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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앵무봉 사패산 칠봉이야기(4.19 수)
※장흥: 일영 삼상 교현 부곡 울대리
계명산 사패산 오봉산 칠봉 한강봉
송추초교
※파주: 광탄 마장 박달산 기산리
※고양: 덕양구 선유동 내유동 명봉산
※양주: 백석 복지리(흥복)
송추 교현리 노인정, 윤기서(85)할아버지
1.4후퇴시는 수원 밑 장안까지 피난갔다
50.6.25때는 피난도 못가고 있었다
인민군이 집에서 함께 살았다
집이 그러다보니 인민군 중공군의 야전병원, 식당으로 쓰였다
1.4후퇴시는 영국군 대대가 들어왔다가 중공군에 포위되어 피해가 컸다
많은 차량을 놓고 북한산 우이령골로 들어갔는데 미군공군이 와서 폭격했다
장비 물자들을 쓰지못하게 파괴했다
씨레이션 비스켓등 엄청 주어왔는데 중공군이 뺏어가 먹더라
친형이 50.6.1일 육사생도 1기로 들어감
포천 내촌으로 출동해서 전사했다
인민군이 와 있던 동안에 지역 푸락치들이 날뛰어 양민들을 잡아다 사기막골짜기에서 죽였다
패잔병이 오봉산에 숨어들어 밤이면 내려와 다 빼앗아간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밤을 보냈다
인민군이 서대문구치소에 있던 유력인사나 군경포로들을 북으로 압송하면서 비행기 폭격을 피해 산길을 이용한다
여기서도 기산 고비골~소사고개, 흥복 산속길 이용 동두천방향으로 끌고가면서
한명 한명 죽이거나 죽는다
그런데 금니도 있고 돈도 있고해서 이걸 동네사람들이 전후에 사제탐지기 이용 수거했다
돈이되거나 먹을것이라면 무슨짓도 한다
중공군은 어쩌다 총 한자루 있고 나머지
군인은 방망이 수류탄이다
콩비지와 콩기름을 휴대하여 먹더라
그러다 보니 동네에 있는 집을 뒤져서
다 빼앗아 갔다
"무슨 소리냐, 그놈들 못된짓 다했다~!"
국군이 들어왔을 때는 자칭 치안대들이 나서서 인민군 도와준 사람 또 죽였다
같은 날 재사도 많다
송추경로당, 유남히(85)할머니외 1명
※ 동산동에 위치
유할머니, 안산(공릉천 사이에 두고 장포동 앞산 송추초교 뒤산)에 1.4후퇴시 전투했다, 삼상리에도 큰 전투했다
군인들이 소개시켜 마차에 짐실고 안성 밑에까지 갔다왔다
경찰가족이라 사전에 먼저 피난했다
갔다오니 동네가 피해가 컸다
하루에 7명이 죽어서 같은날 제사다
주변에 중공군 방공호는 많이 있었다
산 위에는 군인들이 판 호 구덩이도 많다
주로 영국군이 피해를 크게 보았다
하지만 죽어 있는 시체는 못보았다
중공군이 주로 보였고 총도 없더라
얼마나 교육을 잘받았는지 같이 옆에 자도 안 만진다
오히려 피하고 쭈그리고 앉아서 있더라
동네 빨갱이들이 날 뛰었다
그리고 자체 치안대도 멋대로 놀았다
주변 땅이 모두 집안것이고 경찰이라 큰 피해는 없었다
교현리에 가면 더 잘아는 사람 있을 것이다
00할머니(82),전남장성 갈재에서 왔다
이름도 묻지말고 사진찍지 말라!
장성에서 순창재을 넘는 곳에 공비 촌 있다
내장산등 일대가 공비소굴로 엄청 많았다
밤에만 주로 내려와 다 훔쳐갔다
젊은 사람들도 잡아가기에 숨어 살았다
지역빨갱이들이 더 날뛰었다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었고 수복되어 있어도 또 경찰이나 토벌군에 죽는다
말도 마라, 장독대고 부엌이고 다 쑤신다
다 가져가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래서 죽고 저래서 죽고~~
불쌍한 것은 힘없는 사람이더라
그곳 산속에 정말 많은 공비들이 있었다!
