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정 : 2022년 02월 21일. (월요일)
◆ 산행구간 : 배티재(대둔산휴게소) ~ 분기점(x650m) ~ x659.9m ~ 오대산(x643.8m) ~ x418.1m ~ x420.3m ~ 방고개 ~ 철림동로 ~ 태고사로 ~ x333.0m ~ 반고개(진밭들길) ~ 윗만목고개
◆ 교통:
갈때= 수원역(6:19)-서대전역(7:47착)택시이동-대둔산휴게소(배티재)9:00착
올때= 두지리버스정류장21번-서남부터미널종점하차택시-서대전역(19:35분발 무궁화호)-수원역(21:06)
▲안평지맥(安平枝脈)은 금남정맥 대둔산 자락인 배티재에서 북쪽 0.6km지점(640m)에서 북동방향으로 분기하여 오대산(643.8m), 형제봉(302m), 안평산(471.2m), 조중봉(333.5m), 명막산(331m), 도솔산(207m)을 지나 갑천과 유등천이만나는 둔산대교까지 이어지는 거리 약31.3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배티재(梨峙약356m): 충청남도 금산군과 전라북도 완주군 사이의 경계를 이루는 대둔산 남쪽 사면의 배티재(이치, 340미터)는 대둔산 중허리를 넘는 교통의 요지로서 산골짜기가 길고 깊어 매우 험한 이 재는 임진왜란 때 골짜기에 배나무가 많아 이치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거느린 2만 병력의 왜군이 경상도와 충청도를 휩쓴 뒤 군량미 확보를 위해 호남평야로의 진출을 목적으로 이 배티재를 넘으려 하다가 권율에게 대패한 지역이다. 권율은 동복현감 황진과 15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이 재를 지키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었는데 비록 수적으로는 왜적이 우세하였으나 권율이 이끄는 전 병력은 결사적으로 싸워 전주성과 호남평야를 지킬 수 있었다. 임진왜란의 첫 승리를 장식한 이 싸움을 이치대첩 또는 이치싸움이라고 하며 여기에 힘입어 이후 권율은 행주대첩과 웅치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대둔산도립공원의 등산 진입로이기도 하고 신라시대에 원효가 처음 지었다는 사찰 태고사가 가까이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잦은 곳이며 배티재의 진산 쪽 언덕에 권율장군 이치대첩비가 있다. 배티재 고갯마루에는 주유소와 휴게소가 자리하고 그곳 사이가 휴양림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주유소 앞에는 녹색의 시내버스가 주차하고 있는데 금산에서 진산을 경유 이곳까지 운행하는 농어촌버스이것 같다. 그리고 완주군 방향에는 큰 아치가 서있는데 이곳이 완주군과 금산군의 경계지점인 셈이다. 완주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대둔산의 가장자리의 암봉의 위용을 느낄 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배티재 정상에 있는 이치전적지는 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었는데 이치는 대둔산 기슭인 운주와 진산 사이의 고개로 완주와 금산의 군계로서 이치 전적지에는 권율장군의 승전을 찬양하는 이치 대첩비가 세워져 있다.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군이 전주성을 공략하기 위해 침입해왔고 이에 광주목사 권율은 이치의 험한 지세를 이용하여 물리쳤으며 이 전적지는 전라장병 1500명을 지휘하여 왜군을 격퇴함으로써 임진왜란의 서전을 장식한 대전승지의 하나이다. 전투는 1592년 7월 8일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어 해가 질 무렵까지 치른 치열한 격전이었는데 아군보다 우세한 적을 대항하여 승리로 이끈 바탕에는 장령들의 성실한 진두지휘에 힘입어 불굴한 투지에 있었으며 또한 천험의 이(利)를 얻어 미리 목책을 쌓았고 거마, 녹암, 함정, 철질려(마름쇠) 등을 요소에 마련하였으며 화살과 소마석 등을 충분히 예비하여 군자보급에 차질이 없었던 데 있었다. 이치싸움은 같은 날 벌어진 웅치싸움과 더불어 왜적의 기세를 꺾음으로써 전라도 땅을 범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이로써 전주성이 안전하게 되어 정유재란 때까지 7년 동안 군량보급과 병력보충에 크게 공헌하였고 전라감사 이광이 지휘한 용인패전으로 침체한 사기를 회복하였다. 권율은 전투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여세를 몰아 전라장병 8000명을 이끌고 북상하여 행주대첩의 주력이 되었다. 이치싸움은 웅치싸움과 더불어 행주대첩을 가져온 바탕인 동시에 전라장병들 자체로 향토를 방어하였다는 데 큰 의의가 있고 임진왜란 3대 전첩의 하나로 손꼽힌다.
▲들머리는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天下大將軍 地下女將軍)이란 장승이 세워져있는 중앙의 나무계단으로 오르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흰색 아치형의 ‘대둔산등산로’ 아래를 통과하여 나무계단을 따라 대둔산 자락으로 들어간다. 고도가 거의 300m가량 올려야하는 오르막이라 힘겹고 지루하게 올라야 한다.
