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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울아, 이번에 왔던데."
"... 누구?"
"네 남팬, 그 해울의 개."
거울에 비치는 제 모습을 확인하며 메이크업을 받던 해울의 입이 제 옆에 서서 팬의 안부를 전하는 매니저를 향해 움찔댔다. 옆에서 그 말을 듣던 코디도 해울의 옷을 확인하다 손을 멈췄다. 언니, 그 사람 잘생겼다고 유명한 그 남팬 맞죠! 2년 동안 어디 다녀왔길래? 몰아치는 물음을 듣던 해울이 저도 함께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그러게... 이번 컴백 시즌에 맞춰서 새로 해울의 팀에 배정받은 코디는 듣기만 했던 해울의 개에 대한 이야기에 손이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벌써 몇 년차 더라. 어렸을 때 데뷔한 해울은 제 팬덤을 탄탄하게 쌓은 몇 안 되는 솔로 가수였다. 그런 해울에게 몇 년 전부터 저를 따라다니는 남팬이 있었다. 사생활을 지키자는 게 그 팬의 신조였는지. 해울의 사적인 공간은 침범하지 않는 남팬. 해울의 기억에 박힐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사생활과 방송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생에 넌덜머리가 난 해울이었으니까.
해울의 연습생 시절부터 기회가 생겨 선배의 공연에 게스트를 서게 될 때에도 해울의 사진을 찍고, 생일 때마다 조공을 해오던 그 남팬. 수없이 많은 팬들의 얼굴이 바뀔 때도, 그는 해울의 옆에서 응원을 하고 있었다.
해울의 개라는 이름을 달고.
그런 그가 해울에게 보여준 작은 메세지 이후로 2년 동안 얼굴을 비추지 않아 해울도 매니저도 그의 존재를 알고 있던 스탭들도 그의 탈덕을 인정했다. 해울은 그에 아무렇지 않게 반응했다. 한 사람을 그렇게 꾸준하게 좋아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럴 수도 있지... 당사자인 해울보다 주변에서 '해울의 개 탈덕이야?' 하고 물어오니, 해울이 괜히 더 찝찝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내가 뭐 잘못한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도 하면서.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해울의 개 홈페이지를 몇 번이나 확인했는지. 해울은 제 팬페이지에 하루에 한 번씩 도장을 찍다가 최근에는 그것도 지쳐서 그만 둔 상태였다. 탈덕 할 수도 있는 거야! 해울의 말을 부정이라도 하듯 탈덕하지 않았습니다. 라는 메세지를 담은 공지가 드물게 올라오기는 했지만, 오프라인 행사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해울의 개와 탈덕 이 두 가지 단어를 담은 이야기들은 계속해서 터져나왔다. 해울만큼 유명한 해울의 개. 이야기가 멈출리 없었다.
"오랜만에 팬싸라서 온 건가? 걔 당첨된 거?"
"가만보면 오빠가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벌써 2년이야. 좀 길었는데, 그래도 그게 어디야."
출국이면 출국, 심지어 해외 스케줄도. 거기다가 너 저번에 그 뭐야. 이름 외우기도 어려운 파리에서 패션쇼 한 거. 거기 찾아와서 너만 찍은 거 몰라? 매니저인 덕평의 말에 해울이 그 날을 떠올렸다. 초대를 받고 가게 되어 멀뚱히 앉아있던 그 해외 패션쇼. 가만히 멍을 때린 해울의 모습까지 차분하게 담던 카메라 렌즈. 저를 향해 줌을 당기던 그 카메라. 괜히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것 같아서 카메라를 향해 브이도 하고, 렌즈 컨택도 많이 했는데. 알고보니, 그게 해울의 개 카메라였다니. 해울의 개 가는 곳에 해울이 있네.
"걔 진짜 잘생겼더라."
"얼굴은 대체 언제 봐?"
"가요대제전에서 본 것 같아."
해울의 뽀얀 볼에 금방이라도 봄을 불러올 듯한 분홍빛의 블러셔가 내려앉았다. 거울에 비치는 덕평의 눈을 바라보던 해울이 눈을 가자미처럼 쭉 찢었다. 본 것 같다고? 해울의 물음에 덕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해울의 개가 저도 아닌 제 매니저한테 얼굴을 먼저 보였다니. 해울이 거짓말 하지 말라며 비웃었다.
