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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펌해왔어요!
서문
그 동안 문학지나 신문, 잡지 등에 발표한 작품이 시집 몇 권(?) 분량이 된다.
등단한지 10년이 넘은 것 치고는 그리 많은 양도 그렇다고 작은 양도 아니지만
제대로 된 개인시집 한 권 없다는 것이 게으르게 보여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돈이 고프고 삶이 고픈 진짜 시인인 것 같아 조금은 둥글해지는 기분도 든다.
또 시집을 낸다고 생각하니 설레기도 하면서 가난한 실수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앞선다.
하지만 나의 그릇은 비록 작고 부족하기 짝이 없을지라도 맑은 물 한잔 건네 드리고픈 심정으로 시집을 내기로 했다.
문인들의 권유도 나에겐 시원한 바람 한줄기처럼 큰 힘이 된 까닭이기도 하다.
나의 이름 모를 시 한편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기를 바라면서 근래에 쓴 시들과 기존에 발표한 작품 몇 편을 더 추가해서 조심스럽게 내밀어본다.
아울러 시집을 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올리며 발문을 써주신 문학에 대가이신 도창회교수님과 평론에 종결자로 주목받고 계시는 평론을 써주신 김경수회장님, 그리고 나의 신학스승이자 시인이신 이희두 목사님과 문학이라는 고운인연으로 맺어진 우보환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문학과 현실사 사장님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나의 영혼의 버팀목이 되어주신 하늘에 계신 친정아버지와 나의 유일한 팬이신 시아버지께 이 시집을 바치며 모든 이에게 사랑의 시가 되기를 기도해본다.
광복 66주년 8월 15일 덕유산 항적봉에서
이삭빛
跋文
창조적 상상력으로 고운 정서보다 음미를 강조한
이삭빛 시집 <당신은 나의 푸른 마중물>을 읽고
도 창 회
(전 동국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현 한국문인협회 고문 (시인. 수필가 ) )
이삭빛의 시집 <당신은 나의 푸른 마중물>에 상제한 시들을 마음을 가다듬고 읽어본 바 이삭빛의 시의 모습이 창조적 상상으로 쓴 의미를 강조한 서정시인 듯 보인다.
그러면 창조적 상상에 대해 잠깐 짚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모든 장르의 문학작품의 천재성은 상상력의 천재성이다. 시 창작품도 상상력에 그 천재성이 달렸음은 말 할 것도 없다. 상상론(Imagination)은 여러 학설이 있지만 대체로 양분한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콜올리쥐는 그이 ‘문학적 자서전’에서 제1상상력은 재생적 상상력(reproductive imagination)으로 시를 비롯한 문학작품은 제2의 상상력 곧 창조적 상상력(creative imagination)으로 써야 된다고 했다. 제1의 상상력 즉 재생적 상상력은 작가 자신이 체험했던 것을 기억하는 일종의 기억력(memory)같은 것으로 제1의 상상력으로 쓴 문학 작품들은 옛 추억이나 또는 관찰한 것을 기억으로 재생시키는 정도의 작품으로 창조성이 없다. 그러나 처음부터 창조적 상상력으로 쓰고자 노력한 작품은 기억으로 재생해내는 작품과는 달리 뭔가 독창적인 천재성이 가미된 문학작품이다.
이삭빛 시인의 시가 독창적 상상력으로 쓰인 시로 처음부터 그는 기억의 제생작품은 의도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럼 예서 그녀의 시 몇 편을 감상해 보자.
하얀 물거품을 물고 올라서기 위해
너를 지운다
물줄기의 속도는 오직 치열이다
사랑도 순수도 감춰 버린 생전의 꿈이
한꺼번에 튀어 오른다.
사랑에 한 번 배신당한 자는
허공이라도 들이 받고 솟구쳐야한다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든지
웅덩이로 어둠을 살라먹고 살아가든지
선택은 극단적 이어야한다.
하늘도 밟고서 꼿꼿하게 서고 있는
저 양의 탈을 쓰고 있는
괘심한 양심마저도 눈물로 베어 먹어야한다
운명의 신이 떨어지기 직전까지
오르지 목숨을 걸고 올라서야만 한다
그 것이 너를 철저하게 밀어내는 일
끝까지 너를 거스르는 일이다. <분수1> 전문
이 시는 물을 뿜는 분수를 바라보고 화자는 보통 일반시인들이 바라보는 분수의 아름다움을 시화하는 것과는 전혀 달리, 자기 분노나 저항적 상상을 상상력으로 담아낸 시다. 그녀는 분수가 솟아오는 힘찬 수세를 사랑의 격정으로 끌고 간다. 사랑에 한 번 배신당한 자는 허공이라도 들이박고 솟구쳐야 한다 /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든지 / 웅덩이로 어둠을 살라먹고 살아가든지 / 선택은 극단적이어야 한다. / 사랑을 배신한 자를 철저하게 응징하는 저항의 복수심을 불러오는 것은 퍽 감명 깊은 유의미시(有意味詩)다. 상상도 이쯤이면 ‘창조적 상상’아리고 해도 족하리라.
누구나 만만하게 그를 대했다
늘 그 얼굴에 그 키
몽땅 연필처럼 때론 버려지기도 했고
다른 삶에 끼어져 겨우살이를 하기도 했다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그는 일만 했다
세상에 그 보다 못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구부리면 휘어지는 만만한 손
그의 인생은 심한 관절통처럼 굴곡져 있었다.
그는 겨자씨만한 힘으로 살아갔다
노랗게 떠서 숨마저 쉬지 않은 채
하늘도 그를 푸른 손가락으로
휘저었다.
그런 그가 갈라 지지 않고 버티며 살아온 힘은
아무도 몰래 달구어진 고통 때문이었다.
울퉁불퉁 구부러져도 끝내 놓지 않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불길에 놓이면 뜨겁게 달아오르는 연극배우
그의 본 태생은 배우였다.
죽음에서 축제를 본 순간
그는 모든 이의 꿈이 돼야했다.
세상사람 모두가 그를 그릇만도 취급 하지 않았지만
그는 세상의 밥이 되었다
그의 비밀은 꿈처럼 아름다웠다
노란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그는
마지막 여행길에서 조차 추억의 풍경이 되었다
뜨겁도록 처절하게 숨을 멈출 때까지도. <양은냄비 연가> 전문
양은냄비라는 실상(實像)을 놓고 그는 상상력을 살려 쓴 시는 양은냄비는 바로 자기 자신의 모습과 처지가 된다. 그런 그녀가 갈라 지지 않고 버티어 살아온 힘은 / 아무도 몰래 달구어진 고통 때문 이었다 / 울퉁불퉁 구부러져도 끝내 놓지 않는 자존심 때문 이었다 / 라고 절규하면서 양은냄비와 같은 아녀자의 한과 설움을 담아내려고 최선을 다한 작품이다. 이삭빛의 과거사나 우금의 처지가 고스란히 양은냄비란 거울에다 비쳐놓은 작품이다. 그렸다. 문학작품(詩)은 실지모습을 거울에 비추어서 그 속 비추어진 그림자를 적는 것이다. 마음속에 비추어진 그 그림자가 곧 시의 이미지가 된다. 이삭빛은 그걸 잘 알고 시를 쓰는 시인이다.
언제부턴가 휴지통은 혼자서
울었다. 휴지만 담아야 하는
그의 인생이 처참했다
그래도 가끔은 신사보다
더 신사다운 인생을 대접받는 일도 있었다
흔들리고 또 흔들려도
누구하나 거둘 떠 보지 않는 꿈
그의 태어난 태생이 쓰레기 더미인 걸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는
갈대처럼 속으로 울었다
울 때마다 그의 배설물이 씻겨 져 나갔다.<휴지통 연가> 일부
이 <휴지통 연가> 시도 휴지통이란 불결한 이미지를 시인 자신의 이미지로 연루시켜 유의미시로 쓴 작품이다. 이 시의 제목과 발상이 흡사 비판시(참여시)를 닮은 듯하나 뒷부분 시행들의 행간의를 살피면 자성(自省)의 의미가 짙은 작품이라고 말하리라
이삭빛의 시창작 솜씨는 이렇게 창조적 상상을 통해 승화된 세계로 남다른(낯설기한) 기법으로 이색적으로 감동을 준다.
가난한 하늘에
머리를 박고 두 손 모아 기도했지
반짝이는 푸른 별을 모아 한 땀, 한 땀
박아가며 스스로 천국을 만들어 가는 파란 손은
촘촘하게 하늘을 끌어당기며
길을 내었지
기댈 곳이라곤 벽이 아닌
떨어질 듯
아슬 한 허공
어릴 적 그는 이미 누군가의 강한 손에
잘려나간 적이 있었지
벽을 믿었던 탓에
허무하게 배신당해야만 했어
허리가 잘려나가도록 혹독한 아픔은
구부려 휘어지는 법을 알게 되고
거머쥔 손을 펴야하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 파랗고 여린 것이 별이 되어 떠오르면서
푸르도록 파란 하늘을 엮어낸
부활의 시간에 다다른 거지. <담쟁이> 전문
그나마도 이 작품만은 담쟁이의 생리를 객관적 상관물(客觀的 相關物 : objective correlatives)로 보고 쓴 작품인가 한다. 그녀가 허무하게 배신당해야 했지만 그러나 그는 담쟁이처럼 허리가 잘려나가도록 혹독한 아픔을 / 구부려 휘어진 법을 알게 되고/ 거머쥔 손을 펴야하는 것을 알게 되었지 / 담쟁이가 벽에 기어오르는 모습을 의의로 나타내어 그 내포성이 퍽 이채롭게 음미된다. 퍽 맛깔라고 읽을수록 공감대를 조성하는 작품이다.
