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아주 오래 전,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가 나를 위해 먹을 것을 찾으러 떠나셨다가 그 이후로 돌아오지 못 했다고 말씀해주셨다. 늘 잔병치레가 많았던 어머니는 마을의 청소부로서 일하는 것이 최선이었고, 그 일만으로는 오직 사랑만으로 만난 이 부부가 나를 키워내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언젠가 어머니에게 별다른 능력이나 직업이 없었다는 그런 아버지를 만났던 이유를 묻자, 자신을 그토록 진심으로 사랑해줬던 사람은 아버지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밖에도 늘 아버지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던 나였지만 , 아버지 얘기를 할 때마다 어머니의 그 아름다운 눈에 슬픔이 서린다는 것을 언제부턴가 깨닫게 된 이후로는 나도 점점 질문을 그만두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형제 자매 없이 외동으로 혼자서 자랐던 나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왔던 것은 가난이었다. 우리 집은 항상 경제적 위기에 시달려왔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빨리 내가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공부에는 큰 뜻이 없다. 주변 누군가는 트레일러가 되겠다며 그런 일을 배우러 가기도 했지만, 나는 그런 것은 더더욱 하고 싶지 않다. 마을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때마다, 나는 무언가 크게 그들과 동떨어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들 정말 달을 신처럼 여기는 걸까 ? 흐릿한 어린 시절 , 당장 지낼 집조차 없어서 어머니와 함께 숲속에서 지냈던 그때. 무서운 밤이 찾아올 때마다 환하게 빛나던 달은 나에게 신보다는 친구에 더 가까웠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신으로 여기는 척하며, 자신들의 뜻대로 하고 싶을 때마다 달의 이름을 빌리는 것만 같다. 어느 날 , 이런 내 마음을 털어놓자 어머니께서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를 붙잡고 흔들었다. 늘 나에게 친절하고 상냥했던 그녀가 그렇게까지 나를 다그치는 모습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앞으로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고, 특히 마을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로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화를 내고 혼내는 것보다는 오히려 애원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달님의 뜻 따위는 알 수가 없고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다. 오직 나와 어머니,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그녀 - 엘리만을 생각할 뿐이다.
엘리와 만난지도 어느덧 300째 밤을 앞두고 있다. 그녀를 처음 만났던 곳은 메이슨 아저씨네 집이었다. 우유와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날 , 메이슨 아저씨 집에 찾아가자 아버지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며 엘리가 대신 나왔다. 그녀를 보는 그 순간 .. 나는 첫 눈에 반했다 ! 언젠가 내 주변의 몇몇 녀석들이 메이슨 아저씨의 딸이 그렇게 예쁘더라는 얘기를 몇 번 들었던 것 같지만 , 처음에는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솔직히 예쁜 사람이야 라움에 한 두명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 (이건 엘리에게는 비밀이다 ! )
그런데 엘리는 달랐다. 물론 그녀의 그 아름다운 모습부터가 뭐라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주변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그것 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부잣집 따님의 신분에 걸맞게 고급스러우면서도, 또 동시에 장난기 많은 소녀로서의 당돌한 면도 있다. 나는 처음 본 사람에게 곧바로 크게 흥미를 느끼는 편이라 , 먼저 말을 걸곤 하는데 .. (누군가는 내가 여성들에게만 그런다며 흉을 보지만, 그것은 철저한 오해다 !)
엘리는 반응도 유난히 달랐다. 다른 사람들은 뭐 하나 가진 것도 없는 나를 우스워하거나, 무시하는 식으로 그닥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엘리는 내가 하는 말들을 다 재밌어하고 , 나를 계속 궁금해 했다. 특히 내가 숲에서 본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흥미롭게 여기며 내 말을 누구보다 잘 들어주었다. 엘리만큼은 다른 사람들처럼 어머니와 나의 다른 조건들을 따지지 않고, 오직 나를 한 사람으로서 존중해주고 좋아해주었다. 그렇게 예쁜 아이가 내면까지 아름답다니 .. 내가 그녀와 사랑에 빠진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닌,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달님이니 뭐니 그런 것 없이 오직 우리 둘의 아름다운 사랑 !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아 그런데 생각해보니 프레이야라는 한 아이도 나에게 곧잘 다가오기는 하지만 .. 그녀는 뭔가 이상하게 느낌이 좋지 않다. 딱히 못 생겼다거나 성격이 나쁜 것도 아닌데 , 본능적인 거부감이 든달까 ..? 알 수 없는 그 느낌. 숲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며 동물적인 감각을 지니게 된 내가 볼 때 , 그녀는 무언가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지만, 요즘 나는 엘리에게 청혼할 준비를 하느라 바쁜 몸이다. 언젠가 숲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봤던 적이 있다. 어머니께서 그 꽃의 이름이 아스타라는 것을 알려주셨고 , 어머니도 그 꽃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셨다. 그 꽃은 주변에서 보기 매우 힘들어서 그 뒤로 아직 다시 발견한 적은 없지만 .. 반드시 다시 찾아낼 것이다 ! 나라면 가능해. 꼭 아스타를 찾아서 , 엘리에게 선물해주며 나의 마음을 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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