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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문예-수필
국화 분재
김승년
2009년 9월 하순 임진각에서 펼쳐지는 장단콩 축제 한마당을 둘러보고 서리태 콩도 살 겸 아내와 같이 임진각 행사장으로 갔다. 임시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작은 언덕을 넘어 행사장으로 들어가니 사람이 많고 시끌벅적했다. 입구에서부터 차례로 구경을 하면서 안으로 들어가는데 몽골 텐트 부스에 ‘국화 분재’라는 작은 팻말이 보였다. 농림고등학교에 다닐 때 대국을 키우는 법을 익혀 둔 터라 혹시나 하고 기웃거려 보았다. 부스 안쪽에 고목과 돌에 붙어 작은 꽃을 피우고 있는 국화 분재 몇 작품이 보였다. 처음 접해보는 것이라 신기했다. 주최하는 사람에게 국화 분재 만드는 것을 배우려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어봤다.
“네, 지금 국화 분재 회원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내년 3월 첫째 주부터 교육과 실습이 시작됩니다. 연락처를 적어두고 가시면 2월 말에 문자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연락처를 적어두고 행사장을 두루 구경하고 돌아왔다. 해가 바뀌고 2월 말에 정말로 전화가 왔다.
“국화 분재를 배우시려면 2010년 3월 6일 오후 2시까지 인천시 계양구 박촌동 7번지 국화 분재 농장 ‘뜨락원’으로 오세요.”
뜨락원에 갔다. 3월 초인데 하우스 안에는 벌써 국화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 교육장에 45명쯤 모여 자리를 잡고 앉았다. 대다수는 초심자들인데 중년을 넘은 분들이었고 여자들도 많았다. 국화 분재 농장을 주관하는 윤흥식 선생님은 인천 시내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며, 오랫동안 국화 분재를 연구해 왔으며 부인 권갑선(일명 가을뜨락) 님과 함께 뜨락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파주에서 식용(차) 국화농장을 운영하는 김기중 씨가 동호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지도하는 선생 두 분이 인사를 하고 회장과 참여한 회원들이 자기소개를 했다. 인사가 끝나자 국화에 대한 이론 강의가 시작됐다. 국화의 역사와 품종, 기르는 법, 배양토 만드는 법 등을 간략하게 얘기한 다음 바로 국화 번식의 하나인 삽목에 대한 이론과 실습을 병행했다. 서너 명씩 조를 편성하여 실습했다. 각 개인이 일 년 동안 국화 분재 작품을 만드는데 초심자는 8개 작품을 의무적으로 만들어야 했다. 조별로 국화 묘를 품종별로 100개씩 잘라 발근 촉진제를 적셔 삽목 판에 심었다. 물을 주어 그늘에 옮겨 놓고 40여 일을 기다리면 국화 묘에 뿌리가 내린다고 했다. 그냥 국화의 줄기를 잘라 삽목판에 심었는데 뿌리가 내리고 새로운 생명체로 이어진다니 신기했다. 내가 삽목한 국화도 뿌리를 잘 내려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로 시작되는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가 생각났다.
국화는 신이 만들어 낸 꽃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만든 꽃이라고 한다. 동양에서 재배하는 관상식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꽃으로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건너왔는데 2,000여 종이 넘는다. 국화를 비유적으로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고도 하는데 매화, 난초, 대나무와 함께 조선 영조 때 사군자의 하나로 지정되었다. 이른 봄부터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자라 선선한 가을바람에 꽃망울을 맺고 꽃이 활짝 필 때까지 너무 당당하고 흔들림이 없다.