부곡리 마을회관
김홍윤(82)할아버지, 중공군이 죽었다
영국군이 1.4후퇴시 중공군에 포위됨
장흥면일대가 불바다로 전쟁 구경도 했다
1.4후퇴 이후 일영역 부근에 포격으로 적군이 많이 죽었다
부곡리로는 51년도에는 미군•영국군과 중공군이 전투했는데 마을 좌우 산이다
의정부 성모병원 뒤 천보산에도 중공군이 엄청 죽었다 한다
~~~~~지역전사개관~~~~
※ 초기 전투시 국7사가 축차철수하면서 방어작전했음
※1.4후퇴시에는 50.12월말에 중공군과전투
미1군단이 임진강선에서 좌로부터 터어키-미25사-국1(적성• 법원리•
가납리•고양•서울축선)로 방어하다 51.1.4일 일명 D방어선인 평택 안성 장호원 원주 원포리 선으로 철수
미9군단은 3번 국도변 전곡일원에 국6사(전곡-동두천-의정부에서 서울 동측방으로 철수)그 우측에 미24사단이 영27여단 엄호하에 D선으로 철수
※특히 영국군 29여단이 한강교두보 확보위해 지연작전을 하다 중공군이 꼬리를 물면서 포위되어 장흥일대에서 전차 10여대 이상 손실등 대량피해 발생
※선유동 쟁고개에 영군 화장터및 추모비 있다가 차후 51년 4월전투후 대량피해 발생한 파주 적성 설마리로 추모비이전
영국엘리자베스 한국 방문시 여왕 직접 헌화
※51년 3월15일 재 서울 수복후 임진강선 진출간 3월22일부터 공격을 개시(용진작전)
•1단계:중부전선의 카이로선을 행주~의정부까지 연결, 미1군단이 공격
187공수연대가 문산일대 투하, 1번도로 봉쇄, 연결작전으로 임진강하구~문산북쪽~ 의정부북쪽 연결하는 아스펜선 점령
•2단계: 임진강연해 설정된 벤톤선 점령
☞이를 위해 문산 동두천 포천 진출전
•국1이 1번도로따라 공격, 17:00에 문산 법원리 진출 187공수단과 연결
•중앙 미3사 호킨스 특수임무부대로 의정부진출간 487고지와 천보산에서 격전
>덕정 위 228고지 차단위해 187공수단이 공격하여 3.27일 점령
미1군단은 국1사가 1번국도(구파발~문산), 미3사가 3번국도(의정부~포천도로, 천보산 468고지 격전) 그 우측방에 미25사(터키배속)가 소리봉~해룡산 죽엽산~왕방산 터어키군이 주금산~국사봉 목표로 경춘국도에서 공격
미9군단은 서울탈환간 리퍼작전(전선절단과 분리)간 4개사단병진으로 춘천진출공격
알바니선: 양수리 양덕원리 노천리 태기산
버팔로선: 미금리 진벌리 홍천북쪽 한계리
카이로선: 가평 춘천남쪽 한계북쪽
그리고 덕소~일동~가평북방~춘천을 연하는 아이다호선 진출위해서
좌에서 미24(국6-19연대배속)용문산으로
미1기병(영27여단배속)과 국6사가 홍천강 남쪽 산악지대로 우전방 미1해병이 홍천 목표로 공격
51.3.19일에 홍천 돌입
3.21에 미1기병이 춘천탈환
이때 국군해병1연대가 미1해병에 3.18배속
홍천북방 가리산 탈환
※38도선 확보작전을 위해 공세적 벙어작전을 위해 임진강 남쪽제방을 연해 동쪽으로 화천저수지 동해안 양양으로 이어지는 캔사스선 명명
서부전선에서 절단작전으로 38도선 진출부대가 이 선으로 진격하는 작전을 러기드작전이라함
그후 다음단계로 우타선과 와이오밍선 설정(평강 김화 철원:철의3각지대), 공격간 적이 공격하면 캔사스선으로 철수하는 작전을 불굴작전(돈트라스)이라 명명
