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신안 여교사 윤간 사건을 보며 도무지 기가막히고 상처 쑤시고 아프지만
보도에서 본 바는 그래도 대처하는 법이 얼마나 대견한지 회복이 되리라는 희망을 본다.
왜냐하면 피해 당사자 커플의 성숙한 대처법과 성폭력을 폭력으로 인지하는 시민들의
댓글 반응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놀랍고 달라졌기 때문이다.
'왜 술은 먹었느냐?
왜 밤에 남자들과 어울리느냐?'
'학부형과 술 밥은 왜 먹느냐?"
이런 댓글이보이지 않는 사회가 된 것이다.
바야흐로!!
1993년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으로 개념을 정립하며 20여년 넘게 여성가족부가 신설되고 성폭력 특례법, 양성평등법 등이 제정되면서 꾸준히 성폭력에 대하여 계도한 결과 이렇게나 순식간이다 싶을 만큼 짧은 시간동안 우리 사회가 달라졌으니말이다.
바로 앞선 시대의 고전들이라고 할 수있는 춘향전만해도 성폭력의 어두운 일말을 담고 있는 남성중심사회의 은유이다.
지금의 시청, 관청, 면마다, 가난하고 철모르는 어린아이를 관기로 삼아 공공 성소모품으로 취급이 되었다.
나 어릴 적만 해도 그때 시골집마다 들여 놓은 TV에선 나이 많고 병든 홀아버지를 위한 효를 다하기 위하여
가난한 집 어린 아이를 '어머니'로 모시던 드라마가 전국민적 인기리에 방영 되었으니 말이다.
사람은 곧 법적, 교육적인 존재라고 할 만하다.
이번 사태를 대하면서 성폭력에 대해 달라진 현주소를 보고 우리나라 사람만큼 교육력 지수가 높은 나라가 또 있을까싶기도 하다.
근무한 서울의 중학교에서 성희롱 성폭력 가정통신을 내보내는데 '가정 등에서 아는 사람에게 ' 50~80%의 성폭력 피해가 발생한다는 한 문장을 교감이 '어떻게 가정에서, 어떻게 아는 사람이' 성희롱 성폭력을 하느냐? 그리고 그것을 가정통신으로 내느냐?'고 반대하고 결재를 안 해주어서 결국 그 문장을 빼고 형식적으로 보낸 것이 불과 10년 전이다.
범죄임을 자각하고 즉각 신고하고, 남자친구도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지혜롭고 현명한 모습은
우리네 인권의식이 크게 진일보한 방증이라고 볼 수있겠다.
아주 오래 전 구성애씨가 성추행당했던 체험 장면에서 그 심정을
짱똘이던 뭐든 던져 죽여버리고 싶었다고 강변하는데 그 이야기를 시청 하다가
잠시 후 설겆이를 하면서 내 두 무릅이 꺽일 뻔했는데 생각해보니 나 또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다.
여고시절 화창한 토요일, 오전 수업만으로 하교해서
도시의 제일 큰 사거리를 친구와 수다떨며 걷는데
앞에서 불량배 서 너명이 지나다가 그중 한 놈이 나의 가슴 한 쪽을 만져보고는 지나간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슨일이 일어난 거지?
순식간이었다.
경각간에 맹렬하게 분노가 치솟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기가막힌데 평소 덜렁대는 내 대신 채변검사 숙제까지 제 것으로 챙겨오며
착하고 모범적인 친구의 시선이야말로 나를 절망과 무력감으로 확실하게 짓밟은 것이다.
같이 걷다가 안쪽으로 걸었기에 이 봉변을 피할 수있있던 친구는 순간적으로 나를 피하고,
이를 마치 성적인 어떤 행위로 보고는 벌레보듯 했으니 말이다.
"아효 어째, 더러워서, 어떻게 해"
아직도 성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하고 피해자가 얼굴을 못들고 다니고, 이름을 바꾸고 살던 곳을 떠나는 판이라 생각했고 여전할 터인데, 그래도 엄청많이 달라진 성폭력에 대하여 확실히 인지된 것도 맞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 조카들이나 지인들과 여행이라도 하게되면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이
누구에게나 일상적으로 여러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있다.
그럴 때의 부모된 자들은 뒤늦게 눈치채거나 오랜 세월이 지나서 더듬더듬 알게 되고
이로 인하여 지켜주지 못한 것으로 인하여 무척 가슴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성희롱이든 어떤 일이든 도무지 내게서, 우리 아이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잠금장치를 너무 단단히 하게 되면
세상을 폭넓게 체험할 수있는 반경이나 삶에 대하여 제한적인 폭을 너무 일찍 격절시키는 우를 범할수도 있다.
마을공동체가 함께 해야 하는 이유이다.
Socrates가 네 자신을 알라고 한, 그 ‘자신’의 자아나 주체성은 얼마나 허상이고 연약하며 상황적인지.
라캉은 결핍을 채우고자 반복하며, 최고의 대타자인 죽음이 임하기 까지 욕망을 쫓는 존재로서 자각하는 것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나부터도 나 자신을 알 수 없는 흔들리는 경계 모호한 존재임이 가르쳐져야 하며
70~80%이상이 술로 인하여 범죄가 저질러지는데, 최고급 스타들의 술 광고가 넘쳐나는 반면에
이에 대한 판단, 이성, 조절하는 대뇌피질의 마비되는 음주 교육은 가정, 학교 교육에서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있다..
비둘기처럼 순결하되, 뱀처럼 지혜롭게 살아내는 균형감각과 인간에 대하여 과신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싶기도 하고
신문지상에 살펴보니 맨 술사고 사건이 끊이지 않아 나름 즐기던 술을 아예 끊은지 얼마 안되었다.
지혜롭게 피해청년 커플의 대처하는 모습을 보니, 애효... 그나마 가슴을 쓸어내리는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