나는 국화 분재 작품 만들기를 배우기 위해 한 달에 두 번씩 국화농장 뜨락원에 갔다. 달마다 국화를 손질하는 형태가 다르므로 잠시라도 시간을 놓치면 국화가 웃자라거나 다른 방향으로 성장하여 자주 손질해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4월에는 삽목한 국화가 뿌리를 잘 내려 작은 포트 화분에 옮겨심기를 했다. 5월에 접어들면서 국화 순 자르기, 비료 주기, 물 주기 등 배울 게 너무 많았다. 6월부터는 국화 분재의 모양을 만드는 수형 잡기의 기초로 분재용 철사를 사용하여 조금씩 수형을 잡는 실습을 했다. 처음 시도해보는 것이라 연약한 국화 줄기에 철사를 감아 구부리고 모양을 잡아 나가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철사를 구부리는 작업을 하다 보면 국화 가지가 통째로 부러져 못 쓰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조심스럽게 국화 가지를 철사로 유인하여 구부리고 다듬어 만들고자 하는 모양을 잡아 놓았다. 얼마를 지나면 모양이 잡혀 다시 감았던 철사를 풀어주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장마가 지나고 점차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땡볕 속에서 국화가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신기했다. 7월 말에는 일반 화분에 심은 국화를 본분(화장분)에 옮겨 심었다. 기이한 나무나 돌을 세우고 그 위에 국화 뿌리를 얻어 붙이는 작업을 했다. 사람이 만드는 한 폭의 산수화 같기도 했다.
모양이 잡힌 국화는 꽃을 아름답게 많이 피우라고 순 자르기를 자주 해 주어야 했다. 그런데 9월에 접어들자 7호 태풍 곤파스가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그동안 공을 들인 국화 분재 작품이 있는 하우스가 날아가고 잘 가꾸던 국화 분재가 넘어지고 뿌리가 뽑히고…… 오래된 국화들이 버티지 못하고 죽어갔다.
추석을 앞두고 국화농장 주변에 집중호우가 쏟아져 국화를 심은 화분들이 물에 잠기고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악조건 속에서도 살아있는 국화를 끝까지 살려 꽃을 피워보려고 동분서주하며 보살피는 회원들의 모습이 애처롭고 안쓰러웠다. 그래도 국화는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기뻤다. 국화의 생명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둘씩 꽃망울이 피어나기 시작하면서 전시회에 출품할 작품 손질에 바쁜 날들을 보냈다.
2010년 10월 23일부터 10월 31일까지 9일간 인천대공원 꽃 전시관에서 국화 분재 전시회가 열렸다. 이른 봄부터 교육받고 작품 만들기에 열심히 참여한 나도 잘 만들어진 작품 10여 점을 처음으로 출품했다.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전시장을 개방하니 공원에 나온 많은 사람이 관람했다. 모두가 처음 보는 신기한 국화라고 했다. 구경꾼들이 장차 국화 분재 작품 만들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회원 신청도 받았다. 주말이 되니 사람들이 전시장을 가득 메워 그야말로 발 들여놓을 틈이 없을 정도였다. 9일간의 전시를 마치고 회원 모두가 자기 작품을 집으로 가져가기도 하고 선물을 주기도 했다. 숙근초인 국화지만 오래 묵은 고목과도 같은 작품은 겨울 관리를 잘하여야 다음 해에도 또 아름다운 작품을 볼 수 있어 국화농장 뜨락원으로 옮겨 겨울 관리에 들어갔다. 엄동설한에도 국화는 하우스 안에서 보온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른 봄 새싹을 틔우기 위해 파릇파릇 숨을 쉬고 있었다. 지고한 생명력의 연속이다.
해가 바뀌어 정월이 지나고 3월 첫째 주 토요일이 되었다. 지난해와 같이 국화 분재 작품을 만들려는 회원들이 국화농장 뜨락원에 다시 모였다. 똑같은 교육과정과 실습을 거쳐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도 좀 특별한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마음먹은 대로 잘되지 않았다. 선배들이 만들어 가는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따라 해 보기도 했지만, 나만의 창작품을 만들기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한여름 뙤약볕 아래 땀을 흘리며 손질했다.
서늘한 바람이 불고 햇살이 짧아지는 가을날이면 어김없이 인천대공원 꽃 전시관에서 근사하게 다듬은 작품으로 국화 분재 전시회를 열었다. 나도 꽤 많은 작품을 출품했다. 지난해보다 작품 수준이 향상된 것 같았다. 잘 만들어진 작품을 보면서 내 손끝도 제법이라고 생각했다.
