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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신평리라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 10km이상 시골길을 걸어 통학을 하면서 무서운 시골 산길을
때로는 달려서 공부에 한 맺힌 어려운 학교 공부를 2시간 이상을 새벽 6시경에 집을 나가 양은 도시락에 김치 국물이 배여 온갖 김치냄새가 교실을
진동하는 놀림의 학교생활을 하면서 어머님의 억척 같은 힘든 5일 장날 몇푼 씩 벌어오는 돈과 5.16 장학생으로 학자금 만들고 중고등학교를
마치면서 당시 교장이시던 선생님 추천으로 허약하는 제가 육군 3사관학교에 가서 부지런히 장교가 되어 보다 “더 잘 사는 길을 찾으라”는 분부에
힘을 얻어 한번에 합격을 하여 코 흘리게 시골 놈이 강원도 춘천이라는 도시에 가서 어깨에 잘 다녀오라는 어깨 띠에 돈 몇백원 얻어 강원도 춘천의
여인숙에서 하루 밤자고 영천행 기차에 몸을 싣고 당시 군인들이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육군 3사관 학교에 입학해 1년의 고된 훈련을 나이 많은
형뻘 되는 동기들 덕분에 육군 소위로 나이 19세에 임관하여 군인의 길을 열심히 하여 1985년도에 약관 35세에 육군 중령으로 진급하여 9년
동안 중령으로 육군 본부 야전군 예하 참모 및 지휘관 대대장을 2회 이상 하고 육군복지단 복지 처장을 끝으로 1995년 25년간의 군 생활을
마감 하였습니다.
군생활 하는 동안 오직 “승자만이 존재”하는 조직이라 경쟁을 위해서 군의 교육은 어떻게 반드시 공부하고 합격해
육군대학 /국방 대학원까지는 마쳤지만 정작 국가가 인정하는 정상적인 학위를 갖는 전문 교육은 한번도 받아 보지 못해 평생 한처럼 느끼고 살아.
전역후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하여 이력서를 쓰려니 온갖 군대 이야기로 특히 학력란에는 정상적인 학위 증명서를 제출하지 못한 한을 풀고자 노력 하던
중 당시 건설기술 자격증을 획득하면 학점 인정에 관한 법률에 의거 학점을 받고 교양 과목만 평생 교육원에서 수강하면 대학 졸업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때부터 건설관련기사 자격증을 1년에 하나씩 준비하여 지금은 건설 기술인으로 우리 회사에서 6개를 갖인 전문 기술인으로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평생 교육원을 찾아가 면담을 하고 면담 내용을 근거로 학업 신청도 하여 2001년 2월에 건축 전문 공업전문 학사를 받고 이미 배운
군사학위도 2010년 11월 받고 2013년 8월에는 건축 전공 공학사를 받는 등 정말 시간이 나는데로 공부를 하였습니다.
낮에는 현장에서
열심히 건설인 기능인들은 가르치고 확인하며 부실 공사가 되지 않도록 정성을 다하고 저녁이면 독방에 홀로 앉아서 책과 씨름을 하며 더 늙기 전에
더 좋은 삶을 (더 좋은 직장에서 일하려는 욕망)을 찾으려 전역 전에 내 자신을 낮추려는 자세로 주유소 주유기를 잡으면서 식당에서 국수집
지배인을 하면서 자식들 모르게 흘린 눈물 교훈과 어릴 때 가방매고 10KM 달리며 공부하던 생각으로 새벽 3시에 자명종으로 지친 몸을 깨우며
낡은 컴퓨터와 생각과 눈으로 싸우며 공부의 한을 풀면 좋은 직장 갖게 됨을 배웠습니다.
