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가시에 찔려 본 적이 있습니까?
나는 복음을 깨닫고 가시에 찔려 본 적이 있습니다. 언제가 남편이 산에서 자란 두릅을 많이 가져왔습니다. 두릅을 사서 먹었을 때는 그렇게 가시가 많지 않았고 가시가 작았습니다.
나는 싱싱하게 잘 자란 두릅에 가시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칼로 다듬었습니다. 맨손으로 잠깐 다듬다 가뾰족하고 튼튼해서 가시에 찔려 따끔거렸습니다. 그래서 고무장갑를 끼고 다듬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기 아니었으면 가시에 찔리면서 내 대신 저주를 담당하시기 위해 가시 면류관을 푹 쓰신 예수님께 감사하지 않았을 겁니다. 가시에 찔리는 순간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복음은 참으로 신기하기만 합니다. 해가 갈수록 감사가 더욱더 터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헤가 우리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16) 하나님의 은혜는 곧 말씀입니다. 말씀이 우리 위에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뱃속에서부터 성령 충만했습니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며 기뻐 뛰었습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복중에서 성령 충만함을 받아 기쁨으로 뛰어 놀았습니다.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눅 1:39-44)
예수님을 믿는 우리 안에 크신 성령님이 내주했습니다. 그분은 행복의 영이십니다. 기뻐 뛰며 즐거워하는 영이십니다. 성령님을 몰라 죽지 못해 사는 내 인생에 참 행복이 찾아 왔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하나님의 은혜로 허물과 죄가 가득했던 사람들이 복음을 깨닫고 변화 되었습니다. 자신의 문제는 저 멀리 던지고 영혼을 향한 불 같은 열정이 솟아났습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룬 일곱 가지 속량의 대속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영혼을 향한 불 같은 열정이 솟아났습니다. 그동안 성령님의 지시에 따라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전도했습니다.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당신도 성령님의 음성을 듣습니까?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살게 된 건 우리에게 큰 복입니다. 석유왕 록펠러는 책에 이렇게 썼습니다.
”성령님이 록펠러야, 계속 파라. 더 파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그는 석유를 찾는 꿈을 이뤘습니다. 그 바탕은 지존하신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한 결과 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인생이 어떻게 될지 다 아십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내 생각 대로 할 것인가는 우리의 몫입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나는 성령님께 내가 하고 있는 전도방식이 잘하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할 지를 물어 본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성령님께서 내게 하는 대로 해라. 잘하고 있다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물어 보지 않아도 됩니다. 더 이상 고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고민하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성령님의 음성을 온전히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성령님의 음성 한 마디는 억만 달란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내 마음을 시에 담아 봤습니다.
성령님의 음성 한 마디는
성령님의 음성 한마디는
억만 달란트라고 생각합니다.
성령님께서 들려 주신 음성 한마디로
나는 살아야 할 의미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내게 “잘하고 있다” 하고
들려 주시는 음성 때문에 하루를 사는
힘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내 사랑 아버지가 들려 주시는
따뜻한 음성을 그 무엇으로 바꿀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내게는 만물은
티끌같이 생각되고
말씀이 되시는
나의 하나님 이빠의 음성이
세상에서 제일 좋습니다.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사 40:15)
나는 사무일을 마치고 집에 갈 때 또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갈 때 성령님께 “성령님, 집으로 가는 길에 저를 통해 전도해 주세요. 제 입을 주장해 주세요. 부탁합니다” 하고 부탁합니다.
얼마 전에 길에 철퍼덕하고 앉아 담배 피고 있는 남학생과 마주쳤습니다. 침을 얼마나 뱉었는지 주위에 침이 많았습니다. 내 눈에 학생이 참 불쌍해 보였습니다. 나는 웃으며 다가가 시간 좀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시간 괜찮다고 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가지고 십자가에서 다 이뤘습니다. 죽은 지 삼 일만에 부활해 예수님을 믿으면 그 속에 실제로 살아 계십니다. 그 사실을 믿습니까? 믿는다면 저를 따라 아멘 하시면 됩니다.”
학생은 나를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무아미타불관샘보살 우리집은 불교이고 백팔번제도 드립니다.”
그리고 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불쌍해서 다시 한 번 영접시키려 했지만 학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두 명의 친구가 등장했습니다. 성령님께서 두 명을 영접시키게 해 줬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친구가 등장했습니다. 그 친구도 영접시켰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전도지와 복음을 담은 책을 주며 “예수님이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셨습니다. 주일예베에 오세요.” 했습니다. 학생들이 알겠다고하고 갔습니다.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엡 1:8)
하나님의 은혜로 한 번에 세 명을 하나님 품에 안겨 드렸습니다. 내 마음은 기뻐 뛰며 춤을 췄습니다. 우리 에게 난 좋은 마음은 모두 주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성령님께서 지시한 일이라면 온전히 믿고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달려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하나님의 생각은 너무나 깊어 측량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능한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의 기도에 응답 해 주실지 압니까? 복음을 깨닫고 그동안 살면서 영혼을 향한 응답 해 주실 때마다 내게는 감동의 물결이 넘쳤습니다.
둘째, 믿음으로 시작했으면 결과는 주님께 맡기면 됩니다.
우리의 믿음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안에 주님으로부터 시작된 믿음입니다. 우리를 부인하고 주님만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믿음으로 모든 걸 시작하고 끝내게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나는 믿음으로 시작한 모든 일에 결과를 주님께 맡깁니다. 내가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한 이유입니다. 비결입니다.
셋째,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 건 복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