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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식교수의 여인삼국지 9-1
손인과 사마지
孫仁, 劉備를 사랑했기에
손권(孫權)은 시상군(是相郡)에서 요양 중인 주유(周瑜)에게 사람을 보내, 유비와 손인이 결혼하고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를 전했다. 주유는 한 가지 계책이 떠올라 사자에게 글을 써 손권에게 보냈다.
〈제 생각엔 유비를 동오(東吳)에 계속 붙잡아 두는 게 좋을 듯합니다. 화려한 궁실에서 술과 미녀로 정신을 흐리게 하면 장비(張飛)나 관운장(關雲長)과도 정이 멀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조치를 한 후 군사를 일으키면 승리가 눈앞에 있을 것입니다.〉
손권은 주유의 편지를 스승처럼 생각하는 장소(張昭)에게 보여주었다. 조조와의 전쟁을 앞두고 화친(和親)을 주장한 장소였지만, 전쟁이 오·촉(吳·蜀)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고도 그의 지위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는 손권의 형 손책(孫策)이 그를 아꼈고, 그 또한 권좌에 대한 권력욕을 품지 않고 손권을 잘 보필했기 때문이었다.
“주유 장군의 말이 옳은 듯합니다. 유비는 가난하게 태어난 데다 그간 천하를 돌며 고생하느라 부귀영화를 누려 보지 못한 자입니다. 이제 궁궐과 계집과 갖가지 보물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신하들과도 자연스레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신하들이 유현덕을 크게 원망할 것이니 그때 사기가 떨어진 형주(荊州)를 치면 됩니다.”
장소는 성격이 꼬장꼬장하고 직언을 서슴지 않는 위인이었지만 나라를 위해서라면 이렇듯 융통성을 발휘할 줄도 알았다. 손권은 두 사람의 말이 그럴듯하여 궁궐을 수리하고 정원을 꾸미고 미녀들을 시중들게 하여 유비와 누이동생이 거처하도록 하였다. 유비는 아름다운 무희들의 노래와 주색에 빠져 형주의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이렇게 한 해가 다 가려 하자 조운(趙雲)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저렇게 손인에게 시달리다가는 천하고 뭐고 먼저 사람이 죽겠다.〉
문득 공명(孔明)이 연말에 열어 보라고 한 비단주머니 생각이 났다. 가장 위급한 시기에 세 번째 주머니를 펴 보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위급하다기보다 답답한 상황이었다. 조자룡은 두 번째 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그리고 유비가 묵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조자룡이 얼굴 가득 실망한 표정을 드러내 보이며 서 있자, “무슨 일인가 조운.” 하고 유비가 물었다.
“주공께서는 꿈같은 세계에 빠져 형주의 일은 잊고 계신 듯합니다.”
“형주에 무슨 놀랄 일이라도 있는가.”
“조조가 적벽대전(赤壁大戰)의 패배를 되갚겠다며 50만 군사를 일으켜 물밀 듯 형주로 쳐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상황이 다급하니 주공께서 빨리 오셨으면 한다는 공명 선생의 전달이 왔습니다.”
이는 유비를 동오에서 빼내 오기 위한 공명의 사전 계책이었다. 유비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일단 매우 놀란 척하였다. 하나 그동안의 꿈 같은 생활에 미련이 남아 손 부인의 방으로 가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손 부인이 어인 눈물인지 물었다.
“내가 타향으로 떠돌아다니다 보니 양친도 모시지 못하고 조상에 대한 제사도 못 지냈소.”
손 부인은 못마땅하다는 듯 대답했다.
“저를 속이지 마십시오. 송구하오나 제가 엿들었나이다. 조금 전에 조자룡이 나타나 형주가 위험하다고 빨리 돌아가자고 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인이 다 알고 있으니 내가 어찌 속이겠소. 부인과 헤어지긴 싫지만 형주를 잃을 수는 없구려. 군사들과 백성들이 나만을 기다리고 있지 않겠소?”
밤마다 탈출 계획 가다듬은 유비와 손인
“알겠습니다. 하나 저는 나리께 매인 몸, 나리가 가시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이든 저도 갈 겁니다.”
“고맙소, 부인. 정녕 부인의 뜻이 그러하니 정초에 국태(國太)께 세배를 드릴 때, 강변에 있는 조상의 묘에 제사를 지내러 간다고 핑계를 댑시다. 그길로 형주로 가도록 하는 게 어떻겠소?”
둘이서 굳게 밀약을 하고 현덕은 조자룡을 불렀다.
“정월 초하룻날 그대는 군사를 거느리고 성 밖에 나가 기다리시오. 나는 제사를 지낸 후 내자와 함께 부두로 나가겠소.”
조자룡은 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유비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물러났다. 그날 밤 유비는 손인을 힘껏 껴안았다. 무예로 단련된 손인의 강건한 몸은, 그동안 밤마다 계속되는 잠자리들로 인해 여성 본래의 섬세함과 부드러움까지 가미되어, 유비는 쾌감의 끝이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손인과 함께할 때마다 뛰어난 적장 하나를 정복하는 느낌이었고 때로는 굴복당하는 쾌감도 맛보았다. 전투와는 달리 여성의 육체는 정복해도 굴복당해도 한없이 즐거운 것이었고, 패배의 순간조차 깊은 의미에서 승리에 가까웠고, 그 승리는 오롯이 두 사람의 것이었다. 이제 형주로 돌아갈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자, 어쩜 계책이 탄로나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손인과의 잠자리가 더욱 애틋하고 뜨거워지는 것을 유비는 느꼈다. 손인 또한 같은 마음인지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사내를 공략했다. 이러한 뜨거운 밤이 해가 다 가기까지 계속되자 시녀들은 두 사람이 색에 미쳤다고 수군대기까지 했다. 그러한 소식은 손권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가만 두어도 유비가 기가 다 빠져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 크게 안심하였다. 그러나 유비와 손인 두 사람은 사랑만 나눈 게 아니었다. 그들은 관계 후면, 성공적으로 오나라를 빠져나갈 계책을 면밀히 가다듬었다.
공명의 세 번째 비단주머니
정초가 되자 유비와 손 부인은 태부인을 찾아가 세배를 올렸다. 손 부인이 아뢰었다.
“오늘 강변으로 나가 조상의 묘소가 있는 북쪽을 향해 제사를 지낼까 합니다.”
“효도를 하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느냐.”
손 부인은 유비와 함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물러났다. 손권은 이때까지도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손 부인은 몸에 지닐 만큼의 값진 보물을 챙겨 말에 올랐다. 유비도 말에 올라 몇 명의 기병을 데리고 성 밖으로 나가 조자룡을 만났다. 그들은 5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형주로 향하였다. 밤늦게야 그들이 도망친 사실을 알고 부하들이 손권에게 알렸으나 손권은 술에 취해 있었다. 장소가 이 소식을 다시 한 번 손권에게 알리자 정신을 차린 손권은 진무(陳武)와 반장(潘璋)에게 정병 500명을 데리고 추격하여 둘을 잡아오라고 명하였다. 그러자 신하들은, 주공의 누이동생이 무예가 뛰어나고 성격이 강직하여 장수들조차 두려워하므로 그녀 앞에서는 유비를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진언하였다. 손권은 크게 노하여 장흠(蔣欽)과 주태(周泰)를 불러 “너희가 내 누이동생과 유비의 목을 베어 오너라.” 하고 소리쳤다. 그들은 1000여 군마를 거느리고 달려갔다. 유비 일행은 길가에서 노숙하면서 형주로 가고 있었다. 시상군 근처에 이르자 추격자들이 나타났다. 앞쪽 산모퉁이에서 한 떼의 군마가 앞을 가로막았다. 주유가 정봉(丁奉)과 서성(徐盛)에게 3000 군사를 주어 길목을 지키게 한 것이다. 놀란 유비가 말머리를 돌려 조자룡에게 물었다.
“앞에는 적병이 길을 막고 뒤에는 추격자들이 쫓아오고 있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천하의 조자룡도 낭패한 얼굴이었다. 그때 비단주머니 생각이 났다. 위급할 때 꺼내 보라고 한 마지막 주머니였다. 조자룡은 비단 주머니를 열어 거기 쓰인 글을 보고는 유비에게 읽어 보시라고 건넸다.
위기일발의 유비
“지난날 손권과 주유가 공모하여 부인을 나에게 출가시킨 것은 이 몸을 옥에 가두고 형주를 빼앗기 위함이었소. 그들은 형주를 빼앗은 후엔 반드시 나를 죽였을 것이오. 부인을 미끼로 나를 잡으려는 계획이었던 것이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동오로 간 것은 위급 시에는 부인이 이 유비를 구해 주리라 믿었기 때문이오. 지금 우리는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부인이 나서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오. 내 청을 들어 줄 수 없다면 나는 부인이 탄 수레 밑에 깔려 죽을 도리밖에 없소.”
이 말을 들은 손 부인은 분을 참지 못해 소리쳤다.
“오라버니가 저를 남매로 인정하지 않는데 제가 어찌 그를 오라버니로 대하겠소. 오늘의 이 위기는 내가 알아 처리하겠사오니 서방님께서는 지켜만 보고 계십시오.”
그러고는 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유현덕은 나의 주인이시다. 나는 국태의 허락을 받고 형주로 가는 길인데 너희들이 이리 길을 막고 있는 걸 보니 재물을 빼았으려는구나.”
“아닙니다. 부인께서는 노기를 푸십시오. 저희는 주유 대도독(大都督)의 명으로 온 것입니다.”
서성이 황급히 답하였다.
“너희는 주유만 두렵고 나는 두렵지 않으냐.”
이윽고 진무와 반장이 이끄는 추격대가 도착했다. 부인은 그 둘을 꾸짖었다.
“이 못난 자들아. 너희는 우리 남매를 이간질하려 드는구나. 나는 이미 출가한 여인으로 시댁으로 가는 중이다. 어머님의 뜻을 받들어 남편을 따라 형주로 가는 길이니 너희는 물러가라.”
그들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유비는 재빨리 도망쳤다. 네 장수가 급히 의논하였다.
“도망쳐도 모병을 거느리고 있어 멀리 가지는 못할 것이오. 두 분이 주유 도독에게 달려가 보고를 하고 수로를 차단하도록 하시오. 우리는 그들을 추격하겠소. 어느 쪽이건 그들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목을 베는 거요.”
유비 일행은 시상군을 벗어나 유랑포에 이르자 마음이 다소 놓였다. 그들은 강변으로 가 강을 건널 궁리를 하였다. 그런데 배가 한 척도 보이지 않아 유비는 시름에 잠겼다. 조자룡은 여전히 꿋꿋한 모습이었으나 어찌 공명이 네 번째 비단주머니는 주지 않았는지 비감해하고 있었다. 적병의 함성이 가까워지자 유비는 이제는 죽었구나 체념하고 있는데 20여 척의 배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게 쭉 늘어서 있었다. 조자룡이 말했다.
“하늘이 도와 배가 왔습니다. 빨리 오르시죠.”
유비가 손 부인과 함께 배에 오르자 조자룡도 수행해 온 500 군사와 함께 배에 올랐다. 그런데 강 상류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주유가 친히 수군을 거느리고, 달리는 말처럼 힘차게 몰려오고 있었다. 주유의 수군이 유비를 추격하고 있을 때 갑자기 계곡에서 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휘하는 장수는 관운장이었다. 주유는 뱃머리를 돌려 도망쳤다. 주유의 군사들은 거의 몰사하였다. 주유만이 간신히 도주했다. 미인계를 썼다가 그마저 실패하니 실리와 명분을 모두 잃은 셈이었다. 유비는 더 이상 그들을 쫓지 말라고 명하고 형주로 향했다.
민희식교수의 여인삼국지9-2
晉나라 시조 司馬懿의 등장
손인과 사마지
유비의 아들을 인질로 잡으려던 손권의 계책
형주로 돌아간 유비는 손 부인을 얻은 경사를 축하하며 장수와 군사들에게 상을 내렸다. 오빠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손인은 오나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형주성에는 유비의 전 부인이 남겨 놓은 아두(阿斗)가 있었다. 겨우 걷기 시작하는 나이였으나 손인은 자기 자식처럼 귀여워하였다. 유비는 다른 여인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오직 손인만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유비와 공명은 기름진 평야가 있는 익주(益州)를 차지하기 위하여 군을 이끌고 멀리 서방으로 떠나야만 했다. 홀로 남겨진 손인은 오직 아두에게만 정을 붙이고 살았다. 유비가 떠난 지 일 년이 지난 무렵, 오나라 장수 주선(周善)이 찾아왔다.
“국태께서 중병에 시달리고 계십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딸을 보고 싶어하십니다.”
손인은 어머니가 그리워 달려가고 싶었지만 말없이 떠날 수가 없어 유비와 공명에게 사정을 설명하겠다고 하였다.
“배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국태께선 병이 악화되어 서두르지 않으시면 영영 못 볼 수도 있습니다.”
주선이 재촉을 하였다. 손인은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마침내 떠나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녀는 아두를 데리고 배를 탔다. 그때 조운이 달려와 뭍에서 소리쳤다.