위에서 몇 편의 이삭빛의 서정시를 감상해 본 바와 같이 그녀의 시의 특색은 고운 시어를 선택해서 아름다운 감성시를 쓰는 게 아니라, 그녀는 차라리 거친 언어로 작품의 주제성을 살리기 위하여 그만의 작법을 고집하여 유의미시(有意味詩)를 썼다. 거기다가 그녀의 창조적 상상력은 자기 나름의 천재성을 보여주는데 일몫을 했다고 본다. 퍽 독창성이 돋보여 좋은 평판을 받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일독을 권한다.
1부 이팝나무의 사랑
이팝나무의 사랑
내가 그의 눈빛을 바라보기 전까지
그는
지나가는 한 사람에 불과했다.
김춘수의 꽃이 되기 전까지
그는 단지 이름만 아는 한 사람이었다.
바람이 불어
그의 손짓이 내게 다가왔을 때에도
그는 흔들리는 한 사람이었을 뿐.
달이 기울고
해가 쏟아졌을 때에도
그는 무의미한 바람 소리였을 뿐 .
내가 그의 눈빛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나의 젖은 눈을 닦아내고 있었다.
내가
두 조각의 빵이 필요함을 알았을 때
그는 이미 황후의 만찬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강가에서
별들이 가득내린 강을
보다가 그대를 사랑해버렸습니다.
흔들림이 무언지
반짝임이 무언지
별이 되고 나서야
이제야 깨달게 되었습니다.
꿈들이 피어나는 강을
보다가 그대를 사랑해버렸습니다.
외로움이 무언지
아픔이 무언지
꿈이 되고나서야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움이 내린 강을
보다가 그대를 닮아버렸습니다.
천상의 편지가 그리움으로
읽혀질 때까지
나의
사랑고백은
그리움이 되고나서야
사랑으로 흐를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섬진강 가는 길
-천상소리(잠언)-
가슴에 난 상처를 가진 자
그대는
강가에서 피어난 꽃이라 하네.
바람 불면 그 바람마저
하늘마음으로 품어주는
섬진강의 작은 꽃
아픔의 눈동자를 가진 자
그대는
강가에서 솟아난 별이라 하네.
비가 오면 그 비마저
껴안고서
푸르름으로 빚어주는
섬진강의 작은 별
고통의 줄다리 가진 자
그대는
눈물로 흐르는 순간,
섬진강 가는 길에서
참사랑 찾는다하네.
별
나에게 날개가 있다면
비가 되어 떨어지는
그대의
물방울로 날으리라.
나에게 희망이 있다면
꽃이 되어 날고 있는
그대의
향기로 살아가리라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류시화의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둘이 하나로 영원히
이야기꽃 피울 수 있는 강물이고 싶다.
하늘을 이는 꽃이 되었다가
바람을 벗 삼아
날이면 날마다
낙엽과 함께 대지에 잠이 드는
사랑을 하고 싶다.
가진 것 없어도
사랑만큼은
가진 게 많은 사랑이고 싶다.
비가 오면 더욱더
찬란한 선홍빛처럼
온 마음 꽃피우는 우주이고 싶다.
그래서 나중에는
둘이 하나인지 하나가 둘인지 모르는
외눈박이 물고기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
사랑의 발견
그대가 두 손으로
건네주었지요.
하얀 종이에
곱게 싼 그대의 두근거리는 심장
가슴에 꽃으로
심으셨지요.
빨간 심장은 장미로
향기롭지만
가시에 찔린 내 마음
눈물로도 흘릴 수 없어요.
그것은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사랑의 노래지요.
그대가 두 손으로
건네주었지요.
어둔 밤
떨리는 별빛으로 다가온 심장
가슴에 꽃으로
심으셨지요.
황금빛 심장은 별빛으로
아름답지만
외로움에 젖어버린 내 마음
눈물로도 표현 할 수 없어요.
그것은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사랑의 발견이지요.
기도
오! 주님,
저를 해방시켜 주시옵소서.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달아나
사랑을 줄 수 있는 자로 달려가게 하시옵소서.
그래서 다른 모든 이를 사랑하면서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죄악이 되지 않게 살아가게 하소서.
질투와 고독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고
테레사수녀님처럼 늘 깨어있게 하시옵소서.
그 작은
한 방울의 영롱한 아침이슬이
영혼을 씻어내듯이
저의 모든 죄악을 씻을 줄 아는
작은 눈을 갖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보혈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흔들어 깨어주시옵소서.
오! 주님, 저를 괴롭히고 미워하는 영혼까지도
사랑하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누군가 아침이 되어
이 세상 꽃길을 다 준다하여도
저 자신의 욕망 때문에
사소한 가치마저도
한 순간에 무너트리지 않게 하소서.
그래서 모두가 참세상을 살아가는데
한 발 ,한 발 가슴으로 걷게 하시옵소서.
오! 주님,
오늘은 참다운 눈물로 웃게 하소서.
진정 해방시켜주시옵소서.
꿈꾸는 새
-솟대-
날아 본 기억은 없어도
매일 하늘을 향해 날고 있습니다.
소리 내 운적은 없어도
매일 꿈을 향해 눈물 흘리는
아픔 견디어냈습니다.
바람처럼 흔들리지 않아도
포근한 나무 잎처럼 그대를
안을 수 있는 마음 갖고 있습니다.
언제나
어떤 모습으로 든
오시옵소서.
유한의 시간 저 편
천년의 마음가짐으로
그대를 기다리겠습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하늘을 담고서
그대를 향한 사모곡 정지 된 듯
햇살에 키워내겠습니다.
비오는 날
비가 내리는 날
떠나가는 뒷모습을 본 자는
젖은 우산을 써라
눈물인지 빗물인지 인생인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혼자서 울어라
비 내리는 날
품에 젖은 눈물을 받아 본 자는
젖은 우산을 써라
사랑인지 빗물인지 인생인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사랑하여라.
비가 내리는 날
둘이서도 혼자라면
젖은 우산을 써라
그리움인지 사랑인지 인생인지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그래, 그렇게 울어라.
사막이 온통 사막임에도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어딘가에서
혼자 울고 있는
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울어라
눈이 오거든
그대여 눈이 오거든
그 거리를 걸어라
누구나 갈 수 있지만
누구나 볼 수 없는
그 거리를 걸어라
눈이 우리의 머리를 밟을 때
뜨거운 눈 속을 거닐자
유리알처럼 차가운 머리와
불길처럼 타오르는 가슴으로
온몸을 부딪치자.
그대여 눈이 오거든
그 거리를 걸어라
누구나 손 내밀 수 있지만
누구나 함께 할 수 없는
그 거리를 손잡고 걸어라.
강가에서
친구여
사랑을 하려거든
오래오래
강물에 흩어진 별을 줍거라.
마음 열러 떨어진
눈물로 불을 켜면
네 종이배 강물 따라 별빛으로 흐르리.
더듬더듬
돌아앉은 마음
맨홀 속으로 빠져들 듯
아주 천천히 또는 눈 깜짝할 사이
고백하여라.
강물은 너를 따르고
너는 강물을 쫓고
그리하여
느리게 질리지 않을 깊이를
포개어 흘러라.
친구여
별들이 출렁일 때마다
단 한번만이라도
헤아릴 수 있는 눈길이 있다면
집으로 들어가는 포근함을 누워라
그리하여, 친구여!
느리게 봐라만 봐도
끝이 없는 그 날로 영원한 사랑을 시작하여라.
당신 곁에 있고 싶습니다.
당신의 눈동자 속에
나를 들이고
눈물로 고요히 다가서는
이유는
당신 곁에 있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나를
돌밭에 떨어뜨리지 마시고
오직
당신 곁에 있게 하옵소서.
당신 곁에 있고 싶습니다.
이러한 나를
당신의 푸른 초장에 누이 사
당신으로 하여금
빛나는 별처럼 꽃피우게 하소서.
당신의 눈동자 속에
나를 던지고
뜨거운 그리움 태우는 이유는
당신을 사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사모합니다.
이러한 나를
길가에 버리지 마옵시고
오직
당신 곁에 있게 하옵소서.
당신 곁에 있고 싶습니다.
이러한 나를
당신의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사
당신으로 하여금
향기 나는 꽃처럼 미소 짓게 하소서.
금산사 가는 길 1
-목 메인 사랑아-
하늘의 소리
온몸을 애무하던 날
창하나 만드는 법을 알았네.
그 길을 따라 한 없이
속울음 뿌리면
손 내밀어
베인 눈물 감싸 주던 당신
그 길은 우리만을 위한
주님이 주신
비밀의 정원
목 메인 사랑아,
한 없이 푸르도록 아린
이 세상을 따라
돌다리를 만들자.
세상에 벤 쓰라린
아픔을 꽃으로 축복하자.
우리가 피운 이 꽃길은
금산사 가는 길
우리만의 거룩한 종소리가
들릴 때까지 영원히
창하나 갖고 살자.
금산사 가는 길 1
-목 메인 사랑아-
하늘의 소리
온몸을 애무하던 날
창하나 만드는 법을 알았네.
