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음유고 발(梧陰遺稿跋)
선군자先君子께서는 육경六經을 배워 이를 경륜經綸과 사업事業에 펼치셨으니, 시문 같은 것은 다만 여사餘事였을 뿐이다. 우연히 마음에 감흥이 있으면 문득 붓 가는 대로 완성하였고, 수식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지 않으셨는데, 고색창연한 빛과 커다란 소리가 있어서 사람들의 이목에 엄습하는데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소자小子가 어떻게 그것을 충분히 알 수 있겠는가. 일찍이 기고봉奇高峯 (기대승奇大升 ),고태헌高苔軒(고경명高敬命) 제공諸公들에게 들으니, 모두 탄상歎賞하면서 미칠 수 없다고 하였다. 평소에 지으신 시와 문은 쌓여서 권질卷帙이 되었으나, 임진년의 병화를 거치면서 모두 소실되었고, 난리가 일어난 뒤로는 바쁜 와중에 대부분 전쟁터에 계시어 간간이 지은 것이 있어도 또한 많이 수습하지 못하였다. 모아서 얻은 것이라고는 ‘태산 중의 한 터럭’ 격이니, 실로 천고의 유한遺恨이며 모두 소자가 게을리 모은 죄이다. 선군자께서 하세(下世)하신 지 어언 30년이 되었는데도 후세에 전할 계획을 세우지 못한 것은, 대개 장차 나머지 것들도 수습하기를 기다리는 바가 있어서였다. 이제 소자도 늙어, 이 일이 문득 중단되어 한을 품은 채 땅에 묻힐까 염려되기에 우선 이미 얻은 것을 먼저 간인刊印하였다. 이어서 얻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덧붙여질 것이다.
오호라, 세월이 흘러갈수록 성용聲容이 점차 멀어지고 있다. 그나마 방불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은 기름, 남은 향기로도 충분히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다른 사람의 공경을 일으키는데 하물며 자손 된 자이겠는가. 삼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쓰다.
숭정崇禎 8년 을해(1635, 인조13) 맹춘孟春에 아들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영의정 겸 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 세자사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世子師 해창군海昌君 방昉은 삼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발문을 쓰다.
梧陰遺稿跋[尹昉]
先君子以六經之學。發而爲經綸事業。乃若詩文則特其餘事耳。遇有意會。輒信筆而成。專謝雕飾。而便有蒼然之色。訇然之音。襲人耳目。而人莫之覺也。雖然小子何足以知之。嘗聞奇高峯,高苔軒諸公。俱賞之。以爲不可及焉。平日所爲詩若文。積有卷帙。經壬辰兵火而盡失之。亂後倥傯。多在戎馬間。間有所著。亦多不收。摠之所得。太山毫芒。實爲千古遺恨。無非小子慢藏之罪也。先君子下世垂三紀于玆。而不克爲傳後計。蓋將有待於收拾餘燼也。今小子老矣。恐此事便已而抱恨泉壤。姑就其所已得而先印焉。續有得之者。其必有以繼之矣。嗚呼。歲月逾邁。聲容漸遠。所可髣髴者。獨賴是編之存。而殘膏餘馥。亦足以感人之心而起人之敬。況爲子孫者乎。謹泣血而書。崇禎八年乙亥孟春。男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春秋館,觀象監司。世子師。海昌君昉。謹拜手稽首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