팬싸에서도 제게 한 번 올라온 적 없는 해울의 개가 저를 드러낸다니. 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100명이 오는 팬싸엔 꼭 99명만 싸인을 받는다고. 그러니까, 한 명 비는 건 무조건 해울의 개였으니까. 이제는 관계자들도 아무렇지 않게 부름에도 나오지 않는 번호는 자체적으로 넘길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너가 유명한 건 걔 덕도 있어."
"오빠 해울의 개의 개야?"
"재입덕하신 해울의 개님을 향해 절이라도 해야지."
두 손을 모은 채로 해울을 향해 허리를 숙이는 매니저가 얄미워 눈을 꾹 감은 해울이 마지막으로 공항에서 마주쳤던 그 카메라를 떠올렸다. '해울아, 나 다녀올게.' 라는 작은 문구를 붙인 카메라를 보고 손을 몇 번 흔들었던 그 날. 신기하게 그 날 이후로 정말 해울의 개가 사라졌던 것.
"메이크업 다 됐어요, 언니."
"아! 고마워."
"오늘 완전 캡, 짱! 완전 예뻐요."
담요를 건네주며, 저를 칭찬하는 혜덕 코디의 신난 목소리를 듣던 해울이 몸을 일으켰다. 해울이 거울에 비춰진 제 모습을 정돈하며 밝게 웃었다. 가자. 제 옆에 선 덕평의 말에 해울이 발걸음을 옮겼다. 저를 보기 위해 달려온 팬들을 향해 움직여야 할 시간이었다.
"와아, 이제는 진짜 봄에 만나야겠어. 완전 추워요, 그쵸. 안에 있을 떄는 몰랐는데, 진짜 추워. 다들 꽁꽁 싸매고 오신 거죠?"
해울이 몸을 감싸는 시늉을 하며 목소리를 냈다. 마이크를 통해 퍼져나가는 목소리에 팬들도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해울이 그 대답에 작게 웃고는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 위에는 여러 개의 핫팩과 제 다리를 감쌀 수 있는 담요. 심지어는 날이 추울까 난로까지 놓여있었다. 팬들도 추울 텐데... 히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는 홀 안을 바라보던 해울이 줄을 서기 시작하는 팬들을 바라보며 제 순서를 기다리는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보였다.
"언니! 이번 앨범 진짜 최고... 저 특히 이번 수록곡 진짜루... 저 너무 좋아서..."
"어, 왜 울어요. 울지 마요."
휴지 좀. 해울의 목소리에 매니저가 급하게 휴지를 건네고 제 앞에서 서럽게 우는 팬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언니 보려고 진짜 저기 밑에서 올라왔어요. 언니 정말 힘이 돼요. 서럽게 울면서도 히끅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는 팬에 해울이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며 웃었다. 우스워서가 아니라 귀엽고 고마워서. 추신 메세지까지 꽉꽉 채워 작성한 해울이 앨범을 건넸다. 방금까지 펑펑 울어 눈물자국이 여전한 팬이 눈물이 묻은 손으로 받을 수 없다며 겨드랑이 사이에 꽂아가는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몇 명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터지는 환호성에 해울이 제 앞에서 싸인을 받고 있던 팬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둬 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앞에 앉아있던 팬들을 향해 왜! 왜! 하고 입을 움직이니, 팬들이 다같이 한곳을 가리켰다. 싸인을 받기 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에 서있는 모자와 마스크를 쓴 남팬. 해울의 머릿속에 덕평의 말이 맴돌았다. 해울아, 이번에 왔던데. 네 남팬. 그 해울의 개.
"개!"
해울의 뜬금없는 개 발언에 싸인을 받고있던 팬이 어? 하며 해울을 올려다봤다. 그 팬 뿐만 아니라 앞에 앉아 해울을 찍던 팬들도 그리고 제 순서를 기다리며 덜덜 떨고있던 팬들도 그리고 모자를 푹 눌러쓴 남팬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일순간 조용해진 홀을 바라보던 해울을 향해 다가간 덕평이 해울에게만 들리게 이를 악물었다.
