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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장 36절로 40절 천국 생활을 믿고 고난을 당한 사람들
1. 지난 시간에는, 믿음의 사람들에 대해서 연속 말씀드리는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구차히 악형을 면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2. 오늘은 역시 믿음의 사람들에 대한 연속 본문으로서, 어떤 성도들은 순교의 죽음을 당하였다는 것과, 또 어떤 성도들은 토굴에 살면서 짐승 가죽을 입고 세상과 격리되어 오직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에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삶을 살았지만, 천국의 복락을 소망하면서, 믿음으로 인내하면서 신앙생활 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오늘 설교 제목은 역시 <선조들의 신앙을 본받읍시다>입니다.
먼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불명예와 채찍질과 순교까지 당한 성도들의 신앙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36절.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New International Version: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을 당했고, 심지어 쇠사슬에 결박을 당하여 감옥에 갇혔다. (Some faced jeers and flogging, and even chains and imprisonment.)
New Living Translation: 어떤 이들은 조롱을 당하고, 등에 채찍질을 당했다. 다른 이들은 쇠사슬에 묶여서 감옥에 갇혔다. (Some were jeered at, and their backs were cut open with whips. Others were chained in prisons)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others experienced mockings and scourgings, yes, also chains and imprisonment.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받았으며
ἕτεροι δὲ ἐμπαιγμῶν καὶ μαστίγων πεῖραν ἔλαβον,
others then of mockings and of scourgings trial received
직역하면 ‘그리고 다른 이들은 조롱들과 채찍질들이라는 시련을 당했으며’란 뜻입니다.
‘당했다’(ἔλαβον)는 단순과거입니다(received).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ἔτι δὲ δεσμῶν καὶ φυλακῆς·
in addition also of chains and of imprisonment.
37절.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New International Version: 그들은 돌에 맞아 죽임을 당했고, 톱으로 반 토막을 당했다. 그들은 칼로 죽임을 당했다. 그들은 양의 가죽과 염소의 가죽을 쓰고 유리방황했고, 굶주림을 당했고, 박해를 받았고, 학대를 받았다. (They were put to death by stoning; they were sawed in two; they were killed by the sword. They went about in sheepskins and goatskins, destitute, persecuted and mistreated--)
New Living Translation: 어떤 이들은 돌에 맞아 죽었고, 톱으로 잘려서 두 토막이 났고, 어떤 이들은 칼로 죽임을 당했다. 어떤 이들은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방황했고, 굶주리고, 박해를 받고, 학대를 받았도다(Some died by stoning, some were sawed in half, and others were killed with the sword. Some went about wearing skins of sheep and goats, destitute and oppressed and mistreated.)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y were stoned, they were sawn in two, they were tempted, they were put to death with the sword; they went about in sheepskins, in goatskins, being destitute, afflicted, ill-treated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ἐλιθάσθησαν, ἐπειράσθησαν, ἐπρίσθησαν, ἐν φόνῳ μαχαίρης ἀπέθανον,
They were stoned, they were tried, they were sawed in two, by slaughter of sword they were killed
직역하면 ‘그들은 돌로 침을 당했고, 시험을 당했고, 톱으로 반토막을 당했고, 칼로 도살당해 죽임을 당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나온 동사들, ‘돌로 침을 당했고(ἐλιθάσθησαν), 시험을 당했고(ἐπειράσθησαν), 톱으로 반토막을 당했고(ἐπρίσθησαν), 죽임을 당했다(ἀπέθανον)’는 모두 부정과거 수동태(They were stoned, they were tried, they were sawed in two, they were killed)입니다.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περιῆλθον ἐν μηλωταῖς, ἐν αἰγείοις δέρμασιν,
they wandered in sheepskins, in goat’s skins
‘유리하여’란 단어(περιῆλθον)는 단순과거로서 ‘유리하였으며’(they wandered)란 뜻입니다.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ὑστερούμενοι, θλιβόμενοι, κακουχούμενοι,
being destitute, being oppressed, being mistreated
세 동사 모두 현재분사 수동태입니다.
즉 ‘궁핍을 당하면서, 환난을 당하면서, 학대를 당하면서’ ‘유리방황했다’는 뜻입니다.
1.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명예심과 생명과 건강의 안녕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생존 본능이 없이 사람들 앞에서 수치스런 행동을 하고, 죽으려고 하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입니다.
병들지 않은 건강한 사람은 모두, 눈에 티끌만 들어가려 해도, 눈을 감아서 티끌이라도 눈에 들어가지 않게 합니다.
병들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욕을 당하면, 분노를 느끼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싸움을 합니다.
