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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야경
동국 역경원
반야경(般若經)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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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경(般若經) 해제
1. 경명(經名)에 대하여
여기 번역한 6백권에 달하는
대반야경의 본디 이름은
마하반야바라밀다경
(摩訶般若波羅蜜多經)이다.
흔히 반야경이라고 부르는
이 경의 경명은
대(大) 즉 마하(摩訶)를 뺀
반야바라밀다경을 줄인 것으로서
어느 특정한 경을 가리키는 경명이 아니라
반야경전에
속하는 경전들을 통틀어 지칭한다.
마하반야바라밀다경의 경명은
산스크리트어인 pr-aj??-p?ramit?를
중국의 한역자가
한자음으로 음사한 것이다.
반야(般若) praj-??는 지혜를 의미하며,
바라밀다(波羅蜜多) p?ramit?는 완성,
또는 궁극(窮極)의 경지를 뜻하므로
반야바라밀다는 지혜의 완성을 뜻하며
지혜의 완성을 뜻하는 경이
곧 반야바라밀다경이다.
그래서 반야경을
불교의 진실한 예지를 설하는 경이라고 한다.
또 반야는
대승불교의 기본적 실천덕목인
정진(精進) · 선정(禪定) · 보시(布施) ·
지계(持戒) · 인욕(忍辱) ·
반야의 육바라밀 중 최후에 위치하여
그 여섯 가지를
다 총괄해서 완성한다고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고
그 이상의 실현을 위한
사상과 실천을 설하는 것이
반야바라밀다경이라고 풀이한다.
또 한역자는
바라밀 · 바라밀다를
도피안(到彼岸)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바라밀다의 원어 p?ramit?는
본래 최고를 뜻하는
형용사의 파생어인 p?rami에
상태나 성질을 나타내는
접미어 t?를 붙여서
추상명사화한 말로서
궁극의 상태 · 궁극의 경지,
완성 따위를 의미하고 있는데
한역자가 도피안이라고 해서
피안(彼岸)
즉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한다고
해석하고 있는 것은
반야바라밀다의 교의적(敎義的) 해석이다.
이 같은 교의적 해석은
p?ra에
「건너편 언덕(彼岸)」의 뜻이 있고
간다고 하는 동사의 어근인 i를 연결지어
「건너편 언덕으로 간다」는 뜻을 취하여
도피안의 역어가 생겼다.
이 같은 주석은
인도의 주석서 중에도 있지만
반야바라밀다의
어학적 해석은 어디까지나
지혜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2. 반야경과 대승불교
대승경전 중에서 가장 먼저 성립된 경전은
다름 아닌 반야경이다.
그것은 반야경이
대승이라고 하는 말을
최초로 이름한 경전인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따라서 반야경 계통의 경전군의 한 특징으로
대승불교의 개척자임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방대한 반야경 계통의 경전들이
다 대승의 초기에 성립한 것은 아니다.
대승을 자칭하는 반야경 계통의 경전들은
10세기에 걸친 오랜 시일에 걸쳐 성립되었다.
이 점은 오히려
그 경전들이 대승불교운동의 시발로부터
대승불교의 성립과정에서
꾸준히 개척자 노릇을 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승이라고 하는 말을
최초로 명확하게 사용한 것은
소품반야경(小品般若經)의 작자들이었다.
이들 소품반야경의 작자들이
소품반야경을 짓기 이전에
이미 대승불교 운동은
인도의 여러 곳에서 일어나
추진되고 있었으며
이들 대승불교운동자들 속에서 배출된
소품반야경의 작자들은
스스로를 법사(法師)라고 칭했고
그들이 설하는
반야바라밀의 새로운 법이야말로
모든 부처의 어머니(佛母)라고 주장하고
반야바라밀의 습득 없이는
육바라밀의 완성은 불가능하다고 하며
반야의 공지(空智)로써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 것이
불퇴전(不退轉)의
대승보살의 모습이라고 설하였다.