"혹시 정신이 잠깐 외출 중?"
"... 어..."
자리에 다시 앉아 싸인을 시작하는 해울에 팬들이 깔깔 웃었다. 웃지 마. 웃지마. 옆에 놓여있는 마이크로 위협적이지 않은 협박을 한 해울이 제 앞에 앉아있는 팬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미안하다며 울먹였다. 하트 진짜 백만개 써줄게요. 해울의 울먹임과 한 면을 가득 채운 하트, 남팬의 심장은 지구 한 바퀴를 돈 만큼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마침내, 해울의 앞으로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남팬이 올라왔다.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큰 환호성을 내기 시작하고, 해울은 제 앞에 앉은 채로 앨범을 내미는 남팬을 바라보다 앉아있는 팬들을 향해 제 검지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댔다. 곧 찾아오는 정적에 해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앞에 내밀어진 앨범을 받은 해울이 제 싸인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름이 어떻게..."
"... 개요."
"네?"
"해울의 개요."
자신의 한정판 앨범을 들고온 것부터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팬들의 환호에 덕평이 몇 번이나 말했던 해울의 개일 것이라 반. 아니, 한 99.9% 정도 확신하고 있었으나, 본인에게서 직접 들으니 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예쁘고, 더 예쁜 글씨로 to. 해울의 개 라고 반듯하게 쓴 해울이 고개를 들어 남팬을 바라봤다.
"어... 또 뭐라고 써드릴까요?"
"네."
"... 뭐라고 써드릴까요!"
까만 모자와 까만 마스크 심지어 옷까지 까만색으로 물들인 그의 말을 듣기 위해 해울이 몸을 가까이 했다. 크게 울려퍼지는 팬들의 응원 소리 사이에서 남팬이 원한 메세지를 듣지 못한 해울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한 번 더 말해달라며 두 손을 모았다. 남팬은 그런 해울의 행동을 바라보다 제 귀에 걸려있던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다.
"전역 축하한다고 적어주세요."
해울이 고개를 들어 남팬의 월굴을 확인했을 때, 한 번도 본 적 없다 생각했던 그 얼굴이 마치 오랜 친구를 보는 듯한 느낌에 가만히 눈을 꿈벅였다. 해울의 시선을 느낀 남팬도 자신의 한정판 앨범에 가만히 펜을 대고만 있는 해울의 손을 이끌어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공백칸으로 옮겼다. 해울의 두 눈동자가 제 손을 덮어 온기를 전달하고 있는 남팬의 손에 닿았다. 해울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딱 하나가 저를 그 자리에 멈춰있도록 했다.
"여기에 전역 축하해, 도경수."
"..."
"라고 적어주세요. 제가 거의 2년만에 만나는 거라 엄청 떨리네요."
7년 만에 처음 듣는 해울의 개, 아니 자신을 응원하는 팬의 목소리.
"전역이라고? 군대 다녀온 거래?"
"그런 것 같아..."
"대단하다."
해울이 제 손에 쥐여진 핸드폰을 확인하며, 매니저의 말에 대답했다. 자신이 원하던 메세지가 담긴 해울의 추신을 받고 감사하며 내려가는 해울의 개, 아니 경수를 보던 해울은 싸인회를 어떻게 끝마쳤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았다.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2년이 되어가는 시점에 다시 만난 제 팬. 게다가 7년이라는 시간 중에 처음 듣는 목소리에 해울은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가있는 상태였다.
"오빠."
"응."
"해울의 개 목소리 들어봤어?"
"들어본 것 같은데, 워낙 시끄러웠어서."
하긴, 그렇게 음악 소리가 꽝꽝 울려퍼지는 곳에서 목소리를 자세히 들었을 리가 없었다. 해울은 제가 들은 해울의 개, 일명 해독의 목소리를 곱씹었다. 낮고 점잖았다. 목소리가 무뚝뚝하는 것 같았다가도 그저 훈훈했다. 저와 몇 마디 나눴던 배우들과 다를 바 없는 훈훈한 목소리였다. 모자 덕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얼굴도 그랬다. 주변에서 해울에게 '해독 잘생겼대.' 하는 말들로 자라난 환상을 채우고도 남는 외모였다. 그러니까 정신이 나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아!"