남들은 일찍 전역해 돈도 벌고 돈 많은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학교 좋은 혈연 지연으로 취업을 하는게 쉽지만 힘없고 학연 지연 혈연이 없고 대학 학위 졸업장 없는 본인은 정말 이력서를
쓸 때 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면접장에 가면 학력 문제로 고민을 하는 서러움.. 이렇게 건축 관련 기사 자격을 5개를 따고 나니 대한민국 삼성
그룹의 계열사인 삼우설계 본인을 필요로 하여 나이 53살에 입사하여 환갑이 지나 진감이 되는 해 까지 정말 많은 연봉을 받아가면서 긍지를 가지고
살았지만 이제 환갑 지나니 무언가 새로운 도전이 예상되고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시기가 오면 노후에 준비를 빨리 하여 지난해 세상을 떠나가신
모친을 포천 노인천국 요양원에 6년을 위탁하여 모시다가 2013년 어느 날 요양원 원장과 대화를 나누던 중 사회복지사라는 자격에 문제를 제기하여
공부를 시작 했습니다. 본인도 늙어 가는데 더 늙기 전에 준비된 사회복지사가 되여 어렵고 힘들게 생을 마감하니 노후에 친구도 되고 얘기 거리도
만들고 무언가 봉사하는 신앙으로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공부가 쉽지 많은 않은 것을 2014년 사회복지사 실습 하면서 또
경험하고 배웠습니다. 실습자 선생님이 15일간 매일 과제를 주는데 매일 PPT프로그램을 20장 이상을 만들고 강의 준비를 하고 퇴근 전에 반드시
메일로 보내고 퇴근을 하라는 과제였습니다. 동료 학생이 젊은 여성 4명이 있었는데 그것도 경쟁인지 조금 가르쳐 달라고 하면 냉소적인 마음으로
접근해 사위를 불러 PPT작성법을 배우고 이런 실습을 하다가 고민과 함께 포기 하려는 마음까지 가졌지만 조금 더 인내하는 마음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여 2014년도 여름 실습자중에 실습 점수를 95점이라는 에스 이 평생 교육원 최고의 영예와 특별상도 수상 하는 영광도
있었습니다.
실습을 하다가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조심할 일이 어깨 회전근육이 뭉치는 질환 조심하고 본인도 이 질환에 걸려 어깨
근육에 문제가 생겨 5개월 동안 많은 고생과 치료를 하여 이제는 완치를 눈앞이 두고 있습니다. 공부는 젊을 때 하는데 가장 좋지만 세상 사는 게
그렇게 공평 하지 않으니 주어진 여건에 맞게 열심히 일하고 무엇을 하여야 보다 더 멋있게 행복하게 사는 길인가를 고민하면서 무식하게 공부하면
승패는 누가 열심히 많이 책과 싸워 이기느냐에 따라 결정 됩니다. 기억이 나지 않으면 독방에서 공부하면서 컴퓨터 소리를 키우며 화장실 문을 열어
놓고 메모지와 볼펜을 비치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하늘도 놀래고 땅도 놀래서 반드시 본인이 노력한 만큼에 성과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진리를 믿는
본인은 사람입니다.
성공을 하려면 무조건 참고 힘들지만 더 마음에 채찍을 가하면서 살아가는 자신감으로 공부를 통하여 준비된
사람만이 웃고 즐길 수 있음을 지금도 느끼고 나이 많아서 공부하면 저놈 미친놈 하면서 웃은 젊은이들, 친구들, 가족도 있었지만 지금은 정말
잘했다 믿습니다. 본인은 가훈을 “정도”로 1970년 육군 소위로 임관하면서 정하고 열심히 군생활로 단련시켜 멋진 군인 부패하지 않는 장교,
부정을 배격하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군인으로 25년 군 생활 20년 넘는 대한민국 건설 기술인으로 듬듬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면서 남은 여생 후진
기술인에게 무언가를 전수하면서 건강한 그날까지 열심히 일하는 건설인으로 남으려 하며 여건되면 병들고 힘들어 하는 노인들과 함께 사회복지사로서
멋진 봉사자로 살아가려 합니다.
본인의 후손들에게도 이렇게 살고 살아 왔다는 생각을 늘 순주2명에게 들려주니 이제는 손주들고 열심히
공부하여 학교에서 칭찬 받는 초등학교 4/5학년에 등급 하면서 영재라는 교육청의 경쟁을 통한 우수학생으로 등극도 하여 정말 행복한 노후에 일도
하고 가정이 평안한 생활로 즐겁기만 합니다.
항상 열심히 지원을 하여 주시고 가르쳐 주신 교수님 평생 교육원 임직원님과 관계자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짧은 시 한편을 좋아 적어 봅니다.
대추가 저절로 저렇게 붉어 질 리가 없습니다. 저 안에는 태풍이 몇 개,
천둥이 몇 개, 벼락이 몇 개가 지나가 붉어졌습니다. 인간도 스스로 성공 하는 일은 없으니 참고 견디고 힘들지만 준비해 기다라는 마음을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