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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1구간(피재-통리역)후기
[피재→백두대간/낙동정맥분기점→작은피재→대박등→유령산→우보산→통리역]
★일시 : 2007년 3월3일(토요일 당일)
★교통및 참가인원 : 25인승 버스 이채욱,이창호,박동준,김경관,공춘식,정이준,심기수,황전효 8명
★준비물 :복장 외의-등산복(바지, 짚티), 등산화,
내의-쿨맥스팬티1벌, 등산양말
보호구-모자,장갑1컬레,우의
여벌옷-등산바지,짚티, 쿨맥스팬티1벌, 등산양말1컬레, 윈도스토퍼, 오버트라우즈
기타-수건(1장), 스카프(3장), 수면대
운행구 : 배낭(38L-배낭커버포함), 스틱, 시계, 지도, 호루라기, 무전기, 식수(1L)
렌턴(헤드,핸드-여유 밧데리 4EA포함), 등산용칼, 소형자리(사단방석), 라이터
식사및 비상식 : 중식, 쵸코렛4개, 찰떡파이, 연양갱, 사과
주류 : 소주 4홉 1BTL
상비약 : 압박붕대2개, 파스1개, 진통제, 소화제, 해열제, 피로회복제, 근육이완제, 우황청심환1병
기록 : 볼펜, 수첩, 카메라
기타 : 시그날,소기,신분증,휴지,잡주머니,비닐봉지,쓰레기봉투
시산제 : 떡,대추,밤,배,밤,사과,포,향,주(막걸리 5BTL),축
★날씨 : 종일 개스
★산행코스
피재→백두대간/낙동정맥분기점→작은피재→대박등→유령산→우보산→통리역
===(도상 8.5 ㎞, 실 11.5km 약 6시간 05분 소요-시산제,중식,휴식시간 포함)
★GUIDE
[구간별 소요시간]
* 3월 3일 (토)
05:10 공업탑로타리 제일주유소출발
05:15 태화로타리 출발
05:20 신복로타리 제일주유소출발
10:30 삼수령(피재) 도착
10:45 삼수령 산행시작
11:20~12:00 1145봉 백두대간/낙동정맥분기점(시산제)
*길주의-낙동정맥 분기점에서 내려오다 능선끝에서 진행방향의 좌측으로 붙어 내려야 한다.
우측으로 내려설경우 목장도로를 만나게 되는데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계속 내려오면
시멘트 구조물과 목장 철조망이 나오는데 철조망을 따라 마루금이 이어진다.
12:30 작은피재
13:05 대박등(삼각점)
*길주의-대박등을 지나 임도를 진행하다 철탑(No 118)을 지나 3~4분후 임도를 버리고
임도의 좌측으로 시그날이 많이 붙어 있는 등로로 진행하여야 한다.
*알바-임도를 계속 진행하면 고령토 채취장을 만나게 되는데 콘테이너 가건물이 있고
마루금을 벗어난 것으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 (알바 20분)
13:45 되돌아 온 임도 마루금 입구
13:00~13:30 중식
14:55 서미촌재(도로 공사중)
15:25~45 유령산(932.4m)-주유
16:05 느릅령 산당
16:00 우보산(牛甫山) 돌탑
16:50 통리역
[구간별 거리] 도상거리 약 8.5km
피재-낙동분기점-작은피재 (1.4km)
작은피재-대박등 (1.3km)
대박등-우보산 (4.7km)
우보산-통리역 (1.1km)
★식수 구할수 있는곳 1) 피재 가게 2) 삼수령 농장
●낙동정맥 (洛東正脈)의 대장정에 들어가며
작년에 낙남정간을 마치고 기다리던 낙동정맥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일제의 잔재로 태백산맥, 낭림산맥, 추가령구조곡 등 왜곡된 우리의 맥들이 대간, 정간, 정맥등
우리의 이름을 되찾자는 분위기가 산꾼들을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하며 낙동의 마루금에 발을 내딛는다.
