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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금신보(梁琴新譜)=심방곡(心方曲)
조선 축가(祝歌) “오날이 오날이쇼셔”
(1)문화재명 : 양금신보(梁琴新譜).
(2)지정내용 : 문화재자료 제308호(지정일2002.02.14).
(3)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 필사본 > 고본.시대 : 조선시대 조선시대 문화재 자료
(4)위치: 경남 진주시 남성동 171-1 (1책(冊)) 경남지역 문화재자료
(5)설명 : 양금신보는 조선 광해군 2년(1610)에 악사 양덕수(梁德壽)가 엮은 거문고 악보이다. 양덕수가 임진왜란을 피해 남원에 은거하고 있을 때 옛 친구인 임실현감 김두남(金斗南)을 만나 그의 권유에 따라 엮은 것이다. 판본은 여러 종류가 있다.
400년의 그리움으로 돌아온 노래-남원 ‘오늘이 오늘이소서’ 노래탑
▲ 남원 만인의총 앞에 있는 '오늘이 오늘이소서' 노래탑 남원성을 상징하는 성문 위에 노래를 새기고, 탑신에는 원혼을 달래는 당초문과 노래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주악천(奏樂天) 인상을 새겼다.
“보아라, 저 풀씨는 스스로가 원해서 저기에 날아온 것이 아닐 것이다. 바람이, 혹은 비가 그렇게 했겠지. 그러나 저 풀은 자신의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뿌리를 내리고 잎을 벌려, 있는 힘을 다해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陶工)들이 있었다.
‘도자기전쟁’이라 불리는 정유재란(1598년) 때 남원성에서 끌려간 도공들. 이들이 모두 남원 출신이었는지 확실치는 않다.
조선 도공 심당길로부터 비롯해 400년 간에 걸쳐 일본 도자기의 대명사인 사츠마야키의 종가가 된 심수관가의 삶을 조명한 연극 <그, 불>(각본 도올 김용옥). 14대 심수관은 극중 아들에게 남의 땅에서 도공(陶工)으로 살아가는 운명을 바람에, 혹은 비에 날아온 풀씨에 빗대었다.
‘불(火)’만 이란 도자기(陶瓷器)
그들이 ‘히바카리’라는 명품을 빚어냈다.
‘불(火)’만 이라는 뜻을 가진 도자기다. 1250℃로 도자기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유약과 흙은 반드시 조선의 것을 사용하고 오로지 ‘불(火)’만 일본의 것을 썼다는 조선 도공의 자부심과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말이다. ‘불의 온도를 잰다’는 또 다른 뜻에는 가마 옆에 난 구멍을 통해 도자기를 굽는 최적 온도 1250℃를 가늠하는 장인(匠人) 정신이 담겨 있다.
그들이 정착한 일본 미야마 마을은 조선인의 도예촌이 됐다. 김막내 박아지 이아무개…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며 타국 땅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 남원문화유적조사단을 이끌고 일본 속 남원유적을 답사한 남원문화원 노상준 원장은 미야마 마을 공동묘지에서 만난 한글 비석들을 이야기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전하는 이야기가 있더란다. 잘 살게 된 미야마 마을 사람들이 서로 시기하고 질투를 하자 1673년 어느 날, 현해탄 쪽에서 큰 불덩이 하나가 날아와 마을 뒷산에 떨어지는 일이 생겼다. 이 이변을 사람들은 이역 땅에서 서로 싸우지 말고 살라는 단군의 계시로 받아들였다. 그 자리에 단군 사당인 옥산궁(玉山宮 현재는 玉山神社로 격하)을 짓고 해마다 음력 9월14일이면 제사를 지내게 된 내력이라 한다.
이때 부르는 옥산궁의 신무가(神舞歌, 제사 의식 노래)가 <오노리다 마쓰리(祝祭)>
오늘이 오늘이라. 오늘이라.
내 몸을 조이는 것도 차려놓은 제물조차도 잊을 오늘이라.