병들지 않는 사람은 차가 다가오면 피하려하고, 위험한 물건이 몸으로 다가오면, 저절로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병들지 않은 사람은 죽음의 낭떠러지에 다다르면, 오금이 졸여오면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고, 살기 위해서 얼른 뒤로 물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이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존본능입니다.
2.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과 내세의 천국을 확실히 믿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절대적인 미련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하여야 할 사람의 도리를 다 하려고 하지만, 고통과 질병과 죽음이 없는 천국을 믿고 소망하면서 살아갑니다.
3. 그래서 예수 믿지 않고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 보다는, 차라리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세상에서 고생과 수치와 죽음을 당하더라도, 천국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기를 믿고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서는 명절도 즐겁게 지내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척들도 반갑게 만나면서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의 즐거움이 전부가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과거부터 믿음의 선조들은 천국에서 누릴 영생 복락을 확실히 믿고, 이 세상에서 예수 믿는 믿음 때문에, 수치와 채찍질과 감옥에 갇히는 것과 비참한 죽음까지 당한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인간의 도리는 다 해야 하겠지만,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은 천국에서 누리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에 너무나 마음을 다 빼앗기지 마시고, 마음 중심에는 예수님 믿고 천국 복락을 소망하는 생활을 하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5. 성경에는 이러한 믿음으로 고난의 삶을 살았던 선조들의 사례가 나와 있습니다.
(1) 36절. 희롱과 채찍질, 결박과 옥에 갇히는 것을 당했습니다.
① 히브리서 독자들 중에는, 이와 비슷한 고난을 당한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0:32-34. 전날 너희가 고난의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갇힌 자를 동정하고, 산업을 뺏기는 것도 기쁘게 당하였도다.
② 예레미야 선지자가 비슷한 일을 당하고, 탄식했습니다.
예레미야 20:7-8.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예레미야는 두들겨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예레미야 38:6)
③ 바울 사도는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비참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2) 37절.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했습니다.
① 유대나라에서는 흔히 돌로 쳐 죽이는 사형관례가 있었습니다.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사가랴)가 성전 뜰에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역대하 24:21-22)
나봇도 이세벨의 하수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열왕기상 21장)
예레미야는 애굽에서 돌아 맞아 죽었습니다.
예루살렘도 그리로 파송된 하나님의 종들을 돌로 쳐 죽이는데 유명했습니다.(마태복음 23:37)
스데반도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사도행전 7장)
② 톱으로 켜서 죽이는 사형
이사야 선지자는 므낫세 왕에게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③ 칼에 죽임을 당하는 것
아합 왕 시대에 여호와의 선지자들이 칼에 죽임을 당했습니다.(열왕기상 19:2)
예레미야의 동료 선지자 우리야가 여호야김 왕에게 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예레미야 26:23.)
야고보 사도가 헤롯 아그립바 1세에게 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사도행전 12: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 예수 믿는 생활은 궁극적으로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예수 잘 믿으면, 그 자손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 성경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성도들의 목적지는 이 세상이 아니고, 영원한 천국입니다.
(2) 우리의 선조들은, 예수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이 세상의 행복과 목숨조차 기꺼이 포기하였습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생활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처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명절날에, 이 말씀이 은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명절날이면, 신앙을 버리고, 세상 향락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16장에서, 초막절과 같은 최대 명절에, 세상 향락을 즐기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하여, 광야에 나가 초막을 짓고 고난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명절에 교회에 나오시는 것, 참 잘 하셨습니다.
명절에 세상 향락과 타협하여 죄 짓지 말고, 가족에게 전도하여, 다 같이 예수님 잘 믿고, 천국에 가시도록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또, 어떤 성도들은 어두운 토굴에서 살면서,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사람들 몰래 생명을 연장해가면서 신앙을 지켰던 가련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37절 하.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1. 엘리야 선지자가 짐승의 가죽옷을 입고, 짐승 같은 유랑생활을 했습니다. (열왕기상 19장)
엘리사도 그의 스승 엘리야처럼 짐승 가죽옷을 입고, 유랑생활을 했습니다.(열왕기하 2장)
이사야 선지자도 광야로 피신했을 때, 짐승옷을 입었습니다.(이사야 2장)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짐승 가죽옷을 입고, 야생 꿀과 메뚜기를 먹으면서,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훈련을 했습니다.
2. 기독교인들을 죽이려는 박해시대에, 성도들은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강원도 깊은 산속에서 살았던 화전민들도 기독교 박해를 피해서 산속에서 살았던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깊은 산속의 동굴이나 움막 속에 들어가 숨어 잠을 잤습니다.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쓰고서, 혹시 사람들이 보더라도 짐승처럼 보이기 위해서, 짐승 가죽을 뒤집어쓰고서, 먹을 것을 구해다 먹고 살았습니다.
