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헌집 서(不憂軒集序)
황경원黃景源
맹자가 말하기를, “양묵楊墨(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물리칠 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성인의 무리이다.”라고 했는데, 주(周)나라 이래로 공자를 배우면서 이단을 물리친 사람이 또한 많았으나, 이 어찌 모두 성인의 무리이겠는가. 그러나 이른바 인의지사(仁義之士)가 만일 육예(六藝)를 넉넉히 익혀서 성인의 문에 의귀(依歸)하지 못한다면, 어찌 성인의 도를 배워서 그 무리가 될 수 있겠는가. 불씨(佛氏)는 춘추 시대의 양묵(楊墨)이고 양묵은 지금 시대의 불씨인즉, 정공(丁公)이 불씨를 배척한 사실을 두고 비록 ‘성인의 무리’라고 말하더라도 또한 가까울 것이다.
공은 장헌왕(莊憲王 세종(世宗))의 매우 성대한 시기에 태학에 유학하여 요(堯)ㆍ순(舜)ㆍ우(禹)ㆍ탕(湯)ㆍ문왕(文王)ㆍ무왕(武王)의 가르침을 들었으니, 그 도가 또한 이미 바르다고 하겠다. 어찌 맹자가 이른 바 ‘성인의 무리’가 아니겠는가. 《주역》 〈건괘(乾卦) 구이(九二)〉에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봄이 이롭다.[見龍在田 利見大人]” 하고, 또 〈구오(九五)〉에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봄이 이롭다.[飛龍在天 利見大人]”라고 했으니, 장헌은 위에 있는 대인이고 공은 아래에 있는 대인이다. 아래에 있는 대인은 반드시 바른 도리로 간쟁하여 위에 있는 대인에게 빛나게 위에서 임하게 하고 조금도 어둡게 가려짐이 없게 하며, 위에 있는 대인은 반드시 넉넉히 용납하고 보전하여 아래에 있는 대인에게 신령하게 아래에서 받들게 하고 물리침을 당할 우려가 없게 한다면, 이것이 상하가 서로 이루어 만대에 무궁한 광채를 끼치는 일인즉,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공은 벼슬을 그만두고 전리(田里)에 돌아가 노년을 보내는 즈음에도 오히려 글을 올려 시정(時政)의 폐단을 조목조목 나열하니, 이에 강정왕康靖王 (성종成宗)이 술을 하사하여 위로하고 특별히 3품(三品)의 산관(散官)을 더하여 중직대부(中直大夫)로부터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게 했다. 그런데 공이 만약 정사에 종사하여 시사를 말할 수 있었더라면 어찌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났겠는가. 옛날에 공자가 나이가 많아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 있을 때 일찍이 목욕하고 진항(陳恒)을 토벌할 것을 청한 일이 있었는데, 공도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 있던 때에 분연히 일어나 강개하게 시사(時事)를 말했으니, 또한 공자를 잘 배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의 사람됨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정신(精神)과 심술(心術)은 남긴 시문(詩文)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데, 시는 내용이 깊이가 있고 표현이 아름다우며 문은 구성이 여유 있고 뜻이 잘 전달되면서 이치에 합당하니, 후세에 전할 만함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공의 후손 생원 효목(孝穆)이 그 아들 익조(翼祚)를 시켜서 공의 유집(遺集)을 판각(板刻)할 것을 도모하여 나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나는 이미 공의 아름다운 덕을 사모해 온 터이고, 또 나의 선조 익성공(翼成公 황희(黃喜)의 시호)께서 조정에서 힘써 공을 구원했던 옛 정의(情誼)에 감격하여, 이에 서문을 짓는다.
숭정(崇禎) 기원 후 세 번째 병오년(1786, 정조10) 4월 일에 보국숭록대부 판중추부사 겸 판의금부사 이조판서 지경연사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지춘추관성균관사 규장각검교제학 오위도총부도총관 세자좌빈객 황경원(黃景源)은 서문을 짓다.
[주1] 육예(六藝) : 고대에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과목으로, 예(禮)ㆍ악(樂)ㆍ사(射)ㆍ어(御)ㆍ서(書)ㆍ수(數)의 여섯 가지를 말한다. 《周禮 地官 司徒》
[주2] 진항(陳恒) : 춘추 시대 제(齊)나라 대부로, 그 임금 간공(簡公)을 시해하였다. 《論語 憲問》《春秋左氏傳 哀公14年》
[주3] 황경원(黃景源) : 조선 영조, 정조 때 사람. 자는 대경(大卿), 호는 강한유로(江漢遺老), 본관은 장수이다. 1740년(영조16)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된 이래 대사성, 대제학,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예기》, 《주례》, 《의례》에 정통하고 고문(古文)에 밝았으며 문장과 글씨에 능하였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不憂軒集序[黃景源]
孟子曰。能言距楊墨者。聖人之徒也。自周以來。學孔子而闢異端者。蓋亦多矣。此豈皆聖人之徒哉。然所謂仁義之士。如不能優游六藝。依歸聖人之門。則何以學聖人之道而爲其徒哉。夫佛氏。春秋之楊墨也。楊墨。今之佛氏也。然則丁公所以斥佛氏者。雖謂之聖人之徒。亦庶幾矣。公當 莊憲極盛之時。游於太學。聞堯舜禹湯文武之敎。則其道亦已正矣。安知非孟子所謂聖人之徒耶。易曰。見龍在田。利見大人。又曰。飛龍在天。利見大人。莊憲。在上之大人也。公。在下之大人也。下之大人。必有以訏謨諫諍。使上之大人。光臨於上。無纖翳之蔽也。上之大人。必有以優容保全。使下之大人。靈承於下。無擯斥之憂也。是上下與之相成。錫萬世無窮之光也。豈不休哉。然公致仕。歸老田里。猶上書條列時弊。康靖王賜酒慰諭。特加三品散官。自中直大夫。陞通政。公如可從政言事。則何以致仕也。昔孔子致仕之時。嘗沐浴請討陳恒。公奮於致仕之年。慷慨言事。亦可謂善學孔子也。公爲人。莫得以知焉。然精神心術。有詩焉淵慤而鮮華。有文焉疏達而當理。其可傳於後世也無疑矣。公後孫生員孝穆。使胤子翼祚。謀所以刻公之集。屬余序之。余旣慕公之德美。又感先祖翼 成公力救之誼。是爲序。崇禎紀元後三丙午四月日。輔國崇祿大夫。判中樞府事兼判義禁府事,吏曹判書,知經筵事,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知春秋館,成均館事,奎章閣檢校提學,五衛都摠府都摠管,世子左賓客黃景源。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