그 길을 따라 한 없이
속울음 뿌리면
손 내밀어
베인 눈물 감싸 주던 당신
그 길은 우리만을 위한
주님이 주신
비밀의 정원
목 메인 사랑아,
한 없이 푸르도록 아린
이 세상을 따라
돌다리를 만들자.
세상에 벤 쓰라린
아픔을 꽃으로 축복하자.
우리가 피운 이 꽃길은
금산사 가는 길
우리만의 거룩한 종소리가
들릴 때까지 영원히
창하나 갖고 살자.
첫 키스
흔들리며, 흔들리며
별이 되었지.
네 눈물에 씻긴 자국
그 눈물 마시며
무대 위에서 반짝였지.
흔들리며, 흔들리며
꽃이 되었지.
네 눈물에 씻긴 자국
그 눈물 마시며
무대 위에서 향기로웠지
쇼팽의 여인
혁명을 가진 그녀는
비오는 날 커피를
꽃처럼 마신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그녀는 흔들리며
꿈을 꾸지 않아도
그녀는 쇼팽의 날개가 된다.
빛처럼 비가 내리는 날
그녀는 신의 리듬을 밟으며
별을 삼킨다.
별은 비를 맞으며
생애 단 한번
쇼팽의 푸른 눈물이 된다.
2부 - 그대이고 싶다
그대이고 싶다
이제는
발길 닿는 대로 달려가
꽃잎에 이는 그대의 입술
날개가득 품고 싶다.
그물처럼 얽매인 고독을 상실해버리고
풀 향내 옮기는 바람마냥
그대의 산언덕 어루만지고 싶다.
빗방울 떨어지는 아픔으로
사랑을 선택 한다 해도
풀잎비비는 소리처럼
아름다운 사랑에 두 손 얹고 싶다.
만 가지 가질 수 있는 권력보다
강가에 흐르는 별빛의 축제 앞에
오직 그대의 순정이고 싶다.
눈이 오거든
눈이 오거든
그대여,
내 심장을 타고 걸어라
아슬아슬 미끄러지듯
사랑으로 엎드려라
세상은 기울고
사랑은 피어나는 것
눈이 오거든
그대여, 소리 내어 걸으라.
사그락 사그락 내 눈빛에
진주알이 부셔져
눈부심으로 피어날 때까지
영원히 하나 되어 걷자
달빛에 걸린 나무
추운 겨울날
어둠을 등에 메고
달빛은 깨진 창 사이로
울고 있습니다.
뚝뚝 떨어지는
달빛의
눈물을 받아먹던 날
나무는 소리 없이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목숨보다 더 사랑했던
둥지를 버리고
달빛이 울어야하는
아픔을 알았을 때
달의 여신이 강을 건너 듯
나무는
이미 달빛에 걸린
자신은 봅니다.
눈의 고백
몸속의 뼈를 뽑아
불사르고 싶다
불보다도 더 뜨거운 입김으로
그대 입술을 덮고 싶다
당신 어둠의 뿌리
땅 속의 구석구석까지 그대로
스미고 싶다
그대를 안고서
지상의 모든 것들을
하얗게 씻어내고 싶다
가만가만 부드러운 향기로
그대 위한 눈꽃 피우고 싶다.
이애미 주논개
어찌 그대 향기 꽃에 비유할까?
어찌 그 자태 양귀비에 견줄까?
죽어서도 피워나는
불사조의 꽃이거늘
죽어서도 향기 나는
구국의 여신이거늘
세월이 흐를수록 하얗게
다가서는 순결의 자국
푸른 남강에서
그대의 숭고한 정신
시퍼런 사랑의 한으로 굽이칩니다.
부실인들 어떠하며
기생인들 어떠하리오.
애오라지
그대에게 드리고픈 마음
외딴 강 바위에서 홀로 춤추며
열 가락지 굳은 결심
혈혈단신 하얀 무궁화로 피어서
어디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까?
만취한 적장 모곡촌(毛谷村)
이미 그대의 발아래 있었으니
무엇이 그대를 가로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천추의 매운 절개 만고에 붉어
그대는 누구도 꺽지 못할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입니다.
논개생가에서
논개님 눈 떠오리
밤을 향한 별 가로등
뉘 손길 지레 닿아
가슴마다 환한 점등
주촌은 묵상의 고요
달무리가 웃는다.
조용한 그 님소리
남강은 말없이 오고
환생의 강물따라
눈(目)마주친 주논개님
이 나라 순국정신이
품은 듯이 안기네.
아낌없이 주는 나무여
내가 누렸던 꽃길은
그대가 포기해야했던 오늘
그대는 울창했던 거목
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주인공
무작정 받기만 했네.
그대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그대의 창고에 가득했던 보물들을
하나하나 빼먹었네.
그러면서 허물어져버린 그대를
톱질로 잘금잘금 해치워버렸지.
겨울이 없이 봄, 여름, 갈이
저절로 온다고 생각했네.
저녁놀이 지는 언덕에 앉아
쓸쓸한 그루터기를 바라보니
내 찬란함이
그대로 인해 황금빛 세상이었음을 알았네.
그대의 지워진 나이테
죽을힘을 다해 손 내미는
그대의 향기가
온통 꽃송이로 날고 있네.
나는 마지막까지도 그대를 휘감고
왕처럼 쉬고 있네.
나의 눈물 속에 흐르는 별들이 그대위에
쏟아져내려야하리.
바람 찬가
어제의 바람이
그토록 분 이유는
둘이 하나 되기 위해서였다.
오늘 바람이
그토록 또 분 이유는
모든 설움 털어내기 위해서였다.
갈대처럼
함께 흔들리는 모든 것은
사랑에 대한 순종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 앞에서
끝까지 흔들리는 이유도
꺽 이지 않을 사랑을
영원히 나눠 갖고자하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다.
백일홍 저편으로
천국과 지옥이 종이 한 장차이로 뒤엎어지고
일시에 일어난 가시밭길이 잠들지 못한 채로
검은 발자국 업고서 산 너머 산을 돌아온다.
새하얗게 무너져야 봐야 볼 수 있다는 어둠
결국 빛을 끌어당기고 내 마음보다 먼저 자란
산 밑 봉숭아도 피울음 삼켜 꽃을 피운다.
아픔을 가지지 않고는
겨자씨만한 사랑도 만나 볼 수 없다.
기린봉 언덕을 지나 바람을 흔드는 백일홍
그 속에 나의 눈길이 뱀가죽처럼 싸늘하게
기어가고 있다.
새벽바람은 나의 마지막 남은 등짝을 후려치고
‘뒤돌아 산을 올려다보라’한다.
나무 끝에 매달린 심장이 꽃처럼 붉다.
앞서고 있는 남자의 것도 더운 입김처럼 푸르다
남자는 산이다. 백일홍 뒤편으로 흐르는 듬직한 산
산은 옆구리가 시린 계곡을 가지고 있다.
그 속에 손을 넣는다.
내 몸 속으로 빨려 들어온 산은
‘바다 끝까지 흐르고 흘러 다시 이곳에서 함께 하늘 담자 ’한다.
날고 있는 뿌리
온종일 울고 있는 것은 뿌리였다.
뿌리는 안으로 길을 내었고,
안으로 종을 울렸다.
그의 종소리를 듣는 모든 이들은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사람들이
빛을 찾아 떠나는 사이
뿌리는 그들의 땅이 되어주었다.
사람들의 발바닥이 된
뿌리는
때론 멈추고 싶었다.
땅을 갖고 싶었다.
대신 울어 줄 세상을 갖고 싶었다.
날지 않아도 고고하게 날 수 있는
종소리를 갖고 싶었다.
사람들은 말하지 않았다.
날고 있는 종소리가 있다는 것을
감히 입 밖에 쏟아내지 못했다.
오 내사랑, 목련화야
꿈을 찾아 달려야 하는
기나긴 고통이
꿈을 이룬 그 순간 보다
아름다워라
봄에 싹틔우는 아픔보다
겨울에 견뎌내야 하는 아픔이
더 순결하여라
갈라지고 찢어져도
그 속에 싹트는
하나님의 눈빛이
꽃이 되어 말하리니
꽃은 꿈을 찾아
달려야 하는
향기
꿈을 이룬 그 순간 보다
달려가는 고통이 사랑스러워라
아버지, 슬픔은 사랑이에요
꼭 슬픔 때문은 아니지만
아버지를 보러 가자고 졸랐다
이제 갓 돌 지난 아들을 데리고
남편은 흔쾌히 서두른다
기쁨 반 슬픔 반
천천면을 지나 짚은골로 향한다.
학교 다니며 물장구하던 세면다리
다랑이 다랑이 자연 그대로의 눈짓
망초꽃이며 엉겅퀴, 딱쭈나물, 질경이,
가끔 과자 대신 씹고 놀던 시콤달콤한 시금치...
울퉁불퉁 도랑물을 통해
아버지의 굵고 자상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산골 깊은 나무들이 내 얼굴을
깊게 어루만진다.
왜, 내겐 아버지의 기억들로 꽉 차 있는지
산을 오르고 나니
확 트이는 게 음-매 울음 우는 소 떼와
염소, 반갑다고 달려드는 백구
푸른 초원에 아버지의 멋들어진
피리 소리가 이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엄마’, 아들이 가슴팍에 파고들며
이제 막 트인 말로 ‘하부지 하부지’ 한다.