울산에서 거리와 함께 할 동료, 차량등 많은 어려움을 예상하고 시작하는 마루금이라
두렵기도하고 잘 마칠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앞세우며 출발하는 낙동정맥의 장도는
함께하는 동료가 있어 한결 가볍게 출발한다.
완주의 그날까지 SK산악회 홧팅!
♠참 고
낙동정맥(洛東正脈)은
태백산맥의 구봉산(九峰山:太白弟)에서 남쪽으로 뻗어 부산 다대포(多大浦)의 몰운대(沒芸臺)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
길이 370km.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백두대간(白頭大幹)의 구봉산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백병산(白屛山)·백령산(白嶺山)·주왕산(周王山)·주사산(朱砂山)·운주산(雲柱山)· 사룡산(四龍山)·단석산(斷石山)·
가지산(加智山)·취서산(鷲捿山)·원적산(圓寂山)·금정산 (金井山)·몰운대로 이어진다.
그 줄기는 낙동강 동쪽에 위치하는데, 그 산줄기의 동쪽으로는 동해안의 울진·영덕· 포항·경주·울산·부산,
서쪽으로는 태백·봉화·영양·청동·영천·경산·밀양·김해 지역과 이어진다.
*여지편람[輿地便覽] 2권 2책. 장서각도서. 편자와 간행 연도 미상. <건책(乾冊)>과 <곤책(坤冊)>의 2책으로 분류되어 있다.
<건책>에는 ‘산경표(山經表)’라는 내제목(內題目)으로 백두대간(白頭大幹) · 장백정간(長白正幹) ·낙남정간(洛南正幹) ·
청북정맥(淸北正脈) · 청남정맥(淸南正脈) · 해서정맥(海西正脈) ·임진북예성남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 ·
한북정맥(漢北正脈) · 낙동정맥(洛東正脈) ·한남정맥(漢南正脈) ·금북정맥(錦北正脈) ·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 등
주로 산맥이 다루어져 있는데, 각각 중요한 산 이름을 쓰고 그 옆에 부읍(府邑)의 이름과 이수(里數)를 표시하여 소재를 밝혔다.
이것은 영조 때의 실학자 신경준(申景濬)의 산경표와 같은 내용이다.
<곤책>에는 ‘거경정리표(距京程里表)’라는 내제목으로, 서북저의주제일(西北抵義州第一) 이라는 항목 아래
신원 ·고양 ·파주 ·장단을 거쳐 평양 ·경원 ·경용 ·서수라까지 수록하고,
동저평해제삼(東抵平海第三)이라는 항목 아래 망우리를 거쳐 홍천 ·간성 · 원주 ·강릉 ·평해 까지를 수록하고 있다.
서울에서 전국 각 지역까지의 거리를 쉽게 알 수 있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각 도별로 나누어 각 읍과 읍 사이의 거리도 도표로 표시하고 있다.
*산경표[山經表]
저자 : 신경준(申景濬)
시대 : 조선시대 필사본. 1책. 18.3×28.7 cm.
백두산을 중심으로 동 ·서 ·남 ·북으로 뻗친 대간(大幹) 과 지맥(支脈)의 산맥 분포를 기재한 것으로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이 작성하였다.
1913년 최남선(崔南善) 편으로 광문회(光文會)에서 신활자로 간행한 것이 각처에 소장되어 있다. (출처: 두산 세계 대백과)
●2007年 3月 3日
새벽같이 일어나 거실로 나가니 어제 채비한 내낭에 새벽같이 일어나 밥과 찬을 마눌이 준비해 준다.
주말이면 내내 산이나 돌아 다니는 사람을 낙동 첫 출정이라 마눌이 일어나 배웅을 해 주는디 감사할 따름이다.
배낭을 메고 총알같이 공업탑로타리에 나가니 대원들이 모여있어 반갑게 인사하고
차량은 출발하여 태화로타리와 신복로타리에서 대원들을 태우고 울산을 출발한다.
차량은 신복로타리-울산언양간 고속도로(언양에서 대원탑승)-경부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영주나들목-봉화-태백시내를 지나
작은피재에 이어 피재에 도착한다.