“잠깐만 기다리시죠. 작별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주선은 못 들은 척 배를 출발시키라고 명하였다. 그는 오나라 장수 중에서도 배짱이 든든한 자로 이름이 나 있었다. 조운이 물에 뛰어들어 그 배를 타려고 하자 주선은 병사들에게 창으로 찌르라고 하였다. 조운은 칼로 창끝을 자르고 배에 올라탔다. 손인이 소리쳤다.
“조운 장군. 어머니를 만나 뵙고 바로 돌아올 건데 이 무슨 짓입니까.”
“아무리 급해도 군사(軍師)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아두까지 데리고 가시다니요.”
“아두는 내 아들이나 다름없습니다. 두고 가면 누가 이 애를 돌봐주겠소.”
“아두는 이 나라의 하나뿐인 후계자입니다. 어찌 그 애를 오나라로 데려가려 하십니까. 마님께서 가는 것은 말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아두는 안 됩니다.”
유비의 자식들은 난리통에 죽거나 행방불명되어 이제 아두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미부인(美夫人)이 우물에 몸을 던져 구한 이 아이를 안고 조자룡은 적진을 뚫고 피에 젖어 유비에게 돌아왔었다. 그런 아두를 오나라에 보내다니 안 될 말이었다. 조운이 아들을 빼앗으려고 하자 아두는 더욱더 손인 몸에 매달렸다. 파도가 심해 배가 몹시 흔들리자 조운은 중심을 잃었다. 그때 몇 척의 배가 접근해 왔고 선수에 선 장비가 외쳤다.
“마님, 아이를 돌려주세요!”
장비는 조운이 있는 배에 올라탔다. 주선이 칼을 뽑아드는 걸 보고 장비가 칼을 한 차례 휘두르자 주선의 목이 굴러 떨어졌다. 손인이 놀라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오. 사신을 죽이다니!”
“할 수 없었습니다. 마님, 애는 내려놓고 다녀오십시오.”
아두는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울어댔다. 그러나 장비는 아두를 빼앗고 조운과 함께 배를 옮겨 탔다.
절망한 손인, 죽음을 택하다
오나라로 돌아온 손인은 중병에 걸렸다던 어머니가 멀쩡한 걸 보았다. 손권이 유비의 아들을 인질로 삼으려는 계책이었음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이제 모녀 사이까지 이용하려는 오라버니를 원망하며, 그렇게 쉽게 믿은 자신의 불찰을 후회하였다. 그녀는 유비와 아두를 생각하며 울며 지냈다.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220년 마침내 조조(曹操)가 죽었다. 유비는 익주를 빼앗고 221년 촉의 황제가 되었다. 229년에는 손권이 오의 황제가 되었다. 형주 문제로 오나라는 다시 전쟁을 시작하였다. 219년 손권이 관우의 목을 조조에게 보내자 유비는 크게 화가 나 황제 즉위 후 싸움을 벌였으나 역부족이었다. 유비가 손권에게 항복할 상황이 되자 손인은 유비가 자기를 데리러 오나라로 오리라는 한가닥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그 희망은 허사가 되었다. 오나라 장수 육손(陸遜)의 계략으로 유비가 이끄는 17만 군대는 괴멸되었고 유비의 행방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절망한 손인은, 유비와 더불어 행복하게 지낸 한때를 추억하며 장강에 몸을 던졌다.
손인이 29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친 그날 유비도 백제성(白帝城)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마지, 삼국 통일에의 정성
도사(道士) 천기승은 여행 중 이상한 남자와 계집애를 보게 되었다. 남자의 나이는 50 정도로 심한 고생을 하며 살아온 초라한 모습이었고 큰 걱정거리가 얼굴에 씌어 있었다. 그러나 계집애는 16세 정도로 예쁘게 생겼는데 바보처럼 웃고 있었다. 계집애의 아버지인 듯한 남자는 슬픈 얼굴인데 계집애는 웃는 얼굴이다.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천기승은 바보처럼 웃는 아이를 묘한 느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남자가 옹기를 하나 받쳐 들더니 한 번 돌려 어깨에 메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것은 아내의 뼈가 담긴 항아리입니다. 매장을 할 형편이 못 되어 우선 화장을 하여 뼈를 모아 장사를 지낼까 합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을 즐겁게 해 드릴 터이니 그 대가로 고인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구경을 하던 사람들 중에 누군가가 말했다.
“알고 보니 죽은 아내의 장례비를 마련하기 위해 재주를 파는 거로군. 그런데 재주를 팔 기분이나 나겠소?”
슬픈 남자는 항아리를 옆으로 치우고 대나무 사다리를 가지고 와 세웠다.
“여러분. 소인은 하늘에 있는 천왕모(天王母)의 도원에서 복숭아를 훔쳐 오는 재주밖에 없소이다. 여러분들이 그 맛을 보시면 100세까지 장수를 할 것입니다.”
구경꾼 중의 한 사람이 말을 거들고 나섰다.
“정말 그 복숭아를 훔쳐 올 수만 있다면 은괴와 은돈 10만을 내리다. 그런데 하늘의 복숭아인지 어떻게 알겠소?”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건 천도가 아닙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어디 그러면 그 재주를 보기로 합시다.”
그 남자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바보 같이 웃는 딸을 불렀다.
“이리 오너라. 아버지가 너에게 할 말이 있다.”
그 소녀의 이름은 지아(芝兒)였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얘야. 너는 나 대신 저 봉우리 끝 구름 사이로 우뚝 솟은 하늘의 도원에서 복숭아를 따 오너라.”
“알겠어요. 아버지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도원의 복숭아를 딴 지아
그녀는 봉우리에 올라 나무에 사다리를 기대 놓고 위로 올라갔다. 사다리 끝에 오르자 하늘로 뻗친 나뭇가지를 잡고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녀의 민첩한 동작과 정신력은 초인적이었다. 그녀는 원숭이의 습성을 타고난 듯했는데,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지만 그녀는 결코 실수를 하지 않았다. 복숭아나무 끝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도 입만 벌린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녀가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두 눈을 뜨고 바라보며 의아해했다. 슬픈 얼굴의 그녀 아버지가 말했다.
“놀랄 만한 일이죠. 그 애는 도원으로 뻗친 나뭇가지에서 복숭아를 땄어요.”
마침내 그녀가 나뭇가지에 걸어 놓은 광주리에 복숭아를 담아 내려왔다.
“여러 어르신네들을 놀라게 하여 죄송합니다.”
순식간에 그녀 앞에 수십 냥의 은전이 쌓였다. 그것은 저녁노을에 반사되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모두에게 인사를 하였다.
“여러분 적선을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 처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으나 소인은 아직 장례를 지낼 비용이 부족합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저는 서한(西漢)의 태사(太師)인 사마담(司馬談)의 후예입니다. 저의 조상인 사마천(司馬遷)이 조정에서 죄를 지어 세상에 나서지 못하고 은거를 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사마담의 후예는 기예(氣藝)로 살아온 것입니다. 저는 일찍이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그 이름이 사마아(司馬兒)로 불행히도 세 살 때 거리에서 잃어 버렸습니다. 15년 전의 일이죠. 그 후 딸인 지아가 태어났습니다. 그 어미는 반 년 후 생활고에 시달리다 그만 세상을 떠나 버렸죠. 그런데 제 딸 지아가 몹쓸 병에 걸려 정신이 이상해지니 제 마음이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이런 딸을 두고 제가 어찌 죽을 수 있겠습니까?”
천기승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마지의 심성이 제대로 자라면 그녀는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사마복(司馬福)의 운수는 극도로 불행하다. 하나 화(禍)는 복(福) 속에 숨어 있고 복은 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맨손으로 땅을 파 어머니를 龍穴에 모시다
도사 천기승은 생각 끝에 부녀(父女)를 음식점으로 데려가 식사를 대접했다. 두 사람은 배가 고픈지 음식을 깨끗이 비웠다. 이윽고 사마복이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어떻게든 돈을 모으고자 했습니다. 앞으로 제가 죽어도 그 애가 잘살 수 있도록 하려고요. 그러나 딸의 증세가 나아지지 않으니 제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습니다. 도사께서 딸의 병을 고쳐 주시기만 한다면 죽어도 원이 없겠습니다. 부디 저의 뜻을 저버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저 아이가 언제부터 저리 된 것입니까?”
“저의 여식은 태어날 때부터 저 모양이었죠. 항상 바보처럼 웃는 모습이 아비의 속을 쓰리게 하였지요. 기예를 열심히 가르쳤지만 여식의 병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중년에 상처하고 아들마저 잃어버린 이제 와서 사마 일족은 대가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천기승은 사마복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알겠소이다. 그럼 내 말대로 하시기 바라오. 우선 부인의 뼈를 내가 지정하는 곳으로 옮기시오.”
이리하여 그들은 독녀봉 정상으로 올라갔다. 사마복은 천기승이 복을 가져다 주리라고 굳게 믿었다. 천기승은 부녀를 용맥(龍脈)이 묻혀 있는 장소로 데려갔다.
“이곳을 찾았으니 앞으로 당신네 사마족 일족에게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오.”
천기승은 봉혈의 위치에 서서 사마복이 해야 할 일을 일러주었다.
“자, 이제 부녀가 함께 이 용혈(龍穴)을 파시오. 용혈의 기운이 잘 뻗어 나가게 해야 하오. 빨리 땅을 파야 매장하기 좋은 시각을 맞출 수 있소이다. 때를 넘기면 다시 3년을 기다려야 하오.”
사마복, 사마지 부녀는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하였다. 토질이 너무 단단해 무척 힘이 들었다. 무릎이 찰 정도까지 구덩이를 파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마지는 아버지가 힘들어하는 걸 보고는 손으로 흙을 파 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열 손가락에서는 피가 새어 나왔다. 붉은 피가 쉴 새 없이 떨어져 손가락이 다 닳아 버릴 것만 같았다. 천기승은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피는 용맥을 더욱 살찌우는 거라는 걸 도사는 알고 있었다. 극심한 노력 끝에 사마복 부녀는 5자 깊이의 구덩이를 완성하였다. 천기승은 비로소 크게 소리쳤다.
“잘했소. 용혈이 완성되었으니 사마씨의 운세가 트이는 것은 시간 문제요. 이제 시간이 없으니 빨리 준비를 하시오. 부인의 뼈에 옷가지랑 의관을 갖춰 매장을 해야 하오.”
용혈에 묻을 대나무잎 옷
사마복이 놀라서 답했다.
“대사님. 그날 아내를 화장할 때 옷가지와 유물을 모두 태워 버렸습니다. 남아 있는 물건이 아무것도 없는데요.”
“뼈를 감쌀 옷가지가 없으면 용기를 보존할 수가 없는데…. 후손이 용기를 받는 데도 지장이 생기죠. 미처 파악을 못하고 시작을 했으니 우리가 실수를 했나 보오.”
그러자 사마지가 말을 이었다.
“어머님은 평소에 대나무 잎을 무척 좋아하셔서 저에게 그것으로 옷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제가 이제 어머님께 대나무잎 옷 한 벌을 지어 드리면 어떨까요. 그러면 어머님이 입으시던 옷이나 다름이 없지 않겠어요?”
천기승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여자는 평소에 좋아하던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법이오. 생시에 대나무 옷을 입은 적이 있다면 그것은 효험을 발휘할 수 있소이다. 그러면 아이야, 어서 대나무 잎으로 어머니 옷을 지어 드려라.”
얼마 후 사마지는 대나무 잎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좌우로 꼬며 옷을 만들었다. 마침내 사마지는 죽엽으로 된 옷으로 어머니의 뼈를 쌌다.
“고인의 외관이 준비되었으니 빨리 용혈로 모시도록 하시오.”
천기승이 말했다. 사마복과 사마지는 급히 삽을 들고 구덩이에 흙을 채웠다. 그녀는 앞으로 나가 어머니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공손히 세 번 절을 올렸다. 그 사이에, 사마지가 흘린 피는 용맥과 서로 통하고 있었다.
晉나라 시조 司馬懿의 등장
사마 가에서 잃어버린 아들 사마의(司馬懿)는 한 지방관이 데려다 기르고 있었다. 그는 누이동생의 공덕으로 학문에 대성을 거두고 제후들을 호령하는 조조의 휘하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말년에는 제갈공명과의 전투에서 지구전으로 승리하고, 삼국을 통일한 진(晉)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그는 어려서 고생하다 사마지가 드린 공덕에 의해 20살 때 운이 트여 그 후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집안의 용맥의 최대의 수혜자는 사마의이다. 후에 오빠를 만난 사마지는 너무나 행복하였다. 그가, 삼국이 멸하고 진나라의 시조가 된 것이다.