지금은 과수원으로 변해 버린 푸른 목장
아버지의 모습은 이제
저만치 엉겅퀴로 서서 하염없이
딸을 바라보실 뿐...
그래도 군데군데 초지는
추억으로 손을 흔들고 이름 없이
묻혀 갈 짚은골은
사과향기로 우리의 뒷모습까지
아름답게 해준다.
아버지가 들려주시던 옛 이야기들을
아들에게도 꺼내 준다.
아버지, 슬픔도 사랑이에요.
분수 2
희고 투명한 물줄기에서
물의 날개가 파닥이면,
날갯짓하는 속도만큼
짧은 생이 필름으로 되살아난다.
그대의 처음이란
시인처럼 세상을 하늘안경을 쓰고 보는 일,
두 팔을 딛고 발을 하늘에 매달아
물의 빛을 보는 일
겹겹이 계단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게 손으로
질서를 지켜내는 일,
물은 마음으로 다듬고 눈으로 꽃 피우며
부활로 흐르는 일이다.
그대의 뿌리는
빛으로 향을 내는 천사의 운명처럼
숭고한 냄새가 뚝뚝 떨어지며
민들레처럼 물줄기가 향기로 파닥이면
끝내 거룩한 종교로 날고 있는 것이다.
휴지통 연가
언제부턴가 휴지통은 혼자서
울었다. 휴지만 담아야 하는
그의 인생이 처참했다.
그래도 가끔은 신사보다
더 신사다운 인생을 대접받는 일도 있었다.
흔들리고 또 흔들려도
누구하나 거둘 떠 보지 않는 꿈
그의 태어난 태생이 쓰레기 더미인 걸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는
갈대처럼 속으로 울었다.
울 때마다 그의 배설물이 씻겨 져 나갔다.
언제부턴가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신이
세상에 내려오던 날
그는 컴퓨터 안에서도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냈다.
울음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휴지통에 기찻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누구나 손을 씻었고
그와 악수하기를 원했다.
세상사람 누구나
그에게
모든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했고
하늘의 꿈까지도
살 수 있는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가끔은 그 안에 하늘이 스스로
내려앉기도 했다.
물방울 냄새가 난다
물방울 하나,
세상의 짐을 지고
내리막길 벽을 탄다.
사방으로 눈을 가지고
움찔움찔 길을 걷지만
온 세상이 벽이다.
뚝! 벽 아닌 벽이 물방울을
삼킨다.
초록 세상에 붙들려
잎으로 자란다.
와르르 비오는 소리만
들어도
물방울은 파란 손으로
분주하다.
툭툭 손을 흔들면
푸르름이 돋아나는
수채화
그에게선
늘 물방울 냄새가 난다.
봄
내 인생은
어둠의 뿌리에서
씨앗으로
이어진 미로를
더듬거려 올라가는 것
숨 막히는 터널을 뿌리로
잘라내 듯 걸려내는
오로지,
적막함만이 주어진
내 평생을
좁은 길로 무사히
네게 걸어가는 것
말하지 못할 죄악의 껍질을
가슴 끝에서 벗겨내고
빛을 향해
싹틔우는 것
가장 겸손할 때
가장 크게 쓰임 받는
아픔을 이겨 낸
고귀한 이름
따뜻한 미소로 부활해야한다.
3부 양은냄비연가
양은냄비 연가(戀歌)
누구나 만만하게 그를 대했다.
늘 그 얼굴에 그 키,
몽땅 연필처럼 때론 버려지기도 했고,
다른 삶에 끼어져 겨우살이를 하기도 했다.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그는 일만 했다.
세상에 그 보다 못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구부리면 휘어지는 만만한 손,
그의 인생은 심한 관절통처럼 굴곡져 있었다.
그는 겨자씨만한 힘으로 살아갔다.
노랗게 떠서 숨마저 쉬지 않은 채,
하늘도 그를 푸른 손가락으로
휘저었다.
그런 그가 갈라 지지 않고 버티며 살아온 힘은
아무도 몰래 달구어진 고통 때문이었다.
울퉁불퉁 구부러져도 끝내 놓지 않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불길에 놓이면 뜨겁게 달아오르는 연극배우,
그의 본 태생은 배우였다.
죽음에서 축제를 본 순간
그는 모든 이의 꿈이 돼야했다.
세상사람 모두가 그를 그릇만도 취급 하지 않았지만
그는 세상의 밥이 되었다.
그의 비밀은 꿈처럼 아름다웠다.
노란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그는
마지막 여행길에서 조차 추억의 풍경이 되었다.
뜨겁도록 처절하게 숨을 멈출 때까지도
혼불
외로움이 너무 커
불에 태웁니다.
태워도 태워도
꺼지지 않는 외로움이
불같이 일어납니다.
불꽃이 되어 피어나는
꽃은 아무도
꺽을 수가 없습니다.
혼자임이 두려워
바람이 됩니다.
흔들려도 흔들려도
당신은 더욱 뚜렷하게
피어납니다.
그리움으로만
피어나는 꽃
당신은 아무도
가질 수 없는 선혈 꽃입니다.
금산사 가는 길 2
-김춘수의 꽃-
창하나 내지 못하고
새장의 새가 되어
퍼덕이던 날
어떤 고운 손이
그 새를 꺼내들고
인적 없는 산길에 데려와
나는 법을 가르쳤네.
처음엔
피울음 토하며
괴로워하다
하늘을 향해 돌진하는
키 작은 새
그 새가 퍼덕이던 아픔만큼
꽃으로 피어버린
금산사 가는 길
오늘 그 길에서
주님의 보드라운 입맞춤에
종소리 따라 날고 있는 새,
새는 이미 자유롭게 피고 있는
김춘수에 꽃이 되었네.
담쟁이
가난한 하늘에
머리를 박고 두 손 모아 기도했지
반짝이는 푸른 별을 모아 한 땀, 한 땀
박아가며 스스로 천국을 만들어 가는 파란 손은
촘촘하게 하늘을 끌어당기며
길을 내었지
기댈 곳이라곤 벽이 아닌
떨어질 듯
아슬 한 허공
어릴 적 그는 이미 누군가의 강한 손에
잘려나간 적이 있었지
벽을 믿었던 탓에
허무하게 배신당해야만 했어.
허리가 잘려나가도록 혹독한 아픔은
구부려 휘어지는 법을 알게 되고
거머쥔 손을 펴야하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 파랗고 여린 것이 별이 되어 떠오르면서
푸르도록 파란 하늘을 엮어낸
부활의 시간에 다다른 거지.
강가에서
어둠 속에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님은
어둠을 가진 자만이
만날 수 있는
별빛을 안겨준다.
사랑은
강 건너 풀잎들이 돋아나는
서러움이라며
따뜻한 시선으로
귀 열게 하고
강은
이산 저산 누구도 가 닿지 못할
사랑을 연결하려고
까만 밤 돌아앉은 산들도
다독인다.
그리운 것들은 모두 작은 점 끝에서
시작되듯
사랑도 모두 작은 어둠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어둔 밤
강물은 사랑으로 침묵한다.
봉숭아의 기도
제 작은 몸뚱이로 제 살을
도려내어
몸속에 종을 울린다.
수 만 번 울려도
가 닿지 못하는 담 너머 세상
수 겹의 아픔으로 둥글게 새우등처럼
세상을 안으면
어디선가 다 비우고 난
제 헛기침 같은 인생을
담 너머 세상,
저 편에서
벗은 발로 뛰어나와
달콤한 혀를 내미는
최초의 세례
‘봄이 둥글다.’
강
나는 지금 집으로 간다.
깜깜한 골목을 돌아
하얀 무더기 꽃밭을 지나
사랑의 고갯길이 넘고 넘어서
하염없이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집? 그 커다랗고
아득한 집!
집, 나는 집으로 걸어 들어간다.
또다시
하얀 무더기 꽃밭을 지나
나보다도 버거운 산을
등에 업고
하염없이 집으로
축복처럼 빨려 들어간다.
아! 이 보다 달콤한
고통이 어디 있으며
이보다 자유분방한
사랑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지금
집으로 가는 중이다.
명주골을 지나며
햇살이 창문 틈으로
말려가고
도당산의 치맛자락 끝에서
베짜는 소리
황금빛으로 휘감아 돌면
선비들이 짠 명주
붉은 잎사귀에 산흙 내음
그림이 되고
천상의 옷자락
오가는 사람들 입에서
저절로 울려 퍼져
이름 없던 마을
명주골이 되었네.
그 노랫가락 세상 밖으로
뭍 사연 실어 나르다
일제 놈들 등살에
공동묘지 줄지어 들어서니
하나 둘
명주골 마을 떠나가네.
아득한 시간 도당산
명주골에 내려놓으니
지금은 윗비단 이라는
명칭 속에
시간을 걸려내어
패션의 명주골
어이 아니 이어 가리
도당산 위에서 두 손 모으는
햇살 한줌.
명주골 의류상가에
조용히 깃드네.
기린동네 보물탐험대 - 스토리텔링 시
바위와 소나무
- 모악산의 전설-
모악산 오솔길 따라
빛들이 한 잎 두 잎
미끄러질 때
빛의 잎사귀 강물처럼 드러눕고
수줍은 입술에 와 닿은
지상의 꽃 소리
파란 심지 켜 불꽃으로
무대를 열면
어느새
그 속으로 손 내민 금지 된
쪽빛 하늘
불꽃에 장단 마쳐
모악산에 깃을 세우니
‘저것 봐 바위와 소나무
저 둘 만의 우주에서 하나 된 풍경........’