이것은 소품반야경의 작자들이
스스로를 대승보살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또 스스로 칭하는 법사는
율장(律藏)등에서 말해지고 있는
전통적으로
부파불교(部波佛敎)의 비구에 대해서
쓰여온 용어
법사 dharma-kathika가 아니라
dharma-bh??aka이며
이 말은 대승경전에만 나타나며
이점에서 볼 때
대승의 법사는
부파불교의 교단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그들은
당연히 소승(小乘)인
이승(二乘 · 聲聞과 緣覺)의
입장을 부정한다.
소품반야경을 짓고 대승을 선언한
이들 법사들에 의한 혁신운동은
그들의 뛰어난 사상과
정열적인 포교로 인하여
차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반야사상에 근거한
새로운 여러 가지 법이 창출되고
그것이 새로운 경전을 낳는
모태(母胎)가 되었다.
그 예로 반야경 계통의 경전들 이외에
법화경 · 유마경 등을 들 수 있다.
소품반야경의 한역본 중
가장 오랜 번역인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에 의하면
반야의 법문(法門)이
먼저 남천축(南天竺)에 유포되고
이어 서천축(西天竺)에
유포되었음을 설하고 있다.
소품반야의 원본이 되는
범문(梵文)의
팔천송반야(八千頌般若)에서는
남방→동방→북방이라고 설하고 있으나
남인도에서
소품반야가 최초로 탄생하여
북인도가
종착지역임을 말하고 있는 점은 같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반야사상은
남인도에서 발생하여
북인도에서 완성하였다고 믿어져 왔다.
대체로 범본(梵本)의 완성 연대를
범본이 한역된 연대로부터
100년~50년을
소습하여 추정하는 학설에 따르면
지루가참이 167년(一說 150년)
중국에 와서
179년 도행반야경을 번역한 때로부터
100년을 소급한 70년대 이전에
도행반야경의 범본의 형태가
이루어졌다고 추정된다.
이 연대는 도행반야경의 범본 원형인
팔천송반야의 티베트역이 이루어진
57년~185년의 초기인 57년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연대로서
서로 일치하고 있다.
팔천송반야의 티베트역이
57년에서 185년 사이에 이루어진 점과
지루가참이 167년 중국에 와서
185년(一說 186년) 사이에
도행반야경 이외에
소품반야의 영향을 받아 성립한
대보적경(大寶積經)의 가섭품(迦葉品)과
수능엄삼매경(首楞嚴三昧經) ·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등
상당수에 달하는
대승경전을 한역한 점으로 보아
소품반야는 티베트역이 나오기 훨씬 전
즉 57년 이전에
이미 그 원초적 형태가 이루어져
계속 발전하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가 있다.
따라서 최초의 반야경으로 인정되고 있는
팔천송반야 즉 소품반야경의
원초적 형태가 성립한 연대를
티베트역이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57년에서 50~100년을 소급해서
서기전 1세기경으로 추정하는 것이
오늘의 정설이 되고 있다.
또 도행반야경에서
반야의 법문이 남인도에서 서인도로
서인도에서 북인도로 유포되었다고 설하는
그 남인도의 서기 50년대 전후의 상황은
팔천송반야의
오랜 형성기간을 거치면서,
또 그 오랜 기간동안
남에서 서로, 서에서 북에 이르면서
지역과 때에 따라 변모하였음을 말해 준다.
도행반야경이나 팔천송반야가 말하는
남인도의
크리슈나강(지금의 kistna강) 하류지역은
서기 50년대보다 훨씬 이전부터
대중부(大衆部)계통의 불교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곳이므로
대중부 가운데
반야의 공사상(空思想)에
가까운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반야사상이
발생할 가능성은 많다고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도행반야경아 말하는
반야의 법문의
다음 유포지(流布地)인 서인도는
서해안의 봄베이지역으로부터
카티아워르반도에 이르는
해안지역을 가리키게 된다.
당시 이 지역은
봄베이를 중심으로 해서
로마와의 무역이 번창한 곳이었으며
부유한 상업사회의 지지를 받은
불교의 교세가 대단히 왕성한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은 크리슈나강 하류지역과
자연 경계적인 유대가 강하였으므로
크리슈나강 하류지역에서 발생한
반야사상이 전해졌을 것임을
쉽게 상상할 수가 있다.
