주고 있었다. 걸음을 떼 놓으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있지, 바닷가에 너랑 와서 참 좋아. 그러는 강희를 나는 등짝을 밀며 걸음을 재촉하기만 했다.
바닷가에 서 있던 강희의 모습 위로 뙤약볕 아래 먼지 풀풀 나는 사막을 걷고 있는 강희가 겹쳐 보였다. 자그마한 아이가 어깨를 늘어뜨린 채 지칠 대로 지친 모습으로 타박타박 마지못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별일 없지? 터미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생이 내가 차에 오르자 물었다. 응, 아니. 뭔 말이 그려? 앞을 보던 동생이 내 얼굴을 돌아보았다. 나는 그제야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동생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차창 밖을 내다보며 대답했다. 작년 엄마 제사 때 같이 내려왔던 내 친구 있잖아, 강희. 걔가 죽었대. 엊그제 같이 오겠다고 했을 때 그러자고 했으면 안 죽었을라나……. 뭐? 왜? 동생은 잠시 말이 없다가 다시 이었다. 고민이 많았나 보군. 사람이 고민이 일곱 가지면 죽을 수밖에 없다잖아. 속 썩지 마.
아니, 오늘 나하고 같이 여기 온다는 기대가 있었다면 안 벌어졌을 일인지도 몰라.
올케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나는 동생 집 베란다 한쪽 끝으로 가서 다시 강희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아줌마!”
성진이가 전화를 받아 나를 부르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래그래, 성진아. 무슨 이런 기막힌 일이 다 있니?”
일요일 밤에 벌어진 일이었다. 연락을 받고 달려간 성진에게 경찰은 14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강희 시신을 확인해 달라고 했다. 너무나 처참하고 참혹해서 성진은 강희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경찰이 아파트 문을 부수고 들어갔을 때 옷장이고 책상서랍이고 다 열려 있어 처음엔 강도가 든 줄 알았다. 그런데 목욕탕 샤워기 매단 곳이 부러지고 의자가 나뒹굴어 있어 목을 맸던 흔적을 발견했다. 그리고 열린 베란다 방충망 안쪽 밑에 수건과 바지 등을 묶은 것이 던져져 있어 창문으로 뛰어내린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훅, 숨을 들이마셨다.
“토요일에 이모랑 인사동에서 점심 먹고 차 마시고 헤어졌대요. 저녁에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는 것까지 씨씨티비로 확인했어요. 검시관이 사망시간 추정했는데, 일요일 밤이래요.”
“어제 오후에 전화했을 때 통화 중이던데…….”
“그건…… 두세 사람이 동시에 전화를 걸면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런 거구나. 엄마가 뭐, 남긴 말은 없니?”
“식탁 위에 ‘더는 싫어’라고 이리저리 갈겨쓴 종이쪽지만 있었어요. 제게 뭔 말이라도 남겼으면 이렇게 가슴이 찢어지진 않을까요, 아줌마?”
울고 있는 성진이와 통화를 끝내고 강희의 이름을 내려다보았다. 사실은 네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강희의 어깨를 토닥이듯 이름을 손가락으로 톡톡거리며 숨을 크게 내쉬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네, 박진서입니다.”
“전…… 저 이윤재입니다.”
목소리가 침통했다.
“아, 네.”
“제가 어제 오늘 좀 멍하네요. 이제야 조금 정신 차려 전화 겁니다. 전부터 진서 씨 전화번호는 알고 있었어요.”
“저도 오늘에야 강희 소식 들었어요.”
이윤재가 땅이 꺼져라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은 일요일에 집으로 가야 되는데, 그날 일이 있어서 월요일에 점심이나 먹자고 했죠. 일요일 오전에 통화할 때 비트코인 산 것이 잘못됐다는 이야길 하더라구요. 선매한 것이어서 사천만 원을 물어야 된다고……. 내일 만나 이야기하자고 했어요. 그리고 월요일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 혼자 점심 먹고 들어와서 전화했더니 통화 중이더라구요.”
그때 내가 같이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저녁에 세 번이나 전화했는데도 안 받는 거예요. 돈 얘기 했을 때 나중으로 미뤄서 또 삐쳤구나, 그러고는 어제 아침에 전화했더니……. 가 보고 싶은데, 정말 가서 마지막 인사라도 하고 싶은데 느닷없이 외간남자가 나타나면 집안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고인의 명예를 생각해서 못 가고 있어요.”