위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진 고조(晉 高祖) 선황제(宣皇帝) 사마의의 혈통과 관련된 정설과는 다른 이야기이지만 하나의 왕조를 세우게 되는 영웅의 배경엔 그러한 신화가 수반되기 마련인 것으로 해석하면 좋을 것이다. 사마의의 자는 중달(仲達)로 조조, 조비(文帝), 조예(明帝) 3대에 걸쳐 봉사하며 제갈공명과 싸워 결국 촉군을 물리치는 전공을 세우고 이윽고 정권을 쥐었다. 그는 손자 사마염(司馬炎)이 위나라를 멸망시킨 후 진조(晉祖)를 세우는 데 기초를 만든 삼국시대 주역의 한 사람이다. 일찍이 그는 장로(張魯)를 무찌른 조조에게 유비가 기초를 굳건히 하기 전에 익주(益州)로 쳐들어가기를 진언하였으나 조조는 주저하였다. 그 전에 손권(孫權)과 동맹을 맺고 유비를 치자는 사마의의 진언을 받아들인 조조는 손권에게 사자를 보냈다. 전부터 커져 가는 관우(關羽)의 세력에 위협을 느낀 손권은 조조의 요청을 받아들여 관우를 공격하였다. 관운장은 손권의 부하에게 사로잡혀 목이 잘렸고 그 목이 조조에게 보내졌다. 조조는 관운장을 불쌍히 여기고 향목(香木)으로 관우의 신체를 만들어 거기에 그 목을 달아 제후의 예로 장사를 지냈다. 현재 하남성 낙양시 관림(關林)에 관우의 묘가 있다.
이리하여 형주는 손권의 세력권에 들고 유비는 익주만을 유지했다. 건안 25년(220) 정초 조조는 낙양에 갔으나 거기서 병이 들어 66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낙양에 궁전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그곳에 있던 신목(神木)을 베자 피가 흐르고 배나무를 이식시키자 그 뿌리에서도 피가 흘러 조조는 그것을 보고 병상에 누워 죽었다고 한다. 조조는 허난성(河南省)에 매장되었고 후세에 발굴되는 것이 두려워 가짜 무덤을 72곳에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이해 10월 헌제(獻帝)는 조조를 계승한 조비(曹丕)에게 왕위를 넘겼다. 위(魏)의 문제(文帝)이다. 이에 400년에 걸친 한왕조의 명맥은 사라졌다. 연호를 황초(黃初)로 했고 조조에게는 무제(武帝)의 칭호가 주어졌다. 그 이듬해 유비도 스스로 제(帝)라 칭하고 국호를 한(漢)이라 하고 연호를 장무(章武)로 정하고 제갈공명(諸葛孔明)을 승상으로 임명하였다. 한편 손권은 유비의 공격에 대비하여 위에 사자를 보내니 문제에 의해 오왕(吳王)에 봉해졌다. 위의 황초 2년 221년의 일이다. 그러나 손권은 위의 지배를 벗어나 위의 2대 황제 명제(明帝)의 태화(太和) 3년에 스스로 황제라고 칭하고 연호를 황룡(黃龍)이라 하였다. 이리하여 천하는 3국이 병립하여 싸우는 새 시대에 접어들었다.
사마의 부인의 지혜
그후 유비는 오를 쳐 크게 이겼으나 결국 이릉대전(夷陵大戰)에서 오의 젊은 장수 육손(陸遜)에게 패하여 백제성(白帝城)으로 물러가 번민하다 63세에 생애를 마쳤다. 제갈공명은 촉의 건흥(建興) 12년(234) 2월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위수의 남쪽에 자리 잡은 사마의와 대립하였다. 결국 공명은 이번에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해 가을 오장원(五丈原)의 진영에서 54세로 세상을 떠났다. 경초(景初) 3년(239) 조방(曹芳)이 위의 3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그는 8세에 지나지 않아 명제의 유언에 따라 사마의와 대장군 조상(曹爽)이 돌보기로 했다. 전쟁으로 몸을 닦아 온 노장군 사마의와 혈통만이 뛰어난 청년장군 조상은 라이벌이 되었다. 결국 조상이 상위에 앉고 사마의는 물러났다. 가평(嘉平) 원년(元年, 249) 정월, 황제 조방은 선제의 무덤에 참배하기 위해 낙양을 떠났다. 조정의 실권을 완전히 장악한 조상도 함께였다. 병을 가장해 왔던 사마의는 그 틈을 타 궁전에 돌입하여 명제의 황후를 설득하여 조 형제들의 관위를 박탈하였다. 그리고 큰아들 사마사(司馬師)에 명해 궁전과 도시의 요소를 점령하였다. 중달 사마의의 부인은 위나라의 사자들이 자주 찾아와 그의 모습을 살피고 죽이려고 하였으나 그때마다 정말로 사마중달이 병들어 죽기 직전에 이른 것처럼 보여주어 그들이 안심하고 돌아가게 만들었으니, 그녀의 지혜와 사랑이 남편을 구해 결국 쿠데타에 성공하게 만든 것이다. 일찍이 조조가 사마의를 불러 살피니, 그가 뒤를 돌아볼 때 고개가 완전히 돌아가 반역의 상이라는 혐의를 둔 바가 있었다. 죽기 전 조조는 세 마리의 말이 하나의 구유에서 먹는 꿈을 꾸고 이를 기이하게 여긴 바 있었다. 세 마리의 말은 이른바 사마의, 사마사, 사마소를 뜻하니 왕조 찬탈의 역사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가평 3년(251) 사마의는 세상을 떠나고 사마사가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254년에 조방을 제위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이듬해 사마사가 죽자 동생 사마소(司馬昭)가 실권을 잡았다. 일단 조모(曹髦)를 제위에 앉혀 놓고 황제가 그를 제거하려 하자 부하를 시켜 죽이니 그가 위조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265년 왕인 사마소가 죽자 아들 사마염(司馬炎)이 즉위하여 연호를 고쳐 태시(泰始) 원년으로 한 진왕조가 탄생하지만 이보다 2년 전 위군의 침략을 받은 촉(蜀)의 황제 유선(劉禪)은 위에 항복하여 촉의 명맥은 사라졌다.
적벽(赤壁)의 싸움 때처럼 손권이 촉과 손잡고 위와 싸웠더라면 오도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실 부흥을 꿈꾸다 죽은 유비, 제왕이 되고도 천명(天命)을 저버린 오왕, 삼국지의 하늘에 무수히 박힌 찬란한 별들, 그들은 지금도 하늘 어디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일까. 삼국지의 어느 여성보다도 강한, 사마의 누이동생의 염원이 최후의 승리를 가져온 것일까.⊙
민희식교수의 여인삼국지 10-1
異邦의 女傑들
공명은 잡혀온 맹획의 아내 축융부인에게 항복을 권유했다.
촉의 장수를 사로잡은 축융부인
孔明의 南征
촉(蜀)나라의 국력을 키우며 북벌 준비를 하고 있던 공명에게 익주(益州)에서 사자가 급히 달려왔다. 보고의 내용은 남만왕(南蠻王) 맹획(孟獲)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국경 부근까지 쳐들어 왔다는 것이었다. 공명은 바로 남국 원정을 단행하였다. 병력은 50만. 대장에 조운(趙雲), 위연(魏延)을 임명하고 남쪽으로 향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남만에서는 고정(高定)이 나섰다. 고정이 수하의 악환(鄂煥)에게 선봉을 맡겼으나 그는 촉군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공명은 악환에게 술과 음식을 주고 “고정은 의리 있는 인물이다. 이번 일은 그가 계획한 것이 아니다. 빨리 돌아가 이를 전하라”고 이른 뒤 풀어 주었다. 공명의 관대함에 감동받은 악환이 그 말을 전하자 고정은 감격하였다. 그러나 다른 장수들은 ‘공명의 이간정책’이라고 일소에 부쳤다. 공명은 고정과 다른 장수들의 군세가 쳐들어오자 적을 반쯤 소탕하고 나머지는 생포하였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고정의 군사는 목숨을 살려준다’는 소문을 흘렸다. 고정의 군사와 고정의 군사라고 거짓말한 군사는 목숨을 건졌다. 촉군의 승리에 당황한 맹획은 3동(洞)의 원수를 소집하여 진격을 개시하였다. 조운이 공명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출격하니 이 불의의 공격에 남만군은 크게 놀라 전장을 이탈하는 병사들이 속출하며 패주하였다. 패배를 안 맹획은 격노하여 다수의 군세를 몰고 공격을 해 왔다. 그러나 공명의 책략에 걸려 든 맹획은 협곡으로 깊이 들어갔다가 위연에게 생포되었다. 공명은 맹획군의 군사를 잘 대접하고 맹획에게 항복을 권하였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공명은 강제로 항복시키기보다 마음으로 항복시키는 평정 방법을 쓰고자 했다. 위(魏)나라와 대척하고 있는 상황에서 맹획을 죽여 봐야 그들은 복수심만 불태우며 위와 계속 손을 잡을 것이었다. 맹획이 진정으로 항복하지 않는 한 몇 번이고 싸울 작정이었다.
공명은 이번엔 위수를 향해 진격하였다. 맹획은 위수 남쪽에 포진하여 촉군의 도하를 막았으나 공명은 우회하여 남만군의 양식로를 차단했다. 이어 마대(馬垈)는 정병 2000을 거느리고 남만군의 요새를 점령했다. 그러나 맹획은, 더운 계절이 오면 촉군이 견디지 못하리라 믿고 술만 마시고 지내면서 때를 기다려 공명을 생포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마대의 공격을 알고 동도나(董茶那)를 보내나 그는 전투에 패하고 말았다. 참패 사실을 보고받고 화가 난 맹획은 곤장 100대의 형을 가했다. 그날 밤 분을 못 이긴 동도나가 이끄는 군세가 맹획의 본진을 습격했다. 그들은 지난번 전투에서 공명이 풀어 준 자들로, 술에 취한 맹획을 사로잡아 공명에게 바쳤다.
맹획을 잡았다 풀어 준 공명
공명은 다시 한 번 맹획에게 항복을 권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그래서 촉군의 진중으로 그를 데려가 강한 군세를 보여주자 맹획은 이번에 풀어 주면 백성들을 설득하여 귀순하겠다고 했다. 또다시 풀려난 맹획은 이번에도 항복할 마음이 없었다. 마침 맹획의 동생 맹우(孟優)가 공명을 이길 계책이 있다고 일렀다. 많은 선물을 들고 공명에게 가 맹획의 항복을 전하면 공명이 크게 만족하여 방자한 기분에 연회를 열 터이니 그 틈을 노려 공격하라고 했다. 맹획은 이 계책이 마음에 들어 그리하라고 했다. 맹우가 선물을 들고 공명을 찾아가 항복의 의사를 표하자, 공명은 그와 병사들을 음식과 술로 잘 대접하였다. 맹우의 거짓 항복이 받아들여진 것을 안 맹획은 3만의 군세를 셋으로 나누어 공명의 본진을 습격했다. 그런데 본진에 있는 군사가 술에 취해 움직이지 않아 이상했다. 대신 사방에서 위연, 조운의 군사가 쏟아져 나와 놀란 맹획은 도망쳤으나 곧 붙잡혔다. 모든 것은 공명의 책략이었다. 맹획의 작전을 꿰뚫어 본 공명은 우선 공명 진영에 있는 남만군들에게 독한 약이 섞인 술을 먹이고 대신 남만병으로 위장한 복병을 사방에 배치해 맹획을 노린 것이다. 이로써 맹획은 세 번이나 공명에게 끌려간 건데 그래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아 공명은 ‘다음 번에는 전쟁다운 전쟁을 하라’고 이르고 다시 돌려보냈다. 유비(劉備)가 죽은 직후 위의 조비(曹丕)는 사마의(司馬懿)의 건의에 따라 촉을 침공코자 하였다. 그래서 남만왕 맹획은 위에서 벼슬자리를 받고 촉을 치게 된 것이다. 무용 일변도로 전략을 모르는 맹획은 공명의 적이 아니었다. 얄팍한 전술로 번번이 공명에게 사로잡혔다. 공명은 위가 쳐들어오기 전에 맹획을 자기편으로 만들어야 했으므로 그를 잡아도 계속 달래서 돌려보냈다.
