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각 기업마다 실시한 경쟁력 강화, 노동시장 유연화, 구조조정 등으로 크게 늘어난 중장년층 실직자가 줄지 않고 있다.
중장년층 실업문제는 자기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이들이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중도에 잃게 된다는 점, 퇴직 후 재취업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20대 실업문제와는 또 다른 심각성이 있다. 더구나 이들은 대부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실직은 곧바로 가족 문제로 확대된다. 정부는 창업자금 지원과 재취업 알선 등의 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기엔 여전히 미흡하다.
40·50대 은퇴자들의 경력에 맞춰 재취업을 돕고 있는 커리어뱅크 대표 김시열씨가 중장년층 실업문제를 짚어보았다.
편집자
김아무개(41)씨는 지난 2000년 8월, 13년간 다니던 건설회사를 그만뒀다. 무리한 사업확장과 방만한 경영을 하던 회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파견나온 법정 관리인은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자의반타의반으로 회사를 나왔다.
김씨는 “앞으로 어찌 살것인가하는 공포감과 함께 초등학생 딸아이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오르더군요. 비용때문에 이웃과 가기로 한 여행을 취소했을 때 ‘왜 못가냐?’고 묻는 딸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수 없었습니다.”라며 당시의 심정을 떠올린다. 아내와도 종종 다툼이 벌어졌다. “제사때 형제들 내외끼리 나누는 대화에 소외감과 자괴감을 느낀 아내가 집안행사에 참석하기를 꺼렸습니다. 무척이나 미안했지만 한편으로는 섭섭한 마음도 지울수 없었습니다.”
김씨는 1년 가까이 도시락을 싸서 구립도서관으로 ‘출근’했다. 오전에는 인터넷 구인코너를 뒤져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쓰고 오후에는 직접 밖으로 일거리를 찾아다니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연령제한이 없는 곳은 대부분 ‘다단계 판매’아니면 ‘단순노무직’이었고, 건강보험 등 4대 보험을 갖춘 곳은 거의 다 ‘나이제한’에 걸렸다. 지난해 김씨는 잠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컨텐츠를 개발·판매하는 회사에 취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씨는 3개월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임금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김씨는 요즘 구청 취업정보센터가 소개해 준 일식집 주방 보조로 일하고 있다. 6개월짜리 임시직이지만 요리기술을 배워 연말에는 식당을 내 볼 생각이다. 형제들의 도움으로 생활도 조금씩 숨통이 트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에게 가장 힘든 것은 자녀들의 교육문제다.
“아내도 일자리를 찾아다니느라 네 살배기 막내는 장모가 맡아서 키웁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첫째 아이의 급식비와 학용품 비용도 모두 처가에서 떠맡고 있는데…” 그는 말을 맺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다.
김씨와는 달리 은행에서 내키지 않는 조기 퇴직을 한 최아무개(47)씨는 지난 3월, 1억8천여만원을 들여 찜닭집을 차렸다. “제 나이에 남들은 지점 차장, 지점장으로 나가는데 상고 출신인 저는 마흔에야 대리를 달았습니다. 더 이상 회사에 있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만둘 때 후회는 없었지만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데 대한 심한 부끄러움과 가족, 친지들이 보내는 싸늘한 시선이 가장 큰 부담이었습니다.”
그는 요즘 식당에 손님이 없어 걱정이다. 대출금 1억원에 붙는 이자, 직원 8명의 월급과 가게 임대료를 내고 나면 본전은 커녕 장사를 할수록 빚만 쌓인다. “나중에 알았지만 제가 찜닭집을 차렸을 때는 거의 막차를 타는 분위기였습니다. 게다가 은행의 여신부, 기획부에만 있다보니 손님을 맞는 영업 마인드도 많이 부족했고요” 최씨는 할 수 없이 지난달 이십여년 동안 은행 생활을 하며 장만한 집까지 내놨다.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중앙고용정보원 이상현 연구원은 “중장년층에 대한 고용자의 편견과 과거의 임금에 대한 중장년층 구직자의 높은 기대치때문에 수요와 공급이 어긋나는 것이 중장년층 실업의 제일 큰 원인”이라며 “설령 눈높이를 낮춘다고 해도 거의 모든 일자리가 단순 노무직인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퇴직자 전문 컨설팅업체인 시비에스컨설팅 김웅태 대표는 “성공적인 재출발을 위해서는 퇴직 전인 40대 초반부터 성취목표를 다시 설정해 자신을 진단해야 한다”며 “퇴직전에 자금지원이 연계된 일정기간의 자기 계발 프로그램을 거친 뒤 재취업·창업을 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이루어져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김시열/커리어 뱅크 대표banzzok@chollian.net
창업자금지원 '그림의 떡'
지난 2000년 엘지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엘지주간경제’자료를 보면 가구주별 가계 2대 부담액(교육비+주거비)이 전체 가계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대 28.5%, 30대 32.4%, 40대 37.3%로 40대가 가장 높다. 그러나 40대 실직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재정경제부의 ‘40·50대 중장년층을 위한 실업대책’자료에 나온 중장년층 실직인구는 2000년 28만1천여명, 2001년 31만9천여명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늘고 있다.
정부는 재취업 교육과 취업알선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기업에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 또 중소 벤처기업 창업, 소상공인 창업, 생계형 창업 등 창업 형태별로 11만여명에게 540억원의 자금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실수요자가 이 자금을 쓰기는 쉽지 않다. 금융기관별로 자금을 나눠 집행하다보니 창업지원센터에서는 실질적인 대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난 5월 창업자금을 지원받으려고 소상공인 지원센터를 찾았던 이규원(41)씨는 “서울은 신청자가 너무 많아 사업자등록증을 만든 뒤 3개월이 지나야 자금지원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데, 여기서는 신청자들에게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금융기관에 ‘추천서’를 써줄 뿐”이라는 담당자의 설명을 듣고 실망했다.
지난 4월23일 서울 중구 한국언론재단에서 열린 ‘은퇴장년들의 경제활동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경제위기 상존, 노동시장 유연화, 가족기능 약화 등으로 위기를 맞은 중장년들에게 정부와 기업이 재취업에 필요한 교육과 창업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시열/커리어뱅크 대표banzzok@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