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4년 02월 23일(금요일)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용인시기흥구청덕동물푸레3.5단지버스정류장출발→등산로입구→물푸레고개(좌틀)→송전탑NO27→법화산(385.2m)→할미산성갈림길→346.7m봉-무등치(이정표:마북캠퍼스0.5km)→326.7m봉→천주교공원묘지내도로삼거리(좌측)→317.8m-대치고개(43번6차선도로)-오산육교지하통과-△326m봉-성남누비길시작-318.3m봉-불곡산(335.4m)-△311.7m봉-태재(57번도로)
갈때= 보정역4번출구앞에서 경기버스31번승차→용인시 기흥구청덕동물푸레3.5단지 정류장에서 하차..산행시작
올때= 태재고개(520번버스)-AK2층정류장서현역(수인선)=수원역-세류역
♤ 검단지맥(黔丹枝脈): 칠장산에서 분기한 한남정맥은 석성산을 거쳐 선장산(349.7m) 북쪽 1.7km 지점인 용인 향린동산(88C.C.)에서 두갈래로 산줄기가 분기되는데 한남정맥은 아스팔트 도로따라 경부고속도로를 가로질러 아차지고개를 지나 수원 광교산으로 이어가고, 또 하나의 산줄기가 향린동산(88C.C.)에서 서북쪽으로 분기해서 법화산(法華山, 383.3m), 불곡산(佛谷山, 344.5m), 영장산(靈長山, 414.2m), 검단산(黔丹山, 536.4m), 청량산(淸凉山, 497.1m), 남한산(南漢山, 522.1m), 용마산(596m), 검단산(657m)을 거쳐 경안천이 한강에 합수하는 팔당댐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5.6km인 산줄기이다. 검단지맥의 서쪽은 탄천, 동쪽은 경안천을 경계지으며, 경안천이 한강에 들어가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데, 산줄기의 끝자락이 팔당댐 건설로 강이 수위가 높아져 정확한 지점을 특정하기 곤란하므로 팔당댐을 지맥의 종착점으로 본다. 검단지맥에는 검단산((黔丹山)이 두 개 있는데, 팔당호 직전의 검단산이 더 높고 이 산줄기의 최고봉이라 검단지맥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또한 검단지맥 남한산에는 남한산성이 축조되어 있어 이 산성을 통과한다. 경안천이 한강을 만나는 합수점 바로 위쪽에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한강기맥 두물머리가 위치해 있는데, 그 인근지역에 한강기맥, 천마지맥, 앵자지맥, 검단지맥 등 4개의 기맥/지맥 산줄기 끝점이 한 군데로 모이는 지형을 이루고 있다. 검단지맥의 검단산(黔丹山, 657m)에서 지맥의 끝을 산줄기가 다하는 하남시 창모루마을 한강변에서 그 맥을 한강에 넘겨주는 경로로 잡기도 한다. 이 경우 날머리 교통이 매우 수월하다.
♤오늘 산행할 구간은 태재에서 검단지맥이 분기하는 한남정맥상의 향린동산까지 이나 향린 동산에서 물푸레고개 사이에는 88 CC가 자리하고 있어서 산행하기에 불가능하여 검단지맥을 하는 대부분의 산우들은 태재에서 물푸레 고개까지 산행을 하게 됩니다. 나 역시 태재에서 물푸레 고개까지 산행 계획을 세웠고...검단지맥
4구간 산행지의 들머리와 날머리 접근의 편의를 위해 물푸레고개에서 태재로 역 산행을 했다.
▲보정역 4번출구로 나와31번버스-물푸레 3.5단지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후방으로 약50m이동한다.
▲50m쯤 뒤돌아가 좌회전하여, 횡단보도 건너 우측 아파트가 보이는 도로로 간다
▲용인시 기흥구 청덕동597(물푸레마을4단지)
▲물푸래고개로 오르는데 눈꽃이 너무 아름답다.
▲도로 우측으로 창덕배수장이 있고 직진 도로 따라간다.
▲나무가지엔 설화가 피어 너무도 아름답다.
▲좌측은 전원주택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의 영남길 방향 임도로 올라간다.
▲몇일 전에 내린 눈으로 온통 하얗게 변모된 산하
▲임도 좌측 능선에 법화산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임도로 계속가면 물푸레고개이다.