“가 보세요. 가셔도 괜찮아요. Y병원이에요.”
“정말 가도 괜찮을까요?”
있지, 나 수찬이 밀어냈어. 강희가 한 달 전쯤 커피에 설탕봉지를 몇 개나 찢어 넣으며 말했다. 다음 말이 이어지기까지 끈질기게 기다리자 강희가 흠, 콧김을 불어내고 입을 열었다.
나 이제 걔 안 만날 거야. 그동안 꽃도 사 오고 군것질거리도 사 오고, 수원에서 밤늦게 왔다 가곤 했는데 이젠 오지 말라고 했어. 절대 오면 안 된다고 했어. 걔가 왔다 가고 나면 윤재에게 자괴감이 들어서 미치겠어서. 근데 내가 정말 걔 안 보고 살 수 있을까?
강희 인생에 남자 말고, 정욕을 채우는 일 말고 다른 어떤 목표가 뚜렷했다면 그 삶에 생기가 있었을까. 강희는 혼자 살면서 우선은 외로웠고,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이윤재가 매일 아침저녁 거르지 않고 전화를 거는 건 어디까지나 습관 같은 것이라고 강희는 불평했다. 그가 가끔씩 불러내어 식사를 같이하고, 일요일이면 아파트로 찾아오곤 하지만 강희의 기대치에는 늘 부족했다.
강희는 정신과 약을 먹는데다 생리적인 일들까지 약에 의존했다. 아침 10시쯤 일어나 변비약과 두통약부터 먹고, 적당히 과자 부스러기나 빵 같은 것으로 한 끼 때우는데, 좀 과식했다 싶으면 바로 소화제를 먹었다. 그러고 백화점에 나가 한 바퀴 돌다가 마음 끌리는 것 있으면 사고, 땅거미가 질 때쯤 무섬증이 도져 되도록 일찍 귀가하곤 했다. 밤 외출은 절대 하지 않는다. 책이나 영화를 다운받아 보다가 11시쯤 수면제를 먹고 잠자리에 드는데, 중간에 잠이 깰 때는 다시금 약을 먹고 잠을 청했다. 자려고 애쓰지 말고 뭔가를 해 봐, 그러면 다음 날은 잘 수 있을 것 아냐. 내 말에 강희는 고개를 저었다. 수면제 없이는 날밤을 꼬박 새게 되고, 밤을 샜다고 낮에라도 잘 수 있으면 좋은데 몸 여기저기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플 뿐 이틀사흘이 가도 잠을 못 자기 때문에 수면제는 필수적이라는 거였다.
어떤 하루는 온 사방이 탈출구 없이 무서워 죽겠고, 어떤 하루는 기분이 너무 가라앉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또 어느 날은 아무 데라도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명랑해지는데, 막상 나가려도 늘 바쁘다는 나 외에는 만날 사람이 없었다. 그런 날은 광화문 집회에 나가 시간을 보내고 들어온 적도 있다. 시위에 동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운집해 있는 타인들 틈에서 자기 존재를 찾으려는 것이었다. 또 툭하면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부황을 뜨고, 내과에 들러 영양제 링거를 맞기 일쑤였다. 말만 들어도 참 나른한 나날이었다.
필경 수면제를 먹고 나서였을 게다. 무슨 생각에 골똘해 있다 발딱 일어나서 입을 악다물고 열세 평 아파트 안을 바쁘게 오갔을 것이다. 이 서랍 저 서랍 뒤져 끈이나 헝겊을 찾고, 마땅치 않아 수건과 바지를 묶어서 제 목을 매고, 그리고…….
지금이라도 내가 가서 장례를 참섭해 주어야 하는 건 아닌가. 죽으면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 달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성진이가 어떻게 할 건가. 사십구재도 지내 줘야 하는데 성진이가 그런 걸 알까? 아니, 이건 나중 일이니까 놔두고……. 생각이 이랬다저랬다 종잡을 수 없이 왔다 갔다 했다.
사포 말이야, 그리스의 여류시인. 딸까지 질투했다던 그 여자 시에는 사랑, 꽃, 밤이 있어. 사랑에다 꽃이랑 밤을 더하면 뭐가 될까? 사포는 파온의 사랑을 원했지만 얻을 수 없었어. 그래서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거야. 나도 그렇게 갈까? 아, 정말 살아 있는 게 지겨워. 빨리 죽고 싶어. 난 윤회 같은 거 안 믿어. 죽으면 끝이야. 알프스 눈 속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말까? 수면제 모아 놨다가 한꺼번에 먹을까? 아니지, 나밖에 모르는 우리 성진이를 생각해서라도 내가 그러면 안 되지.