또 이 지역으로부터
내륙의 우자인과 북쪽의 마두라를 통하여
북서인도에 이르는
커다란 통상로가 뻗어 있었으므로
반야의 법문이 이 곳을 통해
북인도에 전해졌음은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도행반야경이
북인도에 이르러 완성된
팔천송반야를
전해 받아서 한역된 것이므로
그 형성기간이 오랫동안임을 알 수 있다.
이 같이 남인도에서 싹튼 반야사상은
서인도를 거쳐 북인도에 이르러
소품반야경으로 완성을 이룩했으며
이러한 사실은
반야경이 거쳐가는 지역에서
반야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대승불교의
개척자 노릇을 하였음을 알게 한다.
소품반야경만이 아니고
반야계통의 다른 경전들도
넓은 지역에 유포되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경이 대부분이다.
반야계통 경전들의 제작이
계속된 기간은
실로 10세기에 걸친 것이었으며
이 기간은
대승불교가 반야에서 시작해서
반야로 끝났다고도 할 수 있는
대승불교의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은 초기의 반야경에 의해서
대승불교의 산성(産聲)이 울려졌고
그 이후의 대승 한역경전만 해도
42종, 범본은 10종 이상,
티베트 역은 12종 이상에 달한다.
또 한역된 경전 중
일실(逸失)된 것을 합하면
한역된 반야계통의 경전은
훨씬 많을 것이다.
물론 한역 중에는 중역(重譯)이 많다.
그러나 어쨌든
이같이 많은 반야계통의 경전들은
처음 대승의 주창자들에 의해서 씨가 생기고
그 씨가 반야경의 작자에 의해서
점차 경전의 형태로
육성되었다고 생각되어지고 있다.
그 예로 맨 처음에 등장하는 소품반야경
즉 팔천송반야가
처음부터 팔천송이
다 갖추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점에서 쉽게 상정할 수가 있다.
송(頌)이라고 하는 말은
범어 ?loka의 한역이다.
본래는 사구 삼십이음절
(범어의 음절은 곧 한 단어를 이룸)로 된
운문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뒤에 가서는 경이나
논(論)의 산문의 분량을
셈하는 데도 쓰이게 되었다.
그러나 반야경에서
팔천송 · 십만송 하는 송은
바로 사구 · 삼십이음절로 된 송을 말한다.
따라서 최초의 반야경인
팔천송반야는 처음 씨가 생기고
그것이 하나의 ?loka로 이루어지고,
혹은 동시에
수개(數個)의 ?loka가 성립되어
차츰 증폭을 해서
북인도에 이르기까지에
팔천송이 되었다고 추정한다.
불교는
반야의 현실적 파악을 사명으로 하였으니
반야계통 경전군의 후기의 반야경이
인간의 현실생활 속에 있는
진실을 추구한 점과
대승불교의 역사가 가리키고 있는 점이
같은 것으로 알 수가 있다.
10세기에 걸친
이같은 대승불교의 추세에 편승하여
이취경(理趣經 · 763~771 不空譯)과 같이
반야경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경이
이취반야경이라고 해서
반야의 이름으로 나타날만큼
반야는
반야계통의 경전들이 형성되는 동안
대단한 영향을
당시의 경전의 작가들에게 미쳤다.
이취경이
이같이 반야를 칭하는 사실은
반야경의 성립 시기에 뒤이어 일어나는
밀교의 개척자적 역할을 반야경이
담당하였음을 말해준다.
또한 이같은 예는 중국에서도 볼 수 있다.
중국의 위경(僞經)인
인왕경(仁王經 ·
羅什과 不空의 二譯이 있음)이
반야경임을 칭하는 예는
중국이 필요로 하는
진호국가사상을 고취하는데
반야경이 선도적 역할을 했음을 시사한다.
