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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문을 여는 비결 1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1. (요 4:23-24)
미국 한인 교회에서 시무하는 젊은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주일이면 20여명 정도의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아름다운 예배에 한 가지 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목사님의 아버지가 아들을 따라 미국에 와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는데 신앙이 깊지 않아서 예배시간에 늘 졸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뒤에 앉아서 졸면 그래도 성도들의 눈에 보이지 않아 그런대로 넘어가는데, 아버지는 아들이 설교하고 예배를 인도하는 것이 기특해서 맨 앞자리에 나와서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설교하는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코를 골기 까지 했습니다. 아들 목사는 기가 막혔지만 신앙이 깊지 않은 아버지를 탓할 수도 없어서 늘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은 기가 막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일곱 살 먹은 아들을 불러놓고 말했습니다. “너 할아버지 옆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할아버지가 조는 모습이 보이면 할아버지를 흔들이 졸지 못하게 해라. 그러면 내가 1달러를 줄께.” 그랬더니 일곱 살 난 아들은 용돈 때문에 아버지의 요구를 잘 들었고, 할아버지는 손자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예배 시간에 졸지 않고 예배를 잘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도 흡족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은 지 두 달 정도 지난 어느 주일 아침 목사님의 아버님이 그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아들의 설교시간에 졸기도 하고 코를 골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손자 놈은 할아버지를 깨울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난 뒤에 목사님은 일곱 살 난 아들을 불러 할아버지가 졸고 있는데도 깨우지 않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일곱 살 난 아들이 고개를 쳐들고 똑 부러지게 대답을 했습니다. “아빠, 할아버지가 자기를 흔들어 깨우지 않으면 2달러를 준다고 했어요.”
지난 2005년에는 하나님의 크고도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두와 온 교회에 가득했습니다.
교회에는 구원받은 무리들이 많아졌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어린이와 중고등부를 제외하고 1부와 2부 예배에 280명 정도가 함께 모여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렸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해 성도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성도들의 가정과 삶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평강과 복이 임하여 성도들의 삶에 놀라운 복과 기적이 임했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들의 변화가 곧 간증거리가 되었습니다. 죄와 허물이 많은 저희들에게 말할 수 없는 놀라운 복과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제 2006년에는 모든 성도들이 지난해보다 더 많은 복을 하나님께 받기를 축복합니다.
히브리서 6장 14절 말씀에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는 말씀이 있는데 모든 성도들이 이 말씀대로 하나님의 복을 받고 더욱 번성해지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특히 하나님은 올해 성전 건축을 통해 우리에게 놀라운 복과 기적을 더하여 주시기를 원하시는데 모든 성도님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성전 건축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축복의 주인공이 되어 간증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새해에는 어떤 설교를 해야할까하는 영적인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구하면서 주님의 은혜를 구했더니 주님께서 제 마음에 감동을 주신 말씀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늘 문을 열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의 문을 열어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주시는 놀라운 복을 한 해 동안 아니 평생 동안 마음껏 체험하며 살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아멘’으로 응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전 서부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하늘 문을 열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무궁무진한 복”을 다 누리기 위해 힘껏 말씀을 준비하겠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일부터 성령께서 제게 은혜를 주시는 대로 “하늘 문을 여는 비결”에 대한 설교를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오늘은 “하늘 문을 여는 비결” 첫 번째 설교인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4장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사마리아 땅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본래 유대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처럼 여겼습니다. 부정하고 더러운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 사람들은 갈릴리로 갈 때에 사마리아 지역으로 다니지 않고 요단강을 건너 사마리아 지역을 돌아가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기 위하여 사마리아 땅에 발을 들여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지역에 들어섰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행동에 대해서 빈정거리고, 비웃고, 차가운 시선을 보냈지만 예수님은 그런 것에 조금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에 이르러서 한 우물가에 이르셨습니다. 뜨거운 대낮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갈증이 심했습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우물가에 물을 길러 나왔습니다. 이 여자는 한이 많은 여자였습니다. 살아오면서 남편이 다섯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른 아침이 아닌 남들이 다 낮잠을 자고 있는 정오에 물을 길러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녀를 보고 “물을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여인은 물을 길러 나오는 것도 귀찮은데 낯선 남자가, 그것도 자신들을 벌레처럼 여기는 유대 남자가 물을 달라고 하자 “당신은 유대인인데 왜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쏘아 붙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이가 누군 줄 알았다면 네가 오히려 그에게 생수를 달라고 했을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가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대화가 계속되면서 남편이 다섯이나 있던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주여, 당신은 내가 보니 선지자이십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을 들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예배하는 것이 가장 옳은 것입니까?” 그러자 예수님이 대답을 하셨습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여인은 예수님의 말에 의심을 품으면서 “메시야가 오면 그 분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게 말하는 내가 바로 메시야, 그리스도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이 메시야, 그리스도이심을 발견하고 크게 기뻐하며 동네로 뛰어 들어가서 2000년 동안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야를 내가 만나보았다고 자랑하며 다녔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사마리아 여인은 한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던 날 그녀에게 필요했던 것은 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정작 필요로 했던 것은 마실 물이 아니라 영적인 목마름을 축여주는 참된 예배였습니다.