남만군의 공격에 대해서 공명은 정식으로 맞서지 않고 지구전을 펼쳤다. 적의 사기를 꺾고 포섭하기 위해서였다. 남만군이 피로의 기미를 보이자 공명은 공세를 취했다. 어느 날 맹획이 대군을 이끌고 촉의 진지에 난입하였으나 병사가 없고 사방에 흩어져 있어, 촉 진영에 큰 사건이 생긴 것으로 알고 진격을 계속하였다. 그들이 강의 북쪽에 이르러 도강을 할 때 사방에서 촉의 군사가 나타나 그만 포위되어 버렸다. 맹획은 도저히 이길 도리가 없음을 알고 도주하여 독룡동(禿龍洞)의 타사대왕(朶思大王)에게로 갔다. 동생 맹우의 도움으로 타사대왕을 만난 맹획은 촉군을 무찌르는 데 도움을 달라고 청하였다. 타사대왕은, 대군이 통행할 수 있는 동북로를 폐쇄하고 촉군이 서북으로 진군하게끔 하자고 제안하였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서북로는 산길이 험하고 해가 질 무렵에는 심한 진풍(陣風)이 일어나 사람이 죽게 된다는 것이다. 이 진풍은 낮시간 한 때는 가라앉지만 대군의 행군을 크게 지체시킬 수 있다 하였다. 샘이 네 곳 있지만 독기가 있어 마시면 열흘 이내에 죽으며 샛길이 있지만 독사와 전갈이 우글거린다고 했다. 공명은 왕평(王平)에게 투항한 남만군을 앞장세워 서북간도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다소 피해를 입었으나 산신(山神)인 노인의 도움으로 진기에서 몸을 지키는 비법을 얻어 무사히 통과하였다. 감사하며 공명이 성함을 묻자 그는 다름 아닌 맹획의 형 맹절(孟節)이었다. 맹절은 공명에게 자기 동생이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고약해 못된 짓을 저지르니 그 피해를 입지 않도록 남을 돕는다고 했다. 그는 공명에게 동생의 죄에 대해 사과하였다. 작전이 파탄된 것을 안 맹획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측근들과 이별의 잔치를 벌였다. 그때 은야동(銀冶洞)의 동주인 양봉(楊鋒)이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맹획이 기뻐하자 양봉은 수많은 미녀들을 데리고 와 잔치는 더 화려해졌다. 그때 갑자기 공명의 군세가 나타났다. 맹획이 도주하려 하자 그를 둘러싸고 춤추던 미녀들이 벽을 만들어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맹획이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묻자, 양봉은 공명에게 은혜를 갚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양봉은 한때 싸움터에서 공명의 포로가 되었으나 너무나 잘 대우를 해 주고 미녀와 선물까지 주어 돌려보낸 적이 있어 그 은혜를 갚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맹획은 또 다시 풀려났다. 타사대왕은 삼강성(三江城)에서 촉군의 공격으로 사망하였다.
남만왕 맹획의 거듭된 패전
번번이 공명에게 진 맹획은 본거지인 은갱동(銀坑洞)에서 젊은 무희들의 노래를 들으며 술을 마시고 있었지만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 공명이란 녀석은….”
맹획이 갑자기 거칠게 술잔을 집어던지자 사방이 고요해졌다. 유비의 사후 남만군은 익주 남부의 호족과 함께 촉의 변경을 위협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해 제갈공명이 50만 대군을 거느리고 남정에 나섰던 것이다. 남만의 영토는 중국 대륙과 달라서 풍토와 기후가 좋지 않고 수송 행군이 곤란한 땅이 많다. 그래서 맹획은 지세(地勢)만 이용하면 촉을 쉽게 무찌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맹획은 싸울 때마다 공명의 계략에 걸려 패전하고 사로잡히니 그때마다 공명이 풀어 준 게 여러 차례였다. 그의 아우 맹우는 성격이 형보다 온화하여 무모한 형에게 싸움을 중단하라고 타일렀다.
“싸움에 진 것은 분하겠지만 패전에 대해서는 잊고 여생이나마 즐겁게 사시는 것이 좋을 거예요.”
“하긴 술과 여자만 있으면 인생이란 즐거운 법이지….”
그 말이 옳다고 여긴 그는 아우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그런데 여기에 한 여인이 나타나 맹획의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그녀의 이름은 축융부인(祝融婦人), 즉 맹획의 부인이다. 거친 기질에다 무예도 뛰어났다.
“전쟁에 지고 나서 이게 무슨 소동이지? 사내답지 못하군.”
축융부인이 어떤 여자인가. 어느 날 사자가 나타나 사람들이 놀라 모두 도망쳤으나 그녀가 버티고 서서 노려보자 사자가 갑자기 온순해졌다고 한다. 사자는 그녀에게 길들여져 고양이처럼 따랐다. 그녀는 무술을 즐겨 자기보다 무술이 뛰어난 자가 아니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다 10년 전 아버지의 청으로 맹획과 결혼하게 되었다. 그때 맹획과 결투하다 말이 미끄러지며 떨어졌고 맹획이 그녀를 눌러 항복시켰다. 분하지만 싸움에 진 이상 약속대로 그의 부인이 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항복은 그때 한 번뿐이었다. 잠자리에서만은 언제나 축융부인이 승자였다. 그런 부인과 함께 맹획은 남만국을 다스렸다.
축융부인의 출전
“공명은 정면에서 싸우지 않고 이상한 책략을 쓴다고…. 아주 비겁하지…. 그 때문에 내가 당한 거야” 하고 맹획은 부인에게 변명하였다.
“여보, 그게 남만국의 왕이 할 소린가요. 정말 당신이란 자 믿을 수가 없어요. 내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가 싸울 수밖에 없군요.”
부인은 이렇게 선언하였다.
“그럼 한 번 해 보구려.”
이튿날 축융은 군대를 이끌고 출진하였다.
“대체 저 여자 누구야?”
촉의 장군 장의(張儀)는 앞장서 날뛰는 그녀를 발견하고 추격했으나 그녀가 던진 단검이 넓적다리에 꽂혀 말에서 떨어졌다. 장의가 축융에게 체포되자 촉나라 군사는 뿔뿔이 도망쳤다. 축융이 은갱동에 돌아오자 맹획은 부인 손을 잡고 기뻐하였다.
“이자를 어떻게 처리할까요?”
“지금 죽일 수는 없지. 이놈을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가 공명을 잡아오면 함께 죽여 버리자고.”
공명에게 잡힌 축융
촉군 진영에서는 장의를 구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마충(馬忠)이 “제가 장의 장군을 구출하겠습니다” 하고 소리쳤다. 이릉대전(夷陵大戰)에서 크게 활약한 촉의 명장 마충은 군을 이끌고 출전했다.
“네가 공명이냐?” 하고 축융 부인이 깔보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마충이다. 여자 따위가 왜 전쟁에 나왔느냐?”
“뭐라고? 왜 공명이 직접 나오지 않고 남자 중에서도 너 같은 조무래기가 나타났느냐?”
“그 입을 다물게 만들 테니 기다려라.”
둘의 격투가 벌어졌다. 그녀가 던진 칼에 말이 쓰러지며 마충은 낙마했고 그 바람에 체포되었다. 장군을 둘이나 잃게 되자 공명은 조운과 위연에게 그녀를 사로잡을 수 있는 계책을 전했다. 며칠 후 그녀는 전투 중 조운과 대결하게 되었다. 힘껏 겨루었으나 당할 수 없다고 여긴 그녀는 단검을 던지며 싸우다 도망쳤다. 너무나 빨리 도망쳐 조운은 그녀를 잡지 못했다.
“안되겠다. 내일은 승상한테 배운 술책을 써야겠구먼.”
조운이 위연에게 말했다. 다음 날은 위연이 그녀와 다투었다. 위연은 앞으로 나가지 않고 병사를 내보내 그녀에게 도전하였다.
“저게 그 유명한 타조인인가? 타조와 똑같이 생겼군.”
“나에게는 산돼지처럼 보이는데…. 산돼지야 이리 와라.”
거칠고 프라이드가 강한 그녀는 화를 내며 잡병들을 쫓아버렸다.
“너희놈들 다 죽여 버리겠다!”
축융은 냉정을 잃고 힘이 넘쳐 촉군을 향해 돌진해 나갔다. 그러다 산 아래 계곡으로 들어갔고 촉군이 장치한 올가미에 걸려 생포되었다. 그녀는 공명 앞에 끌려가게 되었다. 공명이 타일렀다.
“이제 남편에게 항복하라고 권하는 것이 어떨지.”
“당신네들이 멋대로 쳐들어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당신 남편은 다섯 번이나 잡혔고 내가 그때마다 풀어 주었소. 더 이상 수모를 겪을 필요가 있겠소?”
“제 아무리 여러 번 체포당해도 자존심은 남아 있소. 나는 그를 도와 싸울 것이니 차라리 지금 나를 죽이는 것이 좋을 거요.”
결국 축융을 장의, 마충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낙착되었다. 그녀는 언제고 반드시 공명을 체포하겠다고 외치고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민희식교수의 여인삼국지 10-2
異邦의 女傑들
맹수를 다루는 목록대왕
그녀가 돌아오자, 남편은 “이웃나라 목록대왕(木鹿大王)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 도와주겠다 하였으니 이제 촉군을 무찌를 수 있다”고 기쁨에 들떠서 말했다. 본래 목록대왕과 맹획은 대립관계에 있었으나 맹획이 많은 선물을 주기로 약속하고 원군을 청한 것이다. 목록대왕은 거대한 흰코끼리를 타고 찾아왔다. 코끼리뿐 아니라 우리에 넣은 사자, 호랑이, 표범도 가지고 왔다.
“촉의 군세가 강하다고 하나 그들이 뭐요. 기껏 사람이고 기껏 말 아니오, 이 맹수들을 보면 공포에 떨며 도망칠 것이니 염려 놓으시오.”
그날 밤 맹획, 축융부인, 목록대왕은 성대한 잔치를 벌였다.
“부인이 매우 아름답소.”
목록대왕은 축융부인의 손을 잡는가 싶더니 술김에 가슴을 만졌다. 이어 그녀와 작전계획을 짜러 별실로 가겠다고 하자 맹획은 화가 났지만 비위를 건드릴 수가 없어 꾹 참았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튿날 목록대왕은 과연 맹수를 몰고 출전하였다. 맹수가 숲속에서 종횡무진으로 뛰어다니니 놀란 촉병은 패주하고 남만군은 대승리를 거두었다. 패한 공명은 맹수보다 훨씬 큰 목각맹수를 만들었다. 다음 전투에 그 목각맹수가 입으로 불을 뿜자 겁을 먹은 목록대왕의 맹수들이 다 달아나고 말았다. 목록대왕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의 군사도 혼비백산해 맹수와 더불어 남만군은 모두 사로잡히고 말았다. 체포된 맹획과 축융은 공명과 대면하게 되었다.
“병사도 다 잃고 나라도 혼란할 텐데 그래도 싸우고 싶은가? 정녕 그렇다면 한 번 더 기회를 주지.”
이렇게 말하고 공명은 그들을 석방하였다.
최후의 보루 등갑군의 위협
의기소침해진 맹획과 축융은 구원의 손길을 보내줄 나라를 찾아 헤매고 다녔다. 그 모습에 축융의 동생 대래동주(帶來洞主)가 조언을 했다.
“동남의 오과국(烏瓜國)에 가 보시오. 그 나라에는 등갑군(藤甲軍)이라 불리는 3만 강병이 있어 촉군을 무찌를 수 있을 겁니다.”
등갑이란 등나무 줄기를 말려 기름에 적신 뒤 햇볕에 말리기를 수십 번 되풀이하여 짠 갑옷이다. 화살도 칼도 뚫지 못하고 강을 떠서 건너갈 수도 있어 전투에서 매번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맹획 일행은 동남으로 향하였다. 맹획이 사정 이야기를 하자 그 나라를 다스리는 오과족의 왕 올돌골(兀突骨)은 “승리하면 빼앗긴 땅을 반씩 나눈다는 조건으로 전투에 임하겠소”라고 제안했다. 올돌골이 이끄는 등갑군에 맞서 촉군은 정공법으로 나왔으나, 등갑에는 화살과 칼이 소용없어 제대로 된 공격도 못해 보고 패하였다. 그 후에도 올돌골이 이끄는 등갑군은 계속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다 어느 날 올돌골은 승리에 도취하여 깊은 산 계곡까지 전진하였다. 공명이 그 골짜기에 화약과 지뢰를 설치해 놓고 적을 유인한 것이다. 등갑에 불이 불자 무섭게 타올라 전원이 불에 타 죽고 말았다. 이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지만 그들이 전부 불에 타 죽은 처참한 모습을 보고 공명은 눈물을 흘렸다. 맹획은 더 이상 의지할 군사가 사라지자 자포자기 상태에서 촉군을 향해 마지막 공격을 하였다. 결국 맹획은 사로잡히고 끝까지 용감하게 싸우던 그의 부인도 공명에게 머리를 숙이고 항복하였다. 공명은 축융부인의 용기와 의지를 높이 평가하고 그녀의 뛰어난 전술을 찬양하였다. 그녀는 남편에게 앞으로는 촉나라와 화친한 후 편안하게 살자고 말하고는 남편을 껴안고 돌아갔다. 이후 남만의 땅에는 평화가 되돌아왔다. 그리고 축융부인과 공명은 가끔 서로를 떠올렸다.
