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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1장 1-4절. 바울 사도가 디도에게 문안과 축복
1. 디도서는 바울이 1차 로마 감옥에서 풀려난 후 64-65년경에 썼고, 바울이 4차 전도 여행을 로마에서 출발하여 프랑스의 골 지방을 거쳐 스페인(서바나)에 전도한 후, 배를 타고 지중해 그레데 섬에서 전도하고, 디도를 그레데 교회에 목회자로 떨어뜨리고, 에베소에 가서 디모데를 목회자로 둔 후, 헬라 반도 고린도에 가서 디모데에게 디모데전서를 써 보내고, 그레데 교회의 디도에게 디도서를 써 보냈습니다.
그 후 바울은 헬라 반도의 서북쪽 일루리곤 지역에서 전도하다가 로마 군병에게 잡혀서 2차 로마 감옥에 투옥됩니다.
그리고 최후로 디모데후서를 기록합니다.
2. 1장 12절에서 ‘그레데인은 거짓말쟁이’라고 지적한 대로 그레데 교회가 도덕적으로 불량하기 때문에, 바울은 선한 삶에 대해서 강조했고(여섯 번: 1:16, 2:7, 14. 3:1, 8, 14), 할례당 문제(1:10)에 대해서도 지적했습니다.
이처럼 그레데 교회는 개척교회로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으므로, 바울은 디도에게 목회적인 지침을 주고, 또 장로들을 세우는 데 지침을 주고(1:5-9), 각 계층의 교인들에게 대한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2:1-10).
이렇게 바울은 개척교회인 그레데 교회에서 디도 목사가 교회 안의 여러 분파와 각계층 사람들 속에서 성공적인 목회를 할 수 있도록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절.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Paul, a bond-servant of God and an apostle of Jesus Christ, for the faith of those chosen of God and the knowledge of the truth which is according to godliness,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Παῦλος δοῦλος Θεοῦ, ἀπόστολος δὲ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Paul servant of God, apostle now of Jesus Christ,
직역하면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이란 뜻이고,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이란 번역상 해설로 첨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κατὰ πίστιν ἐκλεκτῶν Θεοῦ
according to faith of election of God
직역하면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이란 뜻입니다.
즉 택하신 자들의 믿음을 위해 사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καὶ ἐπίγνωσιν ἀληθείας, τῆς κατ’ εὐσέβειαν
and knowledge of truth, which according to godliness
직역하면 ‘경건함에 따른 진리의 지식’을 (위해 사도가 된 바울)이란 뜻입니다.
즉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성도들이 진리의 지식으로 경건한 생활을 하도록 돕기 위해서 사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본 절이 새번역에는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의 믿음을 일깨워 주고 경건함에 딸린 진리의 지식을 깨우쳐 주기 위하여, 사도가 되었습니다”고 되어 있습니다.
1. 본 절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단어가 ‘카타’(κατὰ)라는 것인데, 원래 이 단어는 ‘--에 따라’(according to)로 번역되나, 여기서는 ‘위하여’(for)로 해석하는 것이 더 일반적입니다.
즉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을 위하여, 그리고 경건을 위한 진리의 지식을 위하여’ 된 것이란 뜻입니다.
NASB, ESV, BSB, LSB, AB, CSB, 공동번역과 새번역도 이를 따르고 있습니다.
2. 1-3절까지는 바울의 사도직이 다음과 같은 것들을 위해서 주신 것이란 설명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을 위한 것입니다.
즉 바울을 사도로 세우신 이유는 바울의 복음 전도와 설교를 통해서 택한 자들이 더욱 믿음을 갖고 믿음이 성장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택한 자들’이란 구약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그 자손을 택한 백성이 되게 하셨는데. 이제 신약에서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예수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받은 자인 것입니다.
둘째 바울이 사도로 세움받은 이유는 경건에 속한 진리의 지식을 위한 것입니다.
즉 바울이 복음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선포함으로써, 불신자들이 경건(믿음)을 얻고, 신자들이 경건(믿음 생활)을 잘 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경건 즉 믿음이 더욱 성장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은 경건을 위한(κατὰ: for) 자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2절.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n the hope of eternal life, which God, who cannot lie, promised long ages ago,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ἐπ’ ἐλπίδι ζωῆς αἰωνίου,
in hope of life eternal
직역하면 ‘영생의 소망 가운데서’ (믿음과 진리의 지식을 위하여)란 뜻입니다.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ἣν ἐπηγγείλατο ὁ ἀψευδὴς, Θεὸς, πρὸ χρόνων αἰωνίων,
which promised the (One) cannot lie, God, before time eternal 직역하면 ‘그것을 거짓말을 할 수 없는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셨다’는 뜻입니다.