3. 반야경전의 성립
이같이 반야경전군은
오랜 기간에 걸쳐 성립되었다.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반야계통의 경전들은 한편,
최초의 반야경이 형성되어
그것이 어느 시기에
어떤 지역을 통과할 경우,
그곳에 머물지 아니하고
증폭을 해가면서 북상하는
팔천송반야와는
다르게 그 일부분이 그곳에 머물러
기존의 반야경에서 떨어져 나와
하나의 독립된 반야경을
형성하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며
또는 기존의 반야경을 능가하는
반야경으로 확대되어
독립된 반야경을 형성한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반야경을 간소화하는
반야경이 태어나기도 하고,
또는 의식적으로
기존의 반야경이 사용하고 있는
특정한 용어나
난해한 술어 따위를 피하여
대승의 대중적 성향에 맞도록
새롭게 개편된 반야경도
출현하였음을 상정할 수가 있다.
이같이 처음에 씨가 생겨나고
다음 단계에서
최초의 원초적인 반야경이 성립되고
그것이 다음 단계에서 전승되고,
전승되는 사이에 증폭되며,
수정되고, 정비되고, 보완되거나 발췌되어
현존하는 반야경전들이 생겼다고 추정된다.
이러한 복잡한 성립사의 추정은
범본의 반야경이
팔천송반야에서 차츰 보다 분량이 많은
반야경으로 파생된 것을 말한다
(반야경의 범본을 분류할 때
팔천송반야를 소품반야라고 하며
이것을 소품계라고 해서
그 밖의 분량이 많은
대품계 반야경과 구별을 한다).
그러나 일설에는
소품계 반야는
처음 대품계 반야인 十二만五천송이
점차 十만송으로 줄고,
다시 二만五천송으로,
一만송으로 줄어
최후에 팔천송의
소품반야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간소화의 경우에 해당되는 설이다.
그러나 소품계 반야의 최초의 한역인
도행반야경이 179년에 한역된 뒤
408년 구마라집에 의해서
이역이 이루어지고
다시 980년에서 1015년 사이에
송의 시호에 의해서
소품계의 이역인
불모출생삼법장반야바라밀다경이
나온 것으로 보아서
소품계의 한역사는
물경 800여년을 웃돌고
최초의 한역으로부터 800여년이 지나
한역된 소품계의
최종형태를 갖게 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은 소품계 반야가
이때까지 계속해서 발전했음을 말해준다.
더욱 시호의 한역이 현존하는
범본 및 티베트 역의
팔천송반야와
가장 가까운 번역인 점에서
더욱 명료하게 그것을 증명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품계 반야로부터
소품계 반야에로 옮겨갔다고 하는
반야경 성립에 대한 이전이 나오게 된 것은
3세기 중국의 불교학자인
주사행(朱士行)이 그 효시이다.
주사행은 당시에 이미 한역된
소품계의 도행반야경을 읽고
그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그가
260년~282년에 서역의
고탄까지 여행을 했을 때,
그 곳에서 대품계의
방광반야경 원본을 보게 되었다.
그는 도행반야경을 읽고
그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그보다 훨씬 상세하고 정비된
방광반야경에 매력을 느꼈으며
여기에서 그는 소품계가
대품계의 약술본이라고 본 것이다.
그 이후 291년에 서진의 무차라에 의해서
방광반야경이 한역되고
구마라집이 장안에 도착하자
403년~404년에
대품반야경을 먼저 번역하고 이어서
대품반야경을 포함한
주석서 대지도론을 2년만에 걸쳐
번역한 다음 408년에야
3개월 동안에
소품반야를 번역하고 있는 것은
당시의 중국불교계가
대품반야를 갈망하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이같이 중국불교계가
대품반야경을 갈망하게 된 것은
대품반야의 약술이
소품반야라고 하는 주사행의 의견 등이
미친 영향에 기인한다.
그러나 지금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소품반야가 선구(先驅)이며
대품반야는
복잡한 반야경 성립의 과정속에서
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소품계로부터 대품계로 발전해서
十二만五천송의
방대한 반야경으로 발전한
반야경전군 중
「六백부반야경과 이역본의 대조표」에는
대품계의 十二만五천송은 없다.