10:30 삼수령(피재) 도착
●2007年 3月 3日
10:45 삼수령(피재) 산행시작
물이 한강, 낙동강, 동해 오십천으로 흐른다는 삼수령(三水嶺)은 황지 2동과 적각동 경계에 있는 높은 고개로 천의봉 동북편에 있다.
해발 920m 정도 되는데 35번 국도가 지나가며 포장이 되어 있다.
옛날부터 황지지역이 「이상향」이라 하여 시절이 어수선하면 삼척 지방 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이 고개를 넘어 왔기에
피난(避亂) 온 고개라는 뜻이며 피해오는 고개라는 뜻이다.
또한 피재를 피산장등(彼山長嶝, 一云彼嵬長嶝)이라고도 하는데 피안(彼岸 : 이상향, 고통이 없는 理想境)으로 가는 큰 산등이란 뜻이다.
직치(稷峙)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피재를 한자표기로 하는 과정에서 피직(稷)자를 쓴 것이다.
70여년 전 봇짐장수와 등짐장수(褓負商)들이 세운 산령각(山靈閣)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작은피재로 진행을 하려다 첫구간은 거리가 짧아 낙동의 분기점에서 시작하기로 하고 1145봉의 낙동의 분기점으로 진행한다.
들머리는 고냉지 채소밭과 풍차가 있는 도로를 따라 30여미터 올라가다 도로 좌측의 시그날이 붙어 있는 등로로 진입하면 된다.
아직도 눈이 등로를 덮고 있어 미끄럽고 개스가 심해 조망이 없다.
등로를 따라 20여분 오르면 백두대간과 낙동정맥분기점을 만난다.
*참고 분기점에 쉽게 접근하는 방법은 차량을 이용하여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첫 고냉지 채소밭을 만나면 좌측으로 올라가서 대간길을 5분여 내려오면 분기점에 닿는다.
[삼수령 출발]
[삼수령]
11:20~12:00 1145봉 백두대간/낙동정맥분기점(시산제)
부산 건천산악회에서 세운 대간과 정맥의 분기점 이전표가 있고 등로의 가운데 같은 곳으로 특별함을 찾을수는 없지만
분기점이라는 의미에서 조금 내려와 안전한 완주를 기원하는 제를 올린다.
제를 지내고 내려서는 마루금은 많은 이들이 작은피재에서 낙동을 시작하는 이유로 등로가 희미하고 시그날도 많이 없다.
동쪽으로 마루금을 내려가면 목장도로를 만나고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삼수령 목장의 우사를 만난다.
우사를 지나 계속 내려가면 도로의 우측에 시멘트구조물과 목장 철조망을 만나게 되는데 목장철조망을 다라 내려서면 작은피재에 닿는다.
*길주의-낙동정맥 분기점에서 내려오다 능선끝에서 진행방향의 좌측으로 붙어 내려야 한다.
우측으로 내려설경우 목장도로를 만나게 되는데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계속 내려오면 시멘트 구조물과 목장 철조망이 나오는데
철조망을 따라 마루금이 이어진다.
[백두대간/낙동정맥분기점]
[백두대간/낙동정맥분기점 혼 함 빼고]
[시산제]
[목장도로]
[우사]
[목장도로에서 마루금 들머리]
12:30 작은피재
굽어지는 도로 위험표지판(매우 큼)과 하늘연못팬션 표지가있는 왕복 2차선도로이다.
여기서부터는 시그날이 확연히 늘어나고 임도와 등로를 번갈아 진행하면 목장 원두막을 지나고
산죽길을 지나 급경사의 오르막을 한번 올라치면 대박등에 이른다.
[진행할 들머리]
[위험 표지판]
[하늘연못팬션표지]
[목장원두막]
13:05 대박등(삼각점)(930.8봉)
대박등에는 낙동정맥의 첫 삼각점을 만나고 측정봉이 서있다.
대박등을 지나 10연분 진행하면 송전철탑(No 118)을 지나고 다시 임도를 만나는데 여기서 주의 하여야 한다.