‘약속하셨다’(ἐπηγγείλατο)는 부정과거로서(promised) 과거에 틀림없이 약속하신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영생의 소망’이란 믿음과 진리의 지식에서 얻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영생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어지며, 영생의 소망은 진리의 말씀을 앎으로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생을 주지 못하는 다른 종교는 참된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영생의 소망을 주지 못하는 유교나 세상 도덕은 진리의 말씀이 아닙니다.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영생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었고, 바울이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영생의 소망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래 인간을 영생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 인간은 영생을 얻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심으로써, 인간은 죄 용서를 받고 영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세상에서 성령님을 모시고 살고, 진리의 말씀에 은혜를 받아서, 영생의 소망을 갖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령님 모시고 말씀 안에서 살아가면, 반드시 영생을 실현하게 될 것입니다.
2.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라’에서 ‘영원’(χρόνων αἰωνίων: time eternal)이란 시간(χρόνος:time)의 처음인 창조의 때를 가리키므로, ‘영원 전’이란 창조 이전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인간에게 영생하는 존재로 창조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엡 1:4, 딤후 1:9, 행 13:48).
3절.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at the proper time manifested, even His word, in the proclamation with which I was entrusted according to the commandment of God our Savior,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ἐφανέρωσεν δὲ, καιροῖς ἰδίοις, τὸν λόγον αὐτοῦ, ἐν κηρύγματι
He revealed now, times His own, the word of Him, in proclamation
‘나타내셨으니’(ἐφανέρωσεν)는 부정과거로서(He revealed) 과거에 분명하게 나타내신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 전도는 내게 맡기신 것이라.
ὃ ἐπιστεύθην ἐγὼ,
with which I was entrusted I,
직역하면 ‘이 전도는 내가 위탁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내가’(ἐγὼ: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κατ’ ἐπιταγὴν τοῦ Σωτῆρος ἡμῶν, Θεοῦ,
according to commandment of Savior of us, God
직역하면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란 뜻입니다.
1. ‘자기의 때’라고 할 때의 ‘때’(καιρός:time)는 하나님이 좋다고 생각하시는 적절한 때(suitable time, the right moment, favorable moment)를 가리키고, 앞 절의 ‘창세전의 영원한 때’(χρόνος)와는 다르게 성육신의 때를 가리킵니다.
2. ‘자기의 말씀’에서 ‘말씀’(λόγος)이란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사도 요한도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말씀’(Λόγος)이라고 했습니다. (요 1:1, 14)
즉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영생을 약속하셨는데, 말씀이신 예수님이 성육신하심으로써 이 영생에 대한 약속이 성취된 것을 가리킵니다.
3. ‘전도’(κηρύγματι)는 영생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것(proclamation)을 가리킵니다.
4. ‘이 전도는 내게 맡기신 것이다’는 것은 바울이 복음 선포의 사명을 받은 것을 가리킵니다.
왕 되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죄용서와 영생 주신다는 포고문을 작성하셨는데, 그 신하 된 사도들과 바울이 이 포고문을 선포하는 일을 맡았다는 것입니다.
이 전도자의 사명은 스스로 된 것이 아니고, ‘구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된 것이었습니다.
이 복음 선포의 사명은 사도들만이 아니라, 전도자들과 목사들과 모든 성도들에게도 주어진 사명입니다. (막 16:15)
4절.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o Titus, my true child in a common faith: Grace and peace from God the Father and Christ Jesus our Savior.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Τίτῳ γνησίῳ τέκνῳ κατὰ κοινὴν πίστιν·
To Titus true child according to common faith
‘편지하노니’는 원문에 없으나 적절한 번역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χάρις καὶ εἰρήνη ἀπὸ Θεοῦ Πατρὸς καὶ Χριστοῦ Ἰησοῦ τοῦ Σωτῆρος ἡμῶν.
Grace and peace from God Father and Christ Jesus the Savior of us.
‘네게 있을지어다’도 원문에 없으나 적절한 번역입니다.
1. ‘같은 믿음’(κοινὴν πίστιν:common faith)이란 사도들이 특수한 직분을 가진 것과 대조적으로 이 믿음은 모든 성도들이 일반적으로(general), 공동으로(common) 갖는 것을 가리킵니다.
한편 바울이 디도에게 ‘같은 믿음’을 가졌다고 말한 것은 모든 성도들이 갖는 일반적으로 공통적인 믿음 뿐만 아니라, 디도가 바울의 ‘신앙적 아들’(참 아들)이고 후계자인 것을 가리킵니다.
디도는 디모데처럼 바울의 직제자로서 바울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었고(어떤 이는 디도를 누가의 형제라고 함), 바울의 신앙을 이어받았고, 특히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을 배척하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디도가 고린도교회 문제를 잘 해결한(고후 7:5-6) 바울의 핵심 제자였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란 표현은 앞 절에서 ‘우리 구주 하나님’이란 표현과 더불어, 궁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구원을 계획하시고 성취하신 분임과 동시에 본질상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실제로 십자가에서 우리 구원을 성취하신 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을 동격으로 일치시키고 있습니다.
3. ‘은혜와 평강’은 인간의 노력과 국가 지도자에게서 온 것이 아니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성령님을 모시고 살면 참된 평강과 모든 은혜들을 얻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구원의 주 예수님을 모시고, 날마다 기도하여 성령님을 모시고 살므로, 날마다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