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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는 1~3장과 4~6장의 둘로 구분됩니다.1)
1~3장은 독자들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는 뜻을 강화합니다.2)
4~6장은 주위 문화의 관습에 동화되지 말 것을 호소합니다.3)
1~3장은 전반적으로 긴 감사가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4)
이 부분은 하나님께 대한 송축과 찬양으로 시작합니다(엡 1:3~14).5)
그리고 교회의 뜻이 포함된 감사 부분으로 옮겨갑니다(엡 1:15~23).6)
에베소서 전반은 송영(頌詠, Doxology)으로 끝납니다(엡 3:20~21).7)
에베소서는 편지로 위장된 신학적 논문 이상의 책입니다.8)
에베소서는 감사와 권면 부분을 확대해서 본론을 대체합니다.9) 에베소서의 편지 양식은 설교 방향으로 확대한 것으로 보입니다.10)
에베소서 1~3장에 있는 감사와 기도는 수사학적 전략입니다.11)
에베소서 1장 1~2절은 서언이며 발신자, 수신자, 인사를 담습니다.12) 발신자는 파울이며, 수신자는 에베소 안에 있는 성도입니다.
찬양(1:3~14), 감사 중재기도(1:15~23), 구원을 상기시킴(2:1~10), 새 창조와 새 성전에 참여하게 된 독자들의 특권을 상기시킴(2:11~22), 독자들이 파울과 그의 사역에 빚을 지고 있는 사실을 상기시킴(3:1~13), 중재기도와 송영(3:14~21)의 내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13)
에베소서 교리 부분은 찬양 감사와 감사의 근거(2~3장)를 다룹니다. 먼저 서언(1:1~2)과 찬양 부분(1:3~14)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파울은 서언에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히고 인사합니다.
에베소서 1장 1~2절에 “크리스트 예수의 사도는 하나님의 뜻을 통해, 에베소 안에 있는 성도와 크리스트 예수 안에 신실한 사람들에게. 은혜와 평화가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와 주 예수 크리스트에서부터”라고 하였습니다.
파울 크리스트 예수의 사도는 하나님의 뜻을 통하여(by), 성도들과 크리스트 예수 안에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합니다(엡 1:1).
사도 파울은 크리스천들을 가리켜서 “성도(聖徒)”라고 말하였습니다. “성도(聖徒)”라는 한자어는 “성스럽게 구별된 무리”라는 뜻입니다.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예외가 없이 “성도(聖徒)”며 “성인(聖人)”입니다. 크리스천은 다 성스럽게 특별히 구별된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신성하게 구별하셨기에 “성도”입니다.
“성도”의 또 다른 이름은 “크리스트 예수 안에 믿는 자”입니다. “신실한(faithful)”이라는 단어(피스토스)는 “믿는”을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믿는다는 말은 과거에 믿었음을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다. 믿는다는 말은 지금 믿고 있다는 말입니다. 계속 믿고 있어야만 합니다. “믿음”은 계속 그 안에 머무르고 끝까지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믿을만한 사람이 된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믿고 신뢰하고 신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크리스트 예수 안에 있다는 말은 크리스트께 속하여 있다는 말입니다. 크리스천들은 “크리스트”라는 테두리 안에 크리스트와 연합한 것입니다.
“은혜와 평화”는 고대인들의 인사법이었습니다(엡 1:2).14) “은혜”는 “받을 자격 없이 호의의 베풂을 받는 것”입니다.15) “평화”는 “연합”과 “화해”입니다.16) 하나님과 평화를 누릴 때 평화를 누립니다.17)
은혜의 결과는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18) 은혜와 평화의 출처는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와 주 예수 크리스트시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기에 우리가 평화를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가 되게 만드신 분은 주 예수 크리스트십니다. 주 예수 크리스트를 통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평화를 가집니다(롬 5:1).
2. 파울은 하나님께 송축합니다.