오늘이라. 그동안 헤아려 온 오늘이고 이날이라.
놀지 못할까, 놀지 못할까. 오늘이라.
이렇게도 노세, 저렇게도 노세.
제 일이 제가 하는 일이 옳거든,
노는 일이 노는 일이,
하나가 한 이치 아닌가.
하나가 한 이치 아닌가.
고수레, 고수레. 조(오곡의 하나)나 새(새풀)나 하나가 아닌가.
최승범 교수(전 전북대 국문과, 현 고하문예관 관장)가 번역한 이 노래말엔 음식을 먹기 전에 ‘고수레’를 하는 조선의 습속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김기형 교수(고려대 국문과)는 이 노래를 ‘몸과 마음을 조인 괴로움도 잊고 제대로 갖추어 놓지 못한 제물도 잊고 오늘 하루를 즐기자’는 뜻이라고 요약하고 있다.
‘내 몸을 조이는’ 고난이 거듭되는 속에서도 고달픈 삶을 한사코 긍정하려는 그 몸짓, 그 마음이 애달프다. 미야마 마을의 다카사와사키 할머니는 이 노래에 대해 “정유재란 때 남원에서 끌려온 도공들 사이에서 불려진 남원성의 가곡이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고 한다. 이 증언이 아니더라도 이 노래를 일본에서 도공들이 창작하여 부른 노래로 보기 어려운 근거가 있다.
노상준 원장에 따르면 이와 매우 유사한 <심방곡(心方曲)>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1610년 남원에서 양덕수가 채보해서 편찬한 거문고 악보 《양금신보》에 실려 있다. <오노리다 마쓰리>와 흡사한 이 노래. 답은 간명하다. <오노리다 마쓰리>는 조선의 도공들이 당대에 전국적으로 유행하던 <오늘이 오늘이소서>라는 노래를 가져가서 지금까지 이어 온 것에 다름 아닐 터이다. 오늘날 해외동포들이 <아리랑>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부르며 위안을 삼았을 도공들의 노래가 옥산궁의 신무가로 불리게 된 것이다.
“내 고향 언제 갈까나 언제 갈까나”
1988년 7월26일 남원 광한루원에서는 전무후무한 음악회가 열렸다. 귀향음악회.
400년 전 고향(남원)에서 가져간 노래, 정작 고향에서는 사라져 버린 그 노래를 고향으로 돌려드린다는 음악회였다. 행사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노래를 가져온 도공의 후예도, 노래를 받는 남원 사람들도 함께 통곡을 했다.400년을 입에서 입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며 가슴에 품었던 조국, 그것은 400년의 설움, 400년의 그리움이었기에“내 고향 언제 갈까나 언제 갈까나 하는데 그게 그렇게 애잔해. 처지에 맞게 가사를 바꾸기도 하고 가락도 슬퍼졌겠지.”남원 문화원 전 노상준 원장은 본래의 <오늘이 오늘이소서>는 “오늘의 즐거움이 영원하라고 기원하는 건전가요 중의 건전가요”라고 평가한다. 그런 축가가 일본 땅에 건너가 망향의 노래로 불리다 보니 본디 뜻과 달리 애가(哀歌)가 됐다는 것.
“이게 잔치 마당이나 흥겨운 자리에서 불릴 법한 축가란 말이야. 언제나 저물지도 새지도 않고 오늘처럼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 축원하는 말이 참 좋지 않소?”한이나 설움이 아니라 풍요로움과, 넉넉함, 그리고 소박한 기쁨, 낙천적 기질 같은 것이 느껴지는 이 노래말을 정말로 아낀다는 전 전북대 최승범 교수는 “평이한 우리말로 쓴 밝은 노래여서 부르다 보면 덩기덩기 덩실덩실 춤이 나올 것 같다”고 한다.