중서부전선 진출전
미1군단:캔사스선으로 진출한 국1, 중앙미3은 임진강따라 방어전념
우전방 미25사는 영평천과 한탄강사이로
미24는 도로동쪽애서 관음산 국망봉으로
미9군단: 좌전방에 영27여단 중앙에 국6
우전방에 미1기병(캔사스선 남쪽 화천 저수지 부근)으로 공격
51.4.8에 중공군이 화천저수지 방류
화천댐확보 실패, 국1해병이 인수
※중공군이 강력히 재공격시 우발계획
델타선: 춘천을 중심으로 동서해안 이르는 선
(B선)
네바다선: 서울남쪽 한강변 ~북동쪽으로 양양에 이르는 선(C선)
골든선: 서울 서북쪽 10km의 행주에서 네바다 선상의 양평을 반원형으로 연결한 선
(서울교두보선)
51.4.11일 일제히 공격개시
(이날 맥아더 해임, 리지웨이와 교체됨, 밴플리트가 8군사령관으로 보직)
4.20일 미3사가 연천, 미25사(터키여단 배속)가 금학산, 미24사가 문혜리, 영27이 사창리 진출
51,4.21 2단계로 와이오밍선 목표로 공격
미1군단 미25,24사가 철원~김화
미9군단 국6과 미1해병이 김화~화천
※여기서 중공군 춘계1차공세, 4월공세
이때 부대배치는 미1군단이 좌에서 우로
문산에 국1,적성에 영29여단, 전곡위 서쪽에 미3사(필리핀대대배속 연천 북방 율동), 대광리에 터어키여단(장승천) 철원에 미25사, 문혜리에 미24사
미9군단은 사창리에 국6(방화동 백적산), 화천에 미1해병(재안산 일대는 국1해병연)
영27이 가평
미10군단은 화천저수지 남쪽에 미2사, 양구밑에 미7사, 인제에 국5사
국3군단은 국3사가 현리전방 한석산일대
국1군단이 내설악에 수도사, 양양에 9사
•서울북방 결전(미1군단)
좌전방에 김포반도에 해병 제5독립 대대 (국1배속운용)
임진강 남쪽 오금리~마지리에 국1사
마지리~도감포에 영29(미3사배속)
※금굴산에 벨기에 부대
도감포~군자산에 미3사 배치, 3번도로 우측에 터키여단(미25사배속):대광리 미25사:철원 금학산, 미24사: 문혜리 신술리
미25사 미24사는 와이오밍선 공격중 돈좌
51.4.22일
중공군 19병단이 국1과 영29
중공군 3병단이 연천 전곡 동두천축선 미3사와 터어키
중공군 9병단이 김화 포천 의정부축선의 미25와 미24
☞해당지역(서울북방)은 축차적으로 델타 골든선으로 후퇴하면서 국1사와 미3사단이 전투
•서울고수방어작전(골든선 점령)
51.4.25에 델타선
51.4.28에 골든선 점령
국1사: 한강하구~ 구파발
'※11연대가 인민군 8사단과 화전리 전투
☞4.28새벽 1개연대규모를 앵주나루터로 은밀기동, 김포비행장 방면 도하기도를 사단 수색대가 발견하여 인천외항 대기중인 순양함 톨레도호의 8인치 함포사격으로 다수시체 유기한체 철수
정오에 다시 전초기지 공격, 전초철수로 유인하여 자정무렵 화전역 부근으로 4시간동안 10여차례 무모한 공격, 900여구 시체 남기고 철수
우전방 15연대는 중공군이 공격, 앵봉피탈
포병오폭등 문제 발생, 미 전차도움으로 12연대 역습성공
중앙미1기병: 구파발~쌍문동
북한산 도봉산등 39회 침투공격 격퇴
우전방 미25사: 쌍문동~ 덕소간(필리핀)
터어키부대는 광진교일원
퇴계원 부근에서 중공군 격퇴