모악산의 벌거벗은 몸뚱이
무화과 잎으로
얼굴 가릴 때
죄악으로 심어진
금지된 손길
소나무와 바위에게
공동묘지 갈 때까지
벙어리 되라하네.
다시
천상의 이야기가 흐르면
바위는 소나무 되어
‘하늘에 오르라’는
명을 받들고. (2009)문화예술 -스토리텔링 時
관찰
색 바랜 5층짜리 아파트에서 기름때 낀 아저씨가
걸어 나온다. 너덜 한 옷들이 제각기 삐져나온 찌든 얼굴.
아침부터 고개가 땅에 떨어져 있다.
이른 새벽 찬 기운이 빠르게 속도를 내고
쓰레기 꾸러미는 화가 난 듯 눈알이 튀어나와
간신히 밥알을 주워 먹고 있다.
바지가랑이 기어가고
헤진 잠바가 늙은 천으로 군데군데 기억이 희미해지면,
힘없이 출근을 하는 그의 모습,
공기에 멱살을 잡힌 채 군소리 못하고 끌려 나간다.
아저씨 등을 따라 나와 눈을 훔치고 있는 사내아이.
아직 떠지지 않은 눈꺼풀로 아저씨 뒤를 엉켜 쥐면,
손바닥만한 햇살 어김없이 문을 열고,
출근길 차들의 속도를 가중시키는 변두리가
도시의 하늘을 화장하는 연습을 한다.
새롭게 단장하는 ‘세바’라는 술집 간판이 얼굴을 빼곡히 내밀고
인조로 된 속눈썹을 과시하고 있다.
야윈 아저씨의 뒷모습과 사내아이의 거리가 시간을 늘리고
그 사이 계집아이를 업고 나온 아줌마가
울고 있는 사내아이 머리를 지 박고는 사정없이 블랙홀로 빠져든다.
진달래
파드닥 날개 짓 하는 소리에
그대의 첫날임을 알았습니다.
가만히
아주 조용히 하늘을
여는 소리에
내 눈도 그대의 눈 속에
가닿은 것을 알았습니다.
아! 오묘한 그대의 떨림이
온몸으로
따뜻해집니다.
태초에 대지가 울리듯
나또한 당신으로 인해
첫 생을 열 듯
아름다움으로
살고 싶습니다.
빛이 내려앉은
당신의 뜻 깊은 자리가 오늘부터
모든 이의 가슴속에도
축복입니다.
바람 찬가
어제의 바람이
그토록 분 이유는
둘이 하나 되기 위해서였다.
오늘 바람이
그토록 또 분 이유는
모든 설움 털어내기 위해서였다.
갈대처럼
함께 흔들리는 모든 것은
사랑에 대한 순종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 앞에서
끝까지 흔들리는 이유도
꺾이지 않을 사랑을
영원히 나눠 갖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다.
애절한 노래
초록이 어둠에 감겨들고
풀잎에 떨어지는
소낙비
콩 볶듯 톡톡 튕기며
솟아나는
님의 정겨운 목소리
소나기는 하늘에서 내리는 게 아니라
님의 심장에서
달려오는 애절한 노래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어둠의 눈에서
맨 몸으로 달려가
끌어 앉고 싶은 이유는
투명하게 내리치는 소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나를 찾는
그대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모악산을 바라보며
바람이 미끄러지도록
차가운 날,
바위 뒤에 서있는
한 그루 나무 밑에 앉아
식은 빵을 먹었지
손 하나 대지 않고 먹는
그 빵은 달콤하다 못해
하얀 눈물이었어.
눈물이 쏟아질 때마다
그대는 내 눈물 받아
지나온 세월의 이끼를 닦아내며
믿음과 생명을 털어놓았지.
그리운 사람아,
지금 그 모악산을 바라본다.
무너진 풍경
유통기간 지난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무너진 눈물일 뿐,
유통기간 지난 사랑은
더 이상 눈물이 아니다.
굳어버린 껍데기일 뿐.
4부 중독에도 슬픔이 산다
중독에도 슬픔이 산다
순한 양이 변해서 왜 늑대가 될까?
소주잔의 영혼에서 술이 밖으로 나올 때
늑대의 검은 눈도 빠져나간다.
오래 전 여자의 일생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슬픔에서 발효되어 부풀 때
힘센 남자의 그림자가
그녀를 마셔버렸다.
그 집에 사는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
어둠의 골짜기에 취한 채 중독을 마시고 또 마신다.
중독은 슬픔의 터널이다.
늘 차가운 터널에 사는 그 여자는
뻣뻣하게 굳어버린 눈물을 몸 밖으로
빼내지 못하고 슬픔을 키운다.
키우면 키울수록 여자는
늑대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늑대가 된 여자는 끅끅
순한 양을 삼키며 슬픔이 된다.
쓰나미 전
머리를 풀어 헤친
여자가
물기 촉촉한 남자에게
귀에 꽂은 꽃을 건넨다.
처음으로 받는 꽃송이에
남자는
여자가 미친 여자라는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을 오를 때도
일을 할 때도
아내와 마주칠 때도
여자는
싱싱한 고기처럼
남자의 눈에서 파닥거렸다.
남자네 집
앞마당에 잡초가
있다는 것도 까맣게 몰랐다.
봉숭아 같은 여자를
어떻게든
아삭아삭 씹어 먹고 싶은
생각에 남자는
미로 같은 개미 동굴을
찾았다.
여자도 그 속에서
함께 세계를 먹어치웠다.
그새 앞마당에 잡초는 꽃송이를
먹어 삼켰고
폐가처럼
변해버린 기둥들이 눈알을
부라리고 남자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아카시아 길
5월을 가졌습니다.
그대는 차를 멈춰 세우고
하늘의 별을 따줍니다.
별에서 아카시아 향 가득합니다.
어쩌면 좋아요?
그대의 키스도 아카시아향인걸요!
산그늘에 묻힌 강江
강 밑바닥 푸른 살결로
가만가만 읊었던 꽃잎아
등 휜 낮달로
저 홀로 흐르는 날이면
네 눈빛
꽃 방울 터트린 그 자리
어느새 푸른 네 꽃노을
산산이 부서진 무대가 되고
그 속에서 빨려 들어가는
블랙홀 안에서
흩어진 잎사귀
어디서 무얼 하며
사랑 밖으로 흘러가는가?
언젠간 산모퉁이 돌면
할머니 해수기침 소리로
다가들 그 날을 봐라
짙푸른 강물로 홀로 흐르리라
틈새
폼 나는 집한 채를 끌고 나와
시동을 건다.
흔들리는 그네처럼
아찔한 유혹의 멀미가
뜨겁다.
그녀를 본 순간
열아홉 순정이 불붙듯
타오른다.
두근거리는 소리는 쉴 새 없이
귓전에서 곤두박질치고
아내의 압력밥솥 같은
듣기 싫은 끓어오름이
온 몸을 찢고 나온다.
더 이상은 멈출 수 없다.
압력솥의 추가 돌고 있다.
아내도 돌아서
머리박고 자폭했겠지.
그래야 멈출 수 있었을 테니까
할 말을 찾아
그녀를 붙잡는다.
오늘이 아니면
그녀는 나에게 있어
단지 보이는 마네킹일 뿐이니까.
반항
사랑을 하다 문득,
예수를 알게 되었지.
죽도록 눈물 흘리며
회개했어.
그런데 말야.
예수는 자기만 사랑하다
죽음을 택하래.
겨우 반년 살았는데
슬픈 죄악 구조론
남편이 다른 집 빵을 먹고 왔어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길들여진 짜고 쉰
김치를 먹네.
아내도 다른 집 빵을 먹고 왔어
그리고 집에 돌아와선
김치를 먹네.
처음에 그 들은 갓 구운
빵으로 서로를 향해
부풀어 올랐어
달콤한 빵은 언제나
부드러워 한시도 먹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어.
때론 둘이 하나의 빵이 되어
둥글게 둥글게
지구를 돌고도 남을
사랑을 했어
그런데 지구에 번개가 치던 날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껍데기인 채
딱딱한 빵을 내밀기 시작했지.
노아의 방주가 시작 된다 해도
알아도 모른 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그들은 거품 같은 크림을
찾아 나섰지.
남편이 다른 집 빵을 먹고 오면
아내도 함께 다른 집 빵을 먹고 왔어.
세상에 여자와 남자는
부푼 빵을
먹으면 더 허기진다는 것을
알아도 모른 채 길들여갔지.
사랑한 죄
집하나 만들지 못하고
그대를 사랑한 나는 범죄자였다.
뿌리칠 수 있었고
밀어낼 수 있었고
잘라낼 수 있었는지 모른다.
교회 문을 나설 때도
허공을 껴안은 채 그대를
끌어당기고 있는 나,
그대의 심장에 못을 박지 않았어도
가능했는지 모른다.
신은 말했다.
사랑에 취한 가난한 죄악이라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중독증이라고
나의 슬픈 사랑은 비처럼 흘러내렸다.
두 손 모으고 기도하면
그 속에서 나를 하얗게 지우고 있는 소리
어느 곳에도 없는
아니, 늘 함께 있는
아득한 내가 달려간다.