공명의 부인이 된 로마의 여인
공명(孔明)은 젊어서 형주(荊州)에서 학문을 닦았으며 동료에는 석광원(石廣元), 서서(徐庶), 맹공위(孟公威) 등이 있다. 위의 세 사람은 주로 학문의 정밀성에 치중하였으나 공명은 학문의 요점을 잡아 그 본질을 추구하였다. 학우 서서가 유비(劉備)의 군사(軍師)로 있으면서 조조(曹操)의 군세를 무찔렀으나 모친이 조조에게 인질로 잡히는 바람에 유비 곁을 떠나야 했다. 떠나기 전 그는 공명을 유비에게 천거하였다. 유비가 공명을 세 번 찾아가니 그 의지와 정성에 감동한 공명은 마침내 유비의 군사가 되었다(그때부터 그는 유비가 죽을 때까지 함께하고 유비의 아들 유선·劉禪까지 보좌했다). 공명의 도움으로 유비는 오(吳)의 왕 손권(孫權)과 동맹을 맺고 적벽(赤壁)의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유비가 오와 동맹을 맺은 데는 조조와 싸워야 한다는 오의 신진 정치가들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배경도 있었다. 그 후 공명은 유비를 모시고 형주와 익주(益州)를 차지하고 왕업의 설계에 열중하였다. 유비가 한중왕(漢中王)이 된 건안(建安) 24년(서기 219년)이 전성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 후 관우(關羽)의 패전, 유비의 오 원정 실패로 인하여 촉(蜀)은 하나의 지방정권으로 전락하였다. 공명의 전투는 바로 이때 시작한다. 우선 국력을 회복하고 내정을 충실히 하였다. 적이었던 오나라와도 우호관계를 맺고 국가를 안정시켰다. 후환을 없애기 위해, 조조의 지원을 받고 있는 남만국의 침범을 막고 원주민을 달래 평화를 확립하였다. 출사표(出師表)는 공명이 그 이후의 사업완성을 향한 꿈을 나타낸 것이다. 삼국은 당시 비교적 안정되고 평화로웠다. 그러나 공명은 머지않아 위험이 닥쳐올 것을 알고 있었다. 국력의 크기는 위, 오, 촉이 6대 3대 1이었다. 촉은 중국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공명은 군비를 강화하고 한 제국의 침탈자인 위에게 계속 도전하는 것이 촉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거의 하나의 신념, 신앙이 되어 버렸다. 공명의 부인 황월영(黃月英)은 공명이 위와 대결해 싸우는 동안 계속 전략을 선보이고 새로운 무기의 개발에 힘썼다. 황부인은 무척 영리하였다. 공명에게 위나라를 치지 말고 우선 국가를 강하게 하여 평화를 유지하며 때를 기다리라고 수없이 충고를 하였다. 공명의 강한 신념은 존중하지만 신념만으로는 위나라에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공명의 전생이 한니발이었던지, 한니발이 알프스산을 넘어 바로 로마를 치지 않은 것이 한이 되어 다시 태어난(?) 그로서는 위나라를 쳐부숴야만 했던 것이다. 황부인은 온 힘을 다해 남편을 도우면서도, 위 정벌(征伐)을 중단시키는 일이 불가능함을 알고 체념한 상태에서 촉이 머지않아 멸망하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럼 공명의 부인 황여인은 어떠한 여자인가? 그녀의 아버지는 로마인으로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이다.
아름다운 얼굴을 감춘 異國의 소녀
로마인이 이끄는 상인 일행이 2년간 실크로드를 거쳐 장안(長安)에 이르렀을 때 마리아는 그 도시의 활기에 놀랐다.
“아버님, 여기가 동쪽 나라 제일의 도시인가요?”
과학자인 그녀의 아버지는 상인을 따라 한나라에 왔는데 그 이유는 서양의 치수(治水)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실크로드는 현재의 터키 이스탄불과 장안을 거의 일직선으로 연결하는 세계 제일의 교역로이다. 장안에는 전 세계에서 모인 상인들이 시장을 열었고 금은보배, 비단제품, 도자기, 그리고 인간까지도 매매가 성행하였다. 특히 아랍산의 큰 말은 한나라 관리들이 몹시 탐을 내는 것이었다. 마리아는 1년여 머무는 동안에 이곳의 풍습과 언어를 거의 익혔다. 그녀가 13세가 된 어느 날 얼굴을 먹으로 검게 칠한 것을 본 아버지는 그 이유를 물었다. 마리아는, 사람들이 자기를 모두 뚫어지게 쳐다봐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같은 나이 또래의 한나라 여성보다 몸이 크고 얼굴도 특수하게 생겼다. 당시 마을에는 서양인 창녀들이 많았는데 중국인들이 유별나게 좋아했다. 마리아는 그런 그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2년 후 아버지는 풍토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후 그녀는 아버지와 친했던 황승언(黃承彦)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그는 형주 양양(襄陽)의 부자로 마리아의 뛰어난 재능에 놀라워했다. 마리아는 그의 보호하에 학문에 열중하였다. 아버지가 남겨 놓은 설계도를 보고 자동인형 등 갖가지 기계를 발명하여 세상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황승언은 그녀가 그 방면에 큰 인재가 되리라고 보고 먼저 좋은 배우자를 만나야 되리라고 생각하였다.
당시 그곳에는 두 천재가 있었다. 하나는 와룡 언덕에 사는 제갈량(諸葛亮)으로 자는 공명이었다. 또 하나는 방통(龐統)으로 자는 사원(士元)이었다. 이 둘은 아직 이름을 떨치지 않았으나, 공명은 잠든 용, 사원은 어린 봉으로 이 둘 가운데 하나라도 얻는 자는 원한다면 천하를 지배할 수 있다고 수경선생 사마휘(司馬徽)가 예언한 바 있었다. 공명은 그 뛰어난 풍모와 재능 때문에 연담이 많이 있었으나, 상대가 제 아무리 미인이고 높은 벼슬을 하는 집안이어도 정중히 거절해 왔다. 공명에게는 두 가지 원이 있었는데 하나는 자기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덕 있는 주군을 만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기의 마음을 폭 넓게 이해할 수 있는 여인과 같이 사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친구 서서는 공명과 마음이 통할 만한 여자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공명의 부인 고르기
건안(建安) 11년(서기 206년) 6월 황승언은 마리아를 데리고 공명이 사는 초가집을 방문하였다. 공명은 마리아의 금빛 머리털, 회색 눈동자, 거대한 체구, 얼굴을 검게 칠해 미를 감춘 모습, 지식의 풍부함, 탐구심이 강한 면을 보고 매우 놀랐다. 공명은 그 자리에서 그녀에게 반했고 그녀도 그가 마음에 들어 바로 결혼을 하였다. 그녀는 황승언의 딸로 간주되어 황부인이라고 불렸다. 황부인은 공명에게만 그의 흰 살을 보였는데 외출할 때는 얼굴을 검게 칠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였다. 황부인은 여러 가지 발명품이나 발명기술로 공명을 놀래는 것이 즐거웠고 공명 또한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지능을 개발하였다. 두 사람은 너무나 행복하게 지냈다. 이듬해 공명의 평판을 들은 유비가 세 차례나 공명을 방문하여 군사로 맞아들였다. 공명은 후에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제시하였다. 북은 조조에게 양보하되 유비는 형주를 기반으로 하여 익주로 뻗어 오의 손권과 천하를 삼분하는 계획이었다. 그 후 오와 동맹하여 조조를 견제한 후 천하 통일로 한나라 왕실을 부흥시키는 것이 그의 원대한 야망이었다. 공명이 황부인과 의논해 이처럼 심원하고 멋진 안을 내놓자, 유비는 뚜렷한 목표와 함께 나아갈 길이 열린 것에 기뻐하였다. 공명보다 스무 살이나 위인 유비지만 유비는 공명을 믿고 공명도 유비를 이상적인 주군으로 받들었다. 거기에 황부인은 멋진 참모역을 하였다. 유비는 “공명과 나는 물고기와 물처럼 서로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고 하였다.
공명과 황부인은 초가집을 동생 제갈균(諸葛均)에게 맡기고, 유비가 다스리는 형주 근처의 신야성(新野城)으로 옮겨갔다. 공명이 거기서 군사를 양육할 때 조조군 10만이 쳐들어왔다. 황부인은 “유비 나리께 검과 인을 받고 병권(兵權)을 잡으라”고 충고하였다.
“여보, 당신은 아직 젊고 실적이 없습니다. 관우, 장비, 조운 같은 이름 있는 장군이 말을 잘 안 들을 것입니다. 그러면 제아무리 좋은 계획도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유비 나리로부터 병권을 얻어내야만 당신의 명령이 권위를 가질 것입니다.”
공명은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그녀의 말을 따랐다. 유비는 공명에게 병권을 맡기고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조조군은, 황부인의 조언을 들은 공명의 계략에 걸려 괴멸한 채 도주하였다. 모두 공명의 재능에 감탄하였다.
조조군에 잡힌 황부인
크게 참패한 것에 분해한 조조는 스스로 50만 병력을 이끌고 다시 신야성으로 쳐들어갔다. 성의 수비병은 겨우 1만명에 불과하였다. 공명과 유비는 영민들을 데리고 남하하였으나 조조에게 추격당해 군대와 영민들과 가족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황부인도 혼자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가 조조군의 병사에게 발견되었다. 얼굴을 먹으로 검게 칠한 금발의 여인을 향해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이 여인이 공명의 부인이다.”
“참 못생겼네…. 이것도 여자인가.”
“옷을 벗겨 여잔지 확인해 보자.”
병사들은 웃으며 그녀에게 접근하였다. 한 병사가 황부인의 몸에 손대려 하자 그녀는 재빠르게 페르시아의 단도를 꺼내 방심한 세 병사의 목을 찌르고 말을 빼앗아 남편이 머무르고 있는 강하(江夏)로 달려갔다. 공명은 옷이 피로 붉게 물든 황부인을 보고는 껴안고 울었다.
“내가 정신이 없어 당신을 죽일 뻔했소.”
그녀는 남편에게 안겨 깊은 잠이 들었다. 황부인과 공명, 그리고 유비군은 강하로 내려가 한때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으나 조조군은 형주를 평정하고 80만의 군세로 장강의 위수에 기지를 만들어 강하의 유비군과 그 후방에서 세력을 뻗치는 오의 손권군을 평정하고 천하지배의 최종태세에 들어가고자 했다. 이 상태로 유비군은 독 안에 든 쥐로 조조군에게 전멸되는 것이 시간 문제였다. 황부인은 순찰 중인 남편에게 독촉했다.
“왜 헤매십니까. 궁지에 몰린 이 순간이야말로 천하삼분의 계를 이룩해야 할 기회입니다.”
“적은 대군이오. 뭘 어찌 하란 말이오.”
공명이 한숨을 쉬며 말하자 황부인이 대답했다.
“오의 손권과 급히 동맹을 맺은 후 조조를 막을 방법을 구하세요. 그렇게만 한다면 틀림없이 길이 열릴 것입니다.”
이 말에 공명은 깨닫는 바가 있었다. 공명은 단신으로 배를 타고 장강을 내려가 오나라로 갔다. 며칠 후 유비군과 오가 동맹을 맺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나라 병사는 수는 적지만 수전에 능하고 조조의 군은 수는 많지만 북쪽 사람들이라 수전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해 12월 오군과 조조군이 장강에서 격돌하여 오군이 승리하였다. 7000척이나 되는 대선단은 공명의 계략으로 인하여 다 타 버리고 조조는 빈사의 상태에서 도주하였다. 공명은 조조가 사라진 형주를 빼앗아 기반을 굳혔다. 3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황부인은 애를 갖지 못하여 공명의 형 제갈근(諸葛瑾)이 차남 제갈교(諸葛喬)를 그들에게 양자로 주었다.
공명을 아이디어로 구해
건안 24년(서기 219년) 유비군은 형주에서 출사하여 익주, 한중을 취하고 건안 26년에 유비는 촉한 황제가 되었다. 형주, 익주, 한중이라는 중국의 중앙에서 서방을 전부 평정하고 촉한 왕국을 만든 것이다. 공명은 승상(丞相)이 되었다. 공명은 위를 치기 위해 험한 산을 넘어야만 했다. 10만이 넘는 병사들의 식량을 소나 말이 날라야 했다. 또한 우마(牛馬)의 식량만 해도 막대한 양이었다. 황부인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남겨준 인형의 설계도로 나무 우마를 만들었다. 나무 우마라 먹이도 필요 없고 하루 종일 일해도 피곤해하지 않을 터였다. 2년의 세월을 두고 목우(木牛)를 완성하였다. 많은 고생을 한 공명도 4차 북벌 때부터는 우마의 활약으로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전투도 매우 유리해졌으나 적장 사마의(司馬懿)의 지구전에 말려 결국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황부인은 남편이 5차 북벌을 떠나기 전에 물었다.
“목우유마(木牛流馬)로는 전쟁에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싸우려고 합니까.”
“그것은 내가 이미 7년 전 출사표(出師表)에 밝힌 그대로요. 반드시 북방을 수복하라는 선제의 유언을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어찌 잊을 수 있겠소.”
5차 북벌을 위해 떠난 공명은 오장원(五丈原)에서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건흥(建興) 5년(서기227년)에 공명이 위를 징벌하러 떠나며 후제(侯第) 유선(劉禪)에게 올린 출사표는 이후 1800년을 살아남아 그것을 읽는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울린다.
촉상(蜀相)
두보(杜甫)
丞相祠堂何處尋 승상의 사당 어디 가면 찾으리.
錦官城外柏森森 금관성 밖 측백나무 우거진 곳이어라.
映階碧草自春色 섬돌에 비친 푸른 풀에 봄빛 어리는데
隔葉黃鸝空好音 나뭇잎 사이 노란 꾀꼬리 마냥 우네.
三顧頻煩天下計 세 번이나 유비가 찾아와 천하 계교를 얻었으니
兩朝開濟老臣心 양대에 걸쳐 조정을 돌봄은 늙은 신하 마음이네.
