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의 명소
법기수원지
- 강 문 석 -
사월이 중순으로 접어들자 그동안 춘래불사춘의 악몽에 시달리던 수목들도 시름을 던 때문인지 생기가 넘쳐나는 모양새다. 바야흐로 봄이 무르익기 시작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였던 1932년에 완공된 수원지는 상수원 보호를 목적으로 무려 80여 년 동안 일반인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4년 전 전격적으로 개방하였으니 원시림에 가까운 그 비경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그런데 수원지를 개방한다는 뉴스를 접하고도 난 그곳을 바로 찾지 않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살고 있는 곳에서 불과 이삼십 분 거리인데도 평소 미적거리기를 잘하는 습관이 발동했던 것이다. 수원지를 물고 있는 국도를 오가면서도 팻말만 바라보며 어느 계절에 찾아야 가장 멋진 풍광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까를 재고 있었으니 얼마나 미련한 노릇인가.
그러다가 수필문학모임의 정기총회를 수원지에서 개최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반갑기도 했지만 내심으로 뜨끔했던 것은 보이지 않는 절대자가 본인에게만 맡겨두면 이 사람은 세상 끝나는 날까지 수원지 구경을 못할 것으로 판단하여 불러들인 것 같았다. 그 바람에 벚꽃 낙화가 흰 눈처럼 분분하게 내려앉는 수원지의 봄을 만끽할 수 있었다. 화창한 봄이 펼쳐진 숲속엔 4백 그루가 넘는 편백나무와 예순 그루의 히말라야시다가 피톤치드를 발산하고 있었다. 풍요 속의 빈곤 탓인지 언제부턴가 힐링이 대세인 세상이 되고 말았다. 힐링을 위한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뿜어져 나온다는 편백나무가 이렇게 빼곡하게 잘 자란 숲을 만났으니 두고두고 감지덕지할 일이다. 다만 안내판마다 히말라야시다를 표기하면서 '야'자를 빼먹은 건 아쉬웠다.
그런데 수원지가 80여 년간 굳게 닫혀 있었다는 이곳 기록에 반하는 나의 체험을 까발려도 괜찮을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70년대 중반의 생생한 컬러사진이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직장에서 맺어진 십여 명 동료들이 처와 어린 새끼들까지 달고 이곳을 찾아 소풍으로 하루를 보낸 추억이다. 보물찾기와 장기자랑까지 마치고 푸짐한 상품을 꼬맹이들에게 안기는 장면들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행복한 순간으로 남아 있다. 오늘은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동반한 젊은 부부도 몇이나 만났다. 아들딸을 막론하고 아빠들이 아기에게 붙어 서고 엄마들은 저만큼 멀리 떨어져 강 건너 불 보듯 한다. 둑 위에 잘 자란 반송을 배경으로 셀카 사진을 찍고 있는 젊은 부부를 막 지나치려는데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본 여자였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내가 찍어 줄까요(와타시가 톳떼모 이이데스까)' 하고 물었더니 그녀의 남편이 우리말로 '네, 부탁드립니다'라고 답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이 휘둥그레지자 '아, 예 와이프는 일본인입니다'라고 했다. 노부모를 동반한 다섯 가족은 카메라를 건네받은 내가 아무리 떼어놔도 자석에 달라붙는 쇳조각처럼 서로 엉겨 붙었다. 그래서 1미터씩 간격을 벌려 세워서 찍었더니 '와아, 정말 잘 나왔다!'며 환호했다. 히말라야에서 만났던 해발 삼사천 미터 지대의 고사목들은 더러는 선 채로 더러는 드러누운 채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 나라가 빈국이라 그랬겠지만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훌륭한 보존방법이라 하지 않던가. 그 때문인지 벼락 맞은 히말라야시다 한 그루가 그대로 서 있다.
인간으로 따진다면 초로에 접어든 57세에 생을 마감한 나무는 35년 전 비명에 갔지만 아직 부식되지 않고 말짱했다. 흔히 우리는 주목을 일컬어 '생천 사천'이라 부른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견디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주목의 눈에는 '인간수명 백세시대'라며 촐삭대는 인간들이 어떻게 보일까. 흙댐의 중앙을 비스듬하게 기어오르는 120개의 콘크리트 계단은 막아 놓았다. 그 대신 댐 양쪽으로 멋진 데크 계단을 만들어 탐방객들이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했다. 댐 마루를 지키고 있는 수령 130년 반송 7그루는 기품이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취수탑을 빼고는 '호수가 그려낸 풍경은 한 편의 시'라며 허풍을 뜬 것이나, 수원지를 노래한 찬사 일변도의 시작품 두 점은 좀 심했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