해독을 곱씹으며, 트위터를 몇 번이나 새로 고치던 해울의 손이 멈춰졌다. 하나씩 올라오는 해울의 개 계정의 새 멘션에 해울의 손이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Neverland 앨범 발매 기념 신촌 팬싸인회. 우리 해울이 옷 따듯하게 입혀주세요. 반듯한 어투로 적힌 문장들에 해울이 아까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덕평이 해울을 향해 괜찮냐고 묻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나 완전 괜찮아. 완전.
들렸던 해독의 목소리, 얼굴. 자신의 환상을 충족하고도 넘쳐흐르는 사람. 해울은 괜찮지 않았다.
"와, 어떻게 이렇게 서해울 외모를 바꿔놓지?"
"죽을래?"
"너는 진짜 감사해야 돼. 이 팬한테."
이번에 앨범과 별개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게 된 백현이 해울의 옆구리를 툭툭 치며, 핸드폰 화면을 가득 채운 해울의 고화질 직찍을 들이밀었다. 밑에 작게 박혀있는 로고를 보아하니 해울의 개의 사진이었다. 스트레칭을 하고 난 뒤 목을 풀다가 지친 해울이 백현의 장난에도 반응 하나 보이지 않다가 제 앞에 내밀어진 해울의 개의 사진을 바라봤다.
"근데 원래 팬들은 이모티콘 엄청 넣잖아."
해울아, 너는 무슨 계절일까. 해울아, 겨울은 너를 닮은 것 같아. 맞춤법과 온점까지. 게다가 함축적인 의미까지 담긴 메세지를 읽던 백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백현의 팬들의 트위터나 팬페이지에 올라오는 사진을 밑에는 항상 *^^* 이런 이모티콘이나 동물 이모티콘, 그리고 저도 해석이 불가능한 말들이 많았으니, 해울의 개의 멘션을 이해하지 못했다.
"원래 남팬들은 그런가?"
"내 사진 왜 자꾸 봐! 꺼!"
"신기하니까 그렇지."
자신의 옆에 앉아 제 머리를 헤집는 백현의 손에 해울이 머리를 흔들었다. 안 그래도 최근 앨범 준비를 위해 했던 염색 덕에 상해버린 머리가 백현의 손길에 금방 엉켰다. 해울이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아직까지 제 머리 위에 자리잡은 백현의 손을 잡아 끌었다. 오빠 손 비싸. 따위의 헛소리를 내뱉는 백현에 해울이 제 가방에 들어있던 빗을 꺼내 백현의 손에 쥐여주고는 백현의 양 볼을 꾹 눌렀다.
"내 얘기를 좀 들어볼래, 친구야."
"그래, 뭔데. 이렇게 얼굴까지 잡혀서 들어야 돼?"
"자꾸 딴소리만 하니까 그렇지, 들어봐."
"그래."
"나 아는 사람을 2년 만에 만났는데."
"그래."
"환상이었어. 아니, 환상을 충족하고도 넘쳐."
너 그 사람 원래 알았는데 2년만에 다시 만났다고? 처음 만난 거 아니고? 해울의 말에 백현이 심드렁하게 되물었다. 해울은 백현의 물음에 고민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건 마지막 문장이야. 해울의 말에 백현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형인가? 덧붙여진 백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닌 것 같은데... 보자마자 그냥 뭔지 모를 감정이 들었어. 해울의 말을 듣던 백현이 아직까지 제 얼굴을 잡고있는 해울의 손을 떼어내고 팔짱을 꼈다.
"반했냐?"
"뭐래."
"누군데?"
"몰라도 돼."
"비밀 너무 만든다, 너."
백현의 말에 해울이 실실 웃었다. 작년에 너 열애설 기사로 만난 것보다 낫다. 덧붙여진 해울의 말에 백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게 언제적인데. 하며,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 행동을 보던 해울이 고개를 저었다. 해울이 컴퓨터 키보드를 몇 번 매만지고 얼마 전에 녹음을 끝낸 음원이 연습실에 울려퍼졌다. 나 연습할 거야. 해울의 말에 백현이 눈을 찢었다.