出師未捷身先死 출전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뜨니
長使英雄淚滿襟 영웅들의 눈물만 길이 옷깃 적시네.⊙
민희식교수의 여인삼국지 〈마지막 회〉
여인들, 영웅을 말하다
어느 날 삼국지의 여인들은 하늘나라에서 만나 자기들이 만났던 영웅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늘나라의 여인들에게 날아온 초대장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英雄)과 여인들, 세월이 흘러 그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육신은 흙이 되어 썩고 바람이 되어 흩어졌지만 영혼은 하늘나라로 가 기거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영웅의 가슴에 불을 붙이고 역사의 물줄기를 트고 한 나라의 운명까지 바꾼 여인들이 있었으니, 어느 날 그녀들 하나하나에게 초대장이 날아왔다. 초대장에는 그 미모에 달도 부끄러워 숨는다는 초선(貂蟬), 동탁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된 왕미인(王美人), 기녀(妓女) 출신으로 조조(曹操)의 정처(正妻)가 된 변황후(卞皇后), 미인계(美人計)로 조조를 패퇴시킨 장제(張濟)의 부인 추씨(鄒氏), 원소(袁紹)의 둘째 아들 원희(袁熙)의 처에서 조비(曹丕)의 처가 되었으나 조조가 몰래 탐한 견씨(甄氏), 강동의 소패왕(小覇王) 손책(孫策)의 처 대교(大喬)와 대도독(大都督) 주유(周瑜)의 처 소교(小喬), 그리고 유비(劉備)의 두 처 미부인(糜夫人)과 감부인(甘夫人), 손권(孫權)의 누이동생으로 유비의 처가 된 손인(孫仁), 로마에서 와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처가 된 황월영(黃月英), 남만(南蠻)의 왕 맹획(孟穫)의 처 축융부인(祝融婦人) 등이 망라되어 있어 그 이름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하늘나라의 우편제도는 한 점의 구름이 떠가다 흩어지며 꽃비가 내리고, 그중의 꽃잎 하나가 하늘거리며 여인의 앞치마나 머리맡에 내려앉는 식이었다. 초대장은 그렇게 하늘나라 각지로 배달되었고 마침 숲 속에서 금(琴)을 켜고 있던 초선이 가장 먼저 받아보게 되었다. 붉은 나뭇잎의 잎맥에 새겨진 초대인물들을 본 초선은 그녀들이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여인들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여기 와서야 알았지만, 그녀가 죽은 후에도 조조는 수많은 여인들을 취했고, 그 여인들의 이름을 일일이 듣는 것만 해도 피곤했다. 추씨 부인에 대해선 도대체 그 성적 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었고, 견씨에 대해선 여러 남자를 녹이는 마력(魔力)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조조로 하여금 전쟁마저 불사하게 만든 강동이교에 대해선 활활 타는 질투심이 일어났다. 비록 조조의 청을 뿌리치고 여포(呂布)를 따라 죽음을 택한 그녀였지만,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 그토록 여자들에게 집착하는 것을 확인하는 게 괴로웠다. 천상에 와서도 여인의 질투란 사그라지는 법이 없었다.
초대장소는 은하정(銀河亭)이라는, 밤이면 별들이 고향인 양 모여든다는 곳이었다. 백 년에 한 번 주요한 연회나 모임에만 공개하는 곳이었다. 초선은 금을 뜯던 손길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나라에도 하늘은 있었으니, 거기 조조와 여포의 얼굴이 흘러가고 있었다. 여포를 사랑했으나 그는 조조의 손에 죽었다. 그런데 왜 사랑하는 사람을 앗아간 조조가 미워지지 않는 것일까. 역사의 승자로 남은 그 이름에 뒤늦게 매혹된 것일까. 그러나 여포의 뒤를 따라 세상을 뜬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조조의 사랑을 받은 여인들은 많지만 여포의 사랑을 받은 여인은 그녀 외에는 없었다. 그리고 여포의 진가(眞價)를 아는 여인도 그녀 하나였다.
감회에 젖은 채 은하정으로
취미생활로 식기(食器)에 옻칠을 하던 중 초대장을 받아든 변황후는, 조조와 관련된 여인들을 이렇게 한꺼번에 만나다니, 그녀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한숨이 나왔다. 영웅에게 여인이 없을 순 없는 법. 그래도 조조는 지나치게 많은 여자를, 처녀든 과부든 가릴 것 없이 취함으로써 때로 화를 자초하지 않았던가. 추씨 부인에게 빠져 장남 조앙(曹昂)을 죽이는 우까지 범했었다. 물론 그녀 자신도 첩의 신분으로 황후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니 하늘나라에 와서도 조앙의 친모나 다름없는 정부인(丁夫人)에게 간간이 안부를 띄우곤 했던 것이다. 채소밭을 가꾸고 있다 허리를 편 미부인은 나는 새가 떨어뜨리고 간 초대장을 받고 눈물을 쏟았다. 우물 속에 몸을 던진 자신이 그 죽음의 순간에 보았던 건 무엇이었던가. 유비의 적자(嫡子) 유선(劉禪)을 지키려 했던 마음을 후세 사람들이 알아주고 시(詩)로 전파한다는 것에 감동했었고, 지금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 순간 그렇게 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나라는 위(魏)나라에 멸망했지만 그전에 촉(蜀)나라가 섰고 지아비는 황제로, 유선도 2대 황제로 등극했으니 미련은 없었다.
하늘나라의 호위무사들과 검술시합을 하고 있던 손인은 어디선가 날아오는 화살을 손으로 잡아챈 후 화살촉에 꽂힌 종이를 펼쳐보았다. 초대장에 유비의 두 부인 미부인과 감부인의 이름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어머니 오국태(吳國太)가 위중하다는 말에 속아 오나라로 건너간 이후 아두(阿斗·유선의 아이 적 이름)를 보지 못해 애타 했던 그였다. 그리고 유비가 원망스러웠다. 그는 왜 나를 구하러 첩자라도 보내오지 않았을까. 천상에서도 손인은 유비와의 길다면 길고 짧았다면 짧았던 날들에 대해 추억에 잠기는 날이 잦았다. 천상에선 이승에서의 격렬함과 애절한 그리움과 뼈가 녹는 것 같은 쾌감의 세계는 없었다. 거대한 작업실에서 목우(牧牛)를 비롯한 각종 발명품을 만들고 있던 공명(孔明)의 처 황월영이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잠시 쉬고 있는데, 트로이 전쟁을 일어나게 한 스파르타의 왕비 헬렌이 다가와 편지 한 장을 건넸다.
“초대장이 잘못 전달되었네요. 당신에게 온 것이에요.”
헬렌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발명품인 트로이의 목마와 관련한 인연으로 황월영과 함께 이 작업실에서 각종 발명품을 연구하고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우편배달부가 로마 출신 황월영과 그리스 여인 헬렌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얘기였다. 초대장을 받아 쥔 황월영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하늘나라 뿐 아니라 이승에서도 제갈공명이 유비를 넘어 최고의 추앙(推仰)을 받는 것을 보고 가슴 뿌듯해 하고 있던 참이었다. ‘우린 행복한 부부였지. 그러나 그는 출사표(出師表)를 던지고 마침내 오장원(五丈原)의 별이 되어 세상을 뜨고 말았지. 세상에 나보다 더 공명을 아는 자가 누가 있을까.’ 황부인은 헬렌 앞에서 애써 태연한 척했다. 그녀가 파리스 왕자를 아직도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여인들도 각기 다른 장소에서 초대장을 받아들고 깊은 감회에 젖은 채, 모임 장소인 은하정으로 가는 채비를 서둘렀다.
조조가 사랑한 세 여인
하늘나라에도 빛나는 해가 떠 있고 미풍이 불었다. 멀리 숲이 있고 꽃들이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에 자리한 오각 정자(亭子)에는 의자와 차를 마실 수 있는 탁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탁자엔 선녀들이 마시는 차와 함께 사마의(司馬懿)의 여동생 사마아가 따곤 했던 천도 복숭아가 접시에 담겨 있었다. 복숭아의 빛깔이 젊은 여인의 뺨처럼 불그레했다. 많은 의자가 비어 있었고 아직은 두 여인만이 자리에 앉아 풀빛이 어른거리는 연못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그때 어디에서 금 타는 소리가 들려오자, 그 소리를 한참 듣고 있던 한 여인이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돌아보았다.
“누구신가 했더니 그 유명한 강동이교의 소교군요.”
단정한 용모의, 어딘가 쓸쓸함이 느껴지는 부인이 고개를 돌린 여인에게 말했다. 그러자 매우 세련된 용모의 여인이 “어떻게 아셨나요?” 하고 물었다.
“음(音)이 틀리면 주유가 돌아본다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그 부인 또한 음악에 조예가 깊다는 것도….”
그러자 소교는 미소를 머금고 “저야 조금 구별하는 정도지요. 귀부인께서는 그럼…”.
“감부인이라 하오.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부인의 역할이 대단했다는 소리를 여기서도 들었어요.”
“아! 유비 나리의 감부인이시군요. 몰라 뵈었습니다. 촉의 제2대 황제 유선의 모친 되시는 분을 여기서 뵙다뇨.”
“제 아들이 못나 그만 나라를 잃고 말았어요. 조상님들께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나라야 저희도 못 지킨 걸요. 다 훗날의 이야기이고 우리야 그때 할 만큼 했지요.”
“할 만큼 한 사람은 저 외에 따로 있답니다. 제가 초대장을 받고 서둘러 온 것은 누구보다 그 사람을 보러 온 것인데 아직 도착 안 했네요.”
“제가 알아맞혀 볼까요?”
“…”
“미부인을 기다리시는 거 아닙니까?”
“맞아요. 조조군이 쳐들어오자 아두를 구하기 위해 우물에 몸을 던졌죠.”
“그 이야기라면 우리 모두가 감복하고 있어요.”
중년 부인의 소리가 들려 두 여인이 돌아보니, 기품이 있어 보이는 여인이 서 있었다.
“비록 적장의 아내지만 그런 이야기는 적과 아군을 떠나 모성의 영원함과 여성의 위대함을 웅변하는 거지요. 그 미부인을 여기서 만날 수 있다니 가슴이 뛰는군요.”
“미부인을 적장의 아내라고 부르는 당신은?”
감부인이 묻자 “변황후라고 합니다” 하고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화장도 하지 않고 워낙 검박(儉朴)한 차림을 하고 있어, 조조의 정처(正妻)로서 가히 삼국지의 여성 중에 최고의 권력을 누린 변황후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 소교가 놀라움을 보였다. 시녀가 와서 변황후를 자리로 안내하고 차반의 주전자를 들어 차를 따라주었다. 세 여인이 마시는 차의 향기가 그윽하게 퍼지는 가운데 이제 저 멀리 숲 속에서 들려오는 금 소리는 가늘게 이어지고 있었다.
“당신이 바로 조조의 정처 변황후란 말인가요.”
소교가 탄성처럼 말했다.
“저 같은 여인이 변황후여서 실망시켜 드린 것 같군요.”
“아닙니다. 사실 삼국시대를 통틀어 당신보다 높은 권력과 지배력을 가진 여인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조에 대해선 할 말이 많지만 당신에 대해선 들은 바가 있어 모두가 존경하고 있지요.”
“검약하시고 인의(仁義)를 아시고 사리판단이 뛰어나셨죠.”
감부인이 이어 말했다.
“과찬입니다. 사실 조조의 정처로 산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천하의 조조 아닙니까. 여자 문제로도 속 썩으셨겠어요.”
소교가 약간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영웅호색(英雄好色)이니 영웅 곁에 어찌 미인(美人)이 없겠습니까. 다만 그 때문에 패가망신할 뻔도 있었죠.”
“장제의 처 추씨 부인을 취했을 때 이야기인가요?”
소교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그것은 적벽대전 당시 남편인 주유 대도독에게 충고하던 그녀의 생전 성격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변황후가 대답했다.
“사실 그 사건은 자칫 장남 조앙의 목숨뿐 아니라 자신의 목숨 그리고 위나라의 존립까지 위태롭게 한 위험한 도락(道樂)이었어요.”
“외람된 말이지만 당신은 그 때문에 황후가 되지 않았나요?”
그때 하늘거리는 옷을 입은 여인이 나타나 말했다. 색향(色香)이 진동하였고 그녀의 온몸에선 일반 부인에게선 볼 수 없는 요염함과 위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당신은?”
변황후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들은 저를 추씨 부인이라고 부르지요” 하고 그녀가 답하였다.
“아….”
소교는, 과연 조조를 위험에 빠뜨리고도 남을 만한 여인임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조앙이 죽은 충격으로 정부인이 조조 곁을 떠난 후 당신이 정처가 되었지요. 아! 물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에요. 그냥 일이 그렇게 흘러갔다는 이야기지요. 혹시 절 원망하시나요?”
추씨 부인의 말에 “우리는 모두 아녀자들입니다. 적의 부인이라도 그 심정은 알지요. 저는 그런 대단한 성적 기예가 없어 그런 미인계를 쓸 수는 없었지만 당신은 당신 영토를 되찾기 위해서 그렇게라도 해야 했겠지요. 그건 제가 뭐라고 할 수 없는 겁니다. 그리고 모두 지난 이야기입니다.”
변황후가 말했다.