혹시 사람들에게 들킬까봐서, 짐승 가죽을 뒤집어쓰고서, 농사를 짓기도 했답니다.
오늘 성경에서, 짐승의 가죽을 입고 유리했다는 말씀이 이런 인간세상을 떠난 야생생활을 가리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하나님만 믿고, 짐승들이나 새들처럼, 자연 속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성도의 신앙체험은 참으로 귀합니다.
과거에 우리나라의 선교 초기에, 유교사회에서 예수 믿는 성도들은 가정에서 쫓겨나서, 이처럼 거지 생활을 했습니다.
잠 잘 곳이 없고, 먹을 것이 없이, 오직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살았고, 천국을 소망하면서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은 광야 같은 세상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참새 한 마리도 먹이시고, 들풀도 입히신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십시다!
우리의 신앙을 타협하지 마십시다!
세상에서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의 신앙을 버리지 맙시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 믿고, 천국을 소망하면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은 일반 세상 사람들이 상상도 못하는 어려움을 믿음 때문에 당하였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죽음만도 못한 생활을 하면서도, 예수 믿음을 굳게 지킨 것은, 장차 천국에서 누릴 확실한 영생복락을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38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New International Version: 이 세상은 그들에게 합당하지 않았다. 그들은 광야와 산속에서 유리방황했고, 동굴과 토굴에서 살았도다. (the world was not worthy of them. They wandered in deserts and mountains, living in caves and in holes in the ground.)
New Living Translation: 그들은 이 세상에서 살기에는 너무도 선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광야와 산속에서 유리방황했고, 동굴과 토굴에서 숨어살았다. (They were too good for this world, wandering over deserts and mountains, hiding in caves and holes in the ground.)
New American Standard Bible: (men of whom the world was not worthy), wandering in deserts and mountains and caves and holes in the ground.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ὧν οὐκ ἦν ἄξιος ὁ κόσμος,
of whom not was worthy the world
‘감당하지 못하느니라’에 해당하는 동사(ἦν)는 미완료형입니다.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ἐπὶ ἐρημίαις πλανώμενοι καὶ ὄρεσιν καὶ σπηλαίοις καὶ ταῖς ὀπαῖς τῆς γῆς.
in deserts wandering and mountains and caves and the holes in the earth
직역하면 ‘광야들과 산들과 동굴들과 토굴들 속에서 방황하면서’란 뜻입니다.
‘방황하면서’란 동사(πλανώμενοι)는 현재분사입니다(wandering).
1. <세상이 능이 감당치 못한다>는 말씀의 뜻은, <저 성도들은 하도 믿음이 고귀하여, 세상 사람들이 저들과 함께 살 가치가 없다>는 뜻입니다.
2. 예루살렘 교회에서 핍박 속에 순교한 성도들은 천국 영광에 들어가지만, 배교하여 유대교(세상)로 돌아간 사람들은 순교자들과 함께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3. 우리나라의 신앙 선조들도 일제 신사참배와 유교의 제사 거부로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20여년전 모 신문을 통해서, 근년에 북한에서 높은 산을 개발하려다가, 털이 짐승처럼 길게 자란 인간들을 발견해서 사살했다는 보도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이 바로 반세기가 넘도록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공산당을 피해서 산속 고지에 토굴에서 생활한 기독교인들이었다는 보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 우리도 이 믿음의 선조들의 신앙을 잊지 말고, 이 신앙의 전통을 지켜나갑시다!
오늘날은 너무나 안일하게 믿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만큼은 성경에 기록된 신앙 선조들의 신앙을 본받아, 천국을 확실히 소망하면서, 세상에 마음을 너무나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이처럼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수 없이 순교의 신앙으로 불신권력과 싸워왔기 때문입니다.
(2) 혹시, 앞으로 권력을 통한 핍박이 온 세상을 휩쓸고 갈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세상에 미련 두지 않고, 천국 신앙을 지켜가신 분들만이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늘 깨어서 기도함으로써, 환난을 대비하고, 천국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결심으로 안 됩니다.