에베소서 1장 3절에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를 복을 주신 그 하나님과 우리의 주 예수 크리스트의 아버지께서는 송축 받으시노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 하나님과 우리의 주 예수 크리스트의 아버지께서 송축 받으십니다. 우리를 모든 영적인 복 안에 그 하늘의 것들 안에 복을 주신 분이십니다. 그는 복을 주신 분이시니 송축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엡 1:3).
3절에 “찬송하는”(율로게토스)은 “송축 받는”을 뜻합니다. “송축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바라크)를 번역할 때 쓰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는 송축 받으시는 분이십니다(창 24:27).
마태복음 14장 19~21절에 “그 군중들을 풀 위에 기대게 명령하셨고 그 떡 다섯과 물고기 둘을 취하셨으며 하늘로 쳐다보신 그가 송축하셨고 쪼개신 그가 제자들에게 주셨으나 그 제자들이 그 군중들에게 그리하고. 모두 먹었고 배불렀으며 나머지를 가득한 열두 바구니를 들어 올렸으나. 그 먹는 자들이 대략 5천 남자들이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9장 26절에 “셈의 하나님께서 송축함을 받으시고, 가나안은 그들에게 종이 될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복을 주신 하나님께 복의 원인을 돌려드리는 것이 송축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축복”과 “송축”은 같은 말입니다(창 1:22, 9:26). 복(福)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송축함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받은 축복(blessing)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 곧 송축(blessing)입니다.
노아는 셈의 하나님이 송축함을 받으신다고 하였고(창 9:26), 그는 셈을 통하여 “여자의 씨”를 보내실 셈의 하나님을 송축하였습니다.
주 하나님을 송축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우리가 받은 큰 복입니다(출 18:10). 하나님께서 이러한 큰 복을 주셨으므로 그를 송축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시편 103편 1절에 “나의 영혼아 주(LORD)를 송축하라(Bless), 모든 나의 내부야 그의 성별의 이름을 그리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03편 2절에 “나의 영혼아 주(LORD)를 송축하라(Bless), 너는 모든 그의 이익들을 잊지 말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의 이익들을 잊지 않고 칭송하는 것이 송축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의 이익들이 송축하는 이유와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의 이익들과 은혜들을 기억할 때에 송축하게 됩니다.
시편 104편은 하나님을 “송축하라”라는 명령으로 시작되며(시 104:1),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에 대한 반응이 송축입니다(창 1:22, 2:3, 5:2). 성경에서 가장 먼저 하나님을 송축하였던 사람은 노아입니다(창 9:26). 멜기세덱도 가장 높으신 신(神)께 송축 되신다고 하였습니다(창 14:20).
주의 집에 서 있는 그의 종들은 다 그를 송축하여야 합니다(시 134:1). 칭송(稱頌)하고 축복(祝福)하여 송축(頌祝)하여야 합니다(시 134:2).
이 말씀과 같이 우리가 우리의 손을 들어 올리고 하나님을 송축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온으로부터 복을 주실 것입니다(시 134:3).
이스라엘의 집, 아론의 집, 레위의 집은 하나님을 송축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송축하여야 합니다(시 135:19~20). 하나님께서는 지온으로부터 송축함을 받으십니다(시 135:21).
시인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그 왕”이라고 불렀습니다(시 145:1). 그는 하나님을 높이고 영원에 하나님의 이름을 송축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송축하고 그 이름을 찬양하겠다고 하였습니다(시 145:2).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이름을 영원 영속에 송축할 것입니다(시 145:21). 우리는 하나님을 칭송하고 송축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4장 19~21절은 ‘기적적인 식사’에 관한 내용입니다.19)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풀에 기대도록 명령하셨습니다(마 14:19).20)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연한 풀의 목장들 안에 내뻗게 만드시듯이,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풀 위에 기대도록 명령하셨습니다(시 23:2).
그 후 예수님께서는 그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취하셨습니다. 하늘로 쳐다보신 그가 송축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음식의 공급에 대해 하나님을 송축하신 것입니다.21) 하나님께서는 땅으로부터 식량을 나오게 하신 분이십니다(시 104:14).