끌려간 도공(陶工)들 가슴속에서 긴 세월(歲月) 건너온 노래
1991년 문화체육부는 축가 <오늘이 오늘이소서>를 가곡·대중가요·국악 등 다양한 양식으로 제작, 테이프를 배포한 적이 있다. 오늘의 우리가 누구나 <아리랑>을 부르듯, 고려 말부터 조선 중기까지 소박한 평민들이 일상적으로 애창하던 노래 <오늘이 오늘이소서>를 새로운 “국민가요”로 널리 퍼뜨리려 했던 당시 이어령 문화부장관의 의욕이 힘이 됐다.
이어 남원문화원이 주체가 되어 1995년 ‘오늘이 오늘이소서 노래탑’을 건립했다. 노래탑공청회가 열리고 갑론을박이 거듭됐다.“골목 안 도로를 넓히지 그깟 노래탑을 세우느냐”는 반발을 무릅쓰고 잊혀진 노래, 사라진 노래, 다시 찾은 노래를 담은 노래탑이 우여곡절 끝에 세워졌다.
만인의총(남원시 향교동 남원 성원고등학교 앞)의 봉분 하나에 1만 명의 목숨이 배향되어 있다. 처절한 역사의 상처를 기억하는 이 자리에서 그 날의 노래를 다시 부른다. 끌려간 도공들의 가슴 속에 간직되어 400년 세월을 건너 온 노래 <오늘이 오늘이소서>. 캄캄절벽 같은 타향살이에 고향으로 돌아갈 내일’만을 간절하게 애원하면서 기다렸을 그들의 오늘’을 생각한다.
저물지도 새지도 말았으면 하는 오늘, 날이 샌다 해도 다시 오늘 같은 날이 되었으면 하는 오늘, 끝없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오늘은 어떤 것일까? 제 스스로 원한 자리 아닐지라도 있는 힘을 다해 뿌리내리고 푸르게 자라는 저 풀씨처럼, 가느다란 빛줄기나마 힘껏 껴안으려는 의지 있어야 그런 오늘 빚을 수 있을 터.
우리의 관점을 끄는 것은 단군 사당에서 제를 올리는 의식에서 부른 '오노리다 마쓰리(祝祭)'의 가사이다. 1988년에 발간된 히가시치기마치(東市來町) 향토지에는 우리말로 된 가사가 「신무가(神舞歌)」라는 제명으로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1) 오놀이 오놀이라 오놀-축(鱁)이라
날 놀 죠이믈
졔물됴차 이즐
오놀이라
2) 오놀-축(鱁)이라
회워 오놀이고 놀이나
못노세로 못노세로
오노-리이라
3) 이리도 노세 이리도 노세
제 이리 제 이리 을아반
노네난기 노네난기
하나가 하이치쟌아
4) 하나가 하이치쟌아
고스래나 고스래나
죠나 새나
하나가 하이치쟌아
가사 옆에 가나(かな)를 달고 작품 아래 부분에 일본어 번역을 실었으나, 우리말을 일본식으로 음을 취하여 표기하였기 때문에 그 의미를 분명히 알기는 어렵다. 최승범 교수의 번역을 빌리자면, 이 노래의 의미는 이렇다
1) 오늘이 오늘이라. 오늘이라.
내 몸을 조이는 것도 차려놓은 제물조차도 잊을 오늘이라.
2) 오늘이라. 그동안 헤아려 온 오늘이고 이날이라.
놀지 못할까, 놀지 못할까. 오늘이라.
3) 이렇게도 노세, 저렇게도 노세. 제 일이 제가 하는 일이 옳거든,
노는 일이 노는 일이, 하나가 한 이치 아닌가.
4) 하나가 한 이치 아닌가. 고수레, 고수레.
조(오곡의 하나)나 새(草)나 하나가 아닌가.