“호호. 변황후께선 겸양이 지나치셔요. 기녀 출신인 것 천하가 다 아는 바인데 기예가 없으시다뇨?”
추씨 부인의 당돌한 발언에 감부인이 더 당황해 하고 있었다. 변황후는 찻잔에 입을 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녀 출신의 여자를 정처로 받아들인 조조의 대범함과 인품을 네가 어찌 알랴 하는 표정이었다.
“사실 조조는 내가 만난 남자 중에서 가장 멋진 남자였어요. 강했지만 그 내면은 부드러운 데가 있었죠. 밤에는 가끔 시를 읊기도 했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침실에서 육체적 향연만 나눴다고 알고 있는데 그는 가끔 수심에 잠겼고 밤하늘을 보며 고통스러운 심정이 묻어나는 시를 읊곤 했죠. 물론 그런 감정에 오래 빠지진 않았지만요. 강한 남자가 시를 말할 때 여자라면 넘어가지 않기 힘든 법이죠. 그래서 그가 장수(張繡)의 습격으로 곧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사랑을 나누면서도 슬프기 그지없었답니다.”
추씨 부인이 아스라한 추억에 잠긴 표정을 지었으나 변황후는 이번에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조조를 패퇴시킨 당신의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지요. 그런데 들리는 얘기론 장수의 군사(軍師)였던 가후(賈詡)와 결혼해 살았다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감부인이 물었다.
“장담하건대 가후 나리보다 좋은 남자는 없죠. 그는 훗날 조조에게 투항했고, 조조는 적이라도 뛰어난 재능이 있다면 인색하지 않았어요. 조조는 내가 가후의 부인이 되어 있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끝내 모른 척해 주었죠. 그것이 진정한 사내의 기질이죠.”
“흥. 사내가 한갓 여자를 취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기질인가요. 감기가 들어 여기 못 왔지만 대교 언니가 왔다면 조조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거예요.”
소교가 쏘아붙였다.
“무슨 말인가요?”
추씨 부인이 말했다.
“강동이교를 차지하기 위해 적벽대전을 일으킨 건 천하가 다 알고 있어요. 강동이교를 옆에 두고 지내겠다는 내용의 동작대부(銅雀臺賦)라는 시까지 지어 주유 나리를 격분시켰지요.”
“호오! 소교 당신은 아직도 조조가 당신 하나 때문에 전쟁을 일으켰다고 믿고 있나요. 물론 여자 입장에선 그것도 멋진 일이네요.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미모를 확인받을 수 있으니까. 하나 우리가 알기에 당신은 제갈공명에게 그 시에 대한 언질을 줬고 그가 주유를 격분시켜 전쟁에 나서게 했어요. 당신은 미모뿐 아니라 지략도 교활했지요.”
변황후가 말했다.
“조조가 과부를 좋아한다는 건 천하가 다 아는 일, 그가 전쟁을 일으킨 목적에는 여자도 있었다는 정도로 정리해 두죠. 동풍이 불지 않았으면 이교는 동작대에 갇혔으리라는 두목(杜牧)의 시도 있잖아요.”
추씨 부인이 말했다. 그녀는 자기보다 소교가 조조 마음에 더 들었다고는 추호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조조의 첩이 될 수 있는 여자도 세상엔 정해져 있죠. 아무나 되는 건 아니랍니다.”
변황후의 거만한 말에
“뭐라고요?”
소교가 날카롭게 부르짖었다. 변황후는 그저 미소로 답했다. 겉으론 온화하기만 한 변황후의 내면엔 이런 담대함과 권위의식이 숨어 있었다.
여포를 그리워하는 초선과 동탁을 증오하는 왕미인
“그자를 본 적이 있네.”
이때 눈부신 미녀가 등장했다. 뇌쇄적인 몸매, 뛰어난 미모와는 달리 표정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황후가 되었다가 동탁에 의해 죽임을 당한 왕미인(王美人)이었다. 그런데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낙양(洛陽)의 황궁에 온 적이 있었지. 동탁의 신임을 꽤 받았던 걸로 알고 있네. 난 그자가 어딘가 모르게 무슨 큰일을 저지를 거로 보았어. 그때 동탁 그 짐승 놈을 해치웠어야 했는데 칠성검(七星劒)을 갖고도 죽이지 못했으니.”
“왕황후?”
변황후가 외쳤다.
“변황후구려.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 당신은 아시겠구려. 차마 내 입으로 얘기할 수 없구려.”
음부에 장형이라는 기구를 찬 채로 영제(靈帝)에게 시달리다가 그가 죽은 후 또다시 동탁에게 농락당하고 살해된 그 이야기를 어찌 필설로 다 하리오.
“그리고 동탁도 죽었지요.”
그때 꾀꼬리같이 청아한 그러나 한이 담겨 있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왕미인과는 전혀 다른 자태의 천하미녀가 서 있었다. 달이 부끄러워 숨는다는 그 폐월(閉月)의 미모였다.
“동탁의 만행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아요. 당신이 추행당하고 살해된 후 얼마 못 가 동탁의 시체가 길거리에 버려졌죠. 조조가 못한 걸 여포가 끝장낸 거죠.”
“초선….”
소교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떻게 알아보시네요.”
“당신 같은 미모는 초선 아니고서는 없지 않겠어요. 그 비운의 얘기는 당시 오나라에도 널리 퍼졌죠.”
소교가 말했다.
“당신은 유일하게 조조와 여포 두 영웅의 사랑을 받은 여인이기도 하죠. 여포와 함께한 마지막 죽음의 장면은 여자로선 보기 드물게 장렬했다고나 할까요.”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동탁의 애첩으로 지내며 아무리 기다렸지만 조조는 오지 않았어요. 그때 여포를 보았죠. 내 이상은 조조를, 심정과 육체는 여포를 원했어요. 여자의 본능이랄까 그걸 거부할 수가 없었죠. 내 죽음도 여포와 함께이기를 원했죠.”
“천하의 영웅 여포에 대해선 우리는 안다고도 모른다고도 할 수 있어요. 당신은 누구보다 잘 알겠구려.”
감부인이 말했다. 그녀는 유비가 여포와 적이 되었다 동지가 되었다를 되풀이하며 수없이 전투를 벌인 사실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무예와 용맹함에 대해선 당대에 겨룰 자가 없었지만 사랑에 대해선 순정 그 자체였어요. 오직 저만을 사랑했죠. 조조는 결코 그렇지 않았지만요.”
초선의 말에 “물론 당신에게는 그러했겠죠. 그러나 인의를 중시하는 우리 유비 나리도 여포에게만은 자비를 베풀 수 없었어요. 물론 여포의 무예라면 조조와 힘을 합쳐 천하를 제패할 수도 있었겠죠” 감부인이 말했다.
“그는 남아였어요. 신의를 저버린 건 교활해서라기보다 단순해서이겠죠.”
초선이 변명했다.
“단순하면서도 순박했고, 당신에게는 그렇게 잘했다죠.”
소교가 말했다.
유비는 왜 자기 부인들을 일찍 죽게 했나
이때 “늦었습니다” 하는 소리와 함께 세련된 용모의 여인이 등장했다. 그러나 얼굴에는 심한 고초를 겪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미부인.”
감부인이 벌떡 일어나 앞으로 다가갔다.
“오랜만이에요, 부인.”
감부인이 미부인의 두 손을 움켜잡았다.
“당신이 그러고 우물에 몸을 던진 후 우리는 당신을 잊은 적이 없어요.”
“부인이라도 그리했을 것입니다. 유선은 제가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촉나라의 후계자 아닙니까. 유비 나리의 적자이고요.”
“그런 유비는 이런 부인들은 그렇게 죽게 놔두고 어찌 그리 오래 살았답디까?”
소교가 비꼬는 투로 말했다. 이때 불쑥 추씨 부인이 나서 “조자룡(趙子龍)이 아두를 구해오자 애꿎은 아이를 팽개쳤다면서요. 그렇게 신하를 위하는 흉내를 내는 건 좋지만 우유부단한 데다 겁이 많아 전쟁에서 지고 도망치는 데 선수 아니었나요. 여포를 처리 못해 성을 수시로 뺏기질 않나 두 부인을 조조에게 볼모로 잡히게 해 겨우 관운장(關雲長)이 구해오지 않나. 두 부인은 관운장 아니었으면 평생을 조조의 밑에서 살아야 했을 거예요. 하긴 그편이 나았는지도 모르죠. 그랬다면 그렇게 일찍 죽지 않아도 됐을지 모르니까” 하고 길게 말했다. 감부인과 미부인 빼고는 모두 그 말에 동의를 하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인재들이 모인 걸 보면 유비의 덕이 상당하다는 건 인정해야겠죠.”
변황후가 제법 선심을 쓰는 듯 말했다. 그녀는 추씨 부인에게 아직도 감정이 남아 있는 듯했다. 이때 한 마리 말이 달려오더니 하늘나라의 사자(使者)가 내렸다.
“오늘 감부인과 미부인께서 만나신다는 걸 알고 조자룡 장군이 선물을 보냈습니다. 두분이 평안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셨습니다.”
“조 장군밖에 없구려.”
미부인이 말했다. 그리고 감부인에게 비단으로 싸인 것을 열어보라고 했다. 감부인이 비단을 풀자 편지가 두 장 나왔다. 그것은 낳아주신 어머니와 목숨을 구해주신 두 어머니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선이 읊은 편지였다. 두 부인은 그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조 장군의 이름을 여기서 듣다니!”
심상치 않은 기운이 일더니 무장 복장을 한 여인이 등장했다.
“두 분 부인께 인사드립니다. 손인이라 합니다.”
“아 당신이….”
감부인이 놀라워했다. 미부인도 놀란 눈으로 그러나 찬찬히 손인을 훑어보았다.
“유선을 친자식처럼 잘 키웠다는 얘기 들었어요.”
감부인이 말했다.
“유비 나리와 저의 혼인은 오나라의 정략이었지만 혼인한 이상 제 서방이며 그분의 자식 또한 제 자식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때 오태후의 병환이 위중하다는 거짓정보를 믿고 오나라로 돌아간 다음 유선도 보지 못했고 유비 나리의 죽음 소식만 들었죠.”
“유비가 죽었다고 당신까지 장강(長江)에 몸을 던질 필요는 없었어요.”
소교가 말했다.
“소교… 여기서 뵙는군요.”
“당신이 유비와 혼인하기 전만 해도 우린 참 친하게 지내지 않았나요?”
“그랬죠. 사실은 당신이 주유와 결혼하기 전이죠.”
손인과 소교는 마주 보고 웃었다.
“유비 나리가 당신에게 푹 빠졌다고 들었어요. 조 장군이 그만 돌아가야 한다고 독촉을 하지 않았다면 유비 나리는 하마터면 오나라 귀신이 됐겠죠.”
미부인이 손인에게 말했다.
“두 분 부인께서 주지 못한 걸 제가 준 건 사실이에요, 이런 말 하기 싫지만 유비는 제게 육체적으로 집착했어요, 나이 오십에.”
미부인의 눈에 약간의 질투의 빛이 일어났다 꺼졌다. 감부인이 “워낙 관우, 장비, 조자룡 같은 충직한 신하들 하고만 어울리다 보니 여자에 대해서는 풋내기였다고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당신 같은 어린 여자를 보니 그만 푹 빠진 거죠. 부하들을 지나치게 편애했어요. 때문에 조조를 죽일 기회가 있었는데 놓쳤다는 소리를 여기서 들었어요” 하고 말했다.
“관운장을 유비가 그렇게 대하지 않았으면 그는 군율을 어겨 가면서까지 적벽대전에서 패해 도망치는 조조를 살려줄 생각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관우는 그때 의리를 생각했던 거죠. 감부인과 저를 유비 나리에게 돌려보낸 조조의 관대함에 보답한 거죠.”
미부인이 말했다. 찌푸리고 있던 변황후의 얼굴이 다소 펴졌다.
여인들, 다투어 공명의 매력을 말하다
“관운장은 그때 조조를 죽였어야 했어요.”
이 놀라운 발언을 하며 등장한 이는 얼굴이 서양인처럼 생긴 여자였다. 그녀의 뒤에는 나무로 만든 말이 서 있었다.
“제 남편이, 조조를 살려준 죄를 물어 군율에 따라 관우를 처리하려 했지만 유비가 그를 살려줬죠. 그놈의 의리 때문에.”
“제갈공명의 처 황월영이시군요.”
변황후가 그녀를 알아보고 말했다.
“공명 같은 훤칠한 미남이 고른 부인이 당신인 것에 우린 모두 놀랐죠. 숨은 매력이 있었나 봐요.”
소교가 말했다.
“글쎄요. 아마도 당신이 가진 매력과는 다른 것 아니겠어요?” 황부인이 재치 있게 대답했다.
“목우유마(木牛流馬)를 만들어 위나라를 곤경에 빠뜨린 건 당신의 기여죠. 공명에게 당신이 없었다면 그는 좀 더 일찍 패배했을 거란 말이 있어요. 그래 공명의 실모습은 어떤가요?”