만지려고 다가서면 슬픔으로 떨어지는
그대, 그대 앞에 털썩 꿇어버린 두 무릎
그대의 털끝하나 만지지 못하고
추락해 버린 사랑
그대를 사랑해 버린 속도마저
나에겐 죄악이었다.
세상
-제1막
빗속에서 옷을 벗고
춤을 추는 저 여자
모두들 걸쭉하게
욕을 토하고 있지만
뚝뚝 떨어지는 여자의 세계를
침을 흘리고 빨고 있는
저 늑대만도 못한 놈들
돈을 신나게 뿌리고 있는
폼 잡는 저 남자
모두들 돈 갖고 장난친다고
손가락질로 난도질하지만
그 남자의 모든 걸
낼름낼름 숨 가쁘게 받아먹고 있는
저 화냥 년 보다 못한 년들
할매
할매한테
돗나물 울며 겨자먹기로
샀습니다.
시간이 없어 눈으로만
먹었습니다.
돈은 그냥 흘렀지요.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나
화단 풀밭에 뿌려졌습니다.
할매께서
우리 가게에 또 오셨습니다.
2,000원...
돈은 먼저 드렸지요.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
할매께서 또 오셨습니다.
할매는 돈을 받지 않고
그냥 먹으라네요.
시계꽃
비바람이 불었지.
그녀는 마구 흔들렸어
그리고 그녀는 정신을 잃었지.
속도가 지구를 몇 바퀴 돌았을 때
그녀는 고개를 겨우 내밀었지.
빛은 그녀위에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어.
그녀의 인생이 다시 부활하듯
그녀는 하얀 마음 그대로
하얀 꽃이 되었지.
꽃이 된다는 것이
그의 영혼을 파는 거라는 걸
몰랐어.
모든 것을 다 준 빛에게
그녀도 모든 걸 다 바치고 싶었지.
그런데
그는 어둠이 필요한 빛이었지
그녀의 빛은 서서히 어둠을 향해
돌아가기 시작했어.
그 때부터 그녀는 쉬지 않고
빛을 베먹은 원죄 때문에
판에 박힌 아픔으로 하염없이
돌고 도는 꽃이 되었지.
장사집
어제는 목사님이
우리가게에 오셨지
오늘은 스님이
우리가게에 오셨어
내일은 신부님이
우리 가게에 오실거래.
교회는 절대 스님을 부르지 않고
성당은 절대 목사님을 부르지 않고
절은 절대로 신부님을 부르지 않지.
돈 때문에
가리지 않고
다 모시네.
여기가 차별대우 없는
천국 인가봐.
분수 1
하얀 물거품을 물고 올라서기 위해
너를 지운다.
물줄기의 속도는 오직 치열이다.
사랑도 순수도 감춰 버린 생전의 꿈이
한꺼번에 튀어 오른다.
사랑에 한 번 배신당한 자는
허공이라도 들이 받고 솟구쳐야한다.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든지
웅덩이로 어둠을 살라먹고 살아가든지
선택은 극단적 이어야한다.
하늘도 밟고서 꼿꼿하게 서고 있는
저 양의 탈을 쓰고 있는
괘심한 양심마저도 눈물로 베어 먹어야한다.
운명의 신이 떨어지기 직전까지
오르지 목숨을 걸고 올라서야만 한다.
그 것이 너를 철저하게 밀어내는 일
끝까지 너를 거스르는 일이다.
해바라기 사랑
상큼한 웃음을 쏟아내는
활짝 핀 해바라기
너의 온기를 빨아들이면
너의 슬픔도 딸려온다.
회색빛 씨앗 속에
층층이 쌓인
고통의 모자이크
그건 사랑의 약속이다.
보일 듯, 잠길 듯 영글어가는
희생
사랑은 어둠과 밝음
그 어디쯤에 서 있는 신의 얼굴이다.
망초꽃
아침 해가 단장하고 나온
길모퉁이에서
하얀 이 드러내고 여름이 탄생한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아이가 머리를 내밀 듯
조용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한여름의 싱싱함을 위해
불같이 타오르는
조건 없는 어미 품 사랑을 위해
방긋 웃어 주고 있는 아이
산모의 고통보다 몇 배 더
고통을 견디고 나온
죽음보다 큰 것은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러나
아가의 웃음은 삶이라는 것
오늘은 어미의 사랑을 받으며
세상 속에 호흡하고 있다는 이유로
한 생명 인으로서
열심히 걸음마를 걷고 있다
저 환한 모습으로
저 길모퉁이 이름 없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날
귀뚜라미 소리
그물사이로 스며들고
온 세상이 그물망으로
엉켜
흔들리고 있다.
잠까지 내던 진날
나를 따라 온 길들이
눈덩이처럼 커져
뒤뚱거린다.
“사는 게 뭐니?”
어두운 발자국
소리 없이 캐묻고
크나큰 산하나 집어 삼킨다.
고독 그리고 그리움
겨울
비가 내린다.
낙엽이 구르고
땅이 뾰족이 얼음 번개를 친다.
온몸이 얼음장처럼
시퍼렇게 질려
마술에 걸린 듯
어제의
가슴팍에 울다 남은 눈물이
소리 없이 흐른다.
유리문 안으로 김이 오르고
혼자 걷는 황야 속으로
시리도록 메워진 그대의 입김이 불어온다.
아! 그대 참으로 아는가 모르는가?
겨울비 속에 그대 눈이 있음을
그래서
더욱 소리 없는 종소리로 살아가야 하는
의미를
그대 참말로 아는지 모르겠다.
날고 있는 뿌리
온종일 울고 있는 것은 뿌리였다.
뿌리는 안으로 길을 내었고,
안으로 종을 울렸다.
그의 종소리를 듣는 모든 이들은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사람들이
빛을 찾아 떠나는 사이
뿌리는 그들의 땅이 되어주었다.
사람들의 발바닥이 된
뿌리는
때론 멈추고 싶었다.
땅을 갖고 싶었다.
대신 울어 줄 세상을 갖고 싶었다.
날지 않아도 고고하게 날 수 있는
종소리를 갖고 싶었다.
사람들은 말하지 않았다.
날고 있는 종소리가 있다는 것을
감히 입 밖에 쏟아내지 못했다.
담쟁이2
가난한 하늘에
머리를 박고 두 손 모아 기도했지
반짝이는 푸른 별빛을 모아
한 땀 한 땀 박아가며
스스로 제 길을 열었지.
총총한 발걸음으로
허공에 내달렸지.
기댈 곳이라곤
아스라한 무위의 절벽
어릴 적 그는 이미 누군가의 강한 손에
잘려나갔지.
그래서
구부려져 움켜지는 법을 배웠지.
그 파란여린 싹이 푸른 별로 떠오르면서
파란 하늘을 엮어 부활했지.
-경춘전철 시화전-
신앙적 사랑에 대한 극복과 찬미의식
-이삭빛 시집을 읽고
김경수(시인 ․ 문학평론가)
여름 꽃이 활짝 폈다.
비를 그치게 하는 시가 있다면
인간의 욕망일까?
올여름은 일백년 만에 쏟아진 하늘 뚫린 물 폭탄으로 사람 사는 세상이 온통 쑥대밭으로 변했다. 그 쑥대밭에서 흘러나오는 유난히도 가슴을 울리는 소리가 가끔은 자연이 보여주는 인간성에 대한 소박한 신뢰 “살아야 할 이유”의 애타는 울부짖음이다. 형체도 없이 사라진 보금자리, 그 바닥에서의 삶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이유를 말해주는 사람은 없을까. 마중물과도 같은 사회적 관심과 성찰에 대한 성숙미-이를 테면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거이니라’ 는 기독교적인 말씀이 이 여름의 현실을 그나마 우리들의 삶에 빛으로 다가오게 한다. 만약 이런 상황 속에서 낭만적 사랑을 찬양하거나 사라진 자연을 노래 한다는 것은 무의미 한 자기 위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세계 문학사를 살펴보면 기독교적 정신이 문학에 끼치는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는다. 신곡(神曲)을 쓴 단테를 비롯하여, 셰익스피어, 밀턴, 유고,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T. S 엘리엇에 이르기 까지 서양문학 작품의 주제는 대부분 기독교적 이미지 색채가 짙다고 볼 수 있다. 한국 문학사를 보면, 이름만 들어도 가슴에 울림을 느끼게 하는 지성(至聖)과 순수의 맑고 깨끗한 시세계를 보여 주는 윤동주를 비롯하여 다형(茶兄) 김현승, 김요섭, 최민순 신부 등 많은 기독교적 사상을 지닌 시인들이 많다. 이러한 사실만 보아도 종교적 의미의 문학이 현대시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필자의 생각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작가나 시인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의식적이든 무의식 적이든 자신의 작품에 나름대로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것은 크리스천 작가의 임무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에 첫 시집을 상재하는 이삭빛 시인의 작품에서 그의 시의 깊이는 알 수 없으나 우선 작품에서 나타나는 긍정적인 요소들을 발견 할 수가 있다. 그의 긍정의 시적 원류는 자신에 대한 내부 지향성에 있다 할 것이다. 그것은 그의 삶속에 깊이 흐르는 신앙의 깊이가 한 몫을 차지하고 있으며, 는개에서 피어오르는 아침 햇살처럼 푸른 희망을 끌어올리고자 하는 날갯짓이 있음이다. 또한 이는 그간의 이삭빛 시인의 이력들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사회적 관심과 사회 활동에 어느 정도 접근하였으며 그 사회적 활동이 얼마나 인간구원에 관련하여 구매적(購買的) 가치의 메시지를 전달 할 수 있느냐를 관찰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의 소리
온몸을 애무하던 날
창하나 만드는 법을 알았네.
