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로운 믿음
베드로후서 1장 1-3절
오늘 말씀에
보배로운 믿음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믿음이
보배롭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온 몸으로 느끼는 보배는
어떤 것들입니까?
금이나 은을 보배로 여깁니다.
그런 것을 살 수 있는 돈을
보배로 여깁니다.
그런 돈을 벌수 있는 능력 있는 인간이
보배로운 인간입니다.
그래서 가정이나 회사나 교회나 간에
돈을 잘 벌어올 수 있는 사람이
보배로운 인간 대접을 받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현실을
가짜 현실이라고 합니다.
마귀에게 속아서
가짜 보물을 진짜 보물인 것처럼
여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보물이라는 것을 믿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보물이라는 것을
믿고 사는 것이
우리의 어렸을 적부터의
습관인 것입니다.
놀이나 교육이 관습이 모두 다
이 세상의 보물을 차지하는 것이
복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종이 딱지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문방구에서 파는 켄트지 정도의 크기에
온갖 그림과 기호들이 들어있습니다.
별의 수자가 많으면 이기는 것인데
그 중에서 가장 높은 것은 보물입니다.
보물 상자가 그려져 있는 딱지는
어떤 딱지와 싸워도 이기는 것입니다.
만약 같은 보물이 나오면 비기는 것이기에
손해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보물을 많이 들고 있을수록
어떤 게임에서도 든든한 것입니다.
이런 게임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의 교육은
세상의 보물을 많이 가지는 것이
성공이며 행복이라고 배워온 것입니다.
왜 예수님을 믿는 것이
보배로운 것입니까?
성경을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은
다 불에 살라져 없어진다고 합니다.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좇아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것을 사랑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6: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무시무시한 저주 선포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곳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모든 삶의 내용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나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늘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긍정하면서
살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에
예수님을 보고 우는 여자들을 보고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의 심판의 말씀은
예루살렘의 파괴와 함께
세상 끝날의 심판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일에 대하여
회개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이나 가족들이
예수님보다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눈물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솔직하게
우리의 보물이 무엇입니까?
세상이나 세상의 속한 것들을
보물로 여기고 있다면
이 말씀 앞에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참된 보배임을 아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이 세상이 다 불살라져도
없어지지 아니할
보배입니다.
천하를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그러면 이 보배로운 믿음이 무엇인지
그 믿음이 어떻게
성도에게 주어지는 것 입니까?
1절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보냄을 받은 사도입니다.
사도들은
사도 자신들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자이기에
그들의 말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임의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이 어떻게 증거 하였는지를
보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가 개인의 자질과 능력이 아님을
다음의 말씀에서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에게”
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은 것이지
자신의 의가 아닌 것입니다.
베드로도 유대인이기에
자신의 의가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율법이 금한 음식을 먹지 않고
이방인과 교제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주님께서 어떻게 이끄셨습니까?
사도행전 10장에 보시면
주님께서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먼저 환상을 통하여
부정한 음식을 잡아먹으라는 말씀을
세 번이나 듣습니다.
자신은 어려서부터
그런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하자
주님께서 깨끗하게 한 것이니
너는 속되다고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것은
고넬료가 보낸 사람을 따라
고넬료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서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예루살렘 회의에서
이방인도 우리와 똑 같이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다는 것을 말하면서
율법의 멍에를
매게 하지 말자고 합니다.
이방인도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다는
이 고백이 나오기까지
주님께서 사도들을
직접 이방인들에 이끄시고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게 하시는 것을
목격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가 된 것도
자신이 잘나서 된 것이 아니라
은혜로 된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일하게’라고 하는 것입니다.
동일하게 의를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받는 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도 받는 것이며
믿음도 받는 것입니다.
누가 더 의롭거나
누가 더 잘 믿는다는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동일하게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바로
보배로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각 지역에서
믿음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하는 자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편지가 되는 것입니다.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은
세상의 썩어질 보배가 아니라
하늘에 간직한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더러워지지 아니하는
보배를 받은 것입니다.
이 보배로운 믿음이 무엇인지
베드로전서 1:18-19절보면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그리스도의 피가 보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배입니다.
그로부터 주어진
믿음과 소망이 보배입니다.
베드로전서 2:4-5절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에게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사람에게는
싫어버린 바 된 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은 세상에서
썩어지고 없어지고 불에 살라질 것들을
보배로 여기고 있었기에
예수님이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는
보배로운 돌이지만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부딪히는 돌과 거침돌입니다.
베드로전서 2:6-8절.
“6 성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이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세상이 싫다고 버린 돌을
보배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세상에서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그들이 지혜로운 자들이며
복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런 예수님을
우리의 힘으로 사랑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도 여전히
얼굴 돌리고 싶은 예수님이 아닙니까?
이런 예수님이
이미 이사야 53장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세상의 도깨비 방망이처럼
주문 외우고 두드리기만 하면
은과 금이 쏟아지는 것처럼 전하고 있고
그런 자들을
좋아라고 따라다니는 자들이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다 그렇게 미리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런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런 선물을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그 선물이 어떻게 준비되고
어떻게 주어졌는지 알아가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것이라고 합니다.
각 지역에서 흩어진 성도들이
세상에서 버림 받은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믿는 자에게 보배가 된다는 사실을 알면 알수록
은혜와 평강이 더욱 넘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3절에서는 이렇게 증거 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며
더 많이 알아갈수록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어떠함을 알아가라고 한 것입니다.
그 놀라운 일들이 무엇입니까?
1:3절입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입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닙니다.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을
모두 다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자기의 영광과 덕입니다.
생명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보배로운 믿음을 받지 못한 자는
숨쉬고 밥 먹고 세상의 영광과 권세를 누리고
세상의 복을 받아 산다고 해서
그것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죄와 허물로 죽어있었기에
더러워지고 썩어질 것들만 좋아하는 우리를
부르신 것은
부르신 분의 영광과
덕인 것입니다.
그 부르신 자를 알아갈수록
그 주님의 영광과 덕을
찬송하고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신기한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났기에
세상에서 버림 받은 돌을
우리는 보배로운 돌로 믿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보배로운 믿음인 것입니다.
불타 없어질 세상의 모든 것들과
결코 바꿀 수 없는 보배를 받았기에
더욱 이 보배의 가치를 알아가는
남은 생애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