오병이어로 다 배불렀고 가득한 열두 바구니가 남았습니다(마 14:20). 저녁 시간까지 말씀을 듣던 자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가득한”은 이삭 껍질 속에 알맹이가 가득한 것에 쓰입니다(창 41:7). 그릇들의 둘은 기름으로 섞음을 받은 고운 가루로 가득합니다(민 7:13).
주를 경외할 때에는 좋은 것으로 가득한 집들을 받게 됩니다(신 6:11). 그들이 좋은 것으로 가득한 집들과 우물들을 소유하게 됩니다(느 9:25).
예루살렘은 정의로 가득하였고 지금은 살인하는 자들입니다(사 1:21). 마치 새들이 가득한 새장처럼 그 집들이 속임으로 가득합니다(렘 5:27).
그 산이 엘리사 주위에 말과 불의 전차로 가득하였습니다(왕하 6:17). 우리와 함께한 천사들이 적들보다 많음을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먹는 자들이 여자와 아이 외에 대략 5천 남자들이었습니다(마 14:21). 남자들만 대략 5천 명이었으니 여자와 아이를 합치면 더 많은 수입니다.
본문에 “축복받는”이라는 단어(율로게토스)와 “복을 주다”라는 단어(율로게오)와 “복”이라는 단어(율로기아)는 각각 형용사와 동사와 명사로 모두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祝福)을 받으시며 다른 말로 송축(頌祝) 받으시는데, 그가 주신 복을 되돌려 드리는 것이 송축입니다. 하나님을 송축합시다!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히 6:14).
모든 복은 우리의 주 예수 크리스트를 통해 그 안에 오는 것입니다.22) 아무 다른 이 안에는 구원이 있지 아니합니다(행 4:12).
“영적인”이라는 말은 이 복이 곧 성령님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23) 크리스천들이 누리는 모든 복은 성령 안에 성령으로 말미암습니다.24)
하나님과 예수 크리스트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복을 주신 분이시며, 그는 모든 영적인 복으로써 우리를 이미 복을 주셨습니다(has blessed).
물질적인 복이 아닌 “영적인 복”(spiritual blessing)으로 주셨습니다. 영(spirit)에 속하는 복입니다. 영적인 복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 하늘의 것들 안에”는 그 영역이 “하늘의” 영역인 것을 뜻합니다.25) 모든 영적인 복이 “하늘의” 영역에 속하였다는 것입니다.26) 우리는 세상의 사고방식과 정신과 정신구조를 좇아서는 안 됩니다.27)
이는 우리의 고난의 잠깐 가벼운 것이 초월에 따라 초월 안으로 영광의 영원한 중량을 우리에 완수하기 때문입니다(고후 4:17).
파울은 “우리의 고난의 순간의 가벼운 것”을 언급하는데 신자들의 고난은 순간이고 잠깐입니다.
성경은 현세에 많은 약속을 하지 아니하며 현세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인내를. 인내는 인격을, 인격을 소망을 완수하게 됩니다. 내세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현세의 고난을 참을 수 있습니다(롬 5:3~4).
지금 시간의 고통은 나타나려는 영광을 향하여 같은 가치가 아닙니다. 지금 시간의 고통은 나타나려는 영광과 비교하면 매우 가벼운 것입니다.
만일 그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의 주택이 폐지함을 받는다면 하나님에서 건물을 우리가 가지는 것을 우리는 알아보는데 손으로 만들지 아니한 하늘 안에 영원한 주택입니다(고후 5:1).