성령님이 도와주셔야 가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기도하시고, 성경 말씀으로 하늘 양식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3) 우리가 오늘은 명절로 모였지만, 언제가 천국에서 모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오실 때에 믿은 자를 보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조들의 신앙을 본받아서, 세상 살아가면서도, 매일 믿음 준비하시고, 환난 시험을 이기도록 천국 신앙을 잘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선진들의 순교적 신앙을 이어받아, 세상에서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영생천국에 들어가도록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9절.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New International Version: 이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믿음에 대해서 칭찬을 받았으나, 그들 중 아무도 약속된 것들을 받지는 못했다. (These were all commended for their faith, yet none of them received what had been promised,)
New Living Translation: 이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 때문에 좋은 평판을 받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모두 받지는 못했다. (All these people earned a good reputation because of their faith, yet none of them received all that God had promised.)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이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믿음을 통해서 승인을 받았으나,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다. (And all these, having gained approval through their faith, did not receive what was promised)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Καὶ οὗτοι πάντες μαρτυρηθέντες διὰ τῆς πίστεως
And these all having been testified through the faith
‘증거를 받았다’는 동사(μαρτυρηθέ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이고( having been testified), 원형(μαρτυρέω)은 ‘증언하다, 입증하다, 증거를 제시하다, 좋은 보고를 하다’(witness, testify, give evidence, give a good report)는 뜻입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οὐκ ἐκομίσαντο τὴν ἐπαγγελίαν,
not did receive the promise
‘받지 못했다’는 동사(οὐκ ἐκομίσαντο)는 단순과거입니다(did not receive).
1. 예수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얼마나 수많은 고통과 고난을 당했으나, 약속하신 복들은 이 세상에서 받지 못했고, 오직 하늘나라에서 믿음에 대한 약속된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과 수많은 자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롭다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생전에 가나안 땅을 소유하는 복을 누리지 못했고, 약속의 아들 이삭만 낳았지 바닷가의 모래처럼 수많은 자손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이처럼 신약시대 믿음의 성도들도 이 세상에서는 약속된 복을 다 누리지 못하고, 하늘나라에서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2. 물론 하나님의 말씀 잘 순종하면 이 땅에서 복을 받는다는 약속의 말씀도 맞습니다.
신명기 28장에 잘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청종하면, 들어가도 나가도 복을 받는다는 말씀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또 요한삼서 1장 2절에 말씀한 대로 영혼이 잘 되면 육체도 건강하고 범사에 잘 된다는 말씀도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3. 그러나 예수님 믿고 하나님 말씀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는 말씀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국가로부터 모진 핍박과 고난을 받는 성도들은 하늘나라에서 더욱 상급이 크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그러기 때문에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고 하셨고, 장래를 위해서 좋은 터를 쌓으라고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마가복음 10:2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디모데전서 4:18-19.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40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New International Version: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미 더 좋은 것을 계획하셨기 때문에, 오직 우리와 함께 그들이 온전하게 되게 하려는 것이다. (since God had planned something better for us so that only together with us would they be made perfect.)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떠나서는 그들이 온전하게 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because God had provided something better for us, so that apart from us they would not be made perfect.)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τοῦ Θεοῦ περὶ ἡμῶν κρεῖττόν τι προβλεψαμένου,
of the God for us better something having provided
직역하면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예비하셨다’(προβλεψαμένου)는 단순과거 분사입니다(having provided).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ἵνα μὴ χωρὶς ἡμῶν τελειωθῶσιν.
so that not apart from us they would be made perfect
직역하면 ‘이것은 우리를 떠나서는 그들이 완전하게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완전하게 되다’(τελειωθῶσιν)는 부정과거 가정법 수동태(they would be made perfect)입니다.
1. 여기서 <그들>이란 구약 시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우리>란 신약 시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구약 시대 성도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면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신 것이 아니고, 재림하셔서 온전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2. 그래서 구약 시대의 믿음을 가졌던 유대교인들은 이 땅에서 교권을 가지고 예수 믿는 성도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믿으면서 유대교인들의 무서운 핍박을 견뎠습니다.
이것은 신약 시대 성도들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믿은 것이 아니고, 재림 후의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3. 구약 시대 성도들은 메시아의 초림으로 하나님 나라가 지상에 완성될 것을 기대했지만, 신약 시대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신지 2천년이 지난 오늘날 유대인들도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의 나라가 지상에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믿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4.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 같은 구약 시대 성도들의 믿음이 바로 신약 시대 성도들의 믿음과 합하여 온전하게 된다는 것이 바로 이 내용입니다.
즉 구약 시대 아브라함 같은 성도의 믿음도 신약 시대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어서 영생 천국에 대한 믿음으로 상승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두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 속에서 살아가면 물론 이 땅에서도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비록 하나님을 믿고 이 땅에서 온전히 복을 누리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 부분은 반드시 하늘나라에서 받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는 선행이 이 땅에서 다 보상을 받지 못할지라도, 하늘나라 보물 창고에 저축된다는 사실을 믿고,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런 선행이나 주님을 위한 고난이 장차 천국에서 누릴 상을 쌓는다는 것을 믿고, 더욱 주님께 충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