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각시
김정련
어머니가 다녀가셨다.
비릿한 냄새가 풍기는 풋콩과 아직 채 자라지 못한 고구마가 한 솥이다. 외가에 갔던 아이들이 풋콩과 삶은 고구마를 김칫국에 맛있게 말아먹는 모습을 보고 웃으시더니 해마다 콩과 고구마를 텃밭 귀퉁이에 심으신다. 고구마에 말아먹으라고 열무김치도 맛깔나게 담아 한 사발 넣으셨다. 잘 다듬어진 부추, 막물이 되어가는 고춧잎, 손질된 애기배추,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참기름 한 병과 깨소금도 보자기에 들어있다. 바라만 봐도 밥상이 꽉 찬 느낌이다.
아이들이 좋아할 모습을 상상하며 들어선 딸네 집. 들어선 순간 어지러운 모습이 눈에 넣기 거북했던 모양이다. 빨래를 차곡차곡 개켜놓으셨고, 출근한다며 부산한 티를 내놓은 집안이 말쑥하게 바뀌어 있다. 멸치로 국물을 내어 싱싱한 배추를 넣은 된장국도 불만 켜면 먹을 수 있게 한 냄비 끓여 놓았다. 설거지통속도 물기가 바짝 마르게 윤을 내놓았고, 국물 흐른 자국이 눌러 붙어 잘 지워지지 않던 냄비들도 새 것이 되어있다.
어머니는 하루에 몇 번 다니지 않는 버스를 이용하여 움직이셨다. 현관번호를 알려달라고 전화를 한다거나 퇴근시간에 맞춰 오면 자신을 태워다주느라 아이들이 번잡하게 굴 것을 염려하셨나보다. 막내가 초등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다녀가신 걸 보니.
물건들을 정리하다보니 마음이 울컥하다. 수화기를 든다.
“엄마, 다녀가셨네.”
“응, 풋콩이 알차게 여물어서”
한마디만 들었는데도 가슴이 시큰거린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어머니는 세 살 때 부모님을 여의고 무남독녀로 증조모 손에 자랐다. 외로움이 컸을 것이다. 그 외로움이 결혼해서도 마음에 사무쳤는지 슬하에 구남매를 두었다. 그 시절 농사꾼은 누구나 그러했겠지만 살기가 각박해 아이들 밥을 굶기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셨다. 증조모 손에 자라며 천덕꾸러기였을 어머니는 눈치도 빠르고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려는 생활이 몸에 배셨다. 누구에게 부탁하느니 좀 더디더라도 단신이 직접 일을 하신다. 내가 보기엔 억척스럽다.
주말에 전화주시면 가져다 먹을 껄 일부러 버스타고 다녀가셨냐고 말을 하는데 목이 메어온다. 노인이 젊은 댁처럼 돌아다니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아이들 부리며 사시라고 마음과 달리 퉁명한 억양이 새어나온다.
밭에서 수확한 싱싱한 걸 그대로 가져다주려고 애쓰신 마음, 하나라도 더 챙기려고 부산하셨을 몸짓을 모르지 않는다. 아니 어머니의 손맛이 그립고 그 음식들이 맛있다. 더 가져다주었으면 싶은 맘이 없지도 않다. 아이들 어릴 적엔 같이 살며 도움을 받고픈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머니 연세가 칠순을 넘기셨다. 밭에 쪼그리고 앉아 그 작업들을 하셨을 생각을 하니 맘이 아리다.
어머니는 직장 다니며 아이들 건수하랴 볼일 보랴 어디 주말이 주말이겠냐며 시내 볼 일 있어 나간 김에 다녀갔노라 하신다. 더구나 콩 한줌인 걸˙˙˙˙˙˙ 하며 수화기너머 너무 적어서 미안하다는 감정이 실려 온다. 급하게 가느라 옷이 후줄근해서 친구들과 같이 놀던 손자가 마음이 상하지 않았는지 염려하신다.
어머니는 항상 자식을 위해 자신을 낮추셨다. 밭일을 도와드리면 내 딸이 손이 야물어서 일이 수월하게 끝났다고 말씀하셨다. 상장을 받아오면 바쁜시간을 알차게 써서 공부에 전념해주니 장하다고 칭찬하셨다. 사춘기 시절에 가사 준비물을 챙기지 못하여 속상한 적이 있다. 그날 집에 와서 가족이 많아서 창피하다고 남들처럼 챙겨주지 못할 거면 왜 이리 아이들을 많이 낳았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다음 날은 일요일이었다. 어머니는 참깨 한 되를 보자기에 담아 시내로 나가는 내 손에 쥐어주셨다. 제주차부에 내려 **상회에 가서 어머니 이름을 말하고 드리면 돈을 줄 것이라 하셨다. 당신이 시내에 나갔다 와야 되지만 옆집에 수눌음 하기로 약속이 되어있어서 미안하다며 용돈을 쓰라고 하셨다. 그날 어머니의 눈길은 아직도 가슴에 또렷하며,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죄송한 마음 감출길이 없다.
잠시 상념에 젖어 조용해질 찰나, 전화세 많이 나오니 끊자는 어머니 억양이 나를 깨운다. 감사의 전화인데 이러다 우울한 기분이 되어버릴 분위기다. 일부러 할머니 머리카락은 오염되지 않은 생태계라며 손자 녀석이 웃더라고 넉살을 부린다. 따라 웃으신다. 웃다보니 막혔던 가슴이 풀린다. 어머니도 환한 억양이 되셨다. 그 녀석이 인사를 얼마나 예의바르게 하던지 뿌듯하셨단 말씀과 함께 베란다에 화분들을 잘 키워놓아서 보기 좋더라고 칭찬을 주신다. 살림 사는 솜씨에 대해선 별 말씀이 없으시다. 이렇게 보여 주신 걸로 배움을 삼겠지 믿으시는 것이다.
된장국은 무엇을 넣어서 이런 맛이 나는지, 어찌하면 어머니처럼 맛있게 콩을 삶을 수 있는지, 고춧잎을 무칠 때 갓 빻아온 참기름을 넣었더니 맛이 끝내준다느니, 고구마를 삶기도 전엔 열무김치는 동이나 버렸다는 말까지 가져다 붙이며 수다스러워진다.
수화기 너머 흐믓한 표정의 우렁각시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