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집 공도현
아버지가 아흔이 되셨다. 네 살 차이라 어머니도 여든여섯이 되셨다. 작년에 이곳에서 좀 떨어진 경산의 집을 팔고 우리 곁의 도심지 신축아파트로 모셨다. 평소 경산까지 들리기도 불편하고, 한번씩 병원에 모시고 다니기도 힘들었다. 무엇보다 두 분이 외로워보였다.
두 곳의 시세 차이가 커서 대출까지 냈다. 마지막 효도한다고 무리를 했건만, 아버지는 들어서자마자 시끄럽니 어두우니 하며 우리 속을 긁었다. 달구벌대로변이니 당연히 경산보다 소음이 심하다. 장학사, 교장을 지닌 이력으로 지적하는 게 몸에 배셨다. 말을 하시고는 싸한 기분을 느꼈는지 지난번 집보다는 낫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이사 온 날부터 호출이 이어졌다. 보일러 스위치 작동법부터 모니터 보고 버튼 누르기 등 낯선 기기의 작동법은 몇 번이고 물었다. 한 번이라도 덜 가려고 미리 기기 작동법을 쭉 설명했지만, 언제 했냐며 다시 불렀다. 심지어 어제 썼던 모자가 보이지 않는다고 새벽부터 전화가 왔다.
가면 그냥 올 수가 없다. 거실 바닥이 타작한 마당처럼 어질러져 있고, 식탁은 우리가 며칠 만에 왔는지 알 수 있게 끼니마다 다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는 청소기로 거실을, 아내는 행주로 주방을 정리했다. 갈 때마다 그러니 한 번이라고 가는 일을 줄이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도 우리가 어른 집에 가면 그 정도로 끝나는 데 문제는 두 분이 다정히 손잡고 우리집에 들릴 때다. 아내가 효부인지, 모자라는지 현관의 비번을 아버지 생신 날짜로 해두어 그 연세에도 방문까지 출입이 무사통과다. 주말 아침, 오랜만에 둘이 껴안고 늦잠을 자는데 방문이 활짝 열려 침대 밑으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
옷매무새를 고치고 급히 나가보면 거실을 여기가 우리 집인지 어른 집인지 분간이 안 되게 만들어 놓았다. 소파에는 입고 온 겉옷이 널브러져 있고, 텔레비전 채널은 어떻게 찾았는지 낯익은 가수가 보랏빛 엽서를 부르고 있었다. 두 분의 청력이 예전과 같지 않아 볼륨을 운동회 음악에 견주어 조금도 적지 않게 틀어놓는다. 탁자에 놓여있던 심심풀이 과자는 반은 입에 나머지는 카펫 위에 깔린다.
때가 되어 식사를 차리면 앉자마자 입맛이 없다며 밥을 내게 덜어주었다. 그러면 다행이다. 어떤때는 먹고 남긴 밥을 줄 때도 있었다. 심지어 라면이나 국수인 적도 있다. 아무리 그러지 말라 해도 듣지 않는다. 남기려니 아까워서인지 귀한 아들을 더 먹이려는지 모르겠지만 눈 감기 전에는 못 고치지 싶다.
우리는 싫은 소리 참으며 마음 편히 계시다 가시도록 애를 쓴다. 어질러 놓아도 아무 말 않고 조용히 정리하고, 드실 때는 편하게 흘릴 수 있도록 바닥에 신문지를 깐다. 그렇게 우리가 정성을 다해도 오시는 횟수와 머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더니 요즘은 통 오시질 않는다.
서울에 사는 둘째 아들이 회사 근처로 집을 옮겼다. 마침 선배 댁에 잔치가 있어 겸사해서 아들의 집에 들렀다. 스스로 돈도 구하고 집도 알아보는 게 여간 대견하지 않았다. 아직 애 같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다 큰 모양이다. 막상 아들의 집에 들어서려니 긴장이 되었다. 워낙 깔끔을 떠는 놈이라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늘어놓을 텐데 그걸 어떻게 견디나 걱정이었다. 아내는 나름 몇 가지 주의해야할 행동에 대해 귀뜸했다. 아내도 걱정이 되어 나에게 주의를 주면서 자신도 다짐하는 듯했다.
집앞에서 옷과 신발을 탈탈 털고 들어갔다. 걱정했던 대로 아들은 집안을 명경 알처럼 해놓았다. "아빠." 소리보다 "엄마." 소리가 먼저 나왔다. 아내가 외투를 식탁 의자에 걸다 아들의 앙칼진 소리를 들은 것이다. 나는 얼른 작은 방 옷걸이에 걸었다. 집을 둘러보다 잠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들이 쫓아오더니 침대는 잠옷 아니면 앉을 수가 없다고 해서 바로 일어섰다. 다행이 앙칼지게 부르지 않아 고마웠다. 우리부부는 작은 방에 들어가 재채기도 방귀도 참으며 아들의 눈치만 보았다.
아들 집에서 하룻밤을 자다 추워서 깼다. 전날 날씨가 더워 조금 낮추었다며 다시 평소대로 온도를 맞추었다. 아비가 환갑이 넘은 중늙은이란 걸 잊었단 말인가. 올려도 시원찮을 텐데 오히려 내렸다니 불효막심한 놈 같으니라고! 어떻게 하룻밤을 잤는지 몰라도 아침은 밝았다.
식전에 집 가까운 청계천을 다녀왔다. 출출해서 라면을 끓이려 했지만, 아들은 집에 냄새 밴다며 못 끓이게 말렸다. 대신 냉장고에서 '한 끼 연두부'를 꺼내주었다.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마음이 갑갑했다. 넓은 집에 둘이서 살다 좁아서도 그렇지만 아들의 집이라 조심스러웠다. 잔치 시간보다 이르게 아들의 집을 나왔다. 차 안으로 옮기자 내집에 온 듯 마음이 편해졌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문득 말을 던졌다. "어른들도 우리 집에 오면 우리 심정과 같을까? 조심스럽고 불편하고 빨리 돌아가고 싶을까.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도 아들의 집을 다녀오고야 어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아들이야 차츰 철이 들겠고 우리라도 늙으신 부모님 마음 편하게 들리시게 하자고 둘이 마음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