2012년 3월 국화 분재를 입문하여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지가 벌써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여 삽목을 하고 정성을 다해 손질하며 작품을 만들어나갔다. 윤흥식 선생님이 경진대회에 출품해보라며 작품에 대한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주셨다. 10월에 수도권 매립지 관리공사에서 개최하는 ‘드림파크 국화 축제 전국 국화경진대회’에 출품했다. 처음 출품한 작품이 우수했던지 2012년 10월 11일 ‘은상’을 받았다. 전국에서 솜씨 좋은 장인들이 만들어 출품한 많은 작품 중에 내가 상위권에 입상했다니 가슴이 뿌듯했다.
동호인들의 축하를 받았다. 작품 전시장을 찾은 우리 가족은 물론 주위 지인들로부터 축화와 격려를 받았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우리 회원전도 열었다. 인천대공원 전시관에서 많은 사람의 관심과 호응 속에 전시회를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다음 해 더 좋은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준비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 년 내내 국화를 만지작거리며 몰두하자 아내가 잔소리했다. 아내에겐 미안했지만, 나의 국화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항상 새봄이 오면 또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준비를 단단히 하여 좋은 결과를 얻도록 스스로를 재촉했다.
2013년에도 서늘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정성스럽게 가꾼 국화 분재를 드림파크 국화축제 전국 국화경진대회에 출품했다. 곱게 가꾼 내 작품이 전시대에 진열되어 있는 자체만으로도 기뻤다. 감흥을 만끽했다. 전시 작품의 심사가 끝나고 얼마쯤 기다리니 또 시상식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2013년 9월 26일 수도권매립지공사에서 국화경진대회 시상식이 열렸다. 뜻밖에도 내가 대상인 ‘환경부장관상’을 받았다. 행사장에는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관상을 수상하는 그 순간 너무 감격스러워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상장과 상금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환호했다.
드림파크 전시가 끝나고 바로 인천대공원 전시관에서 회원전을 개최했다. 대상 작품을 전시하고 장관상 리본도 달아 전시장을 더욱 빛나게 했다. 관람하는 사람들의 눈을 한 곳으로 모으는 계기가 되었다. 행복한 날이었다.
이듬해 늦추위가 남아있는 3월이 되자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고 국화 분재 동호인들이 다시 뜨락원 농장으로 모여들었다. 3월 첫 번째 토요일 오후에 시작하는 국화 분재 교육에 신입회원도 많이 참여하였다. 그런데 교육을 시작하기 전에 참석한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회장을 다시 선출하자고 했다. 얼떨결에 내가 2대 회장을 맡게 되었다. 50여 명의 회원을 이끌고 두 분 지도교수를 모시고 동호회의 살림을 맡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회원들이 보다 더 아름다운 국화 분재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야 하나 걱정이 앞섰다. 해마다 반복되는 전시회와 전국 국화 분재 경진대회 출품작을 만들기 위해 지도교수님의 이론 강의를 잘 듣고 실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 생각했다. 2014년에도 어김없이 인천대공원 꽃 전시관에서 국화 분재 작품 전시회를 개최하여 많은 사람이 관람하는 성황을 이루었다.
전시회를 마치고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되는 일본 국화 전국대회를 관람하기로 했다. 내가 주관하여 관람 일정과 비용 등을 뜨락원 카페에 공지하고 참가자를 모집했다. 뜻밖에도 영주 국화 분재 동호회 심국회에서 4명이 참가한다고 했다. 화성 농업기술센터에서도 2명이 신청을 했다. 뜨락원에서도 6명이 신청하니 모두 12명이 되어 일정을 잡아 비행기 편과 호텔 및 교통편을 예약했다. 우리는 11월 6일부터 11월 8일까지 2박 3일간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되는 제31회 일본 국화 전국대회에 참관했다. 나는 일본의 국화 분재를 우리 국화 분재 작품과 비교해 보았다. 한층 돋보이는 작품을 감상하고 독특한 기법 등을 눈여겨보자 분재 작품을 향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6년에 접어들면서 우리도 사단법인으로 등록된 비영리 단체임을 앞세워 동호회 이름으로 전국 국화 분재 경진대회를 개최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지도교수와 동분서주하면서 대회 추진 계획서를 만들었다. 유관단체의 협조를 받아 대상 수상자에게 농림축산부장관상을 유치하고 차상 및 특별상으로 인천광역시장상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전국 국화 분재 동호회에 안내장과 초청장도 보냈다.