그 길을 따라 한 없이
속울음 뿌리면
손 내밀어
베인 눈물 감싸 주던 당신
그 길은 우리만을 위한
주님이 주신
비밀의 정원
목 메인 사랑아,
한 없이 푸르도록 아린
이 세상을 따라
돌다리를 만들자.
세상에 벤 쓰라린
아픔을 꽃으로 축복하자.
우리가 피운 이 꽃길은
금산사 가는 길
우리만의 거룩한 종소리가
들릴 때까지 영원히
창하나 갖고 살자.
<금산사 가는 길 1(-목 메인 사랑아)> 전문
이처럼 시인에게 있어서 시는 일종의 신앙적 일체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체험적인 일체감이 고려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시적 상상력과 순수성은 그의 시적 세계가 추구하는 신앙적 세계가 지니는 순수성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위 시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의 창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그가 환상이든 실상이든 바라는 것들에 대한 일체감을 얻으려 일단은 노력한다는 것이다. 하늘의 소리/온몸을 애무하던 날/창하나 만드는 법을 알았네// ---베인 눈물 감싸주던 당신/ 그 길은 우리만을 위한/주님이 주신/비밀의 정원// 1연과 2연에서 보여주듯이 그의 신앙적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요소로 마음의 “창”이 등장한다. 이“창”은 바로 어지럽고 힘든 현실세계에서 좌절하지 않고 시대의 아픈 요소들을 푸르도록 아리게 껴안는 작가의 소망이자, 삶의 활력을 주는 사랑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부제에 -목 메인 사랑아-를 말함으로써 말씀의 생명화, 사랑의 언어화를 표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바람이 미끄러지도록
차가운 날,
바위 뒤에 서있는
한 그루 나무 밑에 앉아
식은 빵을 먹었지
손 하나 대지 않고 먹는
그 빵은 달콤하다 못해
하얀 눈물이었어.
눈물이 쏟아질 때마다
그대는 내 눈물 받아
지나온 세월의 이끼를 닦아내며
믿음과 생명을 털어놓았지.
그리운 사람아,
지금 그 모악산을 바라본다.
<모악산을 바라보며>전문
이 시는 모악산을 바라보며 성서에 나오는 감람나무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과 예수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스케치한 한 폭의 그림이다. 1연-한 그루 나무 밑에 앉아 /식은 빵을 먹었지. 2연-손 하나 대지 않고 먹는/그 빵은 달콤하다 못해/하얀 눈물이었어. 이처럼 시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전주 모악산을 바라보며 일방적인 대화를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밝힌다. 3연-눈물이 쏟아질 때마다/그대는 내 눈물 받아/지나온 세월의 이끼를 닦아내며/믿음과 생명을 털어놓았지./4연-그리운 사람아/ 지금 그 모악산을 바라본다. 이 시는 배경으로서 기독교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을 뿐 아니라, 곧 그의 신앙과 문학을 요약한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의 힘든 삶속에서 믿음을 재생시키고 삶의 활력을 찾는 만큼 시인에게 있어서의 모악산(신앙에 대한 믿음)을 바라보는 마음은 그가 살아가는 중요소로 나타나고 있다. 그의 작품을 보도록 하자
사랑을 하다 문득,
예수를 알게 되었지.
죽도록 눈물 흘리며
회개했어.
그런데 말이야.
예수는 자기만 사랑하다
죽음을 택하래.
겨우 반년 살았는데
<반항> 전문
이 시에서 작가는 어쩌면 이렇게까지 자기 부정을 통하여 시적 상승을 도모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긴 이야기를 해야 함에도 그리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시 한편을 성실하게 이해해야 하는 것만으로도 시평의 언어는 한 없이 무기력 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보듯이 이삭빛의 시가 과감성과 솔직성에서 우선 경이로움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는 자기만 사랑하다/죽음을 택하래(3연2~3행)라는 전면적 거부의 솔직한 표출은 스스로 대담성을 보이지만, 눈여겨 볼 사항은 결코 그 기준이 시인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는 것이다. 사랑하다 문득/예수를 알게 되었지(1연)//죽도록 눈물 흘리며/회개했어(2연).
이삭빛 시인에게 있어서 시를 짓게 하는 동기가 믿음 의식 속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작품들은 이삭빛 시인의 신앙적 문학관을 통해 나무랄 데 없는 순결한 사람의 여심으로 현실세계를 아름답게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를 확인하는 것이다. 또한 신앙적인 자신의 모습을 죽도록 눈물 흘리며 회개 하는 반어적 표현 속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시인의 의식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다음에서 보는 이삭빛 시인의 또 다른 면모의 작품을 보도록 하자
누구나 만만하게 그를 대했다.
늘 그 얼굴에 그 키,
몽땅 연필처럼 때론 버려지기도 했고,
다른 삶에 끼어져 겨우살이를 하기도 했다.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그는 일만 했다.
세상에 그 보다 못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구부리면 휘어지는 만만한 손,
그의 인생은 심한 관절통처럼 굴곡져 있었다.
그는 겨자씨만한 힘으로 살아갔다.
노랗게 떠서 숨마저 쉬지 않은 채,
하늘도 그를 푸른 손가락으로
휘저었다.
그런 그가 갈라 지지 않고 버티며 살아온 힘은
아무도 몰래 달구어진 고통 때문이었다.
울퉁불퉁 구부러져도 끝내 놓지 않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불길에 놓이면 뜨겁게 달아오르는 연극배우,
그의 본 태생은 배우였다.
죽음에서 축제를 본 순간
그는 모든 이의 꿈이 돼야했다.
세상사람 모두가 그를 그릇만도 취급 하지 않았지만
그는 세상의 밥이 되었다.
그의 비밀은 꿈처럼 아름다웠다.
노란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그는
마지막 여행길에서 조차 추억의 풍경이 되었다.
뜨겁도록 처절하게 숨을 멈출 때까지도
<양은냄비 연가(戀歌)>전문
양은냄비란 사물의 결손의식을 시 정신으로 이해하려는 작품으로 의인화를 통해본 양은냄비의 일생을 말하고 있다. 이는 세상에 보잘 것 없고 제대로 된 대접도 받지 못하는 약자들에 대한 투철한 결손의식으로 설정한 사회현실의 탐구는 결국 달구어진 고통 때문이라는 시인의 시구처럼 자신에게 무섭도록 자아성찰을 요구하고 또 이를 감행하면서 세상의 밥이 된다는 것이다. 즉, 슬픈 족속들을 위하여 애정의 눈길을 쏟는다. 이 또한 시작의 모티브는 기독교적 사랑이 녹녹히 내면에 흐르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파스칼이란 사람은 신앙은 이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라 했던가. 이러한 모습들의 시인들은 어느 날- 어떤 시간에- 어떤 형상으로든, 시적영감 (inspiration)을 얻는 순간부터는 아주 약한 이성적 의식의 통제를 받는다는 사실인데, 이 이성적 의식의 통제는 그 보다 훨씬 강한 감성의 흐름에 따라 시를 쓰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할 것이다. “그런 그가 갈라 지지 않고 버티며 살아온 힘은/아무도 몰래 달구어진 고통 때문이었다./울퉁불퉁 구부러져도 끝내 놓지 않는 자존심 때문이었다.”(3연5,6,7행) 이처럼 이삭빛 시인의 시작 태도로 보아 여인의 신앙적 사랑에 대한 극복과 찬미가 시 창작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할매한테
돌나물 울며 겨자 먹기로
샀습니다.
시간이 없어 눈으로만
먹었습니다.
돈은 그냥 흘렀지요.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나
화단 풀밭에 뿌려졌습니다.
할매께서
우리 가게에 또 오셨습니다.
2,000원……
돈은 먼저 드렸지요.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
할매께서 또 오셨습니다.
할매는 돈을 받지 않고
그냥 먹으라네요.
<할매>전문
위 작품은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할매’ 라는 단어의 속성에 있다. 왜 굳이 할머니라는 표준어가 아니고 ‘할매’라는 전라도 방언을 사용하였는가 이다. 이는 시인의 의도대로 시의 의미를 가중 시키는 촉매 역할로써의 여인과 수줍어 머뭇거리는 ‘나’라는 인간으로서의 가족이라는 점에서 동질성을 보인다 할 것이다. “2,000원……/돈은 먼저 드렸지요.”(3연3~4행) “사흘이 지나/할매께서 또 오셨습니다./할매는 돈을 받지 않고/그냥 먹으라네요.”(4연2~5행) 이는 그리스도의 신앙적 사상으로 희생함으로써 ‘행복’의 동질성을 은유적 표현으로 강조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이처럼 이삭빛 시인의 시의 주제는 믿음과 사랑을 실현 하려는 구도자적 자세를 취하고 있음이 전 작품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음이다.
