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에서 실은 4.3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니 제주인의 삶의 현장인 제주의 들녁, 그 들판에 버티어 선 오름에 비극적인 사건인 4.3이 각인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라 해야겠지요. 그래서 오름이야기 중 많은 오름들이 제주인의 아픈 역사 혹은 4.3 이야기의 중심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은 평화로운 자태로 아름다운 풍광과 웰빙생활의 한 축으로서 많은 은혜를 내려주고 있지만 오름은 정말로 불쌍하기 이를 데 없던 한 때 어떤 제주인들에게는 도피처로서 또 어떤 제주사람들에게는
은신처로서 생사를 함께 해온 제주의 피의 역사를 품고 있다는 걸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오름들 중 대표적인 오름이 바로 다랑쉬오름이지요. 이 오름이 유명해지게 된 것도 4.3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저 자신의 개인적인 추억으로부터 조금은 다른 생생한 느낌을 공유하고 싶어 여기 소개해봅니다.
그 4.3이 일어난 1948년과 1950년의 6.25전쟁…그리고 5.16군사쿠테타, 경제개발 등의 역사의 격랑을 헤쳐오는 동안 시간의
힘에 의해 4.3의 진실은 점점 옛날이야기로 전설처럼 묻혀져 가고 있었습니다. 왜곡된 사건의 진실은 물론 좌우의 사상에 의한 제주도
사람들끼리 반목하는 갈등의 원천이 치유되지 못한 트라우마로 미봉된 채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인가 봅니다. 유신독재가 무너지고 맞이한 5.18광주와 함께 열린 1980년대...그 의식화, 민주화의 지난한 과정이 펼쳐지면서 제주대학의 소수 학생들의 움직임과 지식인들 그리고 소수의 진보적 정치인들을 제외하고는 금기시 되어온 그 4.3이라는 사건의 얼굴, 우리의 민낯을 찾는 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합니다. 하나씩 4.3의 역사도 그 진실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진실의 문 하나가 바로 다랑쉬 오름입니다.
1992년 3월의 하순경...지금으로부터 벌써 26년이나 지난 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시 4.3에 관심을 기울이던 우리에게도 낯선 다랑쉬..아니 동제주의 허허벌판에 우뚝선 모습, 월랑봉이라는 이름으로 더 불리워지며 늘 익숙하게 서있던 오름.
초창기 4.3운동의 일환으로 4.3연구소와 소위 재야단체를 만들어 활동해가던 당시 후배 몇 명이 제보를 받고 답사까지 해 온 충격적인 동굴안의 유물과 증언자료와 현장사진들을 보고 우리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랑쉬 오름의 기슭 구석진 낮은 굴에서 4.3희생자로 보이는 유해 11구와 유물이 우리 4.3운동단체에 의해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한참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초토화 작전 당시 제9연대에 의해 학살된 희생자였던 것입니다. 굴에서 나가지도 못한 채 몰살당한 동네주민들이었던 것으로 밝혀진 것이지요. 그때까지 채록하는 증언과 전승되는 이야기 차원과는 다른, 거의 처음으로 4.3이라는 이름의 현장이 그 죽음의 모습으로 우리앞에 등장한 것이었습니다. 신발견이라 칭할만한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그러한 예가 없었던 우리는 당시의 재야 관계자 대표회의를 하면서 대책을 찾기에 부심했지만 언론을 통해 고발하는 것, 대중에게 알리며 확대 재생산하는 방법 이외에는 달리 시간도 힘도 없었습니다. 유족이라는 사람들을 동원해서 재빨리 화장하고 사실을 축소하고 묻어버리려는 당국의 횡포에 더 이상 직접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 채였지만 이 발견을 기점으로 대내외적으로 그 때까지의 편향적인 4.3의 진실을 파헤치는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이후 4.3사건, 폭도 빨갱이섬 등의 말은 조금씩 껍데기를 벗고 제자리를 찾아 가게 되었고 용기를 낸 증언과 계속 찾아내는 자료들과 민주주의의 의식 확산 등은 이 다랑쉬 오름의 존재와 더불어 4.3진실규명의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되었지요.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우리 앞에 새롭게 선 다랑쉬 오름과 연이은 아끈다랑쉬오름은 4.3의 옷을 벗으며 다시 태어나 제주의 동북평야와 대해를 군림하듯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랑쉬오름은 4.3 사건 자체의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아니지만 4.3의 진실규명과 제주도민간 화해상생의 길을 가리키는 하나의 또렷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한숨과 통곡의 세월을 뒤로한 채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다랑쉬 오름 위에 서면
불어오는 샛바람에 그 불쌍한 제주 섬사람들의 타령노래나,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묻어 나오는 듯합니다.
첫댓글 올 해 70주년이라는 4.3이 코앞이네요. 4.3평화공원에 재현되어 있는 다랑쉬동굴이 생각납니다. 가지런한 바디들... 그리고 섯알오름, 영화 "지슬"의 무대인 동광큰넓궤에서 볼레오름까지. 더 아프고 덜 아프고 차이지 제주도 산천이 모두 4.3 유적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번에 문통도 오신다는데 이제 아픔을 넘어 화합과 통합의 시대가 되어 4.3백비에 모두가 공감할만한 비문이 새겨지길 바랍니다. 다랑쉬오름이야기 감사합니다~