▲오름길 좌측의 대둔산 도립공원 종합안내도
▲묘지에서 대둔산 조망
▲로프가 있는 급경사 오르막 오름길
▲잠시 후 계단이 사라지고 안전 목책과 로프 구간이
다시 나타나고
▲등로 좌측으로 조망처가 나타난다.
▲대둔산의 암릉구간 능선이 보이는데 금남정맥 때 가본 생각이 아련하다.
▲암릉구간도 지나는데 이곳도 옛날에 있었는지 기억이 아물아물...
▲암봉에 올라선 후 다시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에 내려 로프길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계속 이어지는 로프구간과 목계단이 이어진다.
▲일대봉 안평지맥 분기점 마지막 오름 계단이
보인다.
▲일대봉에 이정표가 서있는 연평지맥 분기점인 갈림 삼거리에 도착한다.
▲좌측 아래 전망데크 있고 이정표(오대산 0.96 km/ 낙조대 1.7 km/ 생애대 0.97 km/ 배티재 0.57 km)와 준희님 안평지맥 팻말이 있다.
▲대둔산의 멋진 모습: 대둔산(大屯山878.9m)은 전북과 충남에서 각각 1977년과 1580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케이블카와 구름다리, 삼선계단 등 시설물이 몰려있는 완주쪽 개발이 두드려져 교통이 편리하고 숙발시설이 다양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는데 완주쪽에서 케이블카를 이용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케이블카에서 내려 구름다리와 삼선계단을 거쳐 마천대까지는 30분소요 된다. 호남의 금강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대둔산은 충남 논산군과 금산군, 전북완주군 등3개군에 걸쳐 있으며, 최고봉인 마천대를 중심으로 기암괴석들이 제각기 위용을 자랑하며 늘어서 있다. 또한 능선상으로 바랑산, 월성산이 대둔산과 이어져 있으며 산행 출발지에서 좌측편으로 바랑산과 월성산을 이어서 산행할 수 있다. 대둔산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기경의 절벽을 이루는 전북 완주쪽과 순후한 시골아낙 같은 충남 논산, 금산쪽이 바로 그것이다. 등산로 역시 양쪽 지형이 상반되는 것 만큼이나 특성이 뚜렷이 구분된다. 괴목 동천 남쪽에 있는 천등산이나 마천대에서 마냥 아득하게 보이는 바랑산과 월성봉도 대둔산의 그늘에 가려서 그렇지 여유있게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산이다. 개척탑 밑의 구름다리는 두려움을 느낄 때는 다리를 건너지 않고 다리 밑으로 산행을 해도된다.
▲대둔산은 우리나라 8대 명산 중에 하나이고, 등산객들이 찾는 빈도는 100대 명산 중 6위를 점할 정도로 인기가 있는 산이다. 대둔산은 엣이름을 ‘한듬산’이라 했다는데, 이는 계룡산의 지세와 겨루다 패해 한이 맺힌 것이라는 뜻, 또 순 우리말로 ‘크다’는 뜻의 ‘한’과 ‘덩이’라는 뜻의 ‘듬’을 한자화 하다보니 대둔산이 되었다고 한다. ‘한이 맺힌 산’이라는 이름처럼 역사가 순탄치 않은 대둔산은 임진왜란 때 대둔산일대에서 김제군수 정담이 이끄는 의병대와 권율장군의 군대가 일본군과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조선말기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동학농민군도 대둔산을 찾아 일본군에 대항하며 마지막 결사 항전을 벌이다 바위벼랑에 모두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고 하는데 대둔산 마루 삼선계단 직전에 있는 ‘대둔산동학군최후항전지’ 표지가 그 역사를 전하고 있다.
▲대둔산코스와 만나는 삼거리에 전망대(5봉)가 나온다. 금산군 자료에는 5봉으로 설명되어 있다. 남쪽으로 산북리 대둔산시설지구와 운장산이 보이고,
▲전망대에서 바라본 천등산(天燈山707m): 전북 완주군 운주면의 장선리와 신북리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대둔산의 암봉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내리면서 유구한 역사를 거치는 동안 지각 변동과 풍화작용으로 바위가 떨어져나가고 골이 파이고 계곡을 만들어 옥계천이 흐르게 되었고, 이 옥계천과 나란히 운주면에서 신북리와 배티재를 넘어 금산으로 빠지는 국도를 가운데 두고 북쪽이 대둔산, 남쪽이 천등산이다. 옥계천과 남쪽의 용계천으로 휘어감긴 천등산은 견훤(甄萱)이 후백제를 세우려고 천등산 기슭에 용계산성을 쌓고 적군과 싸우고 있는데, 대둔산 용굴의 용이 닭이 우는 소리를 내고, 천등산의 신이 훤한 빛을 내비쳐서 견훤이 승리한 뒤부터 하늘천(天), 등(燈)을 썼다는 설화가 있다.
▲우측 오대산으로 향하면서 안평지맥을 시작한다. 이제 완주군과는 헤어지고 금산군으로 들어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