"너 누군지 말 안 했거든?"
"대답한다고도 안 했는데?"
"아오, 서해울."
해울이 마이크를 내밀며 실실 웃자 백현이 앉아있던 몸을 일으켜 연습실 가운데에 놓여있는 의자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왜!"
"오빠 배고프다. 해울."
"내가 오빠라고 하지 말랬지."
무거워. 무겁다고 했다. 새벽 4시가 되어서야 끝난 연습에 해울이 피곤에 찌든 얼굴로 저를 오빠라고 지칭하는 백현의 가슴팍을 아프지 않게 때렸다. 해울에게 쓰러지듯이 기댄 백현에 해울의 몸이 반이나 백현의 몸 아래로 사라졌다. 무거워. 무겁다고. 얼마나 연습을 한 건지. 조금은 갈라진 해울의 목소리에 백현이 피식 웃었다.
"같이 뭐 먹어주면 몸 치워줄게."
"나 혼나거든?"
"내가 먹자고 했다고 할게."
백현이 해울을 바라봤다. 하나, 둘, 셋. 진짜? 넘어왔다. 체중관리 할 게 뭐 있다고. 해울의 들뜬 목소리에 백현이 몸을 일으켜 해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사람들이 돌아다니기 전에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뭐가 있더라. 백현이 한 손으로는 해울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로는 핸드폰으로 주변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맛있는 거 아니면 다 엎는다. 해울의 협박을 들으면서.
백현과 해울이 발표한 디지털 싱글은 국내 음원 차트를 석권했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예정에도 없던 음악 방송과 백현과 해울의 화보 동시캐스팅, 거기다 광고까지. 둘의 음악을 응원하는 팬들이 많아지면서 보이는 라디오에 DJ 로 초대받기도 하는가 하면, 백현, 해울과 함께하는 팬미팅까지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소속사도 이때다 싶어 백현과 해울을 같은 방송에 내보내기 시작했다.
"해울 씨, 백현 씨가 이상형으로 해울 씨를 꼽은 방송 보셨어요?"
짧은 인터뷰 속에 들어있는 질문에 해울이 에? 하며 당황스러운 웃음을 내비췄다. 제 옆에 앉아있는 백현에게 물어도 어깨를 으쓱일 뿐, 대답을 하지 않는 백현에 해울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몰랐어요. 해울의 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VJ 가 그럼 해울 씨 이상형은 어떻게 되세요? 그 질문에 해울이 두 눈을 꿈벅거렸다.
"저는... 제 환상에 딱 맞는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요? 해울의 답을 이해하지 못한 VJ 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다시 던져진 질문에 해울이 뭔가를 떠올리는 듯 조명이 한가득 달려있는 천장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제가 생각했던 모든 요소, 그러니까 이상형에 맞는 사람이에요. 하하... 백현도 해울의 대답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VJ 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해울은 저를 계속 찍는 카메라를 향해 밝게 웃어보였다.
"백현 씨는 아닌가봐요."
"전혀요..."
"백현 씨 차였네요."
"다행이죠."
농담 섞인 VJ 의 말에 백현이 해맑게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상형이구만. 궁금하네."
"이게 설명이 참 어렵네요."
"얼씨구."
내일 음악방송에서 보일 퍼포먼스를 연습하던 백현이 핸드폰으로 노래를 트는 해울의 옆에 다가가 물었다. 낮에 있었던 인터뷰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연습생을 함께하고, 데뷔를 한 이후에도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또 그 질문이야? 해울이 질린다는 듯 백현을 향해 손을 저었다. 몰라, 몰라. 연습이나 하자. 연습용 힐을 꺼내신던 해울이 연습실 가운데로 향했다.
"오늘 팬미팅 있대."