어제는 목사님이/우리가게에 오셨지/오늘은 스님이/우리가게에 오셨어/내일은 신부님이
우리 가게에 오실거래./교회는 절대 스님을 부르지 않고/성당은 절대 목사님을 부르지 않고
절은 절대로 신부님을 부르지 않지./돈 때문에/가리지 않고/다 모시네./여기가 차별대우 없는 /천국 인가봐.(장사집 전문 )
제목이 가리키는 바와 같이 어느 장사집 풍경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동질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진취성과 퇴영성으로 대립을 이루고 있다. 돈이 되면 무엇이든지 다 좋아하는 장사집 주인의 심정과 그 풍경을 바라보는 크리스천으로서의 자아확립 심정이 그것이다.
가난한 하늘에
머리를 박고 두 손 모아 기도했지
반짝이는 푸른 별을 모아 한 땀, 한 땀
박아가며 스스로 천국을 만들어 가는 파란 손은
촘촘하게 하늘을 끌어당기며
길을 내었지
기댈 곳이라곤 벽이 아닌
떨어질 듯
아슬 한 허공
어릴 적 그는 이미 누군가의 강한 손에
잘려나간 적이 있었지
벽을 믿었던 탓에
허무하게 배신당해야만 했어.
허리가 잘려나가도록 혹독한 아픔은
구부려 휘어지는 법을 알게 되고
거머쥔 손을 펴야하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 파랗고 여린 것이
허공에 오르면서
죄악은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푸르도록 파란 하늘을 담아내는
그는
예수처럼 부활의 시간에 다다른 거지.
<담쟁이>전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삭빛 시인에게 있어서 시를 짓게 하는 동기는 ‘기독교사상’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가난한 하늘에/머리를 박고 두 손 모아 기도했지.(1연1,2행) 스스로 천국을 만들어 가는 파란 손은/촘촘하게 하늘을 끌어당기며/길을 내었지(1연4~6행) 우리는 여기서 ‘가난, 하늘, 기도’같은 단어들이 무엇을 상징한 것이냐를 번거롭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분명한 것 한 가지는 ‘기도’라는 의지 대상의 사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벽을 믿었던 탓에/허무하게 배신당해야만 했어./허리가 잘려나가도록 혹독한 아픔은/구부려 휘어지는 법을 알게 되고/거머쥔 손을 펴야하는 것을 알게 되었지”(2연6~10행) 이는 믿었던 탓에 허무하게 배신도 당한 예수의 생애를 통해 부끄럼 없는 세상을 보는 시인의 눈일 것이다. “죄악은 허물어지기 시작했고/푸르도록 파란 하늘을 담아내는/그는/예수처럼 부활의 시간에 다다른 거지”(3영3~6행) 이처럼 벽에 달라붙어 살아가는 담쟁이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와 일치하되 가장 낮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기독교적 윤리의식을 그 바탕에 형성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대에 시를 쓴다는 일은 높은 계단을 헐떡이며 오르는 숨 가쁜 소리이며 인간관계의 삶속으로 한 발 한 발 진지하고도 엄숙하게 조심스레 다가가는 일이다. 그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틈새, 그 틈새로 바라보는 세상은 작은 시각으로 보편화 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거나 잃어버리고 있었던 의미들이 외적인 모습들로 소통으로 환유의 기능을 하지만 시인의 눈은 한층 격렬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지금부터는 앞에서 살펴본 작품들과는 다른 느낌의 시인의 시세계를 들여다보도록 하자.
폼 나는 집 한 채를 끌고 나와
시동을 건다.
흔들리는 그네처럼
아찔한 유혹의 멀미가
뜨겁다.
그녀를 본 순간
열아홉 순정이 불붙듯
타오른다.
두근거리는 소리는 쉴 새 없이
귓전에서 곤두박질치고
아내의 압력밥솥 같은
듣기 싫은 끓어오름이
온 몸을 찢고 나온다.
더 이상은 멈출 수 없다.
압력솥의 추가 돌고 있다.
아내도 돌아서
머리박고 자폭했겠지.
그래야 멈출 수 있었을 테니까
할 말을 찾아
그녀를 붙잡는다.
오늘이 아니면
그녀는 나에게 있어
단지 보이는 마네킹일 뿐이니까.
<틈새>전문
이 시는 우선 산문 형식을 취하고 있음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시가 될 수 있는가를 실험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앞서 보아왔던 작품들에 비한다면 다소 난해 하지만 현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심이 얼마나 긴박하고 처절해 하는가를 도시문화인의 자세와 의식으로 구름이 몰아치듯 긴박감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여기서 틈새란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내지는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표현하고자 했을 터이다. “더 이상은 멈출 수 없다./압력솥의 추가 돌고 있다./아내도 돌아서/머리박고 자폭했겠지.” 말하자면 생존 경쟁에서 시인은 한 세상 사는 것이 이처럼 불안하고 절망적인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으며 그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녀를 붙잡는다./오늘이 아니면/그녀는 나에게 있어/단지 보이는 마네킹일 뿐이니까.”(틈새의 마지막행 일부분)
언제부턴가 휴지통은 혼자서
울었다. 휴지만 담아야 하는
그의 인생이 처참했다.
그래도 가끔은 신사보다
더 신사다운 인생을 대접받는 일도 있었다.
흔들리고 또 흔들려도
누구하나 거둘 떠 보지 않는 꿈
그의 태어난 태생이 쓰레기 더미인 걸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는
갈대처럼 속으로 울었다.
울 때마다 그의 배설물이 씻겨 져 나갔다.
언제부턴가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신이
세상에 내려오던 날
그는 컴퓨터 안에서도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냈다.
울음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휴지통에 기찻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누구나 손을 씻었고
그와 악수하기를 원했다.
세상사람 누구나
그에게
모든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했고
하늘의 꿈까지도
살 수 있는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가끔은 그 안에 하늘이 스스로
내려앉기도 했다.
< 휴지통 연가>전문
시인은 쓰레기만큼이나 잡다한 현실의 어둠을 만나는 과정에서 아주 귀중한 휴지통을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지속적으로 찾아 나섰던 휴지통의 존재는 현실 속에서 꼭 필요한 우리의 자화상이며, 그런 의미 차원의 연민을 시인은 느끼고 있는 것이다. “ 언제부턴가 휴지통은 혼자서/울었다. 휴지만 담아야 하는/그의 인생이 처참했다.”(1연1~3행) 이는 특히 도시의 일상성을 표출하는 방법으로 해석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딘가 산만하게 보이지만 생략의 기법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래도 가끔은 신사보다/더 신사다운 인생을 대접받는 일도 있었다.”(1연4~5행)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는 휴지통이라는 외양적 사실 이외에 구체적 의미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그러면서 시인은“그는 컴퓨터 안에서도 살 수 있는/길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냈다.” 라는 사실에 자신도 놀라고 있다. 이와 같이 그의 작품에 묻어나는 현대적 감각은 여유 있는 유머(?)와 IT시대에 걸 맞는 시적 상상력을 구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가끔은 그 안에 하늘이 스스로/ 내려앉기도 했다. 는 마지막 구절처럼 문학의 속성 중 하나인 보편성의 가치를 신앙인의 태도로 말하고 있다.
그의 시 <봄>에서도 인생의 온갖 영욕은 좁은 길을 통해서 이루어 가야 함이 옳은 길이며, 그것이 나중에는 말하지 못할 죄악의 껍질을 벗겨내고 빛을 향해 싹틔우는 것이라는 통증의 언어로 아픔을 이겨내고 따듯한 미소로 부활해야 하는 작자의 확고한 믿음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삭빛 시인의 기독교적 문학관이 정서적으로 잘 드러난 혼불을 보도록 하자.
외로움이 너무 커
불에 태웁니다.
태워도 태워도
꺼지지 않는 외로움이
불같이 일어납니다.
불꽃이 되어 피어나는
꽃은 아무도
꺾을 수가 없습니다.
혼자임이 두려워
바람이 됩니다.
흔들려도 흔들려도
당신은 더욱 뚜렷하게
피어납니다.
그리움으로만
피어나는 꽃
당신은 아무도
가질 수 없는 선혈 꽃입니다.
<혼불> 전문
이 시에서 <외로움>이 표상하는바가 단순하지 않음은 쉽게 알 수 있다. 그것은 신앙이 추구하는 영성의 길 일 수도 있고, 인간 양심의 벽일 수도 있다. 이렇듯 시인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외로움과 고독의 불꽃들이 그의 신앙적 정신의 흐름인 것만은 확실하다 할 것이다. 그러면서 이 시가 추구하는 그리움에서 샘솟는 영생의 꽃 다시 말하면 예수 찬양에 대한 자양분을 모든 인류에게 끊임없이 싹을 틔우고자 함이다.
지금까지 이삭빛 시인의 작품을 살펴본 바와 같이 그의 시적 상상력과 사상은 대부분이 단순한 인간체험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체험과 가치를 세상 사람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다가서는 꺼지지 않는 외로움으로 다시 불꽃을 피우는 절대적 신앙에의 정신에 있다 할 것이다. 아직은 젊지만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그의 인생과 혼자가 두려워 바람이 되어 흔들려도 꺼지지 않는 혼불이 되기를 바랄뿐이다.
책표지맨뒷장
그녀의 시의 특색은 고운 시어를 선택해서 아름다운 감성시를 쓰는 게 아니라, 그녀는 차라리 거친 언어로 작품의 주제성을 살리기 위하여 그만의 작법을 고집하여 유의미시(有意味詩)를 썼다. 거기다가 그녀의 창조적 상상력은 자기 나름의 천재성을 보여주는데 일 몫을 했다고 본다.
도창회교수의 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