그 대신 十만송반야가
1권~400권에 걸쳐 번역되고 있는데
이것은 十二만五천송의 축소라고
윈테르니츠
(Moriz winterniz 1863~1937 ·
오스트리아 출신의 인류학자)는
그의 저서
〈인도불교문학사〉에서 말하고 있다.
그 진위는 차치하고,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六백부반야경이 현장에 의해서
번역되기 이전에
이미 많은 반야계통의 경전들이
한역되고 있는 것이다.
현장이 번역한 六백부반야경과
이역본의 대조표에서 보듯이
반야경전군은
처음 소품반야에서 시작하여
대품반야에로 확대되고
그것이 다시 축소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현장은
그의 이전에 역출된 번역본의
불비(不備)한 점과
그 때까지 번역되지 아니한
반야계통의 경전들을 보완하고 망라해서
600부에 달하는
대반야바라밀경을
역출하였음도 알 수 있다.
4. 반야경의 내용과 사상
방대한 현장의 6백부 반야경이
수용하고 있는 반야경들 속에서
어떤 경이 본래의 반야경인가 하는 점은
이미 말한 바와 같다.
그러나 사상적으로
어떤 경이 근본적인 반야경인가 하는 점은
여러 가지 이견들이 있고
600부 반야경의 1회로부터 5회에 이르는,
10만송 · 2만5천송 · 8천송이
가장 근본이 된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십본반야(十本般若)라고 해서
한역된 반야 경전들 중에서
① 소품반야 ② 대품반야
③ 인왕반야(仁王般若)
④ 금강반야(金剛般若)
⑤ 반야심경 ⑥ 유수반야(濡首般若)
⑦ 문수반야(文殊般若)
⑧ 승천왕반야(勝天王般若)
⑨ 대반야(大般若 · 600부반야)
⑩ 이취반야(理趣般若)를
반야경의 주요경전으로 꼽는다.
이 가운데
①은 600부 대반야의 제4회,
②는 제2회, ④는 제9회, ⑥은 제8회,
⑦은 제7회, ⑧은 제6회,
⑩은 제10회에 해당하며
600부 반야경에 수록되지 아니한 경은
③과 ⑤만이다.
⑤는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중국의 위경(僞經)이므로
당연히 제외한다면
주요한 반야경이
거의 다 600부 반야경에
수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회는
반야경을 설한 모임을 말하며
현장은 모든 반야경은
16번의 모임에서
각각 다른 내용이 설해졌다고 보았으며
그 모임은
또 4곳에서 나뉘어 행해졌다고 보았다.
그것이
앞의 대조표에서 보이는 처(處)이다.
따라서 반야경은
그 대조표에 나타난
한역경전들이 해당하는 모임에서
독립된, 완성된 경으로 설해졌고,
그것을 집대성한 것이
600부 대반야경이라고 할 수 있다.
16회의 모임에서 설해진 600부 반야경 중
1회에서 5회까지,
즉 대품과 소품반야의 분량이
565권에 달하여
그 전량에 가까운 것을 보아도
10만송 · 2만5천송 · 8천송의 반야가
반야경의 기본이며
근본사상을 설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10만송반야가 1권에서 400권에 달하는
방대한 양으로 구성되어 있는 점에 대해서
윈테르니츠는
그의 〈인도문학사〉에서
「실로 이 호한 반야바라밀다경에서는
무제한하기가 극에 달하여」 있을 정도로
반복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와 같이
동일한 말과 글귀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그 까닭은
경전의 독송과
경전서사의 공덕을
고취하고자 한데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승이 시작하기 전,
대승의 모태가 된
탑파신앙(塔婆信仰)으로부터
민중을 대승의
경권신앙(經卷信仰)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반야경이 담당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이것은 반야경의 기본자세이다.
독송과 서사의 공덕을 강조하는
경권 신앙에서
훨씬 뒤에 발전한 신앙형태로
대승불교의 신비주의적
공관(空觀)에 바탕을 둔
바라밀을 수지독송하므로써
주술(呪術)의 효과를 얻는다고 하는
상상이 싹텄음도 주목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반야경에서는
바라밀의 주술적 효과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라밀의 파악은
논리적 인식
즉 분별을 넘은 것임을
밝히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반야경이 이같이 경권신앙을 설하는 것은
소승의 부파불교와 맞서
신흥의 대승불교도들이
창작한 새로운 경전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것이다.
