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눈에 부딪칠 때 / 박두진(1916-1998)
아무데서나
당신의 눈에 부딪칠 때
타올라 미쳐 뛰는
내 안의 마음이
잔잔하고 푸른 강으로
가라앉게 하소서.
아무데서나
당신의 눈에 부딪칠 때
노루처럼 비겁한
내 안의 결단이
칼 날진 발톱
사자처럼 영맹히 덮칠 수 있게 하소서.
아무데서나
당신의 눈에 부딪칠 때
사막처럼 팍팍한
내 마음 메마름에
뜨거운 눈물
연민의 폭포 강이 출렁이게 하소서.
아무데서나
당신의 눈에 부딪칠 때
아직도 못다 올린
새 깃발을 위하여
피 흘려 넘어져도
달려가게 하소서.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의 멸망과 예루살렘의 황폐화는 하나님을 배반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백성을 개인에 비유하여 철저한 자기 반성적으로 노래한다. 예레미야를 가리켜 눈물의 선지자라 함과 같이 혜산 박두진의 시에는 상당 부분 울음, 눈물이 시편에 가라앉아 있다.
빛의 언덕에 다다를 때까지는 눈물로 가는 역사를 쉬지 않고, 희망의 언덕에서는 마음 놓고 울 수 있으며, 거친 눈물의 바다를 건너 자신 안에서 조용히 들을 수 있는 눈물의 여정을 끝낼 수 있음을 노래하고 있는 시인은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고 있다.
시에서 보듯이 외적인 살핌으로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감찰하고 있는 신의 눈을 의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인의 마음은 “푸른 강”과 같고, “영맹한 사자” 같으며, “연민의 폭포”로 쏟아지길 바라고 있다.
눈물에 대한 완전한 슬픔을 이 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어쩌면 시인은 한 방울 뜨거운 눈물로 빚어졌다(“어떻게 나를 빚으셨나이까”)고 함을 대변하고 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