임도와 고령토 채취장 도로 삼거리 도착전에 좌측으로 마루금이 이어지는데 고개를 좌측으로 돌려 확인하지 않으면 지나쳐 알바하기 쉽다.
우리팀도 계속 진행하여 고령토채취장을 지나 좌측으로 진행하여 낙동의 첫알바를 했다.
*길주의-대박등을 지나 임도를 진행하다 철탑(No 118)을 지나 3~4분후 임도를 버리고
임도의 좌측으로 시그날이 많이 붙어 있는 등로로 진행하여야 한다.
*알바-임도를 계속 진행하면 고령토 채취장을 만나게 되는데 콘테이너 가건물이 있고 마루금을 벗어난 것으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 (알바 20분)
[대박등 삼각점]
[대박등 측정봉]
[송전철탑 No 118]
[알바-고령토 채취장 前 삼거리]
[알바-고령토 채취장]
13:45 되돌아 온 임도 마루금 입구
되돌아 나오니 우측(되돌아 나오며)에 많은 시그날을 확인하고 진입하면 묘3기를 만나고 마루금이 좌측으로 90도 휘며 진행한다.
14:00~14:30 중식-시산제에 음복으로 먹은 음식으로 허기를 면해 늦은 중식을 시작한다.
낙남에 이어 낙동에서도 여전히 두루치기는 창호세야의 몫으로 감사히 먹어본다.
회장님의 쌈과 어울려 간단한 주유로 힘을 더하고 정형의 던킨 도넛도 먹어보니 그맛이 색다르다.
야튼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중식후 출발하니 잘 정리된 묘 2기를 만나고 이어 공사중인 서미촌재에 도착한다.
[되돌아온 마루금 들머리]
[되돌아온 마루금 들머리2]
[묘 3기]
[중식]
[묘 2기]
14:55 서미촌재(도로 공사중)
예냥골 안부의 서미촌재는 공사장이 마루금을 잘라먹고 심한 개스로 인하여 마루금을 찾는데 잠깐 지체한다.
마루금은 공사장을 가로 질러 공사장 건너편으로 이어진다.
공사장을 지나 922봉을 지나 허물어진 성벽같은 길을 나아가면 20여분후 송천철탑(No 17)를 지나고 올라서면 유령산이다.
[서미촌재(도로 공사중)]
[허물어진 성벽같은 길]
[송천철탑(No 17)]
15:25~45 유령산(楡嶺山 932.4m)
일명 느릅령산이라 하며 옛날에는 우보산(牛甫山) 또는 우산(牛山)으로 부르던 산이다.
정상에는 정상석과 방위석이 있고 조그만 공터로 되어 있다. 개스로 조망은 계속없다.
여기서 여기까지 지고 온 기수의 핏쳐로 주유소를 차린다. 휘발유에 설왕설래하고 힘을 붙여 달려본다.
이어 좌측으로 쏟아 내리면 느릅령이다.
[유령산 정상석]
[유령산 방위석]
[혼함빼고]
16:05 느릅령
산당느릅령에는 유령산령당(楡嶺山靈堂)과 유래비가 있고 차가다닐수 있는 비포장 도로이다.
느릅령에서 혼 몇 컷하고 마지막 핏치를 올리며 오르막을 올라서니 우보산 같은 곳에 도달한다.
느릅령(楡嶺) 전설
황지지방에서 도계지방으로 넘어가는 우보산에 느릅령이란 큰 고개가 있다.
옛날에 삼척지방에서 경상도로 가기 위해 꼭 넘어야 했던 고개이다.
고개마루에 산신당이 있어서 매년 음력 4월 16일에 통리와 도계지역 사람들이 모여 산신제를 올린다.
대동여지전도(大東與地全圖)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楡峴」으로
대동지지(大東地志)와 척주지(陟州誌)에는「楡嶺」으로 표기되어 있는 고개이다.
여지도서(與地圖書)에는 「楡嶺」으로 표기되어 있다.