미3사는 예비로 각 연대를 전방에 배속
※결과적으로 서울북방 골든선~마석우리~ 대포리를 연하는 노네임선에서 중공군 4월공세 일단락
정찰기지확보작전(미1군단)
※한강하구에서 횡계에 이르는 주저항선 북쪽 10km 지점에 연대규모 정찰기지확보
국1사지역을 미3사에 인계후 인민군 8사와
51.5.7부터 5.9까지
15연대는 능곡 국사봉 원당리 대자동 비호봉
박달산과 그 밑163고지
11연대는 고봉산 138고지 명봉산 봉일천 내화산으로 공격
주보급로확보작전(중동부전선)
노네임선으로 내려가 적의 수중에 들어간 홍천 안제 간성도로 탈환작전, 미조리선
※홍천 인제 간성 도로 북쪽 10~25km북쪽
가리산 신월리 915고지 1037고지 대진리선
•매봉~한석산전투:4월공세시 국3-22연대가 피탈당함
☞국9사가 3군단 좌측연대로 5월2일 7사8연대로부터 지역인수, 30연대가 인민군 6사로부터 5.10에 탈환
•설악산 전투:51.4.15에 국1군단이 한계령 오색리 관모봉 선 진출, 좌에 수도사 우전방에 11사 배치
인민군6사가 가리봉 대승령 노동선에 거점방어
☞51.5.7~13까지
11사: 설악동에서 마등령 저항령선으로
수도사: 기갑연대가 972고지 노동 882고지
1연대가 가리봉 대승령공격
※중공군 역습정보로 미조리선 공격중지
인제~가리봉~설악산~대포리선(노네임선)에서 유지
※51년5월공세
서울외곽방어를 위해
•미1군단은 문산축선에 국1사, 의정부 축선에 미1기병과 미25사 (터키배속) 영 29여단을 예비
•미9군단은 덕소 예봉산 용문산 금학산 연하는 선에 좌로부터 영28-미24-국2-국6-미7, 그리고 제187공수연대를 남한강변 옥천
•미10군단은 미1해병과 미2사로 춘천-홍천축선, 국5•7사는 소양강 남쪽방어
•국3군단은 9사, 3사로 인제 남쪽 한석산/가리봉선
•국1군단은 수도사와 11사로 설악산~ 대포리 연하는 노네임선에서 진지보강
※중공군은 4월공세의 참패에대한 책임수습과 미군을 고립하여 작전주도권을 장악하려함
☞따라서 현리지역 중심으로 배치된 국군 4개사단(3,5,7,9)을 양익포위개념
•중공9명단이 주공으로 좌익(양구~인제)에서 상남리-속사리, 한계~풍암리로 기동
•인민군 2,5군단이 우익으로 (인제~한계령)
현리동쪽과 속사리 방향으로 기동, 양익포위
이때 중공군19병단과 인민군 1군단은 자신들이 주공인양 기만작전하고
인민군 3군단은 동해안에서 국1군단이 현리지역 증원하지 못하도록 하고
춘천동쪽의 중공군 3병단이 미 10군단을 고착견제
작전경과는
•현리지역돌파(어론리전투, 음량리전투, 한석산전투, 가리봉전투, 오마치돌파실패)
•홍천북방 공방전(벙커고지전투, 자은리전투)
☞국3군단의 철수로 중동부전선은 벙커고지-풍암리-속사리-철갑령선에 돌파구
※미3사단의 운두령 돌파구차단작전 성공
•국1군단이 전선조정으로 설악-속초선에서 오대산-두노봉-남애리연하는 와코선으로 철수방어
중공군 2개연대규모가 을수재에서 월정사로 우회하여 11사 20연대가 방어중인 유천리 장군암 백일평 황병산 대관령 능경봉선에서 저지, 공세이전
•미9군단 국6사가 용문산전투 승리
51. 5.20에 적전투력 저하, 21일 공격중지
