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 오월의 대표적인 꽃, 붓꽃
Iris는 붓꽃속 식물을 총칭하는 말로 쓰여
꽃봉오리와 꽃대 모습 한 자루 붓 연상시켜
뭇 꽃이 피고 지는 사이 올해도 벌써 넉 달이 흘러갔다. 봄꽃들이 펼치는 잔치로 흥성하던 산과 들은 새순과 연초록 잎들로 하루하루 푸름을 더해가고 계절의 밀도는 한층 높아지고 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에도 여기저기서 또 수많은 꽃이 피어나고 있다. 누군가 내게 오월에 꽃이 피는 대표적인 식물을 하나만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붓꽃을 지목하겠다.
붓꽃은 주변에서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붓꽃과 붓꽃속 여러해살이풀이다. 5~6월 긴 꽃줄기 끝에서 지름 8cm 내외의 보라색 꽃이 피며 소수 개체보다 무리 지어 필 때 더 아름답다. 하여 공원 등에 많이 심는 식물이다. 국내에서 자생하는 붓꽃속 식물은 붓꽃, 각시붓꽃, 금붓꽃, 난장이붓꽃, 노랑무늬붓꽃, 노랑붓꽃, 부채붓꽃, 솔붓꽃, 타래붓꽃, 대청부채를 비롯하여 꽃창포, 노랑꽃창포, 범부채 등 이십여 종에 이른다.
이들 식물의 학명 앞에는 공통적으로 Iris라는 속명이 붙는다. 같은 속내 식물 간 교잡으로 탄생한 품종도 마찬가지다. 붓꽃속 식물을 총칭하는 말로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아이리스(Iris)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인 이리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리스는 바람둥이 제우스의 온갖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아 헤라 여신의 신임을 받았고, 무지개를 선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헤라가 이리스에게 내린 축복의 숨결이 땅에 닿자 붓꽃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붓꽃은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로 꼽히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작품에도 등장한다. 그가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렸다는 <붓꽃(Irises)> 작품은 흙과 초록색 잎, 보라색 붓꽃의 색채가 조화를 이뤄 그림을 보노라면 마치 만발한 어느 붓꽃정원에 서 있는 듯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식물의 꽃봉오리 모양이 ‘붓’을 닮은 게 몇 있다. 이른 봄 메마른 땅에 돋아나는 쇠뜨기의 생식줄기는 그 모양이 붓과 흡사하여 ‘필두엽(筆頭葉)’이라고도 불린다. 목련의 꽃 피기 전 꽃눈 모습도 붓 모양을 닮았대서 ‘목필(木筆)’이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꽃봉오리 형태가 붓 모양과 가장 닮은 식물은 단연 이름 앞에 공공연하게 ‘붓’을 내건 ‘붓꽃’이리라. 응축된 에너지를 안으로 감싸 안은 채 앙다문 꽃봉오리와 아래로 이어지는 꽃대 모습은 그대로 한 자루 붓이다.
오월 바람이
갈아놓은 청록을
붓에 듬뿍 적신다
이윽고
필세를 모아
일필휘지로 휘갈기는
행서체의 결구들
그 끝에서
난만하게 피어나는
봄의 자구字句들
중천에 걸린 볕이
꾸욱
낙관을 찍는다
졸시 ‘붓꽃’ 全文(정충화 식물시집 <꽃이 부르는 기억> 중)
내게는 사 모은 것과 아버지가 물려주신 것을 합쳐 십여 자루의 붓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아직 먹물 한 번 적셔보지 못했다. 그나마 먹을 적셔본 몇 자루 붓도 최근 십여 년간은 일 년에 한 번, 입춘축 쓸 때나 잡을 뿐이라 내게 온 붓들에게 늘 미안하다.
비록 내 붓들엔 먼지만 쌓이고 있지만, 필두엽과 목필에 이어 붓꽃까지 요즘 식물이라는 붓이 휘갈기는 대로 산과 들에 난만하게 채색되는 초록의 향연을 지켜보느라 멀미가 날 지경이다. 그러는 사이 내 봄날은 속절없이 흘러 흘러가고 있다.
출처 : 음성신문 https://www.u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