▲물푸레 고개(284m): 용인시 기흥구 청덕동에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를 넘는 고개인데 청 덕동은 포장도로이나 모현읍쪽은 88골프장이 길을 막아 버렸는데 이곳은 옛날부터 물푸레 나무가 많고 항상 맑고 푸른 물이 흘러 내린다’고 하여 '청덕리(淸德里)' 혹은 '물푸레골'이 라 불리던 곳이다. 법화산 아래 이곳은 청덕동과 마북동으로 흘러 내리는 물로 탄천(炭川) 의 발원지이다. 탄천(炭川)은 탄천지맥을 감싸고 있는 천(川)으로 옛부터 삼천갑자 동방삭의 전설이 내려오 는 한강의 지류인데, 묘하게도 남에서 북으로 흘러 용인, 분당, 판교, 송파, 강남 지역을 관 통하는 준용하천으로, 이곳에서 발원하여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를 거쳐 양재천과 합해지면 서 한강으로 유입되는 한강의 제1의 지류(支流)로 더 유명하다. 동방삭(東方朔·기원전 154~93)은 한(漢) 무제(武帝·기원전 156~87)에게 스스로를 천거해 미관말직에 등용된 이래 평생을 조정에 ‘은거’했다는 익살과 해학의 정치가였는데 언젠가 한국에선 장수(長壽)의 대명사인‘삼천갑자 동방삭으로 변했다. 원래 수명이 삼십(三十)이었던 동방삭은 십(十)에 한 획을 더 그은 천(千)으로 바꿔 삼천갑 자를 살게 됐다. 이에 동방삭을 잡으러 온 저승사자가 성남 분당의 탄천(炭川·숯내)에서 숯 을 빠는 꾀를 냈다. 길을 지나던 동방삭이 “내 삼천갑자를 살지만 이런 기괴한 모습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가 신분이 탄로나 붙잡히고 만다. 이것이 전해오는 탄천 이름의 유래 중의 하나이다..
▲분기점은 88CC 정문쪽에 있어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고 사실상 분기점을 대신하고 있는 88CC울타리가 있는 물푸레고개에서 좌측으로 진행한다.
▲ 철문앞에서 좌측으로 법화산 방향오른다. 향린동산방향은 진행불편상
생략했다.
▲철조망을 지나 좌측로프 침목계단으로 올라간다.
▲88골프장이 막아버린 물푸레고개 모현쪽의 모습
▲오랜 만에 눈 내린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마침 선답자들의 발자국 때문에 걷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약간 미끄럽지만 아이잰을 착용할 정도는 아니다.
▲눈이 40~50정도는 쌓여있다. 발자국 따라 진행한다.
▲27번 송전탑을 지나고 완만한 능선으로 오른다.
▲지맥길은 좌측으로 간다. 우측은 법화산을 오르지 않고 가는 지름길 등로이다.
▲이정표에서 지맥길은 우측 마북캠퍼스. 천주교공원묘지 방향이지만 운동시설, 쉼터를 직진으로 100m거리에 있는 법화산정상을 다녀오기로 한다.
▲눈이 온 뒤라 법화산 정상엔 등산객 한명 보이지 않는다.
▲법화산(法華山:383.2m):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 마북동 청덕동과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수 지구 죽전동에 걸쳐있는 산으로 데크목 쉼터와 운동기구들이 있고 정상석이 있으나 12년전 에 있었던 삼각점은 보이지 않는다. 법화산은 주변의 형세가 타지역보다 높아 여러 신하가 임금에게 조례를 올리는 군신봉조형 (群臣奉朝形) 같다는 전설처럼 예로부터 명당보국(明堂保局)의 길지(吉地)로 알려진 곳으로 기흥구 마북동의 '마북천'과 청덕동의 '청덕천'에 흐르는 물로 인하여 탄천(炭川)의 발원지가 되었다. 이곳에는 구한말 을사늑약에 항거해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의 묘와 병자호란 때 3학 사의 한 사람인 충렬공 오달제의 묘, 연안부부인 전씨 묘(延安府夫人田氏墓) 등이 있다. 법화산은 불경 중의 하나인 에서 법화경에서 따온 이름으로 구성 지역의 중심산이다. 법화 경은 우리나라 천태종의 소의경전이기도 하면 원명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이다.『법 화경』은 묘법연화경을 줄여서 부르는 말로,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 을 중요사상으로 하고 있으며 천태종의 근본경전으로 화엄종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사상 확 립에 크게 영향을 끼친 불교경전으로 우리나라에 유통된 불교경전 가운데 가장 많이 간행된 것으로 정확히 언제부터 유통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신라 고승들의 주석서가 전해지는 것으 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유통되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왕실을 중심으로 공덕을 쌓기 위해 여러 차례 간행되었고, 조선시대에도 계속 간행되었다. 정종 2년(1399) 정천익에 의해 간행된 판본이 현재까지 전해진 조선시대 판본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고, 이후로 간행기록이 뚜렷한 것만도 약 120여 종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이른다. 범어사에는 약 160여 종에 이르는『법화경』이 전해지고 있는데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 판본으로 조선 중기 간행본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선장산에는 할미산성이 있다.