화천저수지 북쪽의 북한강을 전투 지경선, 중공군이 서쪽 인민군이 그 동쪽으로 철수
유엔군의 반격작전
미8군은 1단계로 문산-가평-춘천을 연하는 토페카선 진출, 2단계로 철원방향 전환
•캔사스선 진출
임진강~영평진격전(미1군단)
51.5.20부로 국1사가 문산축선, 미1기병이 동두천 축선, 미25사(터키배속)가 포천 축선으로 3개사단 병진공격
☞국1사는 도로를 중앙기선으로 좌에 11연대 우측에 12연대로 공격, 11연은 고봉산경유 금촌진출, 12연운 고전하여 예비인 15연대를 중앙에 투입, 곡릉천 도하 북동쪽으로 공격했으나 삼송리 동쪽 248고지에서 돈좌
☞우인접 미1기병 5연대도 지축리일대돈좌
51.5.21일 인민군 1개대대가 11연대 외화산 선제기습공격후 신속히 임진강변으로 철수
재진격간 국1사단이 문산 임진강변 진출
미1기병이 지축~앵무봉 ~가납리~감악산 적성 백학 전곡진출
미25사는 캐나다25여단 배속받아 마석 신촌 칠봉산 해룡산 관모봉에 이르는 영평천선 진출
임진강선으로 5월27까지 캔사스선 진격
~~~★여기까지 전사개관~~~~
※부곡리 마을회관 중언계속
중공군을 여기저기 묻어놓았는데 미군이 전쟁 종료 후 와서 파갔다
미군을 찾는다는데 중공군은 그냥 버려짐
누가 거들떠 보지도 않았고 다 썪었다
수해등으로 훼손도 많이 되었다
사병이 죽으니 대충 묻고 높은 사람 죽으면 묘를 잘하고 가더라
지준만(79)할아버지
일영역부근에 많이 죽었다한다
영국군 탱크도 있었다
피난갔다와서 잘은 모른다
송추초등학교부근 야산에 전투많았다
※복지리 00할아버지(82)
이곳은 인민군이 대량 죽어있다더라
여기저기 죽어있는 것을 거둬 묻었다
지금은 밭이지만 그때는 밭이 아니다
이동네는 서울에서도 오고 피난골이다
지금은 포장된 단차로 길이지만 그당시는 겨우 걸어다녔다
4방이 산으로 은폐된 곳으로 이동로였다
지금도 이 밭을 갚게 파면 나올지 모른다
서울에서 동두천에 이르는 접근로였다
※마장4리
김종태(82)할아버지
일영역부근에 많이 죽었다
미군이 계속 비행기 폭격했다
할아버지 집이 식당이고 옆집이 야전병원
중공군도 함께 있었고 인민군도 있었다
아침에 보면 시체가 산더미처럼 있다
바로 지금 물탱크부근에 묻어버렸다
언제인가 비 내리면 시신이 보였다
그리고 군인들이 와서 발굴해 갔다
밥을 먹는데 인민군은 밥을 해서 먹고
중공군은 미숫가루등을 먹더라
중공군이 처다보고 있다가 싸움도 한다
인민군이 독해서 절대로 밥을 안주고 심지어 때리기도 한다
중공군은 어린사람이 많고 총도 없더라
박달봉으로 국군이 와서 아버지가 밥도해서 지고 진지로 갔다주었다
※장곡1리 000아저씨(76), 8살에 전쟁
명봉산과 돌봉산에서 국군과 인민군전투
동네 뒤 겨자씨 교회 계곡에 인민군 많이 묻는 것 목격
비오면 떠내려 가기도 함
공릉에서는 별로 전투안함
봉일천 뚝방에서 국군이 많이 죽었는데 수습
※분수리 권용문할아버지(82), 고향이다
한민고 자리가 1사11연대 야전병원자리다
전쟁때 많이 죽어서 들어오더라
163고지는 큰 전투는 없었다
전쟁후 군인이 들어와 많이 수습해 갔다
중공군이 와서는 크게 나쁜짓 안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