2016년 10월 22일부터 30일까지 9일간 인천대공원 꽃 전시관에서 제1회 전국 국화 분재 경진대회 및 회원전도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많은 작품이 출품되었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을 선정하여 전시를 하고 국화 분재 분야의 원로 다섯 분을 초빙하여 출품작에 대한 심사를 했다. 우수한 작품을 골라 대상, 금상, 동상 등의 수상자를 발표했다. 나는 특별상으로 인천광역시장상을 받게 되었다. 처음 치르는 전국대회였지만 대회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과정을 철저히 하여 좋은 성과를 얻었다. 전시를 마치고 11월 5일부터 11월 6일까지 1박 2일이라는 짧은 일정으로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하는 제33회 일본 국화 전국대회를 관람하기 위해 뜨락원 회원 9명이 함께 출국했다. 하루 일정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일본 국화 분재 명인인 니시오까 겐이치西岡憲一 선생을 만났다. 선생은 대회에서 총리대신상을 수상하셨다. 전시 현장에서 우리에게 국화 분재에 대한 여러 가지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관람이 끝나자 당신 집으로 우리를 초청하여 국화 분재 작업 과정을 잘 설명해 주셨다. 무척 영광스러웠다.
우리는 해를 거듭할수록 좋은 작품들을 만들어 전시장을 빛냈다.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다가 2018년 8월 28일부터 9월 15일까지 19일간 아프리카 6개국으로 사진 촬영 여행을 떠났다. 모든 여행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호텔에서 공항으로 출발하려는데 카톡 문자가 날아왔다. 국화 분재를 지도하고 계시던 윤흥식 교수가 화성농업기술센터에서 강의를 하는 도중 심장마비로 별세하셨다고 했다. 순간적으로 앞이 캄캄했다. 다행히 귀국하는 날이라 빈소에 문상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비행기는 홍콩을 경유하여 17시간을 비행하여 9월 15일 오후에 인천에 도착했다. 급히 집에 들러 여행 짐을 내려놓고 윤흥식 교수의 빈소로 갔다. 국화 분재 동호회 회원으로, 회장으로 함께한 시간이 무려 9년이다. 나는 그저 고인의 영정 앞에 엎드려 눈물만 흘렸다. 순간이 너무 길었다. 그러나 고인은 말이 없었다. 발인 날 장지로 떠나면서 오랫동안 정들었던 뜨락원에서 고인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노제路祭를 지냈다.
윤흥식 교수님을 떠나보내고 남은 사람들이 모였다. 합심하여 2018년 10월 20일부터 10월 28일까지 9일간 국화 분재 전국대회 및 회원전을 무사히 치렀다. 나는 2019년도 전시회를 마지막으로 6년간 맡아왔던 국화 분재 동호회 회장직을 사임했다. 보다 더 젊고 패기 있는 신임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일반 회원으로서 분재 국화의 신품종 개발에 정성을 들여 해마다 몇 가지의 새로운 품종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2020년 10월 마지막 주 국화 분재 전시회를 마치고 이듬해부터 코로나 팬데믹으로 2023년까지 전시회를 개최하지 못했다. 하지만 회원 모두가 국화 분재 취미 활동엘 열성을 다하여 마침내 2025년 10월에 인천대공원 꽃 전시장에서 제17회 국화분재 회원전을 열었다. 시민들에게 다시 아름다운 작품을 선보여서 기뻤다.
지금은 계양구 동양동으로 국화 분재 작품 활동 장소를 옮겼다. 나는 여전히 국화꽃의 매력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른다. 무더운 여름날 뙤약볕 아래서도 땀을 줄줄 흘리며 행복해한다.
국화를 매만지다 보면 젊음을 되찾은 느낌이다. 한여름 무더위가 지나고 가을바람이 불면 국화가 잎 속에 감추었던 꽃망울을 내밀며 나를 만나러 오는 소리가 들린다.
김승년 1944년 경북 안동 출생. 영남대학교 공과대학 전기공학과 졸업. 대한주택공사, 현대건설(주), 제일설계(주) 등 근무. 아마추어 사진작가, (사)한국국화분재협회 경인지부 회원. 인천시 계양구 작전동 거주. snkim49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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