참된 복들은 예수 크리스트 안에 있는 “하늘의” 영역의 것들입니다.28)
이것이 영생이니, 하나님과 예수 크리스트를 아는 것입니다(요 17:3). 예수님께서는 그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데, 참 하나님과 예수 크리스트를 아는 것이 곧 영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크리스트께서는 우리에게 죄와 악마를 물리칠 힘을 주실 것입니다.29) 하나님께서 이미 많은 복을 주셨고, 그 복들은 더 많아질 것입니다.30)
에베소서에 “그 하늘의 것들 안에”가 5번 나오며, “그 하늘의 것들”이라는 말은 목적격으로 요 3:12에 처음으로 나옵니다. 예수 크리스트께서는 “그 하늘의 일(것)들”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는 “전능자”나 “하늘”의 번역에 사용됩니다(시 68:14, 단 4:23). “하늘의”는 전능자이신 하나님과 관련되며 물리적 하늘과도 관련됩니다. 요 3:12에서 “그 하늘의 일들”은 예수님께서 그 승천을 통해 가져오시는 구원의 종말론적인 차원과 관련될 것입니다.31)
첫 번째 하늘은 구름이 있는 대기권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을 가리키며, 둘째 하늘은 태양과 달과 별들이 운행하는 은하계의 하늘을 가리킵니다. “셋째 하늘”은 하나님 자신의 임재와 그 영광이 드러나는 하늘입니다.32)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크리스트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내가 살지 아니하나 내 안에 크리스트께서 사시노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 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33) 육체(the flesh)와 성령(the Spirit)은 적대하는 적대관계며 같은 편이 아닙니다(갈 5:17).
신자들은 “첫 열매”인 “성령(the Spirit)”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므로 “양자결연”, 즉 “우리의 몸의 되찾음”도 가질 것입니다(롬 8:23).
신자들은 아직도 육체의 몸에 거주하고 있고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영적으로는 크리스트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습니다.34) 하나님께서 크리스트의 구원을 통하여 이 세상 문제를 다루십니다.35)
우리는 “하늘의” 영역에 속하여 있으며 우리 안에 본성들을 아십니까? 우리는 “하늘의” 전망대에서 크리스트의 관점에 모든 것을 보십니까?36)
고린도전서 15장에 하늘의 몸과 하늘의 영광이 쓰입니다(고전 15:40). 하늘의 사람께서 계시듯이 하늘의 사람들도 이와 같습니다(고전 15:48). 믿는 자들은 그 하늘의 사람 형상 또한 몸에 지닐 것입니다(고전 15:49). 본문 1장 3절은 “그 하늘의 것들 안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을 말합니다.
1) Andrew T. Lincoln, 『에베소서』, WBC 성경주석 42, 배용덕 옮김 (서울: 솔로몬, 2006), 47.
2) Lincoln, 『에베소서』, WBC 성경주석, 47.
3) Lincoln, 『에베소서』, WBC 성경주석, 47.
4) Lincoln, 『에베소서』, WBC 성경주석, 47.
5) Lincoln, 『에베소서』, WBC 성경주석, 47.
6) Lincoln, 『에베소서』, WBC 성경주석, 47.
7) Lincoln, 『에베소서』, WBC 성경주석, 48.
8) Lincoln, 『에베소서』, WBC 성경주석, 49.
9) Lincoln, 『에베소서』, WBC 성경주석, 51.
10) Lincoln, 『에베소서』, WBC 성경주석, 53.
11) Lincoln, 『에베소서』, WBC 성경주석, 55.
12) Lincoln, 『에베소서』, WBC 성경주석, 56.
13) Lincoln, 『에베소서』, WBC 성경주석, 57.
14) D. M.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서문강 옮김 (기독교문서선교회, 1984), 39.
15)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41.
16)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42.
17)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44.
18)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48.
19) David L. Turner, 『BECNT 마태복음』, BECNT 성경주석, 배용덕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4), 483.
20) Turner, 『BECNT 마태복음』, 483.
21) Turner, 『BECNT 마태복음』, 483.
22)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72.
23) Lincoln, 『에베소서』, WBC 성경주석, 169.
24)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76.
25) Lincoln, 『에베소서』, WBC 성경주석, 169.
26)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78.
27)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80.
28)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81.
29)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83.
30)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85.
31) G. R.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36, 이덕신 역 (서울: 솔로몬, 2001), 193.
32)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88.
33)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93.
34)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97.
35)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100.
36)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