연습을 마친 후 짧은 잠을 취한 해울의 얼굴 위로 두꺼운 화장이 덮여졌다. 머리에 꽂혀진 핀과 함께 꾸벅꾸벅 졸던 해울이 덕평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사녹이니까 녹화하고, 본방 사이에 팬미팅하면 쉴 수 있을 거야. 스케줄을 말해주는 덕평의 말을 듣던 해울이 팬미팅이라는 말에 언제 졸았냐는 듯 눈을 부릅 떴다.
"팬미팅."
"왜? 피곤해서?"
"아니, 좋아서."
아까까지 꾸벅꾸벅 졸던 애가 왜 저래. 스탭들이 눈빛을 주고 받았다.
백현과 올라선 무대에서 저를 응원하는 팬들과 백현의 팬들이 한데 모여서 응원봉을 흔드는 모습에 해울의 밝게 웃었다. 이따가 팬미팅 다들 오실 거죠? 인이어를 정리하던 백현이 마이크에 대고 하는 말에 좌석에 앉아있던 팬들까지 네! 하면서 크게 대답했다. 무대를 정리하는 사람들이 올라와 백현과 해울이 앉을 의자를 배치하고, 무대 세트를 정돈했다. 해울은 제 앞에 나타난 익숙한 형체에 몸을 이리 저리 움직였다.
"오늘도 엄청 추워요. 감기 완전 조심하세요!"
백현이가 감기 걸려서 한참 고생했잖아요. 해울의 말에 백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금방 나았어요. 해울이 멘트가 감기 걸린 것 같지 않아요? 이어지는 백현의 말에 팬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매번 날씨 얘기만 하죠, 얘. 백현의 말에 팬들이 네! 하고 대답했다. 해울은 의자에 앉아 입을 떡 벌렸다.
"기상캐스터보다 정확하다면서요."
"놀리지 마세요."
백현이 해울의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어찌나 얄미운지. 해울이 눈을 쭉 찢고 시선을 돌렸다. 해울, 백현 씨 무대 시작할게요. 스탭의 목소리에 해울이 몸을 움직였다. 노래를 낮게 흥얼거리던 해울의 시선에 닿은 좌석. 해울의 시선에 경수가 닿자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경수는 제게 손을 흔드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해울을 계속 카메라에 담기만 했다. 해울이 입을 쭉 내밀고 무대가 시작 될 의자에 앉았다. 백현도 자리를 잡고, 인이어로 들려오는 신호를 들었다.
"헐, 나 출근길 엉망이었지. 그치."
사녹과 본방 사이에 잡혀있는 팬미팅을 앞두고 해울이 바쁘게 움직였다. 사녹과는 또 다른 옷을 입고, 또 다른 헤어를 했다. 입술 색을 잃기라도 할까. 준비가 되어있는 음료를 마시지도 않고, 백현이 건네는 쿠키도 내려둔 채로 트위터만 확인하며 시계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왜 말 안 해줬어? 옆에 앉아 하품을 하고 있던 덕평이 해울을 향해 엉? 하는 소리를 냈다.
음악은행 해울이 출근길 눈 퉁퉁 부었네. 샵에서 팬미팅이라도 난리치고, 겨우 차 안에서 뻗었는데 제 얼굴을 다듬어주기도 전에 내려버려서 엉망인 상태로 졸면서 지나온 출근길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겼을 텐데. 해울의 개의 카메라에 그게 찍혔을 줄이야. 이미 꽤 많은 리트윗 수를 가지고 있는 멘션에 해울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머리 만지면 안 돼요! 놀란 코디가 해울에게 다가와 다시 만지기 시작했다.
"나 어때?"
"싸우자는 질문으로 들려."
"오늘 더 예쁘다거나."
"싸우자는 거 맞네."
심드렁한 백현의 반응에 해울의 시선이 다시 거울로 향했다. 출근길 생각을 왜 못했지. 근데, 이른 아침 출근길도 찍고, 전역하고 할 일이 없는 걸까. 다시 경수로 주제를 바꾼 해울이 해울의 개 계정을 계속해서 스크롤했다.
트럭 위에서 진행되는 팬미팅에 해울이 눈을 굴렸다. 어디 계시죠, 어디. 저 멀리서 저를 찍는 검은 그림자를 발견한 해울이 손을 흔들었다. 그 행동에 경수가 잠시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해울을 바라봤다. 드디어 나 봤다! 해울이 그에 손을 더 크게 흔들었다. 경수는 당황하다가도 저를 향해 손을 흔드니 그저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백현은 해울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단단히, 정말 단단히...