몸과 마음을 애태운 괴로움도 잊고 제대로 갖추어 놓지 못한 제물도 잊고 오늘 하루를 즐기자는 내용으로 보아, 타국에서의 도공(陶工)들의 삶이 무척이나 고달프고 애통하였는가를 엿볼 수 있다. 고달픔이란 물질적인 궁핍에서만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물질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도공들은 시마증의 보호 조치로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낯선 생활 습관, 고향에의 그리움, 알게 모르게 겪게 되는 이국인에 대한 차별, 이러한 것들이 삶을 고달프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우리 민족의 조상인 단군을 모신 것도 그러하거니와, 고향에서 즐겨 부르던 노래를 부름으로써 고향을 떠난 조선 사람들의 비애를 조금이나마 씻어 보고자 했을 도공(陶工)들의 애절한 모습이 떠오르는 듯하다. 노래 가사를 보면, 음식을 먹기 전에 '고수레'를 하던 습속이 그대로 행해지고 있음도 알 수 있다. 환경은 바뀌어도 살아오는 과정에서 익힌 습속이야 어찌 쉽게 변하겠는가.
하가시치기마치 향토지에는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노래가 「학구무가(鶴堪舞歌)」라는 제명으로도 채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일본으로 잡혀 온 전북 남원의 도공(陶工)들이 고향의 향수를 달래며, 또한 이역 만리에서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기원하며 단군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낼 목적에서 부른 노래가 아직까지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이 노래의 기능 보유자는 제관 가와모토 츠르오(川元鶴男女 鄭)씨였는데,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다카가와사키 할머니는 할아버지인 변주석(卞周石)으로부터 「오니리다」노래를 배웠는데, 정유재란 때 남원에서 끌려간 도공(陶工)들 사이에서 불려진 남원성의 가곡이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1992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보건대, 일본에서도 단군 사당을 잘 보존하고 제례적인 의식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일뿐만 아니라 의식 과정에서 부르는 노래의 전승 또한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이 노래가 일본에서 남원 도공(陶工)들이 창작하여 부른 노래로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와 매우 유사한 노래 가사가 1610년 양덕수가 편찬한 거문고 악보인 「양금신보」에 전하기 때문이다. 발문에 의하면, 이 책은 임진왜란(壬辰倭亂) 중에 전북 남원에 피난 왔던 양덕수가 그 당시 임실 현감으로 있었던 친구 김두남의 도움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 책의 중대엽에 속칭 「심방곡(心方曲)」이라 하여 다음과 같은 가사가 전한다.
오나리 오나리쇼셔
매일에 오나리쇼셔
점그디도 새디도 마라시고
새라난(나鏅)
매양 당식에 오나리쇼셔
날이 저물지도 새지도 말고 오늘이 계속되기를 희구하면서 만약에 날이 샌다고 하면 영원히 오늘과 같은 날이 되게 해달라는 내용으로, 현실에 대하여 긍정하고 그러한 긍정적인 삶이 영속되기를 바라는 심성(心性)이 짙게 배어 있다. “심방곡”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혀진 바 없다. 시조에서는 중대엽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만 「심방곡」이 신청(神廳)의 전문적인 악곡명이기도 하고, 제주도에서는 무당을 심방이라고 하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심방곡」이 본래는 무가와 깊은 관련이 있지 않았을까 추정할 수 있다.