추씨 부인이 말했다. 그녀는 조조와 가후에 이어 공명에게도 남자로서 관심을 갖는 듯했다. 황월영은 그녀의 색정(色情)이 돋는 모습을 아니꼬운 듯 훑어보고는 “공명 나리는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전략을 세우느라 잠을 못 이룰 때가 많았죠. 아마도 오늘날 태어났다면 여자에게 할애하는 시간이 적어 여자들은 불만일 수도 있었을 거예요. 게다가 부정부패와는 거리가 멀어 집에 무슨 큰 돈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었죠” 하고 남편 칭찬을 늘어놓았다.
“관우와 장비를 지휘하려면 병권(兵權)부터 쥐라고 충고한 게 당신이었죠?”
소교가 말했다. 그녀는 적벽대전 당시의 공명을 잘 알고 있었다.
“본인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제가 재촉을 한 거죠. 천하의 공명이 어찌 아낙네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겠어요.”
황부인이 말했다.
“공명으로 말하자면 한니발이 다시 태어나 전쟁을 치렀다는 말이 있던데… 그러고 보니 당신이 로마 여인이라는 설도 말이 되는군요.”
초선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그녀는 하늘나라에 와서 공명의 이야기를 귀가 아프도록 들은 터라 바짝 호기심이 들었다.
“나도 황월영 당신 남편을 안다면 알죠. 동작부의 시를 공명에게 알려줘 주유를 전쟁에 나서게 한 것도 나, 동남풍에 대해 알려면 도사를 찾아가라고 가르쳐준 것도 나였죠. 물론 아무나에게 할 말은 아니었죠. 공명 정도 되는 인물이면 그 정보를 잘 이용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죠. 내가 만나본 공명은 가히 최고의 전략가이자 가슴엔 이상을 품은 남자였어요.”
소교가 은근히 자기 자랑과 함께 공명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세상엔 이상하게도 당신과 공명의 소문이 나돌더군요.”
추씨 부인이 말했다.
“민화나 전설에서 하는 말이죠. 심지어 나의 존재조차 숱한 모습으로 재연되지 않나요. 내가 공명과 맺어졌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추측으로도 재미있나 보죠.”
소교가 말했다.
“하지만 주유를 두고 그럴 리는 없었겠죠.”
변황후가 말했다. 황부인은 자기 남편을 두고 입방아 찧는 여인들을 불편한 심기로 바라보고 있었다.
“주유 나리는 공명을 개인적으로 질투하지는 않았어요. 그는 그렇게 속 좁은 인물이 아니에요. 나라의 장래를 생각해 공명을 일찍 제거하려고 했는데…. 난 그의 충정은 이해하면서도 그건 올바르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를 자제시켰죠. 다행히 공명은 거기까지 내다보고 미리 몸을 피했더군요.”
“그가 피하는 바람에 소위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가 완성된 거겠지요.”
변황후가 말했다. 그녀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니 새삼 그 무게가 느껴졌다.
“사실 오나라는 천하이분지계를 원했죠. 그러나 공명의 뜻대로 삼분지계가 대세로 굳어졌죠. 난 유비와 살면서 공명의 재능을 다시 한 번 눈여겨봤죠. 해서 공명이 있는 한 오나라가 촉나라와 척을 지고는 위나라와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손인이 입을 열었다.
왕미인과 초선의 대화
이제 시간이 저녁을 향해 가고 있었다. 시녀들이 차를 내가고 술을 내왔다. 입에 대는 여인도 있고 독주로 살해당한 하태후(何太后)를 떠올리는 왕미인처럼 아예 외면하는 여인도 있었다. 왕미인은 자신이 죽고 난 다음 천하가 각축(角逐)하는 얘기를 흥미있게 들었으나 모든 여인이 자신보단 나은 삶을 산 것 같아 화가 났다. 일국의 황후로 이 무슨 비참한 최후인가. 동탁에 대해선 좋게 말하는 여인들이 하나도 없었으니 그의 노리개가 되었다가 살해당한 게 새삼 분했다. 왕미인이 초선에게 눈짓을 했다.
“잠깐 바람 좀 쐬러 갈까요.”
초선과 왕미인은 연못을 둘러 숲 속의 오솔길로 걸어 들어갔다.
“동탁 시대의 두 여인끼리 할 말이 있나 보오.”
변황후가 말했다.
“그래도 초선은 좋아하는 남자 여포와 마지막 불꽃을 피웠지만 왕미인은 궁중암투의 추악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해요.”
감부인이 말했다.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지만 아까 그 말이 나올까 조마조마했어요.”
추씨 부인이 말했다.
“무슨 말요?”
미부인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동탁이 왕미인의 시신을 먹으며 도착적인 쾌감에 잠겼다는 소문 말이에요.”
추씨 부인이 말했다.
“세상에!” 여인들이 탄식을 했다.
“동탁이라면 그러고도 남지.”
변황후가 말했다.
“그래도 한때는 사내다운 면이 있었다면서요.”
소교가 말했다.
“사람들과 어울릴 줄은 알았죠. 그러니 그나마 부하라고 있었겠지. 하지만 상국(相國)이 되고부터 권력에 대한 집착과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 그러니 결국 여포에게 살해된 것 아니겠어요.”
변황후가 말했다.
“그나마 동탁을 꾸짖은 건 원소라면서요.”
추씨 부인이 말했다.
“명문가의 자손이니 대들 수 있었던 거죠. 하지만 그는 조조와의 관도대전(官渡大戰)에서 패배했고 그 세 아들 또한 자기들끼리 갈라져서 싸웠으니 조조에게 대적이 안 되었지. 그렇게 한 명문가와 원소의 백만 대군은 멸망해 갔고… 여기 원소의 가문이 없는 게 다행이군요.”
변황후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원소의 가문은 몰라도 조조의 가문이 된 여자는 있죠.”
말소리와 함께 한 절세미인이 서 있었다.
“어머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절세미인이 변황후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오, 부인 왔구려.”
두 사람은 손을 맞잡았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살아온 두 사람이었다.
“조비의 처 견씨 부인 아니세요?”
추씨 부인이 말했다.
“그렇답니다.”
“듣던 대로 미인이세요.”
손인이 말했다.
“여기 모인 분들의 미모를 보니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제 질투심이 솟아나려 하는군요.”
추씨 부인이 말했다. 그녀는 이 자리에서도 성적 매력(性的 魅力) 면에서만은 왕미인과 경쟁할 만했다. 여기저기에서 쑥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조조가 아들 조비의 처, 즉 견 부인을 건드렸다는 설에 대해 차마 변황후 앞에서는 못하고 쑥덕이는 중이었다. 추씨 부인은 자신이 개인적인 안위와 영달을 위해 몸을 사용한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공공연히 드러내며 원희, 조비, 조조 세 남자를 거친 견씨를 꽤 안타까운 일이라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축융부인과 손인의 결투?
이때 멀리서부터 검은 말이 달려오더니 정자 앞에서 멈추었다. 여인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에서 내리는 무장한 여인을 바라보았다.
“왜 나한테까지 초대장이 왔을까 싶었어요. 하긴 공명의 부인도 외국인이라는 말이 있던데…. 그녀까지 초대를 받았으니 남만의 왕비인 내가 참석 못 할 이유는 없겠죠.”
그녀는 바로 남만족의 왕 맹획의 처인 축융부인이었다. 듣던 대로 거친 기질에 남자 장수들도 주눅이 들 만한 강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공명이 일곱 번이나 풀어준 맹획은 어디 두고 혼자 왔나요. 사람들은 그걸 칠종칠금(七縱七擒)이라 한다죠.”
황부인이 입꼬리에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오! 황월영, 반가워요. 한데 그때 내가 항복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공명은 전략상 나를 풀어줬죠. 우리가 마음으로 승복하지 않는 한 또다시 위나라와 힘을 합쳐 공격해 올까 봐 두려웠으니까.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보면 공명이건 누구건 그건 적의 침입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그래도 공명이니까 당신을 풀어줬지. 누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황부인이 말했다.
“하긴 손권이라면 그런 은덕을 베풀지 않았겠지. 그는 동맹국인 촉의 유비까지 죽이려 들었으니. 게다가 공명은 꽤나 매력적이더군. 가끔 생각났으니까. 공명도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말은 들었어요. 당신은 눈치 못 챘나요?”
축융부인이 황부인을 향해 오만하게 말했다.
“감히 이민족의 여자가 입이 험하구나.”
이때 지켜보고 있던 손인이 나섰다. 오라버니인 손권을 비하하고 유비의 오른팔인 공명을 모욕하는 발언을 참기 힘들었다. 손권이 누구인가. 누가 있어 오나라를 그렇게 오랫동안 수성(守城)할 수 있었겠는가.
“누군가 했더니 유비의 처 손인이시군. 무술을 좋아해 힘으로 유비를 밤에 제압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그 방면에도 무술을 쓰신 건지?”
“뭐라고?”
축융부인과 손인, 이 둘이 한판 붙을 기세였다. 축융부인이 먼저 말을 타고 달리자 손인도 말을 타고 뒤를 쫓았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도망가던 축융부인이 돌아서서 단도를 던졌고 손인이 이를 피했다. 여인들은 하늘나라에서도 이런 전투가 벌어진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때 시녀가 나서서 설명을 했다.
“이승에서 온 분들이 너무 이승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는 것 같아 가끔 저런 장면을 연출하게 둔답니다. 실은 저것들은 모두 환영이랍니다.”
여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둘의 전투 장면은 이승의 그 어떤 전투보다 박력이 넘쳤다. 초선과 왕미인이 숲에서 돌아오다 이 둘의 전투 장면을 보게 되었다.
“사내들도 못 당하겠군.”
왕미인이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사랑에는 약한 여인들이지요.”
초선이 말했다. 여포가 봤으면 질풍같이 내달려 양 겨드랑이에 여자 하나씩을 꿰차고 그만 귀여움 떨라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초선은 미소를 지었다.
또 하나의 별똥별이 지니
어느덧 석양이 지고 정자 속 여인들의 모습도 황혼빛에 물들어갔다.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지 않았더라면 만나볼 수 없었던 여인들의 얘기는 끝이 없었고, 특히 영웅들에 대해 얘기할 땐 서로 눈에 불꽃이 튀기도 했다. 한 사내를 두고 애증(愛憎)이 교차하는 가운데 여인들은 자신의 선택과 결단이 나라의 운명을 바꾸었음을 뿌듯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리움은 그리움뿐. 지나간 한 시대와 낭군에 대한 그리움은 여기 와서도 옅어지지 않았고, 앞으로 또 언제 이런 모임이 있을지 모르지만 천 년 후에 다시 이 자리를 갖는다 해도 그 그리움은 옅어지지 않을 성 싶었다. 어둠이 내리자 촛불이 켜졌고 어디서 호가(胡笳) 소리가 들려왔다.
“대문호 채옹(蔡邕)의 여식 채염(蔡琰)입니다. 밤이면 그녀의 호가 소리가 은하계를 건너 저렇게 울려온답니다.”
시녀가 말했다. 허도(許都)의 백성들과 조조의 심금을 울렸던 그 호가 소리가 여인들의 심사를 대변하는 듯 애절하게 울려 퍼졌다. 거기에 천상의 과일로 빚은 약주가 여인들의 심정을 고조시켰다. 어둠 속에서 치마 끄는 소리가 스산하게 들려왔다. 사마의의 부인이었다.
“장춘화(張春華), 당신이 올 줄은 몰랐소.”
변황후가 말했다.
“조씨 나라를 폐하고 사마씨의 진(晉)나라를 건설하게 한 점 사과드리려 온 건 아닙니다.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는 거고 수정할 수 없는 거지요.”
그녀는 밤에 나타난 이유를 변명하려 하지 않았다. 마치 인내를 갖고 은밀히 기회를 보다 위나라를 차지한 사마의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렇소. 역사는 강자들의 기록이오. 그리고 여인들은 그 강자들을 품은 또 하나의 세계예요.”
변황후가 말했다. 승패를 가리지 못한 손인과 축융부인까지 돌아와 여인들은 모두 둘러앉아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가득했다. 하늘에도 밤하늘이 있었고 영웅들은 지지 않는 별들이 되어 여인들의 머리 위로 광활하게 떠 있었다. 여인들은 수많은 별 중 자신의 낭군을 찾으려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별똥별 하나가 빠르게 떨어졌다.
“또 어떤 영웅이 숨을 거뒀나.”
누군가 탄식했다.
“저것은 어쩜 사내가 아니라 어느 여인의 별인지도 모르죠.”
초선이 말했다. 후세의 영웅은 사내가 아니라 여인들에게서 나올 수도 있었다. 여인들은, 오늘밤 별똥별이 되어 떨어진 그녀를 다음 모임에 만나보기로 하고 밤이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늘나라에선 이 이야기들을 기록하여 ‘삼국지의 여인들’이란 책자를 만들어 내놓기로 했다. 그리하여 하늘나라에 온 영웅들도 그 책을 통해 여인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밤이 깊어가고 각자의 거처로 돌아갈 아침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여인들은 피곤한 줄도 모르고, 때로 웃고 때로 탄식하고 때로 눈물을 글썽이며 이 밤을 함께하였다. 마치 영원과도 같은 하늘나라의 밤이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