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사람들]
모든 생명체가 조화로운 삶을 꿈꾸며
- 최성현 생산자 / 홍천연합회 신시공동체
홀로 묵묵히 자연농의 길을 걷고 있는 농부. 지구의 은혜에 감사하며 모든 생명체가 조화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며 오늘도 논과 밭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최성현 생산자를 만났다.
딸 최승비, 아내 김양희, 최성현 생산자 (사진 왼쪽부터)
하농下農은 돈을 보고, 중농中農은 작물을 보고,
상농上農은 땅·사람을 보고, 신시新詩는 지구를 보려 하네.
자연농은 어떻게 알고, 삶으로 실천하게 되셨나요?
20대 후반에 자연농법의 창시자인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대표 저서 <짚 한 오라기 혁명>을 우연히 만나 한눈에 반했습니다. 단순한 친환경 농업 서적이 아니었습니다. 이 지구에서 인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는 책이었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어서 바로 한집에 살던 박사과정 중의 일본인과 공역으로 번역서를 내고, 같은 해, 제 나이 서른둘이었던 1988년에 제천으로 귀농했습니다.
자연농법은 무경운, 무투입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 이상 인류의 삶에 대한 철학과 깨달음이 담겨 있는 건가요?
지구는 말하자면 화수분입니다. 예를 들면 벼 한 알을 넣으면 2천 알로 돌려줍니다. 거기에 감사하며 작게 살아야 하는데, 인류는 거위의 배를 가르고 황금알을 한꺼번에 갖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현대 농업이자 문명입니다. 후쿠오카는 인류의 길 전체가 잘못됐다고 보았습니다. 자연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것이 가장 좋다는 게 그의 견해였습니다. 그 길이 자연농법입니다.
병충해 등 현실적으로 불가항력적인 것은 어떻게 하십니까?
땅을 갈지 않고, 한 줄씩 건너뛰며 하는 김매기가 해결해 줍니다. 낫으로 풀을 벱니다. 벤 풀은 그 자리에 잘 펴놓습니다. 한꺼번에 베지 않고, 한 줄 건너뛰어 벱니다. 그렇게 하면 먹이사슬이 건강해지며 병충해 문제가 사라집니다. 병충은 있습니다. 있지만 큰 피해가 없습니다. 병충 또한 함께 천수를 누려야 한다는 게 자연농의 시각입니다.
소신 있게 자신의 철학을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긴 세월 좌충우돌했지요. 특히 초기에는 더욱 심했습니다. 예를 들면, 논과 밭을 보면 형편없는 주제에 말이 앞섰던 시기입니다. 온갖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좌절과 절망 속에서 긴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정말 자연농법이 되는구나!’, ‘지상 최고의 농업이구나!’하는 걸 논밭에서 실감한 것은 불과 삼사 년 전입니다. 30년 가까이 지나서야 얻게 된 결과입니다.
저서 중에 장일순 선생님의 서화를 그 분의 일화와 함께 엮은 ‘좁쌀 한 알’이 있는데, 선생님만의 특별한 추억이 있나요?
앞에 말씀드린 대로 일본인 친구와 공역으로 ‘자연농법’을 ‘생명의 농업과 대자연의 도(나중에 <생명의 농업>으로 재출간)’로 출간한 뒤 책을 보내드렸는데 반가워하시며 ‘한 번 보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 뒤 자주 댁에 갔어요, 선생님은 누가 찾아오든 손을 잘 잡으셨어요. 어느 날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선생님이 제 손을 잡고 가까이 있는 서예실로 갔어요. 거기서 이 방에 있는 저 글을 써주셨죠. 도재이道在邇라는. 앞의 두 글자는 알겠는데 마지막 것은 알 수 없어서 물었지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선생님이 껄껄 웃으시며 ‘가까울 이라 읽는다네.’라 대답하셨죠. 길은 가까운 데 있다는 뜻입니다. ‘좁쌀 한 알’은 선생님 10주기 기념사업의 하나였습니다. 제가 제안했는데 할 사람이 없어 결국 제가 했습니다. 자신이 없어 못 하겠다고 이삼 개월 뻗대다가 맡고, 2년간 농한기를 이용하여 취재했는데,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가슴이 뛰었고, 때로는 돌아오며 감동으로 울기도 했던.
모두가 자연농을 하며 살 수는 없는 상황에서 도시 조합원들과 소통하고 싶은 이야기와 바람은 무엇인가요?
우리 신시공동체의 정관은 이런 글로 시작됩니다.농사만이 아니라 소비에서도 이런 시각이 필요합니다. 지구는 우주 안의 유일한 천국이고, 인류는 그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동물입니다. 공부할 게 많습니다. 일등이라야 한다, 남을 이겨야 한다,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인류는 너나 할 거 없이, 물론 저도 포함하여, 인류라는 우물에 갇혀 있습니다. 지구에 서서 인류를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개구리, 혹은 벌레의 자리에서 인류, 혹은 지구를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자리에서는 금방 분명해집니다. 인류는 어리석은 동물입니다.
겨울 햇살이 온전히 내려앉은 집필실 툇마루에 앉아 있는 세 가족의 말과 표정에서도, 소박하지만 온 우주의 힘이 느껴지는 밥상에서도, 볏짚을 덮고 누워 있는 겨울 논에서도 따뜻함과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자급 규모라면 자연농이 가장 쉽다며 자연농의 철학과 기술을 세상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그. 쉽지 않은 길을 걸어줘서 참, 고맙다.
글ㆍ사진 석보경 생산자연합회 조직지원부
첫댓글 어느덧 세월은 흘러 꿈꾸던 이상향이 옛 일이 되어버렸다.
그저 글에서만 뵈었던 장일순 선생님, 읽었던 최성현선생님 책들...
세월은 흘렀어도 여전히 남아있는 '農者天下之大本也'
여력이 남아 있을 때 실천해 볼 일입니다.
'道在邇' 저도 웃고 싶네요. 간결해지고 싶으니까요.
자연농 삶을 꿈꾸는 이는 단지 농사만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봤고
그래서 선택하는 이들은 특별한 경험과 각성이 필요하다고 아직도 보고 있어요.
그런데... 아주 평범한 우리 이웃 형님과 동생들이 지구학교에 문을 두드리고 계시더군요.
시류를 거스르는 삶이기에 외롭다고 단정짓지 말아야겠어요.
풀, 벌레도 정겨운 이웃지만 역시 말동무만큼이야 할까 싶네요~
사진이 안나와요!ㅠ 이거 어디 가면 볼 수 있나요?ㅎㅎ
그렇죠? 캡쳐 대신 직접 사진 올리기로 변경했습니다. 한살림 소식지에 실린 기사이고 한살림 블로그에서 가져왔어요. blog.naver.com/hansalim/220628725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