1. 오늘날이 오날이라, 매일같이 오늘이라
졈그디도 새디도 마라시고
날은 저물어도 새도록 오늘이라
새나마 주~~야~~댱~~샹~~에~~~~
어느 세상도 같노라 오늘날이 오늘이라
2. 남산에 노송나무 솔마다 학 앉을까
서산에 해 안 돋을 날, 날마다 이러하거늘
하물면이야 지는 해를 바라보고 슬퍼하지 말고
저무나 새나 노세 저무나 새나 노세
어느 세상도 같노라 오늘같이 오늘이라
오나리 오나리쇼셔 / 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이 오나리쇼서 / 매일이 오늘이소서
졈그디도 새디도 마라시고 / 저물지도 새지도 말으시고
새라난(나난) / (날이) 날이 새거들랑, 샐지라도
매양댱샹에 오나리쇼셔 / 매일같이 오늘이소서
오날이 오날이쇼셔 / 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이 오날이쇼셔 / 매일이 오날이쇼셔
현대에 알맞도록 노랫말 가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진양조 장단, 중몰이, 중중몰이, 굿거리장단>
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이 오늘이소서
저물지도 새지도 말으시고 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이 오늘이소서 새나마 주~야~장~상~에~~~~
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이 오늘이소서
새나마 주야장상에 새나마 주양장상에
오늘이 오늘이 오늘이~~~~
오~~~~늘~~~~이~~~~
오~~~~늘~~~~이~~~~소~~~~서~~~~
<중몰이, 중중몰이, 잦은몰이 장단>
1. 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이 오늘이소서
저물지도 새지도 말고 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이 오늘이소서 새나마 주야장상에
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이 오늘이소서
2. 남산에 노송나무 솔마다 학앉을까
서산에 해가 기울어도 날마다 이러하거늘
하물면이야 지는해를 바라보고 슬퍼하지 말으시고
저무나 새나 노세 저무나 새나 노세
어느 세상도 같노라 오늘같이 오늘이라
“오늘이 오늘이소서” 노래는 고려 말기부터 조선조 중엽까지 우리 조상들이 축가(祝歌)로 즐겨 불렀던 노래이며, 특히 평민들이 생활 속의 기쁨을 노래한 것으로 지금의 아리랑 만큼이나 그 당시 수 많은 백성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이 노래의 존재는 사라지고, 양금신보(梁琴新譜)의 악보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남원은 400 여년 전 정유재란일 일어났을 때 남원성 싸움을 재조명하고 일본으로 끌려간 남원 도공(陶工)들의 망향의 한스러움을 달래며 사라져가는 문화유산(文化遺産)을 찾아 가꾸는 사업을 목적으로 만인의총 앞 뜰에 문화적이며 역사적 상징물로서 “오늘이 오늘이소서”노래 기념탑을 세웠으며 현재 보존되고 있다.
도공 심수평의 에적비가 일본 가고시마현에 10미터 크기로 세워져 있다. 도예가 심수평씨의 7대손 심수관씨가 남원에서 도예 가마터를 재현하여 불을 붙이는 점촉행사를 한 후 양금신보 축가를 불러주는 공력이 미흡하여 순창북중학교 2학년 학생들 25명이 공연하여 일본 RKB-TV가 촬영하여 일본에 방영하였다
양금신보 (梁琴新譜) 일명 심방곡(心方曲), 또는 신방곡(神房曲)이라고 불리우는
1. 조선 축가(祝歌)“오늘이 오늘이소서”(진양조 장단)
오~~늘~~이~~
오~~늘~~이~~ 소~~~~서~~~~
매~~일~~이~~ 오~늘~이~소~서~~~~
저~물~지~도~ 새~지~도~ 말~으~시~고~~~~
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이~~ 오~늘~이~소~서~~~~
새~나~마~ 주~~야~~장~~상~~에~~~~
오~늘~이~ 오~늘~이~소~서~~~~
새~나~마~ 주~~야~~장~~~~상~~~~에~~~~ ~~~~
새~나~마~ 주~~야~~장~~~~상~~~~에~~~~ ~~~~
오~~~~늘~~~~이~~~~ (느리고 강하게)
오~~~~늘~~~~이~~~~ (느리고 약하게)
오~~~~늘~~~~이~~~~ (느리고 강하게)
오~늘~이~ (약간 빠르게)
오~늘~이~ (약간 빠르게)
오~~~~늘~~~~이~~~~소~~~~오~~~~~~서~~~~~~~~
2. 오늘이 오늘이소서(잦은몰이 장단, 휘몰이 장단)
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이~ 오~늘~이~소~서~~~~
저~물~지~도~ 새~지~도~ 말고
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이~~ 오~늘~이~소~서~~~~
새~나~마~ 주~~야~~장~~상~~에~~~~
오~늘~이~ 오~늘~이~소~서~~~~
오 ~~늘~~이~~
오~~늘~~이~~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