그것을 소품반야계통의 경전들은
이렇게 설하고 있다.
왕사성의 영축산에서
세존은 수보리의 물음에 대해
「지혜의 완성」을 설한다.
그리고 세존은 자신이
옛날 인행시(因行時)에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연등불(燃燈佛) 밑에서
이 바라밀을 수행하여
부처가 될 수기(授記)를 받고
오늘날 부처가 되었음을 설한다.
또 이어서
세존은 대략
「내가 완전한 열반에 들었을 때,
이 몸은 공양을 받고 탑에 안치될 것이다.
그 탑에 등(燈)을 밝히고
꽃을 올려 공양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많은 복덕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지혜의 완성을 서사하고
수지하고 독송하는 쪽이 훨씬 크다」
고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8천송 반야의 설이지만
소품반야계통의 경전들은
이 점을 대동소이하게 설하고 있다.
그리고 또 삼세(三世)의 부처들도
모두 「지혜의 완성」
praj??-p?ra-mit?에 의해서
최고의 깨달음에 도달하였다고 설하고
또 이것에 의해서
현세의 복덕을 받는다고 설한다.
이 점은 앞에서(2장 반야경과 대승불교)
지적한
「반야경이 인간의 현실생활 속에 있는
진실을 추구한 면이다.
이것은 곧 지혜의 완성이 六」바라밀의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 선정을
바라밀에로
이끌어 들여 성취시키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六바라밀을 닦고 행하게 하여
거룩한 경지에 들게 하는 것이다.
또 지혜의 완성을 듣고 믿어
부동(不動)의 신념(信念)을 가지고
六바라밀을 수행하는 사람을 반야경은
보살(菩薩)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부동의 신념에 도달한 보살은
미래에 부처가 되리라고 설한다.
대품반야에서는
(다른 반야경에서도
동일한 내용이 설해지고 있지만)
드라마틱한 내용의 상제품(常啼品)이 있어,
그 곳에서
반야경이 설하는 대표적 보살상으로
상제보살(常啼菩薩)의
구도(求道)를 강조하고 있다.
상제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위하여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고
명리도 구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일체의 중생을 위하여
밝은 등불이 되고자 서원하였다.
그러한 그는
담무갈(曇無竭)이라고 하는 보살이
항상 선정(禪定)에 들어 있으면서
지혜의 완성을 가르치고 있다는
가르침을 받고 그를 찾아간다.
상제보살은
담무갈이 있는 중향(衆香)이라고 하는
도시에 도달하여
담무갈보살에게 공양하고자 하나
공양할 거리가 없어
자신의 몸을 팔아 공양하고자 한다.
그는 신명을 버려 정진하기 위해서
「누가 나의 몸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까」
고 외친다.
그러나 악마가 시중(市中)의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방해를 한다.
그것을 본 제석천이
상제보살의 구도심(求道心)을
시험하기 위하여
바라문의 모습으로 나타나
상제보살의 몸을 사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살아 있는 심장과 피라고 말하며
그래도 팔겠는가고 말한다.
이 때, 상제보살은
커다란 이익이 있는 도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일도 하겠다고 한다.
바라문으로 변한 제석천은
예리한 칼을 들어 구도자인
상제보살의 몸에서
가차없이 살을 베고 피를 잤다.
그 고통을 견디다 못해
빈사의 상태가 된
상제보살 앞에 아름다운 한 소녀가 나타나
상제보살의 사정을 알고
담무갈보살이 있는 곳으로 이끈다.
이 때, 제석천은
제 본래의 모습을 하고,
상제보살도 상처가 없는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담무갈 앞에 이른 상제에게
담무갈은 상제의
견고하고 두터운 구도심을 칭찬하고
지혜의 완성을 설한다.
상제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체득한다.
이 이야기는
반야경이 설하는 구도의 실천과
노력의 전형으로 잘 알려진 설화이며
반야사상을 평이하게 이해시키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설화로 손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