▲용인시(龍仁市): 용인시는 '땅모양이 거북과 같다'하여 금구음수형(金龜飮水形, 거북이 물 마시는 모습), 금구 몰니형(金龜沒泥形, 거북이 뻘에 묻힌 모습), 영구하산형(靈龜下山形, 거북이 산에서 내려오 는 모습), 부해금구형(浮海金龜形, 바다 위로 거북이 떠오르는 모습), 금구입해형(金龜入海 形, 거북이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 금구입수형(金龜入水形, 거북이 물로 들어가는 모습), 구 갑주형(龜甲胄形, 거북 등 모양), 금구하전형(金龜下田形, 거북이 밭으로 내려 오는 모습) 등 등 여러가지 모습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풍수지리에서 얘기하는 명당보국의 길지 로 알려진 곳이 많다. 풍수에서 거북은 부귀와 장수 그리고 번창을 상징한다. 또한 풍수에 서 형상이 제일 많은 대표적인 동물이 거북이고, 하늘의 기(氣)을 먹고 사는 영험하고 신성 한 동물로 알려진 거북은, 십장생(十長生) 중의 하나로 팔괘를 완성하는데 낙서를 제공한 동물이 거북이다. 풍수에서는 이러한 거북을 금구(金龜)라고 부른다. 수지구가 거북이 머리 에 해당하며, 용인시청이 있는 곳이 거북이 배에 위치하고 있다 한다. 용인지방의 지리적 특성 중의 하나는 경안천, 탄천, 오산천, 청미천, 진위천, 안성천 등 대소 하천이 모두 용인 에서 발원하여 인접 시.군으로 흘러 나가고 있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현상은 용인지방이 분지를 형성하면서 인접 시. 군을 내려다 보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더욱 놀라 운 것은 '멸오'나 '용구(龍駒)', '구성(駒城)'이 ‘높다’는 의미에서 표기된 지명이라면, 이미 삼국시대에 이와 같은 용인(龍仁)의 지리적 특성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하는 느낌 이다. 용인시(龍仁市)에서 '용(龍)'자가 들어가게 된 유래에는 이런 설화가 내려온다. 용인시 의 좌측으로는 투구봉이 있고 우측으로는 칼봉이 자리잡고 있는데(봉우리의 형상이 투구와 칼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투구봉과 칼봉 사이에는 넓은 터를 마을 사람들은 '장 군대지형의 땅'으로 믿고 있다. 장군이 무술을 연마하기에 꼭 알맞을 정도의 넓은 지형이다. 옛날에 남씨 문중에서 이곳에 묘를 썼는데, 그후 얼마 안 있어 그 문중 가운데 한 집에서 아기장수를 낳았다. 아기는 낳은지 사흘 만에 옆구리에 날개가 돋아났으며, 힘 또한 장사여 서 상대할 사람이 없었다. 아기장수가 태어날 무렵은 당파싸움이 치열하던 때로, 자신의 가 문을 보존하기 위해 서로간에 암투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혹여 다른 집안 자제 가운데 훌륭하게 될 소지가 있는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는 물론 그 집안 전체를 몰살하였다. 열세 에 몰려 있던 남씨 문중에선 아기장수가 태어난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될 것이라고 불안해했 다. 남씨 문중에서는 전체 회의를 열어 숙고한 끝에 아기장수가 성장하기 전에 처단할 것을 결의하였다. 워낙 힘이 센지라 여럿이 커다란 바위로 눌러 죽였고, 아기를 양지 쪽에 묻어 주려고 땅을 파 보았더니, 거기에서 투구와 칼이 나왔다고 한다. 한편 남씨 가문에서 아기 장수가 태어날 때 장군대지형에서 마주 보이는 액교산에 있는 바위에서 용마(龍馬)가 나와 울었다고 한다. 이 용마는 아기장수가 죽자 태울 주인이 없음을 슬퍼하며 성산(城山, 석성 산)을 향해 달려 나갔다. 현재 고림리의 액교산에는 용마가 났다는 용마바위가 아직도 전하 는데, 용마가 몸부림치며 울부짖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이런 설화 가 많다. 「고장군 묘소 전설」, 「아기장수와 용마바위」, 「유방리의 남씨네 아기장수」등 이 내용이 비슷하다. 이것이 훗날에 조선시대의 남이장군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이런 전설 들이 전해져 삼국시대의 구성현(駒城縣)이 고려초 용구현(龍駒縣)으로 바뀌었던 것으로 전해 진다. [통합포털에서 발췌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