한 많은 여인은 위로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를 위로한 것이 아니라 조롱하고 비난하고 욕하고 비웃음거리로 삼았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너무나 비참해서 누구에게도 찾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집안의 형제.자매가 있고 부모가 있고 친척이라도 있었을텐데 이 여인은 너무나 기구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집안에서도 버림을 받고, 다섯이나 되었던 남편들에게도 버림을 받고, 동네 사람들에게서도 버림을 받은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갈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몸을 숨기고 살다가 죽을 수가 없어서 물을 길어 마시며 생명을 연장하고 있던 소망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많은 여인이 예수님이 선지자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심령 깊숙이 감추어 놓았던 질문을 예수님께 던지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어디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여인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마시는 물이 아니라 영적 목마름의 해결이었던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하나님 앞에 참된 예배를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신은 비록 죄인이지만, 용서받을 수 없는 부정한 여인이지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참된 예배를 드리면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찬양을 하고,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진정으로 받아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단 한 번만이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고 죽었으면 하는 것이 이 여인의 소원이었던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하나님을 향한 참된 예배”가 그리웠던 것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예배는 참으로 지루하고 답답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면 주일 아침 11시가 되면 묵도로 시작해서 찬송으로 장로님들의 지루한 기도와 성가대의 화음도 맞지 않는 찬양과 목사님의 길고도 졸린 설교가 이어지고 그리고 헌금바구니가 돌아가서 헌금을 하고, 목사님의 축복기도를 받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세상 사람들과 헛되게 어울리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텔레비전 앞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말하고, 낚시를 하고 골프를 치고, 돈벌러 다니면서 자동차에서 라디오를 들으면서 예배를 드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는 먼저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자들을 향하여 내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배는 왕이신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누가 감히 왕이신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고 나는 텔레비전으로 왕이신 하나님을 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느 누가 감히 나는 왕이신 하나님의 얼굴을 뵙지는 못했지만 라디오를 들으면서 하나님 앞에 나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예배는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주일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을 단장하고 옷매무새를 고쳐 입고,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기쁨으로 준비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기쁨을 갖고 예배 처소로 향하는 것입니다. 주님께로 받을 하늘의 복과 은혜를 사모하면서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에 모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예배 중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와 복을 체험하는 것이 예배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나갈 때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사모하면서 찬송하며 성전으로 나갔습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다.”(시120:1) “내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다”(시122: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다.”(시121: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복을 얻을 것이다”(시128:4)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시134:1-3)
주님 앞으로 나가 신령과 진정의 참된 예배를 드림으로 하늘의 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지성소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성전에는 여러 개의 장소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성전의 맨 바깥쪽에는 이방인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이방인의 뜰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의 뜰과 구별된 안뜰이 있습니다. 안뜰은 바깥뜰보다 7m 정도 높인 곳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곳에는 이방인들과 유대인을 구별하는 돌이 있는데 그 돌에는 이 돌을 지나가는 이방인들은 죽는다는 글귀가 새긴 돌이 박혀 있었습니다. 안뜰에는 오직 언약의 백성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이스라엘의 뜰이 있는데 이곳은 유대인의 남자와 여자가 머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는 성전에 인접한 주위에 있는 뜰로 제사장만이 다닐 수 있는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 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쪽에 성전이 세워져 있는데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로 구별되었습니다. 성소에는 향단과 떡상과 촛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쪽에 거룩한 성소와 구별된 지성소가 있었습니다. 이 곳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소는 제사장들이 항시 다닐 수 있는 곳이었지만, 지성소는 제사장들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지성소에 함부로 들어가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지성소는 대제사장들이 일년에 한 차례 자신의 순서가 되었을 때만 들어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지성소는 이렇게 거룩한 자리였습니다. 이방인의 뜰을 지나서, 이스라엘의 뜰을 지나서, 제사장의 뜰을 지나서 성소를 지나 가장 거룩한 장소가 바로 지성소였습니다. 그 자리는 오직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하고 존귀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예배는 바로 가장 거룩하고 가장 존귀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로 나가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친히 들었던 자리가 바로 지성소입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의 거룩한 음성을 듣는 지성소의 자리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갈라졌다고 하였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갈라졌다는 것은 휘장을 하나님이 친히 갈라놓았다는 것입니다. 이 때 갈라진 성소의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가리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했던 휘장이 갈라짐으로 모든 사람들은 지성소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성소로 직접 나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성전 밖에서가 아니라 성소에서가 아니라 친히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껏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가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예배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축복을 마음껏 누리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예배인 것입니다. 예배는 모든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을 은혜로 지성소로 나가는 것입니다.
보혈을 지나 하나님의 품으로 나가 존귀한 주 보혈의 은혜로 내 영을 새롭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예배인 것입니다.
예배는 구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보러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설교를 들으러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짜증내고 몸을 뒤틀면서 억지로 한 시간을 때우는 시간이 아닙니다. 예배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양하며, 나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영혼의 만족을 얻는 것이 바로 예배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행위인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가 필요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축복이 아니라 축복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면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배로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는 예배,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 오직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예배가 되기 위해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예배하기에 앞서 기도할 때에
주님 내 눈을 열어 주를 보게 하옵소서.
주님 내 귀를 열어 주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주님 내 입을 열어 주를 찬양하게 하옵소서.
주님 내 마음을 열어 주의 마음을 담게 하옵소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케 하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예배는 하늘 문을 여는 첫 번째 비결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경험하면서 참된 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