그러더니 간 거니?
나는 가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절대 안 가는 걸로. 장례식장도, 무덤 또는 유골 뿌린 곳도 안 가는 걸로. 제 자식 가슴에 대못 박고 저는 지금 편한가 모르겠다. 아프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고, 죽어서 좋은지 물어 보고 싶었다.
― 다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윤재의 문자에 나도 답신을 보냈다.
― 잘하셨어요.
잠시 후 이윤재에게서 다시 문자가 들어왔다.
― 잠깐 통화해도 될까요?
네, 답장을 보내자마자 이윤재가 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아까보다는 조금 밝아진 목소리지만 젖어 있었다.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강희 얘기 좀 하고 싶은데 달리 얘기할 사람이 없어서…….”
이윤재는 강희에게 진심이었다. 늘 투정을 부리고 변덕스럽고, 때로는 앙칼지게 덤비기도 하고 애교를 부리며 기대 올 때도 그의 마음은 언제나 그대로였다. 그는 강희와 평생을 같이할 사람이었다. 강희가 이혼했을 때 좀 충격을 받았지만, 자기가 놀라면 오히려 강희가 상처받을까 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 이후 당연히 강희가 생활하는 데 불편하지 않게끔 배려해 왔다.
돈 때문에 약간 고통스러워하는 강희에게 내가 물은 적이 있다. 이윤재 그 사람 돈 잘 번다며, 생활비 좀 안 주니? 강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필요하면 달라고 하라는데, 지가 알아서 챙겨 주면 몰라도 난 말 못해. 꼭 몸 파는 것 같아 기분 더러워서. 난 강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것을 떠올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마음 쓴다고 썼는데 충분치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지하철에서 내리다 넘어져서 목을 다쳤을 때는 수술비 챙겨 주면서 병원에 함께 가 주지 못해 참 속상하고 미안했어요.
남자는 돈 가는 데가 마음 가는 데다. 옛 어른들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또 마른침을 삼켰다.
“강희가 저렇게 간 이유가 뭘까요? 비트코인이 잘못돼서 그랬을까요? 그건 내가 해결해 준다고 했는데……. 저는 끝내 모르겠습니다.”
“혹시 사과나무 이야기 들은 적 있으세요?”
“아, 네…….”
“아마도 그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저도 그 곁가지였어요.”
내 말에 이윤재는 네? 네? 했다.
이윤재와 통화를 끝낸 나는 속이 메슥거리고 답답했다. 바람 좀 쐬고 오겠다고 동생 집을 나온 나는 무턱대고 걷기 시작했다. 해거름 녘이었다.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걷고 싶었다.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며 걷던 나는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충주의 상징으로 서 있는 사과나무 가로수를 발견했다. 그것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무성한 잎 속에 아직 크지 않은 파란 사과들이 보였다.
사과나무!
강희는 제 사과나무가 얼마나 크기를 바랐던 걸까. 결코 자라지 않는 사과나무를 더 이상 가꾸지 않기로 포기했던 것일까? 나를 그 곁가지로 놔두고 정성을 들였는데, 그마저 여의치 않아 절망한 것일까?
나는 사과나무로 냅다 달려갔다. 그리고 발길질을 해 대고 가지를 꺾었다. 이 가지 저 가지 달려 있는 조그만 사과들을 마구잡이로 따서 땅에 내던졌다.
이런 거 아무것도 아냐, 강희야! 그럴 만한 가치도 없어!
그때 운동모자를 쓴 남자가 달려오며 소리 질렀다.
“여봐유, 그건 시 재산이유! 시 재산을 그렇게 망가뜨리면 벌금 내는 거 알아유, 몰라유!”
그런 거 몰라! 내면 될 거 아냐 벌금!
나는 속으로 부르짖으며 계속해 사과를 따서 패대기쳤다. 내 뺨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
권도희 | 1955년 충북 충주 출생. 1973년 경희대 전국 고교문예 현상공모에 단편소설 「미워할래요」 당선, 국문과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하여 문학수업. 다년간 출판계에서 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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