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만장군의 구원(1) (육체구원과 영혼구원)
허윤욱 목회자 (여천교회)
"나아만이 가로되...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왕하 5: 17).
“나는 예수 믿고 그 지긋지긋한 관절염 고치고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구원받은 적이 있느냐?는 나의 질문에 대한 10년 경력의 집사님의 대답이다.
이 집사님의 대답이 하나님 앞에서 왜 잘못 되었는지 나아만의 경 우를 살피면서 교훈 받기를 원한다.
나아만 장군이 처음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된 동기는 문둥병 때문이 었다. 인간의 방법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문둥병을 고치지 못하여 괴로워하고 있다가 계집종이 전해준 선지자의 소식을 듣고 먼 거리를 찾아와 고침받게 되지 아니하였던가! 나아만의 이 과정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우연적인 것으로 생각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비록 적국의 장수지만 하나님을 믿을만한 양심이 그 속에 있는 것을 보시고 전쟁 날에 여자 아이를 잡혀가게 하사 그로 하여금 선지자의 소식을 듣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통한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죄인들이 죄악의 깊은 잠을 자고 있는 동안 하나님은 자기의 종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통하여 자기 일을 진행하고 계시는 것이다. 죄인들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와 사랑스런 음성을 깨닫지 못하고 멸망의 지옥으로 가고 있음을 생각하고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나아만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을 더 생각해 보자. 하나님께서 나아만을 부르사 병을 고치신 것은 병 자체를 고치시는 것보다 그 역사를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여 그분을 섬기며 그분을 통하여만 구원 받음을 알게 하는데 목적이 있으셨던 것이다.
서두에 말씀을 소개한대로 나아만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하나님을 발견하고 구원 받은 후 돌아갔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친 것은 육체적 구원인데 하나님의 뜻은 이 육체적 구원을 통해 영혼의 구원을 목적하셨던 것이다.
그는 그의 육신의 고침 받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 하심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그는 큰 물질을 아낌없이 선지자에게 바치려 했다(왕하 5:15-16). 선지자가 보답 받기를 거부했을 때 그는 선지자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발 견하고 그에게 감사하며 예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는 이 장면에서 두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하고 싶다.
첫째는 나아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2단계 즉 육체구원을 통한 영혼 구원이었다면 금일의 수많은 구도자들도 이러한 경험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닫게 되는 과정은 다양할 수 있다. 병고침이나, 기도 응답이나, 능력 경험, 혹은 교육을 통해서 다양하게 하나님의 실존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험 자체가 곧 구원이 될 수는 결코 없는 것이다. 슬픈 사실은 필자가 상담하여 본 많은 경우의 교인들이 이러한 경험을 붙들고서 구원받은 자로 착각하고 기뻐하며 담대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아니다. 결단코 아니다. 이 경우는 구원으로 가는 과정이지 구원은 결코 아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육체적 구원이나 표적을 주러 오시지 않고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러 오셨다.
바울도 표적만 찾는 유대인, 지식만 추구하는 헬라인을 책망하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다(고전1:22-23)
누가복음 17장 11절 이하를 보시라. 열 문둥병자가 다 병고침 받았으나 구원 받는 자는 사마리아인 한 사람이었음을 명심하시라. 만약 그대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으로만 구원받은 것으로 여긴다 면 그대의 믿음도 검토해 보아야만 할 것이다.
놀랄 일은 주님 나라에 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 중에 천국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상상보다 큰 무리가 될 것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다(마 7:13~23).
그대가 자신의 영혼을 진정 사랑한다면 위의 말씀을 찾아 살피시고 겸손히 그대의 영혼을 검토해 보시라. 이 일이 중요한 것은 만약 당신이 버리운 자라면 당신의 그 훌륭한 신앙 경력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서 통곡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둘째로 이 장면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나아만이 하마터면 병만 고치고 영혼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을 뻔하였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려 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엘리사가 그 물질을 받았다면 그는 자기의 병고침에 대한 값을 치렀다고 당당한 생각을 하며 하나님을 경배하기 까지는 못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엘라사야말로 훌륭한 하나님의 종의 모습이다. 엘리사는 영안이 온전히 열려있는 거룩한 하나님의 종이었던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주님 허락하시면 다음 기회에서 자세히 다루어 보기를 원하지만 아무튼 구원의 문제, 영생의 문제에 돈이나 기타 인간의 생각이 개입하면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이 훼손되는 것이다. 영생은 온전히 선물로만 주어지는 것이다. 그 아무것도 우리들의 댓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순수한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엡 2:8).
나아만을 감동시킨 이 하나님의 선물이 교회 역사 2000년 동안 수많은 죄인들을 변화시켜 주 앞에서 주님을 사랑하여 순교의 자리까지 이르게 하지 아니하였던가?
영생은 돈으로, 기타 아무것이나, 심지어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순교하였다 하는 신앙 경력으로도, 그 어떤 댓가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거져 주시는 선물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놀라운 구원의 그림자를 구약에 두신 것은 순수한 자비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이 나아만장군에게 임한 하나님의 역사를 거울 삼아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길을 찾는다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아만이 자기의 잘못된 생각을 가졌다가 버린 것처럼 여러분들도 그러하기 바라며 나아만이 겸손해진 것처럼 그러하여야 할 것이며 나아만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 된 것처럼 그대도 구원받은 성도로 하나님께 알리워졌기를 바란다.
반복하는 말이지만 우리의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 1:8-9).
만약 그대가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 생각 조차도 그대의 생각이요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다. 그대는 영혼 구원을 받았는 지 아니면 육체구원만 받았는데 착각하고 있는지 겸손하게 점검해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