"오늘 셀카 이벤트 있는 거 아시죠?"
"알죠, 완전. 해울 씨가 그래서 오늘 더 예쁘신 거라면서요."
싸우자는 걸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팬미팅이라 즐거워 죽겠는데 분위기를 초치는 백현의 말에 해울이 주먹을 내보일까 하다가 제 앞에 있는 팬들을 향해 웃어보이기만 했다. 백현은 해울의 눈빛을 보기는 했는지. 팬들을 향해 셀카 이벤트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번호 추첨 방식이고, 사녹 들어오실 때 번호예요. 번호표 확인할 거거든요. 그리고, 이 기계가 뽑는 건데. 두 사람 뽑아요. 우리가 딱. 두 명.
"마음으로는 어? 다 찍어드리고 싶은데."
"완전."
"또 기회는 올 테니까요, 그쵸?"
백현이 실실 웃으며 번호 추첨 기계를 작동시켰다. 곧이어 뽑혀나오는 번호에 해울이 백현의 옆에 다가가 백현이 뽑은 번호를 확인했다. 마이크를 다시 잡은 백현이 입을 열었다.
"233번이요."
백현의 목소리가 울리자 밑에 서있던 팬이 기쁨에 젖어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저요! 저예요! 먼저 배부한 번호표를 확인한 팬스탭이 팬을 먼저 트럭 위로 올려보냈고, 백현은 다정하게 제 팬을 옆에 세웠다. 그 행동에 팬들이 와악. 하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냈고, 올라온 팬은 넋이 나간 표정을 한 채로 백현을 힐끔 힐끔 바라봤다.
"떨리죠."
"... 네? 네."
"저도요."
백현과 팬의 대화에 팬미팅 장소가 또 큰소리로 가득 찼다. 이제 해울 씨 뽑을 차례니까. 입에 검지손가락을 가져다 댄 백현의 행동이 없었다면 해울이 번호표를 뽑지 못했을 정도로. 백현의 말에 둘을 바라보던 해울이 기계에서 번호를 뽑아 제 손에 쥐었다. 해울의 손에 들려있는 번호로 모두가 시선을 집중했다.
"112번! 112번이요!"
해울의 목소리가 울리자마자 서로 주변을 확인했다. 먼저 백현이 뽑아 올라온 팬과는 다르게 조용하자 팬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해울의 말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자 팬미팅을 진행하는 스탭이 해울을 향해 고개를 저어보였다. 아직 멈추지 않은 기계를 향해 다시 손을 뻗으려던 순간이었다.
와, 미친. 해울의 개 아냐? 들려오는 목소리에 해울이 고개를 빼꼼 내밀어 경수를 바라봤다. 카메라를 든 상태로 스탭에게 다가가 제 번호표를 보여주고 있는 해울의 개의 경수. 미쳤다, 미쳤어. 해울은 이 상황이 거짓 하나 없는 현실인지 먼저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경수가 트럭에 올라오기 전까지 해울은 제 볼을 꼬집기라도 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까만 모자와 까만 마스크 덕에 보이지 않는 얼굴에도 해울이 실실 웃었다. 백현이 뽑은 팬과 셀카를 여러장 찍고, 포옹도 해주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찍어주겠다는 다정한 면모를 드러냈다. 덕분에 백현의 팬들은 아쉬움이 섞인 환호를 했다. 내가 그 자리에 올라갔어야했는데... 하는 마음이 담긴. 백현과 사진을 찍은 팬이 먼저 트럭 아래로 내려가고, 백현이 앞에 있는 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을 때, 멀찍이 떨어져있는 경수를 힐끔 힐끔 바라보던 해울이 발걸음을 움직였다.
"... 저... 얼굴 가리고, 찍으실 거예요?"
"... 아뇨."
"왜 매번 얼굴 가리고 오세요?"
"집중 받는 걸 안 좋아해서요."