큰 느릅나무(楡)가 고개마루에 많았다고 느릅령(楡嶺)이라고 불렀다고 하나
사실은 느릅나무보다는 넘어 재, 넘을 재에서 온 말이 아닐까 하며
또한 늘어진 고개 즉 낮은 산등을 의미한다고 본다.
신라 때부터 태백산으로 천제(天祭)를 지내려 가기 위해 소를 몰고 이 고개를 넘었으며
소를 몰고 넘던 고개라는 유래도 있다.
또한 안동과 봉화 쪽으로 가자면 이 고개를 넘어야 했다.
옛날엔 맹수가 많아 이 고개를 넘자면 여럿이 모여야 했고 징과 꽹과리를 치면서 갔다.
이 고갯마루의 유령산신각(楡嶺山神閣)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황지에 사는 효자 한 분이 소달장(도계장)에 조상 제사에 쓸 제수를 사러 갔다.
같이 간 사람들은 먼저 고개를 넘었고 효자 양반만 남게 되었는데,
그날 밤이 조상 제사날이라 아니 갈 수 없기에 죽기를 각오하고 고개를 올라 오니
큰 호랑이가 나타나 효자에게 덮쳐들었다.
놀란 효자는 그만 기절을 하였고 한참만에 깨어보니 큰 범이 옆에 앉아 있었다.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데 범이 말하기를 "나는 이곳 산신이다.
그동안 너희들이 제사를 지내지 않고 고갯길을 함부로 다니기에 너희들을 혼내주고 잡아먹었다.
오늘 너를 잡아먹으려 했으나 하늘이 낸 효자라 살려 보내니 돌아가서 산제(山祭)를 정성껏 지내면
다시는 재앙이 없으리라" 하더니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장에 갔다가 먼저 돌아온 사람들이 효자 양반이 걱정되어 횃불을 들고 고갯마루를 찾아가니 효자 양반이 무사했다.
효자 양반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다시 산신제(山神祭)를 지내기로 뜻을 모아
상장면, 하장면, 소달면 주민들이 합심하여 고갯마루에 산신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효자 양반이 산신에게 계시를 받은 날이 음력 4월 16일이라 매년 그 날 제사를 지낸다.
[느릅령]
[느릅령 영당]
[느릅령 유래비]
16:00 우보산(牛甫山) 돌탑
돌탑 2기와 거북바위 같은 돌탑이 있고 좀더 진행하니 전망대와 펑퍼짐한 곳에 석비와 묘가 있고 그 앞엔 문관석이 있다.
능선길을 3~4분 진행하다 좌측으로 90도 꺽어 내리면 산비탈의 밭이 나오고 통리에 도착한다.
[우보산(牛甫山) 돌탑]
[우보산(牛甫山) 거북바위]
[우보산(牛甫山) 묘비]
[우보산(牛甫山) 문관석]
[우보산(牛甫山) 문관석]
16:50 통리역-산행 완료
마을이 긴 구유처럼 생겼다 해서 부쳐진 이름의 통리(桶里)
석탄이 우리의 주 화력이었을때 번창가도를 달리던 통리역은 지금은 그 중요도가 많이 떨어졌으나
역사의 관리를 잘해두어 화장실이나 여사가 깨끗하다.
역사를 끼고 내려가서 철길건널목을 지나 다음번 들머리를 확인하고 산행을 마무리한다.
[통리역]
[통리역 혼함빼고]
[통리역 건널목]
완주의 그날까지 SK산악회 홧팅!
울산으로 돌아오며 창호세야 형수님댁에서 물가자미 회를 준비해 주어서 한바탕 휘발유가 날아다니고
청솔횟집에서 탕으로 저녁식사를 해결허고 울산에 도착하여 낙동출발의 첫구간을 마무리한다.
대원여러분! 낙동시작을 함께하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이제 시작된 낙동이 무사히 완주할수 있기를 기원하며
여러분과 함께 한 마루금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지루한 글 끝가지 읽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낙동의 첫구간을 마치고 고장난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