집중? 경수의 말이 무슨 뜻을 가진 건지. 이해하지 못한 해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앞에 있던 팬들도 해독이야, 해독. 하며 경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경수는 해울을 바라보지도 않고 몸을 뒤로 돌려 제 머리를 누르고 있던 모자와 얼굴을 가리고 있던 마스크를 벗고는 고개를 돌렸다. 백현과 대화를 하던 팬들도 그리고, 사진을 찍으려하던 해울도. 해울의 개라며 관심을 가지던 팬들도 모두 경수를 바라봤다. 집중 받는 걸 안 좋아해서요. 해울은 그제서야 경수의 말을 이해했다.
"안 찍어요?"
어느새 제 옆에 다가온 경수에 해울이 벙쪄있던 표정을 풀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네? 네?"
"셀카요."
당황한 해울을 보던 경수가 피식 웃으며 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핸드폰 마저 검정색. 해울이 감탄하려던 것을 꾹 참고 제 옆으로 다가와 서는 경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들고 있을게요. 손을 뻗어 경수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려던 해울이 경수의 말에 손을 내리고 고개를 한 번 더 끄덕였다.
"찍을게요."
"... 네."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해울과 경수가 사진으로 담겼다. 경수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제 코로 스며드는 경수의 향해 해울이 눈을 꿈벅였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해울에게 찍힌 사진을 보여준 경수가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찍을까요? 하며 다정하게 물어왔다. 팬서비스 왕이라는 백현 뺨치는 서비스였다. 해울은 마치 팬이 된 것처럼 경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요... 다시... 제가 너무 오징어처럼 나와서요...
"웃어요. 웃어야 한 번에 성공해요."
"네!"
경수의 말에 활짝 웃은 해울이 다시 한 번 사진으로 담겼다. 이번엔 잘 나왔네요. 경수의 말에 해울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진 어떻게 받을 수 없을까. 하며, 갖가지 생각을 하던 해울을 보던 경수가 제 팔을 뻗었다. 백현과 셀카를 찍었던 팬도 포옹을 했으니까. 나도. 해울이 미소를 지으며 경수의 품에 안겼다.
"저."
"..."
"내려가야해서."
"... 사..."
"네?"
저를 계속 안고만 있던 해울을 향해 경수가 민망함이 담긴 목소리를 냈다. 아직까지 몸을 떼어내지 않은 해울이 경수의 옷소매를 잡았다. 분명히 경수와 해울이 뒤바뀐 것이 분명했다. 경수는 저를 놔주지 않는 해울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저랑 사진 찍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울의 말에 경수도, 옆에 서있던 백현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팬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그제서야 경수가 해울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떨어졌다. 정말이지 역할이 바뀐 게 분명했다.
"네, 앞으로도 계속 예뻐주세요."
예뻐해 주세요. 도 아닌 예뻐주세요. 해울이 아직 제 품에 남아있는 경수의 향에 취한 채로 트럭에서 내려가 다시 카메라를 잡는 경수를 바라봤다. 미쳤나봐, 나.
해울의 개
@Haeul_s_dog
해울 ; 너는 오늘도 가장 빛났다. 오늘 네 앞에서 바랐던 작은 소망의 본래의 뜻은 네가 알았기를. 앞으로도 계속 빛날 나의 별. 내가 그 주변의 어둠이 되어 널 더 빛나게 할 테니.
해우라사라해
@haewoori
@Haeul_s_dog 해독님! 오늘 해울이랑 셀카 찍으신 분 맞죠 ㅠㅠ 완전 잘생기셔서 오열 ㅠㅠ 엄지엄지척척,
해울의 개
@Haeul_s_dog
@haewoori 감사합니다. 데이터 업데이트 했습니다. 오늘의 해울이도 변함없이 예쁘니까 꼭 봐주세요. 몇 장은 트위터에만 올리겠지만 그게 해울이 미모를 다 보여주지는 못하잖아요.
해우리포터
@haeripotter
@Haeul_s_dog 사스가 해울사랑... 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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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ㅋㅋㅋㅋㅋㅋ이거 뭐 경수가 연옌이고 해울이가 팬이넼ㅋㅋㅋㅋ기여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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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4.13 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